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특집] 보이게, 듣게 만드는 것 (정용주)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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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부당한 지배 –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다시 묻는다


보이게, 듣게 만드는 것

 

정용주 

서울 염경초, 본지 편집위원장

edcom234@gmail.com

이메일이 서너 개쯤 되고 혈액형은 성격 파악 어렵다는 AB형인 교사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의식은 점점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 체제와 그를 이루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치 체제는 선거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치의 고유함은 자연스럽다고 가정된 질서들을 결합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흐트러뜨리고 해체하여, 결국 그것을 분할의 논쟁적 형상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투쟁하는 계급의 구성원이 되며, 스스로가 더는 열등한 서열의 구성원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아렌트의 말처럼 정치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며, 인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우리는 정치를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개성을 확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시민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국가를 공공선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에 정치와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 속에 갇혀서는 안 되며,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려는 전복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

 

우리 헌법에서는 국군과 공무원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의 헌법 보장의 의의는 군사·행정·교육 영역에서 제도의 본질적 내용인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막아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대, 행정,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군인, 공무원, 교원 개인의 정치적 중립성보다는 의사와 행동 통일체로서 군대, 공무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정치 편향적 공권력 행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교육은 개인의 잠재적인 능력을 계발하여 줌으로써 개인이 각 생활 영역에서 개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해주며,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길러줌으로써 민주주의가 원활히 기능하도록 정치문화의 기반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학문 연구 결과 등의 전수의 장이 됨으로써 우리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문화 국가의 실현을 위한 기본적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교육 제도와 교육 조직, 교육 내용과 교과서 제도, 교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통해 완성된다. 하지만 정부는 마치 군대와 같이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한하고 일사분란한 의사와 행동의 통일체로 바라본다. 때문에 “교육은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내용은 훼손되고, 정치적 자유를 통한 비판, 자유로운 정치 활동과 정치교육은 제한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은 언제나 정치적 파당적 교육이 되며, 교육 과정과 교과서는 늘 정권의 입장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정권 연장의 수단이 된다.


➊ 교육기본법 제6조 1항



특히 최근의 교육 과정 개편과 교과서 국정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부는 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 더 나아가 국가는 초·중·고 수준의 검인정제도를 유아교육이나 대학교육 교재나 교과서까지 확장시키려 한다. 그들은 검인정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교과 내용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유아교육과 고등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고 말하며, 가르치는 내용에 개입하려 한다.


교과 과정이나 교과 내용의 중립성이 전제된다고 해도 이를 교육하는 교원의 정치적 중립 지위가 담보되지 않으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원의 신분 보장과 교원의 일정한 정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교원의 정치 활동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에서 금지되는 것이지,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과 논쟁을 통한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➋ 교육기본법 제14조 4항



그러나 다수의 판례는 교원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초·중등학교 교원의 활동이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인격 및 기본 생활 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교원의 정치 활동 제한을 근무 시간 외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하다고 규정함으로써 이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복종과 간섭 밖에 서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오늘날의 교육이 공교육 체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학교교육을 통해 살펴볼 때 보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학교는 가정교육이라는 사교육의 범위를 벗어나 자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공장소가 되었으며, 학생의 전반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교육 정책의 성패 여부는 교육이 어떠한 외부적 압력이나 통제도 받지 않고 교육의 이념과 원리에 의하여 자주적이고 독자적으로 시행되고 운영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종래의 학교교육은 외부의 정치 세력이나 단체의 영향 아래, 그 스스로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받지 못해 왔다. 특히 학교는 거대한 교육 행정 조직의 말단 기관으로서 특정 권력 집단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이나 편향적인 가치관을 학교교육이라는 제도적 틀 속에서 여과 없이 주입하는 공공 기관으로밖에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과 인격의 신장, 독창성과 창의력의 계발이라는 교육 이념과 배치되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또한 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단위 학교의 교육 자치와 학교 민주화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헌법 및 교육법상의 원칙으로 선언하여 그 보장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 시기 국가의 작용은 형식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국가의 작용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특정 정파에 의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 제도, 교육과정, 교원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파시즘 체제의 견고화, 관료제적 지배를 통한 부당한 지배의 영속화를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부당한 지배에 교육이 복종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교육은 부당한 정치적, 행정적 간섭의 영역 밖에 놓여야 한다. 종래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정치적으로 또는 행정적으로 부당한 간섭 아래 신음하고, 교육자는 비굴하게 되고 교육 전체가 위축되고 왜곡되어, 그 결과 군국주의 및 극단적인 국가주의의 발호를 초래하게 되었다. 교원이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상·하급의 행정 관청의 명령 계통 속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면 부당한 행정적·권력적 지배에 복종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뜻을 실천으로 옮기는 시간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를 ‘치안’이라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 속에 묶어 둔다. 치안으로서 정치는 통치 과정이다. 치안으로서 정치는 동의를 분할의 논쟁적 형상들로 대체하기보다 인간들을 공동체(국가)로 결집시켜 동의를 조직하고, 그들 각자에게 자리와 기능을 분배해 위계를 유지시킨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성의 장에서 정치는 치안으로 변화하며, 국가–교사–학생의 위계적 관계가 재생산되기 때문에 평등 과정이며 해방 행위로서 정치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치안의 질서를 가로질러 그 위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분배의 질서를 해체하는 작업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치안이 아니라 정치의 공간에서는 교육 과정, 교수–학습, 교과서, 평가가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주체들의 정치적 공간으로 바뀐다. 정치의 출현과 함께 치안 질서는 순간적으로 와해되고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때 치안과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치적인 것이 출현하며, 정치적 중립성은 보다 적극적인 교원과 학생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전제가 된다.


특히 정치적 중립은 국가의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제한하고 학생들이 단순히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 주체가 됨으로써 보이고 들리고 말하는 존재로 바뀐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었던 것을 말로써 듣게 만드는 행위이다.


민주주의란 하나의 구조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모든 형태의 구조를 수용하는, 온갖 구조를 가진 거대한 시장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 모든 사회적 지위 분배, 남녀 사이에 완전한 대등성을 보장하는 전제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참여와 토론, 논쟁적이고 자유로운 탐구가 보장되어야 한다. 즉 통치자는 피통치자와 같고 청년들은 장년층과 대등하며, 학생들은 교사들처럼, 동물들은 그들의 주인들처럼 대우를 받아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1919년 이후 대한‘제국’으로 돌아가기보다 공화국을 이룩하고자 하는 뜻을 실천으로 옮긴 인민들로부터 이후 각종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헌 헌법에 이르기까지 ‘민주공화국’이란 말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일구어 간 시간을 통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민주공화국은 다양하고, 그 시대 깨어 있는 민중들의 조직화 정도, 그 참여 방식과 수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국 대한의 모습은 외부에서 어느 한순간에 이식될 수 있거나 단일한 모형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지난한 정치 투쟁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거 시기를 포함해 일상에서 교육 전문성과 자주성을 구현하는 정치의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면 민주공화국에 대한 교육적 상상력도 거기서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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