[특집]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국회가 학생인권법의
‘인권 방패’를 들길 바라며
지금 학교에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이유
수영
scottyoon07@gmail.com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인천 지역 고등학생
서울시의회는 지난 6월 25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재의결했다. 수차례 검증된 학생인권조례의 실효성과 성과, 국제 기구의 학생인권조례를 존치하라는 권고는 국민의힘의 편견과 혐오에 편승한 정치 아래 철저히 무시되었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는, 단순히 학생인권조례가 없었던 시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권을 경험한 시민들, 청소년들, 교사들, 양육자들의 인식이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조례의 폐지가 학교에 줄 메시지는 충분히 우려스럽다. 인권 침해를 당한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혹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위축될 것임도 명백하다.
학생인권 제도의 역사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벌어지자 국회에서는 ‘학생인권법’이 거론되고 있다. 학생인권을 법률에 담으려는 시도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법은 2006년 3월, 제17대 국회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초로 발의했다.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의 자유, 강제 자율학습 금지, 소지품·일기장 검사 및 압수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명시했다.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3년마다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2007년에 해당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지만 학생과 양육자, 인권활동가의 자리는 없었고 일부 교원단체 관계자만 참여하는 등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이 법안은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생의 인권 보장),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의 신설로 수렴되었고, 애초 최순영 의원안에서 명시했던 학생인권법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전부 폐기되었다.
이후 학생인권을 법으로 제정하려는 노력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으로 변모했다. 2010년에 경기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통과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총 6개의 광역자치단체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ref]〈조례 폐지 위기 앞에서 학생인권‘법’ 외치는 이유〉, 《시사인》, 871(2024년 5월 29일).[/ref]
학생인권법은 그 뒤로도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되었다. 완전한 체벌 금지,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 조례가 아닌 법률로서 학생인권 보장이 필요한 사항은 존재했으며, 조례가 제정되지 못한 지역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강민정 의원[ref]강민정(21대), 한창민(22대), 김문수(22대, 준비 중)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은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라는 별도 법안 형태를 취하여 기존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는 형식이 다르다. 취지나 핵심 내용은 거의 동일하며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가져와서 권리 내용을 더 상세히 나열하고 있고 학교운영위원회 관련 사항은 「초·중등교육법」이 규정하고 있어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명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차이로 꼽힌다.[/ref]이 법안을 발의했다. 현 22대 국회에서도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학생인권법을 발의했으며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도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인권, 2024년의 현실은 어떤가
경기 A중학교(조례 제정 지역)
작년 9월, 경기의 모 중학교에서 학생 대표인 학생회장에게 학교운영위원회 참여권을 안내조차 하지 않고, 학생회장이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인 방청을 요구해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교생 대상 서약서 사용을 설명 없이 강요하는 등 복합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청소년인권단체에서는 공문을 통해 학교에 인권 침해 상황을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이후 해당 학교의 ‘생활인권부장’ 교사와의 통화 내용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는 통화에서 “다른 학생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학교를 잘 다니는데, ‘인권 감수성이 높은’ 학생회장만 학교를 지옥 같다고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 찾아가서 만난 관리자는 “모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에 오되 학생 관련 안건이 없으면 돌아가라”, “학교운영위원회는 평일 오전(수업 중)에 열겠다”며 학생 대표 참여를 사실상 막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학교가 인권과 학생 참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최근 교사단체들에서 학생인권법에 반대하면서 학생들은 이미 민주적으로 학생생활규정 개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말에 발표한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30%의 학교가 학칙상으로도 생활규정 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학생 대상 인식도 조사에서 학생 참여를 보장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7%에 그친다. 또한 규정 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가 명시된 70%의 학교도 학생 당사자가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공론화 과정을 밟는 게 아닌, 그저 의견 제시·수렴에 그치는 등 형식적인 참여에 불과하다. 또한 최종적으로 규정을 의결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위원이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불가능하다.
대전 B고등학교(조례 미제정 지역)
대전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앞머리가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한다”는 진작 사라졌어야 할 과도한 두발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규정에 이의를 가진 학생들이 여러 차례 개선을 시도했으나, 학교는 규정 개정에서 교직원들의 투표에 가중치를 부여해 ‘학생 10표’와 ‘교사 1표’를 똑같이 반영되게 만들며 이러한 의견을 사실상 묵살했다.[ref]“매달 두발 검사… 교칙 개정 투표 집계 ‘학생 10표=교직원 1표’”, 〈한겨레〉, 2024년 4월 3일.[/ref] 특히 이 학교 학생들은 이미 수차례 국가인권위 진정, 교육청 민원 등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인권 침해 개선과 권리 구제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봤다. 국가인권위와 교육청의 시정 요구를 비롯해 언론에도 여러 번 공론화된 바 있으나, 학교에서는 이런 편법까지 사용해 가며 두발 규정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학교(조례 폐지 진행 중인 지역)
2024년 7월 4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공포되었다. 폐지안이 통과되고 나흘 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전체 교직원 대상으로 ‘용의 복장 지도 계획’이라는 문서를 배포했다.[ref]“학생인권조례 폐지 후 벌어진 일… 서울 A고 ‘용의 검사하라’”,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30일.[/ref] 해당 문서에는 반별로 2명씩 용의 복장 담당 교사를 배정해 학생들의 교복 착용 여부, 장신구나 컬러 렌즈 착용, 두발 등을 불시에 검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의 한 사립고에서는 추수감사절에 헌금과 과일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의 촌지를 요구하고, 일주일에 3번 넘게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해 학생이 서울시교육청에 구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조례 폐지로 인해 구제 절차가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다른 서울의 고등학교는 학칙을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가 조례가 폐지된 이후 학칙 개정을 보류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복수 지역의 인권 침해 사례들을 접하며 분명히 느낀 것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과 미제정 지역 간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례 이외에도 여러 조사들에서 학생인권의 보장 정도와 조례 제정 지역, 미제정 지역 간의 차이와 나아가선 조례의 한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학생생활규정을 비롯한 학칙은 가장 가시적으로 인권 침해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실태 조사[ref]국가인권위원회(2024),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ref]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 학생인권 보장을 명시한 비율이 68.4%인 반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공식 논의조차 된 적 없는 지역에서는 4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이후 “권리 구제 기구 운영 중단을 비롯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약화됨으로 인해 학생인권 실현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예상하고 있다.[ref]“서울·충남교육청 “학생인권조례 폐지, 인권 침해 구제 축소 초래””, 〈한국일보〉, 2024년 5월 7일.[/ref]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조례라는 법 체계의 한계로, 조례가 없거나 폐지된 지역은 절차와 기준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교의 생활규정이 지난 2023년 10월 교육부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공포된 이후 연속적으로 개정된 것과 같이,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여파는 2024년 2학기가 시작되는 머지않은 하반기부터, 그리고 규정 개정이 진행된 후인 2025학년도부터 학교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학생인권법이 ‘학교의 사법화’를 불러온다?
최근 대구교사노동조합은 “학생인권특별법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ref]“학생인권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 〈교육플러스〉, 2024년 7월 8일.[/ref]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는 “현재 학교는 인권센터를 둬서 학생을 보호해야 할 만큼 폭압적이지 않으며, 혐오의 말과 소수자를 배제하는 거친 표현이 문제가 되는 상황 (……) 모든 교육 활동에서 우선적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보다는 혐오 발언 금지이고, 소수자와 약자 앞에서 멈춰야 하는 균형 감각과 배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은 학생인권 제도에 대한 오개념에 기반한 것으로 실제 학생인권법의 취지, 내용과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5조 제3항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결정[ref]헌법재판소, 2017헌마1356, 2019년 11월 28일.[/ref]에서 “이 사건 조례 제5조 제3항은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배되거나 학교 구성원인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라며, “제5조 제3항은 그 표현의 대상이 되는 학교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학생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 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수단의 적합성 역시 인정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결정을 통해 법률적으로, 또 학교에서 학생인권법이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어떻게 작용할지 살펴볼 수 있으며, 학생인권조례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된 학생인권법의 헌법적 정당성 역시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대구교사노동조합은 또 “현재 학교는 인권센터를 둬서 학생을 보호해야 할 만큼 폭압적이지 않다”며 “학생인권법이 학교교육의 사법화 현상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인권센터를 비롯한 구제 기구를 설치하는 목적은 학교가 ‘폭압적’이기 때문이 아닌, 개인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대응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학교 자체의 인권 침해적 상황을 개선하고 학교를 보다 인권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에 따른 구제 기구는 사법적 절차와는 성격이 다르고 오히려 사법화를 억제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외하면, 현행 법 체계 속에서는 ‘학생이 당하는 인권 침해’ 상황을 개선하고 강제성을 가진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이는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나 교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결국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인권 침해에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교사를 꼭 처벌받게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자신에 대한 평가권을 가지고 일과 시간의 상당수를 함께 보내는 교사를 대상으로 형사적 절차를 밟기에 앞서 학생들이 상당히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대안적 구제 기구를 제시하는 학생인권법은 교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 오히려 법적인 부담으로부터 보호하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완충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함이다. ‘사법화’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불거진 교육 위기는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인권을 ‘제로섬’으로 취급하며 공교육의 총체적 위기를 ‘특정 집단의 인권이 과도하게 보장돼서’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여태까지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흔히 해 오던 갈라치기 전략이다. 학생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하는 식의 주장은 실체적 근거가 없고 교육을 잘못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당장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연간 교육 활동 침해 건수 통계를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교원 100명당 침해 경험 비율로 재구성했을 때[ref]정의당 송경원 정책위원, 〈정책분석 : 학생인권조례 있는 곳, 교육활동 침해 적어〉, 2023년 7월 24일.[/ref], 조례 지역이 0.49, 비조례 지역이 0.51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오히려 조례가 있는 지역에서 비율이 조금 더 낮게 나오기도 했다.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
학생인권법과 그 내용은 조례 폐지에 대한 대응으로 어느 날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2006년 학생인권법을 처음 발의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사이 학생인권법에 담겼던 문제의식과 내용은 조례의 형태로 일부 지역에 안착했고, 그 효과가 여러 연구와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공교육은 ‘병풍처럼 앉아 있는’ 학생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학교가 왜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공간인지, 학생들이 교사가 불편해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살피고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부 개인들의 인권에 대한 ‘오개념’과 인권을 거론하여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남용’이 정말로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 학생인권법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교사, 학생, 양육자를 포함한 교육 주체 모두가 제대로 인권을 배울 수 있는 인권교육을 확충하여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 방향이 아닐까.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인 것이다. 인권 없는 교육은 그 자체로 부당하고 교육이 아니다. 지금 학생인권법에 반대하고 있는 교원단체들이 이런 가치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 여름 교사들의 외침이 ‘학생인권법 제도 반대’가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이고, 정부 여당이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 운운하며[ref]“대통령실 “尹 국정 방향, 종북주사파 망친 5년 원상 복구 집중””, 〈쿠키뉴스〉, 2023년 7월 22일.[/ref] 폐지를 포함한 정비를 시사할 때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나선 여러 교사들과 교원단체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범이고,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보다도 오히려 일부 후퇴한 측면이 있는 학생인권법안조차도 반대하고 나선다면, 당시 일각에서 학생인권을 옹호한다며 내놓았던 입장들은 그저 겉치레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일부 단체들은 이미 학생의 인권이 「아동복지법」 ,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 「초·중등교육법」 , 〈아동 권리 협약〉을 비롯한 기존 법령에 의거하여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법령 대부분은 선언적 규범에 불과하거나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만 개입하고 ‘처벌’할 수 있다. 정도와 관계없이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와 회복을 지향하는 학생인권법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어떤 인권 침해는 구제받고 있지만 어떤 인권 침해는 아예 수면 밑에 묻혀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법의 제정은 교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와 학생의 보편적 인권이 상충하는 가치가 아님을 증명하고, 교사에 대한 지원과 인권 보장에 대한 정부의 책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교육 주체의 노동권과 정치 기본권으로도 논의와 관심이 확장될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의 학생인권 실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이제는 편견과 프레임에 갇힌 학생인권법 반대를 멈춰 주기를 바란다. 각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폐지 논쟁으로 더 이상 소모적인 갈등,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한 교육 주체들의 마음 졸임과 아픔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2024년 7월 기준, 22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입법 예고 중 학생인권특별법에 대한 의견 수가 24,152개(대부분 반대 의견이다)로 가장 많다. 혐오 세력과 복수의 주요 교원단체들 역시 학생인권법 저지를 적극적으로 선언하며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인권법을 공약했거나 그 가치에 동의하는 제 정당들과 22대 국회에서 학생인권법 논의가 위축되고 후퇴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후퇴당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회에서 모든 학생의 최소한의 인권을 규정하고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조성하는 학생인권법의 입법을 통해 차별과 불평등, 인권 침해에 맞서는 ‘인권 방패’를 들어 주기를 바란다.
[특집]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국회가 학생인권법의
‘인권 방패’를 들길 바라며
지금 학교에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이유
수영
scottyoon07@gmail.com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인천 지역 고등학생
서울시의회는 지난 6월 25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재의결했다. 수차례 검증된 학생인권조례의 실효성과 성과, 국제 기구의 학생인권조례를 존치하라는 권고는 국민의힘의 편견과 혐오에 편승한 정치 아래 철저히 무시되었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는, 단순히 학생인권조례가 없었던 시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권을 경험한 시민들, 청소년들, 교사들, 양육자들의 인식이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조례의 폐지가 학교에 줄 메시지는 충분히 우려스럽다. 인권 침해를 당한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혹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위축될 것임도 명백하다.
학생인권 제도의 역사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벌어지자 국회에서는 ‘학생인권법’이 거론되고 있다. 학생인권을 법률에 담으려는 시도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법은 2006년 3월, 제17대 국회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초로 발의했다.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의 자유, 강제 자율학습 금지, 소지품·일기장 검사 및 압수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명시했다.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3년마다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2007년에 해당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지만 학생과 양육자, 인권활동가의 자리는 없었고 일부 교원단체 관계자만 참여하는 등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이 법안은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생의 인권 보장),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의 신설로 수렴되었고, 애초 최순영 의원안에서 명시했던 학생인권법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전부 폐기되었다.
이후 학생인권을 법으로 제정하려는 노력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으로 변모했다. 2010년에 경기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통과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총 6개의 광역자치단체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ref]〈조례 폐지 위기 앞에서 학생인권‘법’ 외치는 이유〉, 《시사인》, 871(2024년 5월 29일).[/ref]
학생인권법은 그 뒤로도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되었다. 완전한 체벌 금지,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 조례가 아닌 법률로서 학생인권 보장이 필요한 사항은 존재했으며, 조례가 제정되지 못한 지역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강민정 의원[ref]강민정(21대), 한창민(22대), 김문수(22대, 준비 중)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은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라는 별도 법안 형태를 취하여 기존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는 형식이 다르다. 취지나 핵심 내용은 거의 동일하며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가져와서 권리 내용을 더 상세히 나열하고 있고 학교운영위원회 관련 사항은 「초·중등교육법」이 규정하고 있어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명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차이로 꼽힌다.[/ref]이 법안을 발의했다. 현 22대 국회에서도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학생인권법을 발의했으며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도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인권, 2024년의 현실은 어떤가
경기 A중학교(조례 제정 지역)
작년 9월, 경기의 모 중학교에서 학생 대표인 학생회장에게 학교운영위원회 참여권을 안내조차 하지 않고, 학생회장이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인 방청을 요구해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교생 대상 서약서 사용을 설명 없이 강요하는 등 복합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청소년인권단체에서는 공문을 통해 학교에 인권 침해 상황을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이후 해당 학교의 ‘생활인권부장’ 교사와의 통화 내용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는 통화에서 “다른 학생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학교를 잘 다니는데, ‘인권 감수성이 높은’ 학생회장만 학교를 지옥 같다고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 찾아가서 만난 관리자는 “모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에 오되 학생 관련 안건이 없으면 돌아가라”, “학교운영위원회는 평일 오전(수업 중)에 열겠다”며 학생 대표 참여를 사실상 막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학교가 인권과 학생 참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최근 교사단체들에서 학생인권법에 반대하면서 학생들은 이미 민주적으로 학생생활규정 개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말에 발표한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30%의 학교가 학칙상으로도 생활규정 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학생 대상 인식도 조사에서 학생 참여를 보장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7%에 그친다. 또한 규정 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가 명시된 70%의 학교도 학생 당사자가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공론화 과정을 밟는 게 아닌, 그저 의견 제시·수렴에 그치는 등 형식적인 참여에 불과하다. 또한 최종적으로 규정을 의결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위원이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불가능하다.
대전 B고등학교(조례 미제정 지역)
대전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앞머리가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한다”는 진작 사라졌어야 할 과도한 두발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규정에 이의를 가진 학생들이 여러 차례 개선을 시도했으나, 학교는 규정 개정에서 교직원들의 투표에 가중치를 부여해 ‘학생 10표’와 ‘교사 1표’를 똑같이 반영되게 만들며 이러한 의견을 사실상 묵살했다.[ref]“매달 두발 검사… 교칙 개정 투표 집계 ‘학생 10표=교직원 1표’”, 〈한겨레〉, 2024년 4월 3일.[/ref] 특히 이 학교 학생들은 이미 수차례 국가인권위 진정, 교육청 민원 등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인권 침해 개선과 권리 구제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봤다. 국가인권위와 교육청의 시정 요구를 비롯해 언론에도 여러 번 공론화된 바 있으나, 학교에서는 이런 편법까지 사용해 가며 두발 규정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학교(조례 폐지 진행 중인 지역)
2024년 7월 4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공포되었다. 폐지안이 통과되고 나흘 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전체 교직원 대상으로 ‘용의 복장 지도 계획’이라는 문서를 배포했다.[ref]“학생인권조례 폐지 후 벌어진 일… 서울 A고 ‘용의 검사하라’”,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30일.[/ref] 해당 문서에는 반별로 2명씩 용의 복장 담당 교사를 배정해 학생들의 교복 착용 여부, 장신구나 컬러 렌즈 착용, 두발 등을 불시에 검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의 한 사립고에서는 추수감사절에 헌금과 과일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의 촌지를 요구하고, 일주일에 3번 넘게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해 학생이 서울시교육청에 구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조례 폐지로 인해 구제 절차가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다른 서울의 고등학교는 학칙을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가 조례가 폐지된 이후 학칙 개정을 보류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복수 지역의 인권 침해 사례들을 접하며 분명히 느낀 것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과 미제정 지역 간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례 이외에도 여러 조사들에서 학생인권의 보장 정도와 조례 제정 지역, 미제정 지역 간의 차이와 나아가선 조례의 한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학생생활규정을 비롯한 학칙은 가장 가시적으로 인권 침해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실태 조사[ref]국가인권위원회(2024),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ref]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 학생인권 보장을 명시한 비율이 68.4%인 반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공식 논의조차 된 적 없는 지역에서는 4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이후 “권리 구제 기구 운영 중단을 비롯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약화됨으로 인해 학생인권 실현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예상하고 있다.[ref]“서울·충남교육청 “학생인권조례 폐지, 인권 침해 구제 축소 초래””, 〈한국일보〉, 2024년 5월 7일.[/ref]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조례라는 법 체계의 한계로, 조례가 없거나 폐지된 지역은 절차와 기준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교의 생활규정이 지난 2023년 10월 교육부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공포된 이후 연속적으로 개정된 것과 같이,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여파는 2024년 2학기가 시작되는 머지않은 하반기부터, 그리고 규정 개정이 진행된 후인 2025학년도부터 학교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학생인권법이 ‘학교의 사법화’를 불러온다?
최근 대구교사노동조합은 “학생인권특별법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ref]“학생인권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 〈교육플러스〉, 2024년 7월 8일.[/ref]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는 “현재 학교는 인권센터를 둬서 학생을 보호해야 할 만큼 폭압적이지 않으며, 혐오의 말과 소수자를 배제하는 거친 표현이 문제가 되는 상황 (……) 모든 교육 활동에서 우선적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보다는 혐오 발언 금지이고, 소수자와 약자 앞에서 멈춰야 하는 균형 감각과 배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은 학생인권 제도에 대한 오개념에 기반한 것으로 실제 학생인권법의 취지, 내용과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5조 제3항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결정[ref]헌법재판소, 2017헌마1356, 2019년 11월 28일.[/ref]에서 “이 사건 조례 제5조 제3항은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배되거나 학교 구성원인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라며, “제5조 제3항은 그 표현의 대상이 되는 학교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학생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 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수단의 적합성 역시 인정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결정을 통해 법률적으로, 또 학교에서 학생인권법이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어떻게 작용할지 살펴볼 수 있으며, 학생인권조례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된 학생인권법의 헌법적 정당성 역시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대구교사노동조합은 또 “현재 학교는 인권센터를 둬서 학생을 보호해야 할 만큼 폭압적이지 않다”며 “학생인권법이 학교교육의 사법화 현상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인권센터를 비롯한 구제 기구를 설치하는 목적은 학교가 ‘폭압적’이기 때문이 아닌, 개인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대응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학교 자체의 인권 침해적 상황을 개선하고 학교를 보다 인권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에 따른 구제 기구는 사법적 절차와는 성격이 다르고 오히려 사법화를 억제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외하면, 현행 법 체계 속에서는 ‘학생이 당하는 인권 침해’ 상황을 개선하고 강제성을 가진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이는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나 교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결국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인권 침해에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교사를 꼭 처벌받게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자신에 대한 평가권을 가지고 일과 시간의 상당수를 함께 보내는 교사를 대상으로 형사적 절차를 밟기에 앞서 학생들이 상당히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대안적 구제 기구를 제시하는 학생인권법은 교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 오히려 법적인 부담으로부터 보호하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완충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함이다. ‘사법화’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불거진 교육 위기는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인권을 ‘제로섬’으로 취급하며 공교육의 총체적 위기를 ‘특정 집단의 인권이 과도하게 보장돼서’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여태까지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흔히 해 오던 갈라치기 전략이다. 학생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하는 식의 주장은 실체적 근거가 없고 교육을 잘못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당장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연간 교육 활동 침해 건수 통계를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교원 100명당 침해 경험 비율로 재구성했을 때[ref]정의당 송경원 정책위원, 〈정책분석 : 학생인권조례 있는 곳, 교육활동 침해 적어〉, 2023년 7월 24일.[/ref], 조례 지역이 0.49, 비조례 지역이 0.51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오히려 조례가 있는 지역에서 비율이 조금 더 낮게 나오기도 했다.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
학생인권법과 그 내용은 조례 폐지에 대한 대응으로 어느 날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2006년 학생인권법을 처음 발의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사이 학생인권법에 담겼던 문제의식과 내용은 조례의 형태로 일부 지역에 안착했고, 그 효과가 여러 연구와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공교육은 ‘병풍처럼 앉아 있는’ 학생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학교가 왜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공간인지, 학생들이 교사가 불편해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살피고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부 개인들의 인권에 대한 ‘오개념’과 인권을 거론하여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남용’이 정말로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 학생인권법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교사, 학생, 양육자를 포함한 교육 주체 모두가 제대로 인권을 배울 수 있는 인권교육을 확충하여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 방향이 아닐까.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인 것이다. 인권 없는 교육은 그 자체로 부당하고 교육이 아니다. 지금 학생인권법에 반대하고 있는 교원단체들이 이런 가치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 여름 교사들의 외침이 ‘학생인권법 제도 반대’가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이고, 정부 여당이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 운운하며[ref]“대통령실 “尹 국정 방향, 종북주사파 망친 5년 원상 복구 집중””, 〈쿠키뉴스〉, 2023년 7월 22일.[/ref] 폐지를 포함한 정비를 시사할 때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나선 여러 교사들과 교원단체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범이고,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보다도 오히려 일부 후퇴한 측면이 있는 학생인권법안조차도 반대하고 나선다면, 당시 일각에서 학생인권을 옹호한다며 내놓았던 입장들은 그저 겉치레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일부 단체들은 이미 학생의 인권이 「아동복지법」 ,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 「초·중등교육법」 , 〈아동 권리 협약〉을 비롯한 기존 법령에 의거하여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법령 대부분은 선언적 규범에 불과하거나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만 개입하고 ‘처벌’할 수 있다. 정도와 관계없이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와 회복을 지향하는 학생인권법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어떤 인권 침해는 구제받고 있지만 어떤 인권 침해는 아예 수면 밑에 묻혀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법의 제정은 교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와 학생의 보편적 인권이 상충하는 가치가 아님을 증명하고, 교사에 대한 지원과 인권 보장에 대한 정부의 책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교육 주체의 노동권과 정치 기본권으로도 논의와 관심이 확장될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의 학생인권 실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이제는 편견과 프레임에 갇힌 학생인권법 반대를 멈춰 주기를 바란다. 각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폐지 논쟁으로 더 이상 소모적인 갈등,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한 교육 주체들의 마음 졸임과 아픔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2024년 7월 기준, 22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입법 예고 중 학생인권특별법에 대한 의견 수가 24,152개(대부분 반대 의견이다)로 가장 많다. 혐오 세력과 복수의 주요 교원단체들 역시 학생인권법 저지를 적극적으로 선언하며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인권법을 공약했거나 그 가치에 동의하는 제 정당들과 22대 국회에서 학생인권법 논의가 위축되고 후퇴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후퇴당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회에서 모든 학생의 최소한의 인권을 규정하고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조성하는 학생인권법의 입법을 통해 차별과 불평등, 인권 침해에 맞서는 ‘인권 방패’를 들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