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청년 이슈] 대학원, 노예 세계를 말하다 (김환희)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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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슈/ 인터뷰


대학원, 노예 세계를 말하다

이우창 서울대대학원총학생회 고등교육전문위원


인터뷰 진행‧정리 김환희 본지 편집위원 seven99teen@hanmail.net

사진 최승훈 기자

때와 곳 2015년 10월 8일. 연세대학교 인근 카페



이우창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엄청나게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체력을 겸비한 연구자이다. 자기 전공(영문학)을 넘어서서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그는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다 과로사한 박사과정 선배의 죽음에서 큰 충격과 울림을 받은 것 같았다. 이후 대학원총학에서 고등교육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니.


사실 ‘고등교육’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다. 교육 문제라고 하면, 나는 보통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입시’ 정도를 떠올렸지, ‘고등교육’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우리들에게 작은 경종을 울렸던 일이 작년에 있었다. 바로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지방시) 이야기이다. 4대 보험의 적용을 받기 위해 햄버거 집에서 알바를 해야 했던 한 시간 강사(김민섭)의 이야기는 알바만도 못한 최악의 근로 조건, 삶의 여건에 처한 대학원 연구자들 그리고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민낯을 드러내 보였다.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대학원 내부의 치부를 고발했던 지방시 김민섭은 같은 과 동기들의 압력으로 결국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언론 인터뷰마다 강조했던 것이 ‘시간강사법’이었다.


“지금의 강사법은 서로의 삶에 대한 공감이나 연대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학은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의 전담 교수를 만들어 시간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는 등 자신들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사회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2년 주기로 똑같은 논란을 되풀이하는 꼴이에요. 시간 강사들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시간 강사 뼈로 쌓은 착취의 상아탑을 빠져나오다”, <한겨레>, 2015년 12월 18일.


그는 왜 그렇게 ‘시간 강사법’에 대해 부르짖었을까? 한국 사회 곳곳에서 부조리를 알려 냈던 내부 고발의 어이없는 결말처럼, 그도 결국 ‘고등교육’계를 떠났지만, 아직 이우창은 이 문제를 부여잡고 싸우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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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희  시간강사법이 이슈인데,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우창  시간강사법은 큰 틀에서 보자면 시간 강사들이 고용 불안정 및 열악한 처우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대학과 교육부가 시간 강사 문제를 방치해 왔으니, 이 상황을 다소나마 개선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 나오게 된 것이죠. 이 법의 핵심은 본래 시간 강사의 강의 수를 보장하는 거예요. 과거 시간 강사들이 매 학기 강의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투명했다면, 앞으로는 최소 1년, 2년씩 강의를 몇 개 이상씩 주고 거기에 맞춰서 4대 보험과 함께 고용 보장을 해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원래 지향했던 목표를 충족할 수 없는 법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대학들은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규직 교원 수를 줄이거나 훨씬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 트랙을 만들어 저임금을 주고 착취한다든지, 이런 ‘예산 절감’, ‘구조 조정’을 통해서 강사만 아니라 교수까지 포함해 교육 노동자들의 처지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어요. 교육부는 이 상황에 대해 ‘잘못된 것은 알지만,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거니 우리가 개입할 수 없다’라는 식의 모르쇠로 일관해 왔고요. 시간강사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그 명분마저도 꺾일 우려가 있습니다. 즉, (시간 강사들의 고용 안정이나 4대 보험 보장을 빌미로) 여러 명의 시간강사가 담당했던 수업들을 한 명에게 몰아주는 방향으로 대학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이런 것을 제약하는 장치가 법에 반영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거죠.


➊ 시간강사법은 다시금 2년 간 유예처리되었다. 그러나 임금 문제 등을 이유로 강사들을 대량 해고한 대학들의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지난 12월 24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소속 시간 강사 67명을 해고했으며, 서울대는 음대 시간 강사 113명 전원 해임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김환희  그럼 예전에는 4대 보험을 지급 안 했어요?


이우창  지금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환희  비정규직법과 비슷하네요.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한다면서 만들었는데, 오히려 더 단기로 계약하게 만들고.


이우창  예. 이 흐름이 기존 정규직의 고용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해요. 테뉴어(tenure: 정년 보장) 받은 교수들은 ‘강사들이 안됐네’라고만 생각하면서 손 놓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강사를 적게 뽑는 대신 그만큼 전임교수들에게 더 많은 수업을 시키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거든요. 지금도 수도권,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많은 대학에서 교수가 1년에 6, 7과목을 가르치는 상황이 됐죠. 그렇게 많은 수업을 맡기는 것은 사실상 연구를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는데 논문 실적은 또 그대로 요구하니까 연구물의 질도 떨어집니다. 한 명이 수업을 몰아서 하니까 수업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가면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는 거죠.

 

김환희  왜 이 법은 2년이 넘도록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태로 유지된 걸까요?


이우창  일단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습니다. 교수 집단 같은 경우는 국회의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시간 강사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거의 없죠. 또, 시간 강사 같은 경우는 노조 조직화가 잘 안 되는 부문인데, 왜냐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개인적으로 위험을 감당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사유로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강사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시간 강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두 노조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고요.

 

김환희  관련해서 질문 드리자면, 대학원에서의 강사나 연구자들의 지위가 어떻게 되나요? 시간강사법이 개인의 생활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이우창  석박사급 대학원생들이 지난 10년간 10만 명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학위장사를 위한 곳들을 포함해서 대학원의 수가 급작스럽게 늘어난 게 한 이유죠. 이 상황에 비례해서 각 대학에서 교수를 뽑는 자리는 그만큼 늘었냐 하면 그건 아니고. 오히려 최근 몇 년 동안은 부실 대학 정리나 구조 조정을 이유로 교육부가 재정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어요. 출생률 저하로 수요는 줄어들고 공급량은 늘어나니까요. 이에 따라, 대학원생의 경제적인 여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시간강사법은 그걸 더 극단화시키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김환희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이 그런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공급량은 왜 안 줄어들까요?


이우창  어차피 학부를 졸업해도 취직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는 게 한 가지 이유일 겁니다. 스펙을 쌓는 이유는 이것이 취업에 꼭 필요해서 한다기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거라도 하자는 데 있죠. 지금 상황으로는 취업이 불가능해 보이고, 학위를 얻으면 추후에 작은 이득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환희  이 법이 생기기 전에는 연구자로서의 자급자족이 가능했나요?


이우창  완전히 자급자족하기는 힘들고요. 각자의 경제적 배경을 논외로 하면, 일단은 강사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사이에 큰 격차가 있죠. 물론 학력과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고요. 지방시에서 보듯이 ‘스카이’가 아닌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면 강의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많이 낮아져요. 지방대에서도 자기 학교 출신이 아닌 스카이 출신의 학벌을 원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하고요. 지방시 저자의 경우도 4대 보험을 위해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월 60시간씩 일하잖아요. 사실상 ‘투잡’을 뛰는 거죠. 이도 저도 힘들면 결국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하죠. 대부분 대학원을 택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가족들이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면 공부를 시작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그나마 낫긴 하지만 부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교사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아도 돼요. 이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내 몸만 책임지면 돼’라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택할 수 있었죠. 만약 부모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다면, 대학원을 택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환희  이제 가정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진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네요?


이우창  네. 그렇지 않으면 빚을 내서 메꾸는 경우도 많고. 서울대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도 높고 대학 중에서도 한국의 많은 자원들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유리한 편인데, 그럼에도 그런 상황인 거죠.

 

김환희  서울대는 펀딩이 많은 편이죠?


이우창  훨씬 많죠. 연구 목적 등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펀딩도 많고. 법인화되면서 자체 예산도 엄청나게 늘었어요. 법인화를 추진했던 사람들의 주요 명분 중 하나가 법인화를 통해 예산과 자율성을 대폭 증대해서 서울대를 한국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놓게끔 한다는 거였죠. 동경대, 예일대나 하버드와 같은 수준의 대학교와 국제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하게 해야 한다는 명목하에서요.

 

김환희  그렇게 펀딩이 많으면, 대학원생들 학비도 무료로 해 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우창  그 정도로 많진 않다는 거죠. (웃음) 건물 비용 등으로 많이 나갔어요. 한국의 대학들 사이에는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겠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어요. 서울대의 경우 대부분의 학과에서 본교 출신들에게 박사과정은 외국에서 하고 오라고 조언해요. 우리는 박사를 키우지 않으니 밖에서 커서 오라는 거죠.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박사과정의 포기에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석사과정은 그만큼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운영은 되고, 소요되는 비용은 들어오는 학생들이 부담하니까 할 만하지만, 박사과정부터는 과에서 학생에 대한 더 큰 책임감도 필요하고 신경 쓸 일도 많아지니까 차라리 ‘네가 교수 루트를 타고 싶으면 유학을 가라’ 하고 외주를 맡기는 거죠.

 

김환희  인문대 쪽도 마찬가지인가요?


이우창  네. 서울대 인문대 박사과정을 졸업했을 때 제대로 된 임용을 노려 볼 수 있는 학과는 많지 않습니다. (국)사학과, 국문학과나 동양철학 같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학을 권하고, 대학원 커리큘럼 자체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데도 있죠. 국사, 국문학과 같은 경우는 대신 굉장히 보수적인 학내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해당 과의 지인도 스스로 “우리는 전근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저는 지금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대학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50~60대 교수들, 정년 보장을 받고 각종 보직을 맡은 교수들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기회가 있었을 때 교육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꼴이 되지 않게 했었어야죠.

 

김환희  대학원생들의 인권 문제는 어떤가요?


이우창  서너 개의 유형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돈 문제와 진로의 불확실성이에요. 당장 학위 과정을 시작하면 등록금을 계속해서 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만큼 장학금이 충분히 나오냐 하면 대부분 그건 아니거든요. 전액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해 준다고 하더라도, 생활비는 따로 벌어야 하고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노동을 해야 되고, 노동을 한 만큼 공부 시간은 줄어들잖아요. 그것 때문에 과로사하는 케이스라던가, 아니면 나는 대학원에 와서 몇 년이 지났는데 일만 하느라 공부를 못 했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고요.


그리고 가장 고전적인 문제 유형이 교수와 학생 간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각종 문제들이죠. 학생들의 권리를 이 정도까지 지켜 줘야 한다는 문화적인 합의도 없고 제도적 장치도 없다 보니, ‘인분 교수’처럼 막나가는 교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죠. 극단적인 경우 한 교수가 이 학생을 망가뜨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이 교수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이 분야에 발도 못 붙이게 할 수 있어요. 최근 대학원에서 인권 가이드라인이나 권리장전을 체결하는 작업들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 고등교육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는 데다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학이 알아서 돈을 벌라는 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됐던 것 같아요. 동시에 재정 지원을 무기로 해서 대학들을 컨트롤하고 있는 올드한 스타일은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논란의 대상인 프라임 사업이나 코어 사업 이름을 보면, CORE 사업은 마치 인문학을 융성시키기 위한 선심성 지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육부 발표자료의 구체적 대목을 살펴보니 모순된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평가 지표 중 ‘정원 감축 계획을 제출한 대학에 대해 가산점(3점)을 부여’하고 ‘융복합 교육과정을 지원한다’는 대목들은 코어 사업이 프라임 사업과 마찬가지로 결국 인문학과 구조 조정을 꾀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등이 그렇습니다. 크게는 ‘대학을 재벌의 요구에 맞춘 노동력 공급소로 개조하라’는 흐름이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프라임 사업이 뭔가요?) 아주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2014년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에서 보고서 하나가 나왔어요.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이라고 한국의 산업 수요 예측을 하면서, 인문계 쪽 인력은 남아돌고 코딩을 포함해서 이공계쪽 인력이 앞으로 부족할 거라는 얘기였죠. 그래서 이런 예측에 맞게 인력을 키워 내는 역할을 대학이 해야 한다는 주문이 교육부에 들어왔고 갑작스럽게 인문계 대상 코딩교육, 프라임 사업 등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 커리큘럼을 다 뜯어고치는 작업이면 최소 3, 4년 이상은 준비되어야 하는데, 1년도 안 돼서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지금 박근혜 정권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크게 보면 대기업의 요구 사항을 정부가 받아서 교육부를 통해 대학들을 움켜쥐는 식인데, 각 대학의 재정이 궁하니까 교육부의 요구가 매우 잘 먹힙니다. ‘학과를 통폐합해서 인문계 정원을 줄이거나 이공계 쪽을 많이 늘리면 늘린 만큼 돈을 줄게’ 이렇게 말하는 프라임 사업이 교육부에서 대학에 가장 많은 돈을 지원하는 사업 중 하나입니다. (프라임 사업이란, 인문계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는 것을 권장하는 거예요?) 그런 것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에서, 일종의 이공계 융합 학문을 만들라는 거예요. 코딩교육이 사실 그 맥락이죠. 인문사회계 애들을 당장 다 치워버릴 순 없으니까, 또 싼값에 일하는 코딩 프로그래머를 양산해야 하니까. ‘어차피 취업 못 하는데 이쪽으로 돌리면, 저가 인력이 대규모로 시장에 유입되지 않겠냐’ 하는 계산이 있는 거죠. 이런 흐름이 인문계 대학원생들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어요. 자기 학과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는 거죠. 대학원생의 경우에 과가 사라지면 일자리도 사라지는 거거든요. 지방대일수록 더욱 심할 거예요. 많은 학교에서 영문과가 사라진다던가. 이번에 인하대에서 철학과를 폐지한다는 발표 이후에 ‘우리 과가 없어지면 인천에는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생 성명이 나왔죠.


➋ prime :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➌ CORE : initiative for COllege of humanities’ Research and Education(대학 인문 역량 강화 사업)



김환희  정말 황당하네요. 이게 한국의 대학이란 거죠?


이우창  유럽의 경우, 정부와 국가의 이해관계를 위해 대학이 만들어졌지만, 대학이 그 이해관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 시민사회에 복무한다는 것이 칸트 이후의 근대 대학들의 중요한 이념이었다면 한국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는 거죠. 애초에 한국에선 대학의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사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요. 한국에서 교육부를 제외하고 대학원의 연구 및 교수 환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단일 집단이 한국연구재단이에요. 각종 장학금과 여러 연구자들에 참여할 수 있는 초거대 프로젝트들을 결정하는 곳이죠. 그런데 이번에 한국연구재단의 이사장이 새로 임명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인문사회계는 30퍼센트가 기초학문을 보전하고 70퍼센트 정도가 기업에 나와서 물건 파는 것을 하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겠냐?” 여기에 시민사회를 위해서 학문과 대학이 무슨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거죠. 프라임 사업이나 코어사업, 그리고 교육부의 인문사회 및 교양 수업 감축에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졸업하자마자 산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력을 키워라. 그런 곳으로 대학의 성격을 바꿔 나가려고 하는 자들의 철학이 관철되고 있는 거죠.

 

김환희  교육계 내부의 토론을 통해서 교육 정책이 추진되는 게 아니라 산업계의 입김이 바로 반영되는 상황인 거네요?


이우창  네. 한국의 정책 결정은 수직적인 모델을 따르잖아요. 청와대의 의지가 장관 임명을 통해서 바로 교육부에 전달되어 오면 교육부는 이를 견제할 의지도 전문성도 없고. 저는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소위 진보적 정권일 때 이런 견제 장치를 제도화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실현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권 입장에서는 대학 운영에 관여할 수 있다면 한국 교육 전반을 잡을 수 있거든요. 한국 교육의 핵심은 입시에 존재하고 대학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초·중·고 시스템이 뒤집히니까요. 혁신학교가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해도 대입이 코앞에 올수록 뭔가를 해 보기가 힘들어지잖아요? 이 중앙집권적이고 수직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끊고 대학의 연구 운영과 대학의 재정 상황에 대해 자율성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진보 정권 10년 동안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국식 중앙집권적 모델이 그대로 남았죠.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재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권이 들어서면 이 사람들은 칼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거죠.

 

김환희  학포자 이야기, 잔혹 동시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셨는데, 초·중·고 전반을 포함해 교육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있나요?


이우창  한국의 초·중·고 교육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시민교육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나 근로계약서 관련된 내용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있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의 초·중·고대 과정 자체가 학생을 자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 좋은 잘 다듬어진 톱니바퀴와 나사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죠.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곁에 있는 다른 시민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서로 간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정권이든 기업이든 더 큰 힘의 불합리한 작동을 견제하는 시민이 되는 교육이나, 어떻게 하면 자유로우면서도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시민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한국 교육을 살펴본다면…… 저는 이런 내용을 공식적인 커리큘럼에서 배운 적이 전혀 없네요.

 

김환희  그렇지만 우창 씨는 사실 그러한 초·중·고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 아니었나요?


이우창  물론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교육적 뒷받침이 거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있었죠. 대학을 가면 초·중·고 때의 모든 불만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잖아요. 저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대학에 와서 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랑 뭔가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저희 세대(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을 다닌 세대)부터 학내의 자치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고, 지금의 인력 양성소 모델로 굉장히 빠르게 바뀌었어요.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게 대학이 맞는 건가라는 문제의식이 생겼죠. 그렇게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와 공부하면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부품 생산으로서의 교육, 인적 자원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학생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교육,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하는 교육,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지 알 수 있는 통찰력을 주는 교육, 옆에 있는 다른 시민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교육, 그런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었어요.

 

김환희  중간에 우창 씨 세대에서 변화한 지점을 말씀해 주셨어요. 혹시 그런 세대 의식을 주변의 비슷한 또래들에게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나요?


이우창  저희 세대에서 윗세대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조직에 들어가더라도 상사나 교수(교사)들이 자기 아래 세대에게 더 큰 책임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우리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시스템적인 보완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를 좀 더 뽑아 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 이 시스템을 잘 만든 것도 아니면서 우리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어떤 필드에 가도 다 있는 것 같아요.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 나중에 올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거죠?) 몇십 년 뒤의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나 조직이 어떻게 될 거냐는 고민이 놀랄 정도로 없는 거죠.

 

김환희  본인의 연구자로서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이우창  교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겠죠? 이제는 대학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대학원에 들어오는 게 맞는 시대인 것 같아요. 대학 바깥에서 어떤 일을 할 건가 계속 고민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죠. 저는 교수라는 직업적인 전망을 갖지 않더라도, 공부를 계속하며 사회나 문화를 분석하는 시선을 갖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의미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지적인 역량을 갖추고 싶어요. 대학원 문제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사회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환희  네. 그 뜻이 이루어지길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우창  중요한 문제인데 한국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고등교육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대학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학 이후 과정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과 그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고등교육을 지식 생산 과정과 지식 생산자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합친 것으로 정의한다면, 거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에 둔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럼 점에서 고등교육 문제를 단순하게 누군가 어떤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 혹은 교수 집단 일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장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10년, 20년의 미래가 아주 많이 바뀔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대학원 내 인권 침해 문제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이에 관해선 이우창이 국가인권위와 작업한 〈대학원생 연구 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 보고서를 읽어 보시라. 만화를 통해서 생생한 사례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겐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을 추천한다.


➍ 국가인권위 홈페이지 인권 정책 자료 항목(humanrights.go.kr/03_sub/body02_4.jsp)의 232번 게시물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이우창은 서울대인권센터연구팀에서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조사 보고서〉 작성에도 참여했다. 충격적인 사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이쪽이 좀 더 많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서울대학교인권센터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hrc.snu.ac.kr/information/data.php?bm=v&bbsidx=1644)

➎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홈피에 게재되어 있다. (krgs.org/index.php?mid=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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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