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좌담] 20년간 반복된 모순과 갈라진 운동 (하인호, 이윤승, 강문식, 허태준)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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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20년간 반복된 모순과 갈라진 운동

- 현장실습 제도와 직업교육의 방향



참석자

하인호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전) 인천 상업계고등학교 교사

이윤승    본지 편집위원, 이화여대부설미디어고등학교 교사

강문식    전북노동정책연구원(민주노총전북본부 부설) 연구위원

허태준    작가, (전) 공업계고등학교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


일시      2023년 7월 25일 화요일 오후 1시

장소     교육공동체 벗 나눔공방

진행·정리    서경 기자




왼쪽부터 이윤승, 허태준, 서경, 강문식, 하인호



2023년 2월, 전주 유플러스 고객센터 실습생 자살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하고, 비슷한 시기 국가인권위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 마련 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문제점이 언론에 보도되며 직업계고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해당 조사에서는 제도의 목적과 달리 특성화고 졸업생의 현장실습 참여가 노동 조건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 4년 동안 산업 재해 우려 업종인 반도체 공장에서의 현장실습이 4배 넘게 급증한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은 현장실습에의 노동법 적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특성화고 졸업생 및 대학 비진학 노동자가 처한 차별적 노동 조건과 실습 제도의 근본적인 검토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반 산업 재해 문제로 여겨지던 현장실습 사건이 고유한 문제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2~2003년, 현장실습생이 구사대로 이용된 사건에 이어 전교조 등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 실태를 고발하면서부터다. 이후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대중적 관심이 환기되면 정부는 규제를 강화하고, 취업률 저하를 이유로 슬금슬금 규제를 완화하다 다시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이 되풀이되어 왔다. 그러다 2017년, 전주 유플러스 고객센터 사건과 제주 음료 제조 공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ref] 도입 당시, 현장실습은 직무 체험 등의 성격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근로 계약은 체결하지 않도록 하며 임금 성격의 수당 제공을 금지했다. 현장실습 파견 업체 기준을 강화하고 현장실습 기간과 취업 가능 시기를 제약했다. [/ref]가 갑작스레 즉시 도입되었다. 이에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특고연, 2017년 7월 출범)는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가 현장실습생을 노동권 사각지대에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며, 현장실습생의 노동자 지위를 기존과 같이 유지하고 전반적인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대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기존 운동 단체들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며 충돌하였다. 그 사이 현장실습은 규제 완화를 반복하며 원래의 모습과 닮아 갔다. 2021년에는 여수 요트 선착장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오늘의 교육》은 현장실습 제도의 향방을 두고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앞으로 더 나은 논의를 해 나가기 위해 살펴야 할 것들을 질문했다. 차별과 불평등을 재생산하지 않으며 학생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직업교육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자기소개와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 소개를 부탁드린다.


하인호
30여 년간 청소년노동인권과 직업교육 정상화를 두고 이야기해 왔다. 공부해야 할 학생들을 학기 중에 기업에 취업하도록 하는 지금의 산업체에 파견하는 방식의 현장실습은 중단되어야 한다. 현장실습 제도의 개선이든 폐지이든 방안을 생각하기에 앞서 산업체 파견형 실습이 과연 필요하고 효과적인지, 노동(일)을 체험한다는 것이 어떤 방법으로 진행될 때에 교육적 의미가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현장실습이 보편적으로 가능한지, 기업체에는 그러한 교육을 운영할 의지가 있는지, 국가는 그것을 지원할 수 있는지를 토론한 후에야 현장실습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승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라는 특성화고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다. 이명박 정부 말기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현장실습이 이뤄지는 과정에 협조하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특성화고 특별 전형이 생기며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는 학생들이 늘어난 한편 교육청에서는 취업률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시기였다. 교사들이 보신을 위해 학생에게 취업을 유도하는 분위기를 보며 ‘이건 좀 아닌데. 우리 반 학생들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정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학생에 중심을 두는 학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켜 왔다.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들은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려 하거나 가족 지원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서 대학에 가려 하거나, 가정이나 시설로부터 독립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시기에 노동과 취업 활동을 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일까 의문스럽다. 현장실습을 교육 목적으로 묶어 두고 졸업한 뒤로 취업을 유예하는 것이, 학교가 취업을 지원하지 않고 학생들은 취업 알선 사이트 등에서 각자 알아서 취업해야 하는 흐름이 될까 걱정스럽다.


강문식
현재 전북노동정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고 그 전에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본부에서 일하며 〈다음 소희〉의 배경이 된, 전주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발생한 실습생 사망 사건에 직접 대응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인권위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 마련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노동권이 취약하다는 점이 오랜 시간 계속해서 지적되어 왔는데 왜 개선되지 못할까’를 고민해 왔다. 노동권에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할 권리, 적정한 노동 조건을 보장받을 권리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둘은 분리된 권리가 아니고 서로를 구속한다. 일할 권리를 제약해서 노동 조건을 후퇴시키는 일은 자본주의 역사 가운데 언제나 존재했다. 현장실습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비판이 일할 권리를 각자 알아서 찾으라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장실습 제도가 노동권의 두 측면 모두에서 부정적인 제도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허태준
부산에서 공업계고를 졸업했다. 2015년 현장실습 제도를 통해 취업하고 산업 기능 요원을 포함해 3년 7개월 동안 회사를 다녔다. 이때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담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라는 에세이집을 썼다. 직업교육 전반에 있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맥락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꾸준히 관련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현장실습, 산업 기능 요원, 노동 문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속에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한다는 점, 그만큼 제도가 더 탄탄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 직업교육이 평생 교육 관점에서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하였나?


이윤승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2016~2017년 당시 우리 학교에서도 졸업 후 5월쯤 이뤄지는 취업률 통계에 잡히게 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버티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대학에 간 학생들에게도 알바를 독려했다. ‘여학생 취업 1위는 롯데리아고 남학생 취업 1위는 군대’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당시 그랬던 교사들이 반성하고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당시 그런 일을 했던 교사들에게 “이 영화 보셨냐. 언제 학교에서 다 같이 보면 어떠냐” 물었더니 “그건 옛날 일이고 지금은 전혀 안 그러는데……”, “그 영화 때문에 특성화고들 미달 나게 생겼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들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보며 과연 앞으로 특성화고 교직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힐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우리 학교는 졸업하고 나서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교사가 전담 노무사[ref] ‘직업계고 현장 실습 학교 전담 노무사’, 2019년 도입. 공인노무사회에서 직업계고등학교에 파견된 노무사가 현장실습생 사전 교육, 선도 기업 사전 실사 및 현장실습 기업 코칭, 현장실습생 권익 침해 구제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ref]와 함께 회사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대표나 관리자를 면담하는 등 학생들의 근무 요건을 살피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학교가 학생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회사도 학생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이 과정이 굉장히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음 소희〉에 나오는 콜 센터처럼 소모적인 일터를 거르고, 회사의 재무 구조를 판단하고, 그 회사에 취업한 졸업생이 있다면 연락해서 분위기를 확인한 다음 믿을 만하면 추천하는 그런 역할을 교사와 학교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가 완벽하진 않아도 모델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학교들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인호
서울의 사립 상업계고에서의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방 공업계고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제한적이고 교육과정과 전혀 상관없는 반도체 공장, 용역 업체 등에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상업계고는 현장실습이나 취업 시기와 별개로 취업 의뢰가 3학년 1학기 초부터 오기 때문에 2학년까지 자격증 취득 등을 마치는 편인 데 비해 공업계고는 산업인력공단의 의무 검정 시험을 치기 위해 2학년 2학기에서 3학년 1학기까지 그 준비에 매진하고 2학기에는 곧바로 현장실습에 투입된다는 교육과정 운영상의 차이도 있다.
교육과정으로서 현장실습은 2~4주면 족하다. 체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직업을 가지면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대생들이 교육 실습을 할 때 혼자 수업하라고 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장실습이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에서 현장실습 기간을 최대 1개월로 축소[ref] 현장실습 기간 및 시작 시기는 학기 중 조기 취업, 직업계고 3학년 교육과정 문제와 연결되기에 현장 실습 제도 개편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2017년 교육부는 실습 기간을 최대 63일(수업일수 1/3), 취업 시기를 3학년 동계 방학 이후로 제한하였다. 이 범위 내에서 시·도교육청별로 운영 지침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 산업체 채용형 현장실습의 경우 제주교육청은 산업체 채용형은 폐지하고 연계 교육형과 산업체 체험형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북교육청은 4주 20일 운영, 전남교육청은 11월 중순 이후부터 운영하게 하는 등 교육부 지침보다 강하게 제한하였다. [/ref]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사립 상업계고등학교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여러 비판으로 교육부에서 집행하는 예산에서는 취업률 기준이 빠졌지만,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예산에는 여전히, 그것도 중소기업 취업률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산이 유인이 되어 현장실습을 유지하게 하고 있다.


이윤승
말씀하신 것과 같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도 늘 조심스럽다. 수도권은 취업처의 종류와 양에서 비수도권과 확연히 차이가 있고 수도권 안에서도 서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분명 유리하다. 상업 계열에서의 산재는 주로 감정노동, 성희롱으로 어느 정도 사전/사후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업 계열과의 산재와는 다르다. 더불어 공업계의 문제는 현장실습생이라서 벌어진 문제인지 노동 현장 자체의 문제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노동 현장이 나아져야 실습생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을까?


강문식
어떤 지위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위험에 처하는 확률과 그 위험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된다. 〈다음 소희〉에서 보듯이 콜 센터에서 현장실습생을 요구했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지위의 노동자를 계속해서 공급받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권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방향과 노동권의 보장을 넓혀 나가는 방향이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개인적으로 여러 소회가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에 대응할 당시 두 분이 말씀하신 쟁점, 문제들이 함께 결부되어 있었다. 현장실습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 대기업의 하청 업체였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 콜 센터여서 발생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고 어느 하나가 해결된다고 없어질 거라고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듯이 2014년에 이미 다른 분이 먼저 목숨을 잃었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그분의 유가족들이 끝까지 다투어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현장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세 층위의 문제를 함께 제기했다. 영화에서는 하청 업체여서 발생했던 여러 구체적인 문제들이 덜 다뤄져 아쉬웠다.


허태준
영화에서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회사, 학교에 이어 교육청에까지 찾아갔다가 장학사로부터 “이젠 교육부까지 가실 겁니까?”라는 말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 관객들도 먹먹한 느낌과 함께 ‘그래서 이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나’라는 허탈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현장실습이 교육이 되기 위한 해결 방안은 아주 쉽다고 생각한다. 실습 기업의 기준을 실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이면 된다. 그렇게 못 하는 것은 취업률 때문이다. 현장실습이 교육이라면 ‘기업 현장은 교육하고 있는가’, ‘기업은 교육 기관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한다.

이에 모든 실태 조사 결과에서 기업의 교육 역량이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볼 때 특성화고노조의 노동자성 인정 요구와 전교조 등의 현장실습 폐지 요구는 지금의 현장실습에서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동일한 답변을 하고 있다.



2017년 도입된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는 임금 성격의 수당 제공을 금지[ref] 2019년, 교육부는 방침을 수정하여 실습 수당을 최저임금 70% 이상으로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ref]하는 등 현장실습을 노동이 아닌 교육으로 재정의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허태준
최근 「직업교육촉진법」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지금 실습생이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를 더 넓혀 나가겠다는 취지인데 내용을 살펴보니 이게 실습생을 보호하는 법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학습 중심 현장실습생은 휴게 시간, 위험 노동 금지, 생리 휴가 등 노동법 중 일부만을 보장받고 있었는데 보장 범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냐면, 예를 들면 어린이 보호 구역이 일반 도로보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장실습을 나갔던 2015년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4대 보험을 적용받았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았다. 당시엔 노동, 지금은 교육이라고 단정할 만큼 현장에서 하는 일이 달라졌는지 의아하다.


하인호
학생이든 아니든 일을 할 때는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건 당연하다. 국제 규범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 관계 출현에 따라 다양한 계약 관계를 포괄할 수 있도록 노동권의 범위를 확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모두를 근로자로 추정하고,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현장실습 과정에서도 노동이 발생한다면 노동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당시 교육부와 교원 단체들이 협의하던 학습 중심 현장실습 방안은 앞서 말한 것처럼 1개월 내외의, 노동이 아닌 실습다운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새로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3년 후에 도입하려 했다. 그런데 제주 사고가 터지자마자 11월, 교육부에서 당장 졸업 예정인 3학년 학생들에게 적용하겠다고 갑작스레 발표했으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가 노동권을 침해한다면서 현장실습을 유지하고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주장이 나오며 ‘폐지 vs 반대’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결국 서로 척을 지다시피 하게 되었고 현장실습 문제는 원래대로 반복되고 있다.


강문식
우리가 더 노골적으로 다뤄야 했던 문제는 누군가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겠다고 했을 때, 이 사람들에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와 노동 환경이 제공되도록 어떻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것인지다. 우리 나라에는 그러한 제도가 전무하고, 유일한 방안이 현장실습으로 수렴되고 있다. 오히려 현장실습 제도가 다른 제도를 논의할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라는 특성화고노조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그 주장이 정말 실현되려면 현장실습 제도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고 더 나은 일자리에서 취업할 수 있으려면 현장실습 제도가 아닌 다른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현장실습은 학생들에게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작년 연구에서 ‘한국교육고용패널’이라는, 중학교서부터 학교를 졸업한 후 이후 진학, 진로를 매년 이어서 조사하는 자료가 있다. 그 자료를 통해 특성화고 졸업생이 이후 어떤 진로를 가지는지 확인했는데 현장실습을 참여했는지 여부는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지게 했는지와 무관하거나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교사나 학교의 취업 지원 센터로부터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이다.[ref] 해당 연구는 현장실습 경험, 일자리 정보 습득 경로(학교/학교 외), 취업 시기, 고등학교 재학 중 자격증 취득 여부, 중학교 3학년 성적, 자기효능감, 가구 월 소득, 성별을 통제 변수로 삼아 정규직 일자리에 일하고 있을 가능성을 조사하였다. 이때 학교에서 취업 정보를 습득하였을 경우 정규직 일자리에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2.32배 높았다. 다른 유의한 변인은 중학교 3학년 성적이었으며 나머지 변인은 모두 유의하지 않았다.[/ref] 임금, 고용 형태, 노동조합 가입 여부 등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장실습 외의 청소년 취업 지원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윤승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근로 계약서를 써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다가 어느 순간부터 현장실습 표준 협약서만 쓰게 하면서 모순을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노동자성을 인정받는데, 현장실습 나가서는 그보다 더한 노동을 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용노동부와 교육부 사이에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던 것을 고용노동부가 교육부에 떠넘긴 것처럼 보인다.


허태준
현장실습이 과연 신입 사원이 받는 교육과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싶다. 신입 사원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 수습 기간에 받는 교육과 질이나 수준이나 내용, 형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건 기업에서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교육이고 노동이다.


강문식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올해 5월 ILO에서 〈양질의 도제 제도에 대한 권고〉가 나왔다. 언론에서 〈다음 소희〉와 맞물려 한국 정부에서도 현장실습 제도에 적용해야 할 권고가 나왔다고 다루자 고용노동부에서 즉각 반박 보도 자료를 냈다. 그 권고는 현장실습 제도에는 해당하지 않고 일학습 병행제[ref] 2014년 도입된 직업 훈련 제도이다. 기업이 청년을 ‘학습 근로자’로 채용해 현장에서 6개월~4년간 훈련시키면 정부에서 임금과 강사료 일부를 지원하며 종료 후 청년에게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자격증이 발급된다. 독일·스위스식 도제 제도를 한국에 맞게 설계한 도제식 교육 훈련 제도라고 홍보되었다. 인턴 방식과 고등학교·대학 재학 중 참여하는 장기 현장실습 방식으로 나뉜다. [/ref]에만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권고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며 ‘쿵’ 하고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다. 직업교육과 직업 훈련을 분리시키기보다 결합시키면서 도제 제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다. ILO와 OECD는 그 흐름을 부정하지 않고 대신 그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번 권고의 대상인 ‘도제 제도’를 정의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대표적으로는 과정을 이수한 후 자격증을 부여하는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가 등이다. 2017년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가 도입되면서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빠지게 되었지 않나. 정부 관료들은 그러한 국제적 논의 흐름을 더 빠르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고, 현장실습생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야 문제 제기를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한 판단이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급하게 도입하고 일학습 병행제와 분리시켜 나가는 과정에 고려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인호
일학습 병행제는 산업인력공단이 해야 할 일을 학교로 끌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산업체와 고용노동부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운영하고 학교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틀로 시작해 슬그머니 일이 학교로 떠넘겨지고 학교는 취업과 연결되니 덥석 받고, 일선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의 경우 도제 제도가 이루어지는 형태가 다른데, 학생이 회사에 취업한 후 학교에 직업교육을 받으러 간다. 노동조합이 제도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실습 과정도 감시해서 실습이 실습답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건축과는 학교가 땅을 사서 집을 지어 보게 하고, 자동차과는 폐자동차를 모아서 조립하고 신고해서 시범 운행을 해 보는 식이다. 실습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노동 현장과 분리된 공간에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요구하지도 감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문제가 있다. 지금 인천에 큰 반도체 회사 두 곳이 있는데 여상 학생들이 주로 현장실습을 나간다. 그런데 여상에 반도체 관련 전공이 없지 않나. 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한 곳에 실습을 나가거나 취업을 하려면 시기를 일정 수업 일수를 채운 후로 제한하고 있다 보니 이걸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이 ‘채용 연계형 직무교육과정’이다. 예를 들어 회계과 학생이 상공회의소에서 140시간, 3개월 정도 관련 교육을 받고 반도체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학생에게 지급하는 수당과 교육비 등 원래 기업이 부담해야 할 것을 정부가 대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 소속된 상태에서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 어쩌면 학교 밖에서 취업을 하는 것보다는 안전하지 않을까. 조기 취업은 왜, 어떤 점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나?


하인호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산업체 현장실습이 필요한 이유가 노동시장 진입 통로라면, 그에 해당하는 별도의 제도 운영이 바람직하다. 취업 시기를 졸업 이후로 정하여 과도한 경쟁을 예방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 단위 취업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공개적 채용 절차를 운영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시·도교육청 취업지원센터와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통합하여 고용노동부가 운영함으로써, 취업은 고용노동부가 책임지고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는 직업교육을 통해 취업을 지원하도록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본다.


이윤승
교육부에서 대학의 수시, 정시 일정을 정하는 것과 달리 노동부는 기업의 채용 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학기 초에 학생들을 먼저 선발하고 방학 기간, 현장실습 기간에 연수를 시키고 졸업 후에 근무를 시작하는 방식이고, 중소기업은 그런 식으로는 채용이 어렵고 그때그때 필요할 때 뽑겠다는 입장이다.


강문식
취업 시기를 졸업 시기에 가깝게 늦추는 것을 교육부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했을 때 기업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연구 과정에서 기업의 현장 교사(기업 재직자로서 학생 교육,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을 인터뷰해서 왜 현장실습을 받느냐고 물었을 때 나왔던 이야기는 ‘리스크를 줄이려고’였다. 일단 써 보고 안 맞으면 돌려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취업 시기를 늦추면 그러기 부담스러워지니 기업들이 뽑지 않고 취업률이 낮아진다. 그런데 ‘직업교육 기관은 취업률이 높아야 해…… 왜냐하면 직업교육은 원래 취업을 시키기 위한 것이니까……’ 이런 식으로 순환 논법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윤승
학생 입장에서도 실습을 연말에 나가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8월에 나가서 11월에 복교하면 2월까지 재취업을 두 번 정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래서 대기업을 목표로 하는 소수의 학생이 아닌 중소기업을 지망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더 일찍 실습하기를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고용노동부에서 보다 책임지고 통합적인 취업 지원 기관을 운영한다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태준
덧붙여, 나는 기업을 관리, 평가, 징계할 수 있는 기관이 학교와 분리되어 생기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나는 공단이 있는 지역의 공업계고등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와 기업 들이 오랜 기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경력 교사나 학교장이 기업 측과 인맥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이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학교를 통해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건조하게 학생들의 입장에서 판단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문식
종합하면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공인노무사들에게 외주화한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은 어떤 교사도 다른 공무원도 할 수 없는 법적 권한인 사업장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업장, 특히 해마다 직업계고 졸업생들을 대량 채용해 가는 특정 기업들에 이 감독을 의무화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하인호
IMF 이전까지만 해도 특정 종목의 직업교육을 받으면 평생 직장을 가질 수 있었고 현장실습이 그 통로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첫 직장이 어디가 되느냐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학교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과 아직 적용되지 않는 기술,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학생들이 이에 대비하게끔 하려면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충분히 채워서 전면적 노동교육을 통한 노동 능력 향상에 힘써야 하며,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진로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현장실습은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걸 방해하고 또 학교에서 그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곗거리가 되고 있다.


이윤승
그런 교육이 물론 필요하지만 3학년 말쯤 실제 필드에서 일해 보는 경험을 통해 기존 사회 질서와 기업 질서를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습을 하고 나니 진로를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실습을 강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허용할 만하지 않은가.


하인호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지식과 기술의 혁신 속도가 빠르고 직업의 변화 주기가 짧은 지금은 직업교육도 평생교육 시스템 속에서 고안되어야 한다. 일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할 때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고, 교육받는 동안 고용 보험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재교육받은 후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진정한 일학습 병행이다. 그리고 생계가 어려워 취업이 급하다는 학생들에게는 조기 취업이 아니라 이른 나이에 일에 내몰리지 않도록 교육 복지 체계가 필요하다. 개인들이 조기 취업을 필요로 한다고 교육과정 자체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허태준
대학의 실습 제도가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다른 점은 실습을 나가는 기관이 정해져 있고 실습생에게 무엇을 시킬 수 있고 무엇은 시키면 안 되는지가 오랜 시간 체계화되어 있고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현장실습생의 지위는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라고 정의한 지 5년이 지났지만[ref] 교육부는 2017년 8월에 발표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 방안〉에서 “참여 학생의 신분을 근로자에서 ‘학생’으로 명확히” 한다고 하였다. [/ref] 그동안 그러한 체계와 문화가 생겨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생겨나기 어려웠다.

핵심은 국가 주도 정책에서 노동자가 정해진 루트를 따라갔을 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과 내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의 인정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실습을 시행할 수 있는 기업의 기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면서 동시에 기업에 확실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준 없이 지원금도 퍼 주고 노동력도 공급해 주는 꼴 아닌가.


이윤승
동의한다. 지금은 선도 기업[ref] 2018년부터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은 ‘선도 기업’과 ‘참여 기업’으로 구분된다.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관할 교육청의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음을 인정받은 기업을 ‘선도 기업’이라 하며, 그 외 기업은 ‘참여 기업’이라 한다. [/ref]의 기준이 매우 낮다. 학교는 학생들을 어떻게든 취업시키기 위해 선도 기업이 아니어도 방법을 알려 줘서 등록을 유도하기도 한다.


강문식
이윤승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을 배우며 실험을 하듯이 배우는 과정에서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산업체 파견형 실습은 교육부에서 정한 여러 형태의 실습 중 하나인데, 많은 논의가 현장실습은 곧 산업체 파견형 실습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되는 것 같다. 학생들이 노동 시장에 진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공동 실습소 형태나 현장 체험 학습 형태도 가능할 수 있다. 기업이 그런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요구하고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겠다. 기업의 이득에 따른 선택에 맡겨 두어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이다.


하인호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노동조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정부와 직종별 협회, 노동조합 사이 견고한 파트너십 속에 현장실습이 운영된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은 1년에 한 번 직업교육생 2만 명을 대상으로 근무 여건에 대한 ‘직업교육 보고서’를 공개하여 실습생이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감시자 역할을 한다. 핀란드는 교육과정을 짜고 운영하는 과정이 노동조합, 교원노조, 학생노조 등 이해 당사자들 간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계획, 추진된다.


강문식
앞서 언급한 ILO의 〈양질의 도제 제도에 대한 권고〉의 핵심이라고 봤던 것이, 해당 업종이 도제 제도에 적합한지를 비롯해 도제 제도 운영 전반을 노동 단체와 협의하여 정하라고 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노동부가 국제 기준이나 법·제도 면에서 노동 단체와 협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더 광범위한 사회적 압력을 형성하고 개입력을 높일 수 있을까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 시장으로 진입하는 졸업생들에게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와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안내할 것인지가 교육에서의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노동 교육의 핵심은 일반적인 노동법 지식이 아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어야 하는데 인문교육, 직업교육을 막론하고 공백으로 남아 있다.


하인호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선생님이나 노무사님께 이야기하라고 가르치지,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는 교육은 하지 않으니까.


이윤승
수업 시간에 틈틈이 노동조합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걸 싫어하고 노조에 비판적이었던 한 학생이 취업하고 몇 년 후에 갑자기 찾아오더니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노조는 필요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 교육에서 노동조합은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효과를 주는, ‘영 교육과정(null-curriculum)’인 것 같다.


강문식
현장실습 문제 대응을 처음 시작할 당시, 특성화고노조와 같은 당사자들의 초기업적 노조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장 절실히 가졌다. 하지만 만나고 설득해 내는 데 실패했고, 누군가는 성공했다는 점에서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된다. 현재 방향성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선례를 남기기를 바란다.


하인호
민주노총과 특성화고노조가 현장실습에 개입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현장실습생을 받는다던데 그들 기본 교육을 우리가 하겠다’라거나…… 그런 개입력을 발휘하는 순간 지금과는 안전도 내용도 질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운동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현장실습 폐지 찬반을 두고 갈라선 채 논의가 멈춰 버렸다. 최근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 공동행동’이 출범했지만 민주노총은 함께하지 않았다. 내부에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서였다. 당연히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그렇다면 토론해서 조직의 입장을 정할 일이 아닌가? 특성화고노조 조직에 앞장섰던 활동가들을 비롯해 특정 정파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 구도를 유지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적극적으로 대화와 연대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태준
운동 진영 안에서 최소한의 합의가 절실하다고 느낀다. 안에서 합이 맞지 않으니 논의가 계속 헛도는 것 같다.

가계 경제가 학생들의 진학/진로 선택에 분명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직업교육의 분리가 가난한 학생들의 고등교육 접근 차단과 계급 재생산에 복무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직업교육과 인문교육으로 진로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까? 중등교육에서 직업교육을 따로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


강문식
나조차 ‘특성화고에 진학했으면 일단 취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진학한 게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작년 연구 과정에서 특성화고가 취업을 주된 목표로 하는 교육 기관이라 하더라도 취업이 곧 직업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등치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직업교육 안에도 여러 쟁점이 있다는 걸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직업교육의 결론을 취업으로 상정하는 교육과정이 과연 학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인문계고와 특성화고로 나뉘어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의 그 시간들이, ‘우리의 목표는 인문계고 학생들의 목표와 다르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떤 사회적인 기대치 등도 저 학생들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계속 스스로 수용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 속에서 서열화된 지위와 사회 구조가 만들어지고 교육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윤승
결국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월급 많이 받는 곳으로 취업하는 것뿐이고, 그렇게 열심히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해도 고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그대로였다. 갓 대학 졸업한 나보다 어린 직원이 나에게 일은 물어보지만 직급은 더 높고 월급도 더 많은. 그런 차별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특성화고 졸업생 전용의, ‘선취업 후진학’ 방식의 재직자 전형을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대학을 졸업해 봤자 재직자를 위한 과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대졸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강문식
그 차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직업교육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산업안전과 노동인권 과목이 직업계고에서만 듣는 과목으로 교과 과정에 편입되었다. 인문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 아님에도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로만 대상을 한정한 데는 대단히 차별적인 인식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직업교육을 이렇게 인문교육과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방식의 학제와 교육과정에서부터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윤승
이렇듯 사회적 차별이 공고한 상태에서는 학생도 학부모도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이미 지원자가 미달되는 학교들이 많다. 이대로 가다 보면 특성화고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허태준
‘선취업 후진학’과 대입 특별 전형이 나에게는 사회가 책임져야 할 차별의 해소 등의 노력을 개인에게 미뤄 둔 형태로 보인다. ‘차별을 느끼면 노력해서 대졸자가 되고 차별의 상태를 벗어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라임칼리지를 다녔었는데, 대학 학위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만드는 방식의 여러 정책들이 있었지만 과연 그 학위가 현장에서 인정되고 있는가 하면 회의적이다. 일학습 병행제를 이수했을 때 주어지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자격증도 위상을 국가 자격증에 준하게 높이겠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지금 현장에서 그렇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승
NCS가 학교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여러 등급 중 학교에서는 기초 자격증 수준만 가르치니 취업하려면 졸업 후에 알아서 독학하든 학원 다니든 해서 등급을 높이라는 식이다. 결국 개인에게 책임이 떠넘겨지고 사교육 업체만 이득을 본다.


허태준
직업교육이 삶 전반을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한 삶의 구체성이나 가능성을 좀 더 많이 상상하고 경험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한다면 실은 직업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전체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학교 때 기술 시간에 납땜하듯이 인문계고에서도 교과목을 편성해 용접 등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동이 존재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와 그것을 경험한 상태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강문식
직업교육에 인문교육을 녹이는 걸 넘어서, 어떻게 인문교육에도 직업교육이 녹아들 수 있을까. 둘 사이 위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 방향만 논의되어서는 위계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만 노동교육이 강조되는 차별에 대해서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 학부모들의 노력으로도 상당히 시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윤승
고등학교에서부터 인문계는 입시, 특성화고는 취업으로 이분화되는 구조가 사회적 지위의 위계를 만들어 내는 시작인 듯하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기본 교과는 같이 듣고 직업교육과 인턴 실습도 원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만 모두가 노동과 직업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학교생활 속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더 잘 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안에서 학교와 교육 당국이 책임지고 취업 이후까지 모니터링해야 더 이상의 차별과 죽음을 담보한 인내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교사와 학교만이 아니라 부모조차도 취업 이후 복교를 꺼리는 모습이었다. 학생이 참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후배에 대한 책임감도 있겠지만 당장의 월급이 가정에 필요해서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이직과 재취업, 직업교육이 고교 졸업 이후에도 원활할 수 있는 구조에서라면 소희는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인호
직업교육은 변화된 세계에 걸맞게 새로이 정의되어야 한다. 직업교육과 인문교육이라는 이원론적 교육 패러다임을 벗어나 통합 또는 상호 침투를 통해 새로운 직업교육을 구상해야 한다. 직업교육에서는 보통교과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힘 있는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있고, 인문교육의 경우 노동 활동을 통한 교육으로 신체 발달과 지적 발달,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넬 나딩스는 학교는 학생의 개인의 삶, 직업인으로서의 삶, 시민으로서의 삶을 고루 충족시킬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업교육의 새 판을 짜기 위해 필요한 관점이다. 산업체에 학생을 내맡겨 버리는 현행 현장실습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일을 통한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실무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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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