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는 왜 해고된 것인가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해고 강사
measophia@naver.com
“게 가공선은 ‘공장선’이지 ‘항해선’이 아니다. 그래서 항해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 더구나 게 가공선은 완전히 ‘공장’이었다. 하지만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토록 편하게,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고바야지 타끼지, 《게 가공선》
게 가공선
“네까짓 놈들 한둘이 대수냐? 카와사끼 한 척 날려 봐라, 그걸로 끝장이야.”
- 감독은 ‘일본어’로 분명히 말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읽었던 코바야시 타끼지의 소설, 《게 가공선》을 다시 만난 것은 중앙대에서 대학의 기업화에 맞서 싸운 노영수 씨가 쓴 《기업가의 방문》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 1장의 첫머리에 나온 《게 가공선》의 인용문에서 나는 멀미를 느꼈다. 내가 있는 곳 여기가 바로 게 가공선이었기 때문이다.
게를 잡아 선상에서 가공하는 게잡이 어선, 게 가공선은 선박이 아닌 공장이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고, 공장이 아닌 선박이기 때문에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배도 아니고 공장도 아닌 이 게 가공선 위의 인간을 지켜 줄 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장법도 항해법도 적용되지 않는 선상의 ‘법외 존재’들처럼, 대학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교원이 아니라 하고, 노동하고 있지만 노동자도 아니라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대학 강사들이다. 선상의 노동자들이 공장법과 항해법 사이의 망망대해에 놓여 있다면, 대학의 강사들은 노동법과 교육법 사이의 망망대해에서 살아간다. 이 교원으로서의 지위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존재들에게 대학은 또 다른 게 가공선이다.
보통 ‘시간 강사’라고 불리는 이 법외 존재는 ‘대학’이라는 한국 고등교육 체제의 뒤틀림과 ‘비정규직’이라는 한국의 노동 현실의 모순이 응집되어 있다. 노동의 권리도 교육의 권리도 인간의 존엄도 유보되어 있는 존재. 이들만큼 자본과 권력에 유린당하는 대학의 현실을, 학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모순을,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위선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바로 그 부조리한 존재, ‘대학 강사’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것을 망각한 채로 살아왔다. 허투루 공부하지 않았고 허투루 수업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 공부에 당당했고 내 수업에 당당했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고 토론을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하면서 나는 내가 그들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만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당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그건 그저 혼자서만 당당한 것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적 지위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망각함으로써 부정한 것이었다. 내가 시간 강사라는 실존을. 대학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교수이신가요? 물어보면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니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당당하게. 시간 강사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더 당당했다. 나는 그게 나의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지향적 자의식은 실은 어떤 무의식을 숨긴 것이었다. 숨김으로써 부정한 것이었다. 내가 ‘시간 강사’라는 부끄러움을. 그렇다. 오늘날 시간 강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만도 못하며 그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목표로 삼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수준의 사회적 보장에라도 도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속여 왔다. 나는 독립적 연구자요 창의적 교육자라고. 자기기만이고 허위의식이었다. 어쩌면 대학 교양학부의 인문학자란 타이틀은 비정규 지식교육 노동자의 정신적 유니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노동자들의 세련된 유니폼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을 숨겨 주는 위장복이듯이 말이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란 ‘브랜드’도 대학 강사라는 노예적 신분을 숨기는 남의 비단옷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고 통보를 받고서야 나는 비로소 남의 비단옷을 벗었다. 그리고 이 벌거벗은 노예는 분명히 들었던 것이다.
“여기 강사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그 사람들 사정을 일일이 어떻게 다 봐줍니까?”
“설마 강사한테 계속 강의를 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후마니타스가 없어지면 모두 끝장이란 걸 아셔야죠.”
그건 게 가공선 위의 선원과 잡부들이 노상 들어야 했던 소리,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환기시키며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인격을 짓밟았던 그 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후마니타스호의 항해
어린 시절 고향의 항구에서 보았던 커다란 배들이 생각난다. 마을의 어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크고 멋진 배. 그런 배들에는 하나같이 멋진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를테면 ‘리버티호’라든가, ‘파라다이스호’라든가, ‘저스티스호’ 같은 이름들. 그 위에서 뱃사람들이 겪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멋진 이름들. 어쩌면 그 이름들은 닿지 못할 곳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배를 탄 사람들에겐 바다 위의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이상향이란 게 필요했을 것이다.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선상의 삶이라 해도 그것을 견디고 우리가 내릴 곳은 자유와 정의가 있는 낙원일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자기를 속일 수 있는 멋진 이름이 말이다. 2011년 내가 탄 배도 그런 멋진 이름을 가졌다. ‘후마니타스’호.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2011년 경희대학교에서 설립된 교양대학의 이름이다. 경희대 입학생들은 모든 교양 과목을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배우게 된다. ‘인간다움’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humanitas’에서 가져온 그 단어는 어떤 전공 교육의 특수성과 전문성 이전에 먼저 ‘인간의 삶’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보편성 교육의 이념을 교양 교육의 목표에 담고 있다. 처음엔 입에 잘 붙지 않는 낯선 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더 ‘후마니타스’는 뭔가 미지의 세계처럼 신비했다.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각자 수많은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개념은 모호했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가 보지 않은 길을 지시하기에는 더 적당했을지도 모르겠다. 개념의 추상성을 현실의 구체성으로 채워 내야 할 것은 우리의 몫이었고, 그런 점에서 초기에는 이 알 수 없는 단어가 만들어 낸 영감과 지적 자극은 대단한 것이었다. 언제나 출항 전날 밤이 가장 설레듯이.
나도 그랬다. 내가 《게 가공선》을 읽던 대학 시절에는 맛보지 못했던 ‘대학 수업다운 수업’을 꿈꾸었다. 내가 대학 시절 우리 학교에도 이런 교수님 한 분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 보았던 그런 선생이 되기를 꿈꾸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해서. 그 꿈이 어느 정도는 실현되는 듯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보내 주는 편지나 수업 후기에서 “정말 대학다운 수업이었다”, “이런 것이 후마니타스다”라는 글을 볼 때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경희대의 안팎에서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데에는 또 다른 사회적 배경도 있었다. 첫째는 당시 한국 사회에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이었다. 인문학은 고사 직전인데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뜨거웠다. 후마니타스의 순항에는 그 열풍이 분명 작용했다. 둘째는 중앙대였다. 경희대가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시킨 그 시기에 중앙대는 두산에 인수되어 노골적으로 기업을 위해 존재하며 스스로 기업이 되고자 하는 ‘기업형 대학 모델’을 출범시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경희대는 기업주의형 대학을 대표하는 중앙대의 반대편에서 인문주의형 대학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교양 시민사회는 ‘후마니타스’를 좋아했다. 진보적 시민사회도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란 기호를 반기업주의의 상징 투쟁에 적절히 활용했다. 새로운 실험에 대한 좋은 반응과 평가가 나왔고,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저속한 입담가들의 표현으로 ‘경희대 최고 히트 상품’이, 사회학적 표현으로 하자면 경희대의 문화 자본이 되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타이틀은 여기서 강의하는 사람들에게도 덩달아 상징 자본을 나누어 주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 그러세요?’라고 했다. ‘회계학이 교양 필수라니. 우리 학교 후마니타스 강의를 좀 봐라’ 경희대 학생들은 중앙대와 비교하며 자부심을 가졌고, ‘우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네’ 선생들도 종종 뿌듯했다. 우리는 다들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이 ‘후마니타스’에 우리의 몫이 없다는 것을.
“2011년에 출범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역사는 대학의 기업화라는 대세를 거스르며 인간다움의 가치를 역설하는 새로운 시도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대학 강사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교수들의 역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 학기의 600여 개가 넘는 대부분의 강의를 전임 교수들이 아닌 대학 강사나 객원 교수들과 같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맡아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강사들과 비전임교원들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후마니타스 칼리지 전체 강좌의 2/3 가량인 약 350여 강좌를 맡았었다. 2011년 출범 이후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얻게 된 사회적 명성과 경희대 학생들의 지지는 이렇듯 대학 강사를 포함한 수많은 비정규직 교수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의 자산이었다.”➊
➊ 이병주, 〈만리장성을 다 쌓았던 그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울산저널, 2016년 1월 27일
배를 가득 채운 것이 게 가공선의 어부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돌아갈 만선의 기쁨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후마니타스호의 명성도 우리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폭풍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막판에 떠안게 되는 것은 ‘그들’ 이었다.”
뱃사람들은 바다 위에 폭풍이 오는 것을 ‘토끼가 뛴다’고 한다. 잔잔할 때는 파랗던 바다가 폭풍이 일고 파도가 거칠어지면 하얗게 뒤집어지면서 날뛰는 모습이 꼭 수백 마리의 흰토끼가 떼를 지어 뛰어오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왔다. 67명(나중에 이 수는 45명으로 줄었다)의 후마니타스호 강사들에게 일괄 해고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그날 밤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폭풍이 밤새 일었다.
항해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배의 가장 밑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했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그 노동을 감당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 책임도 이들의 몫인 것이다.
2014년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만 100개가 넘는 강좌가 ‘정리’되었다. 이유는 ‘재정 위기’에 따른 ‘강좌 축소’였다. 강좌가 정리되었다는 것은 강사가 해고되었다는 뜻이다. 2016년의 교과개편에서도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강사들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전임 교수 강의 비율’을 높여야 했다. 전임 교수를 채용하는 것보다 강사를 자르는 것이 훨씬 편했다.
“왜 경희대는 선이고 중대는 악처럼 인식되고 있는 걸까요? 중대는 재단에서 대학 구조 개편을 하면서 전임 교수들을 건드렸습니다. 전임 교수들은 힘이 있으니까 난리치고 언론에도 크게 부각되었죠. 반면 경희대는 학내 힘 있는 구성원들 – 전임 교수, 정규직 직원, 총학생회는 내버려 두고 경비 절감의 모든 요소들을 비정규직, 특히 시간 강사에게 집중했습니다. (……) 사실 경희대 문제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힘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한 객원 교수는 경희대 강사 해고 사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가장 손쉽게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었고, 가장 효율적으로 평가 지표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조용히’ 사라져 버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폭풍은 바다에서만 오지는 않았다.
“어휴, 처음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만들 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호떡집에 불난 꼴이 따로 없었다니까요. 후마에서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것도 해 줄 수 없느냐, 저것도 해 줄 수 없느냐. 그래서 밤새 가며 강의 교안 만들고, 입술이 다 부르트고, 몸살이 나고. 그렇게 해서 불난 집에 불 끄고 살려 놓았더니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라는 거예요.”
50대의 교수가 평생 강의해 온 자리를 떠나며 울먹였다. 숙소에 모여 앉아 서로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게 가공선의 어부와 화부들처럼 그동안 아무도 바쳐 주지 않았던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우리는 각자의 분투기를 들었다.
“필요할 때 갖다 쓰고 이제 필요 없다고 버리는 거예요. 인간답게 살자고, 간판은 그렇게 걸어 놓고서, 여기서 가르치는 인간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녜요?”
강사들이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말을 뱉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못하던 말이 모이니 봇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한 사람이 말을 던지면 “와와” 공감이 파도가 되어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말이 두 사람의 말이 되고 열 사람의 말이 되더니 백 사람, 만 사람의 말이 되었다. ‘경희대 강사 대량 해고 사태’, ‘후마니타스 칼리지 크리스마스 이브의 해고’등의 제목으로 신문에 기사가 나고 강사 해고가 세상 밖에 알려지자 학교는 경악했다. ‘큰일 났다. 이제 당신이 한 이 일로 인해 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움찔거리게 만드는 경고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우리도 ‘바람’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번엔 태풍의 진원지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난 진실
학교는 우리의 언어로 사태가 정의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지금까지 늘 해 오던 통상적인 일들이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과 언어를 통해 통상적이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고’라는 말, ‘구조 조정’이라는 말이 그랬다. 이번 강사 해고를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라고 하면 ‘통상적인 교과 개편’이요, ‘강좌 미개설에 따른 강사 해촉’일 뿐이라고 했다. ‘부당 해고’라는 말에는 거의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강사 차별’이나 ‘강사들의 교과 운영 참여’와 같은 말도 그랬다. 그건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사에서 처음 등장한 ‘인종 차별’이나 ‘흑인 참정권’과 같은 말처럼 불온하고 불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되었다. 왜 ‘해고’가 아니고 ‘해촉’인지, 왜 대학의 ‘구조 조정’은 ‘교과 개편’이나 ‘학문 단위 재조정’ 또는 ‘대학 혁신’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태와 사물을 다른 언어로 포착할 때 그 언어는 반드시 어떤 관점과 입장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핵발전소’냐 ‘원자력발전소’냐, ‘고용 불안정’이냐 ‘노동 유연화’냐의 문제다. 그 사이에 표현의 문제를 넘어선 정치사회적 입장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강사 해고 사태를 바라보면서 ‘해고자’라는 단어와 ‘해촉자’, ‘미의뢰자’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냥 단어 선택이 아니라 숨겨진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해고’라는 말을 기피하고 끝까지 ‘해촉’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핵발전소라는 말 대신 계속 원자력발전소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왜 해촉이 아니라 해고인가? 해촉이란 위촉을 해지한다는 뜻이다. 위촉이란 어떤 일을 부탁하여 맡긴다는 ‘위임·위탁’의 의미이다. 지난 학기 나는 학교폭력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모범순찰대원이나 교통봉사대, 학교안전지킴이도 모두 ‘위촉’되는 분들이다. 그러나 대학 강사는 대학의 부탁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서’를 쓰고 고용 관계를 통해 일한다. 고용주는 업무를 지시하고 피고용인은 급여를 받고 계약에 명시된 조건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근무 기간 동안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이기 때문에 실직을 하게 되면 ‘실업수당’도 받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위촉자’들은 ‘해촉’이 되어도 실업급여 대상자가 될 수 없다. 대학 강사처럼 계약직 노동자이지만 사업주와 고용 관계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 사업자’로서 사업자 대 사업자의 갑-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학습지 교사나 보험 설계사, 대출 상담원처럼 ‘위촉 계약직’으로 분류되는 직종군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이미 학습지 교사도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고 노동조합 결성이 정당하다는 인정을 받은 바 있다. 바로 재능교육 투쟁 사례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될 당시에도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교육자라 했다. 교사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불온하고 불손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사는 교육자이면서 노동자이다. 대학 교수도 마찬가지다. 강사도 당연히 그러하다. 그들은 교육 노동자이고 지식 노동자인 것이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권을 억압할 때는 따박따박 ‘시간 강사’라 부르며 알바 노동자 취급을 하면서, 노동권을 침해할 때는 ‘교수님, 교수님’ 하며 ‘교육자’로 떠받든다. 교육자성과 노동자성이 상호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그런 잘못된 프레임은 교사든 교수든 강사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깨트려야 한다. ‘강사 해고’는 강사들이 주장하는 ‘입장’이 아니라 엄연한 법적 사회적 현실이다. 그런데도 해고가 자기주장이 되고, ‘우리는 해고를 당했다’고 하는 이 서술이 불온한 선동이 되었다.
구조 조정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회사 사정에 따라, 재정 형편에 따라 부서를 정리하거나 통폐합하고 인원을 감축한다든가 하는 일을 사회의 상식은 통상적으로 ‘구조 조정’이라고 부른다. 2016년 후마니타스 칼리지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교과를 신설하거나 폐지하고 교과의 구조를 다시 설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사들이 해고되었다. 사회의 상식은 이것을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라고 부른다. 물론 지금까지는 강좌를 편성하고 강사를 위촉·해촉하는 일들을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야 지금까지는 한 번도 강사의 언어가 주어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사는 늘 목적어이고 대상이었을 뿐이다. ‘강사에게’ 의뢰하고 ‘강사를’ 위촉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는 늘 의뢰 대상, 정리 대상, 감축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강사들이 ‘우리는 교원으로서 교육과 연구를 한다, 노동을 한다’라고 주체(주어)가 되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이다.
부당한 규정과 일상의 차별
‘해고인가 아닌가’라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대학 사람들만 헷갈리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이 해고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를 물어야 했다. 학교는 계속 ‘법대로, 규정대로, 절차대로’ 했음을 강조하고 이것이 ‘통상적인’ 일이었음을 항변했다. 그러나 통상적인 것이 곧 정당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차별이 통상적으로 있어 왔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차별이 될 수 없듯이 이번 해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법과 규정과 절차를 검토해보기로 했다. 먼저 해고의 원인이 된 학내 규정들과 교과 개편 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강좌 미개설에 대한 안내’라는 제목으로 후마니타스 행정실에서 발송한 안내 메일에는 강사의 자격과 강좌의 적합성을 기준으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강사 자격 기준으로 8학기 초과 강의자, 강의 평가 80점 미만, 학위 규정 미달인 경우다. 두 번째는 강좌 적합성 기준으로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육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강좌, 커리큘럼 부적합, 중복 강좌 등인 경우다. 첫 번째는 양적 평가이고, 두 번째는 질적 평가에 해당한다. 그런데 양적 평가는 양적 평가대로, 질적 평가는 질적 평가대로 사실 둘 다 문제다. 예를 들어 강의 평가 점수 79점과 81점 사이에서 ‘해고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후마니타스 이념에 부합하느냐, 커리큘럼이 적합하냐의 여부도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그동안에는 나도 8학기 하고 쉬라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동료가 강의 평가 점수 때문에 고민하면 ‘신경 좀 쓰지 그랬어’ 하고 말았다. 다음 학기 강의가 없다고 해도 ‘아, 네’ 하고 말았다. 물어 봤자지, 따져 봤자지. 체념과 포기는 강사 생활 동안 학교 행정을 상대하며 몸에 새겨진 직업병이었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2016년 1학기가 9학기째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한 학기 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학기에 각각 미개설 강좌 폐지로 통고를 받은 두 개 과목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떤 검토 근거에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실에 문의했지만 교과 운영위에서 넘겨받은 대로 결과를 통보했다는 기계적 답변뿐이었다. 교과 운영위에 문의를 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없어서’ 강좌 리스트를 뽑아 강의 제목만 보고 심의를 했다는 것이다. 커리큘럼의 검토나 중복 과목에 대한 비교 검토는 없었다. 학교에선 계속 절차를 지켰다고 말했지만 하게 되어 있는 절차를 다 거쳤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교과 운영위의 심의가 이런 식으로 되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충이고 졸속이고 무성의했다. 게다가 모든 절차에서 강사가 참여했던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교과 개편 TF에는 전임 교수뿐만 아니라 계약직인 객원 교수와 학생도 포함되었지만 강사는 배제되었다. 교과 개편과 관련한 회의가 5번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강사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는 전혀 없었다.
적용 규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강사 모임을 해 보니 나처럼 납득할 수 없는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왔다. “강의 평가도 좋고 학생들 반응도 너무 좋았구요, 당연히 8학기제도 안 걸리고, 학위 규정도 문제가 없는데, 왜 폐지된 것인지. 메일에 검토 근거가 쓰여 있었지만 저는 하나도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모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것들을 함께 모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들이 함께 당한 일은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당사자가 납득이 안 되면 물을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왜 해고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함께 묻게 되었다. 법적 근거를 따져 묻기 전에 이미 해고의 근거들이 그 자체로 부당하고 차별적인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8학기 했으니 쉬라고, 무슨 종신 교수 안식년 보내 주듯이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요. 무급 휴가도 아니고. ‘쉰다’는 건 ‘연속성’이 보장될 때 말이죠.” “그냥 그 말은 ‘8학기나’ 강의한 사람은 이제 나가란 거예요. 나는 그 규정을 그렇게 들어요. 4년 이상 안 쓴다, 너는 4년짜리다.” “우린 내구연한이 4년짜리인 소모품인가 보네요.”
알아보니 일정 학기 이상 초과 강의를 못하게 하는 이 규정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예방 조치로 대학에서 이 규정을 만들었을 거라 막연히 그렇게들 알고 있었지만 이 규정은 동일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연속 근무 시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대학 강사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과 같은 특수전문직종으로 분류되어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4학기든 8학기든 그건 비정규직법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따지려면 노무현 무덤에 가서 따지든가”라는 엄포에 아무 말 못하고 나왔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설혹 그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이 법을 악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2년만 쓰고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그런 식으로 똑같이 한다는 것을 해고의 명분으로 떳떳이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는 학내 내규일 뿐이니 다른 대학들도 학교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중앙대는 이 8학기 이상 강의를 못하게 하는 규정이 아예 없었다.
해고 근거가 될 수 없는데도 해고 기준으로 적용하는 부당하고 차별적인 규정은 강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평가로 못 자르면 강사를 뭘로 자를 수 있어요?” 그동안은 자르는 사람의 입장만 들었었다. 기분 나빠도 그 말을 달리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강사 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어제 우리 집에 온 세탁기 수리 기사도 고객 평가 한 번으로 잘리진 않을 거예요. 평가가 나쁘면 해명을 요구받고, 시말서를 쓰고, 재교육을 받고, 계속 나쁘면 경고도 먹고 하겠죠. 그래도 잘리기가 쉽나요. 그런데 강의 평가 점수 한 번으로 해고라뇨. 말도 안 돼요.” “강의 평가는 원래 학생들 의견을 받아서 강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하는 거지 이게 업무 평가나 직원 평가는 아니잖아요. 강의 평가란 게 얼마나 주관적인 요소가 강한데. 일반적인 평균 점수보다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참고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양적 평가로 ‘80점 이하’를 기준으로 한다는 건 기준 자체도 너무 높아요.” “모든 과목에 대해 강의 평가를 해도 이 점수로 해고되는 건 강사만 해당이지요. 전임은 물론 예외고, 똑같은 계약직이라도 객원 교수들은 이걸로 해고 안 되거든요.”
쉬운 해고, 일반 해고, 저성과자 해고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들이었다. 명백한 차별이었다. 게다가 기준 점수 80점은 지나치게 높기도 하려니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강의 평가에 따라 다음 학기 강의 배정을 못 받을 수도 있으니 강의 평가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 그건 다시 말해 평가를 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입장? 사회 문제에 대한 소신 발언요? 꿈도 못 꾸죠. 학생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말을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 검열이 되고, 과제 하나 내는 데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요.” 강의가 고객 만족 서비스로 전도된 곳에서 어떻게 참된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강사 모임을 하면서 나는 내 입 속에 있던 말이 동료의 입을 통해 뱉어져 나오는 것을 들었다. 신기했다. 마음에 대한 공감, 말에 대한 공명이 이토록 힘이 컸던가. 말을 하면 할수록, 무슨 말이든지, 귀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콱콱 박혀 왔다.
근로계약서는 또 어떤가. 그동안 우리는 4개월 단위로 강사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었다. 1학기는 3월1일부터 6월31일까지, 2학기는 9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가 계약기간이다. 그리고 방학 2달은 무소속 공백 상태가 된다. 그런데 4개월 기간은 그 자체로 위법적 소지가 있다. 대학 학사 업무의 특징상 개강 전과 종강 이후에도 대학의 선생들은 강의 계획서 입력이나 성적 채점과 마감 등의 연관 업무를 계속 해야 하고 방중에도 강의 준비 등 연속적 업무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학교가 제시한 일방적 기준에 따라 4개월로 계약 기간을 한정하고 사전 사후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 4개월 단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불리해진다. 2개월의 공백이 생겨 업무 연속성도 인정받을 수 없고, 수년간 장기근속을 하더라도 해고 시 사실상의 무기계약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각 대학별 근로계약서 실태 조사를 하면서 시간 강사 근로계약서는 모든 학교에서 다 4개월 기간으로 쓰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6개월로 쓰는 학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음대 강사 해고로 문제가 된 서울대는 학기제라도 계약기간이 6개월이다. 경희대 안에서 이 4개월 계약서로 인해 생기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학사일정에 맞춘 계약 기간 외에는 방학이 되면 도서관 이용도 제한되고 학내전산정보시스템에 접근하는데도 문제가 생긴다. 수강했던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려고 해도 시스템에서 차단되어 종합정보시스템 상의 메일 전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비번이 사번으로 등록되어 있는 교내 와이파이도 7월 1일, 1월 1일이 되면 정확히 다시 ‘게스트’로 떴다. 주차권도 예전에는 수업이 있는 날 종일권으로 나오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딱 수업 시수만큼만 나온다. 강의만 하고 가라는 것이다. 사소한 불평불만 같지만 실은 이런 것들이 교권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을 무슨 학교에 껌 팔러 오는 사람 취급을 하니.” 이런 모든 것이 다 강사들은 이 대학의 ‘국외자 신분’임을 매순간 각인시켜 주는 촘촘한 차별의 사례들이었다.
이런 문제들이 왜 이제야 수면에 다 떠오르게 된 것인가? 의아했다. 같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문제였음에도 지금껏 혼자만의 토로로만 그쳤던 것은 아마 그것을 사회적 문제로 비춰줄 ‘동료’라는 거울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사체든 공동체든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다시 사회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 한국 사람, 지식인, 연구자, 교육자 등의 존재에 대한 자기 규정 속에 ‘시간 강사’라는 의식이 미미했던 것은 나 자신의 기만과 더불어 시간 강사가 교수나 교사와 달리 자기의 사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도 기인하는 것이다. 교수 사회는 있어도 강사 사회는 없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나에게는 ‘시간 강사’라는 동료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강의동 복도에서 마주쳐 낯이 익은 선생님이라도 누가 교수이고 누가 시간 강사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 강사들은 강의가 있는 날에만 나오고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가 버리니 교류 자체가 쉽지가 않다. 장소의 문제만도 아니다. 다들 바쁘고 다들 정신이 없으니 남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어디 있으랴. 다음 강의, 다음 회의, 다음 일정으로 다시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게 흩어 놓았고, 흩어져 있는 존재. 오직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존재. 시간 강사는 그래서 그동안 ‘집단’이 되지 못했고, 대학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했고, 학내의 정치적 세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강사에 대한 차별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수업이 이루어지는 7층 규모의 종합강의동에 교ㆍ강사휴게실이 딱 하나다. 그러나 소파 몇 개와 오래된 컴퓨터 세 대, 프린터조차 없는 이곳은 강의를 준비할 수 있는 곳도, 학생들과 면담을 할 수 있는 곳도, 강사 모임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교ㆍ강사 휴게실 한구석에 있던 ‘커피믹스’는 언젠가 ‘비용’ 때문에 사라졌다가 이번에 강사 처우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복구’되었다. ‘비용’ 때문에 사라진 건 커피믹스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비용’을 이유로 행정실에서 수업 자료 복사가 금지되었다. 전에는 복사 대장에 날짜와 이름, 수업명, 자료명, 복사 매수를 기재하고 행정실 복사실에서 복사를 했다. 행정실 복사가 금지되어도 전임 교수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과에 복사비가 배정되어 있기도 하고, 전임에겐 무엇이든 ‘부탁’할 수 있는 ‘조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과목에 월 60만원 남짓 받는 강사가 수십 명 학생들에게 나눠 줄 수업 자료를 개인적으로 복사해서 사용하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자신이 ‘비용’이거니와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다 ‘비용’이라는 것을 매순간 모멸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애정이 생길 수가 없다. 최소한 교육자에 대한 예우, 아니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일들을 입 다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거나 인정해서가 아니다. ‘좀스럽고 더럽고 치사해서’ 그랬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런 ‘차별’들을 말하기 시작하자 ‘하하, 아니 그런 걸 갖고 그래요’ 하고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더 중요한 학교 내규나 강사법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조언도 들었다. 정치적,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개인의 불만과 사적인 요구 사항으로 치환하는 논리는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여자가 왜 커피를 타야 하나요?”라는 항변이 결코 개인의 히스테리가 아니듯이 언제나 사소한 일상의 차별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보여 주는 법이다. 당신들에겐 ‘그냥 얘기해서 고치면 되는 일’을 요구하는 것조차 다른 어떤 이들에겐 ‘참 좀스러운 사람들’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차별’이라 하는 것이다.
식민지의 교수들
“무전사가 다른 배들끼리 주고받는 무전을 엿듣고 그 어획량을 일일이 감독에게 알렸다. 그것으로 이쪽 배가 아무래도 뒤지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독이 안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은 즉각 몇 배로 증폭되어 어부와 잡부들을 압박해왔다. (……) 감독과 잡부장은 일부러 ‘선원’과 ‘어부, 잡부’ 사이에 작업 경쟁을 부추겼다.”
- 코바야시 타끼지, 앞의 책
이제 나는 왜 해고되었는가에 대한 마지막 답을 할 차례다. 여기에 대한 답은 대학 강사가 왜 이런 식으로 해고되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대답이기도 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강사 대량 해고 사태. 이것이 그냥 한 대학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은 아닐 것이다. 그 뒤에는 교육을 시장화하고 대학을 기업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거대 기획이 존재한다. 왜 지금 대학들은 가장 값싼 비용의 강사들을 해고하고 있는 것인가?
게 가공선의 작가, 코바야시 타끼지는 마지막 부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은 식민지에서 자본주의 침략사의 한 페이지다.” 게 가공선은 그냥 배 한 척이 아니라 ‘식민지’였다. 선상에서 일어난 일들은 자본에 침략당하는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자본의 지식 하청업체로 전락한 오늘의 대학에서 대학 기업화에 반하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 기치가 무색하리만치 뼛속까지 기업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의 식민지, 자본의 식민지가 된 대학, 우리는 식민지의 교수들이었다.
사실 ‘시간 강사’라는 존재 자체가 식민지 지식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존재다. ‘시간 강사’란 법외 존재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하에서 탄생한 신분이다. 원래는 교원이던 대학 강사들에게서 법적 지위를 박탈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노린 것은 비판적 소장학자들의 입을 막고 대학의 교수 사회를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나누어 분리 통치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인들과 똑같이 일본 본토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인은 ‘강사’ 이상이 될 수 없도록 했던 일제의 식민 통치 전략과 똑같다. 현재의 대학 강사란 존재는 이렇듯 오늘의 대학이 품고 있는 유신의 치욕을 증언하는 존재이며, 자본과 국가가 요구하는 지식과 인간을 생산하는 게 가공선, 식민지 대학의 2등 시민인 것이다.
대학의 2등 시민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비정년 트랙’과 ‘계약 임용직’이라는 방식으로 대학 교원의 임용 방식과 구조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각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원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2013년 기준 전국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 비율은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➋ 대학 교원의 비정규직화가 왜 문제인가? 비정규직화는 대학 교원의 신분 불안정과 고용 불안정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학 교수라 하면 교수이거나 강사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의 교수들은 임용 계약 조건에 따라 교수들을 정년트랙(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비정년트랙(객원 교수, 연구 교수, 강의 전담 교수), 시간 강사로 촘촘히 찢어져 있다. 정년이 보장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정년트랙이냐 비정년트랙이냐에 따라 계약 조건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를 파괴하고 교수 사회를 신분제적 위계 사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학 평가를 통해 대학과 대학이 경쟁하게 만들고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교원들끼리 경쟁하게끔 만들어서 이 전략은 게 가공선의 아사까와 감독이 선원과 어부와 잡부들을 경쟁시키는 방식과 똑같다. 대학을 이렇게 각자도생의 전쟁터로 만들어 놓으면 물리적 억압이 없이도 공동체는 스스로 분열하고 파괴된다. 언제 바다 밖으로 던져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피억압자의 불만과 단결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과 사회 모두에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언제든 계약 해지 가능한’ 신분은 독재정권의 공포정치보다 더 대학의 정치적 학문적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
➋ 2013년 기준으로 대학 전체 교직 중 전임 교원은 38.4%에 불과하고 비전임 교원은 전체 교원의 61.6%다. 4년제 대학의 경우 41.1%가 전임 교원이며, 비전임이 58.9%를 차지한다. 전문대는 71.2%가 비전임이다. 비전임 교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 강사로, 40.8%(8만 1,300명)로 전임 교원(7만 6,380명)보다 오히려 그 수가 더 많다. 대학 교수들 중에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훨씬 더 많은데 그중에서도 6개월 미만의 초단기 비정규직인 시간제 강사가 가장 많다. ‘대학 교수’란 말을 통상적인 의미에서 사용하자면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 시간 강사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4년제 대학의 시간 강사 평균 연봉은 650만 원, 겸임 교수 연봉도 854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4년제 대학의 전임 교원인 교수, 부교수, 조교수의 평균 연봉은 각각 9,148만 4천 원, 7,425만 9천 원, 5,272만 9천 원이다. - 이상룡,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문화과학》 통권 82호, 100~121쪽 참고.
여기서 강사들은 제일 먼저 배 밖으로 던져질 존재들이다. 아니 이미 정리될 만큼 정리되어서 지금 대학에 남아 있는 강사들은 거의 최후의 강사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조차 대학으로선 달갑지 않은 존재들이다. 왜냐면 강사들을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11년 발의되어 세 번이나 유예된 소위 ‘강사법’이다. 대학들이 강사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비용의 문제보다 강사들의 교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 그 자체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지금처럼 함부로 해고, 맘대로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사가 ‘언제든 해고 가능한’ 신분에서 ‘쉽게 해고할 수 없는’ 신분이 되는 것이다. 노예가 시민권을 얻는 격이니 대학으로선 두려운 일이고 강사 입장에서는 가장 큰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각 대학들은 선제적 예방적 조치로 강사들을 해고했던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이번 해고가 강사법이나 대학 구조 조정과는 무관한 것이었다고 적극 부인했다. 우리는 도리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강사법 대응도 아니고 대학 구조 조정도 아니라면 그러면 도대체 왜 잘랐느냐고. 의도하지 않고서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40명, 60명씩 자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강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며, 강사법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쉽게 자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이번 해고는 ‘강사법’과 관계없는 해고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대학이라는 이 게 가공선은 현실의 거대한 모순을 드러내는 장으로 보아야만 하며 강사 해고 문제 또한 생계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육, 학문, 정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첫째, 노동의 조건은 교육의 조건이다. 강사의 노동 조건은 학생의 교육 조건과 직결된다.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분으로 지금 가르치는 교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학생들과 강의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겠는가. 강사가 해고된 자리는 결국 전임과 객원 교수들이 떠맡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에게 강사들이 해 오던 강의 시수와 기타 잡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경희대의 경우 강사 해고와 더불어 2016년 전임 책임 시수가 연간 12학점에서 15학점으로 늘어났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도 늘어난다. 강의실은 콩나물 교실이 된다. 이는 부실 교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의 조건은 학문의 조건이다. 생계와 생존의 안정이 없이는 제대로 된 학문적 삶이 가능할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자기 본연의 연구 주제를 상실하고 점점 자본과 국가의 용역업자가 되고 대학은 지식 하청업체가 되어간다. ‘연구중심대학’이란 미명 하에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연구 용역이 주가 되고 자기 연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대학 강사와 대학원생들은 프로젝트 하청 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저임금 착취를 당하는 존재다. 열정 페이의 노동 착취를 하면서도 연구 지원금이라 하고 장학금이라 하고, 그런 자리를 무슨 벼슬 주듯이 ‘하사’한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셋째, 그래서 노동의 조건은 정치의 조건이다. 자신의 일터와 삶터에서 노예인 자가 도시에서 시민일 수 있는가? 총장과 학장의 눈치를 보면서 권력자와 봉신 관계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 공동체에서 자유로운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재계약 재임용의 목줄이 동료 교수에게 있는데, 그의 입장에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전임 교수와 학교 행정 당국자가 강좌 개설권을 독점하고 비정규직 교원의 생존과 생계를 좌우하는 잣대를 쥐고 있는데 학교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과 방향에 반대하거나 비판할 수 있겠는가? 강의 평가 점수 한 번에 해고가 결정되는데 강의실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정치적 소신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학은 완전히 소수의 지배Oligarchy 하에 떨어지고 민주주의는 오직 ‘강의실’에서만 배울 수 있는 죽은 교육이 될 것이다.
지금 대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현장들 중의 하나다. 그 한가운데 ‘대학 강사’라는 모순의 존재가 있다. 역사가 증명해 보였듯이 모든 혁명에서 가장 낮은 이들의 해방은 만인의 해방의 전제 조건이다. 가장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자리가 해방구가 될 장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강사가 더 많은 권리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얻게 될 때, 그것은 대학 사회 전체의 정치적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오랫동안 대학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장소’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사라진 정치의 장소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대학을 탈정치화 하는 것. 그곳을 오직 순수한 강의와 순수한 학문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 것. 그것은 대학을 죽은 지식들의 박물관으로 만드는 일이었으며 사회 비판과 자기 혁신을 통해서만 존립 가능한 학문의 생명력을 거세하는 일이었고 배움을 한없이 무력화하는 통치의 기법이었다. 이‘잃어버린 정치의 장소’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식민지의 교수들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실천적 반성문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내 편이 없어.”
다시 게 가공선이다. 사실 해고를 당하고 내가 제일 좋았던 것은 강사 모임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고 함께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대학 강사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자각을 통해 다시 사회적 의식을 키워 나가는 과정. 서로 배움과 상호 성장의 보람을 대학 동료들 사이에서 참 오랜만에 맛보았다. 몫이 없는 자, 목소리 없는 자들이 자기의 몫과 목소리를 찾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대학이 한때 가졌던 정치와 민주주의 부활이었다. 대학 선생인 우리에겐 그게 ‘공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 근로기준법과 고등교육법을 공부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좌 개설 현황을 연도별로 분석했고 다른 학교의 강사 근로계약서와 강사 인사관리규정을 찾아 조사하고 비교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했다.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설명해 주면 누군가는 ‘실업급여’ 수급 경험을 알려주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고 학생들한테 가르쳐 왔건만 듣고 보니 내가 딱 그 ‘잠자는 이’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했는지 부끄러웠다. 동료의 강의가 없어졌을 때도 개인적으로 안타까워만 했지 부당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았던 나였으니,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처럼 이번엔 그것이 내 순서로 온 것일 뿐이었다. 하기야 나도 강의 없어진 것이 어디 이번 한두 번인가. 2년 계약직 연구원을 그만둘 때도 ‘실업급여’는 생각도 못 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입으론 말하면서도 의식은 나태했던 것이다. 그랬던 지난날을, 함께 모여 이야기해 나가는 과정에서 깨트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몰랐던 진실, 외면했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그건 마치 바다 위의 안개가 걷히고 풍경이 드러날 때처럼 사태를 바라보는 자기 안의 모호함을 몰아내면서 안도감과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도 반성해야 했다. 해촉이니 강의 미의뢰니 미개설이니 하는 부정확한 용어를 통해 노동 관계를 교묘히 숨기는 데 일조한 것은 학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자신도 고용보다는 위촉이나 의뢰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위촉이나 의뢰 같은 허깨비 말은 허깨비 같은 지위를 그럴싸하게 보여 주는 것일 뿐임에도, ‘고용’이나 ‘해고’가 지시하는 대상, ‘노동자’이기를 우리 자신이 거부했던 것인지도.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도 질문을 해야만 했다. 정말 ‘해고’가 맞는 거예요? 왜 부당해고인 거죠? 다들 바보들이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가방끈 긴 바보들. 우리는 꼭 전태일의 ‘바보회’ 같았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아무것도 아닌 너희들을 배에 태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일까지 시켜 주고 돈도 준다”라고 윽박지르는 감독 아사까와의 서술을 뒤집어 게 가공선의 바보들은 마침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부와 화부 없이 배는 없다.” 후마니타스호의 바보들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배가 흔들린다. 처음 겪는 소란과 동요는 두렵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처음 주목을 받고 상대로부터 점점 그 존재감이 커져감을 깨닫게 될 때, 자부심도 느끼지만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도 느낀다. 우리도 그랬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바람이 되고 우리가 배를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을. 어부와 화부 없이 배는 없다는 것을.
‘강사 하나쯤, 너 하나쯤.’ 나는 지금 이것과 싸우고 있다. ‘너 하나 쯤’이 아니기 위해서. 그 누구도 ‘너까짓 강사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그런 일이 무수히 일어나는 게 가공선에서, 이 배를 떠나면 망망대해의 현실에 빠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누구도 쉽게 저항하지 못했던 이 대학에서, 그 ‘사소한 부당함’에 온 삶을 걸고 ‘하나쯤’이 아닌 ‘하나뿐’인 인간으로 자기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어쩌면 거기서 시작하는 저항이야말로 학문 세계의 식민화에 맞서는 일이고, 식민지에서의 해방 투쟁의 시작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제부터 제대로 반성문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는지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내 문제가 아닐 때, 동료들이 해고당할 때 그냥 넘겼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라고 하는 이름이 문화 자본이 되었을 때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렸다. 사실 나도 공모자의 일원이기도 했다. 내부 비판이나 성찰의 과정에서 치열하지 못했던 책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반성문을 쓸 것이다. 무너지는 대학 앞에서. 괴물이 된 대학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이 가장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지금 여기 이 공간 안에서, 함께, 발언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이름 앞에 달았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적‧비판적‧인문적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기고
나는 왜 해고된 것인가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해고 강사
measophia@naver.com
“게 가공선은 ‘공장선’이지 ‘항해선’이 아니다. 그래서 항해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 더구나 게 가공선은 완전히 ‘공장’이었다. 하지만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토록 편하게,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고바야지 타끼지, 《게 가공선》
게 가공선
“네까짓 놈들 한둘이 대수냐? 카와사끼 한 척 날려 봐라, 그걸로 끝장이야.”
- 감독은 ‘일본어’로 분명히 말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읽었던 코바야시 타끼지의 소설, 《게 가공선》을 다시 만난 것은 중앙대에서 대학의 기업화에 맞서 싸운 노영수 씨가 쓴 《기업가의 방문》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 1장의 첫머리에 나온 《게 가공선》의 인용문에서 나는 멀미를 느꼈다. 내가 있는 곳 여기가 바로 게 가공선이었기 때문이다.
게를 잡아 선상에서 가공하는 게잡이 어선, 게 가공선은 선박이 아닌 공장이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고, 공장이 아닌 선박이기 때문에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배도 아니고 공장도 아닌 이 게 가공선 위의 인간을 지켜 줄 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장법도 항해법도 적용되지 않는 선상의 ‘법외 존재’들처럼, 대학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교원이 아니라 하고, 노동하고 있지만 노동자도 아니라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대학 강사들이다. 선상의 노동자들이 공장법과 항해법 사이의 망망대해에 놓여 있다면, 대학의 강사들은 노동법과 교육법 사이의 망망대해에서 살아간다. 이 교원으로서의 지위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존재들에게 대학은 또 다른 게 가공선이다.
보통 ‘시간 강사’라고 불리는 이 법외 존재는 ‘대학’이라는 한국 고등교육 체제의 뒤틀림과 ‘비정규직’이라는 한국의 노동 현실의 모순이 응집되어 있다. 노동의 권리도 교육의 권리도 인간의 존엄도 유보되어 있는 존재. 이들만큼 자본과 권력에 유린당하는 대학의 현실을, 학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모순을,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위선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바로 그 부조리한 존재, ‘대학 강사’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것을 망각한 채로 살아왔다. 허투루 공부하지 않았고 허투루 수업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 공부에 당당했고 내 수업에 당당했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고 토론을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하면서 나는 내가 그들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만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당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그건 그저 혼자서만 당당한 것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적 지위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망각함으로써 부정한 것이었다. 내가 시간 강사라는 실존을. 대학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교수이신가요? 물어보면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니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당당하게. 시간 강사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더 당당했다. 나는 그게 나의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지향적 자의식은 실은 어떤 무의식을 숨긴 것이었다. 숨김으로써 부정한 것이었다. 내가 ‘시간 강사’라는 부끄러움을. 그렇다. 오늘날 시간 강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만도 못하며 그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목표로 삼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수준의 사회적 보장에라도 도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속여 왔다. 나는 독립적 연구자요 창의적 교육자라고. 자기기만이고 허위의식이었다. 어쩌면 대학 교양학부의 인문학자란 타이틀은 비정규 지식교육 노동자의 정신적 유니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노동자들의 세련된 유니폼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을 숨겨 주는 위장복이듯이 말이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란 ‘브랜드’도 대학 강사라는 노예적 신분을 숨기는 남의 비단옷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고 통보를 받고서야 나는 비로소 남의 비단옷을 벗었다. 그리고 이 벌거벗은 노예는 분명히 들었던 것이다.
“여기 강사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그 사람들 사정을 일일이 어떻게 다 봐줍니까?”
“설마 강사한테 계속 강의를 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후마니타스가 없어지면 모두 끝장이란 걸 아셔야죠.”
그건 게 가공선 위의 선원과 잡부들이 노상 들어야 했던 소리,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환기시키며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인격을 짓밟았던 그 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후마니타스호의 항해
어린 시절 고향의 항구에서 보았던 커다란 배들이 생각난다. 마을의 어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크고 멋진 배. 그런 배들에는 하나같이 멋진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를테면 ‘리버티호’라든가, ‘파라다이스호’라든가, ‘저스티스호’ 같은 이름들. 그 위에서 뱃사람들이 겪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멋진 이름들. 어쩌면 그 이름들은 닿지 못할 곳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배를 탄 사람들에겐 바다 위의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이상향이란 게 필요했을 것이다.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선상의 삶이라 해도 그것을 견디고 우리가 내릴 곳은 자유와 정의가 있는 낙원일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자기를 속일 수 있는 멋진 이름이 말이다. 2011년 내가 탄 배도 그런 멋진 이름을 가졌다. ‘후마니타스’호.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2011년 경희대학교에서 설립된 교양대학의 이름이다. 경희대 입학생들은 모든 교양 과목을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배우게 된다. ‘인간다움’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humanitas’에서 가져온 그 단어는 어떤 전공 교육의 특수성과 전문성 이전에 먼저 ‘인간의 삶’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보편성 교육의 이념을 교양 교육의 목표에 담고 있다. 처음엔 입에 잘 붙지 않는 낯선 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더 ‘후마니타스’는 뭔가 미지의 세계처럼 신비했다.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각자 수많은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개념은 모호했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가 보지 않은 길을 지시하기에는 더 적당했을지도 모르겠다. 개념의 추상성을 현실의 구체성으로 채워 내야 할 것은 우리의 몫이었고, 그런 점에서 초기에는 이 알 수 없는 단어가 만들어 낸 영감과 지적 자극은 대단한 것이었다. 언제나 출항 전날 밤이 가장 설레듯이.
나도 그랬다. 내가 《게 가공선》을 읽던 대학 시절에는 맛보지 못했던 ‘대학 수업다운 수업’을 꿈꾸었다. 내가 대학 시절 우리 학교에도 이런 교수님 한 분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 보았던 그런 선생이 되기를 꿈꾸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해서. 그 꿈이 어느 정도는 실현되는 듯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보내 주는 편지나 수업 후기에서 “정말 대학다운 수업이었다”, “이런 것이 후마니타스다”라는 글을 볼 때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경희대의 안팎에서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데에는 또 다른 사회적 배경도 있었다. 첫째는 당시 한국 사회에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이었다. 인문학은 고사 직전인데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뜨거웠다. 후마니타스의 순항에는 그 열풍이 분명 작용했다. 둘째는 중앙대였다. 경희대가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시킨 그 시기에 중앙대는 두산에 인수되어 노골적으로 기업을 위해 존재하며 스스로 기업이 되고자 하는 ‘기업형 대학 모델’을 출범시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경희대는 기업주의형 대학을 대표하는 중앙대의 반대편에서 인문주의형 대학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교양 시민사회는 ‘후마니타스’를 좋아했다. 진보적 시민사회도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란 기호를 반기업주의의 상징 투쟁에 적절히 활용했다. 새로운 실험에 대한 좋은 반응과 평가가 나왔고,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저속한 입담가들의 표현으로 ‘경희대 최고 히트 상품’이, 사회학적 표현으로 하자면 경희대의 문화 자본이 되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타이틀은 여기서 강의하는 사람들에게도 덩달아 상징 자본을 나누어 주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 그러세요?’라고 했다. ‘회계학이 교양 필수라니. 우리 학교 후마니타스 강의를 좀 봐라’ 경희대 학생들은 중앙대와 비교하며 자부심을 가졌고, ‘우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네’ 선생들도 종종 뿌듯했다. 우리는 다들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이 ‘후마니타스’에 우리의 몫이 없다는 것을.
“2011년에 출범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역사는 대학의 기업화라는 대세를 거스르며 인간다움의 가치를 역설하는 새로운 시도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대학 강사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교수들의 역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 학기의 600여 개가 넘는 대부분의 강의를 전임 교수들이 아닌 대학 강사나 객원 교수들과 같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맡아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강사들과 비전임교원들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후마니타스 칼리지 전체 강좌의 2/3 가량인 약 350여 강좌를 맡았었다. 2011년 출범 이후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얻게 된 사회적 명성과 경희대 학생들의 지지는 이렇듯 대학 강사를 포함한 수많은 비정규직 교수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의 자산이었다.”➊
➊ 이병주, 〈만리장성을 다 쌓았던 그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울산저널, 2016년 1월 27일
배를 가득 채운 것이 게 가공선의 어부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돌아갈 만선의 기쁨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후마니타스호의 명성도 우리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폭풍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막판에 떠안게 되는 것은 ‘그들’ 이었다.”
뱃사람들은 바다 위에 폭풍이 오는 것을 ‘토끼가 뛴다’고 한다. 잔잔할 때는 파랗던 바다가 폭풍이 일고 파도가 거칠어지면 하얗게 뒤집어지면서 날뛰는 모습이 꼭 수백 마리의 흰토끼가 떼를 지어 뛰어오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왔다. 67명(나중에 이 수는 45명으로 줄었다)의 후마니타스호 강사들에게 일괄 해고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그날 밤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폭풍이 밤새 일었다.
항해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배의 가장 밑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했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그 노동을 감당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 책임도 이들의 몫인 것이다.
2014년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만 100개가 넘는 강좌가 ‘정리’되었다. 이유는 ‘재정 위기’에 따른 ‘강좌 축소’였다. 강좌가 정리되었다는 것은 강사가 해고되었다는 뜻이다. 2016년의 교과개편에서도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강사들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전임 교수 강의 비율’을 높여야 했다. 전임 교수를 채용하는 것보다 강사를 자르는 것이 훨씬 편했다.
“왜 경희대는 선이고 중대는 악처럼 인식되고 있는 걸까요? 중대는 재단에서 대학 구조 개편을 하면서 전임 교수들을 건드렸습니다. 전임 교수들은 힘이 있으니까 난리치고 언론에도 크게 부각되었죠. 반면 경희대는 학내 힘 있는 구성원들 – 전임 교수, 정규직 직원, 총학생회는 내버려 두고 경비 절감의 모든 요소들을 비정규직, 특히 시간 강사에게 집중했습니다. (……) 사실 경희대 문제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힘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한 객원 교수는 경희대 강사 해고 사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가장 손쉽게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었고, 가장 효율적으로 평가 지표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조용히’ 사라져 버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폭풍은 바다에서만 오지는 않았다.
“어휴, 처음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만들 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호떡집에 불난 꼴이 따로 없었다니까요. 후마에서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것도 해 줄 수 없느냐, 저것도 해 줄 수 없느냐. 그래서 밤새 가며 강의 교안 만들고, 입술이 다 부르트고, 몸살이 나고. 그렇게 해서 불난 집에 불 끄고 살려 놓았더니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라는 거예요.”
50대의 교수가 평생 강의해 온 자리를 떠나며 울먹였다. 숙소에 모여 앉아 서로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게 가공선의 어부와 화부들처럼 그동안 아무도 바쳐 주지 않았던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우리는 각자의 분투기를 들었다.
“필요할 때 갖다 쓰고 이제 필요 없다고 버리는 거예요. 인간답게 살자고, 간판은 그렇게 걸어 놓고서, 여기서 가르치는 인간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녜요?”
강사들이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말을 뱉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못하던 말이 모이니 봇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한 사람이 말을 던지면 “와와” 공감이 파도가 되어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말이 두 사람의 말이 되고 열 사람의 말이 되더니 백 사람, 만 사람의 말이 되었다. ‘경희대 강사 대량 해고 사태’, ‘후마니타스 칼리지 크리스마스 이브의 해고’등의 제목으로 신문에 기사가 나고 강사 해고가 세상 밖에 알려지자 학교는 경악했다. ‘큰일 났다. 이제 당신이 한 이 일로 인해 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움찔거리게 만드는 경고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우리도 ‘바람’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번엔 태풍의 진원지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난 진실
학교는 우리의 언어로 사태가 정의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지금까지 늘 해 오던 통상적인 일들이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과 언어를 통해 통상적이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고’라는 말, ‘구조 조정’이라는 말이 그랬다. 이번 강사 해고를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라고 하면 ‘통상적인 교과 개편’이요, ‘강좌 미개설에 따른 강사 해촉’일 뿐이라고 했다. ‘부당 해고’라는 말에는 거의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강사 차별’이나 ‘강사들의 교과 운영 참여’와 같은 말도 그랬다. 그건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사에서 처음 등장한 ‘인종 차별’이나 ‘흑인 참정권’과 같은 말처럼 불온하고 불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되었다. 왜 ‘해고’가 아니고 ‘해촉’인지, 왜 대학의 ‘구조 조정’은 ‘교과 개편’이나 ‘학문 단위 재조정’ 또는 ‘대학 혁신’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태와 사물을 다른 언어로 포착할 때 그 언어는 반드시 어떤 관점과 입장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핵발전소’냐 ‘원자력발전소’냐, ‘고용 불안정’이냐 ‘노동 유연화’냐의 문제다. 그 사이에 표현의 문제를 넘어선 정치사회적 입장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강사 해고 사태를 바라보면서 ‘해고자’라는 단어와 ‘해촉자’, ‘미의뢰자’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냥 단어 선택이 아니라 숨겨진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해고’라는 말을 기피하고 끝까지 ‘해촉’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핵발전소라는 말 대신 계속 원자력발전소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왜 해촉이 아니라 해고인가? 해촉이란 위촉을 해지한다는 뜻이다. 위촉이란 어떤 일을 부탁하여 맡긴다는 ‘위임·위탁’의 의미이다. 지난 학기 나는 학교폭력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모범순찰대원이나 교통봉사대, 학교안전지킴이도 모두 ‘위촉’되는 분들이다. 그러나 대학 강사는 대학의 부탁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서’를 쓰고 고용 관계를 통해 일한다. 고용주는 업무를 지시하고 피고용인은 급여를 받고 계약에 명시된 조건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근무 기간 동안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이기 때문에 실직을 하게 되면 ‘실업수당’도 받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위촉자’들은 ‘해촉’이 되어도 실업급여 대상자가 될 수 없다. 대학 강사처럼 계약직 노동자이지만 사업주와 고용 관계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 사업자’로서 사업자 대 사업자의 갑-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학습지 교사나 보험 설계사, 대출 상담원처럼 ‘위촉 계약직’으로 분류되는 직종군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이미 학습지 교사도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고 노동조합 결성이 정당하다는 인정을 받은 바 있다. 바로 재능교육 투쟁 사례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될 당시에도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교육자라 했다. 교사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불온하고 불손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사는 교육자이면서 노동자이다. 대학 교수도 마찬가지다. 강사도 당연히 그러하다. 그들은 교육 노동자이고 지식 노동자인 것이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권을 억압할 때는 따박따박 ‘시간 강사’라 부르며 알바 노동자 취급을 하면서, 노동권을 침해할 때는 ‘교수님, 교수님’ 하며 ‘교육자’로 떠받든다. 교육자성과 노동자성이 상호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그런 잘못된 프레임은 교사든 교수든 강사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깨트려야 한다. ‘강사 해고’는 강사들이 주장하는 ‘입장’이 아니라 엄연한 법적 사회적 현실이다. 그런데도 해고가 자기주장이 되고, ‘우리는 해고를 당했다’고 하는 이 서술이 불온한 선동이 되었다.
구조 조정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회사 사정에 따라, 재정 형편에 따라 부서를 정리하거나 통폐합하고 인원을 감축한다든가 하는 일을 사회의 상식은 통상적으로 ‘구조 조정’이라고 부른다. 2016년 후마니타스 칼리지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교과를 신설하거나 폐지하고 교과의 구조를 다시 설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사들이 해고되었다. 사회의 상식은 이것을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라고 부른다. 물론 지금까지는 강좌를 편성하고 강사를 위촉·해촉하는 일들을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야 지금까지는 한 번도 강사의 언어가 주어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사는 늘 목적어이고 대상이었을 뿐이다. ‘강사에게’ 의뢰하고 ‘강사를’ 위촉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는 늘 의뢰 대상, 정리 대상, 감축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강사들이 ‘우리는 교원으로서 교육과 연구를 한다, 노동을 한다’라고 주체(주어)가 되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이다.
부당한 규정과 일상의 차별
‘해고인가 아닌가’라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대학 사람들만 헷갈리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이 해고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를 물어야 했다. 학교는 계속 ‘법대로, 규정대로, 절차대로’ 했음을 강조하고 이것이 ‘통상적인’ 일이었음을 항변했다. 그러나 통상적인 것이 곧 정당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차별이 통상적으로 있어 왔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차별이 될 수 없듯이 이번 해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법과 규정과 절차를 검토해보기로 했다. 먼저 해고의 원인이 된 학내 규정들과 교과 개편 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강좌 미개설에 대한 안내’라는 제목으로 후마니타스 행정실에서 발송한 안내 메일에는 강사의 자격과 강좌의 적합성을 기준으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강사 자격 기준으로 8학기 초과 강의자, 강의 평가 80점 미만, 학위 규정 미달인 경우다. 두 번째는 강좌 적합성 기준으로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육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강좌, 커리큘럼 부적합, 중복 강좌 등인 경우다. 첫 번째는 양적 평가이고, 두 번째는 질적 평가에 해당한다. 그런데 양적 평가는 양적 평가대로, 질적 평가는 질적 평가대로 사실 둘 다 문제다. 예를 들어 강의 평가 점수 79점과 81점 사이에서 ‘해고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후마니타스 이념에 부합하느냐, 커리큘럼이 적합하냐의 여부도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그동안에는 나도 8학기 하고 쉬라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동료가 강의 평가 점수 때문에 고민하면 ‘신경 좀 쓰지 그랬어’ 하고 말았다. 다음 학기 강의가 없다고 해도 ‘아, 네’ 하고 말았다. 물어 봤자지, 따져 봤자지. 체념과 포기는 강사 생활 동안 학교 행정을 상대하며 몸에 새겨진 직업병이었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2016년 1학기가 9학기째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한 학기 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학기에 각각 미개설 강좌 폐지로 통고를 받은 두 개 과목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떤 검토 근거에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실에 문의했지만 교과 운영위에서 넘겨받은 대로 결과를 통보했다는 기계적 답변뿐이었다. 교과 운영위에 문의를 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없어서’ 강좌 리스트를 뽑아 강의 제목만 보고 심의를 했다는 것이다. 커리큘럼의 검토나 중복 과목에 대한 비교 검토는 없었다. 학교에선 계속 절차를 지켰다고 말했지만 하게 되어 있는 절차를 다 거쳤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교과 운영위의 심의가 이런 식으로 되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충이고 졸속이고 무성의했다. 게다가 모든 절차에서 강사가 참여했던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교과 개편 TF에는 전임 교수뿐만 아니라 계약직인 객원 교수와 학생도 포함되었지만 강사는 배제되었다. 교과 개편과 관련한 회의가 5번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강사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는 전혀 없었다.
적용 규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강사 모임을 해 보니 나처럼 납득할 수 없는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왔다. “강의 평가도 좋고 학생들 반응도 너무 좋았구요, 당연히 8학기제도 안 걸리고, 학위 규정도 문제가 없는데, 왜 폐지된 것인지. 메일에 검토 근거가 쓰여 있었지만 저는 하나도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모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것들을 함께 모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들이 함께 당한 일은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당사자가 납득이 안 되면 물을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왜 해고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함께 묻게 되었다. 법적 근거를 따져 묻기 전에 이미 해고의 근거들이 그 자체로 부당하고 차별적인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8학기 했으니 쉬라고, 무슨 종신 교수 안식년 보내 주듯이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요. 무급 휴가도 아니고. ‘쉰다’는 건 ‘연속성’이 보장될 때 말이죠.” “그냥 그 말은 ‘8학기나’ 강의한 사람은 이제 나가란 거예요. 나는 그 규정을 그렇게 들어요. 4년 이상 안 쓴다, 너는 4년짜리다.” “우린 내구연한이 4년짜리인 소모품인가 보네요.”
알아보니 일정 학기 이상 초과 강의를 못하게 하는 이 규정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예방 조치로 대학에서 이 규정을 만들었을 거라 막연히 그렇게들 알고 있었지만 이 규정은 동일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연속 근무 시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대학 강사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과 같은 특수전문직종으로 분류되어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4학기든 8학기든 그건 비정규직법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따지려면 노무현 무덤에 가서 따지든가”라는 엄포에 아무 말 못하고 나왔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설혹 그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이 법을 악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2년만 쓰고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그런 식으로 똑같이 한다는 것을 해고의 명분으로 떳떳이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는 학내 내규일 뿐이니 다른 대학들도 학교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중앙대는 이 8학기 이상 강의를 못하게 하는 규정이 아예 없었다.
해고 근거가 될 수 없는데도 해고 기준으로 적용하는 부당하고 차별적인 규정은 강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평가로 못 자르면 강사를 뭘로 자를 수 있어요?” 그동안은 자르는 사람의 입장만 들었었다. 기분 나빠도 그 말을 달리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강사 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어제 우리 집에 온 세탁기 수리 기사도 고객 평가 한 번으로 잘리진 않을 거예요. 평가가 나쁘면 해명을 요구받고, 시말서를 쓰고, 재교육을 받고, 계속 나쁘면 경고도 먹고 하겠죠. 그래도 잘리기가 쉽나요. 그런데 강의 평가 점수 한 번으로 해고라뇨. 말도 안 돼요.” “강의 평가는 원래 학생들 의견을 받아서 강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하는 거지 이게 업무 평가나 직원 평가는 아니잖아요. 강의 평가란 게 얼마나 주관적인 요소가 강한데. 일반적인 평균 점수보다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참고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양적 평가로 ‘80점 이하’를 기준으로 한다는 건 기준 자체도 너무 높아요.” “모든 과목에 대해 강의 평가를 해도 이 점수로 해고되는 건 강사만 해당이지요. 전임은 물론 예외고, 똑같은 계약직이라도 객원 교수들은 이걸로 해고 안 되거든요.”
쉬운 해고, 일반 해고, 저성과자 해고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들이었다. 명백한 차별이었다. 게다가 기준 점수 80점은 지나치게 높기도 하려니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강의 평가에 따라 다음 학기 강의 배정을 못 받을 수도 있으니 강의 평가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 그건 다시 말해 평가를 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입장? 사회 문제에 대한 소신 발언요? 꿈도 못 꾸죠. 학생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말을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 검열이 되고, 과제 하나 내는 데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요.” 강의가 고객 만족 서비스로 전도된 곳에서 어떻게 참된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강사 모임을 하면서 나는 내 입 속에 있던 말이 동료의 입을 통해 뱉어져 나오는 것을 들었다. 신기했다. 마음에 대한 공감, 말에 대한 공명이 이토록 힘이 컸던가. 말을 하면 할수록, 무슨 말이든지, 귀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콱콱 박혀 왔다.
근로계약서는 또 어떤가. 그동안 우리는 4개월 단위로 강사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었다. 1학기는 3월1일부터 6월31일까지, 2학기는 9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가 계약기간이다. 그리고 방학 2달은 무소속 공백 상태가 된다. 그런데 4개월 기간은 그 자체로 위법적 소지가 있다. 대학 학사 업무의 특징상 개강 전과 종강 이후에도 대학의 선생들은 강의 계획서 입력이나 성적 채점과 마감 등의 연관 업무를 계속 해야 하고 방중에도 강의 준비 등 연속적 업무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학교가 제시한 일방적 기준에 따라 4개월로 계약 기간을 한정하고 사전 사후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 4개월 단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불리해진다. 2개월의 공백이 생겨 업무 연속성도 인정받을 수 없고, 수년간 장기근속을 하더라도 해고 시 사실상의 무기계약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각 대학별 근로계약서 실태 조사를 하면서 시간 강사 근로계약서는 모든 학교에서 다 4개월 기간으로 쓰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6개월로 쓰는 학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음대 강사 해고로 문제가 된 서울대는 학기제라도 계약기간이 6개월이다. 경희대 안에서 이 4개월 계약서로 인해 생기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학사일정에 맞춘 계약 기간 외에는 방학이 되면 도서관 이용도 제한되고 학내전산정보시스템에 접근하는데도 문제가 생긴다. 수강했던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려고 해도 시스템에서 차단되어 종합정보시스템 상의 메일 전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비번이 사번으로 등록되어 있는 교내 와이파이도 7월 1일, 1월 1일이 되면 정확히 다시 ‘게스트’로 떴다. 주차권도 예전에는 수업이 있는 날 종일권으로 나오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딱 수업 시수만큼만 나온다. 강의만 하고 가라는 것이다. 사소한 불평불만 같지만 실은 이런 것들이 교권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을 무슨 학교에 껌 팔러 오는 사람 취급을 하니.” 이런 모든 것이 다 강사들은 이 대학의 ‘국외자 신분’임을 매순간 각인시켜 주는 촘촘한 차별의 사례들이었다.
이런 문제들이 왜 이제야 수면에 다 떠오르게 된 것인가? 의아했다. 같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문제였음에도 지금껏 혼자만의 토로로만 그쳤던 것은 아마 그것을 사회적 문제로 비춰줄 ‘동료’라는 거울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사체든 공동체든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다시 사회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 한국 사람, 지식인, 연구자, 교육자 등의 존재에 대한 자기 규정 속에 ‘시간 강사’라는 의식이 미미했던 것은 나 자신의 기만과 더불어 시간 강사가 교수나 교사와 달리 자기의 사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도 기인하는 것이다. 교수 사회는 있어도 강사 사회는 없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나에게는 ‘시간 강사’라는 동료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강의동 복도에서 마주쳐 낯이 익은 선생님이라도 누가 교수이고 누가 시간 강사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 강사들은 강의가 있는 날에만 나오고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가 버리니 교류 자체가 쉽지가 않다. 장소의 문제만도 아니다. 다들 바쁘고 다들 정신이 없으니 남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어디 있으랴. 다음 강의, 다음 회의, 다음 일정으로 다시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게 흩어 놓았고, 흩어져 있는 존재. 오직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존재. 시간 강사는 그래서 그동안 ‘집단’이 되지 못했고, 대학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했고, 학내의 정치적 세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강사에 대한 차별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수업이 이루어지는 7층 규모의 종합강의동에 교ㆍ강사휴게실이 딱 하나다. 그러나 소파 몇 개와 오래된 컴퓨터 세 대, 프린터조차 없는 이곳은 강의를 준비할 수 있는 곳도, 학생들과 면담을 할 수 있는 곳도, 강사 모임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교ㆍ강사 휴게실 한구석에 있던 ‘커피믹스’는 언젠가 ‘비용’ 때문에 사라졌다가 이번에 강사 처우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복구’되었다. ‘비용’ 때문에 사라진 건 커피믹스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비용’을 이유로 행정실에서 수업 자료 복사가 금지되었다. 전에는 복사 대장에 날짜와 이름, 수업명, 자료명, 복사 매수를 기재하고 행정실 복사실에서 복사를 했다. 행정실 복사가 금지되어도 전임 교수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과에 복사비가 배정되어 있기도 하고, 전임에겐 무엇이든 ‘부탁’할 수 있는 ‘조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과목에 월 60만원 남짓 받는 강사가 수십 명 학생들에게 나눠 줄 수업 자료를 개인적으로 복사해서 사용하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자신이 ‘비용’이거니와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다 ‘비용’이라는 것을 매순간 모멸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애정이 생길 수가 없다. 최소한 교육자에 대한 예우, 아니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일들을 입 다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거나 인정해서가 아니다. ‘좀스럽고 더럽고 치사해서’ 그랬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런 ‘차별’들을 말하기 시작하자 ‘하하, 아니 그런 걸 갖고 그래요’ 하고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더 중요한 학교 내규나 강사법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조언도 들었다. 정치적,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개인의 불만과 사적인 요구 사항으로 치환하는 논리는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여자가 왜 커피를 타야 하나요?”라는 항변이 결코 개인의 히스테리가 아니듯이 언제나 사소한 일상의 차별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보여 주는 법이다. 당신들에겐 ‘그냥 얘기해서 고치면 되는 일’을 요구하는 것조차 다른 어떤 이들에겐 ‘참 좀스러운 사람들’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차별’이라 하는 것이다.
식민지의 교수들
“무전사가 다른 배들끼리 주고받는 무전을 엿듣고 그 어획량을 일일이 감독에게 알렸다. 그것으로 이쪽 배가 아무래도 뒤지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독이 안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은 즉각 몇 배로 증폭되어 어부와 잡부들을 압박해왔다. (……) 감독과 잡부장은 일부러 ‘선원’과 ‘어부, 잡부’ 사이에 작업 경쟁을 부추겼다.”
- 코바야시 타끼지, 앞의 책
이제 나는 왜 해고되었는가에 대한 마지막 답을 할 차례다. 여기에 대한 답은 대학 강사가 왜 이런 식으로 해고되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대답이기도 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강사 대량 해고 사태. 이것이 그냥 한 대학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은 아닐 것이다. 그 뒤에는 교육을 시장화하고 대학을 기업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거대 기획이 존재한다. 왜 지금 대학들은 가장 값싼 비용의 강사들을 해고하고 있는 것인가?
게 가공선의 작가, 코바야시 타끼지는 마지막 부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은 식민지에서 자본주의 침략사의 한 페이지다.” 게 가공선은 그냥 배 한 척이 아니라 ‘식민지’였다. 선상에서 일어난 일들은 자본에 침략당하는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자본의 지식 하청업체로 전락한 오늘의 대학에서 대학 기업화에 반하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 기치가 무색하리만치 뼛속까지 기업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의 식민지, 자본의 식민지가 된 대학, 우리는 식민지의 교수들이었다.
사실 ‘시간 강사’라는 존재 자체가 식민지 지식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존재다. ‘시간 강사’란 법외 존재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하에서 탄생한 신분이다. 원래는 교원이던 대학 강사들에게서 법적 지위를 박탈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노린 것은 비판적 소장학자들의 입을 막고 대학의 교수 사회를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나누어 분리 통치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인들과 똑같이 일본 본토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인은 ‘강사’ 이상이 될 수 없도록 했던 일제의 식민 통치 전략과 똑같다. 현재의 대학 강사란 존재는 이렇듯 오늘의 대학이 품고 있는 유신의 치욕을 증언하는 존재이며, 자본과 국가가 요구하는 지식과 인간을 생산하는 게 가공선, 식민지 대학의 2등 시민인 것이다.
대학의 2등 시민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비정년 트랙’과 ‘계약 임용직’이라는 방식으로 대학 교원의 임용 방식과 구조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각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원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2013년 기준 전국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 비율은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➋ 대학 교원의 비정규직화가 왜 문제인가? 비정규직화는 대학 교원의 신분 불안정과 고용 불안정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학 교수라 하면 교수이거나 강사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의 교수들은 임용 계약 조건에 따라 교수들을 정년트랙(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비정년트랙(객원 교수, 연구 교수, 강의 전담 교수), 시간 강사로 촘촘히 찢어져 있다. 정년이 보장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정년트랙이냐 비정년트랙이냐에 따라 계약 조건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를 파괴하고 교수 사회를 신분제적 위계 사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학 평가를 통해 대학과 대학이 경쟁하게 만들고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교원들끼리 경쟁하게끔 만들어서 이 전략은 게 가공선의 아사까와 감독이 선원과 어부와 잡부들을 경쟁시키는 방식과 똑같다. 대학을 이렇게 각자도생의 전쟁터로 만들어 놓으면 물리적 억압이 없이도 공동체는 스스로 분열하고 파괴된다. 언제 바다 밖으로 던져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피억압자의 불만과 단결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과 사회 모두에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언제든 계약 해지 가능한’ 신분은 독재정권의 공포정치보다 더 대학의 정치적 학문적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
➋ 2013년 기준으로 대학 전체 교직 중 전임 교원은 38.4%에 불과하고 비전임 교원은 전체 교원의 61.6%다. 4년제 대학의 경우 41.1%가 전임 교원이며, 비전임이 58.9%를 차지한다. 전문대는 71.2%가 비전임이다. 비전임 교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 강사로, 40.8%(8만 1,300명)로 전임 교원(7만 6,380명)보다 오히려 그 수가 더 많다. 대학 교수들 중에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훨씬 더 많은데 그중에서도 6개월 미만의 초단기 비정규직인 시간제 강사가 가장 많다. ‘대학 교수’란 말을 통상적인 의미에서 사용하자면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 시간 강사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4년제 대학의 시간 강사 평균 연봉은 650만 원, 겸임 교수 연봉도 854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4년제 대학의 전임 교원인 교수, 부교수, 조교수의 평균 연봉은 각각 9,148만 4천 원, 7,425만 9천 원, 5,272만 9천 원이다. - 이상룡,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문화과학》 통권 82호, 100~121쪽 참고.
여기서 강사들은 제일 먼저 배 밖으로 던져질 존재들이다. 아니 이미 정리될 만큼 정리되어서 지금 대학에 남아 있는 강사들은 거의 최후의 강사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조차 대학으로선 달갑지 않은 존재들이다. 왜냐면 강사들을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11년 발의되어 세 번이나 유예된 소위 ‘강사법’이다. 대학들이 강사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비용의 문제보다 강사들의 교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 그 자체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지금처럼 함부로 해고, 맘대로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사가 ‘언제든 해고 가능한’ 신분에서 ‘쉽게 해고할 수 없는’ 신분이 되는 것이다. 노예가 시민권을 얻는 격이니 대학으로선 두려운 일이고 강사 입장에서는 가장 큰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각 대학들은 선제적 예방적 조치로 강사들을 해고했던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이번 해고가 강사법이나 대학 구조 조정과는 무관한 것이었다고 적극 부인했다. 우리는 도리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강사법 대응도 아니고 대학 구조 조정도 아니라면 그러면 도대체 왜 잘랐느냐고. 의도하지 않고서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40명, 60명씩 자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강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며, 강사법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쉽게 자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이번 해고는 ‘강사법’과 관계없는 해고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대학이라는 이 게 가공선은 현실의 거대한 모순을 드러내는 장으로 보아야만 하며 강사 해고 문제 또한 생계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육, 학문, 정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첫째, 노동의 조건은 교육의 조건이다. 강사의 노동 조건은 학생의 교육 조건과 직결된다.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분으로 지금 가르치는 교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학생들과 강의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겠는가. 강사가 해고된 자리는 결국 전임과 객원 교수들이 떠맡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에게 강사들이 해 오던 강의 시수와 기타 잡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경희대의 경우 강사 해고와 더불어 2016년 전임 책임 시수가 연간 12학점에서 15학점으로 늘어났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도 늘어난다. 강의실은 콩나물 교실이 된다. 이는 부실 교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의 조건은 학문의 조건이다. 생계와 생존의 안정이 없이는 제대로 된 학문적 삶이 가능할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자기 본연의 연구 주제를 상실하고 점점 자본과 국가의 용역업자가 되고 대학은 지식 하청업체가 되어간다. ‘연구중심대학’이란 미명 하에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연구 용역이 주가 되고 자기 연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대학 강사와 대학원생들은 프로젝트 하청 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저임금 착취를 당하는 존재다. 열정 페이의 노동 착취를 하면서도 연구 지원금이라 하고 장학금이라 하고, 그런 자리를 무슨 벼슬 주듯이 ‘하사’한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셋째, 그래서 노동의 조건은 정치의 조건이다. 자신의 일터와 삶터에서 노예인 자가 도시에서 시민일 수 있는가? 총장과 학장의 눈치를 보면서 권력자와 봉신 관계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 공동체에서 자유로운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재계약 재임용의 목줄이 동료 교수에게 있는데, 그의 입장에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전임 교수와 학교 행정 당국자가 강좌 개설권을 독점하고 비정규직 교원의 생존과 생계를 좌우하는 잣대를 쥐고 있는데 학교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과 방향에 반대하거나 비판할 수 있겠는가? 강의 평가 점수 한 번에 해고가 결정되는데 강의실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정치적 소신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학은 완전히 소수의 지배Oligarchy 하에 떨어지고 민주주의는 오직 ‘강의실’에서만 배울 수 있는 죽은 교육이 될 것이다.
지금 대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현장들 중의 하나다. 그 한가운데 ‘대학 강사’라는 모순의 존재가 있다. 역사가 증명해 보였듯이 모든 혁명에서 가장 낮은 이들의 해방은 만인의 해방의 전제 조건이다. 가장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자리가 해방구가 될 장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강사가 더 많은 권리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얻게 될 때, 그것은 대학 사회 전체의 정치적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오랫동안 대학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장소’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사라진 정치의 장소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대학을 탈정치화 하는 것. 그곳을 오직 순수한 강의와 순수한 학문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 것. 그것은 대학을 죽은 지식들의 박물관으로 만드는 일이었으며 사회 비판과 자기 혁신을 통해서만 존립 가능한 학문의 생명력을 거세하는 일이었고 배움을 한없이 무력화하는 통치의 기법이었다. 이‘잃어버린 정치의 장소’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식민지의 교수들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실천적 반성문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내 편이 없어.”
다시 게 가공선이다. 사실 해고를 당하고 내가 제일 좋았던 것은 강사 모임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고 함께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대학 강사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자각을 통해 다시 사회적 의식을 키워 나가는 과정. 서로 배움과 상호 성장의 보람을 대학 동료들 사이에서 참 오랜만에 맛보았다. 몫이 없는 자, 목소리 없는 자들이 자기의 몫과 목소리를 찾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대학이 한때 가졌던 정치와 민주주의 부활이었다. 대학 선생인 우리에겐 그게 ‘공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 근로기준법과 고등교육법을 공부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좌 개설 현황을 연도별로 분석했고 다른 학교의 강사 근로계약서와 강사 인사관리규정을 찾아 조사하고 비교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했다.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설명해 주면 누군가는 ‘실업급여’ 수급 경험을 알려주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고 학생들한테 가르쳐 왔건만 듣고 보니 내가 딱 그 ‘잠자는 이’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했는지 부끄러웠다. 동료의 강의가 없어졌을 때도 개인적으로 안타까워만 했지 부당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았던 나였으니,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처럼 이번엔 그것이 내 순서로 온 것일 뿐이었다. 하기야 나도 강의 없어진 것이 어디 이번 한두 번인가. 2년 계약직 연구원을 그만둘 때도 ‘실업급여’는 생각도 못 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입으론 말하면서도 의식은 나태했던 것이다. 그랬던 지난날을, 함께 모여 이야기해 나가는 과정에서 깨트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몰랐던 진실, 외면했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그건 마치 바다 위의 안개가 걷히고 풍경이 드러날 때처럼 사태를 바라보는 자기 안의 모호함을 몰아내면서 안도감과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도 반성해야 했다. 해촉이니 강의 미의뢰니 미개설이니 하는 부정확한 용어를 통해 노동 관계를 교묘히 숨기는 데 일조한 것은 학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자신도 고용보다는 위촉이나 의뢰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위촉이나 의뢰 같은 허깨비 말은 허깨비 같은 지위를 그럴싸하게 보여 주는 것일 뿐임에도, ‘고용’이나 ‘해고’가 지시하는 대상, ‘노동자’이기를 우리 자신이 거부했던 것인지도.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도 질문을 해야만 했다. 정말 ‘해고’가 맞는 거예요? 왜 부당해고인 거죠? 다들 바보들이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가방끈 긴 바보들. 우리는 꼭 전태일의 ‘바보회’ 같았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아무것도 아닌 너희들을 배에 태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일까지 시켜 주고 돈도 준다”라고 윽박지르는 감독 아사까와의 서술을 뒤집어 게 가공선의 바보들은 마침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부와 화부 없이 배는 없다.” 후마니타스호의 바보들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배가 흔들린다. 처음 겪는 소란과 동요는 두렵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처음 주목을 받고 상대로부터 점점 그 존재감이 커져감을 깨닫게 될 때, 자부심도 느끼지만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도 느낀다. 우리도 그랬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바람이 되고 우리가 배를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을. 어부와 화부 없이 배는 없다는 것을.
‘강사 하나쯤, 너 하나쯤.’ 나는 지금 이것과 싸우고 있다. ‘너 하나 쯤’이 아니기 위해서. 그 누구도 ‘너까짓 강사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그런 일이 무수히 일어나는 게 가공선에서, 이 배를 떠나면 망망대해의 현실에 빠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누구도 쉽게 저항하지 못했던 이 대학에서, 그 ‘사소한 부당함’에 온 삶을 걸고 ‘하나쯤’이 아닌 ‘하나뿐’인 인간으로 자기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어쩌면 거기서 시작하는 저항이야말로 학문 세계의 식민화에 맞서는 일이고, 식민지에서의 해방 투쟁의 시작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제부터 제대로 반성문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는지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내 문제가 아닐 때, 동료들이 해고당할 때 그냥 넘겼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라고 하는 이름이 문화 자본이 되었을 때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렸다. 사실 나도 공모자의 일원이기도 했다. 내부 비판이나 성찰의 과정에서 치열하지 못했던 책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반성문을 쓸 것이다. 무너지는 대학 앞에서. 괴물이 된 대학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이 가장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지금 여기 이 공간 안에서, 함께, 발언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이름 앞에 달았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적‧비판적‧인문적 반성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