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계삼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성장 시대의 종언이라는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정치인 이계삼의 알리바이
때와 곳 2016년 1월 29일 서울 마포 카페 본주르
인터뷰어 정용주 서울 염경초, 본지 편집위원장
기록·정리 이진주 기자
사진 최승훈 기자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용주 선생님은 교육공동체 벗의 창립 멤버이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했고, 특별히 《오늘의 교육》이라는 제호를 작명했습니다. (웃음)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출범식 때 나온 표현인데 선생님께도 딱 맞을 것 같아서 따와 봤어요. 저 역시 평소 선생님을 “개구리 같은 무덤덤함과 초연함, 벌레 같은 우직함과 자기 확신”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웃음) 이번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것을 계기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인사 한 말씀 하시죠.
이계삼 지금까지 저는 주로 글과 말을 통해 정치나 국가, 그리고 권력의 선용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왔었죠. 풀뿌리, 자치, 단결, 협동만이 대안이고, 권력을 갖기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좋은 모델을 만들어 우리 안에서 퍼져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권력이나 정치의 힘에 기대서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망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랬던 사람이 밀양 송전탑 싸움 4년 만에 원래의 진로와 다르게 정치의 길을 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저 자신도 그런 변화가 전혀 실감이 나지 않고요. 그래서 인사라기보다 오늘의 대화를 통해 제가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알라바이를 어떻게 풀어 놓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웃음)
정용주 사실 전 조금 다른 생각을 했었는데요, 하나는 정치권에서 선생님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선생님이야말로 정치를 해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계삼 언제부터요?
정용주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할 때부터요. 그 싸움의 과정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이 결국 정치가 아닌가 생각했고, 그게 선생님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민주당의 은수미 의원의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수미 의원이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활동으로 구속된 경력도 있는 등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잖아요. 처음에 정치권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두 가지 면에서 고민이 있었다고 해요. 한 가지는 운동권에서의 경험을 스펙으로 삼아서 정치를 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때문에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이미 너 정치를 하고 있잖아!” 그 대답이 정치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존 정치와 아닌 것을 너무 도덕적으로 엄격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이계삼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네요. (웃음)
정용주 원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학교도 그만둔 건데, 그때 마침 송전탑과 관련한 현장을 만났고, 그 싸움을 하다가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까지 된 셈이죠. 아까 선생님의 감회를 잠깐 들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이계삼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 옆지기는 막막한 표정을 지었어요.
송전탑 싸움을 했던 지난 4년 동안 학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살았거든요. 거의 뭐 사생활이 없었으니까요. 엄청난 실무를 처리해야 했고 짬짬이 글도 써야 했죠. 지난해 연말이 10주년 투쟁을 마무리하는 시기였는데, 그러고 나면 한숨 돌리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정치를 하게 된 거죠. 하지만 이것 역시 송전탑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해 줬어요. 아들 녀석도 좀 코믹하게 정리했지요. “밀양 시내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선거 유세는 하지 말아 달라”고요. (웃음)
정용주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정치를 안 하는 것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해 놓았다고. 그때 정치나 정치권에 가진 생각과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된 지금, 정치에 대해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계삼 저는 원래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다만 정치 엘리트들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를 하자라는 문제의식이었죠. 물론 제도권 정치의 향방이 엄청 중요하다는 자각은 계속 해 왔어요. 비유컨대 이런 것이죠. 송전탑 싸움을 할 때 마지막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동안 4개 움막에 모여서 숙박 농성을 했어요. 행정대집행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 버티면서 언론과 세상에 우리 요구를 전하겠다는 일종의 마지막 거점 투쟁이었죠. 할머니들이 짧게는 사나흘씩, 길게는 한 달씩 집에도 못 가고 움막에서 지내셨어요. 그런데 그 농성의 값어치가 국회 상임위에 하나의 안건으로 올라가는 것과 그 무게가 맞먹는 거예요. 상임위에 올라가면 행정대집행을 연기하고,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한전에 대화를 권고하는 권고안을 채택하는 게 가능한 거죠. 아무리 우리가 긴 시간 동안 힘들게 농성을 해도 정치권이 그런 결의를 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거고, 결국 실제로 끔찍하게 진압을 당했죠. 제가 정치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저는 정치를 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도 있었지만 내 비록 세상에서 험한 일들을 해 왔지만 정치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는 저 스스로의 고고함도 있었어요. 그런데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계속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절박함에 공감했고,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내 자신의 체모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그리고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이 된 후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고, 그렇게 지난 두 달은 제 자신이 정치 주체화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선거에 나올 때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용주 어떤 면에서는 인간 이계삼이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쳐 놓은 바리케이드나 마지노선을 부수고 영역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비례대표 후보가 된 지금 기성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요.
이계삼 기존의 양당에 대해서는 판단이 비슷할 텐데, 그 외의 정의당이나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과 녹색당이 뭐가 다른가를 보여 줘야 하잖아요.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녹색당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외 정당으로서 언론의 주목도 전혀 받지 못하고 무언가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녹색당이 해 온 것도 굉장히 많아요. 예컨대, 녹색당은 진성 당원 비중이 가장 높아요. 정당이 작아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녹색당보다 더 당원 수가 적은 노동당보다도 진성 당원 비율이 높아요. 그리고 또 자랑하고 싶은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 당원 비율이 높다는 점이에요. 저는 정치의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은 당직자나 활동가 중에도 여성 비중이 굉장히 높고, 실제로 녹색당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 당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녹색당은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의 대의원을 추첨식으로 선출해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어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이렇게 바꾸자는 약속을 현실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인데, 그 약속을 하는 사람의 자기 정당성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녹색당은 민주적 절차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당 내에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언술적 차원에서 녹색당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장 시대의 종언’이라는 시대정신입니다. 강령만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압축적 경제 성장에 대해 칭송하고 있고 ‘IMF 외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부작용이 나왔다’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돼 있는 원인 진단과 해석을 내놓고 있어요. 상식 수준도 안 되는 경제 인식을 강령으로 삼고 있죠. 정의당 역시 ‘모두를 위한 경제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런 경제 성장에 대한 판단이 시대정신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기초이고, 이게 기존 정당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에 대한 이해와 오해
정용주 방금 선생님의 이야기 중에 그다음 질문이 들어 있는데요, 녹색당 당헌 당규와 정책 공약집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녹색당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치 진영의 일부이지만 탈성장 담론을 주장하는 유일한 정당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하나는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상상력이 그것을 못 벗어난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누구는 포용적 성장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동반성장이라고 하는 등 언어는 다르지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성장이 되어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게 기본 인식 같아요. 그런 인식에 균열을 내는 게 녹색당이죠. 녹색당의 정책 공약집을 보면 첫 번째 과제가 바로 “경제 성장에 매몰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균열을 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탈성장 패러다임이 선순환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엇박자가 날 수도 있잖아요. 녹색당이 추구하려고 하는 탈성장 패러다임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계삼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대의제민주주의에서 선거 때 표를 얻지 못하면 모두 다 ‘꽝’이니까요. 저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같은 표현은 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성장이 안 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모든 경제 지표가 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 주고 있죠. 일단은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되고, 그다음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죠. 사람들은 성장이 끝났다고 하면 재앙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육 불가능 담론도 마찬가지예요. 학교교육이 안 된다는 거지 궁극적으로 교육적 가능성이 끝났다고 종언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맥락의 차이를 설명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성장이 끝났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근대 산업기술문명 시대에서 인간적 삶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정용주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요,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다 보니까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거죠. 최근에는 다른 정당들도 환경이나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정의당도 그동안 부분적으로 이야기하던 환경, 생태, 녹색, 에너지를 이번 선거를 통해 메인 이슈로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새누리당 같은 보수 정당조차도 생태나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녹색당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는 없나요?
이계삼 일단은 환영해요. 녹색당은 기본적으로 권력 의지에 기반한 정당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꼭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존 정당과 중요한 차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다른 정당들이 환경이나 생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단지 선거를 위한 언술적 차원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정책의 한 세션으로 생태나 환경을 다루는 게 아니라 체제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시대정신과도 수미일관해야지요. 덧붙여 성장 경제와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만날지에 대해서도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용주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녹색당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절대 빈곤선 밑에서 허덕이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 녹색당이 환경 문제 외에 노동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지난 1월 13일 녹색당이 삼성전자의 직업병, 서울메트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대해 내놓은 논평을 보니 아주 선명하더군요. 제목이 “일하다 죽는 세상에서 어떠한 푸르름도 무효다”였지요? 노동 관련한 문제를 포함해서 녹색당의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죠?
이계삼 선거를 준비하면서 제가 기획하고 있는 글이 있어요. ‘녹색당의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글인데요, 이걸 기획하게 된 배경은 이런 거예요. ‘녹색당에 해고 노동자나 철거민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녹색당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념의 길을 따르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친구의 말을 듣는 것은 쉽죠. 녹색당이 노동 문제에 무관심하고 환경 이슈에만 치중하는 정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그들의 투쟁에 연대를 해야 하죠. 실제 저 자신도 그 연대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려고 노력해 왔고, 녹색당 역시 쌍용차 등의 싸움에 함께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규직 완전 고용을 전제로 한 고용 모델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요새 회복적 정의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해고 노동자들의 회복적 정의도 지지하고 연대도 해야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흐름은 자동차 산업 같은 지속 불가능한 사업이 아니라 녹색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를 놓고 보면, 100만kw급 핵발전소가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는 500명 내외인데, 그것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자리는 그 4~100배가 넘는다는 거죠.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고용을 회복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체가 돼서 우리 사회의 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녹색당이 생각하는 적록연대고, 정치학입니다.
정용주 생태나 환경 문제와 노동 문제를 꼭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먼 데서 생산돼서 오기 때문에 내 문제로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우리의 삶과 연결해서도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핵발전소 문제가 잔업이나 철야 등 노동 시간 연장이나 노동 착취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환경 문제와 현재 우리의 삶을 연계시키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이계삼 적극 동의해요. ‘녹색 정치’라는 게 한국에서는 정말 시작 단계죠. 후쿠시마 사태로부터 녹색운동의 정치 세력화가 대두되었는데, 지금까지는 당위 수준에서 이야기되었다면 이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각론과 녹색 정치의 당위가 연결되어야죠. 핵발전소와 우리의 노동 문제를 이어서 생각해야 하고, 공장식 축산 역시 우리의 먹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죠. 하지만 그 출발이, 이를테면 핵발전소가 위험하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식의 공포 담론은 아니에요. 그런 네거티브 정치는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하고 녹색당이 지향하는 낙관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반 일리치는 “욕구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산업기술문명 체제에서 발명된 욕구이다”라고 이야기해요. 핵발전소의 작동 원리가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생산된 전기를 써야 하기 때문에 심야 노동이 장려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죠. 그걸 정치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용주 녹색당 정책 공약집을 보면 모두 6개 부문에서 22개의 의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 부문이 ‘칸막이를 넘는 삶’이고 그중 기본소득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계삼 보편적 복지에서 ‘복지 국가’냐, ‘복지 사회’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이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은 복지 사회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인 거죠. 이를테면 기본소득을 복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뗏목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본소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세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하고요.
정용주 정책 중 두 번째 부문으로 ‘부를 나누고 힘을 모으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부 항목을 보면 방금 말씀하신 조세 개혁부터, 부동산 문제, 도시 교통 문제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의문을 갖기 쉬운 내용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세부 항목 중에 ‘수출 중심의 탄소 경제에서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게 이런 거죠. ‘한국은 자원이 없잖아. 그러니 먹고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출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에게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한다는 게 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계삼 이를테면, 한국이 자동차 산업, 전자 산업으로 먹고사는데 그건 기본적으로 값싼 전기 덕분이잖아요. 원가에서 전기 요금이 차지하는 게 1%가 안 돼요. 깜짝 놀랄 수준이죠. OECD 중에서도 가장 낮고, 일본과 비교해도 1/3수준이에요. 지금 한국의 에너지의 양대 축은 화력발전과 핵발전소인데요, 그런데 석탄을 때거나 우라늄을 떼는 데 세금이 붙지 않아요. 섬진강이 있는 경남 하동의 미세먼지 수준이 공업단지인 창원보다 높아요. 왜 그렇겠어요. 화력발전소 때문이에요. 그렇게 생태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데 당연히 세금을 붙여야 하고 자연스럽게 산업용 전기 요금을 인상시켜야 하죠. 그럴 때 생기는 수출 충격에 대해 연착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정치의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생태세를 부과했을 때 생겨나는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주자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벗어나서 귀농을 할 수도 있고, 동네에서 빵집을 할 수도 있겠죠. 기타 등 악기를 배우는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타 학원도 생겨나는 등 다양한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고요. 이런 구조로 바꾸자는 거죠.
정용주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농업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중의 하나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업은 희생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어떤 나라와 FTA를 체결하더라도 농업 부문에서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배경에는 한국의 압축식 성장이라는 역사적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농업을 희생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농민과 노동자가 연대하기 어렵고요. 어떤 면에서는 좀 풀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 농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계삼 결국 기승전기본소득이 되는데요,(웃음) 서구 국가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지요. 왜냐하면, 다른 산업과 비교해서 농업이 차지하는 배타적 가치가 있어서예요. 식량이기 때문이죠. 농업은 당연히 국가가 보호, 육성해 줘야 하는 첫 번째 산업이에요. 물론 어려운 문제일 수 있어요. 일반적인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슈마허가 쌀 한 가마와 공산품, 호텔 숙박료를 비교하며 농업의 가치를 역설한 적이 있는데요, 결국 농업이 가지고 있는 배타적 가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어요. 이에 대한 교양과 설득이 바로 국가와 정치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기본소득의 논리도 정당화되고요. 녹색당은 단계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데, 1단계가 농민, 어민, 노인, 청년, 청소년에게 먼저 주자는 거예요. 거기에 농민이 들어간 건 너무 자연스럽다고 봐요.
교육의 녹색화, 삶을 위한 교육과정

정용주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교육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일단 녹색당의 교육 공약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려요.
이계삼 첫 번째는, 교육과정 혁신을 위한 교육 혹은 배움의 녹색화인데요, 교육과정에서 인지 교과를 축소하고, 목공, 농사, 요리 등의 삶의 기술을 배양하는 교육과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청소년과 청년 같은 배움 주체들의 사회경제적·정치적 권리 보장에 대한 내용인데요, 기본소득 지급, 안식년 보장, 학생회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선거권 만16세 조정, 지역별 청소년위원회 구성 등이 핵심입니다. 세 번째가 평가 체제의 혁신인데요, 초등은 일제식 평가를 전면 폐지하고 학급 단위의 성취도평가만 실시하고, 중등은 일상적인 관찰과 대화의 내용을 기록하는 학생성장기록부로 바꾸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제안한 학생이력철과 유사하죠.
정용주 평가는 진학과 취업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해 상대적인 점수를 관리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평가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대학과 고등학교 공부를 분리시켜서 고등학교까지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대학에서부터 전공을 배우는 거죠.
이계삼 평가 체제는 종합학교 체제와 같이 가는 건데요, 종합학교에서는 수치로 계량화된 평가와 그로 인한 서열화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자는 게 녹색당의 주장이에요. 그 외 교육 관련한 공약으로는 교원양성과정 관련해서 교·사대 6년제 전환, 임용 시험 폐지, 사대도 교대처럼 목적형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6년제 전환의 핵심은 3-2-1 제도인데요, 3년은 대학 수업, 2년은 현장 실습, 1년은 자율 체험을 하는 방식입니다.
정용주 이것 외에 탈학교 학생들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내용도 있는 것 같던데요.
이계삼 있습니다. 공교육의 개념을 확장해서 평생교육과 대안교육에도 공교육과 똑같은 차원의 지원을 해 주되 자율권을 인정해 주는 내용입니다. 배움은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정용주 녹색당의 교육 정책이 지향하는 철학과 방향을 한마디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선생님이 이미 《오늘의 교육》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가주의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적 연대 의식을 높이는 녹색교육을 실현해 가자는 뜻이라고 봐요. 이게 녹색당의 고유한 가치인 ‘생태적 현명함’, ‘사회적 정의와 다양성 추구’,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분권화’ 등의 가치와도 연결되고요. 하지만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구체화하는 데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게 교육 체계와 교육과정의 전환이거든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결국 교육과정에서 핵심은 주지 교과잖아요. 교과 중심을 최소화시키고 나머지는 삶과 연계해서 프로젝트식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교육공동체 벗의 지향이기도 하고 저 개인적 바람이기도 한데 ‘교육의 생태적 전환 연구소’를 만들어 긴 안목으로 새롭게 교육과정을 짜 보고 싶고, 여기에 녹색당도 함께해 주시길 제안드립니다.
이계삼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교육과정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혁신학교에서도 ‘어떻게’ 가르칠까만 생각하는데, 사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이죠.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게 교육 불가능의 중요한 출발점이잖아요.
정용주 혁신학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2014년도에 〈한겨레〉에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라는 글을 써서 혁신학교 교사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으셨죠. 그런데 실제로 지금 학교 현장을 보면, 혁신학교가 기존의 연구학교 모델처럼 내용보다는 양적으로만 확산되고 있어요. 이전에는 학교로만 확장을 했는데, 지금은 혁신학교 2.0이라고 해서 마을로 가겠다고 하고 있죠. 하지만 교사나 학교의 자율성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관이 나서서 재정 지원을 하고 기계적으로 추진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겨레〉에 쓴 칼럼을 보면서 오히려 굉장히 완화시켜서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계삼 제가 그 글에서 썼던 혁신학교에 대해 판단은, 그때 현장 교사들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2012년부터 2013년도까지 2년가량 서울과 경기 지역의 혁신학교에 강의를 많이 다녔거든요. 그때 강의에 온 교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쳐 있다.” “갈수록 동원형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지속 가능성에 대해 자신이 없다.” “열심히 했는데 결국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여하더라.” 그런데 막상 그런 비판을 언어화했을 때는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거죠. 뭐랄까요. 제도가 너무 인격화돼 있어서 제도와 체제에 대해 비판하면 거기에 속해 있는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정용주 제도 개혁 운동을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지역과 혁신학교운동을 관찰하다가 느낀 게 있어요. 관료제를 비유할 때 두 가지 모델이 있는데, 하나는 나치나 프러시아 모델이고 또 하나는 오케스트라 모델이에요.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지역의 교사나 관료들은 자신들을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하고, 관료제 체제를 깼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작동 원리는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이계삼 총칼 든 군인에서 악기를 든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거죠? 재미있는 비유네요.
정용주 보육과 관련해서는 ‘보육의 공공성’을 넘어 ‘인권보육’을 실현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인권보육’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계삼 만약 녹색당이 원내에 있었다면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겁니다. 교육 노동자의 노동을 CCTV로 계속 관찰한다는 것은 굉장히 끔찍한 일인데, 안전 담론과 공공보육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감시 체제가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감시 체제가 강화될수록 사각지대도 더 커지는 법이잖아요. 최대한 보육 주체의 자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고, 그 외 먹거리 등을 포함해 제대로 된 보육을 하기 위한 지원은 사회가 해 주는 것이 ‘인권보육’의 시스템입니다.
정용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피해 당사자들을 보호하고 재발을 막을 것이냐’가 중요해지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감시의 대상이 되는 거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녹색당 논평을 보면 정치권이 벌인 전쟁에 보육 현장이 쓰러진다고 하면서 누리과정 문제를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지방의회 등의 입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던데요.
이계삼 교육도 그렇지만 보육도 당사자인 부모와 아이 입장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보육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하죠. 누리과정 역시 결국 예산 집행의 주체가 누구냐, 재원을 누가 댈 것이냐 이런 것만 강조되고 있는데, 좀 안타까워요. 지금은 마치 비용만 해결되면 그 외의 문제들, 그러니까 CCTV 의무화나 먹거리, 놀이 환경, 교육 노동자의 감정 노동의 문제는 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되어 버리죠. 가장 중요한 건 보육과정, 교육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아닌가 싶어요.
정용주 방금 말씀하신 게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서도 중요한 주제라고 봐요. 학교에서도 ‘보편적 복지’ 하면 무조건 돈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돈을 국가에서 대기만 하면 나머지 프로그램은 다 문제없는 걸로 인식하는 거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밥을 먹고, 어떻게 놀고, 어떻게 배울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동물에 대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정용주 녹색당 공약 중에 제가 관심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생명권과 동물권이에요. 먹거리에 대한 문제에서 채소까지는 우리 것을 먹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육류는 대부분 외국산이고, 국내산이라고 하더라도 공장식 축산에서 온 거라는 데는 아직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계삼 원산지가 국내라 하더라도 사료는 수입된 GMO라 사실 아무 의미가 없죠.
정용주 이번 공약을 보면 ‘헌법에 국가의 동물 보호 의무 명시’, ‘생태적 도시 정책’, ‘공장식 축산의 동물 복지 축산으로의 전환’, ‘동물 학대 제로 사회’, ‘야생 동식물 서식지의 보존과 복원’ 등 5대 정책 목표를 제시했고 비례대표 1번도 〈잡식 가족의 딜레마〉, 〈어느날 길 위에서〉를 만든 황윤 감독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3일에는 동물권 선본이 출범하기도 했죠. 국가가 동물 보호 의무를 명시하게 되면 당연히 동물과 함께 사는 생태적 도시에 대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생태적인 도시 정책과 야생 동물의 서식지의 보존과 복원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내용이네요. 도시의 확장 자체가 근본적으로 거부되는 것이니까.
이계삼 동물 헌법의 문제의식은, 민법상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는데 그것을 생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에요. 굉장히 중요한 변화죠.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인격과 존엄까지도 격상시킬 수 있다는 첨단의 문제라고 봐요.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문제는 비용이나 선후관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죠.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현실적으로도 공장식 축산이 야기하는 비용은 엄청나요. 생명 학대와도 관련돼 있지만 생명이 있는 존재를 잔인하게 대하면서 인간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잖아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태적 비용도 엄청나죠. 소가 발생시키는 메탄가스가 온난화의 주범이기도 하고, 공장식 축산이 농업의 다양성을 파괴시키고 있고요. 그로 인한 비만, 성인병 등의 건강상의 문제도 심각하고, 육식 위주의 먹거리 문화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이 정크 푸드를 많이 섭취하면서 건강 지표에서도 계급적 격차가 발생하게 돼요. 그리고, 도시를 인간적으로 구성하는 데서도 동물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요. 지금 많은 반려 동물들이 유기되고 있는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동물 복지이지만 곧 인간 복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권은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적 윤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인간적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는 거죠.
정용주 동물권 선본 출범식 때, 간디가 이야기한 “동물에 대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는 멘트를 인용했더군요. 지금까지 생명권에 대한 논의는 소수자, 이주민, 범죄자, 장애인 등에서 멈추고 말았는데 동물을 중심으로 생명권을 사고하게 되니까 약자에 대한 태도도 자유롭게 구성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생명권에서 동물을 배제시키면 인간 중에서 가장 약자들이 ‘동물’이 되는 거겠죠. 그 외 세부 공약들 중에서는 성평등과 관련해서 인터섹스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보통은 성소수자 문제에서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까지는 들어가는데 인터섹스의 성별 정정화 문제까지 들어가 있는 것은 처음 봤어요. 이 부분에서는 지금 정당들 중에 가장 래디컬한 것 같아요.
이계삼 사실 이건 단계적으로 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 당사자인데. 저는 래디컬한 게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정용주 진보 교육감들을 인터뷰하면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동성애 문제에 대해 좀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학교에서 동성애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뭐 이런 관점이죠. 하지만 저는 이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쟁점이 아니다’라고 하는 순간 보수 진영의 담론에 먹혀 버리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조항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 있다고 봐요.
이계삼 그렇죠. 동물권처럼 당사자들의 인권과 존엄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인권과 존엄과도 관련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은 산으로 간다”
정용주 지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세요? 전형적인 파시즘적 상황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박근혜 정부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이계삼 밀양 송전탑 싸움을 겪고, 또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망했다’라고 생각했어요. 녹색당 비례대표 출마의 변을 쓸 때도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송전탑 싸움을 되짚어 봐야 하니까. 제가 이 정도인데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서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기본적으로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라는 전제에서 우리의 모든 대화와 소통, 정치의 과정까지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이나 해고 노동자 같은 타자의 마음에 가 닿으면 위로나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체념과 절망이 먼저 떠오르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네 마음의 자리에 서는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외면의 기제가 그렇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해요. 하지만, 제가 송전탑 싸움이나 세월호 같은 엄청난 일들을 겪고 그냥 ‘졌다’, ‘패배했다’,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제 자리로 돌아갔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끔은 내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용주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분노의 역류〉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주인공이 떨어지려는 동료의 손을 잡고 난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인데, 동료가 손을 놓으려 하자 이렇게 말하죠. “You go, we go.” 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 거야. 선거에 출마할 때 선생님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리해 온 박주민 변호사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 때 도덕적 갈등이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너 정치하려고 이 사람들 이용했지”라는 이야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해요. 선생님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런 오해를 무릅쓰고도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마지막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이계삼 저는 주로 그동안 교육이나 에너지 문제에만 참여해 왔는데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 영역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일단 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이란 시를 보면 “기다림에 지친 사람은 산으로 간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산으로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산으로 떠밀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것이 ‘협력’, ‘소통’, ‘거버넌스’ 같은 다양한 언술로 표현되지만 그 핵심은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전 잘 싸우고 싶어요. 제가 조리 있게 말하거나 카리스마 있게 사람들을 이끄는 건 ‘젬병’이지만 싸우는 건 잘해요. 특히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싸울 자신은 있습니다.(웃음)
인터뷰/ 이계삼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성장 시대의 종언이라는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정치인 이계삼의 알리바이
때와 곳 2016년 1월 29일 서울 마포 카페 본주르
인터뷰어 정용주 서울 염경초, 본지 편집위원장
기록·정리 이진주 기자
사진 최승훈 기자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용주 선생님은 교육공동체 벗의 창립 멤버이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했고, 특별히 《오늘의 교육》이라는 제호를 작명했습니다. (웃음)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출범식 때 나온 표현인데 선생님께도 딱 맞을 것 같아서 따와 봤어요. 저 역시 평소 선생님을 “개구리 같은 무덤덤함과 초연함, 벌레 같은 우직함과 자기 확신”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웃음) 이번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것을 계기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인사 한 말씀 하시죠.
이계삼 지금까지 저는 주로 글과 말을 통해 정치나 국가, 그리고 권력의 선용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왔었죠. 풀뿌리, 자치, 단결, 협동만이 대안이고, 권력을 갖기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좋은 모델을 만들어 우리 안에서 퍼져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권력이나 정치의 힘에 기대서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망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랬던 사람이 밀양 송전탑 싸움 4년 만에 원래의 진로와 다르게 정치의 길을 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저 자신도 그런 변화가 전혀 실감이 나지 않고요. 그래서 인사라기보다 오늘의 대화를 통해 제가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알라바이를 어떻게 풀어 놓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웃음)
정용주 사실 전 조금 다른 생각을 했었는데요, 하나는 정치권에서 선생님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선생님이야말로 정치를 해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계삼 언제부터요?
정용주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할 때부터요. 그 싸움의 과정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이 결국 정치가 아닌가 생각했고, 그게 선생님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민주당의 은수미 의원의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수미 의원이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활동으로 구속된 경력도 있는 등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잖아요. 처음에 정치권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두 가지 면에서 고민이 있었다고 해요. 한 가지는 운동권에서의 경험을 스펙으로 삼아서 정치를 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때문에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이미 너 정치를 하고 있잖아!” 그 대답이 정치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존 정치와 아닌 것을 너무 도덕적으로 엄격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이계삼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네요. (웃음)
정용주 원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학교도 그만둔 건데, 그때 마침 송전탑과 관련한 현장을 만났고, 그 싸움을 하다가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까지 된 셈이죠. 아까 선생님의 감회를 잠깐 들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이계삼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 옆지기는 막막한 표정을 지었어요.
송전탑 싸움을 했던 지난 4년 동안 학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살았거든요. 거의 뭐 사생활이 없었으니까요. 엄청난 실무를 처리해야 했고 짬짬이 글도 써야 했죠. 지난해 연말이 10주년 투쟁을 마무리하는 시기였는데, 그러고 나면 한숨 돌리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정치를 하게 된 거죠. 하지만 이것 역시 송전탑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해 줬어요. 아들 녀석도 좀 코믹하게 정리했지요. “밀양 시내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선거 유세는 하지 말아 달라”고요. (웃음)
정용주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정치를 안 하는 것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해 놓았다고. 그때 정치나 정치권에 가진 생각과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된 지금, 정치에 대해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계삼 저는 원래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다만 정치 엘리트들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를 하자라는 문제의식이었죠. 물론 제도권 정치의 향방이 엄청 중요하다는 자각은 계속 해 왔어요. 비유컨대 이런 것이죠. 송전탑 싸움을 할 때 마지막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동안 4개 움막에 모여서 숙박 농성을 했어요. 행정대집행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 버티면서 언론과 세상에 우리 요구를 전하겠다는 일종의 마지막 거점 투쟁이었죠. 할머니들이 짧게는 사나흘씩, 길게는 한 달씩 집에도 못 가고 움막에서 지내셨어요. 그런데 그 농성의 값어치가 국회 상임위에 하나의 안건으로 올라가는 것과 그 무게가 맞먹는 거예요. 상임위에 올라가면 행정대집행을 연기하고,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한전에 대화를 권고하는 권고안을 채택하는 게 가능한 거죠. 아무리 우리가 긴 시간 동안 힘들게 농성을 해도 정치권이 그런 결의를 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거고, 결국 실제로 끔찍하게 진압을 당했죠. 제가 정치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저는 정치를 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도 있었지만 내 비록 세상에서 험한 일들을 해 왔지만 정치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는 저 스스로의 고고함도 있었어요. 그런데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계속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절박함에 공감했고,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내 자신의 체모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그리고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이 된 후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고, 그렇게 지난 두 달은 제 자신이 정치 주체화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선거에 나올 때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용주 어떤 면에서는 인간 이계삼이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쳐 놓은 바리케이드나 마지노선을 부수고 영역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비례대표 후보가 된 지금 기성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요.
이계삼 기존의 양당에 대해서는 판단이 비슷할 텐데, 그 외의 정의당이나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과 녹색당이 뭐가 다른가를 보여 줘야 하잖아요.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녹색당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외 정당으로서 언론의 주목도 전혀 받지 못하고 무언가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녹색당이 해 온 것도 굉장히 많아요. 예컨대, 녹색당은 진성 당원 비중이 가장 높아요. 정당이 작아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녹색당보다 더 당원 수가 적은 노동당보다도 진성 당원 비율이 높아요. 그리고 또 자랑하고 싶은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 당원 비율이 높다는 점이에요. 저는 정치의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은 당직자나 활동가 중에도 여성 비중이 굉장히 높고, 실제로 녹색당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 당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녹색당은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의 대의원을 추첨식으로 선출해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어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이렇게 바꾸자는 약속을 현실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인데, 그 약속을 하는 사람의 자기 정당성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녹색당은 민주적 절차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당 내에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언술적 차원에서 녹색당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장 시대의 종언’이라는 시대정신입니다. 강령만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압축적 경제 성장에 대해 칭송하고 있고 ‘IMF 외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부작용이 나왔다’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돼 있는 원인 진단과 해석을 내놓고 있어요. 상식 수준도 안 되는 경제 인식을 강령으로 삼고 있죠. 정의당 역시 ‘모두를 위한 경제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런 경제 성장에 대한 판단이 시대정신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기초이고, 이게 기존 정당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에 대한 이해와 오해
정용주 방금 선생님의 이야기 중에 그다음 질문이 들어 있는데요, 녹색당 당헌 당규와 정책 공약집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녹색당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치 진영의 일부이지만 탈성장 담론을 주장하는 유일한 정당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하나는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상상력이 그것을 못 벗어난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누구는 포용적 성장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동반성장이라고 하는 등 언어는 다르지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성장이 되어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게 기본 인식 같아요. 그런 인식에 균열을 내는 게 녹색당이죠. 녹색당의 정책 공약집을 보면 첫 번째 과제가 바로 “경제 성장에 매몰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균열을 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탈성장 패러다임이 선순환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엇박자가 날 수도 있잖아요. 녹색당이 추구하려고 하는 탈성장 패러다임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계삼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대의제민주주의에서 선거 때 표를 얻지 못하면 모두 다 ‘꽝’이니까요. 저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같은 표현은 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성장이 안 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모든 경제 지표가 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 주고 있죠. 일단은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되고, 그다음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죠. 사람들은 성장이 끝났다고 하면 재앙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육 불가능 담론도 마찬가지예요. 학교교육이 안 된다는 거지 궁극적으로 교육적 가능성이 끝났다고 종언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맥락의 차이를 설명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성장이 끝났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근대 산업기술문명 시대에서 인간적 삶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정용주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요,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다 보니까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거죠. 최근에는 다른 정당들도 환경이나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정의당도 그동안 부분적으로 이야기하던 환경, 생태, 녹색, 에너지를 이번 선거를 통해 메인 이슈로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새누리당 같은 보수 정당조차도 생태나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녹색당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는 없나요?
이계삼 일단은 환영해요. 녹색당은 기본적으로 권력 의지에 기반한 정당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꼭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존 정당과 중요한 차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다른 정당들이 환경이나 생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단지 선거를 위한 언술적 차원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정책의 한 세션으로 생태나 환경을 다루는 게 아니라 체제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시대정신과도 수미일관해야지요. 덧붙여 성장 경제와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만날지에 대해서도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용주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녹색당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절대 빈곤선 밑에서 허덕이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 녹색당이 환경 문제 외에 노동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지난 1월 13일 녹색당이 삼성전자의 직업병, 서울메트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대해 내놓은 논평을 보니 아주 선명하더군요. 제목이 “일하다 죽는 세상에서 어떠한 푸르름도 무효다”였지요? 노동 관련한 문제를 포함해서 녹색당의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죠?
이계삼 선거를 준비하면서 제가 기획하고 있는 글이 있어요. ‘녹색당의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글인데요, 이걸 기획하게 된 배경은 이런 거예요. ‘녹색당에 해고 노동자나 철거민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녹색당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념의 길을 따르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친구의 말을 듣는 것은 쉽죠. 녹색당이 노동 문제에 무관심하고 환경 이슈에만 치중하는 정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그들의 투쟁에 연대를 해야 하죠. 실제 저 자신도 그 연대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려고 노력해 왔고, 녹색당 역시 쌍용차 등의 싸움에 함께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규직 완전 고용을 전제로 한 고용 모델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요새 회복적 정의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해고 노동자들의 회복적 정의도 지지하고 연대도 해야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흐름은 자동차 산업 같은 지속 불가능한 사업이 아니라 녹색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를 놓고 보면, 100만kw급 핵발전소가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는 500명 내외인데, 그것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자리는 그 4~100배가 넘는다는 거죠.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고용을 회복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체가 돼서 우리 사회의 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녹색당이 생각하는 적록연대고, 정치학입니다.
정용주 생태나 환경 문제와 노동 문제를 꼭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먼 데서 생산돼서 오기 때문에 내 문제로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우리의 삶과 연결해서도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핵발전소 문제가 잔업이나 철야 등 노동 시간 연장이나 노동 착취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환경 문제와 현재 우리의 삶을 연계시키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이계삼 적극 동의해요. ‘녹색 정치’라는 게 한국에서는 정말 시작 단계죠. 후쿠시마 사태로부터 녹색운동의 정치 세력화가 대두되었는데, 지금까지는 당위 수준에서 이야기되었다면 이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각론과 녹색 정치의 당위가 연결되어야죠. 핵발전소와 우리의 노동 문제를 이어서 생각해야 하고, 공장식 축산 역시 우리의 먹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죠. 하지만 그 출발이, 이를테면 핵발전소가 위험하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식의 공포 담론은 아니에요. 그런 네거티브 정치는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하고 녹색당이 지향하는 낙관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반 일리치는 “욕구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산업기술문명 체제에서 발명된 욕구이다”라고 이야기해요. 핵발전소의 작동 원리가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생산된 전기를 써야 하기 때문에 심야 노동이 장려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죠. 그걸 정치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용주 녹색당 정책 공약집을 보면 모두 6개 부문에서 22개의 의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 부문이 ‘칸막이를 넘는 삶’이고 그중 기본소득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계삼 보편적 복지에서 ‘복지 국가’냐, ‘복지 사회’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이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은 복지 사회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인 거죠. 이를테면 기본소득을 복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뗏목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본소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세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하고요.
정용주 정책 중 두 번째 부문으로 ‘부를 나누고 힘을 모으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부 항목을 보면 방금 말씀하신 조세 개혁부터, 부동산 문제, 도시 교통 문제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의문을 갖기 쉬운 내용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세부 항목 중에 ‘수출 중심의 탄소 경제에서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게 이런 거죠. ‘한국은 자원이 없잖아. 그러니 먹고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출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에게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한다는 게 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계삼 이를테면, 한국이 자동차 산업, 전자 산업으로 먹고사는데 그건 기본적으로 값싼 전기 덕분이잖아요. 원가에서 전기 요금이 차지하는 게 1%가 안 돼요. 깜짝 놀랄 수준이죠. OECD 중에서도 가장 낮고, 일본과 비교해도 1/3수준이에요. 지금 한국의 에너지의 양대 축은 화력발전과 핵발전소인데요, 그런데 석탄을 때거나 우라늄을 떼는 데 세금이 붙지 않아요. 섬진강이 있는 경남 하동의 미세먼지 수준이 공업단지인 창원보다 높아요. 왜 그렇겠어요. 화력발전소 때문이에요. 그렇게 생태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데 당연히 세금을 붙여야 하고 자연스럽게 산업용 전기 요금을 인상시켜야 하죠. 그럴 때 생기는 수출 충격에 대해 연착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정치의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생태세를 부과했을 때 생겨나는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주자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벗어나서 귀농을 할 수도 있고, 동네에서 빵집을 할 수도 있겠죠. 기타 등 악기를 배우는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타 학원도 생겨나는 등 다양한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고요. 이런 구조로 바꾸자는 거죠.
정용주 순환 중심의 사회적 경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농업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중의 하나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업은 희생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어떤 나라와 FTA를 체결하더라도 농업 부문에서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배경에는 한국의 압축식 성장이라는 역사적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농업을 희생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농민과 노동자가 연대하기 어렵고요. 어떤 면에서는 좀 풀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 농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계삼 결국 기승전기본소득이 되는데요,(웃음) 서구 국가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지요. 왜냐하면, 다른 산업과 비교해서 농업이 차지하는 배타적 가치가 있어서예요. 식량이기 때문이죠. 농업은 당연히 국가가 보호, 육성해 줘야 하는 첫 번째 산업이에요. 물론 어려운 문제일 수 있어요. 일반적인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슈마허가 쌀 한 가마와 공산품, 호텔 숙박료를 비교하며 농업의 가치를 역설한 적이 있는데요, 결국 농업이 가지고 있는 배타적 가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어요. 이에 대한 교양과 설득이 바로 국가와 정치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기본소득의 논리도 정당화되고요. 녹색당은 단계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데, 1단계가 농민, 어민, 노인, 청년, 청소년에게 먼저 주자는 거예요. 거기에 농민이 들어간 건 너무 자연스럽다고 봐요.
교육의 녹색화, 삶을 위한 교육과정
정용주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교육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일단 녹색당의 교육 공약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려요.
이계삼 첫 번째는, 교육과정 혁신을 위한 교육 혹은 배움의 녹색화인데요, 교육과정에서 인지 교과를 축소하고, 목공, 농사, 요리 등의 삶의 기술을 배양하는 교육과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청소년과 청년 같은 배움 주체들의 사회경제적·정치적 권리 보장에 대한 내용인데요, 기본소득 지급, 안식년 보장, 학생회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선거권 만16세 조정, 지역별 청소년위원회 구성 등이 핵심입니다. 세 번째가 평가 체제의 혁신인데요, 초등은 일제식 평가를 전면 폐지하고 학급 단위의 성취도평가만 실시하고, 중등은 일상적인 관찰과 대화의 내용을 기록하는 학생성장기록부로 바꾸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제안한 학생이력철과 유사하죠.
정용주 평가는 진학과 취업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해 상대적인 점수를 관리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평가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대학과 고등학교 공부를 분리시켜서 고등학교까지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대학에서부터 전공을 배우는 거죠.
이계삼 평가 체제는 종합학교 체제와 같이 가는 건데요, 종합학교에서는 수치로 계량화된 평가와 그로 인한 서열화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자는 게 녹색당의 주장이에요. 그 외 교육 관련한 공약으로는 교원양성과정 관련해서 교·사대 6년제 전환, 임용 시험 폐지, 사대도 교대처럼 목적형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6년제 전환의 핵심은 3-2-1 제도인데요, 3년은 대학 수업, 2년은 현장 실습, 1년은 자율 체험을 하는 방식입니다.
정용주 이것 외에 탈학교 학생들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내용도 있는 것 같던데요.
이계삼 있습니다. 공교육의 개념을 확장해서 평생교육과 대안교육에도 공교육과 똑같은 차원의 지원을 해 주되 자율권을 인정해 주는 내용입니다. 배움은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정용주 녹색당의 교육 정책이 지향하는 철학과 방향을 한마디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선생님이 이미 《오늘의 교육》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가주의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적 연대 의식을 높이는 녹색교육을 실현해 가자는 뜻이라고 봐요. 이게 녹색당의 고유한 가치인 ‘생태적 현명함’, ‘사회적 정의와 다양성 추구’,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분권화’ 등의 가치와도 연결되고요. 하지만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구체화하는 데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게 교육 체계와 교육과정의 전환이거든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결국 교육과정에서 핵심은 주지 교과잖아요. 교과 중심을 최소화시키고 나머지는 삶과 연계해서 프로젝트식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교육공동체 벗의 지향이기도 하고 저 개인적 바람이기도 한데 ‘교육의 생태적 전환 연구소’를 만들어 긴 안목으로 새롭게 교육과정을 짜 보고 싶고, 여기에 녹색당도 함께해 주시길 제안드립니다.
이계삼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교육과정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혁신학교에서도 ‘어떻게’ 가르칠까만 생각하는데, 사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이죠.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게 교육 불가능의 중요한 출발점이잖아요.
정용주 혁신학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2014년도에 〈한겨레〉에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라는 글을 써서 혁신학교 교사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으셨죠. 그런데 실제로 지금 학교 현장을 보면, 혁신학교가 기존의 연구학교 모델처럼 내용보다는 양적으로만 확산되고 있어요. 이전에는 학교로만 확장을 했는데, 지금은 혁신학교 2.0이라고 해서 마을로 가겠다고 하고 있죠. 하지만 교사나 학교의 자율성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관이 나서서 재정 지원을 하고 기계적으로 추진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겨레〉에 쓴 칼럼을 보면서 오히려 굉장히 완화시켜서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계삼 제가 그 글에서 썼던 혁신학교에 대해 판단은, 그때 현장 교사들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2012년부터 2013년도까지 2년가량 서울과 경기 지역의 혁신학교에 강의를 많이 다녔거든요. 그때 강의에 온 교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쳐 있다.” “갈수록 동원형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지속 가능성에 대해 자신이 없다.” “열심히 했는데 결국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여하더라.” 그런데 막상 그런 비판을 언어화했을 때는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거죠. 뭐랄까요. 제도가 너무 인격화돼 있어서 제도와 체제에 대해 비판하면 거기에 속해 있는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정용주 제도 개혁 운동을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지역과 혁신학교운동을 관찰하다가 느낀 게 있어요. 관료제를 비유할 때 두 가지 모델이 있는데, 하나는 나치나 프러시아 모델이고 또 하나는 오케스트라 모델이에요.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지역의 교사나 관료들은 자신들을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하고, 관료제 체제를 깼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작동 원리는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이계삼 총칼 든 군인에서 악기를 든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거죠? 재미있는 비유네요.
정용주 보육과 관련해서는 ‘보육의 공공성’을 넘어 ‘인권보육’을 실현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인권보육’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계삼 만약 녹색당이 원내에 있었다면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겁니다. 교육 노동자의 노동을 CCTV로 계속 관찰한다는 것은 굉장히 끔찍한 일인데, 안전 담론과 공공보육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감시 체제가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감시 체제가 강화될수록 사각지대도 더 커지는 법이잖아요. 최대한 보육 주체의 자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고, 그 외 먹거리 등을 포함해 제대로 된 보육을 하기 위한 지원은 사회가 해 주는 것이 ‘인권보육’의 시스템입니다.
정용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피해 당사자들을 보호하고 재발을 막을 것이냐’가 중요해지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감시의 대상이 되는 거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녹색당 논평을 보면 정치권이 벌인 전쟁에 보육 현장이 쓰러진다고 하면서 누리과정 문제를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지방의회 등의 입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던데요.
이계삼 교육도 그렇지만 보육도 당사자인 부모와 아이 입장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보육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하죠. 누리과정 역시 결국 예산 집행의 주체가 누구냐, 재원을 누가 댈 것이냐 이런 것만 강조되고 있는데, 좀 안타까워요. 지금은 마치 비용만 해결되면 그 외의 문제들, 그러니까 CCTV 의무화나 먹거리, 놀이 환경, 교육 노동자의 감정 노동의 문제는 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되어 버리죠. 가장 중요한 건 보육과정, 교육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아닌가 싶어요.
정용주 방금 말씀하신 게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서도 중요한 주제라고 봐요. 학교에서도 ‘보편적 복지’ 하면 무조건 돈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돈을 국가에서 대기만 하면 나머지 프로그램은 다 문제없는 걸로 인식하는 거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밥을 먹고, 어떻게 놀고, 어떻게 배울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동물에 대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정용주 녹색당 공약 중에 제가 관심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생명권과 동물권이에요. 먹거리에 대한 문제에서 채소까지는 우리 것을 먹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육류는 대부분 외국산이고, 국내산이라고 하더라도 공장식 축산에서 온 거라는 데는 아직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계삼 원산지가 국내라 하더라도 사료는 수입된 GMO라 사실 아무 의미가 없죠.
정용주 이번 공약을 보면 ‘헌법에 국가의 동물 보호 의무 명시’, ‘생태적 도시 정책’, ‘공장식 축산의 동물 복지 축산으로의 전환’, ‘동물 학대 제로 사회’, ‘야생 동식물 서식지의 보존과 복원’ 등 5대 정책 목표를 제시했고 비례대표 1번도 〈잡식 가족의 딜레마〉, 〈어느날 길 위에서〉를 만든 황윤 감독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3일에는 동물권 선본이 출범하기도 했죠. 국가가 동물 보호 의무를 명시하게 되면 당연히 동물과 함께 사는 생태적 도시에 대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생태적인 도시 정책과 야생 동물의 서식지의 보존과 복원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내용이네요. 도시의 확장 자체가 근본적으로 거부되는 것이니까.
이계삼 동물 헌법의 문제의식은, 민법상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는데 그것을 생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에요. 굉장히 중요한 변화죠.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인격과 존엄까지도 격상시킬 수 있다는 첨단의 문제라고 봐요.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문제는 비용이나 선후관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죠.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현실적으로도 공장식 축산이 야기하는 비용은 엄청나요. 생명 학대와도 관련돼 있지만 생명이 있는 존재를 잔인하게 대하면서 인간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잖아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태적 비용도 엄청나죠. 소가 발생시키는 메탄가스가 온난화의 주범이기도 하고, 공장식 축산이 농업의 다양성을 파괴시키고 있고요. 그로 인한 비만, 성인병 등의 건강상의 문제도 심각하고, 육식 위주의 먹거리 문화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이 정크 푸드를 많이 섭취하면서 건강 지표에서도 계급적 격차가 발생하게 돼요. 그리고, 도시를 인간적으로 구성하는 데서도 동물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요. 지금 많은 반려 동물들이 유기되고 있는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동물 복지이지만 곧 인간 복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권은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적 윤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인간적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는 거죠.
정용주 동물권 선본 출범식 때, 간디가 이야기한 “동물에 대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는 멘트를 인용했더군요. 지금까지 생명권에 대한 논의는 소수자, 이주민, 범죄자, 장애인 등에서 멈추고 말았는데 동물을 중심으로 생명권을 사고하게 되니까 약자에 대한 태도도 자유롭게 구성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생명권에서 동물을 배제시키면 인간 중에서 가장 약자들이 ‘동물’이 되는 거겠죠. 그 외 세부 공약들 중에서는 성평등과 관련해서 인터섹스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보통은 성소수자 문제에서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까지는 들어가는데 인터섹스의 성별 정정화 문제까지 들어가 있는 것은 처음 봤어요. 이 부분에서는 지금 정당들 중에 가장 래디컬한 것 같아요.
이계삼 사실 이건 단계적으로 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 당사자인데. 저는 래디컬한 게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정용주 진보 교육감들을 인터뷰하면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동성애 문제에 대해 좀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학교에서 동성애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뭐 이런 관점이죠. 하지만 저는 이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쟁점이 아니다’라고 하는 순간 보수 진영의 담론에 먹혀 버리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조항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 있다고 봐요.
이계삼 그렇죠. 동물권처럼 당사자들의 인권과 존엄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인권과 존엄과도 관련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은 산으로 간다”
정용주 지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세요? 전형적인 파시즘적 상황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박근혜 정부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이계삼 밀양 송전탑 싸움을 겪고, 또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망했다’라고 생각했어요. 녹색당 비례대표 출마의 변을 쓸 때도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송전탑 싸움을 되짚어 봐야 하니까. 제가 이 정도인데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서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기본적으로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라는 전제에서 우리의 모든 대화와 소통, 정치의 과정까지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이나 해고 노동자 같은 타자의 마음에 가 닿으면 위로나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체념과 절망이 먼저 떠오르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네 마음의 자리에 서는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외면의 기제가 그렇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해요. 하지만, 제가 송전탑 싸움이나 세월호 같은 엄청난 일들을 겪고 그냥 ‘졌다’, ‘패배했다’,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제 자리로 돌아갔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끔은 내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용주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분노의 역류〉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주인공이 떨어지려는 동료의 손을 잡고 난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인데, 동료가 손을 놓으려 하자 이렇게 말하죠. “You go, we go.” 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 거야. 선거에 출마할 때 선생님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리해 온 박주민 변호사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 때 도덕적 갈등이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너 정치하려고 이 사람들 이용했지”라는 이야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해요. 선생님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런 오해를 무릅쓰고도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마지막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이계삼 저는 주로 그동안 교육이나 에너지 문제에만 참여해 왔는데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 영역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일단 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이란 시를 보면 “기다림에 지친 사람은 산으로 간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산으로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산으로 떠밀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것이 ‘협력’, ‘소통’, ‘거버넌스’ 같은 다양한 언술로 표현되지만 그 핵심은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전 잘 싸우고 싶어요. 제가 조리 있게 말하거나 카리스마 있게 사람들을 이끄는 건 ‘젬병’이지만 싸우는 건 잘해요. 특히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싸울 자신은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