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무엇을 혐오하고
어디를 겨냥하는가
- 인권 담론·정책이 공격당하는 배경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2024년,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에서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 가결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의 후퇴는 2022년부터 예견된 바였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어진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여러 지자체 의회 다수를 차지했으며,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도 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입장을 꾸준히 가져 왔고 보수 교육감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경기도에서 당선된 임태희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경기도의 현장 교사로부터 “임태희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시키지 않았나?”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학생인권조례 후퇴 메시지를 내 왔다.[ref]“‘학생인권조례’는 법과 같은데… 법치주의 국가의 이상한 현상”, 〈오마이뉴스〉, 2023년 4월 27일.[/ref]
선거 결과에 따라 학생인권조례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학생인권이 우리 사회에,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변화임을 시사한다. 가령 (2010년대 청소년인권운동의 또 다른 대표적 의제 중 하나였던)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확대도 여러 반대에 부딪혔지만 실현 이후에는 이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 반면 학생인권의 경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 왔고, 학생인권조례도 제정 당시부터 각종 방해와 소송을 당했다. 어쩌면 경기, 광주, 서울, 전북의 학생인권조례가 계속 유지될 수 있던 것은 단지 교육감·지방 선거 결과에 따른 ‘우연’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 보장에 찬성한다는 시민들이나 교육운동 주체들도 상당수가 ‘학생인권은 옛날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나, 이미 해결된 문제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와 같은 인식을 보였는데, 학생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받는 대우를 방증한다고 하겠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2022년 선거 이후 예견되었다고 썼지만, 그보다 더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경남에서 두 차례, 세 차례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무산되었을 때, 부산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을 때, 아니, 충남이나 제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새로 제정되었지만 오히려 그 내용은 이전의 조례들보다 후퇴했을 때, 강원도에서 오랜 시간 논의하고 준비한 학생인권조례 추진이 실패했을 때, 혹은 인천에서 학교구성원인권조례 같은 게 당당하게 제정되었을 때……. 돌아보면 이런 때들이 모두 이미 제정돼 있던 학생인권조례의 후퇴도 예감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학생인권의 후퇴는 한국 사회가 더 많은 변화로,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 끝에 마주하게 된 상황이다.[ref]학생인권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의 문제와 ‘더 나아가지 못했기에 퇴보했다’라는 평가는 [공현(2024), 〈학생인권이 부딪혀 온 유리장벽〉, 《오늘의 교육》, 80(2024년 5·6월)]에 적은 바 있다.[/ref]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상징적 장면에서 우리는 차별·혐오를 앞세운 정치의 득세, 교육에 대한 보수 반동적 관점의 견고함, 보편적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약화를 읽어 내야 한다.
차별에 찬성하는 정치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눈에 띄게 반대해 온 것은 ‘혐오 세력’으로 불리는, 보수 개신교 단체들일 것이다. 이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차별금지법 반대’를 내세우며 결집하여 성소수자 차별·혐오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처음에 경기도나 광주광역시에서 제정될 당시만 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은 별다른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의 차별 관련 조항을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공격하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쟁점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비롯한 섹슈얼리티-차별 의제가 부각되었다.
소수이지만 돈과 조직력을 갖춘 이들은 경남, 부산, 충남 등지에서 계속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방해해 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7년에도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발안을 했던 적이 있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제2차 학생인권 종합 계획’에 반대하고,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공격하고 도서관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교육 도서들을 폐기하라고 하는 등 이들은 인권·다양성·성평등(페미니즘) 등에 관련된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과 연동되어 있는 이러한 활동은 ‘차별하고 혐오할 자유’를 주장하고 학생과 교사, 사회적 소수자들을 공격하면서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지속되는 데는 제도권 정치의 동조가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상당수 정치인이 ‘차별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어 왔다. 학생인권조례는 몇몇 조건이 맞물려 ‘보수 세력에 반대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소위 ‘진보 교육감’들과 민주당 세력이 한데 묶이면서 제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구도의 효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은 그리 분명하지 않았고 학생인권 신장을 당론으로 정하는 등의 정치적 행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이 의회 제1당 또는 과반을 차지하고 정권을 차지한 2017년 이후 그런 태도가 더 많이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조치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이유다.
물론 국민의힘은 아예 이런 혐오 세력과 일체화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잘못이 크다. 국민의힘은 원래 학생인권 신장, 차별금지법 등에 반대해 왔다. 근래에는 국회나 지방 의회에서 혐오 세력발 음모론적, 차별·혐오 선동적인 주장을 그대로 중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중단되고 도서관의 성교육 도서들을 검열하려 드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도 같은 방식으로 벌어졌다. 서울, 충남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발안을 받아서, 성소수자 혐오 주장을 곁들여 가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이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외국 상황을 보며 ‘극우 정당의 준동’을 우려하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주류 우파 정당이 이미 반공주의·소수자 혐오의 극우 세력과 구분 불가능하게 유착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후퇴는 이와 같은 ‘차별에 찬성하는 정치’의 결과이자 그런 주장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소수자 차별 문제를 공격하는 방식은 실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나 영향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먹히고’ 있다.[ref]사실 학생인권조례에서 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이 핵심이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를 ‘교육계의 차별금지법’이라고 공격하는 극우 정당의 현수막을 본 일이 있는데, 학생인권조례는 차별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고 차별을 금지하고 해결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단 점에서 틀린 말이다. 이런 점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은 상당 부분 가짜 뉴스나 허위에 근거하고 있다.[/ref] 이는 고작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수준의 추상적인 반차별의 원칙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거짓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의 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학습시키는 사례가 된다. 그 결과 주로 ‘교권’ 등 다른 이유로 학생인권조례/학생인권법에 반대한다는 교원단체들도 이에 ‘물들어’, 성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 등을 두고 대놓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급진적 인권 개념’이라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인권 반대’가 향하는 교육과 사회
이러한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주장은 ‘컬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핏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와 음모론으로밖에 안 느껴지는 주장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한국 사회 주류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일치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의 주장에서 가장 전면에 걸려 있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비롯해서 성교육, 성적 자유, 임신 등 섹슈얼리티 관련 사안이다. 하지만 이들의 담론과 프레임이 단지 성소수자 차별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나 자유민주당 등 극우 정당이 내놓는 주장을 보면 학생인권조례를 ‘학생이 교사·부모에게 대들게 하는 악법’이라고 묘사한다. 학생은 성·정치 등에 관심을 두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한다, 체벌은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 담겨 있는 교육관은, ‘교육은 곧 통제이자 처벌’이며 학교교육은 교사-학생 간의 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 공부야말로 유일한 교육이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한국 사회에 매우 익숙하고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관점이다.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성소수자, 페미니즘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를 반차별-평등의 문제가 아닌, 학생 선도-훈육의 프레임에 위치시킨다.[[ref]공현(2020), “왜 ‘청소년 보호’가 차별과 혐오의 핑계가 되는가”, 〈프레시안〉, 2020년 6월 5일.[/ref] 학생들이 교사·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거나 주류적 삶으로부터 탈선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식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페미니즘 반대’를 외치는 것도 보수적인 ‘정상 가족’,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핵가족을 꾸리는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다. 즉,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은 그저 ‘동성애는 종교 교리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적·권위주의적이며 순종과 입시 공부에만 주력하는 교육,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제적인 가족을 변화시키기를 거부하며 ‘그런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정부나 일부 단체들이 ‘교권 강화’를 내세우며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것 역시 그 출발점은 달라 보여도 그 방향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때의 교권 강화란 곧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는 교육, 수직적인 질서를 유지·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교권 강화로 추진되는 내용이 ‘교사(의 인권)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하라’는 것을 넘어, ‘교사가 학생의 물건을 빼앗을 수 있게 하라, 학생에게 자의적으로 강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라, 교사의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못 하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ref]‘교권’의 개념과 담론이 어떤 맥락과 구도 속에 위치하고 작동해 왔는지는 [하영(2023),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오늘의 교육》, 75(2023년 7·8월)] 등 참조.[/ref] 이는 단순히 교사에게 지원을 강화하라거나 특정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교육의 방식과 관계를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쪽,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익숙하고 편의적인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으로 연결된다.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등의 정책이 지향한 것은, 물론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1차적 목표였고, 나아가서는 학생을 인권의 주체이자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다른 교육 방식, 모델,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간 한국 정부는 체벌을 금지하거나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제도를 만들면서도 이러한 종합적·총체적 접근을 하지 않았다. 체벌 금지 등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학교 현장에 떠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누적된 교사들의 불만은 다른 교육을 상상하고 만들라고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교권 강화’ 정책에서 학생인권 보장의 의무를 부정하고 약화시키는 명분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보편적 인권이 부정당하고 후퇴하는 일이 전면적으로 벌어져서이다. 이와 더불어 교육에 관한 합의도 약화되고 있다. ‘참교육’이나 ‘인간화 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에 담겨 있던 ‘더 나은 교육에 대한 상’도 희미해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 아래 보수 반동적인 정책과 주장이 정당화된다. 이런 점에서는 ‘성평등’, ‘페미니즘(여성주의)’ 등이 온 사회에서 타깃이 되고, 페미니즘이나 기후 위기 관련 수업을 한 교사들이 민원·고발 등의 공격을 받는 사건들이야말로 학생인권 반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근거가 되어 주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들이 공격받고 힘을 잃으면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조들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나 임신한 학생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그래도 겉으로나 당위적으로는 받아들여지던 그러한 반차별의 원칙이, 학교가 모든 학생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가 있다는 원칙이 노골적으로 부정당하게 된 상황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을 마주한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보편적 가치를 만들고, 이야기하고, 추구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교육과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고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하는지 정치적 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적어도 각 개인이나 집단의 당장의 권익을 앞세운 각자도생이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특집 |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무엇을 혐오하고
어디를 겨냥하는가
- 인권 담론·정책이 공격당하는 배경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2024년,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에서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 가결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의 후퇴는 2022년부터 예견된 바였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어진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여러 지자체 의회 다수를 차지했으며,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도 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입장을 꾸준히 가져 왔고 보수 교육감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경기도에서 당선된 임태희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경기도의 현장 교사로부터 “임태희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시키지 않았나?”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학생인권조례 후퇴 메시지를 내 왔다.[ref]“‘학생인권조례’는 법과 같은데… 법치주의 국가의 이상한 현상”, 〈오마이뉴스〉, 2023년 4월 27일.[/ref]
선거 결과에 따라 학생인권조례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학생인권이 우리 사회에,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변화임을 시사한다. 가령 (2010년대 청소년인권운동의 또 다른 대표적 의제 중 하나였던)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확대도 여러 반대에 부딪혔지만 실현 이후에는 이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 반면 학생인권의 경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 왔고, 학생인권조례도 제정 당시부터 각종 방해와 소송을 당했다. 어쩌면 경기, 광주, 서울, 전북의 학생인권조례가 계속 유지될 수 있던 것은 단지 교육감·지방 선거 결과에 따른 ‘우연’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 보장에 찬성한다는 시민들이나 교육운동 주체들도 상당수가 ‘학생인권은 옛날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나, 이미 해결된 문제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와 같은 인식을 보였는데, 학생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받는 대우를 방증한다고 하겠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2022년 선거 이후 예견되었다고 썼지만, 그보다 더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경남에서 두 차례, 세 차례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무산되었을 때, 부산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을 때, 아니, 충남이나 제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새로 제정되었지만 오히려 그 내용은 이전의 조례들보다 후퇴했을 때, 강원도에서 오랜 시간 논의하고 준비한 학생인권조례 추진이 실패했을 때, 혹은 인천에서 학교구성원인권조례 같은 게 당당하게 제정되었을 때……. 돌아보면 이런 때들이 모두 이미 제정돼 있던 학생인권조례의 후퇴도 예감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학생인권의 후퇴는 한국 사회가 더 많은 변화로,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 끝에 마주하게 된 상황이다.[ref]학생인권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의 문제와 ‘더 나아가지 못했기에 퇴보했다’라는 평가는 [공현(2024), 〈학생인권이 부딪혀 온 유리장벽〉, 《오늘의 교육》, 80(2024년 5·6월)]에 적은 바 있다.[/ref]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상징적 장면에서 우리는 차별·혐오를 앞세운 정치의 득세, 교육에 대한 보수 반동적 관점의 견고함, 보편적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약화를 읽어 내야 한다.
차별에 찬성하는 정치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눈에 띄게 반대해 온 것은 ‘혐오 세력’으로 불리는, 보수 개신교 단체들일 것이다. 이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차별금지법 반대’를 내세우며 결집하여 성소수자 차별·혐오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처음에 경기도나 광주광역시에서 제정될 당시만 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은 별다른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의 차별 관련 조항을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공격하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쟁점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비롯한 섹슈얼리티-차별 의제가 부각되었다.
소수이지만 돈과 조직력을 갖춘 이들은 경남, 부산, 충남 등지에서 계속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방해해 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7년에도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발안을 했던 적이 있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제2차 학생인권 종합 계획’에 반대하고,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공격하고 도서관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교육 도서들을 폐기하라고 하는 등 이들은 인권·다양성·성평등(페미니즘) 등에 관련된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과 연동되어 있는 이러한 활동은 ‘차별하고 혐오할 자유’를 주장하고 학생과 교사, 사회적 소수자들을 공격하면서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지속되는 데는 제도권 정치의 동조가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상당수 정치인이 ‘차별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어 왔다. 학생인권조례는 몇몇 조건이 맞물려 ‘보수 세력에 반대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소위 ‘진보 교육감’들과 민주당 세력이 한데 묶이면서 제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구도의 효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은 그리 분명하지 않았고 학생인권 신장을 당론으로 정하는 등의 정치적 행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이 의회 제1당 또는 과반을 차지하고 정권을 차지한 2017년 이후 그런 태도가 더 많이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조치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이유다.
물론 국민의힘은 아예 이런 혐오 세력과 일체화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잘못이 크다. 국민의힘은 원래 학생인권 신장, 차별금지법 등에 반대해 왔다. 근래에는 국회나 지방 의회에서 혐오 세력발 음모론적, 차별·혐오 선동적인 주장을 그대로 중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중단되고 도서관의 성교육 도서들을 검열하려 드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도 같은 방식으로 벌어졌다. 서울, 충남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발안을 받아서, 성소수자 혐오 주장을 곁들여 가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이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외국 상황을 보며 ‘극우 정당의 준동’을 우려하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주류 우파 정당이 이미 반공주의·소수자 혐오의 극우 세력과 구분 불가능하게 유착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후퇴는 이와 같은 ‘차별에 찬성하는 정치’의 결과이자 그런 주장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소수자 차별 문제를 공격하는 방식은 실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나 영향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먹히고’ 있다.[ref]사실 학생인권조례에서 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이 핵심이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를 ‘교육계의 차별금지법’이라고 공격하는 극우 정당의 현수막을 본 일이 있는데, 학생인권조례는 차별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고 차별을 금지하고 해결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단 점에서 틀린 말이다. 이런 점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은 상당 부분 가짜 뉴스나 허위에 근거하고 있다.[/ref] 이는 고작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수준의 추상적인 반차별의 원칙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거짓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의 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학습시키는 사례가 된다. 그 결과 주로 ‘교권’ 등 다른 이유로 학생인권조례/학생인권법에 반대한다는 교원단체들도 이에 ‘물들어’, 성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 등을 두고 대놓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급진적 인권 개념’이라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인권 반대’가 향하는 교육과 사회
이러한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주장은 ‘컬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핏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와 음모론으로밖에 안 느껴지는 주장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한국 사회 주류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일치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의 주장에서 가장 전면에 걸려 있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비롯해서 성교육, 성적 자유, 임신 등 섹슈얼리티 관련 사안이다. 하지만 이들의 담론과 프레임이 단지 성소수자 차별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나 자유민주당 등 극우 정당이 내놓는 주장을 보면 학생인권조례를 ‘학생이 교사·부모에게 대들게 하는 악법’이라고 묘사한다. 학생은 성·정치 등에 관심을 두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한다, 체벌은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 담겨 있는 교육관은, ‘교육은 곧 통제이자 처벌’이며 학교교육은 교사-학생 간의 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 공부야말로 유일한 교육이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한국 사회에 매우 익숙하고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관점이다.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성소수자, 페미니즘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를 반차별-평등의 문제가 아닌, 학생 선도-훈육의 프레임에 위치시킨다.[[ref]공현(2020), “왜 ‘청소년 보호’가 차별과 혐오의 핑계가 되는가”, 〈프레시안〉, 2020년 6월 5일.[/ref] 학생들이 교사·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거나 주류적 삶으로부터 탈선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식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페미니즘 반대’를 외치는 것도 보수적인 ‘정상 가족’,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핵가족을 꾸리는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다. 즉,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은 그저 ‘동성애는 종교 교리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적·권위주의적이며 순종과 입시 공부에만 주력하는 교육,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제적인 가족을 변화시키기를 거부하며 ‘그런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정부나 일부 단체들이 ‘교권 강화’를 내세우며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것 역시 그 출발점은 달라 보여도 그 방향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때의 교권 강화란 곧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는 교육, 수직적인 질서를 유지·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교권 강화로 추진되는 내용이 ‘교사(의 인권)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하라’는 것을 넘어, ‘교사가 학생의 물건을 빼앗을 수 있게 하라, 학생에게 자의적으로 강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라, 교사의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못 하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ref]‘교권’의 개념과 담론이 어떤 맥락과 구도 속에 위치하고 작동해 왔는지는 [하영(2023),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오늘의 교육》, 75(2023년 7·8월)] 등 참조.[/ref] 이는 단순히 교사에게 지원을 강화하라거나 특정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교육의 방식과 관계를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쪽,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익숙하고 편의적인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으로 연결된다.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등의 정책이 지향한 것은, 물론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1차적 목표였고, 나아가서는 학생을 인권의 주체이자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다른 교육 방식, 모델,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간 한국 정부는 체벌을 금지하거나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제도를 만들면서도 이러한 종합적·총체적 접근을 하지 않았다. 체벌 금지 등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학교 현장에 떠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누적된 교사들의 불만은 다른 교육을 상상하고 만들라고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교권 강화’ 정책에서 학생인권 보장의 의무를 부정하고 약화시키는 명분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보편적 인권이 부정당하고 후퇴하는 일이 전면적으로 벌어져서이다. 이와 더불어 교육에 관한 합의도 약화되고 있다. ‘참교육’이나 ‘인간화 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에 담겨 있던 ‘더 나은 교육에 대한 상’도 희미해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 아래 보수 반동적인 정책과 주장이 정당화된다. 이런 점에서는 ‘성평등’, ‘페미니즘(여성주의)’ 등이 온 사회에서 타깃이 되고, 페미니즘이나 기후 위기 관련 수업을 한 교사들이 민원·고발 등의 공격을 받는 사건들이야말로 학생인권 반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근거가 되어 주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들이 공격받고 힘을 잃으면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조들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나 임신한 학생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그래도 겉으로나 당위적으로는 받아들여지던 그러한 반차별의 원칙이, 학교가 모든 학생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가 있다는 원칙이 노골적으로 부정당하게 된 상황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을 마주한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보편적 가치를 만들고, 이야기하고, 추구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교육과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고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하는지 정치적 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적어도 각 개인이나 집단의 당장의 권익을 앞세운 각자도생이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