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증언과 고백 ④
편향적인, 그러나 그것도 괜찮을
김진
경기 부천 부곡중
unlive75@gmail.com
부천에서 10년을 학교에서 지지고 볶다가 노조 전임자 휴직으로 전교조
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집행부가 되고 나서야 현장이 희망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곧 해직되겠지만 여전히 마음은 학교에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학교에서 일어났던 경험에 대한 글을 쓰려고 보니 이제 현장에 대한 글을 또 언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후속 조치에 불응한 죄(?)로 해고 협박을 당하고 있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오래 전에 생각한 일이지만, 교육운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만약 해고가 된다면 지금처럼이 아니라, 바로 정치적 중립이 문제가 되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고백하기도 했고, 도덕교사인 덕에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수업의 주제로 다루어 왔다. 정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고, 특히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근본적인 문제들까지 짚어 왔다. 수업 시간에 각종 구호가 적힌 몸자보를 입고 들어가기도 했고, 투쟁하는 연대 단위에서 만든 티셔츠를 입고 수업 공개를 해 본 적도 있었다. 숱하게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거리에서 선전전을 했고,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왜 이런 집회가 필요하고 왜 참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이런 일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받은 적이 없다. 문제제기라면, 선생님은 왜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이야기하느냐 정도의 귀여운 항의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근혜 정권이 이야기한 ‘긍정의 역사관’ 효과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어쨌든 학생들은 나를 정의로운 선생님이라 생각해 주었고, 학부모님들은 내 실천에 대해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오히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사달이 일어났다.
야자 희망원 따위?
중학교에만 있다가 처음 공고로 발령받았을 때다. 학생들이 올해부터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을 하기로 했다면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에이 설마, 공고에서 무슨 야자냐’며, ‘그냥 공부하라는 이야기겠지’ 싶었는데, 어느 날 당장 다음 주부터 밤 9시까지 모든 학생들이 야자를 실시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해야겠으면 절차라도 제대로 밟으라고 이야기했다. 야자는 학생, 학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희망원 따위는 없다고 했다. 강제 야자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교직원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했지만 교장은 막무가내였다. 선생님들도 대부분 강제 야자를 반대했지만, 무기력했다.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하고 우리 반은 희망하는 사람들만 야자를 하기로 했다. 희망원 양식을 만들고 학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우리 반은 단 한 명도 희망원을 내지 않았다. 야자 하는 첫날, “진짜 가요?” 하교를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그럼 뭐하려고? 잘 가라” 쿨하게 교실을 나왔다. 사실은 나도 두근두근했다. ‘학생들이 안 가면 어떡하지?’ ‘교문에서 끌려오면 어떡하지?’ 학생들은 신나서 학교를 나갔고,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 대표라며 세 명이 교장실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반이 야자를 하지 않아서 다른 반에 영향을 끼치니 해결을 요구했단다. 며칠 후 10여 명의 학부모가 나를 직접 찾아와서 막말을 퍼붓고 갔다. 그 다음에는 20여 명의 학부모가 또 학교를 다녀갔다. 학교에서 야자 희망원을 가정통신문으로 내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학부모들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학교에 퍼뜨렸고, 학부모들의 집단적 반발을 처음 겪은 나로서는 한참 동안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를 보내야 했다.
학생위원과 갈등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던 당시 인문계고에서 일했던 나는 학교생활규정 개정 당시 교원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학생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당시 기존의 학생생활규정을 유지하는 입장에 서 있었고, 나를 비롯한 교원위원들이 학생인권조례에 입각한 학생생활규정을 만들자는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여차여차하여 학생생활규정은 정리가 되는 듯했으나, 학교는 그 후에도 여전히 학생들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생활규정을 해석했다. 나는 다시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학생부에서 등교 시각 정각에 교문을 막아서고 학생들을 교문 앞에 세워놓고는 1교시가 다 되어서야 학생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했고, 경기도 학생인권옹호관에게 민원을 제기하려고 서명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학생이 학생인권조례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수업시간 상황을 휴대폰으로 녹음을 했고, 이를 교장과 학부모들에게 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수업시간에 교장, 교감이 일방적으로 들어와서 한 학생을 무작정 끌어가려고 했다. 이를 저지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관리자들은 학부모들의 민원이 들어와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학생을 데려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끌어가려고 했던 관리자들은 오히려 학생과 교사들의 반감을 샀고, 학생인권옹호관이 개입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그 녹음을 한 학생을 만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과의 대화 도중 녹음을 부탁한 친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학생생활규정개정위원회에 참여했던 바로 그 학생위원이었다. 충격이었다. 그와는 2년 전 재회를 했다. 서울시청광장에서 교학사 교과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던 그는 그날 촛불집회에서도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 일을 떠올리며 그날 밤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위 두 사례 모두 교사의 정치적 중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첫 번째 이야기 속의 학부모들은 모두 나를 좌편향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 속의 학생이 나에게 직접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를 감시하고 학교에 고발(?)한 이유는 공고의 학부모들과 같은 인식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사실 학교에서 내 행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사회주의적 신념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것도 아니고, 사실은 보편적인 인권, 법령,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좌편향으로 몰렸고, 중립적이지 못한 교사로 보수적 학부모, 학생들에게 낙인찍혔다.
이들에게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현실에 살아 있지 않은 죽은 화석과 같이 아무런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하지 않으며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을 학생의 머릿속에 잘 심어 주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과연 그것은 사람이 맞을까?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이미 ‘교과서’라고 하는 것에도 정치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지 않았던가? 교과서에조차 없는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는 교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하는 교사,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거짓 ‘중립’에 저항하는 일은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중립이라면 학생 편, 노동자 편, 소외된 사람들의 편인 편향적인 교사로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일 아닐까.
특집/ 증언과 고백 ④
편향적인, 그러나 그것도 괜찮을
김진
경기 부천 부곡중
unlive75@gmail.com
부천에서 10년을 학교에서 지지고 볶다가 노조 전임자 휴직으로 전교조
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집행부가 되고 나서야 현장이 희망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곧 해직되겠지만 여전히 마음은 학교에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학교에서 일어났던 경험에 대한 글을 쓰려고 보니 이제 현장에 대한 글을 또 언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후속 조치에 불응한 죄(?)로 해고 협박을 당하고 있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오래 전에 생각한 일이지만, 교육운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만약 해고가 된다면 지금처럼이 아니라, 바로 정치적 중립이 문제가 되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고백하기도 했고, 도덕교사인 덕에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수업의 주제로 다루어 왔다. 정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고, 특히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근본적인 문제들까지 짚어 왔다. 수업 시간에 각종 구호가 적힌 몸자보를 입고 들어가기도 했고, 투쟁하는 연대 단위에서 만든 티셔츠를 입고 수업 공개를 해 본 적도 있었다. 숱하게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거리에서 선전전을 했고,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왜 이런 집회가 필요하고 왜 참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이런 일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받은 적이 없다. 문제제기라면, 선생님은 왜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이야기하느냐 정도의 귀여운 항의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근혜 정권이 이야기한 ‘긍정의 역사관’ 효과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어쨌든 학생들은 나를 정의로운 선생님이라 생각해 주었고, 학부모님들은 내 실천에 대해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오히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사달이 일어났다.
야자 희망원 따위?
중학교에만 있다가 처음 공고로 발령받았을 때다. 학생들이 올해부터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을 하기로 했다면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에이 설마, 공고에서 무슨 야자냐’며, ‘그냥 공부하라는 이야기겠지’ 싶었는데, 어느 날 당장 다음 주부터 밤 9시까지 모든 학생들이 야자를 실시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해야겠으면 절차라도 제대로 밟으라고 이야기했다. 야자는 학생, 학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희망원 따위는 없다고 했다. 강제 야자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교직원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했지만 교장은 막무가내였다. 선생님들도 대부분 강제 야자를 반대했지만, 무기력했다.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하고 우리 반은 희망하는 사람들만 야자를 하기로 했다. 희망원 양식을 만들고 학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우리 반은 단 한 명도 희망원을 내지 않았다. 야자 하는 첫날, “진짜 가요?” 하교를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그럼 뭐하려고? 잘 가라” 쿨하게 교실을 나왔다. 사실은 나도 두근두근했다. ‘학생들이 안 가면 어떡하지?’ ‘교문에서 끌려오면 어떡하지?’ 학생들은 신나서 학교를 나갔고,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 대표라며 세 명이 교장실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반이 야자를 하지 않아서 다른 반에 영향을 끼치니 해결을 요구했단다. 며칠 후 10여 명의 학부모가 나를 직접 찾아와서 막말을 퍼붓고 갔다. 그 다음에는 20여 명의 학부모가 또 학교를 다녀갔다. 학교에서 야자 희망원을 가정통신문으로 내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학부모들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학교에 퍼뜨렸고, 학부모들의 집단적 반발을 처음 겪은 나로서는 한참 동안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를 보내야 했다.
학생위원과 갈등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던 당시 인문계고에서 일했던 나는 학교생활규정 개정 당시 교원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학생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당시 기존의 학생생활규정을 유지하는 입장에 서 있었고, 나를 비롯한 교원위원들이 학생인권조례에 입각한 학생생활규정을 만들자는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여차여차하여 학생생활규정은 정리가 되는 듯했으나, 학교는 그 후에도 여전히 학생들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생활규정을 해석했다. 나는 다시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학생부에서 등교 시각 정각에 교문을 막아서고 학생들을 교문 앞에 세워놓고는 1교시가 다 되어서야 학생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했고, 경기도 학생인권옹호관에게 민원을 제기하려고 서명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학생이 학생인권조례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수업시간 상황을 휴대폰으로 녹음을 했고, 이를 교장과 학부모들에게 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수업시간에 교장, 교감이 일방적으로 들어와서 한 학생을 무작정 끌어가려고 했다. 이를 저지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관리자들은 학부모들의 민원이 들어와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학생을 데려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끌어가려고 했던 관리자들은 오히려 학생과 교사들의 반감을 샀고, 학생인권옹호관이 개입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그 녹음을 한 학생을 만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과의 대화 도중 녹음을 부탁한 친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학생생활규정개정위원회에 참여했던 바로 그 학생위원이었다. 충격이었다. 그와는 2년 전 재회를 했다. 서울시청광장에서 교학사 교과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던 그는 그날 촛불집회에서도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 일을 떠올리며 그날 밤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위 두 사례 모두 교사의 정치적 중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첫 번째 이야기 속의 학부모들은 모두 나를 좌편향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 속의 학생이 나에게 직접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를 감시하고 학교에 고발(?)한 이유는 공고의 학부모들과 같은 인식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사실 학교에서 내 행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사회주의적 신념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것도 아니고, 사실은 보편적인 인권, 법령,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좌편향으로 몰렸고, 중립적이지 못한 교사로 보수적 학부모, 학생들에게 낙인찍혔다.
이들에게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현실에 살아 있지 않은 죽은 화석과 같이 아무런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하지 않으며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을 학생의 머릿속에 잘 심어 주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과연 그것은 사람이 맞을까?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이미 ‘교과서’라고 하는 것에도 정치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지 않았던가? 교과서에조차 없는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는 교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하는 교사,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거짓 ‘중립’에 저항하는 일은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중립이라면 학생 편, 노동자 편, 소외된 사람들의 편인 편향적인 교사로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