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호[기고] 침묵의 4년, 다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 부안 성추행 가해 교사 사망 사건 그 후 (박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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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침묵의 4년, 다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부안 성추행 가해 교사 사망 사건 그 후

 

박슬기 hosp.sisters@gmail.com

성평등한 청소년인권 실현을 위한 전북시민연대

언니들의병원놀이



전라북도 부안군 소재, 인구 수 2,500여 명의 면 단위 마을. 면에서 하나뿐인 A중학교의 구성원은 2017년 당시 전교생 19명, 교사 13명이었다. 그해 4월, 학생에 대한 성추행 피해 신고가 접수되었다. 전수 조사 결과 피해자는 전교의 여학생 8명 중 7명이었고, 가해자는 학교에서 유일한 수학 교사인 송○○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이후 전북 부안교육지원청, 부안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전북지방경찰청 여성수사계에서 조사를 실시했다. 2016년 3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송 교사가 수시로 여학생들의 어깨, 손, 볼, 코, 등, 팔뚝, 허벅지 등에,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반복적으로 신체 접촉을 했음이 확인되었다. 학생들은 조사 과정에서 송 교사가 행한 신체 접촉에 대해 ‘싫다’, ‘짜증난다’, ‘수치스러운 기분이었다’, ‘전학 가고 싶다’, ‘왜 만졌는지 모르겠다’, ‘싫다고 말해도 계속 했다’ 등 당시의 상황과 감정 상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 역시 ‘평소 여학생들이 송 교사의 신체 접촉을 불쾌해했으며, 체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교사로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고, 피해 학생들과의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직위 해제 및 교육연수원 대기 근무 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학생들의 탄원서 제출과 고소 취하로 경찰 수사는 내사 종결되었다. 그리고 2017년 8월, 송 교사는 교육청의 특정 감사 조사 일정을 통보받은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 글에서는 이상의 경위를 ‘송 교사 사건’으로 명명하며, 사건 자체보다 사건이 미친 파장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단지 송 교사 개인의 사망이 아닌, 이후 학생인권과 지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며 현재까지도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해자의 사망이라는 충격에 묻힌, 교사에 의한 성추행과 체벌 자체가 ‘사건’이었음을 되짚으려 한다.

가해자는 학교 내 유일한 수학 교사로서 모든 학년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피해 학생들과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2년까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단지 학교 안에서의 관계를 넘어, 지역 사회 내에서 피해 학생의 부모 중 일부는 가해 교사와 친분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가해자 부부가 피해 학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납득 불가한 일마저도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 12~15세의 연령인 피해 학생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해 교사 부부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배우자)의 요구에 의해 탄원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성된 탄원서는 경찰 수사가 내사 종결된 데에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찰은 ‘피혐의자가 피해자들의 신체를 만진 것은 사실이나, 피해자들이 사건 진행을 원치 않고, 그 정도가 사회 통념상 비난 가능성이 높지 않아 수사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학생들의 탄원서는 돌연 명백한 악의로 오용되어 피해 학생들을 맹렬히 공격하는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송 교사의 사망이 학생들의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며, 피해 학생들이 직접 쓴 탄원서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유가족은 송 교사의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며 고인이 무고함을 주장했다. 그 첫 번째 근거 또한 탄원서였다. 학생들이 조사 진행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직접 작성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울면서 사죄했다”고도 했다. 두 번째 근거는 경찰의 내사 종결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이미 혐의를 벗었’는데, ‘교육청과 학생인권센터가 위법하고 강압적인 조사로 신분상 처분을 결정해 송 교사가 억울하게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에 유가족은 관련자들을 고소하는 한편 순직 인정 신청을 했다. 2020년 7월, 송 교사의 ‘공무상 사망’이 인정되었고, 2021년 3월에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직위 해제 처분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를 송 교사의 ‘결백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수많은 언론 기사와 달리, 상기 두 평결의 논거와 유가족의 주장은 명백히 다르다. 2020년 송 교사의 ‘공무상 사망에 의한 순직 유족 급여 지급’ 결정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을 체벌하고, 피해 여학생들에 대하여 일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갑의 자살이 죄책감이나 예상되는 징계의 과중함에 대한 두려움 등 비위 행위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조사 결과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동들이 갑의 목적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성희롱 등 인권 침해 행위로 평가됨에 따라 30년간 쌓아온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 부정되고, 더는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점”이라며 이유를 밝혔다. 이는 그 자체로 ‘무혐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망과의 연관성을 판단한 결정이었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들과의 신체 접촉에 관해 일련의 조사를 받은 후, 스트레스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유발돼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인과 관계가 있다고 고려한 것이다. 지난 3월의 직위 해제 처분 취소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발생 당시,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 제1항 제2호(직무수행 능력 부족이나 근무성적이 극히 나쁜 자)의 규정에 따라 직위 해제 처분이 내려졌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교원소청위는 직위 해제 사유로서 상기 법령을 적용한 것을 하자로 보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성추행 또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직위 해제 사유로 삼았어야 했는데, 조항을 잘못 적용한 ‘행정적 하자’라는 것이다. 무리한 징계였다는 비판에는 ‘형사법적 처벌과 교육 공무원의 행정 징계는 별개의 것’이라고도 밝혔다. 송 교사의 ‘무고를 입증했다’고 알려진 두 평결 모두, 실은 송 교사의 성추행 및 체벌 여부나 잘잘못을 가리는 목적이 아닌, 단지 법적 절차를 고려한 결정이었을 뿐이었다.

유가족은 이어서 교육감과 당시 학생인권센터장을 상대로 민사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1년 4월 28일, 전주지방법원은 유가족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피해 학생들의 초기 진술의 신뢰성이 인정되고, 전북교육청의 직위 해제 처분은 학생들을 위한 보호 조치로서 정당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내사 종결은 “혐의 사실 자체가 전혀 인정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피해 여학생들이 수사 진행 및 처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어떤 기준으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학생들은 송 교사 사망 후인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6개월간 20회에 걸쳐 전문 상담 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 일지에 따르면, 학생들은 고소를 취하하고 교사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서도 “맨 처음 썼던 것(1차 진술서)이 진짜이고 나중에 탄원서는 사모님(송 교사의 배우자)과 수학 선생님(송 교사)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쓴 것”, “옆에서 지켜보고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쓴 것이지 수학 선생님이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위와 같은 진술은 이들과 심리적 신뢰 관계를 형성한 전문 상담사에 대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면서 “피해 여학생들의 탄원서가 기존 진술과 사실 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학생들이 탄원서를 작성했다고 하여 기존 진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짚었다. 작은 마을, 작은 학교가 갖는 상황의 특수성에도 주목했다. 가해자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할 개연성이 크며, 주변 인물이나 상황에 따라 감정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의한 것이다.

학생들이 직접 경찰에 신고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한 후 다른 교사가 법적 의무에 따라 수사 기관에 신고하며 전수 조사가 이루어진 바, 학생들이 교사의 형사 처벌이나 징계까지 원한 것은 아닐 수 있음도 고려했다. 3차 진술서 및 탄원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파장으로 심적 중압감을 느끼게 된 상황에서 망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이를 받아들여 용서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했다. 유가족이 줄곧 무고의 증거라고 주장해 온 학생들의 탄원서에도 불구하고, 송 교사의 신체 접촉과 체벌은 실제로 발생한 폭력이었음을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송 교사 사건과 관련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본 사건에는 여전히 성추행 ‘의혹’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며, 마치 양측의 주장에 따라 사실이 대립되는 것처럼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송 교사가 얼마나 ‘좋은 교사’였는지, 학생들이 얼마나 ‘철없는 존재’인지 강조하는 발화들이 덧붙어, 개인적 잣대로 사건을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의도가 어땠는지, 송 교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수는 없다. ‘교육 목적의 신체 접촉’인지 아닌지의 여부나, 피해 학생들의 감정 변화 역시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명백히 확인된 사실은 동의 없는 신체 접촉과 체벌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지는 사람과 견디는 사람이 있었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학교 내에서 교사의 위계로 발생한 폭력이었다. 이 ‘사실’이야말로 본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어야 한다.

 

 

사건은 피해 학생과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지난 4년의 시간, 송 교사 사건과 관련한 법적·정치적 공방의 여파 속에 가장 먼저 사라진 존재는 학생이었다. 2018년 이후 전국의 학교 현장에서 스쿨 미투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에도, 지역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위축되었다. ‘학교는 과연 안전하고 평등한 곳인가?’ 송 교사 사건은 이에 대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하는 두려움으로 작동했다.

무엇보다 피해 학생들은 무려 4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집요하게 이어진 2차 가해로 괴로움을 겪었다. 자신들이 쓴 탄원서의 사진과 내용이 삽시간에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거짓말’로 ‘선생님을 죽게 만든’ 악인으로 낙인찍혔으며, 세간의 온갖 비난과 송 교사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 속에서 수년간 생존해 왔다. 계속되는 유가족의 소송과 때마다 집중되는 전국적인 언론의 관심은 이들의 ‘잊혀질 권리’마저 무력화했다. 심지어 최근의 판결에서 재확인된 초기 진술의 신뢰성조차 기존의 낙인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못했다. 한번 대중의 표적이 되었던 피해 학생들에게, 가혹한 2차 가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중 언론은 가장 주요한 가해자였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학생들 증언의 ‘신빙성’과 교사의 ‘의도성’에 관한 논의로,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축소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해 왔다. 이에 더하여 일부 언론들은 유가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며 ‘무고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라는 프레임을 강화시켰다. 특히 2020년 송 교사의 공무상 사망이 인정된 이후, 주요 보수 언론들은 앞다투어 “성추행 결백 밝혀진 교사,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나” 등 사실과 다른 제목으로 원색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적극적인 2차 가해를 사실상 주도했다. 학생들의 상담 일지에는 “어느새 악플을 찾아서 읽게 된다”,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심적 고통과 죄책감에 더불어, “기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기사를 쓰고, 탄원서만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며 자신들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 등 언론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 있다. 또한 “잊을 만하면 기자들이 학교에 자꾸 찾아오고, 사모님이 뉴스에 나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공격의 또 다른 표적은 김승환 전북 교육감과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였다.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김승환 교육감 취임 후 전북에서는 2013년 경기, 광주, 서울에 이어 네 번째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표되었으며, 이는 교육계뿐만 아니라 지역의 진보적 의제로서도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반감이 ‘교권 보호’의 목소리로 구체화되고, ‘교육감이 학생인권만 위한다’는 불만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 송 교사 사건은 교육감과 학생인권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결집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실이었고, 교육감과 학생인권센터에 대한 맹비난과 책임론이 연일 보도되었다.

 

 

교육청과 진보 진영은 책임을 다했는가

 

사건 이후 전북교육청은 자기방어를 위한 정치적 선택을 우선시하여, 피해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가혹한 2차 피해에 침묵했다. 더욱이 지역 내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이은 성폭력 사안들에도, 성평등 교육에 대한 책임 있는 고민과 의지보다는 미온적이고 기계적인 대처를 반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힘들다. 전북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8년이 지났지만 조례의 실질적 정착을 위한 교육청의 의지와 노력도 확인하기 어렵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무력화다. 송 교사 사건 이후 학생인권교육센터를 향한 조직적인 비난과 무용론이 거셌을뿐더러,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당시 조사 및 심의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겪었을 심리적 충격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학생인권 옹호를 위한 기관으로서 본연의 의무가 있음이 분명하나, 현재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신뢰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역 사회에서는 송 교사 사건 이후 학생인권교육센터의 대처가 소극적으로 변한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예컨대 학생인권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교사 입장의 발언력이 강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는 교사의 체벌 등에 대해 대부분 인사상 불이익 권고가 있었으나, 송 교사 사건 이후 발생한 사례에서 “이런 점은 이해해 줘야 한다”라는 교사 위원의 설득에 전례 없이 특별 교육으로 처분이 가벼워진 경우가 회의록을 통해 확인된 바도 있다.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매년 시행하고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왔으나 2017년 송 교사 사건 이후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중, 국정 감사에서 지적을 받자 뒤늦게 공개하기도 했다. 학생인권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관행에 대해 학생인권교육센터 담당자에게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그 정도는 선생님이 할 수 있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고, 자의적 해석을 배척하는 취지의 공문을 재차 발송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지역의 소위 진보 세력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난날 학생인권 지지의 큰 몫을 담당해 왔던 전교조는 ‘교권 보호’ 논리에 부응하여 송 교사 사건 앞에서 입을 닫았다. 피해 학생들이 끊임없이 언론에게 호명되고, 통념이 억측을 부르며 사실로 둔갑해 세를 불려 가는 동안, 지역 시민 사회는 그것을 멈추라고 말하지 못했다. 보수 세력은 2차 가해에 앞장섰고,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침묵했다. 2020년 7월, 송 교사의 공무상 사망이 인정된 이후 극에 달한 2차 가해를 제지하고 학내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고자 지역 활동가들이 뒤늦게나마 기자 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앞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에 연대했던 지역의 수많은 진보적 시민 사회 단위들마저 참여를 꺼렸다. 전교조는 연명을 거부했고, 지역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지지자 개인으로서 연명해야 했다.

이처럼 교육감과 학생인권교육센터는 반대 세력들의 주장과는 달리 학생인권의 수호자가 되지 못했고, 진보 세력은 학생들의 피해에 침묵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중 한 구절을 빌리자면, 이들은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방전된 배터리와 나쁜 타이밍 이전에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일

 

이제 송 교사 사건은 학생인권과 미투 운동에 대한 백래시의 주요 근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하태경을 위시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 인권 보호’를 위해 송 교사의 이름을 딴 ‘송○○법’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 의원은 송 교사 사건을 예로 들어 학생인권조례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편파적 진술만으로 모두가 잠재적 성범죄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가짜 미투’와 ‘강력한 학생인권’으로 남성들과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송 교사 사건에서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라는 2차 가해를 방조하고, 교사의 위계로 인한 폭력을 ‘교권과 학생인권의 저울질’로 둔갑시킨 결과는 이렇게 확장되어 세를 더해 가고 있다.

교사에 의한 성폭력과 체벌을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은 사뭇 다르다. 흔히 성폭력은 ‘성적 욕구’에 의한 것이고 불명예스럽지만, 체벌은 ‘교권’이며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학교라는 조직 속에서 교사에 의해 발생하는 성폭력과 체벌은 본질적인 공통점을 갖는다. 젠더 권력이 더해졌음의 차이일 뿐, 욕구도 권리도 아닌 교사라는 지위가 갖는 위계로 인해 가능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송 교사 사건과 이를 악용하려는 프레임은, 지역에서, 사회에서, 청소년이 학생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젠더 폭력의 문제임과 동시에, 학교라는 시스템 내에서 학생들이 자리한 위치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앞장서서 진실을 호도하며 정치 논리에 복무하는 언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가해자와 기꺼이 연대하거나 침묵하는 지역 사회,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관계 기관, 이 가운데서 정작 학교라는 공간과 제도 속에서 매일을 생활하는 주체인 학생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폭력과 부당함에 대해 ‘말하기’를 선택한 학생조차 기성 사회가 결집한 반격의 맹공을 견뎌야만 했다.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피해 학생들의 고통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회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안전한 학교’란 무엇인지, 진정 필요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이제 학생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로서의 수동적 위치가 아니라 학교와 교육의 주체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말하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한편 학내에서 발생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교사와 학생만으로 선을 긋고 단순화하기 어렵다. 학생 간, 교사 간, 혹은 교사와 학생 간, 누구라도 위계와 젠더 권력에 의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폭력에 직접 가담하거나 폭력을 경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목격하고 폭력에 노출된 모두가 당사자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인권 역시 지켜질 수 없다. 때로 폭력의 가해자로, 때로 피해자로, 때로는 목격자와 방조자로, 교사에게 미치는 폭력의 영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학교 내 폭력은 결코 학생인권과 교권이라는 대립 구도로 볼 수 없으며, 교사의 인권은 학생인권과 분리될 수 없다. 위계와 권력이 원칙으로 작용하여 한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해도 용인되는 조직에서는, 다른 구성원의 인권도 쉽게 위협받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조직을 구성하는 모두가, 교육의 당사자이며 주체로서,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를 위한 말하기에 나서야 할 이유다.

이제 다가오는 선거를 향해 또 한 판의 장이 열리고 있다. 저마다 교육을 책임지겠다 말하며, 동시에 ‘교권 수호’를 외치고 있다. 그 교육은 무엇을 위함일까. 위계와 권력에 대한 복종을 배우는 것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이자 시민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 수호해야 할 ‘교권’이란 교사의 인권일까, 권위일까, 권력일까. 학생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분리될 수 없기에, 교권 수호의 외침은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인권 옹호를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4년, 지역 사회와 교육은 이를 위한 기회를 잃었다. 늦었지만, 그래서 바로 지금, 해야만 했던 일을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




❶ 2021년 4월 28에 선고된, 유가족이 제기한 김승환 교육감 및 당시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장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판결문을 참조했다.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제1민사부 판결 2020가합 2200)

❷ 앞의 판결문에 따르면,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맞았다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진술했다.

❸ 앞의 판결문에서 인용한 피해 학생들의 심리 상담 일지 내용에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❹ 앞의 판결문에서 인용한 내사 보고(본건 내사 종결 관련) 내용.

❺ 유가족은 당시 학생인권센터장 등 10여 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고소, 2019년 4월 최종 기각되었다. 언론사에도 송 교사에 대한 허위 보도 및 명예 훼손을 주장하며 기사 삭제 및 위자료 지급 소송을 했고, 2019년 9월 최종 기각되었다.

❻ “전북교육청, 고 송○○ 교사 직위해제 처분 최종 취소”, 〈머니투데이〉, 2021년 4월 13일.

❼ 이하 앞의 판결문에서 드러난 내용.

❽ 2017년 실태 조사 결과는 2018년 11월, 2018년 보고서는 2020년 2월에야 공개되었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참고.

❾ 전북여성폭력상담소시설협의회(24개) 등 전북 43개 단체 및 시민, 〈우리는 피해 학생과 연대한다! 2차 가해를 멈춰라!〉 기자 회견, 2020년 7월 15일.

❿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하는 말로, 한국에서는 특히 페미니즘 대중화에 대한 반발을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인다.

⓫ 하태경 의원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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