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연중 기획] 재난의 비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의 재구성으로 (강석남)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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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 ‘공(公)’을 다시 묻다



재난의 비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의 재구성으로
- 대학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와 한계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행과 대학의 상대적 과잉 교육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 변동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자 한다.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방역 당국의 선언처럼, 한국 사회 그 어느 곳도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개강이 연기되고 전례 없는 비대면 강의가 전면 도입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대학교육이 수행됐다. 재난은 갑작스럽고 준비는 미흡했기에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생소한 교육 환경에 대한 교·강사들의 호소도 없지 않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의 압도적인 지분은 단연 학생들의 몫이었다. 불성실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강의의 질적 문제, 비대면 시험 혹은 평가의 공정성 문제, 특히 지불한 등록금만큼의 교육(서비스)을 받지 못했다는 총체적 문제의식이 모이면서 대학을 상대로 한 ‘등록금 반환 운동’으로 구체화됐다.


이 운동은 나름의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비대면 개강 당시부터 대부분의 대학들은 등록금 반환에 대한 법적 의무의 부재나 비대면 강의 시스템 구축 비용 등을 이유로 반환에 난색을 표해 왔다. 하지만 건국대가 7월 1일 특별 장학 형식으로 ‘수업료의 8.3%’를 반환하기로 확정하면서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대학과 학생 간의 문제라고 발을 빼던 교육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정부가 직접 반환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반환을 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주는 형태로 간접적 지원을 하는 안이 제시됐다. 그 결과 여당을 중심으로 3차 추가 경정(추경) 예산에 당초 알려졌던 2718억 원에서 1718억 원 삭감된 10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물론 확보된 예산의 규모가 학생들이 지불한 실제 등록금에 비해 적정한지, 즉 실질적으로 등록금 반환의 액수로 적당한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언론 보도로는 등록금 반환 지원을 위한 추경 예산은 대학생 수로 나누면 1인당 5만 원 정도라 한다. 반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대학생 1만 1,1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대학생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반환 비율은 평균 59%로 나타났다. 그 타당성은 대학의 등록금을 구성하는 회계적 논리와 학생들의 효능감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❶ “與 “등록금 반환 추경 2700억”…대학생 “고작 10만 원, 허울뿐””, 〈중앙일보〉, 2020년 7월 1일.



다만 여기에서 어느 정도의 액수가 타당한지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등록금 반환 운동이 코로나19 시대 이후의 대학교육에 갖는 시사점을 다뤄 보고자 한다. 첫째로 반환 액수가 많냐 적냐 하는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다뤄져야 할 운동의 쟁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당한 액수를 반환받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운동 자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둘째로 이 운동은 대학생들이 만족할 만큼의 반환 액수를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일상의 코로나19 시대로부터 촉발된 운동이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며 자연히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의 대학교육을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일상의 표상으로서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

등록금 반환 운동의 핵심은 전대넷이 주도하고 있는 등록금 반환 소송의 법적 근거를 살펴보면 명료하게 드러난다. 전대넷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5월 18일 자 카드 뉴스에 따르면 그 근거는 ‘등록금 일부에 대한 부당 이익 반환 청구’, ‘불완전 이행으로서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 배상 책임’, ‘불법 행위에 기한 손해 배상 책임’의 세 가지다. 즉 비대면 강의로는 대학이 대면 강의와 시설물 사용을 전제한 계약 내용을 이행할 수 없기에 부당 이득을 반환해야 하고, 실제 대면 강의에 비해 그 질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계약의 불완전 이행이며, 이는 〈교육기본법〉이 보장하는 학습권을 침해하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대학에 있다는 의미다. 더 거칠게 요약하자면 비대면 강의는 지불한 등록금과 등가 교환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여분을 대학이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비대면 강의가 등록금의 대가로서 사회적으로 기대되었던 ‘대학교육’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명제를 전제한다.


비대면 강의가 대학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는 명제는 대학교육이 오로지 강의로만 구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대면 강의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바와 같이, 실습이나 실험 등의 필수적인 대면 강의·교육을 포함해, 강의의 범주를 넘어서는 요소들 또한 대학교육의 중요한 축이다. 민주적 시민으로서 참여하고 성장하는 (학생회나 동아리 등을 포괄한) 학생 자치 활동, 교·강사와 동료 대학생들과의 대면적 상호 작용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관계들, 캠퍼스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가능했던 다양한 활동들은 비대면 강의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대학교육의 구성 요소다. 비록 과거에 비해 그 활발함이 이전 같지 않을지라도, 대학교육은 여전히 강의 외적인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는 쟁점을 등록금 반환 운동이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 스스로가 대학교육이 열어 둔 학생운동의 공간에서 태동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는 비대면 강의의 전면적 도입이 기존의 대학교육을 대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비대면 강의는 어디까지나 재난 상황에서의 예외이자 비일상적 교육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액수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등록금 반환 사례를 만들고 정부의 예산 투입을 끌어낸 것은 운동의 분명한 성과다. 이는 비일상적 대 학교육은 기존의 대학교육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기대된 등록금과 등가 교환 될 수 없으므로, 예외를 가능케 했던 재난이 종식되면 다시 등록금과 등가 교환 될 수 있는 일상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학생·대학·정부의 사회적 합의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적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등록금 반환 운동이 어떤 대답을 갖고 있는지 다소 모호하다는 점이다. 쉬운 답안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었던 대면적 대학교육으로의 회귀일 텐데, 정부와 대학들은 이미 ‘포스트 코로나19’의 대학교육이 나아갈 경로를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등록금 반환 운동이 대학교육의 비일상적 계기로부터 출발했으나, 이후 대학교육의 일상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는 제시하지 못한 결과다.


비대면 강의의 전면화와 재난 자본주의

‘재난 자본주의’는 사회적, 자연적 재난이 지배 체제, 특히 자본의 축적 체제 재생산의 계기이자 근거로서 동원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재난이 자본의 보다 용이한 이윤 창출과 축적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심화되며 재난 상황을 이유로 정부의 자본 친화적 의료·노동·공공 부문의 규제 완화가 현실화되면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교육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지역의 공립 학교 123개를 4개만 남기고 전면 민영화하는 기습의 계기였듯이 코로나19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재난 또한 교육 부문의 규제를 완화시키는 계기이자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원격 수업을 ‘뉴 노멀’로 새롭게 정립해 대학교육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말이다.


❷ “‘재난 자본주의’ 심화되나…여권 내 우려 목소리 커진다”, 〈경향신문〉, 2020년 5월 7일.
❸ 채효정, “[세상읽기] 재난 자본주의와 사회 대협약”, 〈경향신문〉, 2020년 4월 20일.
❹ “일반 대학에서도 온라인으로 학·석사 딴다”, 〈한국경제〉, 2020년 7월 2일.



그간 한국의 오프라인 대학은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따른 ‘일반대 원격 수업 운영 기준’에 의해 개설된 총 교과목 학점 수의 2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원격 수업, 즉 비대면 강의를 개설할 수 있었다. 다만 교육부가 2020년 1학기는 코로나19 때문에 이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 주어 지금의 전면적 비대면 강의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그에 따른 비대면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20년 3분기를 기해 대학 원격 수업 운영 기준 개선을 추진한다고 나섰다. 기존의 20% 규제 해체가 예고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이버 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에서도 온라인 석사 학위 과정을 운영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비대면 강의의 전면 도입을 막아 왔던 규제들의 해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사실상 비대면 강의만으로 학·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 장관이 이와 같은 ‘원격 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한 곳은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앞이 아니라 주요 대학 총장 31명이 참석해 ‘포스트 코로나 교육 대전환’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❺ “일반 대학 학·석사 온라인으로도 딴다”, 〈매일경제〉, 2020년 7월 2일.



〈한국대학신문〉에 따르면 70명의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72.9%가 ‘온라인 교육 시대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다수가 ‘콘텐츠와 시설 공유 플랫폼 구축’(34.4%)과 ‘온라인 교육 20% 법정 비율 제한 폐지와 온라인 교육 확대’(28%)가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실상 대학들은 꾸준히 비대면 강의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으니 환영해 마지않을 것이다. 벌써 “원격 수업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을 불식하고 확대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부산물이다”라는 기대 어린 평가도 찾아볼 수 있다.


❻ “원격 수업 20% 제한 풀리나…규제 개선 추진”, 〈한국대학신문〉, 2020년 6월 2일.
❼ 송기창, “[시론] 코로나19 이후 대학의 과제”, 〈아시아경제〉, 2020년 5월 28일.



재난에서 비롯된 비대면 강의 규제 완화를 대학들이 환영하는 이유는 대학들, 특히 사립 대학들이 놓인 구조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 이후 대학 등록금 상한제가 제도화되면서 등록금은 법적 통제하에 사실상 동결돼 왔다. 동시에 한국 대학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립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2018년 교비 회계 기준 53.8%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운영 비용의 과반 이상을 여전히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지만 등록금 상승은 억제된 상황이다. 거기에 학령 인구 감소가 가시화되면서 입학 정원 미달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결과 등록금 수입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대학 구조 조정과 재정 지원 사업을 미끼로 대학 간 생존 경쟁을 유도한다. 수도권 대학이든 지방 대학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대학이 구조적인 비용 감축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형 강의화와 부족한 학내 공간 문제, 강의 커리큘럼의 획일화, 불충분한 교원 확충, 비전임 교원의 확대와 시간 강사의 불안정한 지위, 대학의 수익 활동 심화 등 이미 지속적으로 문제시되었던 대학교육의 학습권 침해 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비용 감축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❽ 김일환(2015), 〈한국의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재정사회학적 연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❾ 대학교육연구소 논평, “소모적 등록금 논쟁 종식할 근본 대책 고민해야”, 2020년 1월 8일.



비대면 강의의 도입은 대학들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준다. 교수자가 다수의 학습자를 상정한 일방향성 강의를 진행한다고 가정하자. 그것이 녹화된 영상이든 생중계 강의든 간에 이른바 강의 정원은 무의미해진다. 시공간의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대면 강의는 기존의 그 어떤 거대한 강의실도 초월하여 무한한 수강생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영상화되면 무한히 재생될 수 있다. 때문에 대학은 동일 커리큘럼의 여러 강의를 통폐합할 수 있고, 시의성이 그리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강의들은 영상 콘텐츠화를 통해 반복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전임·비전임을 막론하고 기존 교원 규모를 증원하거나 유지할 필요도 없다. 필수적인 강의 공간이 축소될 것이기에 캠퍼스의 상업 공간으로의 전환도 용이하다. 심지어 비대면 강의를 위한 시스템 구축 비용은 일회적이다. 일단 한 번 지출하면 그 이후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유지 보수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강의의 전면적 도입은 다른 방역 대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논의가 생략된 채 대학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물론 재난이 급격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다소간의 민주적 절차를 건너뛴 것은 어느 정도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치자. 문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국의 대학들이 학기 전체를 비대면 강의로 대체하는 실험이 사회적 논의와 대학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수행되었고, 실제로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방역의 논리임과 동시에 재난으로부터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로서 교육 부문의 규제가 일사천리로 해체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학 운영 비용의 과반을 등록금으로 지불하고 있는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를 묻는 민주적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 자본주의에 대한 교과서를 쓴다면 작위적으로 보일 만큼 너무나 완벽한 예시가 아닌가?

소비자 중심적 등록금 반환 운동의 한계

정리하자면 코로나19 재난으로부터 촉발된 등록금 반환 운동의 결과 비대면 강의는 기존의 등록금과 등가 교환 될 수 없는 예외적 교육 형태임을 사회적 합의로 인정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학들은 비대면 강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이 예외를 재난 이후 일상적 대학교육의 핵심으로 재규정하는 작업에 이미 착수한 모양새다. 하지만 등록금 반환 운동은 이러한 정부와 대학의 움직임에 보폭을 맞춘 대응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등록금 반환 운동의 최종 목표인 등록금 반환은 예외적 비대면 교육에 대한 일시적인 대안일 뿐이며, 등록금 반환 운동은 대학교육이 어떤 경로로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비워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대면 강의의 대체 불가능성을 이유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대학교육이 비대면 강의로 대체되는 과정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등록금 반환 운동의 성과는 비대면 강의와 등록금이 등가 교환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이견의 여지 없이 모두를 설득할 만큼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논리의 핵심은 대학을 교육 서비스의 생산자로, 대학생을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로 철저히 위치시킨다는 점에 있다. 대학은 비대면 강의(상품)가 등록금에 등가이니 환불의 의무도, 여유도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학생들은 등가가 아니니 일부라도 반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비대면 강의와 등록금의 교환 문제는 계약 당사자인 대학과 대학생들 간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대학, 대학생, 정부는 각각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등록금 반환의 쟁점은 생산자인 대학과 소비자인 대학생 2자 간의 계약 관계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이러한 인식을 적극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6월 2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대학 등록금 반환에 대한 정부 지원 찬반 의견〉 조사 결과에서는 정부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62.7%로 25.1%의 찬성을 압도적으로 눌렀고, 특히 20대도 27.4%만이 찬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반대 의견은 대학과 대학생 2자 간의 문제이니 정부 지원이 부당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둘째로 이러한 여론에 따라 등록금 반환을 주도하고 있는 대학생 조직들도 정부 예산을 통한 등록금 반환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거나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결과적으로, 적어도 형식상 대학-대학생 2자 간의 문제라는 전제에 모순되지 않도록 ‘정부가 대학의 등록금 반환을 유도하는 지원 예산을 우회적으로 투입하는’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대학생 스스로가 2자 간 계약 관계에 매몰되면서 ‘대학교육의 공공성’은 다소간 허공을 떠도는 수사적 구호에 다름없게 된 것이다. 대학교육이 진정 공공적인 것이라면 정부의 지출과 부담의 확대를 당연히 요구했어야 한다.


❿ “세금으로 사학 재벌 배불리면 안 돼”, 〈한국일보〉, 2020년 6월 19일.



문제는 등록금 반환 운동의 주체인 대학생들에게는 소비자로서의 자기 규정이 오히려 스스로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자기 파괴의 논리 구조라는 점에 있다. 이미 대학 서열 체제에 따라 노동 시장으로의 진입이 학력 자격증(학벌)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가 너무나 공고하다. 때문에 입시 성적이 나온 순간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즉 거래할 수 있는 대학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선택은 자신들의 입시 성적의 순위에 따라 사실상 강제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등한 관계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각자가 선택의 자유를 누리면서 만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강제된 계약에서 소비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로서의 대학생은 단지 대학이 제시한 상품이 등록금과 등가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순간에서만 최대의 자유를 발휘한다. 등가면 소비하고 아니면 반환(환불)을 요구할 뿐이다. 어떤 상품을 판매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생산자인 대학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 중심적인 등록금 반환 운동은 그 스스로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논리에서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의 문제를 소비자 주권의 문제로 규정하면 할수록, 대학생들은 대학교육의 틀을 규정하는 주권자가 되지 못하고, 등록금과의 등가 여부라는 문제에만 매몰될 것이다. 애초부터 어떤 대학교육을 지향할 것인지, 재난 이후 새로운 대학의 일상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는 소비자 중심적인 등록금 반환 운동이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한편으로 교육(서비스)이 상품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대학교육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2자 관계로 설명될 수 없다. 한국의 대학교육 구조의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변동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그 궤적이 국가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결론짓는다. 특히 오늘날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의 억제와 등록금 의존이 높은 사립 대학 위주의 대학 구조, 학령 인구와 무관한 대학 정원의 과잉된 팽창, 노동 부문의 수요를 초과하는 상대적 과잉 교육 등은 전두환 정권의 1980년 ‘7.30 교육 개혁’과 김영삼 정권의 1995년 ‘5.31 교육 개혁’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오늘날 한국 사회의 대학교육은 생산자인 대학과 소비자인 대학생이 자유롭게 시장에서 거래한 결과 형성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국가의 개입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교육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2자 관계가 아니라 대학, 학생(가계), 국가라는 3개 항의 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재난의 비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의 재구성으로

소비자 중심적인 등록금 반환 운동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이미 대학 구성원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첫째로 소비자로의 자기 규정 대신 대학 사회의 시민으로 스스로를 호명해야 한다. 등록금의 등가성과 환불 논리에서 더 나아가, 시민으로서 누가 대학교육의 비대면 강의를 결정하는지, 등록금은 어떻게 구성되고 지출되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대학 내 의사 결정 구조의 민주 적 개편과 제도화를 향해 뻗어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학 구성원 모두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민주적 총장 선출, 대학평의원회의 현실화 및 의결 기구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둘째로 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국가는 단순히 대학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마땅히 대학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등록금 반환에 대한 일시적이고 우회적인 재정 지원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재난 지원금과 다를 바 없다. 그 대상과 규모가 대학생들인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제도화함으로써 국가가 책임지는 대학교육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즉 대학생들의 운동은 등록금의 일시적인 환불이 아니라, 국가와 공공 재정에 의한 일상적인 등록금의 대체를 요구해야 한다. 공영형 사립 대학의 전면 도입, 대학 무상교육 등의 의제가 그 구체적 예다.


다만 이런 뻔하디뻔한 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별 의미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모두가 모범 답안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의 운동이 왜 ‘등록금 반환’의 기치로 구체화됐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느 칼럼에 따르면 등록금 반환 운동은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에 이어 약 10년 만의 “전국적 규모로 ‘대학 문제’를 걸고 펼쳐지는 대학생들의 운동”이다. 학생운동이나 학생 자치의 기반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징후는 차고도 넘친다. 특히나 코로나19에 따른 거리 두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대면적이고 물리적인 집합 행동도 요원하다. 대학생들의 운동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 등록금 반환 운동은 오랜만에 전국적 호응을 만들어 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나름의 성과를 가능케 한 원동력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⓫ 강남규, “[직설] ‘등록금 반환 운동’이 던진 질문들”, 〈경향신문〉, 2020년 6월 2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대학(자본)은 재난을 핑계로 규제를 해체해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의 일상을 새로이 꾸며 내고 있다. 비대면 강의의 전면화는 더 이상 재난에 대응하는 방역 대책이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대학교육의 새로운 형식이 될 것이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가속되고 있는 대학 구조 조정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는 비대면 강의가 대학교육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합의는 갑작스러운 재난과 미흡한 준비로 인한 시행착오의 부수적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국가와 대학(자본)이 비대면 강의의 질을 충분히 끌어올리겠다고 나설 때, 그래서 대면 강의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 혹은 비대면 강의를 기준으로 등록금을 책정할 때, 그래서 재난 종식 이후 비대면 강의가 전면 도입될 때 등록금 반환 운동은 지금의 논리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가?


등록금 반환 운동은 소비자로서의 자기 호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이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성공 비결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맸던 근원적인 한계로부터 탈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환의 성취가 현실화되는 동시에 재난을 핑계로 규제 완화의 물결이 밀려드는 지금이야말로 대안적 대학교육의 상을 그려 나가야 할 시점이다. 등록금 반환 운동이 재난에서 비롯된 비일상의 일시적인 사건으로만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대학교육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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