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학교교육은 ‘과잉’ 때문에 망할 것이다
김수현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요즘 학교가 직장인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침울한 분위기다. 교사, 교육 행정직 등 학교급과 직역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직장이라 우리끼리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위로와 격려도 분명히 있는데, 그게 조금 방향을 틀면 신세 한탄과 이해관계의 차이로 이어진다. 특히 교육 ‘수요자’를 직접 대면하는 교사끼리는 다들 마음 깊은 곳에 비슷한 피로와 무력감 또 불안이 있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어쩌려고, 체험학습이 부담스럽다. 수업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 (무리한 민원을 내는) 학부모가 나빴다, 관리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받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이곳저곳 아프다, 그나저나 언제 명퇴를 할 수 있으려나, 언제까지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제라도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나…….’
나도 같은 신세지만 현재 근무 중인 남자 중학교의 재미가 쏠쏠하다. 드넓은 운동장과 긴 복도를 뛰어다니는 남학생들의 생명력은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동학년 동료 간 케미도 좋아 함께 80인분의 흑당 버블티를 만들고, 학급 대항 우중(雨中) 야간 축구 경기를 벌이면서 밤 9시까지 학교에서 학급 단합 활동도 했다.
내가 한가해서 그런 건 정말 아니다. 업무량 측면에서는 교직 생애 중 가장 힘들다. 담임 교사면서 수업이 많고, 3개 학년을 다 가르친다. 다문화교육, 학부모회, 수업 장학, 각종 계기 교육(독도, 통일, 인권 등) 담당자이기도 하다. 여러 위원회의 위원이고, 이 ‘짬바’에 상조회 총무까지 맡았다. 성대 결절이 만성화되어 버렸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내가 무슨 특별한 다이어트라도 하는 줄 안다. 그런데 학교는 올해 힘들었다고 내년에 보상받을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때때로 학부모와의 이견이 있을 때 학교의 교육 전문성이나 교사의 감식안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교무실에서 학생들이 방방 뛰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다 그들은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같아 부러웠다. 두려움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서 온다는데 매년 불안감만 커진다.
‘척’을 잘하는 학교
‘명색이 여는 글인데 제목에 재수 없게 망하리라니?’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오늘의 교육》은 2011년부터 학교교육에 드리워진 망조를 빠르게 캐치해 왔다. ‘교육 불가능’과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그렇다. 망조의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나는 교육부, 교육청, 교육지원청이 교사를 대하는 행태가 그중 하나라고 보는데, 교육 관청들은 교사의 핵심 업무인 수업, 평가, 연수, 생활기록부 기록까지도 컨설팅의 이름으로 침범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지만 유난히 순응적인 태도를 가진 학교는 이 고통을 감내하며 조용히 실행하는 ‘척’을 한다. 심지어 그걸 잘해서 기대가 충족되고 ‘더더더’ 요구하고 학교의 역할은 자꾸 늘어난다.
“지적 사항과 관련된 분께는 쪽지와 문자로 따로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전체 요청 사항으로 영어 대신 한글 입력을 지적받았어요. ‘VR → 가상 현실’, ‘3D, 4D → 삼차원, 사차원’, ‘MBTI → 성격 유형 검사’, ‘AI → 인공 지능’이요. 위 내용을 자유학기나 특기 사항에 입력하신 분들은 잊지 마시고 1학기 전에 수정 부탁드립니다!”
학교생활기록부 교육청 컨설팅을 받은 담당자의 메시지다. 따로 메시지를 받지 않았으니 안심하면 되는 걸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기록할 것이 너무 많다. 금지 조항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 챗지피티(chatGPT)를 활용해 학생 행동의 특기 사항을 생성하는 교사 연수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 영화 감상 후기를 중학교 2학년 학생 수준에 맞춰 영어가 포함되지 않게 30개 내용을 다르게 200에서 500자로 만들어 줘”라고 부탁하면 금방이다. 엥? 그건 학교생활기록의 취지에 맞지 않는 거 아닌가? 싶을 텐데, 교사들의 영업 비밀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살려고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는데 후자라고 믿고 싶다.
평가는 어떨까. 나는 지난 학기 3개 학년의 평가 계획을 작성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묵묵히 짐을 짊어질 담당자를 보며 욕을 삼켰다. 그건 계획일 뿐이니까. 교육청 평가 컨설팅에 따라 달라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4년형은 항목이 1개 추가되고 색상과 디자인이 바뀐 평가 계획 틀 거리를 사용해야 한다. 또 그동안 너무 간단해 성장 및 과정 중심 평가의 취지에 맞지 않고, 평가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했다며 분석적 평가 유형인 복잡다단한 루브릭(평가 기준)을 평가 계획에 포함시켰다. 건너 들으니 이미 초등까지 번졌고, 평가 관련 자료가 많지 않은 전문 교과 선생님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단다.
연수는 괜찮을까. 인성, 학교폭력 예방, 인권, 생명 존중, 교권, 개인정보 보호, 통일, 아동학대 및 신고 의무자, 장애 이해, 약물·흡연 오남용, 부정부패 및 청탁 금지, 도박 예방, 안전, 다문화, 기초학습부진학생 지도 등 20여 개의 ‘초·중등 교원 법정 의무 연수’를 들어야 한다. 연수 주제는 매년 늘어나기만 했으니까 아마 또 늘 거다. 그래도 생각해 준답시고 어떤 건 연 2회지만 짧게, 어떤 건 3년에 1회, 어떤 건 지루하지 않게 실습 시간 포함으로, 또 매년 다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헷갈릴까 봐 교육청 연수원은 연수를 꾸러미로 묶어 제공하고, 학교 연수 담당자는 주제별 유의 사항을 표로 만들어 수시로 교내 메신저로 알린다. 국회나 교육청은 교원의 연수 이수 정도를 까먹을 만하면 한 번씩 조사한다. 나는 사실 2학기에 가르칠 주제에 대한 연수를 듣고 싶지만 여기서 뭘 더 하고 싶지 않다. 내년에는 또 어떤 법정 의무 연수가 생길지, 동영상을 틀어 놓기만 하는 괘씸한(?) 태도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 두렵다.
학교 사업 상황도 한번 볼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좌시할 수 없다는 듯 우리 학교는 에듀테크 선도학교 사업을 실행하는 중이다. 수업의 몇 퍼센트는 에듀테크를 활용하고, 법정 의무 연수에 더해 에듀테크 관련 연수를 10시간 들어야 하고, 전문적 학습공동체에서는 에듀테크 활용으로 명망이 높다는 강사를 초청해 젭(ZEP)이니, 캔바(Canva)니 하는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배운다.
왜 이렇게 다들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많을까. 교육학에서는 학령기를 지나서도, 학교 밖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다. 때문에 학교와 교육을 동치로 두기도 하고 갖가지 지식과 기술, 인격마저도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욕하는 사람, 학교교육에 대한 기억이 나빴던 사람의 “지금 같은 학교교육은 안 돼. 바뀌어야 해!”라는 말도 기대 뒤에 오는 실망의 표현 같기도 하다. 더불어 아이들이 귀하고 오랫동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철학까지 강제 주입되다 보니 유치원부터 고3까지 각급 학교에 갖가지 애정 어린 정책들이 시행된다. 관청의 입장에선 그런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깔끔해 보이는 틀 거리로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무슨 문제가 터졌다 하면 언론을 위시한 전 국민은 학교를 바라본다. 학교교육에 대한 과한 기대로 정책을 만들고 학교가 실행하는 ‘척’을 잘하니 그런대로 면피가 되는 것 같다. 나처럼 학교가 직장인 사람은 점점 버겁기만 한데 이럴수록 학교교육은 실질과 멀어지고 실망도 커진다.
학교는 ‘불쉿 잡’일까
얼마 전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이라는 책을 읽었다. 현대 사회 직업의 무려 40%가 ‘불쉿 잡(bullshit job :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허튼 일자리)’이라는 주장에 섬뜩함을 느껴 내 일도 포함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상당히 과격한 목록이었는데 다행히 교사는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불쉿 잡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다. 우선 교사는 나름 학급 및 수업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일한다. 학급 운영이나 수업, 지필 평가 목표 점수가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대체로 주인의식을 갖고 해결하려 애쓴다. 또 매해 다른 학생들을 만나고 몇 해마다 새 학교를 경험하며 매 순간 새로운 만만찮은 모험을 한다. 마지막으로 드물지만 학생, 학부모, 동료와의 관계에서 감동의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 힘은 돈벌이와는 관련 없는 측면에서 나온다.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교사는 불쉿 잡이 아니지만 모든 직업에는 불쉿 업무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고, 불쉿 잡이 늘어나는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한다. 경험상 교사의 직역 안에서도 불쉿 업무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 같다. 연말마다 자기 실적 평가서를 써야 하는 상황. 확실하게 불쉿이다.
“태업 같진 않은데요. 큰일이 나진 않지만 선생님의 성과급 점수와 학교 평가가 나빠지고, 관리자 성과급에 영향을 주죠.”
초·중등 교원 법정 의무 연수를 미이수하고 내게 필요한 연수를 들으면 큰일 나는지, 전문적 학습공동체 담당자인 내가 미이수하면 동료들의 눈에 태업같이 보이는지 물어 들은 답변이다. 동료성을 깨긴 또 싫어 우리 학교 연수 담당자가 아니라 친한 다른 교육청 선생님께 물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라 ‘과잉’을 거부하련다.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동영상 플레이어 기계 노릇을 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2학기 수업 주제와 맞는 연수를 찾아 듣고, 필요한 책을 몇 줄이라도 더 읽겠다.
불쉿 업무를 없애면 교사라는 직업은 더욱 의미 있어질 거다. 쓸데없고 과한 교육 소비자의 요구를 근절해야 하고, 학교 행정에 부조리가 있다면 혁신해야 한다. ‘방어적 교육 활동’이나 저경력 교사들의 어려움도 풀어내야 할 이슈이다. 매년 예상할 수 없는 업무 분장 문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런데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과잉’부터 덜어 내자.
오늘의 교육을 열며
학교교육은 ‘과잉’ 때문에 망할 것이다
김수현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요즘 학교가 직장인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침울한 분위기다. 교사, 교육 행정직 등 학교급과 직역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직장이라 우리끼리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위로와 격려도 분명히 있는데, 그게 조금 방향을 틀면 신세 한탄과 이해관계의 차이로 이어진다. 특히 교육 ‘수요자’를 직접 대면하는 교사끼리는 다들 마음 깊은 곳에 비슷한 피로와 무력감 또 불안이 있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어쩌려고, 체험학습이 부담스럽다. 수업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 (무리한 민원을 내는) 학부모가 나빴다, 관리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받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이곳저곳 아프다, 그나저나 언제 명퇴를 할 수 있으려나, 언제까지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제라도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나…….’
나도 같은 신세지만 현재 근무 중인 남자 중학교의 재미가 쏠쏠하다. 드넓은 운동장과 긴 복도를 뛰어다니는 남학생들의 생명력은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동학년 동료 간 케미도 좋아 함께 80인분의 흑당 버블티를 만들고, 학급 대항 우중(雨中) 야간 축구 경기를 벌이면서 밤 9시까지 학교에서 학급 단합 활동도 했다.
내가 한가해서 그런 건 정말 아니다. 업무량 측면에서는 교직 생애 중 가장 힘들다. 담임 교사면서 수업이 많고, 3개 학년을 다 가르친다. 다문화교육, 학부모회, 수업 장학, 각종 계기 교육(독도, 통일, 인권 등) 담당자이기도 하다. 여러 위원회의 위원이고, 이 ‘짬바’에 상조회 총무까지 맡았다. 성대 결절이 만성화되어 버렸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내가 무슨 특별한 다이어트라도 하는 줄 안다. 그런데 학교는 올해 힘들었다고 내년에 보상받을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때때로 학부모와의 이견이 있을 때 학교의 교육 전문성이나 교사의 감식안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교무실에서 학생들이 방방 뛰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다 그들은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같아 부러웠다. 두려움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서 온다는데 매년 불안감만 커진다.
‘척’을 잘하는 학교
‘명색이 여는 글인데 제목에 재수 없게 망하리라니?’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오늘의 교육》은 2011년부터 학교교육에 드리워진 망조를 빠르게 캐치해 왔다. ‘교육 불가능’과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그렇다. 망조의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나는 교육부, 교육청, 교육지원청이 교사를 대하는 행태가 그중 하나라고 보는데, 교육 관청들은 교사의 핵심 업무인 수업, 평가, 연수, 생활기록부 기록까지도 컨설팅의 이름으로 침범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지만 유난히 순응적인 태도를 가진 학교는 이 고통을 감내하며 조용히 실행하는 ‘척’을 한다. 심지어 그걸 잘해서 기대가 충족되고 ‘더더더’ 요구하고 학교의 역할은 자꾸 늘어난다.
“지적 사항과 관련된 분께는 쪽지와 문자로 따로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전체 요청 사항으로 영어 대신 한글 입력을 지적받았어요. ‘VR → 가상 현실’, ‘3D, 4D → 삼차원, 사차원’, ‘MBTI → 성격 유형 검사’, ‘AI → 인공 지능’이요. 위 내용을 자유학기나 특기 사항에 입력하신 분들은 잊지 마시고 1학기 전에 수정 부탁드립니다!”
학교생활기록부 교육청 컨설팅을 받은 담당자의 메시지다. 따로 메시지를 받지 않았으니 안심하면 되는 걸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기록할 것이 너무 많다. 금지 조항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 챗지피티(chatGPT)를 활용해 학생 행동의 특기 사항을 생성하는 교사 연수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 영화 감상 후기를 중학교 2학년 학생 수준에 맞춰 영어가 포함되지 않게 30개 내용을 다르게 200에서 500자로 만들어 줘”라고 부탁하면 금방이다. 엥? 그건 학교생활기록의 취지에 맞지 않는 거 아닌가? 싶을 텐데, 교사들의 영업 비밀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살려고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는데 후자라고 믿고 싶다.
평가는 어떨까. 나는 지난 학기 3개 학년의 평가 계획을 작성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묵묵히 짐을 짊어질 담당자를 보며 욕을 삼켰다. 그건 계획일 뿐이니까. 교육청 평가 컨설팅에 따라 달라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4년형은 항목이 1개 추가되고 색상과 디자인이 바뀐 평가 계획 틀 거리를 사용해야 한다. 또 그동안 너무 간단해 성장 및 과정 중심 평가의 취지에 맞지 않고, 평가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했다며 분석적 평가 유형인 복잡다단한 루브릭(평가 기준)을 평가 계획에 포함시켰다. 건너 들으니 이미 초등까지 번졌고, 평가 관련 자료가 많지 않은 전문 교과 선생님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단다.
연수는 괜찮을까. 인성, 학교폭력 예방, 인권, 생명 존중, 교권, 개인정보 보호, 통일, 아동학대 및 신고 의무자, 장애 이해, 약물·흡연 오남용, 부정부패 및 청탁 금지, 도박 예방, 안전, 다문화, 기초학습부진학생 지도 등 20여 개의 ‘초·중등 교원 법정 의무 연수’를 들어야 한다. 연수 주제는 매년 늘어나기만 했으니까 아마 또 늘 거다. 그래도 생각해 준답시고 어떤 건 연 2회지만 짧게, 어떤 건 3년에 1회, 어떤 건 지루하지 않게 실습 시간 포함으로, 또 매년 다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헷갈릴까 봐 교육청 연수원은 연수를 꾸러미로 묶어 제공하고, 학교 연수 담당자는 주제별 유의 사항을 표로 만들어 수시로 교내 메신저로 알린다. 국회나 교육청은 교원의 연수 이수 정도를 까먹을 만하면 한 번씩 조사한다. 나는 사실 2학기에 가르칠 주제에 대한 연수를 듣고 싶지만 여기서 뭘 더 하고 싶지 않다. 내년에는 또 어떤 법정 의무 연수가 생길지, 동영상을 틀어 놓기만 하는 괘씸한(?) 태도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 두렵다.
학교 사업 상황도 한번 볼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좌시할 수 없다는 듯 우리 학교는 에듀테크 선도학교 사업을 실행하는 중이다. 수업의 몇 퍼센트는 에듀테크를 활용하고, 법정 의무 연수에 더해 에듀테크 관련 연수를 10시간 들어야 하고, 전문적 학습공동체에서는 에듀테크 활용으로 명망이 높다는 강사를 초청해 젭(ZEP)이니, 캔바(Canva)니 하는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배운다.
왜 이렇게 다들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많을까. 교육학에서는 학령기를 지나서도, 학교 밖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다. 때문에 학교와 교육을 동치로 두기도 하고 갖가지 지식과 기술, 인격마저도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욕하는 사람, 학교교육에 대한 기억이 나빴던 사람의 “지금 같은 학교교육은 안 돼. 바뀌어야 해!”라는 말도 기대 뒤에 오는 실망의 표현 같기도 하다. 더불어 아이들이 귀하고 오랫동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철학까지 강제 주입되다 보니 유치원부터 고3까지 각급 학교에 갖가지 애정 어린 정책들이 시행된다. 관청의 입장에선 그런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깔끔해 보이는 틀 거리로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무슨 문제가 터졌다 하면 언론을 위시한 전 국민은 학교를 바라본다. 학교교육에 대한 과한 기대로 정책을 만들고 학교가 실행하는 ‘척’을 잘하니 그런대로 면피가 되는 것 같다. 나처럼 학교가 직장인 사람은 점점 버겁기만 한데 이럴수록 학교교육은 실질과 멀어지고 실망도 커진다.
학교는 ‘불쉿 잡’일까
얼마 전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이라는 책을 읽었다. 현대 사회 직업의 무려 40%가 ‘불쉿 잡(bullshit job :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허튼 일자리)’이라는 주장에 섬뜩함을 느껴 내 일도 포함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상당히 과격한 목록이었는데 다행히 교사는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불쉿 잡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다. 우선 교사는 나름 학급 및 수업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일한다. 학급 운영이나 수업, 지필 평가 목표 점수가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대체로 주인의식을 갖고 해결하려 애쓴다. 또 매해 다른 학생들을 만나고 몇 해마다 새 학교를 경험하며 매 순간 새로운 만만찮은 모험을 한다. 마지막으로 드물지만 학생, 학부모, 동료와의 관계에서 감동의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 힘은 돈벌이와는 관련 없는 측면에서 나온다.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교사는 불쉿 잡이 아니지만 모든 직업에는 불쉿 업무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고, 불쉿 잡이 늘어나는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한다. 경험상 교사의 직역 안에서도 불쉿 업무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 같다. 연말마다 자기 실적 평가서를 써야 하는 상황. 확실하게 불쉿이다.
“태업 같진 않은데요. 큰일이 나진 않지만 선생님의 성과급 점수와 학교 평가가 나빠지고, 관리자 성과급에 영향을 주죠.”
초·중등 교원 법정 의무 연수를 미이수하고 내게 필요한 연수를 들으면 큰일 나는지, 전문적 학습공동체 담당자인 내가 미이수하면 동료들의 눈에 태업같이 보이는지 물어 들은 답변이다. 동료성을 깨긴 또 싫어 우리 학교 연수 담당자가 아니라 친한 다른 교육청 선생님께 물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라 ‘과잉’을 거부하련다.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동영상 플레이어 기계 노릇을 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2학기 수업 주제와 맞는 연수를 찾아 듣고, 필요한 책을 몇 줄이라도 더 읽겠다.
불쉿 업무를 없애면 교사라는 직업은 더욱 의미 있어질 거다. 쓸데없고 과한 교육 소비자의 요구를 근절해야 하고, 학교 행정에 부조리가 있다면 혁신해야 한다. ‘방어적 교육 활동’이나 저경력 교사들의 어려움도 풀어내야 할 이슈이다. 매년 예상할 수 없는 업무 분장 문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런데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과잉’부터 덜어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