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여성 혐오
‘혐오’의 정치학, 여성 상위라는 ‘환상’
강아지똥
전교조 서울지부 여성위원장
올해 초 전교조여성위원회 회의에서 여성 혐오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둔감했다. 특히 중등 교사들이 학생들의 여성 혐오와 비하가 도를 넘었다고 증언하는데도 초등 교사인 나에게는 좀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중학생 사이에서 놀리거나 따돌릴 때 그 친구가 남자임에도 “-년”이라고 욕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유를 몰라 “왜 그러는데요?” 했다.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특정 또는 다수의 여성을 비하하는 ‘-녀’ 접미사를 쓰는 네티즌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했을 때에도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어볼 정도로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김치녀’라는 말조차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개념 정리부터 하고 가 보자.
여성 혐오 담론에서 ‘김치녀’란 무엇보다도 ‘연애 시장에서 반칙을 하는 여자’를 뜻한다. 반칙이란 뭘까.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자의 능력을 따지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물리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여자’, ‘자기 외모는 성형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남자의 능력은 칼같이 따지는 여자’다. 포괄적으로 정의 내리면 이렇다. ‘연애 시장에서(사람 됨됨이나 사랑이 아니라) 남자가 보유한 자원을 따져서 분수 이상으로 한몫 잡으려는 여자.’ 한국의 젊은 남성을 사로잡은 여성 혐오 담론이 내놓는 김치녀의 원형이다.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IN》 418호
한마디로 표리부동한 ‘재수 없는 여자’라는 뜻인데 이런 단어가 네티즌과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성 혐오를 주제로 한, 이해하기 어려운(!) 몇 편의 책과 글을 읽고 지인들과 토론했다. 1년여의 시간을 경과하면서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나의 몰지각함은 깨어졌고 그 경험을 벗 조합원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과 문화라는 이름의 ‘혐오’와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교육》 특집 기획안을 이틀 밤을 세워 작성해 냈지만 편집위원회는 파기 환송했다. 대신 여성 혐오에 관한 르포 글을 써 보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한 달 동안 고민을 했건만 여성학자도 문화인류학자도 아니고 ‘김치녀’가 쓰이는 맥락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여성 혐오와 초등교육 현장’이라는 거시적인데다가 미시적이기까지 한 르포를 쓰기란 쉽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르포 쓰기 강좌를 들어 놓는 건데……. 초등학교 현장에서 여성 혐오 현상을 취재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여성 혐오에 무지하고 둔감했던 내가 어떻게 느끼고 학습하고 생각했는지를 드러내 보여 주는 게 더 솔직한 글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연구자도 아니면서, 잘 알거나 절감하지 못하면서 이슈를 따라가는 ‘~인 척’하는 글을 쓰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선생님 그거 동성애 하는 장면인가요?
○○초등학교에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로 위탁 성교육을 하겠다는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하였습니다. 아하는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라 하지만 청소년들이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퇴폐 성행위에 가까운 내용과 동성애 옹호 교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몸은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어 청소년들을 성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곳이므로 아하 견학 절대 불가 반대해야 합니다. 주변 학부모님들에게 알려 주시고 적극 반대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우편번호) 서울특별시 ○○구 ○○로 서울○○초등학교
(교무실) 070-****-****
(병설유치원 교무실) 070-****-****
(행정실) 070-****-****
(행정실 팩스) 02-****-****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하는 박원순 시장의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어떤 곳일까?
http://www.hnf.kr/concern/32127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SNS 방에 이런 글이 돌았다.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덧붙인 이 글로 인해 해당 초등학교는 아침부터 전화 테러를 당해야 했다. “전학 갈 예정인 학부모다”, “아이에게 해가 갈까 봐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시작하는 학부모를 빙자한 체험학습 취소 요구 민원전화가 계속 울렸다. 민원인들은 아하가 동성애와 퇴폐적 성행위를 부추기는 교육을 하는데 그런 데 왜 애들을 보내느냐는 말을 퍼부어 댔다. 덧붙여진 부모닷컴이라는 사이트에 가 보니(지금은 로그인해야 자료를 볼 수 있게 회원제로 바뀌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아하에 대한 음해성 글이 게시되어 있었다.
수백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SNS에는 “체험학습 보낸다고 동의했는데 어떻게 하냐?”, “애를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등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아하 관계자는 “한동안 전화가 많이 올 겁니다”라면서 “아하센터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육을 한다면서 체험학습을 가지 말라고 민원을 넣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하와 체험학습을 가는 학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서울시민인권헌장(헌장)을 제정하려는 박원순 시장을 ‘원숭이’로 비하하면서 헌장이 제정되면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동성애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단체 카톡방 반대 글의 논리 구조〉
아하 체험학습을 취소하라 ― 동성애를 옹호하는 아하센터 ― 동성애를 가르치는 아하센터에 성교육을 위탁한 타락한 서울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하라 ― 동성애자 천국을 만들려는 헌장 ― 나라 망할 동성애자 천국을 만들려는 서울시
파산이나 전쟁으로 망한 나라는 있어도 동성애를 합법화하여 무너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논리적 귀결은 모두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에게 맞춰져 있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좌파 종북 교과서’라며 근거 없는 여론 몰이를 해 댄 것처럼 논리적 비약과 사실 왜곡을 일삼으며 이들은 자기주장만 해 댄다. 아무런 문제없이 3년간 진행한 성교육 체험학습에 딴지를 걸며 학교 앞에서 시위까지 하는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혐오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오늘날 동성애와 성소수자 의제는 보수 개신교 세력과 우익 단체들이 ‘종북’ 다음으로 주요하게 다루는 문제가 됐다. 국가 기구는 이런 목소리를 핑계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긍정하는 제도적 조치를 취하려 할 때마다 ‘대다수 국민’을 자칭하는 이들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되면서 공적 공간에서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다루는 것은 극도로 기피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 체제에 대한 도전과 저항을 가로막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반공주의(레드 콤플렉스)에 더해 이른바 ‘레인보 콤플렉스’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일베 현상으로 대표되는 소수자 혐오의 부상과도 맞닿아 있다. 성소수자와 더불어 여성, 이주민, 종북 좌파, 전라도, 세월호 유가족 등 체계적인 차별과 권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의 표출이 희망 없는 시대에 좌절과 무기력이 낳은 공백을 채우고 있다.
- 나라,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여성 혐오가 어땠다구?》, 현실문화, 2015
레인보 콤플렉스를 가진 단체의 공격을 받아 동성애를 방조하는 학교라며 명예를 훼손당했지만 해당 학교는 어린이들에게 체험형 성교육의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고자 학부모회의 동의와 교사회의의 토론을 거쳐 체험학습을 갔다. 하루에 한 학급씩 버스를 타고 청과 시장의 과일 상자들이 점령한 인도와 인파를 뚫고 진행된 6일간의 체험학습의 후유증은 “나와 친구의 성은 아름답고 자유롭지만 책임이 따른다”고 가르친 아하센터가 아니라, 단 1시간의 학교 앞 시위에 있었다.시위의 영향으로 성폭력 피해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을 두고 “저거 동성애 하는 장면이에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학교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그들 또한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 시민이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가장 힘들어한 부분은, 집회를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들이 발설하는 거짓된 말과 논리가 그동안 학교에 가졌던 학부모의 신뢰감, 마을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파헤쳐 후비고 들어와 커다란 수치심과 억울함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집회를 지켜보다가 철수하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던 한 어머니는 “집에 가서 밥을 하려고 하는데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치밀어서 주저앉고 말았다”고 토로하였다.
일부러 이사까지 하면서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한 아버지는 출근길에 학교에 들러서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내 자녀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왜 학교를 뒤흔들어서 심란하게 만드는 것인지, 앞으로 한 번 더 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였다. 반짝 집회를 통해 항의하는 그림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영상과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홀홀 사라지는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들이란 말인가?
한국의 상황에서 여성들이 ‘된장녀/분당선 대변녀/개똥녀/김치녀/보슬아치’ 등의 오물이나 특정 냄새, 성기에 대한 은유 등으로 치환되는 것이나, 개신교 우파에서 끊임없이 남성 동성애자들을 찜방이나 난교, 식食으로 표현되는 특정 취향, AIDS 등의 점액질에 뒤섞인 오염된 이미지에 연결하는 것 등은 명백히 이런 혐오의 수사학과 연결되어 있다. (……) 혐오 발화와 혐오 행위들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자리는 이렇게 모멸 및 수치심과 만나게 될 때이다. 이는 혐오 발화와 행위의 대상이 되는 이들로 하여금 혐오의 수사를 내면화하고 스스로 무기력하게 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이란 권력을 가진 자나 전통적 공동체가 도덕이라는 잣대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을 길들임에 있어서 그 효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되어 온 방법론이자 가장 파괴적인 방법론 중 하나이다.
- 손희정, 〈혐오의 시대 – 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여/성이론》 2015 여름호,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년
혐오는 사랑보다 강하다?
지금. 시청 앞의 기도회에서 보내온 문자입니다.
시청↔010.****.**** 로 동성애 반대 의견 보내면 시청 전광판에 떠요!!
문자 수신 계속전달해 주세요. 시청 앞이에요.
멀티 문자 안 되고 단문만 가능합니다.
‘동성애 절대 반대’라고만 보내면 돼요.
우리가 통과 안 되도록 계속 기도를!
이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도 동성애 교육을 한대요.
교회, 목사님이 동성애자 결혼주례 안 해 주면 벌금 물고. 계속 기도 부탁해요.
동성애 평등 법안 통과 안 되도록이요!!
150명 위원 중 7명만 우리 편이래요. 발언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줘야 한대요.
그쪽에서 투표로 결정하자고 하면 자동적으로 통과, 그렇게 안 되도록 기도 부탁.
- ○○○ 장로회장
기도도 부탁드리고 문자도 꼭 좀 넣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5년 6월 9일, 가족들 간의 소소한 소식을 전하는 카톡방에 위와 같은 글이 떴다. ○○○ 장로회장이 보낸 메시지를 옮기면서 ‘기도와 문자’를 부탁한 장문의 글에 리액션은 없었다. 그들의 문자와 기도빨에 힘입었는지 헌장은 제정되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도 사랑을 전파해야 할 종교 신자들이 매일 서울시청 앞에 모여서 혐오와 저주의 기도를 여전히 이어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운의 편지’인 양 “100명에게 보내라”는 주문을 하면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자신들이 마치 소수자인 것처럼 애처롭게 ‘부탁’을 전파한다.
다른 사람의 문자를 고스란히 옮긴 것뿐인데도 바로 내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문득 성소수자들은 이런 충격을 매순간 접하고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에 대한 통념을 활용하여 헌장 제정를 막으려는 세력들로 인해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인정되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또다시 유보되어야 하는 것인가?
타인에 대한 ‘혐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극단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자기를 보호하려는 감정일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이데올로기가 올바르고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고 혐오해도 되는 것인가? 혐오는 자기 것이 박탈당할 것이라는 그릇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빼앗는다. 타인이 가진 권리를 빼앗고 짓밟으면서 자신의 물질적 이득이나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 혐오의 정치적인 목적이다. 혐오 뒤에 숨어 있는 자기애, 혐오하는 자에게는 결코 줄 수 없는 순수한 기득권! 이 혐오의 정치학은 여성 혐오에도 그대로 재현된다.
남성들의 자기애와 순수한 기득권
여성 혐오에 관한 강의가 있었던 전교조 여름연수를 마치고 선배 교사의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50대 교사와 20대 교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근무하는 50대 선배 교사는 남성들의 군가산점을 찬성한다고 하였다. 지금 중학교의 찌질한 남학생들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학업 성취도, 사회성,체력 모두 앞서는 여학생들에 비하여 그들은 스마트폰 게임과 PC방에 중독되어 있으며 소통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남성이 더 하위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역차별적으로 군가산점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후배 교사는 이 선배 교사의 논리에 반박을 하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은 도로의 소음 때문인지 금세 언성까지 높이는 토론 배틀장이 되었다.
군가산점을 주장한 선배 교사는 평소에 존경하는 전교조 활동가였다. 처음에는 이분이 왜 이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토론을 계속 하다 보니 ‘아, 이분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남중생들의 학교생활이 심각하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남성 구직자의 취업을 걱정하는 선생님의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루저’인 남학생의 처지가 너무나 딱하고 한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서울시와 교육청이 혁신 교육을 널리 보급하고 자치구 학교들을 혁신 벨트로 만들려는 ‘혁신 교육지구’ 사업을 위한 추진단 활동을 지역에서 하고 있다. 3년째 이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가 있는데 아들이 둘이다. 전교조 지키기 선전전을 함께한 10월 어느 날, 늦은 저녁 식사를 같이 먹자고 제안하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딸은 6학년이라도 혼자서 밥 차려 먹고 하죠? 제 아들은 고등학생인데도 제가 집에 가서 밥을 차려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요.”그는 그날 저녁도 거르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10월 어느 일요일에 생협에서 밀린 장을 보고 함께 동네로 돌아오던 길에 여성 단체에서 일하는 동네 사람을 만났는데 고맙게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실어다 준단다. 차에 동승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들 둘을 둔 이 여성 활동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생님, 도대체 커서 연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키도 작고 가진 것도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못 하고 루저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서 막 직업 가진 여성들 혐오하고…….”
“밥 차려 먹는 거 가르치고 성평등하게 길렀어야지” 하는 핀잔이나 “요섹남이 대세인데 아들에게 요리책을 사 주는 게 어때”라는 조언은, 아들들의 의식주나 결혼이 걱정되는 모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밥도 스스로 챙겨 먹지 않는 아들들에 대한 걱정은 중학교 남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페미니스트 엄마들에게도 있었다. 다시 후배 교사와 논쟁했던 선배 교사의 논리로 돌아가 보자. 예전에는 “가방끈 길고 사회성 있는 남성들이 우월하고 능력이 있어서 기득권을 가졌다”면 이제는 “루저가 될 수도 있는 미래의 무능한 남성들을 위해 역차별적인 기득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지금, 남성 약자론, 남성 피해자론, 남성 역차별론들이라니, 젠장!
여자를 타자화한 ‘남자끼리’
SBS 개그 프로 〈웃찾사〉의 인기 코너인 ‘남자끼리’를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인 사이의 남녀가 어떤 가게에 가서 대화를 하는데 남성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이 남성을 도와주기 위해 남자끼리 돕고 산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생일을 맞은 남자 친구에게 여친이 조각 케이크를 사 주겠다고 하자 남친은 내 생일인데 더 지갑을 열라고 한다. 여성이 계속 조각 케이크를 주문하자 가게 주인은 케이크 한 개보다 더 큰 조각 케이크를 갖다 준다. 그리고는 가게 안의 남성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대며 “오오오, 친구여~ 난 끝까지 잊지 않을 거야”라고 남성들끼리의 연대를 노래한다.
여성 혐오에 대한 고민을 해 오던 차에 본 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내가 놀란 부분은 여친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남친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남성들끼리는 ‘이상한 여친’에 대한 동류의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여친은 “여성에 대한 배려와 평등”을 주장하는 급진적인 여성이나 데이트 비용 한 푼 안 내고 뜯어먹으려는 여성과 오버랩되고, 그런 여성에게 맞서는 남성들의 어깨동무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동맹으로 그려진다.
‘차별이란 어떤 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와 동일화하는 행위이다.’ 전자의 ‘어떤 이’를 여성으로, 후자의 ‘다른 이’를 남성으로 대입하면 그대로 ‘성차별’의 정의가 된다. 사토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예를 소개한다. “여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이것은 남성 A가 여성 B에게 던진 발언이 아니라, 남성 C에게 여성 B의 타자화를 공유하여 ‘우리 남자들’을 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이다. 그 장소에 여성 B가 없어도 된다.사토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배제란 공동 행위’이다. 남성 C가 “정말 그래”라며 남성 A에 동조하면(즉 동일화하면)차별 행위는 완성된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하고 항변하면 남성됨의 아이텐티티 구성에 실패한 남성 A는 당혹함을 감추기 위하여 남성 C를 일탈화시키는 반격으로 전환할 것이다. “뭐? 너, 그러고도 남자냐?” 남성이 아니면 여성, 여성이 아니면 남성인, 중간항을 인정하지 않는 이 굳건한 성별이원제 아래에서 남성으로부터의 일탈은 ‘여성화된 남성’과 동의어가 된다. ……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 ― 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성립한다.
- 우에노 치즈코,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 혐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5
여성을 혐오하고 멸시하도록 만드는 개그 프로그램은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나 여성화된 남성들에게도 같은 웃음 코드를 유발한다. 이른바 잘생기고 키가 크며 복근을 자랑하는 남성들은 노출을 통해 멋진 몸매를 떳떳하게 드러내어 탄성을 받는 반면, 소위 미모가 뛰어난 개그우먼들은 그 미모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노파의 가죽’ 생존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노파의 가죽’은 전래동화에서 재앙을 피하기 위해 미녀가 노파로 변신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라고 한다. 자신의 미모를 뽐내어 탄성을 받는 코드보다 예쁜 여자가 멍청한 짓을 하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쓰거나 성격이 더럽거나 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임을 감안한다면 미디어가 재생산하고 희화화하는 여성 혐오와 멸시의 문제는 내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의 의식 속에 스멀스멀 녹아 들어가고 있다.
성차별인 주류 미디어 문화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남성을 욕하거나 비난할 때 ‘년’을 붙이거나 여성화된 남성으로 취급하는 것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실시해서 온라인 게임을 못 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온라인상에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이런 류의 비아냥을 비롯해서 각종 루머가 떠돈다. “여성가족부의 권고로 곰돌이 푸가 바지를 입게 되었다”든가 “여성 성기를 닮은 죠리퐁과 남성의 성기를 닮은 쏘나타 3의 전조등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판매 중지 요청을 했다”는 식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출처 불명의 소문들은 여성가족부로 상징되는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을 네티즌들에게 심어 주고 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의 문화 또한 남성 중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역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면면을 보면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은 보조로 등장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아바타〉,〈도둑들〉, 〈7번방의 선물〉, 〈암살〉, 〈광해〉, 〈태극기 휘날리며〉, 〈변호인〉 등의 영화를 보라. 20위까지 보아도 여성이 온전히 주인공인 영화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밖에 없다. 이 영화들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참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런 영화들도 한 번씩 봐 줘야지 하다가도 뻔한 “장군, 아버지, 경찰, 왕, 군인” 의 이야기에 내가 왜 열광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에서 여성 두 명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손희정(여성문화이론연구소)은 분석하였다. 그래도 1990년대에는 결혼, 출산, 육아, 연애 등을 다룬 여성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써니>를 제외하고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며, 간혹 주인공인 경우에 공포나 호러 영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 식으로 현대사의 곳곳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며 아버지의 애환을 그린 〈국제시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 영화’로 칭송하여 더욱 보기 싫은 엄마 때문에 딸 아이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사회 시간에 〈국제시장〉을 본 딸은 이렇게 소감을 나누었다. “엄마,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가족들은 다 즐겁게 노는데 아버지만 혼자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할아버지 옷을 잡고 우는 게 불쌍해 보였어.” 십 대 어린이에게까지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자본의 힘에, 여성 노동자나 농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위로공단〉이나 〈밀양아리랑〉은 당연히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 혐오는 왜 발생하는가?
노동 주체로서의 남성은 언제나 무언가를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여성에 대해 우월감을 증명해 왔다. 여자를 유혹하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남성들이 여성을 이끌고 우월하게 스스로를 위치 지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부등가교환인 것처럼 보이는 이 연애 관계는 긴 시간의 과정에서 본다면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연애하는 동안에 먹고 쓰는 것을 모두 남자가 냄으로써 남자는 반대급부로 여성들로부터 정서적인 것부터 섹스까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혼함과 동시에 그동안 투자했던 것을 이자까지 쳐서 완전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단기간으로는 부등가교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 엄기호,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불가능성〉,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2011
앞서 인용한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에서 성의 자유 시장의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의 결혼 시장에 향수를 느끼는 경향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척 아주머니가 중매 자리를 구해 오던 좋은 시절에는 애써 결혼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덕에 거의 모든 남녀가 결혼 상대를 찾아 짝을 맺는 ‘전원 결혼 사회’가 출발했다.” 일본의 19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잠깐 등장했던 ‘전원 결혼 사회’에서 여성에게 결혼은 ‘평생 직장’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 ‘전원 결혼 사회’는 종식을 고하고 결혼은 평생 직장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즉, 산업화 시대 남성 1인 생계 부양자 모델에서 남성은 임금 노동, 여성은 가사 돌봄을 맡아 분업하지만 여성의 노동은 임노동의 체계에 들어가지 않고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로써 여성에 대한 멸시, 여성을 2차 시민으로 대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탈산업 사회에 접어들어 기업이 가족 임금 지불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은 와해되고, 여성들도 어떤 형태로든 임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시대가 되면서 남성 부양자가 여성을 책임지고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잘 작동되지 않는다. 최근의 여성 혐오는 이 의존성의 여성화 개념이 무너진 것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와 상실감에서 온다.
- 황미요조, 〈문화 영역의 여성화와 여성 혐오〉, 《여/성이론》, 2015 여름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엄기호 또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없는 돈에 기껏 열심히 투자했더니 ‘먹튀’ 하는 여성들이 확 늘어난 것이 개그의 소재가 된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서술한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라 인간들의 삶이 결정적으로 불투명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고 기획할 수 없게 되었다. 앞날은 예측되지 않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보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는 ‘개념녀’와는 거리가 먼 ‘먹튀 여친’이 정말 혐오스럽다. 한편 직장이 있는 정규직 여성들의 경우 자신의 현재 생활이 더욱 악화되는 ‘결혼과 출산’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이에 남성들은 여권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괜찮은 자신들의 직장을 빼앗아 갔다고 인식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약자요, 피해자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여성 혐오 담론은 현실에서보다 사이버에서 더 많이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남성들이 취업, 연애, 결혼, 출산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고 연대하지 못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재주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환상
지난 여름방학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학교 성인권교육’ 직무연수를 수강하였다. 직무연수에서 강의한 김정인(다양성관리연구소)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박사의 글을 인용해 “한국의 출산율이 1.10일 경우 시뮬레이션한 결과 2300년 경에는 ”‘한국인’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여성 인력 활용의 현실은 OECD에서 최저임에 반해 남성 인력의 활용은 OECD 평균에 거의 육박하는 차별적인 상황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여학생이 집안일을 도울 때에도 용돈을 줘야 한다”, “여성들도 리더십과 협상 능력을 기르고 어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정인이 제시한 2014년 통계청 자료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 10년 단위 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M자형 곡선으로, 20대 후반에 73.4%였던 것이 30대에 56.7%로 낮아지고 40대 후반에 다시 69.7%로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30대에 출산과 육아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경력 단절 여성들이 40대 때 들어가는 일자리는 비정규직, 저임금, 돌봄 노동, 감정 노동 일자리들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여성들은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남성보다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조직의 핵심 부서나 주요 직책에는 여성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단순 직무나 보조 역할을 해야만 하며 그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다. 유리 천장과 유리벽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은폐된 성차별의 문제이며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에서 멀어지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결혼과 출산 때문에 하층의 ‘경단녀’로 전락할 바에야 어렵게 얻은 직장을 유지하면서 솔로의 삶을 사는 게 더 낫다는 선택인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일자리는 무려 36.6%의 성별 임금 격차를 보이는, OECD 평균이 15.5%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열악한 직장이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대비 남성 임금은 10대는 1.03배이지만, 50대는 1.90배로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직장도 성희롱이나 성추행도 참고 견뎌야 하는 위험한 공간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이 바닥이라는 것은 여성주의자들의 삶에서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앞서 아들들을 걱정하는 여성 활동가처럼 주변의 20대, 30대 여성주의자들 또한 이런 언니들의 처지에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결혼만 하면 육아와 가사 노동에 매여 다시 직장이나 활동에 복귀하지 못한 채 10년의 시간을 훌쩍 보낸다. 어렵게 다시 복귀하더라도 가사와 육아로 인해 직장도 활동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남성들은 ‘된장녀’, ‘개념녀’ 등으로 자기 입맛에 맞도록 재구성한 여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여성들이 놓인 삶의 처지와 여성 혐오를 발언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가 여성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에도 혐오감을 부추기고 퍼뜨리는 사이버에서 나와 좀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현실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
글의 처음에서 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경험치나 자산이 부족함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직장에서나 활동하고 있는 조직에서나 여성 혐오를 당해 보거나 또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아 더욱 부적합하다. 어쨌거나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여성 혐오 현상과 원인 그리고 대안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글로 읽어주기 바라며 힘겨운 글쓰기를 마친다.
기획 / 여성 혐오
‘혐오’의 정치학, 여성 상위라는 ‘환상’
강아지똥
전교조 서울지부 여성위원장
올해 초 전교조여성위원회 회의에서 여성 혐오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둔감했다. 특히 중등 교사들이 학생들의 여성 혐오와 비하가 도를 넘었다고 증언하는데도 초등 교사인 나에게는 좀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중학생 사이에서 놀리거나 따돌릴 때 그 친구가 남자임에도 “-년”이라고 욕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유를 몰라 “왜 그러는데요?” 했다.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특정 또는 다수의 여성을 비하하는 ‘-녀’ 접미사를 쓰는 네티즌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했을 때에도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어볼 정도로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김치녀’라는 말조차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개념 정리부터 하고 가 보자.
여성 혐오 담론에서 ‘김치녀’란 무엇보다도 ‘연애 시장에서 반칙을 하는 여자’를 뜻한다. 반칙이란 뭘까.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자의 능력을 따지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물리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여자’, ‘자기 외모는 성형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남자의 능력은 칼같이 따지는 여자’다. 포괄적으로 정의 내리면 이렇다. ‘연애 시장에서(사람 됨됨이나 사랑이 아니라) 남자가 보유한 자원을 따져서 분수 이상으로 한몫 잡으려는 여자.’ 한국의 젊은 남성을 사로잡은 여성 혐오 담론이 내놓는 김치녀의 원형이다.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IN》 418호
한마디로 표리부동한 ‘재수 없는 여자’라는 뜻인데 이런 단어가 네티즌과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성 혐오를 주제로 한, 이해하기 어려운(!) 몇 편의 책과 글을 읽고 지인들과 토론했다. 1년여의 시간을 경과하면서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나의 몰지각함은 깨어졌고 그 경험을 벗 조합원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과 문화라는 이름의 ‘혐오’와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교육》 특집 기획안을 이틀 밤을 세워 작성해 냈지만 편집위원회는 파기 환송했다. 대신 여성 혐오에 관한 르포 글을 써 보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한 달 동안 고민을 했건만 여성학자도 문화인류학자도 아니고 ‘김치녀’가 쓰이는 맥락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여성 혐오와 초등교육 현장’이라는 거시적인데다가 미시적이기까지 한 르포를 쓰기란 쉽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르포 쓰기 강좌를 들어 놓는 건데……. 초등학교 현장에서 여성 혐오 현상을 취재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여성 혐오에 무지하고 둔감했던 내가 어떻게 느끼고 학습하고 생각했는지를 드러내 보여 주는 게 더 솔직한 글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연구자도 아니면서, 잘 알거나 절감하지 못하면서 이슈를 따라가는 ‘~인 척’하는 글을 쓰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선생님 그거 동성애 하는 장면인가요?
○○초등학교에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로 위탁 성교육을 하겠다는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하였습니다. 아하는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라 하지만 청소년들이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퇴폐 성행위에 가까운 내용과 동성애 옹호 교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몸은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어 청소년들을 성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곳이므로 아하 견학 절대 불가 반대해야 합니다. 주변 학부모님들에게 알려 주시고 적극 반대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우편번호) 서울특별시 ○○구 ○○로 서울○○초등학교
(교무실) 070-****-****
(병설유치원 교무실) 070-****-****
(행정실) 070-****-****
(행정실 팩스) 02-****-****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하는 박원순 시장의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어떤 곳일까?
http://www.hnf.kr/concern/32127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SNS 방에 이런 글이 돌았다.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덧붙인 이 글로 인해 해당 초등학교는 아침부터 전화 테러를 당해야 했다. “전학 갈 예정인 학부모다”, “아이에게 해가 갈까 봐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시작하는 학부모를 빙자한 체험학습 취소 요구 민원전화가 계속 울렸다. 민원인들은 아하가 동성애와 퇴폐적 성행위를 부추기는 교육을 하는데 그런 데 왜 애들을 보내느냐는 말을 퍼부어 댔다. 덧붙여진 부모닷컴이라는 사이트에 가 보니(지금은 로그인해야 자료를 볼 수 있게 회원제로 바뀌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아하에 대한 음해성 글이 게시되어 있었다.
수백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SNS에는 “체험학습 보낸다고 동의했는데 어떻게 하냐?”, “애를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등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아하 관계자는 “한동안 전화가 많이 올 겁니다”라면서 “아하센터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육을 한다면서 체험학습을 가지 말라고 민원을 넣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하와 체험학습을 가는 학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서울시민인권헌장(헌장)을 제정하려는 박원순 시장을 ‘원숭이’로 비하하면서 헌장이 제정되면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동성애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단체 카톡방 반대 글의 논리 구조〉
아하 체험학습을 취소하라 ― 동성애를 옹호하는 아하센터 ― 동성애를 가르치는 아하센터에 성교육을 위탁한 타락한 서울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하라 ― 동성애자 천국을 만들려는 헌장 ― 나라 망할 동성애자 천국을 만들려는 서울시
파산이나 전쟁으로 망한 나라는 있어도 동성애를 합법화하여 무너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논리적 귀결은 모두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에게 맞춰져 있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좌파 종북 교과서’라며 근거 없는 여론 몰이를 해 댄 것처럼 논리적 비약과 사실 왜곡을 일삼으며 이들은 자기주장만 해 댄다. 아무런 문제없이 3년간 진행한 성교육 체험학습에 딴지를 걸며 학교 앞에서 시위까지 하는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혐오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오늘날 동성애와 성소수자 의제는 보수 개신교 세력과 우익 단체들이 ‘종북’ 다음으로 주요하게 다루는 문제가 됐다. 국가 기구는 이런 목소리를 핑계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긍정하는 제도적 조치를 취하려 할 때마다 ‘대다수 국민’을 자칭하는 이들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되면서 공적 공간에서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다루는 것은 극도로 기피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 체제에 대한 도전과 저항을 가로막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반공주의(레드 콤플렉스)에 더해 이른바 ‘레인보 콤플렉스’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일베 현상으로 대표되는 소수자 혐오의 부상과도 맞닿아 있다. 성소수자와 더불어 여성, 이주민, 종북 좌파, 전라도, 세월호 유가족 등 체계적인 차별과 권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의 표출이 희망 없는 시대에 좌절과 무기력이 낳은 공백을 채우고 있다.
- 나라,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여성 혐오가 어땠다구?》, 현실문화, 2015
레인보 콤플렉스를 가진 단체의 공격을 받아 동성애를 방조하는 학교라며 명예를 훼손당했지만 해당 학교는 어린이들에게 체험형 성교육의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고자 학부모회의 동의와 교사회의의 토론을 거쳐 체험학습을 갔다. 하루에 한 학급씩 버스를 타고 청과 시장의 과일 상자들이 점령한 인도와 인파를 뚫고 진행된 6일간의 체험학습의 후유증은 “나와 친구의 성은 아름답고 자유롭지만 책임이 따른다”고 가르친 아하센터가 아니라, 단 1시간의 학교 앞 시위에 있었다.시위의 영향으로 성폭력 피해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을 두고 “저거 동성애 하는 장면이에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학교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그들 또한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 시민이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가장 힘들어한 부분은, 집회를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들이 발설하는 거짓된 말과 논리가 그동안 학교에 가졌던 학부모의 신뢰감, 마을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파헤쳐 후비고 들어와 커다란 수치심과 억울함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집회를 지켜보다가 철수하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던 한 어머니는 “집에 가서 밥을 하려고 하는데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치밀어서 주저앉고 말았다”고 토로하였다.
일부러 이사까지 하면서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한 아버지는 출근길에 학교에 들러서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내 자녀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왜 학교를 뒤흔들어서 심란하게 만드는 것인지, 앞으로 한 번 더 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였다. 반짝 집회를 통해 항의하는 그림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영상과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홀홀 사라지는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들이란 말인가?
한국의 상황에서 여성들이 ‘된장녀/분당선 대변녀/개똥녀/김치녀/보슬아치’ 등의 오물이나 특정 냄새, 성기에 대한 은유 등으로 치환되는 것이나, 개신교 우파에서 끊임없이 남성 동성애자들을 찜방이나 난교, 식食으로 표현되는 특정 취향, AIDS 등의 점액질에 뒤섞인 오염된 이미지에 연결하는 것 등은 명백히 이런 혐오의 수사학과 연결되어 있다. (……) 혐오 발화와 혐오 행위들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자리는 이렇게 모멸 및 수치심과 만나게 될 때이다. 이는 혐오 발화와 행위의 대상이 되는 이들로 하여금 혐오의 수사를 내면화하고 스스로 무기력하게 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이란 권력을 가진 자나 전통적 공동체가 도덕이라는 잣대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을 길들임에 있어서 그 효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되어 온 방법론이자 가장 파괴적인 방법론 중 하나이다.
- 손희정, 〈혐오의 시대 – 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여/성이론》 2015 여름호,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년
혐오는 사랑보다 강하다?
지금. 시청 앞의 기도회에서 보내온 문자입니다.
시청↔010.****.**** 로 동성애 반대 의견 보내면 시청 전광판에 떠요!!
문자 수신 계속전달해 주세요. 시청 앞이에요.
멀티 문자 안 되고 단문만 가능합니다.
‘동성애 절대 반대’라고만 보내면 돼요.
우리가 통과 안 되도록 계속 기도를!
이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도 동성애 교육을 한대요.
교회, 목사님이 동성애자 결혼주례 안 해 주면 벌금 물고. 계속 기도 부탁해요.
동성애 평등 법안 통과 안 되도록이요!!
150명 위원 중 7명만 우리 편이래요. 발언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줘야 한대요.
그쪽에서 투표로 결정하자고 하면 자동적으로 통과, 그렇게 안 되도록 기도 부탁.
- ○○○ 장로회장
기도도 부탁드리고 문자도 꼭 좀 넣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5년 6월 9일, 가족들 간의 소소한 소식을 전하는 카톡방에 위와 같은 글이 떴다. ○○○ 장로회장이 보낸 메시지를 옮기면서 ‘기도와 문자’를 부탁한 장문의 글에 리액션은 없었다. 그들의 문자와 기도빨에 힘입었는지 헌장은 제정되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도 사랑을 전파해야 할 종교 신자들이 매일 서울시청 앞에 모여서 혐오와 저주의 기도를 여전히 이어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운의 편지’인 양 “100명에게 보내라”는 주문을 하면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자신들이 마치 소수자인 것처럼 애처롭게 ‘부탁’을 전파한다.
다른 사람의 문자를 고스란히 옮긴 것뿐인데도 바로 내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문득 성소수자들은 이런 충격을 매순간 접하고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에 대한 통념을 활용하여 헌장 제정를 막으려는 세력들로 인해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인정되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또다시 유보되어야 하는 것인가?
타인에 대한 ‘혐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극단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자기를 보호하려는 감정일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이데올로기가 올바르고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고 혐오해도 되는 것인가? 혐오는 자기 것이 박탈당할 것이라는 그릇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빼앗는다. 타인이 가진 권리를 빼앗고 짓밟으면서 자신의 물질적 이득이나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 혐오의 정치적인 목적이다. 혐오 뒤에 숨어 있는 자기애, 혐오하는 자에게는 결코 줄 수 없는 순수한 기득권! 이 혐오의 정치학은 여성 혐오에도 그대로 재현된다.
남성들의 자기애와 순수한 기득권
여성 혐오에 관한 강의가 있었던 전교조 여름연수를 마치고 선배 교사의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50대 교사와 20대 교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근무하는 50대 선배 교사는 남성들의 군가산점을 찬성한다고 하였다. 지금 중학교의 찌질한 남학생들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학업 성취도, 사회성,체력 모두 앞서는 여학생들에 비하여 그들은 스마트폰 게임과 PC방에 중독되어 있으며 소통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남성이 더 하위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역차별적으로 군가산점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후배 교사는 이 선배 교사의 논리에 반박을 하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은 도로의 소음 때문인지 금세 언성까지 높이는 토론 배틀장이 되었다.
군가산점을 주장한 선배 교사는 평소에 존경하는 전교조 활동가였다. 처음에는 이분이 왜 이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토론을 계속 하다 보니 ‘아, 이분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남중생들의 학교생활이 심각하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남성 구직자의 취업을 걱정하는 선생님의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루저’인 남학생의 처지가 너무나 딱하고 한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서울시와 교육청이 혁신 교육을 널리 보급하고 자치구 학교들을 혁신 벨트로 만들려는 ‘혁신 교육지구’ 사업을 위한 추진단 활동을 지역에서 하고 있다. 3년째 이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가 있는데 아들이 둘이다. 전교조 지키기 선전전을 함께한 10월 어느 날, 늦은 저녁 식사를 같이 먹자고 제안하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딸은 6학년이라도 혼자서 밥 차려 먹고 하죠? 제 아들은 고등학생인데도 제가 집에 가서 밥을 차려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요.”그는 그날 저녁도 거르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10월 어느 일요일에 생협에서 밀린 장을 보고 함께 동네로 돌아오던 길에 여성 단체에서 일하는 동네 사람을 만났는데 고맙게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실어다 준단다. 차에 동승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들 둘을 둔 이 여성 활동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생님, 도대체 커서 연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키도 작고 가진 것도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못 하고 루저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서 막 직업 가진 여성들 혐오하고…….”
“밥 차려 먹는 거 가르치고 성평등하게 길렀어야지” 하는 핀잔이나 “요섹남이 대세인데 아들에게 요리책을 사 주는 게 어때”라는 조언은, 아들들의 의식주나 결혼이 걱정되는 모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밥도 스스로 챙겨 먹지 않는 아들들에 대한 걱정은 중학교 남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페미니스트 엄마들에게도 있었다. 다시 후배 교사와 논쟁했던 선배 교사의 논리로 돌아가 보자. 예전에는 “가방끈 길고 사회성 있는 남성들이 우월하고 능력이 있어서 기득권을 가졌다”면 이제는 “루저가 될 수도 있는 미래의 무능한 남성들을 위해 역차별적인 기득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지금, 남성 약자론, 남성 피해자론, 남성 역차별론들이라니, 젠장!
여자를 타자화한 ‘남자끼리’
SBS 개그 프로 〈웃찾사〉의 인기 코너인 ‘남자끼리’를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인 사이의 남녀가 어떤 가게에 가서 대화를 하는데 남성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이 남성을 도와주기 위해 남자끼리 돕고 산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생일을 맞은 남자 친구에게 여친이 조각 케이크를 사 주겠다고 하자 남친은 내 생일인데 더 지갑을 열라고 한다. 여성이 계속 조각 케이크를 주문하자 가게 주인은 케이크 한 개보다 더 큰 조각 케이크를 갖다 준다. 그리고는 가게 안의 남성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대며 “오오오, 친구여~ 난 끝까지 잊지 않을 거야”라고 남성들끼리의 연대를 노래한다.
여성 혐오에 대한 고민을 해 오던 차에 본 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내가 놀란 부분은 여친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남친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남성들끼리는 ‘이상한 여친’에 대한 동류의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여친은 “여성에 대한 배려와 평등”을 주장하는 급진적인 여성이나 데이트 비용 한 푼 안 내고 뜯어먹으려는 여성과 오버랩되고, 그런 여성에게 맞서는 남성들의 어깨동무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동맹으로 그려진다.
‘차별이란 어떤 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와 동일화하는 행위이다.’ 전자의 ‘어떤 이’를 여성으로, 후자의 ‘다른 이’를 남성으로 대입하면 그대로 ‘성차별’의 정의가 된다. 사토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예를 소개한다. “여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이것은 남성 A가 여성 B에게 던진 발언이 아니라, 남성 C에게 여성 B의 타자화를 공유하여 ‘우리 남자들’을 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이다. 그 장소에 여성 B가 없어도 된다.사토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배제란 공동 행위’이다. 남성 C가 “정말 그래”라며 남성 A에 동조하면(즉 동일화하면)차별 행위는 완성된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하고 항변하면 남성됨의 아이텐티티 구성에 실패한 남성 A는 당혹함을 감추기 위하여 남성 C를 일탈화시키는 반격으로 전환할 것이다. “뭐? 너, 그러고도 남자냐?” 남성이 아니면 여성, 여성이 아니면 남성인, 중간항을 인정하지 않는 이 굳건한 성별이원제 아래에서 남성으로부터의 일탈은 ‘여성화된 남성’과 동의어가 된다. ……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 ― 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성립한다.
- 우에노 치즈코,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 혐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5
여성을 혐오하고 멸시하도록 만드는 개그 프로그램은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나 여성화된 남성들에게도 같은 웃음 코드를 유발한다. 이른바 잘생기고 키가 크며 복근을 자랑하는 남성들은 노출을 통해 멋진 몸매를 떳떳하게 드러내어 탄성을 받는 반면, 소위 미모가 뛰어난 개그우먼들은 그 미모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노파의 가죽’ 생존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노파의 가죽’은 전래동화에서 재앙을 피하기 위해 미녀가 노파로 변신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라고 한다. 자신의 미모를 뽐내어 탄성을 받는 코드보다 예쁜 여자가 멍청한 짓을 하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쓰거나 성격이 더럽거나 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임을 감안한다면 미디어가 재생산하고 희화화하는 여성 혐오와 멸시의 문제는 내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의 의식 속에 스멀스멀 녹아 들어가고 있다.
성차별인 주류 미디어 문화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남성을 욕하거나 비난할 때 ‘년’을 붙이거나 여성화된 남성으로 취급하는 것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실시해서 온라인 게임을 못 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온라인상에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이런 류의 비아냥을 비롯해서 각종 루머가 떠돈다. “여성가족부의 권고로 곰돌이 푸가 바지를 입게 되었다”든가 “여성 성기를 닮은 죠리퐁과 남성의 성기를 닮은 쏘나타 3의 전조등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판매 중지 요청을 했다”는 식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출처 불명의 소문들은 여성가족부로 상징되는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을 네티즌들에게 심어 주고 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의 문화 또한 남성 중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역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면면을 보면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은 보조로 등장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아바타〉,〈도둑들〉, 〈7번방의 선물〉, 〈암살〉, 〈광해〉, 〈태극기 휘날리며〉, 〈변호인〉 등의 영화를 보라. 20위까지 보아도 여성이 온전히 주인공인 영화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밖에 없다. 이 영화들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참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런 영화들도 한 번씩 봐 줘야지 하다가도 뻔한 “장군, 아버지, 경찰, 왕, 군인” 의 이야기에 내가 왜 열광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에서 여성 두 명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손희정(여성문화이론연구소)은 분석하였다. 그래도 1990년대에는 결혼, 출산, 육아, 연애 등을 다룬 여성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써니>를 제외하고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며, 간혹 주인공인 경우에 공포나 호러 영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 식으로 현대사의 곳곳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며 아버지의 애환을 그린 〈국제시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 영화’로 칭송하여 더욱 보기 싫은 엄마 때문에 딸 아이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사회 시간에 〈국제시장〉을 본 딸은 이렇게 소감을 나누었다. “엄마,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가족들은 다 즐겁게 노는데 아버지만 혼자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할아버지 옷을 잡고 우는 게 불쌍해 보였어.” 십 대 어린이에게까지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자본의 힘에, 여성 노동자나 농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위로공단〉이나 〈밀양아리랑〉은 당연히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 혐오는 왜 발생하는가?
노동 주체로서의 남성은 언제나 무언가를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여성에 대해 우월감을 증명해 왔다. 여자를 유혹하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남성들이 여성을 이끌고 우월하게 스스로를 위치 지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부등가교환인 것처럼 보이는 이 연애 관계는 긴 시간의 과정에서 본다면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연애하는 동안에 먹고 쓰는 것을 모두 남자가 냄으로써 남자는 반대급부로 여성들로부터 정서적인 것부터 섹스까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혼함과 동시에 그동안 투자했던 것을 이자까지 쳐서 완전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단기간으로는 부등가교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 엄기호,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불가능성〉,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2011
앞서 인용한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에서 성의 자유 시장의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의 결혼 시장에 향수를 느끼는 경향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척 아주머니가 중매 자리를 구해 오던 좋은 시절에는 애써 결혼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덕에 거의 모든 남녀가 결혼 상대를 찾아 짝을 맺는 ‘전원 결혼 사회’가 출발했다.” 일본의 19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잠깐 등장했던 ‘전원 결혼 사회’에서 여성에게 결혼은 ‘평생 직장’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 ‘전원 결혼 사회’는 종식을 고하고 결혼은 평생 직장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즉, 산업화 시대 남성 1인 생계 부양자 모델에서 남성은 임금 노동, 여성은 가사 돌봄을 맡아 분업하지만 여성의 노동은 임노동의 체계에 들어가지 않고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로써 여성에 대한 멸시, 여성을 2차 시민으로 대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탈산업 사회에 접어들어 기업이 가족 임금 지불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은 와해되고, 여성들도 어떤 형태로든 임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시대가 되면서 남성 부양자가 여성을 책임지고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잘 작동되지 않는다. 최근의 여성 혐오는 이 의존성의 여성화 개념이 무너진 것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와 상실감에서 온다.
- 황미요조, 〈문화 영역의 여성화와 여성 혐오〉, 《여/성이론》, 2015 여름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엄기호 또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없는 돈에 기껏 열심히 투자했더니 ‘먹튀’ 하는 여성들이 확 늘어난 것이 개그의 소재가 된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서술한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라 인간들의 삶이 결정적으로 불투명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고 기획할 수 없게 되었다. 앞날은 예측되지 않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보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는 ‘개념녀’와는 거리가 먼 ‘먹튀 여친’이 정말 혐오스럽다. 한편 직장이 있는 정규직 여성들의 경우 자신의 현재 생활이 더욱 악화되는 ‘결혼과 출산’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이에 남성들은 여권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괜찮은 자신들의 직장을 빼앗아 갔다고 인식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약자요, 피해자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여성 혐오 담론은 현실에서보다 사이버에서 더 많이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남성들이 취업, 연애, 결혼, 출산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고 연대하지 못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재주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환상
지난 여름방학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학교 성인권교육’ 직무연수를 수강하였다. 직무연수에서 강의한 김정인(다양성관리연구소)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박사의 글을 인용해 “한국의 출산율이 1.10일 경우 시뮬레이션한 결과 2300년 경에는 ”‘한국인’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여성 인력 활용의 현실은 OECD에서 최저임에 반해 남성 인력의 활용은 OECD 평균에 거의 육박하는 차별적인 상황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여학생이 집안일을 도울 때에도 용돈을 줘야 한다”, “여성들도 리더십과 협상 능력을 기르고 어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정인이 제시한 2014년 통계청 자료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 10년 단위 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M자형 곡선으로, 20대 후반에 73.4%였던 것이 30대에 56.7%로 낮아지고 40대 후반에 다시 69.7%로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30대에 출산과 육아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경력 단절 여성들이 40대 때 들어가는 일자리는 비정규직, 저임금, 돌봄 노동, 감정 노동 일자리들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여성들은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남성보다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조직의 핵심 부서나 주요 직책에는 여성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단순 직무나 보조 역할을 해야만 하며 그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다. 유리 천장과 유리벽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은폐된 성차별의 문제이며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에서 멀어지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결혼과 출산 때문에 하층의 ‘경단녀’로 전락할 바에야 어렵게 얻은 직장을 유지하면서 솔로의 삶을 사는 게 더 낫다는 선택인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일자리는 무려 36.6%의 성별 임금 격차를 보이는, OECD 평균이 15.5%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열악한 직장이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대비 남성 임금은 10대는 1.03배이지만, 50대는 1.90배로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직장도 성희롱이나 성추행도 참고 견뎌야 하는 위험한 공간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이 바닥이라는 것은 여성주의자들의 삶에서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앞서 아들들을 걱정하는 여성 활동가처럼 주변의 20대, 30대 여성주의자들 또한 이런 언니들의 처지에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결혼만 하면 육아와 가사 노동에 매여 다시 직장이나 활동에 복귀하지 못한 채 10년의 시간을 훌쩍 보낸다. 어렵게 다시 복귀하더라도 가사와 육아로 인해 직장도 활동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남성들은 ‘된장녀’, ‘개념녀’ 등으로 자기 입맛에 맞도록 재구성한 여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여성들이 놓인 삶의 처지와 여성 혐오를 발언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가 여성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에도 혐오감을 부추기고 퍼뜨리는 사이버에서 나와 좀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현실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
글의 처음에서 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경험치나 자산이 부족함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직장에서나 활동하고 있는 조직에서나 여성 혐오를 당해 보거나 또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아 더욱 부적합하다. 어쨌거나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여성 혐오 현상과 원인 그리고 대안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글로 읽어주기 바라며 힘겨운 글쓰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