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증언과 고백 ①
사소한, 그러나
용기를 내야 하는 결단
정은균
군산영광중
jek1015@hanmail.net
학생들을 만날 때 “학생은 교복 입은 민주주의 시민”을 강조하는 17년 차 국어 교사다.
학교가 민주주의 산 교육장이라는 믿음을 갖고 책 읽기와 글쓰기와 현장 실천을 위해 나름 애쓰고 있다.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시 공부의 모든 것》 《국어와 문학 텍스트의 문체 연구》 《한글 이야기》 등의 책을 냈다.
지난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학교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흘간 시위 일정을 마친 뒷날 같은 장소에서 학교 안팎 교사와 시민 50여명이 모인 집회를 열었다. 연대 서명 작업, 선전지 작성 등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다양한 활동들을 펼쳤다. 지난 17년의 교직 생활 중 가장 뜨겁게 ‘정치적’ 실천을 했다고 자평할 만한 한 달을 보냈다.
주저하지 않았다
발단은 재단 산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의 전보 인사 문제였다. ‘부당 전보’ 혐의가 짙었다. ‘심의기구’인 사립학교 인사위원회(인사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중대 인사 안건인 전보 교류 문제를 관행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했다. 재단 정관이나 인사위 규정에 전보의 원칙과 기준이 전무했다. 평소 교무회의에서 쓴소리를 하는 해당 선생님을 ‘찍어 내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대책회의를 열었다. ‘밀실 깜깜이 인사’의 부당함을 성토했다. 부당 전보 인사의 시발점에 인사위 규정의 비민주성과 인사위 운영의 불합리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부당 전보 인사를 철회하고 인사위 규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정치 행위’가 필요했다. 연대 서명 작업, 1인 시위, 보도자료 배포, 집회, 기자회견 들을 하기로 했다.
맨 첫 번째로 한 일은 재단 산하 학교 동료교사들을 대상으로 연대 서명을 받는 작업이었다. 서명지를 작성하는 일이 일차 과제였다. 글 제목, 내용의 흐름, 전체적인 기조, 요구 사항들에 대해 협의하고 조정하여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번 인사 문제가 특정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 수년간 누적된 인사 적폐가 재단 내 학교 소속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교육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공식적인 인사 발표가 있었던 2월 초 직후부터 상황을 개시해도 3월 새 학년 시작 이전에 사태를 일단락 짓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1차 대책회의가 있던 날 새벽 원고지 11장 분량의 서명지를 3시간에 걸쳐 작성했다. 힘들었다. 첫 번째 중대 난관이었다.
서명을 받는 일이 이어졌다. 졸업식과 봄방학이 연이어지는 때였다. 동료교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직접 서명을 통해 뜻을 모으는 일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화 통화로 연대 서명 동참 여부를 확인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전 준비 작업을 했다. 연대 서명 취지를 포함해서 인사 적폐를 해소하는 일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이메일로 보냈다. 이메일을 보낸 뒤 수신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곧장 전화 통화를 통한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사전에 진행한 이메일 호소 글이 주효했다. 80퍼센트 가까운 동료교사들이 동참과 지지 의사를 밝혀주었다.
그 뒤 1인 시위와 집회, 언론 제보 등 가능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싸웠다.’ 역부족이었다. 재단과 학교는 전보 인사를 철회하지 않았다. 해당 교사가 수차례 재심을 요청하고 전보 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했는데도 모두 거부했다. 인사 행정이 요구하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으며 학교장 재량에 따라 판단했다는 이유를 댔다.
해당 교사는 전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당함을 알리고 인사를 철회하기 위한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일부 소득이 있었다. 교육청 중재에 따라 재단과 학교가 정관, 세칙, 인사위원회 규정 등을 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불합리한 인사 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명백했다. 기준과 원칙 없는 인사, 인사위원회 규정의 미비와 형식적 운영 등이었다. 상대적 약자인 교사의 인사상 손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가 유명무실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해당 교사는 사태 초기부터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전체 교사의 80퍼센트에 가까운 동료들이 그의 문제제기에 적극 화답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구조적으로 확실한 ‘을’ 신분이다. 재단 관계자들이나 학교 관리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 ‘용기 있는 결단’의 순간들이었다.
‘극적’ 변화가 찾아왔다
나와 너와 적과 동지. 오늘과 내일 또는 어제와 오늘. 객관과 주관 혹은 기표와 기의.
사랑 그리고 미움. 그 밖의 서늘한 이항대립쌍을 떠올리는 밤.
아침이 기다려진다. 우리 모두는 각자 어딘가에 선다. 나는 오늘 학교 교문 앞에 선다.
공공적 책무성과 민주주의가 학교의 밑바탕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교문을 지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조금 물렁해졌으면 좋겠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다. 존 듀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1일 차 1인 시위를 앞둔 지난 2월 18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읽는 이들에게 약간의 비장감이 전달되도록 사뭇 정색을 해 과장적인 어조로 썼다. ‘공공적 책무성’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존 듀이의 말을 인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번 인사 문제를 계기로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학교 정치’를 한 번쯤 성찰해 보기를 원했다.
학교 정치를 되작이다가 맨 처음으로 (적대적이고 모순적인) ‘나와 너’를 떠올렸다. 이른바 ‘이항대립쌍’. 독일 철학자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궁극적인 구분이나 이분법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는 정치 분야에서의 궁극적인 이분법을 ‘적과 동지’로 규정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내 머릿속은 연대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20퍼센트의 동료들이 어지럽게 들어차 있었다.
며칠 뒤 ‘극적’ 변화가 찾아왔다. 전화 서명 작업을 함께한 한 동료의 이야기가 계기였다. 연대 서명 건을 화제로 어느 선생님과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말하자면 ‘관망파’였다. 보기에 따라 ‘양다리파’로 볼 수도 있겠다. 대체로 ‘얄미운’ 존재에 가깝다. 대화나 합리적 판단을 강조하면서 자기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그즈음 제법 긴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서명지 문건 마지막에 인용한,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라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끝내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명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라고 말했다!
정치는, 다수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적과 동지’가 함의하는 대립적 투쟁을 본질의 하나로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조정과 타협과 합의라는 또 다른 본질을 갖는 이유다.
학교 정치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학교는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교장과 교감 등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학급과 학급 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이들이 맺는 상호 구도와 관계 여하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와 ‘색깔’이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과 학교 정치가 형성된다.
상호 쟁투하며 공멸을 향해 가는 학교인가 공존을 지향하는 학교인가. 학교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라는 존 듀이류의 명제를 고려할 때, 적과 동지의 정치론보다 타협과 합의의 정치론이 좀 더 지배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교육기관’인 학교 조직에 맞는 ‘교육적’인 방식의 정치다.
교무실과 교실을 넘어서는 말과 목소리
문제는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민주적인 학교 시스템이다. 공정하고 엄정한 교원 인사, 참여와 숙의에 기반한 상향식 의사 결정, 자발성과 자율성에 터 잡은 교육 활동 보장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 현실은 사뭇 다르다. 가령 교원 인사 시스템을 보자. 공립학교 교원인사위는 자문기구다. 인사 관련 안건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량제 중심의 인사 평정 시스템이 형식적인 ‘객관성’을 담보함으로써 내부 반발을 최소화한다.
사립학교 교원인사위는 사립학교법 제53조의4의 제1항에 따라 심의기구 성격을 갖는다.➊ 인사위원들이 인사 관련 안건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조사하고 토론하여 결정해야 한다. 교장이나 사학재단 이사장은 특별하고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인사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관련 대법원 판례도 있다.➋ 법적 의미의 ‘의결 기구’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엄격한 기능을 갖는 회의체다. 사학재단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른 인사 전제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➊ 제53조의4(교원인사위원회) ①각급학교(초등학교·고등기술학교·공민학교·고등공민학교·유치원과 이들에 준하는 각종학교를 제외한다)의 교원(학교의 장을 제외한다)의 임용 등 인사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당해 학교에 교원인사위원회를 둔다.
➋ 2006년 학교법인 동일학원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낸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상고 소송(사건번호: 2006두17949)에서 대법원은 사립학교 인사위가 ‘심의 기구’로 규정된 취지가 사립학교 운영에서 인사의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을 통해 학교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인사위에서 심의한 내용은 교원의 인사권자에 대하여 법적인 기속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와 배치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당시 대법원은 동일학원 산하 동일중학교 인사위가 2004학년도 학급 담임배정과 관련하여 담임을 희망하고 있는 교원을 우선적으로 담임으로 배정하는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담임을 배정한 후 이러한 심의 내용을 교장에게 제출하였으나, 교장이 이와 달리 담임으로 배정되어 있던 전교조 조합원만을 담임 배정에서 제외하면서 그 자리에 전원 비조합원으로 대체시킨 점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와 같은 제정‧운영 취지를 고려하여 인사위를 꾸려가고 있는 사립학교나 사학재단이 얼마나 될까. 인사위 규정이 제정 및 운영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본 사립학교 교사가 얼마나 될까. 법을 지켜야 할 주체들이 법을 무시하고, 법 준수 여부를 날카롭게 감시해야 할 또 다른 주체들이 법을 도외시하는 게 작금의 학교 현실이다. 온전한 의미의 ‘정치’가 설 자리가 없다.
정치 혐오주의는 오래된 ‘풍습’과도 같다. 정치를 사갈시하는 이들이 많다. 학교 안에서 정치는 금기어 취급을 당한다. <헌법> 제31조 제4항➌이 ‘보장’하는 ‘권리’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의 복무규정에서 요령부득의 ‘의무’로 둔갑해 있다. ‘정치적’ 선택과 결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 활동이 없건만 모든 교육 활동이 ‘중립’이라는 무균질의 세계에 갇혀 있기를 요구받는다. 불가능과 기만의 시스템이다.
➌ 제31조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독일 법학자다. 그는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불법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한, 그리고 세상이 존속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는 어느 곳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학교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온갖 구조, 제도, 규정들이 온존해 있다. 가장 정치적이면서 가장 비정치적일 것을 요구하는 기만의 시스템이 교무실과 교실을 지배한다. 예링이 말한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학교 정치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는 어딘가에 ‘서는’ 것이다. 어떤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적과 동지’는 누구인가. ‘적’과의 대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언어는 권력자가 부여한 것인가 ‘나’ 자신의 것인가. ‘나’는 ‘나’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정치’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언제 뜨거운 ‘정치’ 한 번 해 본 적이 있느냐.
지난 2월 말, 부당 전보 철회 요구와 민주적인 인사위 규정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마치고 늦은 오후에 쓴 패러디 글이다. 민주주의는,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야 산다. 각자의 명확한 정치적 위상과 언어를 바탕으로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할 때 명맥을 유지한다. 침묵과 냉소는 학교 정치의 최대 적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학교 민주주의를 키우는 일을 찬찬히 생각해 본다.
특집/ 증언과 고백 ①
사소한, 그러나
용기를 내야 하는 결단
정은균
군산영광중
jek1015@hanmail.net
학생들을 만날 때 “학생은 교복 입은 민주주의 시민”을 강조하는 17년 차 국어 교사다.
학교가 민주주의 산 교육장이라는 믿음을 갖고 책 읽기와 글쓰기와 현장 실천을 위해 나름 애쓰고 있다.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시 공부의 모든 것》 《국어와 문학 텍스트의 문체 연구》 《한글 이야기》 등의 책을 냈다.
지난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학교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흘간 시위 일정을 마친 뒷날 같은 장소에서 학교 안팎 교사와 시민 50여명이 모인 집회를 열었다. 연대 서명 작업, 선전지 작성 등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다양한 활동들을 펼쳤다. 지난 17년의 교직 생활 중 가장 뜨겁게 ‘정치적’ 실천을 했다고 자평할 만한 한 달을 보냈다.
주저하지 않았다
발단은 재단 산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의 전보 인사 문제였다. ‘부당 전보’ 혐의가 짙었다. ‘심의기구’인 사립학교 인사위원회(인사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중대 인사 안건인 전보 교류 문제를 관행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했다. 재단 정관이나 인사위 규정에 전보의 원칙과 기준이 전무했다. 평소 교무회의에서 쓴소리를 하는 해당 선생님을 ‘찍어 내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대책회의를 열었다. ‘밀실 깜깜이 인사’의 부당함을 성토했다. 부당 전보 인사의 시발점에 인사위 규정의 비민주성과 인사위 운영의 불합리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부당 전보 인사를 철회하고 인사위 규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정치 행위’가 필요했다. 연대 서명 작업, 1인 시위, 보도자료 배포, 집회, 기자회견 들을 하기로 했다.
맨 첫 번째로 한 일은 재단 산하 학교 동료교사들을 대상으로 연대 서명을 받는 작업이었다. 서명지를 작성하는 일이 일차 과제였다. 글 제목, 내용의 흐름, 전체적인 기조, 요구 사항들에 대해 협의하고 조정하여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번 인사 문제가 특정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 수년간 누적된 인사 적폐가 재단 내 학교 소속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교육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공식적인 인사 발표가 있었던 2월 초 직후부터 상황을 개시해도 3월 새 학년 시작 이전에 사태를 일단락 짓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1차 대책회의가 있던 날 새벽 원고지 11장 분량의 서명지를 3시간에 걸쳐 작성했다. 힘들었다. 첫 번째 중대 난관이었다.
서명을 받는 일이 이어졌다. 졸업식과 봄방학이 연이어지는 때였다. 동료교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직접 서명을 통해 뜻을 모으는 일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화 통화로 연대 서명 동참 여부를 확인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전 준비 작업을 했다. 연대 서명 취지를 포함해서 인사 적폐를 해소하는 일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이메일로 보냈다. 이메일을 보낸 뒤 수신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곧장 전화 통화를 통한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사전에 진행한 이메일 호소 글이 주효했다. 80퍼센트 가까운 동료교사들이 동참과 지지 의사를 밝혀주었다.
그 뒤 1인 시위와 집회, 언론 제보 등 가능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싸웠다.’ 역부족이었다. 재단과 학교는 전보 인사를 철회하지 않았다. 해당 교사가 수차례 재심을 요청하고 전보 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했는데도 모두 거부했다. 인사 행정이 요구하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으며 학교장 재량에 따라 판단했다는 이유를 댔다.
해당 교사는 전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당함을 알리고 인사를 철회하기 위한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일부 소득이 있었다. 교육청 중재에 따라 재단과 학교가 정관, 세칙, 인사위원회 규정 등을 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불합리한 인사 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명백했다. 기준과 원칙 없는 인사, 인사위원회 규정의 미비와 형식적 운영 등이었다. 상대적 약자인 교사의 인사상 손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가 유명무실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해당 교사는 사태 초기부터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전체 교사의 80퍼센트에 가까운 동료들이 그의 문제제기에 적극 화답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구조적으로 확실한 ‘을’ 신분이다. 재단 관계자들이나 학교 관리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 ‘용기 있는 결단’의 순간들이었다.
‘극적’ 변화가 찾아왔다
나와 너와 적과 동지. 오늘과 내일 또는 어제와 오늘. 객관과 주관 혹은 기표와 기의.
사랑 그리고 미움. 그 밖의 서늘한 이항대립쌍을 떠올리는 밤.
아침이 기다려진다. 우리 모두는 각자 어딘가에 선다. 나는 오늘 학교 교문 앞에 선다.
공공적 책무성과 민주주의가 학교의 밑바탕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교문을 지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조금 물렁해졌으면 좋겠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다. 존 듀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1일 차 1인 시위를 앞둔 지난 2월 18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읽는 이들에게 약간의 비장감이 전달되도록 사뭇 정색을 해 과장적인 어조로 썼다. ‘공공적 책무성’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존 듀이의 말을 인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번 인사 문제를 계기로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학교 정치’를 한 번쯤 성찰해 보기를 원했다.
학교 정치를 되작이다가 맨 처음으로 (적대적이고 모순적인) ‘나와 너’를 떠올렸다. 이른바 ‘이항대립쌍’. 독일 철학자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궁극적인 구분이나 이분법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는 정치 분야에서의 궁극적인 이분법을 ‘적과 동지’로 규정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내 머릿속은 연대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20퍼센트의 동료들이 어지럽게 들어차 있었다.
며칠 뒤 ‘극적’ 변화가 찾아왔다. 전화 서명 작업을 함께한 한 동료의 이야기가 계기였다. 연대 서명 건을 화제로 어느 선생님과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말하자면 ‘관망파’였다. 보기에 따라 ‘양다리파’로 볼 수도 있겠다. 대체로 ‘얄미운’ 존재에 가깝다. 대화나 합리적 판단을 강조하면서 자기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그즈음 제법 긴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서명지 문건 마지막에 인용한,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라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끝내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명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라고 말했다!
정치는, 다수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적과 동지’가 함의하는 대립적 투쟁을 본질의 하나로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조정과 타협과 합의라는 또 다른 본질을 갖는 이유다.
학교 정치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학교는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교장과 교감 등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학급과 학급 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이들이 맺는 상호 구도와 관계 여하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와 ‘색깔’이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과 학교 정치가 형성된다.
상호 쟁투하며 공멸을 향해 가는 학교인가 공존을 지향하는 학교인가. 학교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라는 존 듀이류의 명제를 고려할 때, 적과 동지의 정치론보다 타협과 합의의 정치론이 좀 더 지배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교육기관’인 학교 조직에 맞는 ‘교육적’인 방식의 정치다.
교무실과 교실을 넘어서는 말과 목소리
문제는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민주적인 학교 시스템이다. 공정하고 엄정한 교원 인사, 참여와 숙의에 기반한 상향식 의사 결정, 자발성과 자율성에 터 잡은 교육 활동 보장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 현실은 사뭇 다르다. 가령 교원 인사 시스템을 보자. 공립학교 교원인사위는 자문기구다. 인사 관련 안건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량제 중심의 인사 평정 시스템이 형식적인 ‘객관성’을 담보함으로써 내부 반발을 최소화한다.
사립학교 교원인사위는 사립학교법 제53조의4의 제1항에 따라 심의기구 성격을 갖는다.➊ 인사위원들이 인사 관련 안건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조사하고 토론하여 결정해야 한다. 교장이나 사학재단 이사장은 특별하고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인사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관련 대법원 판례도 있다.➋ 법적 의미의 ‘의결 기구’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엄격한 기능을 갖는 회의체다. 사학재단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른 인사 전제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➊ 제53조의4(교원인사위원회) ①각급학교(초등학교·고등기술학교·공민학교·고등공민학교·유치원과 이들에 준하는 각종학교를 제외한다)의 교원(학교의 장을 제외한다)의 임용 등 인사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당해 학교에 교원인사위원회를 둔다.
➋ 2006년 학교법인 동일학원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낸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상고 소송(사건번호: 2006두17949)에서 대법원은 사립학교 인사위가 ‘심의 기구’로 규정된 취지가 사립학교 운영에서 인사의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을 통해 학교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인사위에서 심의한 내용은 교원의 인사권자에 대하여 법적인 기속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와 배치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당시 대법원은 동일학원 산하 동일중학교 인사위가 2004학년도 학급 담임배정과 관련하여 담임을 희망하고 있는 교원을 우선적으로 담임으로 배정하는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담임을 배정한 후 이러한 심의 내용을 교장에게 제출하였으나, 교장이 이와 달리 담임으로 배정되어 있던 전교조 조합원만을 담임 배정에서 제외하면서 그 자리에 전원 비조합원으로 대체시킨 점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와 같은 제정‧운영 취지를 고려하여 인사위를 꾸려가고 있는 사립학교나 사학재단이 얼마나 될까. 인사위 규정이 제정 및 운영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본 사립학교 교사가 얼마나 될까. 법을 지켜야 할 주체들이 법을 무시하고, 법 준수 여부를 날카롭게 감시해야 할 또 다른 주체들이 법을 도외시하는 게 작금의 학교 현실이다. 온전한 의미의 ‘정치’가 설 자리가 없다.
정치 혐오주의는 오래된 ‘풍습’과도 같다. 정치를 사갈시하는 이들이 많다. 학교 안에서 정치는 금기어 취급을 당한다. <헌법> 제31조 제4항➌이 ‘보장’하는 ‘권리’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의 복무규정에서 요령부득의 ‘의무’로 둔갑해 있다. ‘정치적’ 선택과 결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 활동이 없건만 모든 교육 활동이 ‘중립’이라는 무균질의 세계에 갇혀 있기를 요구받는다. 불가능과 기만의 시스템이다.
➌ 제31조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독일 법학자다. 그는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불법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한, 그리고 세상이 존속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는 어느 곳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학교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온갖 구조, 제도, 규정들이 온존해 있다. 가장 정치적이면서 가장 비정치적일 것을 요구하는 기만의 시스템이 교무실과 교실을 지배한다. 예링이 말한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학교 정치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는 어딘가에 ‘서는’ 것이다. 어떤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적과 동지’는 누구인가. ‘적’과의 대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언어는 권력자가 부여한 것인가 ‘나’ 자신의 것인가. ‘나’는 ‘나’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정치’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언제 뜨거운 ‘정치’ 한 번 해 본 적이 있느냐.
지난 2월 말, 부당 전보 철회 요구와 민주적인 인사위 규정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마치고 늦은 오후에 쓴 패러디 글이다. 민주주의는,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야 산다. 각자의 명확한 정치적 위상과 언어를 바탕으로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할 때 명맥을 유지한다. 침묵과 냉소는 학교 정치의 최대 적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학교 민주주의를 키우는 일을 찬찬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