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특집] 익숙해진 대학의 위기와 ‘대학운동’의 부재 | 강석남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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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교육과 교육운동, 전환의 과제


익숙해진 대학의 위기와 ‘대학운동’의 부재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한국 사회 곳곳에서 위기에 대한 경고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 경제, 생태적 위기를 포함해, 그간 각종 위기를 진단해 왔던 이른바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자신들이 직면한 운동의 위기에 대한 우려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인구 동향 조사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ref]“‘전세계 언론 ‘한국 0.72 출산율’ 쇼크… 성차별·장시간 노동 지적”, 〈한겨레〉, 2024년 3월 1일.[/ref] 이제 0.6명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재생산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 지표는 흘러넘치는 각종 한국 사회의 위기 그 자체를 의미하는 징후가 아닌가 싶다.

대학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추락하는 출산율과 함께 불과 몇 년 전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 입학 정원보다 적어지며, ‘벚꽃 피는 순으로 망한다’라는 경고가 요란했다. 혹자는 이를 대학의 ‘벚꽃 엔딩’이라 명명한다. 이전까지 입시 지옥이니, 대학 서열화니, 사교육 공화국이니, 이공계 기피니, 인문계 기피니, 대학 기업화니 등의 무수한 위기 진단과 달리 학령 인구 감소의 압박은 한국 대학들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구조적인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실제로 국공립과 사립 모두 이른바 대학 서열의 하위에 있는 대학일수록 그리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대학일수록 가혹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 2024년 상반기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대립이다. 이에 발맞춰 사교육 시장에서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의대 준비반’ 개설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진다. 대학에 진학할 학령 인구는 무섭게 감소하고 있지만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학들은 희망하는 정원 확대안을 앞다투어 정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산업과 사회적 수요를 충족하겠다며 2022년부터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를 의욕적으로 추구한 바 있다.[ref]강석남(2022),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오늘의 교육》, 70호(2022년 9·10월), 18쪽.[/ref] 이러한 혼란 속에 대학 정책의 입안과 집행 모두 독점하고 있는 정부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올해 우리 교육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교육 개혁 원년이었던 지난해, 국민이 원하고 미래가 요구하는 변화의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은 데 이어, 새해에는 교육 현장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 성과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2024년 1월 2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시무식에서 발표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신년사에서는 위기에 대한 절박함보다는 차라리 어떤 자신감이 느껴진다. 요란스레 벚꽃 엔딩을 울부짖었던 위기 진단들과 달리 교육부는 현재의 조건에서 위기가 아닌 ‘기회’를 짚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딱히 국민들에게 질문했던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어찌 됐든 교육 개혁 원년으로 명명된 2023년에는 ‘글로컬대학’ 사업이 전국 대학가를 강타한 것은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교육부는 학생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2025학년도 입학 전형부터 차등적인 인센티브를 내세워 대학들의 ‘무전공 선발’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ref]“대학 ‘무전공 선발’ 확대… 인기학과 쏠려 “교육여건 나빠질 것””, 〈한겨레〉, 2024년 1월 31일.[/ref] 글로컬 대학 사업과 무전공 선발 추진은 2023년 6월 교육부가 발표한 ‘담대한 혁신’에서 이미 그 주요 골자가 발표된 바 있다.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쟁점은 정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이나 광역 모집 추진이 얼마나 문제적인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부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에서 (얼마나 동의할 수 있는지를 떠나) 기회를 읽어 내고 ‘미래’를 제시하는 동안, 이른바 진보적 교육운동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교육부의 ‘담대한 혁신’에 교육운동은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으로 대학 정원 감축을 전제한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을 추진한 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 위기 진단은 난무하지만 정작 교육운동의 대학에 대한 독자적이고 총체적인 담론은 어느샌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면 과장일까? 어쩌면 대학이 처한 수많은 위기보다 더 위태로운 위기는 교육운동 스스로가 직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지난 몇 년간 《오늘의 교육》에서 대학을 주제로 다룬 논의들을 되짚어 보며 ‘현시점에서 대학을 현장으로 삼은 교육운동으로서 대학운동의 부재’를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운동들의 성취를 필자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운동의 공과를 어느 누군가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논의와 책임으로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읽히길 바란다.


수동적 대학 정책 비판의 반복 : 비판적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의 부재

 

바로 지금 대학운동이 직면한 과제에서부터 살펴보자. 2023년부터 교육부는 대학 내 학과 통폐합과 대학 간 통폐합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글로컬대학 사업을 발표하면서, 그 핵심으로 학과 간 장벽을 없애는 이른바 ‘무전공 입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연초 교육부는 무전공 신입생 모집 비율(수도권 25% 이상, 지방 국립대 30% 이상)을 충족하는 대학에만 추가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대학들이 난색을 표하자 이를 유보하고 구체적 방침은 하반기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f]“교육부, 대학 ‘무전공 비율’ 따져 지원하겠단 방침 유보”, 〈한겨레〉, 2024년 1월 24일.[/ref] 하지만 여전히 이주호 장관은 ‘신입생 25% 이상 무전공 선발’이라는 정책 목표에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미 2024년 2월 20일부터 학과·학부 조직 구성 원칙을 명시했던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 개정되면서 대학에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과와 학부가 아닌 ‘이에 상응하는 조직’을 둘 수 있게 되었다. 신입생을 학과의 경계 없이 뽑아 1학년 때는 전공을 탐색하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게 한다는, 익숙한 ‘광역 모집(학부제)’의 재추진과 다름없다. 이미 1970년대 실험 대학, 1990년대 학부제 의무화 등에서도 같은 논리로 광역 모집이 제도화된 바 있었다.

광역 모집은 항상 ‘쏠림 현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학생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취업이 잘 되는 소위 인기 전공에 몰려들 가능성이 높고 이로부터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각 전공별 정원이 제한되어 자기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지 못해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고, 대다수의 기초 학문 등 학생들이 외면하는 학문 분과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인되면서 2009년 학부제 의무 조항은 폐지되었다.[ref]학부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강석남(2023), 〈담대한 혁신의 오래된 번복〉, 《오늘의 교육》, 75호(2023년 7·8월)] 참조.[/ref]

광역 모집 추진이 반복됨에 따라 그에 대한 비판도 반복되었다. 우려하는 언론 보도와 사설 등이 이어졌고, 전국 인문대 학장들이 모여 기자 회견을 열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그 비판의 요지들은 사실상 동일했다. 첫째는 학생 교육권 침해와 기초 학문의 위기와 같은 앞서 언급한 쏠림 현상의 예상되는 부작용, 둘째는 쏠림 현상으로 인해 광역 모집이 철회되었던 역사에 대한 상기다. 물론 타당한 비판이다.

문제는 광역 모집 추진의 조건이 비판의 준거로 활용되는 1990년대 학부제 의무화 도입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학부제 의무화는 1995년 5.31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5.31 교육 개혁이 한국 대학 체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한 핵심은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 조치였다. 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대학 진학률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대학 양적 팽창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시 말해 현재 광역 모집 추진 비판의 근거인 1990년대 학부제 의무화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대학 정원이 급격히 증가하던 시점에 제도화됐던 것이다.


이주호 장관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자율과 경쟁에 기반한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김영삼 정부 교육 개혁안 수립에서부터 이명박 정부 교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증명했다.

이 장관이 “전공과 영역 간의 벽은 교수들의 기득권”이라며,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대학을 시장으로 보고,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학 무전공 선발도 결국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구조 조정하려는 것이다. 학과 간 경쟁을 통해 이른바 소비자인 학생들의 선택을 받는 전공만 살아남고, 선택받지 못한 전공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ref]대학교육연구소, “이주호 장관의 ‘무전공제 인센티브’ 정책 철회해야”, 2024년 1월 29일.[/ref]

 

이렇게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무학과 제도를 교육부는 왜 강제하는 것일까? 무학과 제도가 과거 일부 사립 대학이 학과 통폐합 등 자체 구조 조정을 통해 정규 교수를 비정규 교수로 바꾸고, 돈이 벌리는 전공을 늘리려고 했을 때 동원한 수단이었다는 점에 힌트가 담겨 있다. 즉 무학과 제도는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공공성이 아니라 대학을 시장이 원하는 대로 구조 조정 하려는 의도가 핵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f]전국교수연대회의, “윤석열 정부는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에 무학과 제도 강제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2024년 1월 23일.[/ref]

 

대학교육연구소와 7개 대학 교수 단체가 모인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무전공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된 광역 모집은 쏠림 현상을 통해 ‘대학에서 사라져야 하는 학문 분과’를 선정하는 강력한 합리성을 산출한다. 대학의 각 학문 분과들은 광역 모집으로 매년 입학한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반대로 얼마나 선택받지 못했는지의 순서로 줄 세우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매년 전공 선택률은 곧 그 학문 분과가 대학에서 얼마나 필요하지 않은 분과인지를 입증하는 합리적인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이미 교육부는 작년부터 글로컬대학 사업을 통해 광역 모집을 사실상 강제했다. 글로컬대학 사업에 지원하는 대학들의 신청서에는 광역 모집을 통해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전공들의 정원 감원이나 모집 중단 등 사실상의 구조 조정 로드맵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ref]강석남(2023), 앞의 글, 136쪽.[/ref]

기초 학문 수호와 같은 가치들은 대학의 ‘생존’이 걸린 시급한 위기에는 마치 사치스러운 낭만처럼 무시된다. 학문 분과를 마치 상품처럼 경쟁하도록 내모는 시장 논리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학생 선택권 보장’이라는 교육받을 권리나 민주적 원리로 탈바꿈된다.

문제는 시장 경쟁에 입각한 구조 조정 정책의 수단으로 재등장한 광역 모집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교육운동이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다. 광역 모집에 대한 타당한 비판은 반복되고 있고, 그 기저에 시장주의적 구조 조정 수단의 논리가 깔려 있음이 명명백백하지만, 정작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것은 아닐까. 핵심은 광역 모집이나 쏠림 현상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 학령 인구 감소에서 대학 통폐합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대학 구조 조정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교육운동의 담론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논리와 방향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교육운동의 대학 구조 조정 비판은 항상 정부의 정책 추진에 따른 수동적 반응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일각에서 신입생의 등록금 자원에만 의존해 운영하는 한국 대학 특유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적극 제기하며, 학령 인구 감소가 곧 대학 구조 조정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주장이지만,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 정원보다 감소한 인구 절벽의 시점에서 ‘어떤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라는 명제 자체에 대한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정원 감축과 대학 통폐합을 추진하는 구조 조정 자체가 문제인가? 대학 통폐합은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 정원 감축과 통폐합은 감내해야 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이 문제인가? 만약 어떻게든 구조 조정을 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과 원리로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교육운동은 스스로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파편화된 대학 사회 : 학생 사회 일반의 구조 조정 의제의 부재

 

비판적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의 부재와 함께 짚어 볼 것은 대학 사회의 핵심 구성원인 대학생 주체들의 현주소다. 《오늘의 교육》을 통해 2023년 인터뷰[ref]강석남(2023), 〈오늘의 전국 총학생회 연대의 강점과 쟁점〉, 《오늘의 교육》, 74호(2023년 5·6월).[/ref]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현시점에서 사실상 유일한 전국적 총학생회 연대체이며, 전대넷 의장은 국가교육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대넷의 활동들은 그 자체로 전체 대학생운동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가장 대표성을 띤 대학생운동 일반의 경향성을 보여 주는 사례일 수 있다.

전대넷의 활동이 사회적 관심을 끈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 ‘등록금 반환 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다. 전국적 호응과 함께 일부이기는 하지만 실제 등록금 반환 사례를 창출해 낸 것은, 학생운동의 붕괴를 넘어 소멸이 진단되는 2020년대 대학 사회의 유의미한 사건이었다.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전국적 규모로 ‘대학 문제’를 걸고 펼쳐지는 대학생들의 운동”[ref]강남규, “‘등록금 반환 운동’이 던진 질문들”, 〈경향신문〉, 2020년 6월 23일.[/ref]이라는 평가는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를 정확히 짚어 내고 있다. 등록금 반환 운동 이후 전대넷 활동은 가입 단위가 점차 축소되고 있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는 중이다. 2023년 말부터 현재까지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4년도 등록금 인상률 산정 방법 발표에서 법정 한도가 1.79% 증가해 5.64%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2012학년도 이후 13년 만에 5%대에 진입했다고 하니 역시나 타당한 대응이다.

 

지방 대학을 살리고, 지역 균형 정책을 하겠다던 정부의 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지역에 있는 대학일수록 빠르게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말대로 재정적으로 약한 지방 사립대부터 등록금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등록금 인상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대학의 ‘SOS’이자, 학생들에겐 대학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명목의 ‘협박’이다. 정부는 자신이 공약한 지역 대학 육성도,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시켜달라’는 오래된 외침도 외면하고 있다. 이대로 둔다면, 대학의 지역 간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지방 대학을 살리겠다는 정부에서는 등록금 인상조차도 막지 못하고 있다.[ref]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정부는 말로만 등록금 동결 이야기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2024년 2월 22일.[/ref]

 

결국 등록금이다. 2020년대 ‘전국적’ 대학생운동의 핵심 의제는 등록금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 대학 내에서 여전히 다양하게 제기되는 수많은 의제 중 유독 전국적 의제로 등록금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쟁점은 두 번째 이유다. 오늘날 전국 대학생 사회가 비교적 이견 없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의제가 등록금뿐인 건 아닐까?

등록금 의제가 중요하지 않은데 대학생들이 등록금만 문제 삼는다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만큼 중요한 의제들이 많지만 파편화된 전국 대학생 대중을 동원하지 못하는 현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학생 사회의 파편화에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있다. 학생운동 전반의 소멸, 코로나19와 비대면 강의 이후 대학 문화와 학생 자치 기반의 붕괴, 유구한 대학 내 탈정치화, 반정치화와 기계적 중립의 강제 등 대학생 사회의 파편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등록금 반환 운동이 하나의 예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부가 교육 개혁 원년으로 선언한 2023년 이래, 대학 간 통폐합은 글로컬대학 사업과 같은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의 형태로, 대학 내 학문 단위 통폐합은 무전공제와 같은 학부제의 귀환으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국적 대학생운동의 대응은 너무나 요원한 상황이다. 대학과 학생 사회 일반의 의제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등록금 문제는 대학 구조 조정 정책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띤다. 학생 주체들의 입장에서 등록금 인상은 억제되어야 한다. 반면 재정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대학들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등록금 수입 감소와 물가 상승으로 대학 운영비 부담이 커지면서 등록금 인상을 강력히 요구한다.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학생들과 대학의 첨예한 대립 속에 정부는 한편에선 ‘국가장학금Ⅱ’로 대표되는 재정 지원으로 등록금 인상을 제도적으로 억제하고, 동시에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해 재정 압박에 놓인 대학들을 글로컬대학 사업과 같은 재정 지원 사업으로 구조 조정을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대학일수록 재정 지원 사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라는 인센티브에 대학은 순응하고 포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국적 대학생운동이 등록금 인상 억제를 요구할수록 정부의 일방적이고 시장주의적인 구조 조정 정책 추진이 탄력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등록금 운동을 포기하고 대학들의 인상 요구에 투항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등록금 운동이 재정 지원을 무기 삼은 정부의 구조 조정 추진을 타깃으로 삼아 대학 재정 지원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 대학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전국적 대학생운동과 학생 사회 일반이 제대로 된 대학 구조 조정 의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

더 큰 문제는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이 그렇지 않아도 파편화된 대학생 주체들을 철저히 위계화하고 대립시킨다는 점이다. 첫째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흔히 ‘대학 서열화’로 이야기하는 입시 서열 이상의 위계를 가진다. 신입생 충원이 어렵지 않은 수도권 혹은 서울권 대학의 학생 사회는 통폐합을 전제한 대학 간 생존 경쟁은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하다. 반면 이미 생존 경쟁에 돌입한 지방 대학의 학생 사회는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구조 조정 정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대학 통폐합을 전제로 추진 중인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본래 목적한 바와 같이 대학 간 통합 논의를 촉발시켰다. 실제로 2023년 글로컬대학 본지정 결과에 선정된 10곳 중 4곳인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는 모두 통합을 전제로 사업에 지원해 선정되었다. 선정된 대학이든 신청했으나 탈락한 대학이든 갑작스런 통폐합 논의에 학내 구성원들, 특히 학생 사회의 반발이 극심했다. 실제로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학생들은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로 의견 수렴 없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결정 등을 든다. 그러나 이면에는 입시 서열이 다른 대학 간 통합에 따른 상대적 차별 논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는 대구·경북 지역 명문대로 꼽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상위권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북대 공대 한 학생은 “입시 결과의 기준이 확연히 다른 두 대학이 통합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열심히 공부해 들어온 학생들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f]“경북대 학생들, 금오공대와 통합 추진에 ‘과잠’ 시위”, 〈경향신문〉, 2023년 12월 8일.[/ref]


온라인 커뮤니티도 술렁이고 있습니다. 통합을 찬성·반대하거나 통합 논의 과정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다양한 글이 말 그대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통합 논의가 자칫 학생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질 조짐도 보입니다.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상대를 헐뜯거나 비하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등 양교 학생들의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ref]“경북대-금오공대 통합 추진에 ‘거센 반발’”, 〈안동MBC〉, 2023년 12월 6일.[/ref]

 

갑작스럽게 추진된 통합에 대한 반발은 학내 민주적 의사 결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가시화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무대로 입시 성적에 따른 대학 서열에 입각한 상대적 차별 논리가 작동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왜 대학 간 통폐합이 학내 의사 결정보다 대학 재정 지원 사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지, 지방에 위치한 대학에만 통폐합의 압력이 가중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소거되고, 익숙한 대학 서열과 학력주의를 매개해서만 대학 통폐합을 해석하게 된 것이다.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은 이미 파편화된 학생 사회를 다시 수도권 학생 사회와 생존 경쟁에 내몰린 지역 학생 사회로 분리시켰다. 위계화는 물론이고 경쟁과 통폐합 속에 다시 입시 성적을 서로에게 들이밀며 이해득실을 논하는 대립을 재생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학생 사회 일반의 의제의 부재는 수도권 학생 사회에는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무관심을, 지역 학생 사회에는 상대적 차별을 전제한 대립으로 귀결되고 있다. 대학 구조 조정의 가장 큰 당사자인 대학생 주체들이 오히려 대학 구조 조정의 과정에서 가장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나가며 : 두 가지 부재와 진보적 대학운동 의제의 재검토

 

지금까지 살펴본 비판적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의 부재와 학생 사회 일반의 의제의 부재가 의미하는 바는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 담론이 너무나 익숙해진 현재,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운동으로서 ‘대학운동’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첫째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대학운동의 방향성이 상실된 것이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 사회가 의제 설정과 개발에 실패하면서 대학운동 주체의 재생산도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의 방향과 운동의 주체가 모두 부재하기에,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대학운동이 부재하다고 감히 진단한다.


대학 체제 개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인해 입학생이 충원되지 못하면서 지방 대학들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을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가가 현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 전반적으로 대학 구조 개편이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대학 공공성 강화-대학 서열화 해소’의 중요한 기회이다. 교육 주체들의 노력과 실천 그리고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이어진다면 대학 무상화·평준화는 상상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올 수 있다.[ref]“대학 평준화와 무상화, 멀리 있지 않다”, 〈교육희망〉, 2023년 11월 30일.[/ref]

 

물론 대학 의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운동들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대학 무상화와 대학 평준화로 요약되는 진보적 대학 의제들의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학령 인구 감소로 요약되는 대학의 위기 진단을 대학 무상화와 평준화가 현실화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첫째로 대학 무상화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2040년에는 대학 학령 인구가 115만 명으로 2020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무상 교육을 현실화하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이 지속적으로 경감된다는 점을 강조한다.[ref]대학무상화·대학평준화 추진본부(2021), 《대한민국 대학혁명》, 살림터, 99쪽.[/ref] 이 지점에서 대학 무상화 의제는 엄밀히 말해 대학 구조 조정 이후의 의제이지, 대학 구조 조정 국면 자체를 다루는 의제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둘째로 대학 평준화 의제에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하는 ‘대학 통합 네트워크’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주의적 대학 구조 조정의 대안으로 지목되기도 한다.[ref]대학무상화·대학평준화 추진본부(2021), 앞의 책, 150쪽.[/ref] 대학 통합 네트워크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중심으로 대학 연합 체제를 구축하고 대학 연합 체제 간 학점 교류(공동 학점)와 공동 학위를 도입하여 평준화를 이루어 나가는 방안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좋은 해법은 따로 있다. 그것은 과잉된 것처럼 보이는 대학교육 역량을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 먼저 대학의 공공적 재편을 담보하기 위해 고등교육 재정을 OECD 국가 평균 1.0%로 확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정 확보를 바탕으로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여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ref]대학무상화·대학평준화 추진본부(2021), 앞의 책, 152쪽.[/ref]

 

하지만 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주장하는 관점에서 제시하는 대학 구조 조정의 대안은 요약하자면 공적 고등교육 재정을 확보해 투자하자는 것이다. 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굳이 구성할 필요 없이 현재의 대학 서열 체제에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제안이다. 이처럼 대학 무상화와 대학 평준화 의제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상적 목표처럼 비치는 과제를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조건의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 시장 진입을 위한 최종 학교로서의 대학교육이 무상화 된다면, 사실상 의무 교육의 4년 연장은 아닌지, 현재의 대학 서열 체제가 과연 대학들의 커리큘럼이나 교육적 역량의 결과여서 공동 학위를 통해 해체될 수 있는지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대학 서열 체제를 가장 필요로 하는 집단은 국가도, 자본도, 대학도 아닌, 어떻게든 노동 시장에서 자신이 가진 대학 졸업장의 상대적 가치를 내세워야 하는 대학생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평준화’의 경로는 보다 엄밀히 다뤄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진보적인 대학 의제들이 현재 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포착하면서 놓치고 있는 지점을 살피는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구조 조정에 어떻게든 개입해 궁극적으로 무상화와 평준화로 나아갈 수 있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비판적인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학생 사회의 주체들이 대학 구조 조정 의제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대학의 위기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야 할 대학운동의 부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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