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에세이] 여성. 교사. 페미니스트. (Yourlife)

2019-08-01
조회수 889
에세이

여성. 교사. 페미니스트.

Yourlife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
hansolhansol0829@gmail.com


페미니스트인 나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페미니즘 수업을 연구하고 실행해 온 지 1년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 학교를 옮겼다.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한 덕에 혁신학교로 초빙받을 수 있었다. 나를 소개하는 포트폴리오에 내가 했던 성평등 수업을 소개하는 말로 인권 수업,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게 더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죽어라 수업과 활동을 했으면서도 정작 ‘페미니즘 수업’이라는 말을 학교 현장에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성평등 수업’인데, 그 말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주일의 기간을 정해서 동영상 몇 편을 시청한 다음 의미 없는 대회를 여는 것 정도다.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의 그림이나 “남자와 여자는 같아요” 따위의 문구가 들어간 시 몇 편을 뽑게 되고 그걸 알록달록한 판에 전시하면 ‘성평등 수업’은 끝난다. 한마디로 의미 없는 일 덩어리. 그게 성평등교육이었다.


이렇듯 성평등이란, 학교 현장에서 너무나도 사소하고 단편적인 주제라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이런 걸 하는가.’ 예컨대 독서토론교육에 관심 있다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질문이다.


나의 능력을 보다 유망한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애정 어린 간섭에는 요즘 언론 등에서 페미니즘이 핫한 주제라는 것을 핑계 삼을 때가 많다. 《오늘의 교육》 34호에 실린 내 글도 설명에 도움이 된다. “이게 블루오션이거든요. 저 완전 떴잖아요.”


내가 골칫거리가 아닌지 의심하는 시선엔 인권과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을 끌어온다. “교육도 유행이 있기 마련이지, 잘해 봐”라는 말과 함께 누그러진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너도 그냥 대세 따라 한번 해 본 거지, 진성은 아니었구나’ 정도 될까?

 

거짓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평등교육은 당연히 인권교육과 연결되고 민주 시민의 기본기이며 세계 시민으로서도 필요한 역량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잘 받아들여질 방법으로 나의 열정을 소개할 때마다 어딘가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게 올바른 길일까. 내가 두려움 때문에 전략이라는 핑계로 깨부숴야 할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저 이만큼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표현을 한 것만으로도 내가 느끼는 부담감은 크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를 택하겠습니다”를 불경처럼 외우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페미니즘은 내가 해 오던 많은 행동의 자유와 사교 표현을 앗아갔던 것이다.


차라리 대놓고 성차별적인 표현은 지적하기 쉬웠다. 나의 고용주는 그런 일로 나를 자르지 못하니까. 그러나 갓 옮긴 학교에서 새 동료 교사와 친해지기 위해 으레 하는 외모에 대한 덕담은 어찌해야 하나. 티타임에 화제로 오른 드라마 〈도깨비〉에 대해서는 내 생각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우리 반에 들어온 다른 교사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성 역할에 대한 관념이 담긴 칭찬들은? 말을 하면 한 대로 안 하면 안 한 대로 벽에 머리를 박으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비정규직 강사 선생님이 “선생님 반 여학생들은 여자답지 않아서 좋네요”라고 학생들 앞에서 말했을 때 그 발언을 지적하는 것은 나의 정규직으로서의 위치를 이용한 부적절한 억압이 아니었을까. 내가 실수로(?) 외모를 칭찬했을 때 사교적으로 웃어 주신 그 선생님은, 외모 칭찬도 평가라며 하지 말자고 유난스레 연수까지 해 놓고, 정작 자기 입 간수 하나 못 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결국 학교에서 하는 연수를 들으러 가기가 싫은 지경에 다다랐다. 연수에서 누군가가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나서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나서면 내가 지고 다녀야 할 굴레가 무겁고 크게 나를 짓눌러 왔다. 급기야 학교 화장실에서 립스틱을 바르기 전 그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백 번 읽었지만 그래도 나만은 완벽하고 일관적이며 티끌 하나 지적할 수 없는 그런 페미니스트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사실 없다. 다른 동료 페미니스트들이 그러하듯 매일의 장면에서 싸우다가 혹은 싸우기를 포기해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가 지금도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 또한 서로의 용기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엔딩은 누군가, 가급적이면 내가 ‘원더우먼이 되어 다 죽여 버리는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히든 피겨스〉(보다 못한 어떤 것)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것은 혁신학교라는 특성 덕에 대화하는 집단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혁신학교에서는 이른바 부장 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할 많은 일들의 결정권을 학년이 쥔다. 돈도 학년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덕분에 나와 이웃하는 한둘의 교사와 대화하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다. 우리 학년은 이제 남성용과 여성용 준비물을 구분해서 사지 않는다. 이 모든 영광을 〈겨울왕국〉의 엘사에게 돌린다. 엘사는 여자아이들에게 하늘색을, 파랑색을 되돌려 줬다. 아무쪼록 하루 빨리 핑크를 입은 히트작 남자 주인공이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쎄. ‘엘사 색’의 노트를 함께 쓰던 아이들이 그런 히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기였으면 좋겠다.



교사인 나


1년만 해 봐도 알 수 있다. 여교사와 페미니즘은 친해질래야 친해지기 힘든 단어다. 여성혐오적인 문화에 오염된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수업 중의 어려움은 차라리 두 번째 문제다. 소개팅 시장의 여교사의 이미지를 보라.


나는 나라에서 정한 육아 휴직과 출산 휴가를 경력 단절 없이 최대로 이용할 수 있고,


독박 육아와 독박 가사 끝에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킬 것이며,


이후 복직해 아이를 끼고 초등학교에 다니며 육아 암흑기라 불리는 초등 저학년 시기를 넘긴 후,


교사에게 기대할 법한 빼어난 솜씨로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62세까지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 가족의 밥을 해 주다,


늙어선 연금까지 타 먹을 수 있는,


그러나 변호사, 의사, 검사, 판사, 약사에 비해 순해 보이고 상냥할 것 같으며 아이를 좋아하는 히트 상품이다.


까짓 그런 이미지, 소개팅 시장에 안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수업이 있었다. 이성애 중심으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모성애 신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도록 구성된 교육과정 자체가 나를 ‘여교사’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내가 나의 부모와 맺고 있는 증오와 분노, 체념이 섞인 복잡한 실제 관계는 상관없었다. 가족에 대한 단원이 나올 때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부모를 칭송하며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라고 가르쳐야 했다.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나의 모습도 문제였다. 교실의 관리 책임자로서 청결을 챙기는 나의 모습이 여성의 성 역할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입에 올랐던 것이다.


스스로를 가장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인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초등 교사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에피소드로 조각내 예화로 들려주지 않을 방법은 없다. 내 삶은 정상 가족, 효 이데올로기, 여성의 성 역할에 맞춰 편집된 상태로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지 않고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오빠와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한 번 목격당한 것이 퍼지고 퍼져 급기야 교감 선생님이 나에게 “결혼 날짜는 좀 미리 알려 줘야 하지 않냐”는 타박으로 되돌아온 경험이 내 입을 막았다.


나는 그 자체로 교실의 상징이고 억압이었다. 모범적이고 성 역할에 부합하게 자라났으며, 앞으로 나이가 차면 정상 가족 내의 여성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히 여자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따라야 하며 남자아이들은 열심히 노력해 신부로 쟁취해야 할 롤 모델. 따라서 내가 한 나의 가족 이야기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성 역할에 부합할 경우 그저 교육적인 예화로 흘러가겠지만 그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의 밥상머리 대화에 오를 것이고 지역 사회에 퍼질 것이며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로 남을 터였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삶을 편집해서 전달하지 않고는 편안하기 힘들었다.


나는 이제 그냥 말한다. 결혼을 안 했고 할 생각이 없고 애를 낳지 않을 것이나 섹스는 좋고 애인과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이건 내 평생에 변하기 쉽지 않은 요소 중 하나라 꼬리표로 붙어 봐야 억울할 일도 별로 없겠다 싶었다. 많이들 걱정해 주신다. 자기한테야 그런 말을 해도 되지만 스스로의 ‘약점’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조언과 함께이다.


다행히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호명하며 만만치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 덕에 이에 대해 무언가를 묻는 사람이 드물다. 또 궁극적으론 더 다양한 삶이 학교에서 이야기되길 원하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당당하게 나의 ‘약점’을 드러내려고 한다. 사실 약점은 개뿔.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어서 남들도 나의 이 교육적인 삶의 예화를 통해 보고 좀 배우면 좋겠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초등학교 교실처럼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무지개 플래그를 달기에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 드물다. 성교육 표준안에 입이 묶여 더 다양한 삶에 대해 입도 뻥끗 못 하고 있는 교사라면 조만간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제작할 예정인 무지개 상징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주시면 좋겠다. 또 나의 이야기를 결혼 안 하고, 아이 없이도 잘만 살더라는 선생님 친구의 예화로 적극 활용해 주시기를 바란다.



(섹스 하는) 여성인 나


연애 시장에서의 여교사 이야기를 이어 가 보자. 위에서 나온 여교사의 메리트를 거칠게 정의해 보자면 이른바 ‘어머니’로서의 메리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교사에게는 그 이름이 가진 성적인 함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녀일 것 같은 무언가가 합쳐진 복잡 미묘한 ‘여성으로서’의 메리트 또한 존재한다. 언젠가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가득 담아 ‘교사 같은’ 복장이 섹시했다고 말한 것이 이런 메리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교사에겐 새로운 역할이 더해진 것 같다. 물론 여교사 특유의 섹시함을 갖춰야 하고, 산부인과만 가도 지역 사회가 뒤집히니 성에 대한 무지함은 유지해야 한다. 다만 그 무지는 다른 성인이 나에게 성적인 질문이나 행동을 요구할 때에 한정된다. 남자아이들이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이나 말을 하면, 나는 모습을 바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이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학교가 그렇게 썩어 빠진 곳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명시적으로 저 모든 역할을 한 번에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 관련 문제가 터졌을 때 내가 처녀 여교사라 단도리를 못 해 이런 문제가 터졌다고 말하는 보호자의 말이 있다. 산부인과를 왜 학교 근처로 가냐며 다른 곳을 추천해 주겠다는 선배 교사와 “앙 기모찌”의 뜻을 느물거리며 묻는 학생, 그리고 나에게서 교사다운 섹시함을 찾아내는 남자도 있다. 참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여교사는 놀랍게도 성적인 존재이며 학생 또한 성적인 존재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로 무엇보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지금과 다르게 정의되지 않는 상태로, 이 지긋지긋함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부분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지만 첫 단계는 ‘국가 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라는 형태로 교사에게 제시된 억압을 깨부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4억 7천만 원의 혈세를 들여 만들어졌다는 이 놀라운 책은 여교사를 포함한 여성에게, 남학생을 포함한 남성에게 끼칠 수 있는 모든 악영향을 모아 놓은 것 같은 형태로 완성되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고 초등성평등연구회도 함께하고 있다.



모아나를 열 살에 만났어야 했다


여기까지 쓰고 원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 있는데 아무도 여성 교사 페미니스트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오열하며 영화 <모아나>를 본 이야기로 이 글을 끝내려 한다.


나는 한때 취미 삼아 판타지 소설을 썼었다.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은 남자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여자 캐릭터에게 비중을 줘서 다루기가 참 힘들었다. 게다가 여자 캐릭터가 극의 진행이라던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결함으로 인해 실수를 하면 정말 득달같이 증오의 말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나는 당시 페미니즘도 뭣도 몰랐지만 내가 만든 여자 캐릭터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완벽한 여자 캐릭터들을 만들고 써냈다. 운도 나빠야 했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 냈다. 그 캐릭터는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나도 그 캐릭터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모아나>를 만났다. 나는 정말이지 이 영화를 기다려 왔다. 아이들에게 같이 보자고 이미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모아나는 내가 기대하던 그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그 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반항하고 섬을 구하겠다고 뛰쳐나온 주제에 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게 말이 되는가? 운이 좋아서 성공했지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극 초반의 모아나는 흔히 말하는 ‘민폐 여캐’였고 나의 경험상 민폐를 끼치는 여자 캐릭터에게 독자들은 “죽어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진짜로 운 나쁘게 죽거나, 성장하기도 전에 구원받고 결혼해 행복하게 이야기에서 퇴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약속을 했기 때문에 5학년 학생들과 함께 <모아나>를 봤다. 내가 찾아낸 수많은 모아나의 단점들. 무계획적이고, 능숙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참을성 없는 모습을 학생들은 찾아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모아나의 모든 승리가 결국 운이 좋아서라고 판단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학생들은 모아나에 열광했다.


그게 나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었는지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단점들. 무계획적이고, 능숙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참을성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고,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성공하고 싶은 나를, 여자인 나를, 한 번도 솔직하게 캐릭터에 얹어 써낸 적이 없다. 모아나를 쓰고 싶었다. 모아나가 되고 싶었다. 서툴지만 노력했고 실수했지만 운이 따라서 성공하는 여자. 그 애가 타고난 행운과 조력과 응원은 그 애의 성공과 노력을 폄하해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이지 열 살 때 모아나를 만났어야 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새로운 모아나를 만날 때마다 끝내 껄끄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들이 있다. 내가 놓친 어린 시절을, 내가 읽었어야 할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 말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세상이 달라질 것임을 확신하고, 이것은 여성 교사 페미니스트이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다. 나의 인생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써낼 수 있다는 용기다. 그래서 나는 이 싸움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당신에게도 나와 함께 갈 것을 이 기나긴 글로 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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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