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절망함, 잘 망함
희망 고문 무한루프
교대 권했던 속사정
김수현
경기 광명 광휘고, 본지 편집위원
ee97002@naver.com
학생인권 관련 일에 기웃거리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깨닫고 성공회대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만 공부가 장기화된 탓에 남들은 박사를 하고 있는 줄 압니다. 요즘은 《오늘의 교육》이 지면을 빌려준 덕분에 교육에 대한 날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벗들에게 문제 하나. 다음 글의 밑줄 친 ‘그들’이 누구인지 자유롭게 상상해 보시라.
그들은 청춘의 분출하는 열정을 쏟을 사랑의 대상도, 순수한 열정을 투사할 대상도 가져 보지 못한 채, 닭장에 갇혀 모이만을 쪼아야 하는 닭들처럼 오로지 점수만을 높이기 위해 갇혀 있다가 괴물스런 존재가 돼 버렸다.
- 목수정, 〈미디어 오늘〉 인터뷰(2013. 6. 8)에서
나는 ‘수험생’을 떠올렸고 주변 지인들은 ‘고3’ ‘재수생’ ‘취업준비생’이라 답했다. 정답은 ‘일베충’이다. 혐오를 양산하는 극우 누리꾼과 고단한 수험생과의 연결이 너무하다 싶다면 문제를 다시 읽어 보시길. 비유와 대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벨(1~25단계) 욕심내며 자극적인 것을 찾는 일베나 20여 개 인서울 대학 앞 글자로 시가➊를 지어 찬미하고 수능이 아니라 수시나 지역 균형,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준비하면 ‘수시충’ ‘지균충’ ‘사배충’으로 구분 지어 부르는 대입 카페나. 참 닮았다. 다만 수험생은 일베만큼 노골적인 표정을 짓지 않을 뿐.
➊ 瑞蓮高 西星瀚 (서연고 서성한) 상서로운 연꽃이 높이 올라 서쪽 하늘의 큰 별이 되는도다 衆敬畏視 東乾虹 (중경외시 동건홍) 사람들이 경외하여 바라보니 동쪽 하늘에는 무지개로다 國崇世壇 (국숭세단) 온 나라가 이를 받들고 세상이 제사를 지내니 光明祥加 韓栖森 (광명상가 한서삼) 밝은 빛과 상서로움이 한국의 산하에 깃드는구나
계급화된 재수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생이 윤리교육과에 진학하면 어떨지 물어 왔다. 윤리를 재밌어했고 사회 과목 전반에 적성과 적당한 정의감이 있는 학생이라 괜찮은 결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점수로는 S대(지방 사립)에 진학해야 해서 재수하고 싶단다. 임용 시험을 봐서 교사가 되는 것이니까 대학은 관계없다 하니, 학생이 말문을 연다. “샘. 같이 강남 청솔(재수학원) 가시죠?” “나도 재수해?”라고 묻자 자신의 지론을 편다. 지잡 S대 나와서 교사 된 사람 찾아봤더니 다 40대 중반 이상이다. 고로 임용 합격 확률이 없다. 누나도 재수해서 E대에 다닌다. 선생님은 웃겨서 재수학원 가면 뜰 스타일이다. 공무원 월급 받으면서 교장하고 갈등하지 말고 인강(인터넷 수능 강의)해서 짧고 굵게 버시라 등. 학생의 주옥 같은 칭찬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생각했다. 사범대도 대학 이름이 중요하구나. 내가 지방대 나온 걸 알고 나를 칭찬하면서도 대학 이름 때문에 재수를 선택하는구나.
수시 합격자 발표 전부터 고3의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왔다. 재수? 지랄에도 때가 있고 사랑할 시간도 부족할 20대이다. 군복무에다 불 보듯 뻔한 취업 휴학(또는 취업 재수)까지 하는 마당이다. 나는 다 떨어졌거나 특수목적대➋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입 재수하는 시간은 아깝다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겨우 몇 년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선 제자들의 재수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비평준화 시절 비선호 일반고라, 주변 지역(안양, 의왕) 고교와 관내에서 전문계고까지 모두 탈락한 학생들이 모이기에 빈곤과 중도 탈락이 문제였다. 수능은 응시하지만 수험생 할인을 위한 수험표가 필요했을 뿐 응시생도 매우 적고, 수능 점수를 활용하는 학생은 (거의) 못 봤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 큰길 하나 건너, 평균 성적과 소득이 조금 높아진 이 학교에선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온다. 우리 학교만 그런가 싶어 주변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하나같이 늘었단다.
➋ 교과부의 대학 정보 공시 자료 의예과 중도 탈락에 따르면 2008년 지방 사립 2,482명 중 67명이 자퇴(미복학 포함), 서울 사립 852명 중 13명, 서울대는 0명이다. 연쇄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교육과정평가원의 10년 치 수능 응시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이 입시 제도가 큰 폭으로 바뀌었던 2008학년도➌를 제외하곤 재수생 비율이 21~23%(약 13만 명)로 비슷했다. 문제는 재수가 철저히 계급적이라는 점이었다.
➌ 수능 문제를 고교 교과 내용 안에서 출제하고 학생부 비중을 강화하는 정책 변화로 “학생부 성적을 바꿀 수 없는 졸업생들은 하향 안정 지원의 추세를 보여 재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자 제도에 적응한 재수생이 또 늘어났다.
2015학년도 대수능 응시자 중 고3 수험생 대비 졸업생(재수·삼수 등) 비율은 전국과 서울에서 각각 26.5%와 49.6%로 나타났다. 서울은 재학생 수의 절반(49.6%)에 이르는 졸업생이 다시 수능을 봤으며, 강남 83.5%, 서초 71.3%, 양천 57% 순이다. 강남구는 재학생 대비 재수생 수능 응시 비율이 2013년 79.8%에서 작년 78.8%, 올해 83.5%로 증가세며 휘문고·중동고 등 자사고에선 졸업생 응시 비율이 고3 학생 수보다 많았다.
- “再修 부르는 ‘물수능'…… 강남 재수생 비율 83%”, 〈조선일보〉 , 2015년 8월 24일
경기 지역 기숙학원 비용은 한 달 평균 220만~250만 원 선에, 3개월마다 20만 원의 교재비가 추가된다. 이과이거나 논술 강좌를 신청하는 경우는 더 비쌌다. 숙식과 교육, 생활지도가 포함된 비용이라 해도 일반 가계에는 큰 부담이다. 전년도 12월부터 11개월 동안 등록한다고 치면 총 2,500만~3,000만 원 비용이 든다. 사립대 4년 등록금과 맞먹는다. 일반 재수종합반 학원에 다녀도 1,000만~2,000만원 들어간다.
- '재수는 필수? 나라가 망한다!’, 《주간동아》 1005호(2015년 9월호)
광명시만 해도 아파트 평당 가격이 1500만 원이 넘고, 서울 및 수도권에서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나와 지인들은 이미 기득권이다. 따라서 ‘재수가 늘었다는 느낌’은 먹고 살만한 정도 학생의 재수 비율을 체감한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재수만? 입시는 원래 계급적이다
나는 일반고에 근무한다. 학생들은 , 자사고와 특목고 학생들과 경쟁해 수능 등급을 얻어야 하는 정시는 거의 접고 수시로 한 방에 끝내고 싶어 한다. 수시 : 정시 비율이 7 : 3정도이고 학생부는 3학년 1학기까지만 반영된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수시 원서를 쓰고, 11월에 있을 수능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반고 기준 한 학급 당 10명도 안 되는 것 같다. 수시에서는 교과 내신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므로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이른바 ‘스펙’이라 불리는 다양한 활동들도 들어가기 때문에 2학년 때까지 만들어 놓는다. 덧붙여 보자면 수시는 주로 학생부(교과+비교과) 중심으로 자기소개서, 면접, 논술, 적성고사 중 1~2개를 결합하거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능 시험 성적(최저등급)을 맞추면 합격이 확정된다. 대학 전형 방식은 복잡하고 전공은 대학 홈페이지만 봐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은 대입 원서 작성 컨설팅을 받는 일이 이미 만연하다. 혹여 대학에 거슬리는 문구가 있을까 교사들에게 학생부 수정을 요구하다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반고에서도 가끔 입시 컨설팅을 받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발견된다. 그래도 대부분 고만고만한 일반고 학생들은 담임교사(또는 평소에 친한 교사)와 상의한다. 수시의 복잡함으로 업무 분장 아닌 업무 분장이 돼 버렸는데 주로 고1~2학년 담임은 학과에 맞는 학생부의 비교과 영역(스펙)을 채우기 위한 학교 활동을 관리하고, 고3 담임은 진학 가능한 대학이나 학과를 가늠하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돕는다. 학생부를 잘 채워 점수에 딱 맞춰 대학에 합격하길 바라는 학생들은 담임들을 잘 만나길 바란다. 비록 내 경험치에 불과하지만 담임으로 선호하는 유형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고3 때 선호도가 높아지는 일명 ‘잡도리형’이다. 특성은 이렇다.
1). 고3 경험이 비교적 많아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부(결과)를 분석해 최상의 길(합격 가능한 대학의 최대치)을 찾아 준다. “문․사․철학과로 일단 입학해서 전과(또는 복수전공)해라” “이 점수대에는 ○○대 (불)합격한다” 같은 말을 자주한다. “점수가 남지 않게 문 닫고(추가 합격) 입학시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 무슨 과는 추가 합격 0번까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신기神氣를 발휘했던 경험을 학생들에게 자주 홍보한다.
2). “이 새끼들아, 앉아서 팬티가 썩도록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떠들어?” “도서관 불 켜고 들어와서 불 끄고 나가야 인서울 한다”➍ 마치 전장의 장수나 극기 훈련장 조교의 태도로 정신 무장을 강조한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된다”며 공부의 절대 시간을 중시하고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각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도 학교에 매우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며 주로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선호한다. 학생들과 같이 늦게까지 있어 그런지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한다.
➍ 실제 지인들에게서 들은 표현임을 밝힙니다.
3). “1학년 때 반장했으니까 이번에도 반장(또는 학생회장)해라. 2년은 해야 수시에 도움 된다” “이 학과를 가려면 이런 책이 독서 상황란에 기록되어야 해” “입시 설명회 가라, 대회 나가라, 직업 특강 소감문 내라” 학생부를 분석하고 부족한 면을 찾아 실행하도록 계속 주의를 주고 꼼꼼하고 길게 학생부를 기록한다. 여기에다 독단적인 성격까지 플러스되면 마치 악덕 연예 기획사 대표 같은 말투로 “네가 이렇게 하면 학생부에 나쁘게 기록한다”는 말로 옥죈다.
잡도리형의 특성 중 두 가지가 결합하게 되면 학생들로서는 매우 가혹한 고3 생활이 된다. 그런데 상위권일수록 잘 견디고 고3 담임 잘 만났다고 좋아하거나 인격 모독 정도는 가볍게 참고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한다. ‘대학 가면 다 잘 될 것이다’이라는 희망으로. 그 인내의 결과로 대학 정원으로 봐도 상위 10% 이내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일반고에서는 최상위권이었던 이 학생들, 즉 금수저가 아닌 동수저쯤 되는 동네 똑똑한 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잡도리형’ 담임을 거친 동수저들
나름 명문대라 경영학과 30명 중에 저같이 일반고 나온 학생들은 10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강남 출신만 대충 10명은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이 많고 재수생도 많고 외국에서 살다온 애들은 7명이었어요. 일반고 나온 애들도 저 빼고 다 강남 학원 가서 공부했대요. 우리 학교에서 저는 경영학과, ○○이는 신문방송학과에 수시로 입학했고 수능을 사실 잘 못하잖아요. 저는 영어 3등급, ○○이는 4등급인데, 영어 강의 때도 힘들지만, 영어는 예상은 했어요. 교양으로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하는데 일본어랑 중국어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대서 스페인어를 골랐어요. 그것도 살다 온 애, 전공한 애가 있었어요. 입학 전부터 부자들이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요. 저 이번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일본 여행가잖아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1년 동안 했고 엄마한테 좀 보태 달라 할 거고요. 일본은 비싸서 저렴한 숙소 찾고 맛집도 저렴한 곳 찾고…… 여행 책 보면서 하루에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계획만 한 달 넘게 세우고요. 근데 저희 과에 저번 여름방학 때 자기는 갈 마음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유럽 항공권, 호텔 다 예약해 놨다면서 한 달 다녀오라고 해서 갔다 온 애가 있었어요. 만족도가 뭐랄까, 일상 같은 표정이었어요.
- 대학 1년, 여
전 유치원 때 아버지 회사 일로 중국에서 살고 그래서 국제학교에 조금 다녔어요. 그래서 특기자 전형하고 특례 입학 넣었는데 오래 살다 온 애들이 너무 많아서 수시는 다 떨어졌어요. 내신도 안 좋고 정시로 수능 봐서 왔어요. 원래 중국어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점수가 안 돼서 동남아시아 언어를 전공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론 정부 초청 장학생도 되고 언어도 재밌고요. 3개 국어(중국어, 영어, 마인어)를 할 줄 아는데도 취업이 걱정이에요. 카페베네 인도네시아 지사에 취직하고 싶어서 카페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한국보다 나가서 살고 싶어서 해외 영업 쪽만 원서 넣으려고요. 고등학교 선생님도 교수님도 마인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 사용하는 인구만 4억이라고 그러시는데 학과 취업률이 너무 낮아서 걱정이에요. 예전에 마인어로 1~10까지만 세면 다 취업됐대요. 회사 면접관도 몰라서. (웃음) 저 같은 경우는 대학도 전공도 다 맘에 드는데 대학마다 있는 학교 운영 제도를 잘 봐야 할 것 같아요. 평범한 사립대는 모르겠지만 외국어대라 그런지, 저희 학교는 무조건 복수 전공을 해야 하고 그중 하나는 무조건 언어를 해야 해요. 저처럼 외국어가 잘 맞으면 좋지만 경영학과로 입학했는데 복수 전공 때문에 재수한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언어를 집중 포화시킨달까. 근데 재수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웃음)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더 힘들잖아요.
- 대학 4년, 여, 2년 휴학
제 대학 선택 기준은 ‘인서울, 언어(수능 국어)를 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언어는 고3 담임선생님이 제가 어려워하고 오를 것 같지도 않으니까 2학기 시작엔 아예 포기하라고 하셔서 포기했어요. (웃음) 광명이 비평준화 시절이라 저희 학교(중학교에서 학급 1~3등 정도까지 입학하는 학교)가 잘하는 학교잖아요. 내신도 안 좋고 정시로 수능 봐서 전체 평균 2등급으로 왔어요. 지금 공대에 다니지만 전 원래 자연과학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땐 솔직히 차이를 몰랐어요. 화학교육과나 수학교육과에 가고 싶었고 인서울 사범대는 너무 높고. 공대는 자연과학을 기초로 응용하는 공부라고 생각해서 수학, 과학을 잘했으니까 괜찮겠지 했어요. 그런데 배울수록 뭐랄까. 너무 어렵고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계속 들고요. 저희 학교는 공학이 강점인 학교니까 복전(복수 전공)이나 전과할 전공도 마땅히 없고 공대 공부가 벅차서 생각을 안 해 봤어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없진 않지만 집안 형편상 학교(사범대나 교육대학원)를 또 다닐 여건은 안 돼요. 이번 등록금이470만 원이에요. 원래 490만 원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할인해 주더라고요. 얼마 전에 학교에서 하는 취업 설명회를 다녀온 후부터 사범대에 가지 않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더 들어요. 말이 대기업이지 공장들이 다 지방, 그것도 여수, 마산,창원, 거제도…… 서울에 있는 대기업 본사는 공대 출신이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대학 와서 알게 된 거에요. 차라리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사범대를 가서 4년 다니고 선생님처럼 서울이나 경기도에 임용 시험 봤으면 평생 여기서 사는 건데. 겨우 4년 여기서 다니고 평생 지방 공장에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나름 공대라서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회사 생활 해도 별로 안 기쁠 것 같아요. 지거국 사범대는 인서울 만큼은 아니어도 점수가 높지만 지방으로 갔다는 게 나쁜 것 같았어요. 지방에 사는 학생이 서울로 대학 오면 성공한 것 같고 여기서(광명시) 지방 가면 막연히 실패한 느낌이요. 목표가 있어서 지방으로 가도 대학 이름부터 남들한테 말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학교 다녀 보니까 여기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 아세요? (웃음) 어쩔 땐 더 걸리고요. 다른 경기도 사는 애들은 자취한다니까요. 휴학해서 아르바이트하고 돈 모아서 토익 학원 가고 여행도 가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지냈어요. 곧 복학인데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토익 공부하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 대학 3년, 여, 1년 휴학
광명이 비평준화 시절이라 학교 자부심 때문에 눈은 높아져 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왔어요. 물론 평소 모의고사 성적도 기대보다 별로였죠. 근데 수능 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고 까 보니까 아닌 거죠. 담임선생님이랑 상담해도 딱 맞출 수 없으니까 현역 때 세종대 최종 불합격 통지 받고 재수했어요. 이과 1/2은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한 대학을 못 가겠다 싶으면 재수 했고요. 친한 친구들 7명 중 5명이 재수했고 4명은 어느 정도 만족은 되는 학교에 갔어요. 재수해서 서울대 자연대, 울산대 의대, 성균관대 공대, 홍익대 공대 이러니까요. 공대가 취직이 잘 된다고 해서 갔는데 처음에도 안 맞는다 느낌은 있었지만 배우다 보면 되겠지 싶어서 노력했어요. 그래서 심화될수록 즐겁지가 않고 전 그나마 성적이 괜찮아서 경영학과로 전과했죠. 저희 학과 이름에 ‘시스템 디자인’이란 말이 들어 있어서 패션인 줄 알고 갔는데 공대니까 기계 설계인데 그걸 모르고 온 애도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심각해요. 저도 뭘 배우는지 모르고 갔고요. 재수에 전과에 휴학에.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휴학하고 캐나다에 어학 연수 갔을 때 외국 고등학생들은 3시에 끝나고 다 집에 가요. 저는 야자하느라 재수하느라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대학 와서 군대 가서 시간이 나서 생각도 많이 해 보고 전공 공부하다 보니까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데 내 스스로 나를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스물여덟 살이 돼 버렸어요. 졸업 유예 했으니까 아직 4학년인데 스물여덟 살이고, 이 나이에는 맞게 뭘 해야 하는 그런 것이 한국 사회에 있는데 부담스러워요.요즘 대학생들 다들 휴학하고 스펙을 쌓느라 그렇다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그게 아니에요. 대부분 그냥 하는 거예요. 졸업하면 이제 못 쉰다 하니까요. 대단한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고요. 졸업 유예도 걸쳐 놓는 것에 불과하죠. 토익 때문에 휴학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거 맘먹으면 금방 하거든요. 그런데 휴학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쉴 때 놀아도 노는 게 아니라서 스트레스 받아서 피곤하기만 했어요. 자기 조절이 어렵다고 해야 하나. 스터디 코치 아시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요. 재수하면서, 요즘엔 취업 공부를 많이 하니까 시험 같은 건 스스로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할 수 있게 됐는데 이걸 고등학교 때 배웠어야 했어요. 얼마 전에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일본 영화를 봤어요. 바닷가 마을에서 삶을 소소하게 즐기는 그런 얘기예요. 저는 항상 바쁘게,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살았는데 부러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평생은 못 살 것 같아요.
학벌이 높아지면 취업이 쉬워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대기업 취업률 통계가 말해 주니까요. 학벌은 여태까지 열심히 살았는가에 대한, 누가 더 성실하구나를 보여 주는 것 같아요.
대기업 상사 같은 곳에 취업해서 야근, 특근해서 젊을 때 돈 많이 모으고 싶어요. 대기업 금방 짤린다 하니까요. 장사요? 부모님이 숙박업소 같은 곳에 대는 물건들, 대형 휴지, 음료수 등등 그런 거 도매상 하시잖아요. 너무 변동 폭이 크다고 하나.창고에 있는 재고들을 보면 불안함이 있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못됐어요. 무조건 싸게만 사려고 하고요. 취업이 어려운데 중소기업이라도 가라 그러는 어른들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중소기업이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일의 양이 적고 그런 게 아니에요. 대기업처럼 일도 많고 힘들면서 복지도 없지 월급도 적거든요.
- 대학 4년, 남, 1년 휴학, 졸업 유예
상명대 국문과하고 저희 학교 붙었는데 옛날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왔어요. 졸업하고 취업은 쉽게 했어요. 교수님께서 추천해 준 회사고 집에서 가깝고 해서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하루 근무 시간이 12시간은 기본이었어요. 8시 30분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한 날도 많고 주 6일 근무에 처음엔 야근 수당도 없고 팀장들은 조금 늦게 출근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순 놀다가 2시쯤 일 시작하고, 사람이 부족한데 사장이 안 뽑아 줘요. 두 달째부터는 거의 매일 엄마 앞에서 울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제 위 바로 선배 언니들 두 명이 1년, 3년 됐는데 성격이 더러운 이유가 다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그러니까요. 언니들 두 명 다 결국 얼마 전에 그만뒀고요. 그런데도 사람을 안 뽑으니까 저는 더 힘들어지고 피부가 썩고 살찐 게 아니라 부은 거고 화장 다 뜨고. 월급은 130부터 시작하다 지금은 올라서 160 받고 야근 수당 받으면 좀 더 받는데 하는 일, 시간에 비하면 알바하는 게 더 나아요. 6개월 돼서 진짜 그만두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처음이라 그렇다1년만 채워 봐라, 경력으로 못 써먹는다고 어른들은 다 그래요. 저도 여기서 경력 쌓고 대기업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그리고 언니도 교육대학원 다니면서 임용 고시 공부하니까 내가 관두기 그렇고. 또 엉엉 울었어요. 새벽에 동대문에 택시 타고 실 사러 가고 공장에 독촉하고 울면서 다녀요. 대기업에서 오더를 주는데 생산 기한을 못 맞추면 옷값을 공장이랑 저희랑 다 떠맡아요. 딱 몇 달만 더 다니면 1년인데 그만뒀어요. 추석까지 다니면 보너스 나온다 해도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그만둬서 속이 다 시원해요. 헬스 다니면서 살도 빼고 짧게 여행도 다녀오면서 몇 달은 그냥 푹 쉴래요.
- 대학 졸업, 여, 휴학 ×
인서울(수도권 포함) 사립대에 다니고 부모가 규모 있는 자영업이나 정규직을 가지고 있고 30평대 빌라와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으며 형제자매는 공부 중이거나 취직해서 결혼했다. 동수저들은 재수를 할 수도 있고 힘들면 고민은 돼도 사직할 수 있고 사립대를 다녀도 대학 등록금은 부모가 감당은 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은 아니다. 가장이 실직했다거나 집안에 누가 큰 병이 걸린다거나 취업 실패가 거듭되면 까딱 흙수저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식 세대가 취업을 해야 계급이 유지되는 그런 상황이다. 불안하고 초조해도 상위권이었던 입시 결과 덕분에 취업을 위한 학벌이 마련돼 희망을 품고 준비 중이다.
교사들 중에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꿈을 찾기를 기다려 주는 분들이 있는데 그 자녀들이 부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 미술이나 영화 관련 꿈을 가졌던 나도 사실 그렇다. 그 문화자본이, 그 여유가. 떠도는 ‘수저 계급론’을 보니 교사 집단은 ‘동수저(간혹 은수저)’는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선 학생들이 대학이나 학과 선택같이 장래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해 봐. 언젠가 다 잘될 거야’라고 답하는 선생님들을 종종 본다. 내가 알기론 집안 형편이 어려운(또는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일때, 이렇게 답하면 뭔가 불편하다. 재능이 특별하지 않은 이상 가난하면서도 부유한 꿈을 꾸는 학생의 경우 부모에게 화가 나니까. 요즘 고등학교에선 실용음악과, 사진학과, 영상학과 열풍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만 학원비가 매우 비싸다. 게다가 담임과 부모의 사교육 잡도리를 거쳐 대학에 간 인터뷰 속 동수저 학생들도 취업 불안에 시달리는데 하물며 흙수저에게.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한 동료는 ‘가난한 지역일수록 야자를 많이 시키고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잘 챙겨 주는 잡도리형 교사가 더 입시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의도를 알기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진로 교육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거창한 것 같다. 가난 앞에 꿈을 말하는 낭만적 조언이 불편하면서도 내 한 몸 건사도 어려운 성품에 누굴 독하게 잡도리하지도 못하는데 어떤 진로 상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담. 나는 고작 ‘동수저 이하 상위권, 훌륭한 성품의 학생들에게 교대 권하기’로 방법을 정했다. 훗날 벗들이 발전시켜 주리라 믿으며 부끄럽지만 교대 권했던 속사정을 고백한다.
희망? 희망 고문!
“선생님은 직업 만족도가 참 높으신가 봐요?”
고2 담임을 하고 있을 때 들은 동학년 교사의 말이다. 남녀 불문 공부 잘하고 정의감이 있는데다 한 과목에 특별히 더 관심이 있으면 사범대, 손재주까지 있으면 교대를 권했으니까. 집안 형편이 흙수저인 경우는 더 강하게.
허허, 웃으며 넘어갔으니까 내 속을 모르셨겠지만 내 진로 상담의 의도는 여러 개다. 혁신학교니 수업 개선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학교 문화가 바뀔 것 같진 않으니까 싹수 좋은 신규 동업자가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은 것.그리고 정규직 교사가 되면 ‘동수저’가 되거나 유지할 수 있으니까. 특히 교대를 열심히 권했는데 외고 출신이든 살다 왔든 외국어 재주를 대단히 써먹을 일이 자주 없고 피아노나 체육도 극복할 만한 수준에다 과거보다 어려워졌다한들 무엇보다 이런 시기에 한 자릿수 경쟁률이다. 원래 사범대도 권했는데 요즘 임용 경쟁률이 최후의 인류를 뽑는 수준이라 재수, 삼수하는 일명‘견디는 비용’이 높아져 임용 공부를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유형에게만 살짝 권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장차 내 자식을 맡기고 싶다 하는 학생들은 교대 성적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았고, 합격권인 학생들은“학교에 갇혀 평생 애들하고 와글거리긴 싫다”, “창의적인 일 하고 싶다”면서 인서울 사립대 경영학과, 언론홍보학과, 광고영상학과에 가고 싶어 했다. “평생직장이 얼마나 될 것 같냐”, “교사가 얼마나 창의적어야 하는데”로 응수하다 “새벽까지 야근하다 대머리 되고 회식에 배 나오고 과로하고……”로 겁박도 해 봤지만 영업이 잘 안 됐다. 성적은 좋지만 어째 인간미가 없다 생각했던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교대를 선택해 잘도 가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주로 하는 희망 고문이 있다. 당해 본 벗들도 많을 것이다. “대학 가면 이성 친구 생긴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와 같은, 대학 가면 지금의 고민들이 모두 해결되니까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 나는 실제 술 마시다 남자 친구가 생겼고 깡술을 마시다 살이 많이 빠졌지만 다들 그러셨는지?
① 대학 가면 다 잘될 것이다 → 학생들은 고통스럽지만 참는다 → 대학 합격 → ② 인서울은 가야 취업 된다 → 재수를 하며 또 참는다 → 인서울 대학 합격 → ③ 명문대를 가야, 스펙이 있어야 취업이 된다 → 휴학, 졸업 유예하며 반수, 취업 ○종 세트를 준비하며 또 참아 본다. 이번이 끝이라는 심정으로. 취업하면 과연 끝일까? 짜잔~ ④ 열심히 일하면 승진한다가 기다린다. 그리고 ⑤ 또. 또. 또. 또…….
‘희망 고문’ 무한루프! 잡도리형 교사들은 희망 고문 루프 속에 살면서 ‘희망 고문’을 진짜 ‘희망’으로 믿고 학생들의 진로를 열심히 모색한다. 나는 희망이 아니라 희망 고문인 걸 알면서도 정작 학생들에게 ‘희망 고문 무한루프’에서 벗어나자는 제의는커녕 ‘희망’이 아니라 ‘희망 고문’이라는 말조차 잘 못 꺼내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에 희망 고문 무한루프 안에 편하게 사는 실용만을 가르친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입시 경쟁을 잘 시켜 그게 고민이라는 혁신학교 선생님들과 비슷한 고민이다. 고3을 만날 때 더 그렇다. 내 특기를 살려 서바이벌 프로그램 PD로 빙의해 대학이 원하는 더 간절한 사연을 더 정교하게 담은 자기소개서를 뽑아 대고 있다. 학생의 온갖 학교 활동, 가난,불우한 가정사 그리고 대학(또는 학과) 선택의 사연을 쥐어짜 처절하게 연출하고 학생에게 수십 번 퇴고를 시켜 짠한 ‘자기소설서’를 만들어 낸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철저히 파악시키는 일은 이때뿐인 셈이다. 내가 지도한 ‘자기소설서’가 많아질수록, 손가락에 박혀 오래도록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신경 쓰이고 답답하다.
‘희망 고문 무한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두산인프라코어는 20대마저 희망 퇴직시켰잖아요. 근데 혹시 또 알아요? 다른 20대들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좋아할지.”
원고를 쓰다 헤매기를 반복. 선배 교사에게 전화를 해 문제의식이 흐려지고 어쩌고 하며 횡설수설했더니 대화 끝에 이 말이 나왔다. “설마 그렇겠어?”라며 의심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증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이 취업 준비생 밴드에 올린 글을 어떤 누리꾼이 캡처해 둔 것 같은데, 천천히 내용을 읽어 보자.

임원 자녀들이 우선으로 취업되고 살생부에도 오르지 않는 ‘금수저의 위력’을 느끼면서도 400여 명이 해고당한 이 와중에“짱짱한 스카이와 지잡대, 잡과”로 구분 짓고 “다른 기업에 원서 접수 못할 시기”를 탓하는 모습을 보라. 단편으로 시비할 일이 아닌가 싶다가도 더 뭣 같은 상황을 당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까 봐 안타깝다. 젊은이들에게 ‘짱돌을 들라’ 했던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지 십 년이 되어 가고 이태백이니 삼포 세대니 하는 말들이 나온 지도 한참 된 것 같은데 별 탈 없이 자본가의 파이만 점점 커져 간다. 《진격의 대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이제 세상은 변했어. 20대도 짤리는 절망적인 세상’이라는 현실 직시 대신 자기 계발하며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외친다. 오늘도 내 자기 계발이 부족해서 그렇지 희망은 있다고 ‘희망 고문 무한루프’ 안에서 참고 견딘다.
한참 전에 읽었던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이 책의 골자는 이렇다. 자본주의가 극단에 치달은 오늘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도, 내일 해고될지도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성공은 불가능해졌는데 과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상이 반복된다. 너무 힘들고 고통을 참다 참다 ‘안주’라는 방식으로 득도한다. 그래서 적당히 안주하고 일상에 만족하며 행복을 찾는 ‘사토리悟り, 달관 세대’가 등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해고당한 직원들이 밴드에 쓴 글을 보면서 한국에서 ‘사토리’가 ‘자기 계발’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일본 영화나 책을 좋아하면서 그렇게 평생은 못 산다고 한다. 지금도 학생부 기록란이 부족한데 계속 스펙을 쌓아 가고 수행 평가는 주관적이니 인정할 수 없다며 비율을 줄여달라는 고등학생들을 볼 때마다 의문은 확신이 되어 간다. 흔히 일본을 한국의 미래이며 사회 변동의 격차가 10년 정도 난다고들 하는데, 최저 시급➎이 너무 낮아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데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까지, 게다가 진보 꼰대는 ‘80년대마냥 기백 있게 못 싸운다’ 하고 수구 꼰대는 ‘도전과 노력을 안 한다’고 타박까지 한다. 기실 20대가 무슨 죄가 있나? 기성세대가 유리하게 짜놓은 판에 늦게 태어난 게 죄라면 죄지.《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내용대로라면 한국의 20대는 벌써 한참 전에 희망을 잃었어야 했다. 그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기성세대는 20대를 들볶고 20대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참고 그리고 서로 싸운다. 자본가들은 팔짱 끼고 노예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자본가가 얼마나 더 똑똑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10대는 곧 20대를 따르게 되어 있고 나는 점점 기성세대가 되어 가는데 미래가 지옥이 되어 간다.
➎ 2016년 한국 6,030원 209시간(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주휴 수당 미포함)을 일하면 126만 원
곧 20대가 될 고등학생들에게 ‘희망 고문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게 하는 진로 상담이란 무얼까? 도무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모르겠다.
경영학과에 진학하려는,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에게 “대기업보단 너같이 착한 학생이 마을 기업 같은 데 있으면 참 좋겠어.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잖아.” EBS 문제집 풀다 느닷없이 “야, 윤리 1등급 맞아도 니넨 영어가 안 되잖아. 대충 세 봐도 살다 온 애들하고 외고생 숫자가 1등급 넘겠다”라고 슬며시 내비치기를 수차례. 이미 기득권인 정규직 선생이 말하는 것이 우스워 그런가? 통하는 것 같지 않다. 잡도리형 교사처럼 ‘집에 경영할 회사 없는 사람은 경영학과는 절대 안 된다’며 눈물 쏙 빼놓는 단호함이 필요했던 걸까. 내 학교에서 학교 민주주의를 이루고 학급에선 자치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알아 갈 때까지 분위기 조성하는 것 정도일까. 희망 고문임을 인식시켜 주는 데까지는 교사가 해도 루프를 빠져나오라는 것까진 부모도 아니고 오버인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틀린 것 같다. 공부하면서 벗들과 교류하면서 계속 찾아보련다. 대안이 없어 진로 상담이라며 하는 ‘교대 권유’를 당분간 버리긴 어려울 테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퇴직 후 소일거리로 문화재 지도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젊은이들과 짱돌을 들 ‘직업 시위꾼’으로 살겠다는 것.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특집/ 절망함, 잘 망함
희망 고문 무한루프
교대 권했던 속사정
김수현
경기 광명 광휘고, 본지 편집위원
ee97002@naver.com
학생인권 관련 일에 기웃거리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깨닫고 성공회대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만 공부가 장기화된 탓에 남들은 박사를 하고 있는 줄 압니다. 요즘은 《오늘의 교육》이 지면을 빌려준 덕분에 교육에 대한 날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벗들에게 문제 하나. 다음 글의 밑줄 친 ‘그들’이 누구인지 자유롭게 상상해 보시라.
그들은 청춘의 분출하는 열정을 쏟을 사랑의 대상도, 순수한 열정을 투사할 대상도 가져 보지 못한 채, 닭장에 갇혀 모이만을 쪼아야 하는 닭들처럼 오로지 점수만을 높이기 위해 갇혀 있다가 괴물스런 존재가 돼 버렸다.
- 목수정, 〈미디어 오늘〉 인터뷰(2013. 6. 8)에서
나는 ‘수험생’을 떠올렸고 주변 지인들은 ‘고3’ ‘재수생’ ‘취업준비생’이라 답했다. 정답은 ‘일베충’이다. 혐오를 양산하는 극우 누리꾼과 고단한 수험생과의 연결이 너무하다 싶다면 문제를 다시 읽어 보시길. 비유와 대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벨(1~25단계) 욕심내며 자극적인 것을 찾는 일베나 20여 개 인서울 대학 앞 글자로 시가➊를 지어 찬미하고 수능이 아니라 수시나 지역 균형,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준비하면 ‘수시충’ ‘지균충’ ‘사배충’으로 구분 지어 부르는 대입 카페나. 참 닮았다. 다만 수험생은 일베만큼 노골적인 표정을 짓지 않을 뿐.
➊ 瑞蓮高 西星瀚 (서연고 서성한) 상서로운 연꽃이 높이 올라 서쪽 하늘의 큰 별이 되는도다 衆敬畏視 東乾虹 (중경외시 동건홍) 사람들이 경외하여 바라보니 동쪽 하늘에는 무지개로다 國崇世壇 (국숭세단) 온 나라가 이를 받들고 세상이 제사를 지내니 光明祥加 韓栖森 (광명상가 한서삼) 밝은 빛과 상서로움이 한국의 산하에 깃드는구나
계급화된 재수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생이 윤리교육과에 진학하면 어떨지 물어 왔다. 윤리를 재밌어했고 사회 과목 전반에 적성과 적당한 정의감이 있는 학생이라 괜찮은 결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점수로는 S대(지방 사립)에 진학해야 해서 재수하고 싶단다. 임용 시험을 봐서 교사가 되는 것이니까 대학은 관계없다 하니, 학생이 말문을 연다. “샘. 같이 강남 청솔(재수학원) 가시죠?” “나도 재수해?”라고 묻자 자신의 지론을 편다. 지잡 S대 나와서 교사 된 사람 찾아봤더니 다 40대 중반 이상이다. 고로 임용 합격 확률이 없다. 누나도 재수해서 E대에 다닌다. 선생님은 웃겨서 재수학원 가면 뜰 스타일이다. 공무원 월급 받으면서 교장하고 갈등하지 말고 인강(인터넷 수능 강의)해서 짧고 굵게 버시라 등. 학생의 주옥 같은 칭찬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생각했다. 사범대도 대학 이름이 중요하구나. 내가 지방대 나온 걸 알고 나를 칭찬하면서도 대학 이름 때문에 재수를 선택하는구나.
수시 합격자 발표 전부터 고3의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왔다. 재수? 지랄에도 때가 있고 사랑할 시간도 부족할 20대이다. 군복무에다 불 보듯 뻔한 취업 휴학(또는 취업 재수)까지 하는 마당이다. 나는 다 떨어졌거나 특수목적대➋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입 재수하는 시간은 아깝다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겨우 몇 년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선 제자들의 재수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비평준화 시절 비선호 일반고라, 주변 지역(안양, 의왕) 고교와 관내에서 전문계고까지 모두 탈락한 학생들이 모이기에 빈곤과 중도 탈락이 문제였다. 수능은 응시하지만 수험생 할인을 위한 수험표가 필요했을 뿐 응시생도 매우 적고, 수능 점수를 활용하는 학생은 (거의) 못 봤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 큰길 하나 건너, 평균 성적과 소득이 조금 높아진 이 학교에선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온다. 우리 학교만 그런가 싶어 주변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하나같이 늘었단다.
➋ 교과부의 대학 정보 공시 자료 의예과 중도 탈락에 따르면 2008년 지방 사립 2,482명 중 67명이 자퇴(미복학 포함), 서울 사립 852명 중 13명, 서울대는 0명이다. 연쇄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교육과정평가원의 10년 치 수능 응시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이 입시 제도가 큰 폭으로 바뀌었던 2008학년도➌를 제외하곤 재수생 비율이 21~23%(약 13만 명)로 비슷했다. 문제는 재수가 철저히 계급적이라는 점이었다.
➌ 수능 문제를 고교 교과 내용 안에서 출제하고 학생부 비중을 강화하는 정책 변화로 “학생부 성적을 바꿀 수 없는 졸업생들은 하향 안정 지원의 추세를 보여 재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자 제도에 적응한 재수생이 또 늘어났다.
2015학년도 대수능 응시자 중 고3 수험생 대비 졸업생(재수·삼수 등) 비율은 전국과 서울에서 각각 26.5%와 49.6%로 나타났다. 서울은 재학생 수의 절반(49.6%)에 이르는 졸업생이 다시 수능을 봤으며, 강남 83.5%, 서초 71.3%, 양천 57% 순이다. 강남구는 재학생 대비 재수생 수능 응시 비율이 2013년 79.8%에서 작년 78.8%, 올해 83.5%로 증가세며 휘문고·중동고 등 자사고에선 졸업생 응시 비율이 고3 학생 수보다 많았다.
- “再修 부르는 ‘물수능'…… 강남 재수생 비율 83%”, 〈조선일보〉 , 2015년 8월 24일
경기 지역 기숙학원 비용은 한 달 평균 220만~250만 원 선에, 3개월마다 20만 원의 교재비가 추가된다. 이과이거나 논술 강좌를 신청하는 경우는 더 비쌌다. 숙식과 교육, 생활지도가 포함된 비용이라 해도 일반 가계에는 큰 부담이다. 전년도 12월부터 11개월 동안 등록한다고 치면 총 2,500만~3,000만 원 비용이 든다. 사립대 4년 등록금과 맞먹는다. 일반 재수종합반 학원에 다녀도 1,000만~2,000만원 들어간다.
- '재수는 필수? 나라가 망한다!’, 《주간동아》 1005호(2015년 9월호)
광명시만 해도 아파트 평당 가격이 1500만 원이 넘고, 서울 및 수도권에서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나와 지인들은 이미 기득권이다. 따라서 ‘재수가 늘었다는 느낌’은 먹고 살만한 정도 학생의 재수 비율을 체감한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재수만? 입시는 원래 계급적이다
나는 일반고에 근무한다. 학생들은 , 자사고와 특목고 학생들과 경쟁해 수능 등급을 얻어야 하는 정시는 거의 접고 수시로 한 방에 끝내고 싶어 한다. 수시 : 정시 비율이 7 : 3정도이고 학생부는 3학년 1학기까지만 반영된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수시 원서를 쓰고, 11월에 있을 수능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반고 기준 한 학급 당 10명도 안 되는 것 같다. 수시에서는 교과 내신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므로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이른바 ‘스펙’이라 불리는 다양한 활동들도 들어가기 때문에 2학년 때까지 만들어 놓는다. 덧붙여 보자면 수시는 주로 학생부(교과+비교과) 중심으로 자기소개서, 면접, 논술, 적성고사 중 1~2개를 결합하거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능 시험 성적(최저등급)을 맞추면 합격이 확정된다. 대학 전형 방식은 복잡하고 전공은 대학 홈페이지만 봐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은 대입 원서 작성 컨설팅을 받는 일이 이미 만연하다. 혹여 대학에 거슬리는 문구가 있을까 교사들에게 학생부 수정을 요구하다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반고에서도 가끔 입시 컨설팅을 받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발견된다. 그래도 대부분 고만고만한 일반고 학생들은 담임교사(또는 평소에 친한 교사)와 상의한다. 수시의 복잡함으로 업무 분장 아닌 업무 분장이 돼 버렸는데 주로 고1~2학년 담임은 학과에 맞는 학생부의 비교과 영역(스펙)을 채우기 위한 학교 활동을 관리하고, 고3 담임은 진학 가능한 대학이나 학과를 가늠하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돕는다. 학생부를 잘 채워 점수에 딱 맞춰 대학에 합격하길 바라는 학생들은 담임들을 잘 만나길 바란다. 비록 내 경험치에 불과하지만 담임으로 선호하는 유형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고3 때 선호도가 높아지는 일명 ‘잡도리형’이다. 특성은 이렇다.
1). 고3 경험이 비교적 많아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부(결과)를 분석해 최상의 길(합격 가능한 대학의 최대치)을 찾아 준다. “문․사․철학과로 일단 입학해서 전과(또는 복수전공)해라” “이 점수대에는 ○○대 (불)합격한다” 같은 말을 자주한다. “점수가 남지 않게 문 닫고(추가 합격) 입학시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 무슨 과는 추가 합격 0번까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신기神氣를 발휘했던 경험을 학생들에게 자주 홍보한다.
2). “이 새끼들아, 앉아서 팬티가 썩도록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떠들어?” “도서관 불 켜고 들어와서 불 끄고 나가야 인서울 한다”➍ 마치 전장의 장수나 극기 훈련장 조교의 태도로 정신 무장을 강조한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된다”며 공부의 절대 시간을 중시하고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각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도 학교에 매우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며 주로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선호한다. 학생들과 같이 늦게까지 있어 그런지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한다.
➍ 실제 지인들에게서 들은 표현임을 밝힙니다.
3). “1학년 때 반장했으니까 이번에도 반장(또는 학생회장)해라. 2년은 해야 수시에 도움 된다” “이 학과를 가려면 이런 책이 독서 상황란에 기록되어야 해” “입시 설명회 가라, 대회 나가라, 직업 특강 소감문 내라” 학생부를 분석하고 부족한 면을 찾아 실행하도록 계속 주의를 주고 꼼꼼하고 길게 학생부를 기록한다. 여기에다 독단적인 성격까지 플러스되면 마치 악덕 연예 기획사 대표 같은 말투로 “네가 이렇게 하면 학생부에 나쁘게 기록한다”는 말로 옥죈다.
잡도리형의 특성 중 두 가지가 결합하게 되면 학생들로서는 매우 가혹한 고3 생활이 된다. 그런데 상위권일수록 잘 견디고 고3 담임 잘 만났다고 좋아하거나 인격 모독 정도는 가볍게 참고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한다. ‘대학 가면 다 잘 될 것이다’이라는 희망으로. 그 인내의 결과로 대학 정원으로 봐도 상위 10% 이내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일반고에서는 최상위권이었던 이 학생들, 즉 금수저가 아닌 동수저쯤 되는 동네 똑똑한 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잡도리형’ 담임을 거친 동수저들
나름 명문대라 경영학과 30명 중에 저같이 일반고 나온 학생들은 10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강남 출신만 대충 10명은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이 많고 재수생도 많고 외국에서 살다온 애들은 7명이었어요. 일반고 나온 애들도 저 빼고 다 강남 학원 가서 공부했대요. 우리 학교에서 저는 경영학과, ○○이는 신문방송학과에 수시로 입학했고 수능을 사실 잘 못하잖아요. 저는 영어 3등급, ○○이는 4등급인데, 영어 강의 때도 힘들지만, 영어는 예상은 했어요. 교양으로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하는데 일본어랑 중국어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대서 스페인어를 골랐어요. 그것도 살다 온 애, 전공한 애가 있었어요. 입학 전부터 부자들이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요. 저 이번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일본 여행가잖아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1년 동안 했고 엄마한테 좀 보태 달라 할 거고요. 일본은 비싸서 저렴한 숙소 찾고 맛집도 저렴한 곳 찾고…… 여행 책 보면서 하루에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계획만 한 달 넘게 세우고요. 근데 저희 과에 저번 여름방학 때 자기는 갈 마음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유럽 항공권, 호텔 다 예약해 놨다면서 한 달 다녀오라고 해서 갔다 온 애가 있었어요. 만족도가 뭐랄까, 일상 같은 표정이었어요.
- 대학 1년, 여
전 유치원 때 아버지 회사 일로 중국에서 살고 그래서 국제학교에 조금 다녔어요. 그래서 특기자 전형하고 특례 입학 넣었는데 오래 살다 온 애들이 너무 많아서 수시는 다 떨어졌어요. 내신도 안 좋고 정시로 수능 봐서 왔어요. 원래 중국어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점수가 안 돼서 동남아시아 언어를 전공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론 정부 초청 장학생도 되고 언어도 재밌고요. 3개 국어(중국어, 영어, 마인어)를 할 줄 아는데도 취업이 걱정이에요. 카페베네 인도네시아 지사에 취직하고 싶어서 카페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한국보다 나가서 살고 싶어서 해외 영업 쪽만 원서 넣으려고요. 고등학교 선생님도 교수님도 마인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 사용하는 인구만 4억이라고 그러시는데 학과 취업률이 너무 낮아서 걱정이에요. 예전에 마인어로 1~10까지만 세면 다 취업됐대요. 회사 면접관도 몰라서. (웃음) 저 같은 경우는 대학도 전공도 다 맘에 드는데 대학마다 있는 학교 운영 제도를 잘 봐야 할 것 같아요. 평범한 사립대는 모르겠지만 외국어대라 그런지, 저희 학교는 무조건 복수 전공을 해야 하고 그중 하나는 무조건 언어를 해야 해요. 저처럼 외국어가 잘 맞으면 좋지만 경영학과로 입학했는데 복수 전공 때문에 재수한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언어를 집중 포화시킨달까. 근데 재수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웃음)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더 힘들잖아요.
- 대학 4년, 여, 2년 휴학
제 대학 선택 기준은 ‘인서울, 언어(수능 국어)를 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언어는 고3 담임선생님이 제가 어려워하고 오를 것 같지도 않으니까 2학기 시작엔 아예 포기하라고 하셔서 포기했어요. (웃음) 광명이 비평준화 시절이라 저희 학교(중학교에서 학급 1~3등 정도까지 입학하는 학교)가 잘하는 학교잖아요. 내신도 안 좋고 정시로 수능 봐서 전체 평균 2등급으로 왔어요. 지금 공대에 다니지만 전 원래 자연과학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땐 솔직히 차이를 몰랐어요. 화학교육과나 수학교육과에 가고 싶었고 인서울 사범대는 너무 높고. 공대는 자연과학을 기초로 응용하는 공부라고 생각해서 수학, 과학을 잘했으니까 괜찮겠지 했어요. 그런데 배울수록 뭐랄까. 너무 어렵고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계속 들고요. 저희 학교는 공학이 강점인 학교니까 복전(복수 전공)이나 전과할 전공도 마땅히 없고 공대 공부가 벅차서 생각을 안 해 봤어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없진 않지만 집안 형편상 학교(사범대나 교육대학원)를 또 다닐 여건은 안 돼요. 이번 등록금이470만 원이에요. 원래 490만 원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할인해 주더라고요. 얼마 전에 학교에서 하는 취업 설명회를 다녀온 후부터 사범대에 가지 않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더 들어요. 말이 대기업이지 공장들이 다 지방, 그것도 여수, 마산,창원, 거제도…… 서울에 있는 대기업 본사는 공대 출신이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대학 와서 알게 된 거에요. 차라리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사범대를 가서 4년 다니고 선생님처럼 서울이나 경기도에 임용 시험 봤으면 평생 여기서 사는 건데. 겨우 4년 여기서 다니고 평생 지방 공장에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나름 공대라서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회사 생활 해도 별로 안 기쁠 것 같아요. 지거국 사범대는 인서울 만큼은 아니어도 점수가 높지만 지방으로 갔다는 게 나쁜 것 같았어요. 지방에 사는 학생이 서울로 대학 오면 성공한 것 같고 여기서(광명시) 지방 가면 막연히 실패한 느낌이요. 목표가 있어서 지방으로 가도 대학 이름부터 남들한테 말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학교 다녀 보니까 여기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 아세요? (웃음) 어쩔 땐 더 걸리고요. 다른 경기도 사는 애들은 자취한다니까요. 휴학해서 아르바이트하고 돈 모아서 토익 학원 가고 여행도 가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지냈어요. 곧 복학인데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토익 공부하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 대학 3년, 여, 1년 휴학
광명이 비평준화 시절이라 학교 자부심 때문에 눈은 높아져 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왔어요. 물론 평소 모의고사 성적도 기대보다 별로였죠. 근데 수능 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고 까 보니까 아닌 거죠. 담임선생님이랑 상담해도 딱 맞출 수 없으니까 현역 때 세종대 최종 불합격 통지 받고 재수했어요. 이과 1/2은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한 대학을 못 가겠다 싶으면 재수 했고요. 친한 친구들 7명 중 5명이 재수했고 4명은 어느 정도 만족은 되는 학교에 갔어요. 재수해서 서울대 자연대, 울산대 의대, 성균관대 공대, 홍익대 공대 이러니까요. 공대가 취직이 잘 된다고 해서 갔는데 처음에도 안 맞는다 느낌은 있었지만 배우다 보면 되겠지 싶어서 노력했어요. 그래서 심화될수록 즐겁지가 않고 전 그나마 성적이 괜찮아서 경영학과로 전과했죠. 저희 학과 이름에 ‘시스템 디자인’이란 말이 들어 있어서 패션인 줄 알고 갔는데 공대니까 기계 설계인데 그걸 모르고 온 애도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심각해요. 저도 뭘 배우는지 모르고 갔고요. 재수에 전과에 휴학에.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휴학하고 캐나다에 어학 연수 갔을 때 외국 고등학생들은 3시에 끝나고 다 집에 가요. 저는 야자하느라 재수하느라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대학 와서 군대 가서 시간이 나서 생각도 많이 해 보고 전공 공부하다 보니까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데 내 스스로 나를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스물여덟 살이 돼 버렸어요. 졸업 유예 했으니까 아직 4학년인데 스물여덟 살이고, 이 나이에는 맞게 뭘 해야 하는 그런 것이 한국 사회에 있는데 부담스러워요.요즘 대학생들 다들 휴학하고 스펙을 쌓느라 그렇다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그게 아니에요. 대부분 그냥 하는 거예요. 졸업하면 이제 못 쉰다 하니까요. 대단한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고요. 졸업 유예도 걸쳐 놓는 것에 불과하죠. 토익 때문에 휴학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거 맘먹으면 금방 하거든요. 그런데 휴학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쉴 때 놀아도 노는 게 아니라서 스트레스 받아서 피곤하기만 했어요. 자기 조절이 어렵다고 해야 하나. 스터디 코치 아시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요. 재수하면서, 요즘엔 취업 공부를 많이 하니까 시험 같은 건 스스로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할 수 있게 됐는데 이걸 고등학교 때 배웠어야 했어요. 얼마 전에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일본 영화를 봤어요. 바닷가 마을에서 삶을 소소하게 즐기는 그런 얘기예요. 저는 항상 바쁘게,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살았는데 부러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평생은 못 살 것 같아요.
학벌이 높아지면 취업이 쉬워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대기업 취업률 통계가 말해 주니까요. 학벌은 여태까지 열심히 살았는가에 대한, 누가 더 성실하구나를 보여 주는 것 같아요.
대기업 상사 같은 곳에 취업해서 야근, 특근해서 젊을 때 돈 많이 모으고 싶어요. 대기업 금방 짤린다 하니까요. 장사요? 부모님이 숙박업소 같은 곳에 대는 물건들, 대형 휴지, 음료수 등등 그런 거 도매상 하시잖아요. 너무 변동 폭이 크다고 하나.창고에 있는 재고들을 보면 불안함이 있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못됐어요. 무조건 싸게만 사려고 하고요. 취업이 어려운데 중소기업이라도 가라 그러는 어른들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중소기업이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일의 양이 적고 그런 게 아니에요. 대기업처럼 일도 많고 힘들면서 복지도 없지 월급도 적거든요.
- 대학 4년, 남, 1년 휴학, 졸업 유예
상명대 국문과하고 저희 학교 붙었는데 옛날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왔어요. 졸업하고 취업은 쉽게 했어요. 교수님께서 추천해 준 회사고 집에서 가깝고 해서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하루 근무 시간이 12시간은 기본이었어요. 8시 30분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한 날도 많고 주 6일 근무에 처음엔 야근 수당도 없고 팀장들은 조금 늦게 출근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순 놀다가 2시쯤 일 시작하고, 사람이 부족한데 사장이 안 뽑아 줘요. 두 달째부터는 거의 매일 엄마 앞에서 울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제 위 바로 선배 언니들 두 명이 1년, 3년 됐는데 성격이 더러운 이유가 다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그러니까요. 언니들 두 명 다 결국 얼마 전에 그만뒀고요. 그런데도 사람을 안 뽑으니까 저는 더 힘들어지고 피부가 썩고 살찐 게 아니라 부은 거고 화장 다 뜨고. 월급은 130부터 시작하다 지금은 올라서 160 받고 야근 수당 받으면 좀 더 받는데 하는 일, 시간에 비하면 알바하는 게 더 나아요. 6개월 돼서 진짜 그만두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처음이라 그렇다1년만 채워 봐라, 경력으로 못 써먹는다고 어른들은 다 그래요. 저도 여기서 경력 쌓고 대기업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그리고 언니도 교육대학원 다니면서 임용 고시 공부하니까 내가 관두기 그렇고. 또 엉엉 울었어요. 새벽에 동대문에 택시 타고 실 사러 가고 공장에 독촉하고 울면서 다녀요. 대기업에서 오더를 주는데 생산 기한을 못 맞추면 옷값을 공장이랑 저희랑 다 떠맡아요. 딱 몇 달만 더 다니면 1년인데 그만뒀어요. 추석까지 다니면 보너스 나온다 해도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그만둬서 속이 다 시원해요. 헬스 다니면서 살도 빼고 짧게 여행도 다녀오면서 몇 달은 그냥 푹 쉴래요.
- 대학 졸업, 여, 휴학 ×
인서울(수도권 포함) 사립대에 다니고 부모가 규모 있는 자영업이나 정규직을 가지고 있고 30평대 빌라와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으며 형제자매는 공부 중이거나 취직해서 결혼했다. 동수저들은 재수를 할 수도 있고 힘들면 고민은 돼도 사직할 수 있고 사립대를 다녀도 대학 등록금은 부모가 감당은 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은 아니다. 가장이 실직했다거나 집안에 누가 큰 병이 걸린다거나 취업 실패가 거듭되면 까딱 흙수저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식 세대가 취업을 해야 계급이 유지되는 그런 상황이다. 불안하고 초조해도 상위권이었던 입시 결과 덕분에 취업을 위한 학벌이 마련돼 희망을 품고 준비 중이다.
교사들 중에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꿈을 찾기를 기다려 주는 분들이 있는데 그 자녀들이 부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 미술이나 영화 관련 꿈을 가졌던 나도 사실 그렇다. 그 문화자본이, 그 여유가. 떠도는 ‘수저 계급론’을 보니 교사 집단은 ‘동수저(간혹 은수저)’는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선 학생들이 대학이나 학과 선택같이 장래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해 봐. 언젠가 다 잘될 거야’라고 답하는 선생님들을 종종 본다. 내가 알기론 집안 형편이 어려운(또는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일때, 이렇게 답하면 뭔가 불편하다. 재능이 특별하지 않은 이상 가난하면서도 부유한 꿈을 꾸는 학생의 경우 부모에게 화가 나니까. 요즘 고등학교에선 실용음악과, 사진학과, 영상학과 열풍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만 학원비가 매우 비싸다. 게다가 담임과 부모의 사교육 잡도리를 거쳐 대학에 간 인터뷰 속 동수저 학생들도 취업 불안에 시달리는데 하물며 흙수저에게.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한 동료는 ‘가난한 지역일수록 야자를 많이 시키고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잘 챙겨 주는 잡도리형 교사가 더 입시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의도를 알기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진로 교육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거창한 것 같다. 가난 앞에 꿈을 말하는 낭만적 조언이 불편하면서도 내 한 몸 건사도 어려운 성품에 누굴 독하게 잡도리하지도 못하는데 어떤 진로 상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담. 나는 고작 ‘동수저 이하 상위권, 훌륭한 성품의 학생들에게 교대 권하기’로 방법을 정했다. 훗날 벗들이 발전시켜 주리라 믿으며 부끄럽지만 교대 권했던 속사정을 고백한다.
희망? 희망 고문!
“선생님은 직업 만족도가 참 높으신가 봐요?”
고2 담임을 하고 있을 때 들은 동학년 교사의 말이다. 남녀 불문 공부 잘하고 정의감이 있는데다 한 과목에 특별히 더 관심이 있으면 사범대, 손재주까지 있으면 교대를 권했으니까. 집안 형편이 흙수저인 경우는 더 강하게.
허허, 웃으며 넘어갔으니까 내 속을 모르셨겠지만 내 진로 상담의 의도는 여러 개다. 혁신학교니 수업 개선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학교 문화가 바뀔 것 같진 않으니까 싹수 좋은 신규 동업자가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은 것.그리고 정규직 교사가 되면 ‘동수저’가 되거나 유지할 수 있으니까. 특히 교대를 열심히 권했는데 외고 출신이든 살다 왔든 외국어 재주를 대단히 써먹을 일이 자주 없고 피아노나 체육도 극복할 만한 수준에다 과거보다 어려워졌다한들 무엇보다 이런 시기에 한 자릿수 경쟁률이다. 원래 사범대도 권했는데 요즘 임용 경쟁률이 최후의 인류를 뽑는 수준이라 재수, 삼수하는 일명‘견디는 비용’이 높아져 임용 공부를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유형에게만 살짝 권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장차 내 자식을 맡기고 싶다 하는 학생들은 교대 성적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았고, 합격권인 학생들은“학교에 갇혀 평생 애들하고 와글거리긴 싫다”, “창의적인 일 하고 싶다”면서 인서울 사립대 경영학과, 언론홍보학과, 광고영상학과에 가고 싶어 했다. “평생직장이 얼마나 될 것 같냐”, “교사가 얼마나 창의적어야 하는데”로 응수하다 “새벽까지 야근하다 대머리 되고 회식에 배 나오고 과로하고……”로 겁박도 해 봤지만 영업이 잘 안 됐다. 성적은 좋지만 어째 인간미가 없다 생각했던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교대를 선택해 잘도 가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주로 하는 희망 고문이 있다. 당해 본 벗들도 많을 것이다. “대학 가면 이성 친구 생긴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와 같은, 대학 가면 지금의 고민들이 모두 해결되니까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 나는 실제 술 마시다 남자 친구가 생겼고 깡술을 마시다 살이 많이 빠졌지만 다들 그러셨는지?
① 대학 가면 다 잘될 것이다 → 학생들은 고통스럽지만 참는다 → 대학 합격 → ② 인서울은 가야 취업 된다 → 재수를 하며 또 참는다 → 인서울 대학 합격 → ③ 명문대를 가야, 스펙이 있어야 취업이 된다 → 휴학, 졸업 유예하며 반수, 취업 ○종 세트를 준비하며 또 참아 본다. 이번이 끝이라는 심정으로. 취업하면 과연 끝일까? 짜잔~ ④ 열심히 일하면 승진한다가 기다린다. 그리고 ⑤ 또. 또. 또. 또…….
‘희망 고문’ 무한루프! 잡도리형 교사들은 희망 고문 루프 속에 살면서 ‘희망 고문’을 진짜 ‘희망’으로 믿고 학생들의 진로를 열심히 모색한다. 나는 희망이 아니라 희망 고문인 걸 알면서도 정작 학생들에게 ‘희망 고문 무한루프’에서 벗어나자는 제의는커녕 ‘희망’이 아니라 ‘희망 고문’이라는 말조차 잘 못 꺼내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에 희망 고문 무한루프 안에 편하게 사는 실용만을 가르친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입시 경쟁을 잘 시켜 그게 고민이라는 혁신학교 선생님들과 비슷한 고민이다. 고3을 만날 때 더 그렇다. 내 특기를 살려 서바이벌 프로그램 PD로 빙의해 대학이 원하는 더 간절한 사연을 더 정교하게 담은 자기소개서를 뽑아 대고 있다. 학생의 온갖 학교 활동, 가난,불우한 가정사 그리고 대학(또는 학과) 선택의 사연을 쥐어짜 처절하게 연출하고 학생에게 수십 번 퇴고를 시켜 짠한 ‘자기소설서’를 만들어 낸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철저히 파악시키는 일은 이때뿐인 셈이다. 내가 지도한 ‘자기소설서’가 많아질수록, 손가락에 박혀 오래도록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신경 쓰이고 답답하다.
‘희망 고문 무한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두산인프라코어는 20대마저 희망 퇴직시켰잖아요. 근데 혹시 또 알아요? 다른 20대들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좋아할지.”
원고를 쓰다 헤매기를 반복. 선배 교사에게 전화를 해 문제의식이 흐려지고 어쩌고 하며 횡설수설했더니 대화 끝에 이 말이 나왔다. “설마 그렇겠어?”라며 의심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증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이 취업 준비생 밴드에 올린 글을 어떤 누리꾼이 캡처해 둔 것 같은데, 천천히 내용을 읽어 보자.
임원 자녀들이 우선으로 취업되고 살생부에도 오르지 않는 ‘금수저의 위력’을 느끼면서도 400여 명이 해고당한 이 와중에“짱짱한 스카이와 지잡대, 잡과”로 구분 짓고 “다른 기업에 원서 접수 못할 시기”를 탓하는 모습을 보라. 단편으로 시비할 일이 아닌가 싶다가도 더 뭣 같은 상황을 당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까 봐 안타깝다. 젊은이들에게 ‘짱돌을 들라’ 했던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지 십 년이 되어 가고 이태백이니 삼포 세대니 하는 말들이 나온 지도 한참 된 것 같은데 별 탈 없이 자본가의 파이만 점점 커져 간다. 《진격의 대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이제 세상은 변했어. 20대도 짤리는 절망적인 세상’이라는 현실 직시 대신 자기 계발하며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외친다. 오늘도 내 자기 계발이 부족해서 그렇지 희망은 있다고 ‘희망 고문 무한루프’ 안에서 참고 견딘다.
한참 전에 읽었던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이 책의 골자는 이렇다. 자본주의가 극단에 치달은 오늘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도, 내일 해고될지도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성공은 불가능해졌는데 과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상이 반복된다. 너무 힘들고 고통을 참다 참다 ‘안주’라는 방식으로 득도한다. 그래서 적당히 안주하고 일상에 만족하며 행복을 찾는 ‘사토리悟り, 달관 세대’가 등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해고당한 직원들이 밴드에 쓴 글을 보면서 한국에서 ‘사토리’가 ‘자기 계발’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일본 영화나 책을 좋아하면서 그렇게 평생은 못 산다고 한다. 지금도 학생부 기록란이 부족한데 계속 스펙을 쌓아 가고 수행 평가는 주관적이니 인정할 수 없다며 비율을 줄여달라는 고등학생들을 볼 때마다 의문은 확신이 되어 간다. 흔히 일본을 한국의 미래이며 사회 변동의 격차가 10년 정도 난다고들 하는데, 최저 시급➎이 너무 낮아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데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까지, 게다가 진보 꼰대는 ‘80년대마냥 기백 있게 못 싸운다’ 하고 수구 꼰대는 ‘도전과 노력을 안 한다’고 타박까지 한다. 기실 20대가 무슨 죄가 있나? 기성세대가 유리하게 짜놓은 판에 늦게 태어난 게 죄라면 죄지.《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내용대로라면 한국의 20대는 벌써 한참 전에 희망을 잃었어야 했다. 그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기성세대는 20대를 들볶고 20대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참고 그리고 서로 싸운다. 자본가들은 팔짱 끼고 노예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자본가가 얼마나 더 똑똑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10대는 곧 20대를 따르게 되어 있고 나는 점점 기성세대가 되어 가는데 미래가 지옥이 되어 간다.
➎ 2016년 한국 6,030원 209시간(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주휴 수당 미포함)을 일하면 126만 원
곧 20대가 될 고등학생들에게 ‘희망 고문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게 하는 진로 상담이란 무얼까? 도무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모르겠다.
경영학과에 진학하려는,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에게 “대기업보단 너같이 착한 학생이 마을 기업 같은 데 있으면 참 좋겠어.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잖아.” EBS 문제집 풀다 느닷없이 “야, 윤리 1등급 맞아도 니넨 영어가 안 되잖아. 대충 세 봐도 살다 온 애들하고 외고생 숫자가 1등급 넘겠다”라고 슬며시 내비치기를 수차례. 이미 기득권인 정규직 선생이 말하는 것이 우스워 그런가? 통하는 것 같지 않다. 잡도리형 교사처럼 ‘집에 경영할 회사 없는 사람은 경영학과는 절대 안 된다’며 눈물 쏙 빼놓는 단호함이 필요했던 걸까. 내 학교에서 학교 민주주의를 이루고 학급에선 자치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알아 갈 때까지 분위기 조성하는 것 정도일까. 희망 고문임을 인식시켜 주는 데까지는 교사가 해도 루프를 빠져나오라는 것까진 부모도 아니고 오버인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틀린 것 같다. 공부하면서 벗들과 교류하면서 계속 찾아보련다. 대안이 없어 진로 상담이라며 하는 ‘교대 권유’를 당분간 버리긴 어려울 테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퇴직 후 소일거리로 문화재 지도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젊은이들과 짱돌을 들 ‘직업 시위꾼’으로 살겠다는 것.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