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기획] 학교 텃밭과 텃논이 미래 교육이다 (조진희)


기획/ 교육농, 그리고 전환의 교육학

학교 텃밭과 텃논이 미래 교실이다


조진희

cham1003@hanmail.net

서울 천왕초 교사


방학 중 전면 원격 교육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개학을 한 학교들은 당장 이튿날부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려니 난리들인가 보다. 늦은 개학을 하는 나는 오늘 아침 볕이 좋아 가을 농사를 위해 학교 텃밭에 퇴비를 주었다. 상자 텃밭 밑에서 조용히 잠자던 지렁이들이 깜짝 놀라서 꿈틀거린다. 지렁이들과 함께 귀한 분변토(지렁이 배설물은 천연 비료다!)를 호미로 살살 긁어 화분으로 옮겼다.


방학 중이지만 텃밭에서 일하면서 출근하는 분들과 하나둘 인사를 나눈다. 방역 요원으로 온 분은 “서울시에 텃밭 지원 일꾼 신청하시지” 하면서 이런저런 텃밭 가꾸는 이야기를 해 준다. 벌써 농사 준비하냐며 말을 건넨 교감 선생님은 지난봄 매실을 따면서 어렸을 때 뱀을 잡아서 아르바이트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디딤돌(보충 수업) 선생님이 지나가기에 인사를 건넸다.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학생들이 오기 전에 미리 와서 준비하려고 일찍 왔다며 총총히 지나간다.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디딤돌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지나가면서 “에잇 똥냄새~” 한다. 마스크를 썼어도 학생들은 퇴비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감염병 위험의 와중에도 디딤돌 수업은 이루어진다. 활짝 핀 금화규 꽃을 따서 교실로 들어왔다. 팔팔 끓인 물을 부어 노랗게 우러난 금화규 차를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차분하게 원고 좀 쓰려고 학교에 나왔는데 몇 년 전에 리모델링 한 과학실을 미래 교실을 만든다고 부수고 난리다.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 교실 문을 닫고 음악 소리를 높일 수밖에.


학교 뒤의 천왕산은 사계절을 공부하는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다. 산자락 공원에 만든 마을 텃밭과 텃논은 우리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서울시 구로구 전체에서 농업을 체험하러 찾아오는 배움터가 되었다. 틀밭으로 만들어서 흙이 없어지는 것도 막고 밭에서 나온 작물과 둘레의 낙엽 등을 덮어 흙을 살리기도 하면서 작물을 키우고 있다.



비대면 학교를 연결하는 텃밭


금화규 차는 두세 번 우리면 꽃이 흐물거리고 끈적이는데 식물성 콜라겐이 많고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지난 초여름부터 계속 피고 있는 금화규는 교무실 실무사로 10년째 같이 근무하고 계시는 분이 씨앗을 나누어 주었다. 감사 인사로 말려서 차로 드시라고 꽃을 드렸다. 지난 6월 말에 정년 퇴임을 한 행정실 차석님이 해바라기 씨를 듬뿍 주고 갔는데 그 씨가 자라 쑥쑥 크고 있다. 앞으로 해바라기 꽃이나 씨를 보면 차석님이 생각날 것이다.


우리 학교 텃밭은 등하굣길에 있어 모든 구성원들이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지나친다. 코로나 발열 체크로 다른 출입구가 막혀 텃밭을 지나지 않고는 학교에 드나들 수 없다. 그래서 만남의 광장 구실을 한다. 유치원에 손주를 데리러 온 할머니도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 “시골에서 컸어요?”라며 거리낌 없이 말을 건다.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도 “작물들이 아주 잘 자랐다”고 알은체를 해 준다. 코로나19로 끊어진 사람들 간의 거리가 텃밭에서는 오히려 가까워진다. 나와 타인 사이에서 텃밭과 작물은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고, 대화로 씨앗으로 그리고 음식으로 연결된다.


학교에 루꼴라 열풍이 불어 “선생님, 루꼴라 씨 있으시다면서요?” 하고 다른 학년 교사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지난해 교육농 워크숍에서 나눔을 받은 루꼴라 씨는 인기 폭발이었다. 올봄에 가장 먼저 거둔 루꼴라를 샐러드와 쌈으로 해 먹은 동학년 20~30대 교사들이 자랑을 해서 씨앗을 받으러 온 것이다. 레몬밤은 줄기를 따서 물에 꽂아 놓으면 뿌리가 자라나서 실내 관상용으로도 좋다. 친한 분한테 주었더니 또 다른 분들이 자기도 달라며 찾아온다.


올해, 나이 차이가 20년 이상 나는 젊은 교사들과 평교사인 나를 잇는 것은 허브다. 루꼴라, 레몬밤 열풍이 불더니 그 다음에는 바질 잎을 따 가도 되냐고 묻는다. “다른 반 것은 몰라도 우리 반 것은 괜찮으니 따 가세요!”라고 하니 좋아한다. 바질 잎에 올리브유, 마늘, 파마산 치즈, 견과류, 후추, 소금 등을 넣어 믹서기로 돌리면 ‘바질 페스토’가 되는데 서로가 돌아가면서 가져와 과자에 얹어 먹었다. 남녀노소 위아래를 따지지 않고 거리낌 없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 대체 조그만 텃밭이 무엇인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선생님, 〈기다리다〉 보고 울었어요”


비대면 시대에 소통의 욕구를 텃밭과 음식을 매개로 채워 가고 있는 천왕초의 풍경은 올해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11년 9월 1일 개교한 서울 천왕초는 서울형 혁신학교로서 개교 때부터 생태교육 방법으로 상자 텃밭을 가꾸고 있다. 1~3학년은 화분에서 자유롭게 기르고 싶은 작물을 기르고, 4학년은 상자 텃논을 부치며, 5~6학년은 본격적으로 실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텃밭에서 생태·생명교육을 이어 가고 있다. 학교 뒤의 천왕산은 사계절을 공부하는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으며, 산자락 공원에 구로구청의 협조를 받아 만든 마을 텃밭과 텃논은 우리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구로구 전체에서 농업을 체험하러 찾아오는 배움터가 되었다. 지난 2월 5~6학년 교사들은 학생들 없이 퇴비를 주고 봄 농사를 준비하면서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온라인 개학을 하고 봄 농사 준비 과정을 담아 〈기다리다〉란 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같이 보는 것으로 실과 첫 수업을 시작했다. 나중에 ‘잔잔한 음악에 선생님들이 농사를 준비하고 감자를 심고 작물을 가꾸는 사진들을 엮은 영상을 보고 자녀가 울었다’고 한 학부모님이 말해 주었다. 이 얘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한다.


천왕산 산자락 텃논 마을 모내기. 코로나19 때문에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다 10여 명씩 2개 모둠으로 나눠서 모내기했다. 지난해에는 모내기를 마치고 다 같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올해는 못 하는 아쉬움을 떡과 수박으로 대신.


내친김에 작물 영상을 여러 사진과 자료를 엮어서 만들었는데 감자, 토마토, 목화 이야기 시리즈는 온라인 수업에서도 텃밭 교육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이 시리즈는 작물들의 세계사에서 발견한 차별과 혐오 그리고 반인권의 역사를 사진과 음악을 엮어 만든 영상들로, 단순한 노작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인문학적 소양과 시대정신으로서 ‘인권과 연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작물들을 텃밭에서 직접 기르면서 친숙하게 접하는 가운데 인문학적인 지식과 세계 시민의 덕목 등 민주시민교육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목화 영상을 만들 당시에는 전 세계에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진 때라 사회 교과 인권 단원과 연계하여 《사라, 버스를 타다》, 《1964년 여름》, 《거짓말 같은 이야기》 등의 동화책도 온라인 수업으로 엮어 함께 공부하였다.


실과 의생활과 동물권과 관련한 동화책들도 영상으로 만들어서 e학습터 플랫폼에 올렸는데 《돼지 이야기》, 《연두 고양이》, 《파란 티셔츠의 여행》, 《안나의 빨간 외투》 등이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앞둔 등교 수업 때는 넷플릭스에서 상영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함께 보았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공장식 축산과 GMO 등을 비판한 수작으로 2017년 개봉한 이래 매년 실과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고 있다. 1학기 실과 수업의 대미는 감자 요리 영상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텃밭에서 캔 감자를 집에 가져가서 간식을 만들어 사진과 글을 게시판에 올리고 나는 어린이들의 사진과 글을 엮어서 감자 요리 영상을 만들어 다시 e학습터에 올렸다. “보라색 감자를 처음 봐서 신기했다”, “처음 감자를 캘 때 떨렸다”, “감자 삶는 것은 매우 쉽다”, “감자전 맛이 달달했다” 등 짤막한 소감이지만 교사들이 기대한 응답이었다.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글과 사진들로 학생들과 소통한 시간은 등교 수업 때보다 더 소중하고 짜릿하기까지 했다.


상자 텃밭 사잇길. 작물도 우리도 계절과 절기의 시간에 따라 스스로 자라는 시간과 후대를 기르는 시간을 살아 낸다. 한 작물 한 작물 만나는 과정을 몸으로 익힌 농사는 여간해서는 잊지 않게 된다.



“비 개면 텃밭 정리하게 미리 준비하세요”


지난해에 이어 같은 학년을 맡은 5학년 부장은 이제 텃밭인이 다 되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텃밭 정리를 해야 하는데 계속 비가 오자 주말에 카톡을 보내왔다. “비가 계속 오는데 비 개면 바로 나가서 텃밭 정리해야 하니 긴 팔, 모자 등 미리 준비하세요!” 5학년 교사들은 반짝 난 해의 기운을 받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을 농사 준비를 하였다. 일을 마친 뒤 군데군데 모기에 물렸어도 벅벅 긁으면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천왕초 5학년은 각 반마다 1평쯤인 상자 텃밭 1개와 작은 화분형 상자 텃밭을 여러 개 갖추고 있다. 올해 봄에는 반마다 감자, 상추, 허브, 토마토, 고추, 사탕수수, 로즈마리,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을 심었고 여분의 텃밭은 학년 공동으로 관리하여 오이, 목화, 땅콩, 민트, 금화규, 고구마, 당근, 파프리카 등을 가꾸고 있다. 2학기에도 배추와 김장 무를 기본으로 하고 쪽파, 갓 등을 부수 작물로 하면서 각자 기르고 싶은 작물을 조금씩 더 심을 것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인 교사들이 농사를 어디서 지어 본 것도 아니고 무슨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초짜들인데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10년 동안 교육농을 이어 온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어디 땅 없어요?” 점심 먹고 매일 나와서 뭔가 돌보거나 수확하는 5학년 모습을 보고 올해 교무실에서 근무하게 된 업무 전담 부장이 어느 날 물어왔다. 좋은 자료 없냐고 찾는 후배는 있었어도 땅 있냐고 묻는 이는 없었는데. 점심 먹고 짧은 시간이지만 루꼴라, 바질 등 작물을 돌보면서 힐링하는 시간이 좋아 보였나 보다. 화분에 배양토를 담아서 화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고 루꼴라 씨앗을 나누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루꼴라 싹이 났다”면서 좋아한다. 학교 텃밭의 푸릇한 작물들이 온라인 수업에 찌들어 좀비처럼 된 교사들을 춤추게 하고 있다. 


4학년은 상자 텃논을 지난해부터 이어 오고 있는데 교사들이 벼 재배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 협동조합에서 양성한 마을 생태 교사들이 수업을 지원해 준다. 반마다 자기 상자에 벼를 심고 가꾸면서 흙과 물에서 자라는 생물과 벼의 생장을 관찰한다. 학교 옆의 생태 연못에서는 민원이 생기지 않을까 할 정도로 밤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크고 우렁차게 들린다. 그 개구리들이 모내기를 한 상자에 알을 낳고 가는데 거기서 꼬물꼬물 올챙이가 생기고 개구리밥과 각종 곤충들의 애벌레들이 산다. 한국논습지NGO네트워크가 엮은 《논생물 도감》(그물코, 2009)에 따르면 논은 논풀, 미생물, 곤충 등 5천여 종의 생물들이 자라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며, 그리하여 2008년,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람사르총회는 〈습지 시스템으로서 논의 생물 다양성 증진 결의문〉을 채택하고 지속 가능한 논 습지 보존을 결의하였다.



지속 가능한 교육농 시스템


아주 작은 상자 텃논이지만 그 안에 생물들이 찾아와 살고 있는 모습을 하루하루 관찰하고 놀면서 배우는 4학년 학생들은 5학년이 되면 나도 학교 텃밭을 해서 감자를 심어 가꾸고 배추를 수확해서 김장을 한다는 기대를 갖는다. 이런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어 주고자 노력한 것이 지금의 천왕초 학교 텃밭, 텃논 시스템이다. 우리 학교가 특별한 ‘귀족 학교’도 아니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있는 평범한 공립 학교인데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것은 지속 가능한 학교 텃밭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작물을 얼마나 수확하느냐에 얽매이지 않고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하느냐에도 관심이 없다. 나방 애벌레가 잘 자란 작물들을 먹어 대 초토화시켜도 속은 상하지만 화학 농약을 뿌리지 않고 번데기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교장 모임에서 작두콩과 주황 코스모스 씨를 받았다고 건네주던 전임 교장 선생님에 이어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도 허물어진 틀밭을 새로 구입해 주겠다고 하면서 교사들이 하는 일을 돕고 기다린다.


감자를 캐고 수업을 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큰 것은 큰 것끼리,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점점 커지게 늘어놓기도 하고, 색깔별로 구분하기도 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텃밭에서 유일하게 마스크 너머로 만난다. 코로나19로 학교의 일상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온전한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텃밭에서 일상적인 배움이 새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한 해가 끝나 갈 무렵 학교 예산이 남으면 자투리 돈을 모아서 틀밭을 주문 제작하고 봄에 뿌릴 퇴비를 구입한다. 매년 삽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틀밭은 그래서 교육적인 농업을 하고 있는 모든 학교에 권하고 싶은 특별 교실이다. 마을에 있는 목공소에 디자인을 보내고 견적서를 받아서 매년 틀밭을 늘려 왔는데 그것은 고학년 학급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5~6학년만 23학급에 달하는데 올해 말에도 남은 예산을 모아서 농사지을 땅을 마련할 계획이다. 씨앗은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들과 나눈 것들로 충분히 가능하고 모종은 혁신학교 생태교육 예산으로 구매하는데 실과 예산과 더불어 충분히 쓸 수 있다. 큰돈이 아니기 때문에 혁신학교가 아니어도 연간 계획을 세워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적극 권하고 싶다.


우리가 하는 학교 텃밭 농사는 농약이나 성장 촉진 약물들을 써서 소비자가 좋아하는 아름답고 큰 작물을 대량 생산하여 내다 팔아야 하는 ‘산업농’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교육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적 가치를 거스르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 어느 작물을 몇 센티 깊이로 심고 언제 곁순을 따 주고 퇴비는 어떻게 주어야 한다는 것 등을 배우지만, 이는 학교 생활 속에서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몸으로 체득하며 쉬엄쉬엄 틈틈이 부담을 갖지 않고 익혀 갈 수 있다. 작물도 우리도 계절과 절기의 시간에 따라 스스로 자라는 시간과 후대를 기르는 시간을 살아 낸다. 한 작물 한 작물 만나는 과정을 몸으로 익힌 농사는 여간해서는 잊지 않는다.


코로나19가 교사들에게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눈이 빠지고 어깨가 시큰거리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랜선 교사로 지내고 있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 주는, 흙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였다. 교사들이 해 보고 좋았으니 이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이어질 것이다. 교사들이 만든 민주적인 회의 시스템이 학급으로 이어지듯이, 몸과 마음으로 접한 교육농은 학생들에게까지 연결될 것이다. 비대면, 비접촉, 봉쇄, 폐쇄, 금지, 격리 등이 난무한 2020년 코로나 시대 학교 텃밭은 유일하게 교육의 공간이 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텃밭에서 마스크 너머로 만난다. 이번 주에 심은 작물이 다다음 주에 싹이 나고, 물을 줘 가꾼 싹에 다음 달에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코로나19로 학교의 일상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온전한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텃밭에서 일상적인 배움이 새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텃밭과 마을, 걷기의 인문학


다른 교사보다 먼저 출근하여 발열 체크 등을 준비하는 등 극도의 긴장 속에서 근무하는 ‘천왕보건소장’ 보건 교사는 점심을 먹고 텃밭을 걸으면서 조금이나마 긴장을 늦춘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 동안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맞장구를 치고 교육부를 비판하고 콜센터 노동자의 처지에 공감하기도 한다. 텃밭을 중심으로 발걸음들이 만나면서 시대를 함께 살아 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연결되는 경험은 마을의 길로도 이어진다. 구로구에서 만든 천왕마을 둘레 길을 산책하는 사람과 반려동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큰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만나는 이웃들은 마을 길을 돌면서 어떤 때는 서너 번 이상 마주치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산책 중인 나에게 한 어린이가 다가와 내 개(이름 ‘지구’)를 알은척한다. “온라인 수업에서 이 개 봤어요.” 동물을 자원으로 바라보게 하는 실과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생명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영상에 ‘지구’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니 참 고마웠다. 길에서 만나는 부모, 학생, 주민들은 코로나 시대를 함께 견디면서 꿋꿋하게 걷고 있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 리베카 솔닛 씀, 김정아 옮김(2017), 《걷기의 인문학》, 반비, 32쪽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혐오의 시선이 두려워 좀처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학교에 텃밭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활용하고 있다. 아니 활용의 차원을 넘어서 컴퓨터 밖에서 사람을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 공간인 텃밭에서 살아 내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늘 있던 장소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거기에 머물러서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걸었기 때문이다.


방학식이 있는 주에 반짝 날이 갠 날, 가을 작물을 심으려고 텃밭 정리를 했다. 천왕초 학교 텃밭은 등하굣길에 있어 모든 구성원들이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지나친다. 비대면, 비접촉, 봉쇄, 폐쇄, 금지, 격리 등이 일상이 된 2020년 코로나 시대 학교 텃밭은 유일하게 교육의 공간이 되고 있다.



생태 백신과 행동 백신의 결합


진화생물학을 전공한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화학적인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모두 기대가 큰데 자신이 보기에는 전망이 밝지 않다며 최 교수는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방역 수칙 지키기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행동 백신이라면, 생태 백신은 무자비하고 무식하게 자연을 파괴했던 인간들이 자연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한 “내가 편하려면 남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코로나19가 준 사회적 관계와 연대에 대한 자각은 호모 사피엔스의 욕망과 불평등을 깨뜨릴 수 있는 역설이라고 하였다. 마을의 농부와 교사들이 연대하면서 구축하고 있는 학교 텃밭과 텃논은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이 결합된 좋은 미래 교실이다.


고구마 줄기를 수확하러 가려고 교실 문을 열었다. 미래 교실 바닥 공사를 하던 노동자들이 먼지 쌓인 맨바닥에 누워서 잠시 쉬고 있다. 각종 첨단 기기가 갖춰지고 와이파이가 빵빵 터질 이 교실에서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만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당분간 미래 교실도 폐쇄되거나 원격 교육 지원을 위한 공간으로 쓰일 것이다. 교육부가 미래 교실에 퍼붓는 돈의 10%만이라도 학교 텃밭에 쓴다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생태 전환 교육 시스템을 바로 지금 학교에 구축할 수 있다.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돌봄 교실이나 식당에 방역이 잘 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식으로 시찰할 것이 아니라, 학교 텃밭과 텃논이 ‘미래 교육’에서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지 찬찬히 걸으며 살펴야 한다.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고구마 줄기를 까고 있는 손가락이 검게 물들 무렵 저쪽에서 학교 건물을 관리하는 분이 다가오며 한마디 한다. 

“고구마 줄기를 솎아 주어야 고구마가 실하게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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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