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에세이] 특성화고는 사라지고 있다 | 이윤승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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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는 사라지고 있다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이화여대부설미디어고 교사




취업보다 입시

 

한 학년의 교육과정의 문을 닫는 것은 보통 이듬해 초다. 하지만 특성화고 교사로서 나는 매년 12월이면 ‘문을 닫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특성화고의 12월은 특별하다. 학교가 문 닫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입시의 문을 닫아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12월에 학생 모집을 못 하면 추가 모집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특성화고는 학과 개편, 학급과 정원 조정 등의 고민에 빠진다. 그 고민의 끝은 폐교에 대한 걱정이다. 최근 몇 년간 모집이 쉽지 않았다. 작년과 재작년엔 중3 학생 수가 잠시 늘었기에 학생 모집이 수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교장의 볼멘소리가 점점 늘고 있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성화고의 정체성 같은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다. 분명 작년 이맘때 영화 〈다음 소희〉를 계기로 특성화고와 직업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되고, 특성화고와 현장실습에 변화도 있을 것 같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다음 소희〉에 나온 문제는 여전히 ‘다음 소희’에게 전해진 채 특성화고엔 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직업교육과 현장실습 부분이 아니라 진학에 관한 부분만 강화되었다. 학생들이 취업하지 않는, 취업하지 못하는 특성화고는 과연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특성화고엔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고 정원을 채울 수 있을까. 아직 고입의 경우 대상 학생 수가 인구 절벽에 이르는 시기에 이르지 않았기에 4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2013년부터 고입 대상 학생 수의 감소 속도를 보면 얼마 후엔 특성화고 대부분이 정원을 채우기 힘들 것이다. 출생아 수가 40만 명대였던 시기가 15년인 데 반해 30만 명대의 시기는 불과 3년이었고, 이젠 20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특성화고는 일반고가 정원 미달과 폐교를 겪는 시기보다 더 빠르게 정원 미달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일반고에는 없는 부서들이 있다. 취업부와 홍보부 두 곳인데, 그중에서도 무게 중심이 취업부에서 홍보부로 빠르게 옮겨 가고 있다.

학교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교무, 연구, 생활, 창의, 진로와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부서들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미션스쿨이다 보니 교목 선생님들이 있는 선교부가 개교 이래 계속 이어져 왔다. 특성화고의 홍보가 중요해지던 시기에도 우리 학교는 선교부를 없애지 않았다. 그것이 학교의 정체성 중 하나라고 관리자들은 여겼다. 부서의 개수는 마음대로 늘릴 수 없기에 선교부를 둔 상태로는 홍보부를 만들 수 없었다. 아무리 홍보가 중요해도 선교부를 없애는 것은 개교의 목적을 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기에 선뜻 부서를 개편하는 관리자가 없었다. 선교부든 홍보부든 나에겐 두 부서 모두 꼭 필요한 부서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나마 선교부가 있는 것이 홍보부가 신설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예배나 종교 수업이 있는 것이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교목 선생님들의 인격에 대한 존경이 있었고 그분들이 지향하는 종교교육에 동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홍보부는 다르다. 홍보부의 신설 혹은 확대에선 교육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홍보부는 그야말로 학생을 유인하는 부서일 뿐이다. 유인책으로 각 학교에서 내세우는 면면을 봐도 특성화고의 장점을 내세우는 부분은 찾기 어렵다.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2017년 65%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이후 잠시 반등하기도 했지만 2023년엔 졸업자의 취업률이 27.3%까지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1년 후에도 취업 상태를 유지하는 졸업생의 비율은 66.4%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2023년 대학 진학률은 47%에 이르렀다. 일반고를 포함한 전체 학생의 대학 진학률인 76.2%에 비하면 낮긴 하지만 서울 소재의 특성화고 중엔 이미 대학 진학률이 60% 이상인 학교도 여럿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니 특성화고에서 교육과정을 홍보하고 고졸 취업을 위한 계획을 홍보하는 것은 점차 뒤로 밀리고 있다. 대신 학교에서 얼마나 대학 진학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홍보하는 내용을 앞세운다.

서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기로 소문난 모 학교의 경우엔 홍보 자료에서부터 대학 입시 결과를 크게 내세우고 설명회에선 교육과정에 미적분도 포함하고 있어 수학을 통해 입시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음을 어필하고 있다. 이름만 특성화고일 뿐 자사고와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대개 중학생들이 선호하는 특성화고를 보더라도 취업보단 진학을 장점으로 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높은 진학률과 대입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각 학교들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특별반 운영이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국·영·수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우열반 편성은 할 수 없으나 암암리에 특별반을 구성하여 방과후수업을 운영하고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입시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특별반을 위한 자습실, 특별반을 위한 방과후수업, 특별반을 위한 진로 프로그램들로 전문계고 특별 전형이라는 작은 파이를 자신들이 더 가져가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학교들이 중학생 모집에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니 다른 학교들도 뒤따른다.

 

‘다음 소희’를 멈춰 세우기 위한 지원은 없다

 

우리 학교도 특별반을 구성하려고 하고 있고, 그 학생들을 위한 진학 지도 멘토링을 하고 있다. 특별반은 운영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이에 사용되는 예산 문제도 크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특성화고 학생 모집이 힘들어지니 일반고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엔 2023년부터 서울형 마이스터고라는 이름으로 10개 선도 학교를 지정하였고 앞으로 지정 학교를 늘려 가며 매년 3억에서
5억 정도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마이스터고라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된 정책이지만 학생들의 특성화교육과 취업을 위한 과정에 예산을 사용하고 있지만은 않다. 늘 그렇듯이 고졸 취업 정책은 국가의 노동 정책이 개선되지 않는 한 나아지기 어렵다. 어차피 특성화고에 예산을 준다고 해도 특성화고는 당장의 학생 모집을 위해 취업보다는 진학에 초점을 맞추어 예산을 사용한다. 일반고의 교사들은 상상도 못 할 곳에 사용하는 예산이 상당하다. 서울의 경우엔 특성화고 교사들 중 각 학교별로 2명씩 모아 싱가포르로 직업교육 연수를 보낼 예정이고 각 학교에서도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 같지 않은 지출들이 보인다. 이렇게 예산을 써도 되나 싶지만 문제시되지 않는다. 교육청도 성실히 점검하지 않는다. 한때는 모집이 힘든 학과를 개편한다는 목적으로 수억 원을 지원하였고 지금도 모집이 어려운 특성화고를 위해 돈을 쓴다. 하지만 이 돈이 학생들의 진로·직업교육을 위해 쓰이는 비율은 높지 않다. 그리고 정작 학생들도 취업을 목적으로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과반을 넘어가고 있다. ‘다음 소희’를 위한 대책이 마치 취업을 포기하는 것인가 싶을 만큼 취업에 들이는 품을 줄이고 진학에 매달린다. 그렇다고 특성화고이기에 진학을 못 하게 하고 취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성화고라면, 특성화고의 교사라면 응당 가져야 할 목적의식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성화고엔 여전히 취업을 목표로 지원하는 학생들이 있다. 아무리 지금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취업이 어렵다고 해도 취업을 하고 싶어 하고, 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있다. 그렇다면 특성화고의 교육과정은 그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목고나 자사고가 하듯 대입의 장점을 홍보하고 특성화고를 통한 대학 진학의 유리한 점을 어필하는 홍보는 특성화고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니다. 특성화고는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그 속에서 취업하든 진학을 하든 학생의 결정에 맞게 지원해 주어야 맞다. 그런데 학생 모집을 위해 편법적인 특별반까지 운영해 가며 대입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특성화고에 진학하더라도 이 학교가 자신을 위한 학교라는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다음 소희’를 멈춰 세우기 위해 특성화고 교사가 해야 할 것은 대학 진학 권유가 아니다. 안전한 일자리를 발굴하고 실습 교육에 나선 학생이 안전하고 내실 있는 현장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졸업생이 취업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후속 지원을 하는 것이다.

특성화고의 생존을 위해 과연 특성화고의 관리자와 교사들은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학생 모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홍보의 일선에는 홍보 도우미라는 이름을 단 학생들을 내세운다. 홍보 시즌이 되면 수업을 빼 각 지역의 중학교 교실을 돌며 학교 홍보를 하게 한다. 정작 교사는 교실 밖에서 학생의 홍보 활동을 지켜보기만 한다. 애교심이나 생활기록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들로 학생들을 부추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빼앗는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경쟁적으로 홍보 담당 학생들의 규모를 늘린다. 이럴 바엔 아예 특성화고가 문을 닫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진학 경쟁이 소멸을 가속시킬 것이다

 

2023년 서울의 특성화고는 미달을 면한 학교가 늘었다. 서울형 마이스터고 정책의 영향도 아니고 취업 환경이 개선되어서도 아니다.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들에게 디자인, IT, 뷰티, 조리와 같은 일반고에서 접하기 어려운 교과를 공부하면서도 대입의 측면에서 일반고보다 유리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홍보 전략이 잘 통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경기도 학생들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서울 특성화고가 경기 또는 전국 단위의 모집이어서 서울로 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수요 덕분이었다. 경기도의 특성화고는 모집이 더 어려워졌고 서울은 경기도 덕분에 모집에 성공했다. 서울의 ‘메가시티’는 교육에서 이뤄진 듯하다.

서울의 고등학교에 가면 서울의 대학에 더 잘 갈 수 있을까. 혹은 서울의 고등학교에 가면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입학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입학하고 나면 현실을 깨닫는다. 특성화고의 진심은 홍보를 하는 그 순간에만 가장 절실할 뿐이다. 취업이든 진학이든 중학교 내신 성적이 높은 학생을 어떻게든 많이 오게 하는 것으로 전략이 시작된다. 성적이 높지 않은 학생은 진학도 취업도 쉽지 않다. 거기다 학생 모집을 위해 점점 학교에선 진학 위주의 프로그램들을 늘리고 있다. 특별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제대로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취업하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낮아서 진학을 못 하는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에 가는 소수를 제외한 학생들은 수업에서도 점점 밀려 나간다. 일반고도 아닌 특성화고에서 국·영·수 성적에 따라 학생들이 나뉜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열악한 취업처를 가느니 전문대라도 가기로 결정하고, 학비가 부담스러운 학생은 힘들어도 실습을 견디고 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특성화고는 그렇게 처음 태어난 취지를 잃고 학교와 교사의 생존을 위해 학생을 이용하다가 소멸하게 될 것 같다. 특성화고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 당장 내 학교의 생존을 위해 진학 경쟁에 치우칠수록 특성화고의 유효 기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2024년의 홍보 전쟁은 벌써 준비 중이다. 작년보다 더 빨리 달려갈 것 같다. 자신의 소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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