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특집]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공현)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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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절망함, 잘 망함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본지 편집위원

gonghyun@gmail.com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운동을 시작해서 어느새 10년. 그 와중에 대학거부와 병역거부 등을 했다. 오타쿠이면서 활동가로 살아가 보려고 바둥거리고 있다.



“살다가 정 못 살겠으면 그냥 죽으면 되는데, 뭐.”


언제부터인가 내 입버릇이 되어 버린 말. 염세적인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딴에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아니,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이다. 산다는 것에 어떤 주어진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자며 살고 있다. 실은 저건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지 대책은 있느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대답이랍시고 하곤 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부쩍 저 말을 할 일이 늘어난 것 같다. 그만큼 주변에서 내 삶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일 테고, 그리고 나 자신도 예전과 다름없이 저리 대답하는 것 말고는 어떤 뾰족한 답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갖게 됐을 살고 싶어 하는 보편적 경향성 때문이든, 청소년운동을 더 오래 하고 더 많은 걸 이루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든, 더 오래도록 살면서 청소년운동도 하고 싶다. 하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 제대로 쉬는 날 하나 없이 활동을 하다 보면 남은 수명을 깎아 내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선명해진다. 더군다나 청소년운동을 통해서 내가 생계를 확보할 수 있을까? 여러 원고료나 교육비 등으로 버는 돈이 없지는 않지만 비정기적일뿐더러 생계비에는 크게 못 미친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고 있지만 당연히 한계가 올 것이다. 그래서 당장 내년은 몰라도, 내후년이나 3년 후나 5년 후에도 내가 살아서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을까 자문해 보면 쉽사리 답할 수가 없다.

 


운동에 드리운 그늘: 생활고와 생활피로


다른 활동가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심각하다. 나는 청소년활동가들 중에서는 청소년운동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버는 편이고 부모에게 기댈 수도 있다. 그런 형편이 못 되는 활동가들, 청소년운동에서 참 많은 일을 하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지는 못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은 활동을 파트타임 노동 혹은 학업과 병행한다. 어느 활동가는 아르바이트를 몇 개월 하다가 청소년운동에서 일이 많아질 시기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모아 둔 조금의 돈으로 생활을 하며 1~2개월 활동에 전념을 한다. 그러다가 활동이 좀 줄어들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바꿔 가며, 최저임금 근처의 시급을 받아 가며, 때로는 장시간 노동을 해 가며, 적은 생계비만으로 빠듯한 삶을 꾸려 가며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삶은 금세 피폐해진다.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가 운영을 하고 다른 여러 청소년단체와 활동가들이 함께 이용하는 ‘나름아지트’라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모임을 하러 가서 보면 십중팔구는 구석의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이들이 있곤 하다. 밤을 샜거나, 부족한 잠을 잠깐의 쪽잠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종종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청소년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잠이 부족하고 어떤 경우는 고3 수험생들보다도 잠을 덜 자면서 버티는데, 잠이 부족한 것과 생활의 어려움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문제이다.


열다섯에 친권자의 탄압을 피해 탈 가정하여 지금은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생활을 꾸려가는 청소년활동가 A는 “이삼일에 하루만이라도 7시간씩 자고 싶다”라고 말한다. 장시간 노동과 활동을 병행하려면 휴식 시간, 수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업을 병행하는 경우라도 다르지 않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인 B 역시 밀려드는 수업과 과제 등과 활동을 병행하는 것 때문에 잠을 줄여 가며 올 한 해를 보냈다. 반면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활동을 줄였던 활동가 C는 “최저임금을 받다 보니 생계를 유지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일해야 했는데, 알바를 끝내고 나면 다른 것을 할 기운도 시간도 없었다”라고 한다. 타고난 (혹은 길러진?) 체력과 개인적 건강 상태가 활동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휴식이나 잠을 다소 희생하고도 쓰러지지 않고 아프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갈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히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주 30시간, 40시간씩 풀타임으로 임노동을 하고서 여가 시간, 휴일 등에도 활동 관련 일을 또 한다는 것은 초장시간 노동이나 마찬가지이고, 빠르게 활동가를 소모시킨다. 늦잠을 자다가 회의에 늦고, 잔병치레를 하고, 쥐어짜듯이 활동을 이어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 여러 청소년운동단체들에 드리운 피로감 ― 그늘 같은 것이, 단지 박근혜 정부나 청소년인권과 관련된 부정적 정세 때문만이 아니라, 생활고와 생활 피로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 생계만으로 숨이 턱까지 찬 이들에게 운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은 무리다.


혹시 그렇게 일을 해서 버는 돈이 살기에 넉넉한 정도라면, 한 200만 원이라도 된다면 모르겠다. 작은 사치라도 하면서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는 빚지지 않고 살림을 꾸려 나가기도 버겁고 아프기라도 하면 금방 빠듯해진다. 그보다 임금을 약간 더 주는 정도의 일자리여야 겨우 해 볼 만하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도 있으면 더욱더 난감하다. 그래서 활동할 시간과 임금노동을 할 시간 사이에 계속 저울질이 이루어진다.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활동을 줄이면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활동가들도 있는데, 그렇게 해서 조금 더 버는 돈이라는 게 대단치도 않은 것이라 더 안타깝다.


그래서 어떤 활동가들은 조금 더 임금이 높은 밤샘 노동, 노동 강도가 높은 일들을 찾는다. 주 2일 동안 밤샘 카페 알바를 했던 활동가도 있고, 밤에 노래방에 출근해서 도우미 알바를 했던 활동가도 있다. 그런 일들은 감정노동이나 불안정한 노동 환경도 문제인데다가 밤샘 노동으로 인해 건강과 활동에 미치게 될 악영향도 적지 않다. 성노동을 선택지로 두고 고민하거나 경험한 경우도 있다. 저 옛날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새벽에 신문 배달 일을 하고 공사장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활동을 했다던데, 지금의 청소년활동가들의 경우도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때보다도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상근자 하나 두지 못하고

 

뭐, 그래 모든 운동이 대개 생활고를 겪는 주체들을 데리고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경제 불황인 요즘은 더욱 그렇다. 청소년운동만 엄살을 부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량적으로 비교 분석을 할 데이터는 없지만 청소년운동이 처한 상황이 다른 운동들에 비해도 더욱 열악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곤 한다. 유명 경제학자들 말마따나 ‘지금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소득이 더 적어지기 시작하는 세대’라서 그런 것이려나. 상근 활동가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2006년, 청소년운동을 서울에서 시작하면서 속으로 혼자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5년 뒤에는 나에게 상근비를 주는 단체를 만들어야지!” 10년이 다 지난 지금도 나는 청소년운동단체에서 상근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청소년운동단체 중에서 역시 오래된 단체 중 하나인 아수나로도 상근 활동가 한 명 두지 못하고 있다. 나름대로 다른 단체들에 사업비 지원도 하고 공간 운영도 하는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책임 활동가를 두고 월 급여를 주는데, 현재 그 액수는 월 15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희망의 우리학교’처럼 대안학교까지 겸했던 희귀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청소년운동단체 중에 제대로 상근비를 지급하는 상근자를 둔 단체는 거의 없다.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도 매우 적은 활동비밖에 주지 못했었고 그나마도 상당 부분을 정부 부처의 프로젝트 지원 등에 기대야 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누가 나한테 아수나로에서 상근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쓴웃음부터 먼저 나오고 만다.


앞서 이야기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활동가들 모두가 상근자가 될 수야 없다. 하지만 단체에서 한두 명씩이라도 활동의 중심을 잡고 전망을 그리고 책임을 지고 활동을 하는 풀타임 상근 활동가가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운동이 점점 더 커질수록 해야 할 일이나 역할도 점점 더 많아지고 활동가들의 부담도 더 커지기에 상근 역할의 사람이 필요해진다. 더군다나 상근자의 존재는 적어도 소수의 사람이라도 계속 청소년운동에 남아서 청소년운동을 통해서 자기 생활을 지속해 나가며 활동할 수 있다는 증명이다. 그런 상근자를 단 한 명도 둘 수 없다는 것은 청소년운동이 계속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소년활동가들을 쥐어짜며 갈 수밖에 없다는 암시처럼 느껴지곤 한다. 청소년운동이 장기간 지속되며 발전한 결과 직면하게 된 새로운 문제인 셈이다.


‘5년 뒤’라던 나 혼자만의 약속이 조용히 깨지고 난 뒤부터,(우연의 일치도 있지만 이때가 내가 대학거부 선언과 병역거부를 한 시점이기도 하다) 다른 운동단체에서 상근을 하면서 청소년운동을 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 나도 2015년에 거의 그런 식으로 생활을 꾸리기도 했고, 또 다른 청소년활동가들 중에서도 그런 길을 모색하는 경우가 잦다. 자신이 관심을 두었던 운동단체에서 상근 혹은 반상근으로 활동을 하면서 여유 시간 동안에 청소년운동을 하거나 청소년운동과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은 운동 사회 안에서 편견이나 청소년운동에 대한 몰이해에 부딪히곤 하기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한 청소년활동가는 한 단체의 활동가로 일해 보려고 면접을 봤으나 청소년운동 출신의 활동가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그 단체 임원의 의견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설령 들어가서 활동을 하더라도 청소년운동을 청소년기에 한때 하는 운동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나 청소년운동을 덜 중요한 운동으로 여기는 모습(“이제 청소년도 아니니까 청소년운동 그만두고 OO운동 해야지?”)에 갈등을 빚기도 하고, 나이주의에 반대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문제의식 혹은 대학을 거부하고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이 기존의 문화와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D 활동가는 인권교육 관련 단체에서 몇 년간 상임 활동가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그만두었다. 그는 인권교육 관련 단체에서 나름대로 청소년인권에 대한 사업을 함께 만들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딴에는 속으로 ‘성공한 경우’라고 치고 있었기에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놀랐다. D 활동가가 그만둔 이유가 그 단체 안에 청소년인권이나 청소년운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계속 자기가 겉도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서 더욱 그러했다.


나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조금 다른 부담감도 있다. 내가 다른 단체에서 상근을 할 방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자 각기 다른 세 명의 활동가들이 만류를 했다. 그런데 만류의 이유라는 것이 나 보고 청소년운동을 더 하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청소년운동을 가장 오래 했고 가장 인지도 있는 활동가 중 하나인 공현조차도 청소년운동을 통해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운동으로 옮긴다면, 다른 청소년활동가들은 큰 좌절을 느낄 것 같다. 그러니까 적어도 청소년운동 안에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든가 상근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아라.” 내 입장에선 참으로 부담스럽고 불합리하게까지 느껴지는 요구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운동 안에서 내 위치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재생산도 생산인지라

 

개개인의 생활고도 문제이긴 한데 청소년운동의 위기를 가장 많이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는 활동가들이 아무래도 좀 더 많다. 어떤 활동가들은 요새 청소년운동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나가는 사람만 있다고 걱정을 하곤 하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조금 과장된 걱정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들어와서 1~2년 활동을 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오랜 시간 활동가로서 남아서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적다. 최근에 특히 그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청소년운동에 대한 사회적 역할과 기대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운동이 고도화되면서 적극적인 활동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학습하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가 늘 그렇듯이 어느 쪽이 먼저인지 논하기 어려운데, 활동가 재생산이 잘 안 되어서 활동가들이 더 힘든 것일 수도 있고 활동가들이 힘들어서 활동가 재생산이 잘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생활고 등의 여러 문제로 청소년활동가들은 매우 과부하가 걸려 있고 피로에 찌들어 있다. 활동가들은 새로 회의나 활동 일정을 잡는 것을 요새 ‘일정 테트리스’라고 부르곤 한다. 테트리스 블록들처럼 오밀조밀하게 채워져 있는 일정들 틈새를 찾아내서 새로운 일정을 끼워 넣는 일이라는 뜻이다. 활동가들의 다이어리를 펼쳐 보면 그만큼 빈틈이 없이 여러 일들로 들어 차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들을 챙기고 이들을 잘 흡수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소홀해지기 쉽다. 시간을 내서 만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활동에 대해 이해를 시키는 등의 일은, 어느 날을 정해서 무슨 행사를 하고 안내 자료를 배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상적 활동이다. 의지적으로 그런 일을 우선순위로 놓자고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운동에 요구되는 역할과 활동량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더 필요해지는데, 사람을 더 만들어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활동이며 다른 활동량을 줄여야만 가능해진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어디에선가는 이 고리를 끊어야 하겠지만 어디에서?


그렇다고 해서 운동 외적 상황들이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입시 경쟁이나 경제 상황 등의 외부 상황은 안 좋아지고, 박근혜 정부는 청소년인권 문제는 부차적으로 밀릴 만큼 여러 거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뻥뻥 터뜨려 댄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활동가 E는 다른 청소년들은 운동의 의의에는 동의하더라도 입시 등에 묶여서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하니 “혼자서 몸통 박치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현실인데 생활고와 피로는 여러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을 쉬거나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그 다음은?

 

청소년활동가들이 이토록 피곤해진 여러 이유들을 역사적으로 반추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2011년에 생각이 머무르게 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적어도 수도권 지역 활동가들의 피로감 중 많은 부분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어떤 활동가들은 길을 가다가 7시간씩 거리 서명을 받았던 곳을 지나면 갑자기 울 것 같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일부에게는 거의 트라우마이고 아직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게 만드는 소재이다. 몇날 며칠을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냉대를 받던 기억에 꽃다지의 <내가 왜>를 들으면 울컥하고, 서명은 비청소년만 할 수 있는데도 이름만 올려놓고 무관심하던 수많은 비청소년단체들에게 실망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흔’을 남긴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운동에게 지금도 고민거리다.


➊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학생인권조례가 뜻하는 바는 복합적이다. 청소년운동이 이루어 낸 가시적인 성과 중 하나로서, 실질적으로 경기도와 서울과 광주와 전북 지역의 학생인권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낸 사례로서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은 청소년운동이 다른 교육운동 단위들의 학생인권에 대한 몰이해 혹은 소홀함을 직면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광주나 경기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운동이나 시민단체들에게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민주 진보 교육감들에게도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다. 전북만 교육청이 좀 열심히 하는 정도일까? 예컨대 경기도의 경우에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학생인권은 교육청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이고 어느 단체 활동가는 최근에 “학생인권은 솔직히 유행이 지났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옹호관 등 학생인권 관련 담당 부서의 규모가 축소당했고 이제는 학생인권에 대해 홍보도 별로 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 정착과 확산의 과정에서 청소년운동은 번번이 한계를 마주했다. 몇몇 비청소년들은 학생인권조례로 두발 자유(그나마도 제한적인)가 되고 체벌 금지가 되고 한 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변화인 것처럼 말한다. 어떤 교사들은 그래서 교사 일 못 해 먹겠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머리카락 좀 안 잡게 되고 안 때리게 된 것이 학교교육의 무슨 엄청난 변화라는 말인가. 조례 이후에도 학교는 본질적으로 크게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억지로 공부를 시키고, 직간접적 폭력이 가해지고, 담배를 몇 번 걸렸다고 퇴학을 시키고, 외투와 옷과 화장을 단속한다. 학생인권조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도 어떤 이들은 학교가 학생인권 ‘과잉’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청소년운동은 이를 제대로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하고 실천을 만들어 낼 대중적 조직이 없었다. 활동가들은 몸으로 부딪혀 가며 이를 알리고 지켜 내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홍보를 하고 교육을 나가서는 학생인권조례 내용조차 안내받은 적 없다는 청소년들에게 간단한 내용과 구제 수단이라도 알리려고 했다. 인권 침해에 대해 교육청의 문을 두드렸다가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은 학생들 중 일부가 찾아오면 대신 학교를 찾아가고 교육청과도 실랑이를 벌였다.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을 왜 우리가 대신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자주 나왔다. 이렇게 2012년 이래로 1~2년은 거의 학생인권조례를 정착시키기 위한 후속 활동들을 어쩔 수 없이 해 왔고 겨우 새로운 고민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이후였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운동 내부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이후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들이 과거라면 투쟁에 나섰을 텐데 지금은 교육청에 신고하고 해결되고 만족해 버리며 이 때문에 청소년운동이 축소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어쨌건 교육청에 신고해서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성과이며 리스크가 적어진 거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어쨌건 분명한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운동에 한계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으며, 청소년운동이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라”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대중적 운동과 이슈와 실천을 만들어 내는 것,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학생인권조례 이상으로 현실적 힘을 가진 대중적인 현장 조직을 만들어 내는 일 등이 과제로 거론된다. 거기다가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지역에서만 시행 중이라는 것이 더 골치 아픈 일인데, 두발 규제나 강제 학습 등의 인권 상황이 지역별로 크게 불균질해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먼저 나아지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운동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 앞에서 아직도 뭔가 헤매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청소년운동이 무언가 길을 딱 찾아서 걸어온 것도 아니고 학생인권조례라는 것도 얻어 걸려서 생겨난 국면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2009~2012년 학생인권조례 제정 국면 이후로 청소년운동이 유의미한 가시적 성과를 냈고 사회적 존재감을 좀 더 가지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운동의 입지가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이다. 곳곳에서 청소년운동과 다른 운동 사이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래, 아니 그 이전부터 잠재되어 있던 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일어난 불신과 충돌 역시 그 한 예일 테고 말이다. 이는 운동이 학생인권조례 이후를 구상하고 상황을 극복할 자원을 끌어오는 데 큰 한계를 만든다. 활동가 A는 청소년운동의 어려움을 느낄 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소수자운동이나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 등 다른 운동들은 운동사회 밖에서도 어느 정도 파급력을 행사하곤 하는데, 청소년운동의 여러 문제의식은 운동사회 밖은커녕 운동사회 내에서조차 영향력이 없다. 나이주의나 청소년에 대한 여러 편견 등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운동사회 내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여성/장애인/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되면 자신의 지위에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서워서라도 공개 사과를 하곤 하는데, 청소년 혐오 발언 등은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고, 청소년활동가들의 문제 제기와 이슈화는 가해자에게 지위 유지에 대한 공포감을 하나도 주지 못한다는 걸 느낀다.”


➋ 예를 들어 청소년활동가들 외에도 비교적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했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가르치는 데 매질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에라이 잡놈들, 요즘 애들이 이렇게 어리다’ 등의 발언에도 김종철은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하물며 ‘요즘 애들은 생각이 없다’거나 ‘청소년활동가들은 싸가지가 없다’ 정도의 말은 문제 제기 해도 ‘문제되지’ 않곤 한다. 201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공공연하게 청소년들이 경선에 참여하면 경선이 ‘희화화’된다면서 청소년을 선거인단에서 배제한 운동사회인데 뭐.



사실 청소년운동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청소년운동이 더 넓고 오래 가기 위해서는 다른 운동 기반들과 협력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교사운동이든 지역운동이든 정당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청소년들을 지속적으로 조직화하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으로든 인적으로든 이런 이들의 도움과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해가 단기간 안에 가능할지 생각해 보면 회의적이 된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이 충분히 잘하지 못하고 잘 설명하고 설득하지 못한 업보를 치르는 거라고 한다면 너무 우울한 일이지만. 아, 더 노오오력을 했어야 했나 보다.

 


시체로 강을 메우는 일

 

활동가 E는 지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청소년인데, 운동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갖고 있다. “아, 이제 난 학교에 적응할 수가 없다, 이런 느낌이다. 진짜 두발 규제 없는 학교였다면 이렇게 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평범하게 대학도 가고 취업하고 이렇게 살았을 텐데, 그렇게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런 불안한 생활보다는…….”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고민일 테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망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로서는 “살다가 못 살겠으면 그냥 죽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말하고 싶기는 한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운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 하다가 죽어 버릴 생각으로 하는 운동이라니 무슨 자살 특공대처럼 보이지 않는가. 좋게 포장해서 말하면 ‘카르페디엠’이기는 한데, 그것도 대책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 같고.


하소연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놨지만, 요약하자면 활동가들의 삶도 망해 가는 것 같고 운동도 망해가는 것 같다. 넓어지고 깊어지던 청소년운동이 어떤 벽에 부딪혀 있다. 활동가들의 생존의 벽이기도 하고 조직화의 벽이기도 하며 운동 방식의 한계 혹은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한계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활동가들이 희생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면 운동이 안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해 온 시절이 있었고, 그런 활동을 통해서 지금 정도라도 청소년운동이 자원을 확보한 것은 맞다. 다만 이제는 운동이 망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활동가들의 인생이 망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듯하다. 설렁설렁 살아서는 개인이 생존하기도 힘든 시대가 왔기 때문에라도. 그리고 다른 방식의 운동이나 돌파구를 찾을 때도 왔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을 새롭게 만들어 가 보자는 여러 시도들이 요새 많기는 하다. 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해 보자는 모임도 있고, 대중 조직을 만들려고 여러 활동가들이 모여서 추진을 해 보고 있기도 하다. 아예 새롭고 다르게 시작해서 지역에서 운동을 확장해 가는 조직들도 있다. 투명가방끈은 ‘거부하우스’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질의 공동 주거 모델을 만들어서 대학거부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청소년운동이 아주 망하지야 않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새롭게 태어나고, 자라고, 청소년운동의 주된 대중적 기반은 끊임없이 교체되며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마주하는 억압에 대응하여 운동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지금의 청소년활동가들이 남아서 버티고 있는 동안에 그렇게 새로운 운동이 만들어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숱한 역사 속에서 많은 조직들이 망하고 그 망한 잔해 위에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긴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망하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발전해 보고 싶다. 그것이 가능할지 말지, 솔직히 좀 위태위태하다. 여전히 운동은 희생을 요구한다.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을 만들기 위한 희생을. 희생은 다른 말로 하면 대신 망하라는 것이지 않은가?


1990년대에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재를 진단하며, “우리가 하는 일은 시체(실패)로 강을 메워서 건너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청소년운동에서 우리가 하는 일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청소년운동은 수많은 시체로 강을 메워 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시체란 때로는 단체였고 활동이었고 활동가들의 생명이나 인생이었다. 언제쯤 되면 시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강을 메워 갈 수 있을까? 그건 모른다. 일단 당장은 그 시체의 수를 줄이고 그 시체를 조금이라도 덜 참혹한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망하는 운동’, 혹은 ‘망하는 인생’을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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