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기고] 국가교육위원회에는 청소년이 들어갈 수 있을까? (쥬리)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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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교육위원회에는 청소년이 들어갈 수 있을까?


쥬리
rkdalswls109@naver.com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과 청소년운동 우물모임,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연대체인 ‘새로운 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교육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우리들 학생은 학교의 학생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학교 경영의 주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채만식, 《돼지》


“학생·학부모·교사는 교육의 주체다.”


교육운동 혹은 청소년운동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외쳐 보았을 말이다. 교육 공무직을 포함하여 4주체로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학생/청소년은 교육의 주체라는 수사로 청소년 인권 보장을 주장해 온 경험이 있다. 이처럼 학생·학부모·교사·교육 공무직 등은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스스로를 ‘교육의 주체’로 호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선언에 의문을 품곤 한다. 교육의 주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구체적인 교육 활동들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뜻도 있겠지만, 우리가 외치고 선언하는 데는 보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육의 주체가 되고자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말로 그런 것들을 요구하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부 기능 개편과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공약했다. 집권 초기에는 교육 개혁 추진을 위해 일단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고 이후에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국가교육회의는 자문 기구로서 대통령을 의장으로 교육부 장관을 수석 부의장으로 하고 교육부 등 정책 담당자, 대학교육협의회,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교육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구상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의 범위 등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향후 교육부가 축소·폐지되고 국가교육위원회 및 시·도교육청으로 권한이 이양된다면 공교육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편 에서는 교육 내용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개별 학교 및 지역 사회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논의 중에 학생/청소년의 참여 문제는 과연 고려되고 있는 걸까?


대의 민주주의에서 공교육의 내용은 중앙·지방 정부와 국회 등 권한을 위임받은 통치 기구에서 상당 부분 결정하게 된다. 이를 교사는 전달하고 학생은 전달받으며 학부모는 학생의 이러한 과정을 조력한다는 모델이 공교육의 기본 꼴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교육 시스템을 인정하는 이상 우리는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교육과정을 유연화하고 교과서를 폐지하고, 허락되지 않은 내용을 교육한 교사를 처벌하지 않고, 공교육을 거부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불이익을 없애는 식으로 자율성을 확대해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교육의 주체로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와 같은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는 교육 당사자 각자의 자율성만이 아닌 더 적극적인 주체성의 문제가 있다. 우리가 어떤 국민과 국가·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공교육의 방향과 정책에 대해 결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의 주체다”라는 선언은, 당사자로서의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인이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의미화되어야 한다.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기는 한데


이번 대선에서 교육 정책은 주된 쟁점이 되지 못했다. 교육을 정치화한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워서인지, 교육 정책이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인지 교육 문제는 선거 등에서 많은 제안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치적 쟁점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각종 교육 정책들은 실행 과정에서 논란을 낳고 쟁점이 된다. 선거를 통해 뽑혔더라도 정부가 사회적 요구 등 ‘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혹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로 이런 문제들이 일어난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우파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나, 국가 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과 관련한 논란이 대표적인 예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전횡은 후보 중 가장 많이 득표한 1인이 정권을 잡는 대통령제에서 공교육의 내용을 행정부 부처가 결정하고 지시하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러한 구조 자체가 사회적 요구와 동떨어진, 대통령의 정파와 교육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육 내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과 진보 정당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것이 교육부 폐지 또는 축소와 ‘사회적교육위원회’ 내지는 ‘국가교육위원회’ 등의 교육 정책 결정 기구 신설이다.


그러나 그 기구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행정부, 국회, 교육청을 대변하는 인사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교육 주체’들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와 전문가들도 구성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며, 교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교육 전문가들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한 가지 쟁점은 공교육 정책이 현실 정치의 역동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이다. 이는 즉 교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기구 설립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교육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과 교육이 정치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교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세운다면 (이상적으로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부 또는 ‘교육 주체’를 대변하는 인사보다는 교육학 분야의 전문가들을 전문성을 기준으로 발탁해 해당 기구가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교육에 관해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출할 수 있는 ‘정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엘리트주의적 구조가 될 것이다. 나는 공교육의 내용은 어떤 국민, 어떤 국가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관한 정치적인 투쟁과 결정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또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보며, 정치와 무관한 공교육이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청소년을 대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7년 4월, 여러 교육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여 정식 출범한 ‘새로운 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교육위원회(사회적교육위원회)’는 새로운 교육 체제와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대체이다. 사회적교육위원회는 교육 주체들의 직접적인 대변자가 국가교육위원회 등 교육 정책 결정 기구에 포함돼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 교육 공무직 등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대표하는 인사가 포함되는 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안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어떤 단체가 그 기구에 들어갈 권한을 가져 마땅한지, 또 선거라는 권한 위임 절차를 밟지 않은 인사가 중대한 정책 결정 권한을 가지는 것이 정당한지 등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만약 행정부, 국회, 교육청 등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였다면 별도로 관련 단체 인사가 정책 결정 기구에 참여할 정당성이나 필요성은 낮을 수도 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청소년인데, 청소년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 사회에서 정부와 국회 등은 비청소년 국민들로부터만 권한을 위임받는 절차를 거쳤을 뿐이고 청소년은 일방적인 통치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 국회, 교육청 등을 대변하는 인사로 해당 기구가 구성되는 것이 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전제되더라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정부 기구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청소년 집단을 대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설령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되고 개별 학교 및 지역에서 교육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좀 더 늘어난다 하더라도, 청소년 집단이 교육의 주체로 공교육 정책에 개입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행정부, 국회, 교육청 인사로 구성된다면 이들은 청소년을 대변할 수 없다. ‘교육 주체’들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 인사가 구성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학생/청소년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학생/청소년은 사회적 자원의 부족이나 직접적 탄압으로 인해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이익 집단조차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새 정부에서 교육을 개혁하고, 교육 정책의 결정 및 전달 과정도 바꾸어 이를 통해 개별 학교와 지역에서의 자율성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특별한 전환의 계기가 없다면 이는 여전히 개별 학교의 교사와 일부의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생/청소년은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방식일 것으로 예견된다. 자율형 사립고와 대안학교 등 개별 학교에 교육 내용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예들이 있어 왔지만, 학생이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를 비롯하여 교육과정 및 교육 내용을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
권리로서의 보편적 공교육은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교육의 대상이고, 또 주체이다. 학생은 교육의 주체라는 말이 구호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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