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특집] 증언과 고백 ⑤ 정치적 중립, 모호하고도 굴욕적인 (미나리)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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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증언과 고백 ⑤

중립, 모호하고도 굴욕적인



미나리(가명) 



교사가 되고 나서 엄청나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매해 빠지지 않고 해야겠다 마음먹는 수업들이 있다. 3월 8일 여성의 날, 4월 20일 장애인의 날,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의 계기 수업 같은 것들이다. 이것 말고도 많지만 진도 나가랴, 학교에서 하라고 하는 계기 수업 실적물을 챙기랴 이러다 보면 한 시간 짬을 내서 다른 활동을 해 보는 게 만만찮은 일이다. 정말로 쉽지 않다. 물리적 시간이 만만찮은 것도 있지만 내가 완전히 기획하고 구성해야 하는 수업인 만큼 준비도 더 많이 필요하고 준비한 것과 전혀 다르게 수업이 되는 경우도 많아서 반성과 평가에도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도 3월 첫 주에 여성의 날 기념 수업을 했다. 학기 초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학생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학생들이 내가 만든 학습지에 적혀 있는 ‘성평등’이라는 말에 대해 질문하면서 우리들의 대화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양성평등 아니에요?”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존중한다는 의미와 성을 여성 또는 남성, 두 가지 기준으로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 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는 내 대답에 학생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트랜스젠더가 뭐야?”라는 어떤 사람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서로 서로 대답해 주기 시작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웃거나 농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것저것 이야기가 오가다 너무 길어지길래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고 할 이야기도 많으니 다음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다시 여성의 날 이야기로 돌아오려는 찰나 한 학생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누구든 될 수 있는 거네.”

 

이런 게 선생 하는 재미라 해야 하나? 학생들이 선사하는 이 보석 같은 말들 말이다. ‘보람이라는 말이 이런 느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정해 주는 것

 하지만 올해는 동성애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나는 5학년 담임이라 실과 수업을 하는데 실과 1단원은 가정생활에 대한 내용이다. 가족 구성의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단원의 목표 중 하나이다. 예전엔 이 단원을 수업하면서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뿐만 아니라 동성 결혼 가정에 대한 내용 역시 다루었다. 여성의 날 기념수업과 함께 잘 연결되기도 했고 학년 초에 새로 만난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의 가족에 대해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수업 흐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망설이다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성교육 표준안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동성 결혼이나 다양한 성 정체성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할까, 학부모 항의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며칠씩 걱정했다. 직접적으로 항의를 받은 적은 없지만 돌려서 불만을 전해 들은 적이 여러 번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항의나 민원은 내가 짊어질 몫이라고 생각한다. 성 정체성이나 동성 결혼만 그런 항의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매해 신실한 기독교 가정의 학생들이 한두 명씩은 학급에 있고 그 학생들이 과학 시간이나 사회 시간에 진화론에 관련된 내용을 들으면 패닉에 빠진다. 관련 단원을 배울 때는 집에서 저녁마다 따로 수업 내용을 부정하는 교리 공부를 더 시키는 부모님도 보았다. 종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수없이 많은 것들이 ‘선생님이 말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매일매일 경험한다. ‘선생님이 말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도 수없이 만난다. 그리고 갈등하고 선택한다. 무엇이 맞는지 그른지. 그 갈등 속에서 담담히 내 이야기를 하고 학생이 자기 이야기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리고 보호자들이 날 신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은 그야말로 교사로서 나의 몫이다.

 

그런데 성교육 표준안은 상황을 다르게 만들었다.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동성애는 말하면 안 된다고 표준안으로 정한 것이다. 이건 내가 항의나 민원을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결심하거나 다른 사람과 논쟁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으로서 나라가 내게 정해 주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학생들과 동성애에 관해 대화하면 항의받지 않을까를 걱정했다면 이제 나는 ‘징계받지 않을까’가 걱정된다. 그래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실과 1단원을 어떻게 수업할지를. 징계를 감수해야 하는 걸까?

 

 

국가 앞에서 다물어지는 입

5월 15일은 학교에서 매해 열심히 기리는 스승의 날이다. 또한 그날은 병역 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초등학생이지만 남학생들은 이미 군대에 대해 지긋지긋한 체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전 세계 4개 나라 중 한 나라인 한국에 살고 있는 만큼, 아직 휴전중인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만큼 군대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내게 있다. 하지만 병역 거부자의 날 기념 수업 역시 늘 끝까지 망설이게 된다. 재작년부터는 비슷한 시기에 서해교전과 천안함 계기 수업을 하라고 교육청에서 지침이 내려오기 때문에 더 망설이게 되었다. 계기 수업용 영상 자료를 제작하여 교육청에서 학교로 보내주면 학교에서는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한번은 서해교전 교육 영상을 보고는 너무 당황해서 중간에 꺼 버리고 말았다. 희생된 군인들에게 위로금으로 1억인가 2억이 지급되었는데 한 어머니가 그 돈을 자신의 아들이 있던 부대에 전액 기부했다. 그런데 그 부대에서는 기부 받은 돈으로 커다란 무기를 샀고 희생자를 기리겠다고 포탄에 전쟁으로 죽은 그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는 것이다. “○◯◯를 잊지 않고 우리나라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들겠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을 기리기 위해 더 크고 강한 살상 무기를 사는 나라라니……. 학생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평화를 아무리 공부한들 아무 소용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생들과 해 온 그 많은 이야기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다. 교사가 된 처음 몇 해 동안은 나는 하지 않는 맹세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했다. 조회나 학교 행사 때마다 학생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학생들 뒤에 서서 혼자 어찌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나는 싫어서 안 하는 거니 여러분도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는 학생도 있고 안 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는 못한다. 이미 한국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했다고 교사를 징계했던 나라니까.


한번은 교육자료전전시회라는 대회에 나갔다. 수업에 사용하는 자료들을 만들어 출품하는 대회였는데 나는 5.18민주화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영상 클립 자료를 만들어 출품했다. 이미 5.18 관련 영상 자료는 굉장히 많았지만 그 영상들이 대부분 시위대와 진압대의 충돌 장면뿐인 것이 싫었다. 피 흘리고 두들겨 맞는 모습들만 반복해서 보여 주며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여러분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누가 시위에 참여하려고 할까 싶었다. 그 수많은 5.18 영상에 젊은 남자들만 등장하는 것도 불편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초등학생 어린이 시위대도 있었고 시위대를 먹이기 위해 주먹밥을 종일 만들었던 도청 근처 시장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좀 더 다양한 5.18의 모습을 담은 수업 자료 영상을 만들고 싶었고 대회에 참여하면 만든 영상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 참여했다. 대회 심사일. 작품 설명 3분, 질의응답 7분이 팀별로 배당되었다. 시간이 짧아 영상을 다 보여줄 수 없으니 노트북 하나엔 영상을 틀어 놓고 차트로 내용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심사위원이 물었다.

 

“왜 5.18로 했어요? 우리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도 있는데.”
“네, 교육과정상에 있는 사건 중에서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아, 그래도…… 5.18은…… 아직 정리가 안 된 거거든. 알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대회 진행 요원과 뒤에 대기하고 있던 팀 모두가 당황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늘 모자라서 쩔쩔매기 마련이었는데 거의 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의 심사위원을 보고 나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났다. 정리가 안 되었다니. 대체 무엇이? 그럼 전두환은 왜 사형을 받았는데? 그럼 왜 교과서에 ‘5.18민주화운동’이라고 적혀 있는 건데! 한동안 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심사위원이라지만 한마디도 쏘아붙이지 못하고 온 게 너무 후회되고 내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일었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자료에 불과하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국가의 교육정책이기도 하다. 그 심사위원은 국정 교과서가 도입될 거라는 걸 알고 그랬던 걸까? 아니었겠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4.19나 5.18 이야기도 이제 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하던 이야기를 못 하게 하고 있었던 일을 없게 만드는 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정치적 중립이라는 굴레는 힘들지 않다

 

 세월호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한미FTA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시기 때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지시 공문이 내려온다. 그런데 그 정치적 중립이라는 게 굉장히 모호하다.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냥 ‘침묵하라’라는 뜻에 더 가깝달까.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싫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기획을 《오늘의 교육》에서 다룬다고 하기에 생각해 보았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나를 힘들게 하나? 답은 아니오였다. 힘이 드는 건 오히려 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힘들다. 내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가장 망설여지고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


‘아, 이건 좀 위험한데’라는 느낌은 학생들과 갈등을 겪을 때 더 심하다. 솔직히 사나흘에 한 번은 ‘이러다 신문에 나겠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잘못으로 혹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학생들을 반인권적으로 대하거나 수업을 파행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 워낙 잦기도 하고 무단결석이나 학생 간 폭력 같은 사건 사고들도 매일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찔함은 그럴 때 지나간다.


반면 정치적 중립 의무는…… 힘들지 않다.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비참하고 정말 굴욕적이다. 목구멍에 있는 말을 내뱉지 못하는 그 비참함. 나는 보궐선거까지 해마다 있는 선거에 내가 지지하는 후보, 내가 지지하는 정책이 뭔지 옆 사람한테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정당과 관련된 글이면 SNS에서 리트윗이나 좋아요 하나 무서워서 클릭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그 굴욕감. 대체 나한테 투표권은 왜 있는 거지? 정치적이면 안 되고 정치적인 존재여서는 안 되는데 왜 투표는 하는 걸까? 왜 주민세는 내는 거지? 심지어 나는 정치 제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바담풍’이 따로 없다. 결국 남는 건 자괴감. 교사는 국가의 말단에 불과하다는 제도적 세뇌. 언제쯤 이 굴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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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