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특집] 학부모는 교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남궁수진)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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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_ ‘학부모 혐오’와 교육공동체의 불가능성 ③

 

학부모는 교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노학부모존’을 만드는 정책과 사회 분위기를 비판한다

 


남궁수진

blessedsj11@gmail.com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교문 안으로 학부모가 들어갔을 때

 

교문 밖은 자녀의 달뜬 발걸음이 언제 눈에 들어올지 엄마들의 동동 제자리걸음이 흐르는 자리다. 하교 시간이 되면 교문 앞에 학부모들이 즐비하다. 자녀의 첫 하교를 지켜보았을 때 학부모들의 대부분이 모(母)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엄마로 대표되는 학부모들은 교문 바깥에서 안쪽을 향해 고개를 빼며 기웃거린다.

‘문’이라는 존재는 누군가를 향해 여닫는 배제성을 함유한다. 교문이 생긴 이래로 학부모는 문 앞에서 아른거리는 존재여야 했다. ‘치맛바람’, ‘바짓바람’, ‘돼지 엄마’, ‘헬리콥터 맘’, ‘악성 민원인’, ‘몬스터 페어런츠’ 등. 아마도 공교육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을 양육자를 향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언어들. 우리 사회에서 과연 건강하고 참여적인 학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있었는가? 그러한 과정 없이 보통의 학부모들은 대개 침묵을 지키게 하는 서사 속에 놓인다.

2022년 입학한 둘째의 방과 후 교실 공개 수업일이었다. 왜 하필 그때였는지? 입학 통지서를 받으러 갔을 때도, 선생님과 1학기 면담을 진행했을 때도 학교 안에 들어갔지만, 그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러 번 학교를 들고 나서야 긴장도 풀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방과 후 교실이 진행 중인 공간은 과학실이었다. 놀랍게도 과학실 천장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경악한 것은 에어컨 통풍구 바로 앞에 있는 큰 구멍이었다. 우리 학교는 ‘석면 학교’다. 교육부의 학교 석면 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천장의 구멍은 반드시 조치가 필요하다. 구멍의 크기에 따라 교체하거나 석면 테이프로 막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 행정실에 문의했을 때 행정실에선 석면 매뉴얼의 존재도 잘 몰랐고, 석면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현황 파악을 위해 전체 교실을 점검하자, 역시나 각 학급 교실과 학교 전체 천장에 눈에 띄는 구멍들이 많았고 테이핑 작업 흔적은 없었다. 매뉴얼대로라면 마땅히 학교에 석면 지도를 요구하고 석면 담당자가 수년 동안 혹은 그 이상 석면 관리를 제대로 해 온 것인지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1학년, 3학년인 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마땅하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결국 석면 테이핑을 하고 학부모들이 천장을 점검하는 것만으로 마무리하였다.

‘건강한 참여형 학부모’와 ‘진상 학부모’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 경계는 누군가 규정하기보다, 공동체와 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의 건강한 지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완벽한 학교란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교사, 학교 노동자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한다. 교육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찾고 메꿀 수 있다. ‘건강한 참여형 학부모’를 포함한 바람직한 교육공동체는 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의 건강한 지지와 협력 안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우리 사회는 건강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보다는 학부모와 학생을 향한 혐오와 배제의 날을 세웠다.

 

선정적 보도, 강행된 정책

 

일부 학부모들의 그릇된 행태와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모든 책임이 일선 교사에게 지워지는 체계 안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졌다. 소중한 생명이 스러지는 시간 앞에 우리는 슬퍼하고 분노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분노는 당연하다. 우리가 안타깝게 잃은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를 혐오로 분출하고 소비하기보다 건강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서이초 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의 분노와 혐오는 멈추어야 할 선이 어디인지 찾지 못했다. 클릭과 댓글을 부르기 위한 선정적인 보도. 교사와 학부모의 사적 영역 침해는 기본이고, 국회의원실까지 동원해서 검찰 공소장을 공개하는 언론. 인터넷 미디어들은 관련 학생의 신원 및 사진 공개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아동학대 신고 시 학대 행위자와 아동, 신고자의 신원 정보는 비공개하도록 한 법률을 무시한 보도도 많았다. 몇몇 언론은 경기 용인 장애 아동 학대 사건 보도에서 장애아의 행위를 장애라는 맥락에서 보지 않고 구체적인 행위를 묘사하며 성적 행위로 규정했다. 기자들은 선정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만들지 않겠다는 언론으로서의 약속을 찢어 버렸다.[ref]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이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신문윤리위원회에 언론 심의를 요청했다. [/ref]

미디어의 소비자들이며 댓글의 작성자들은 어떠한가? 사회적 문제라는 명분으로 폭력과 고통을 포르노그래피적으로 즐겼다. 가족, 교육공동체를 착취하는 콘텐츠 속에서 최소한의 규범과 질서를 잃었다. 얕은 오락을 즐기며 언어적 폭력과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소문들을 재생산했다.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며 우리 사회의 학생, 학부모, 교사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납작해졌다. “나 때는 많이 맞았다, 역시 애들은 맞아야 한다” 하며 향수(?)를 고양하는 댓글들은 어렵게 세워 온 학생인권을 부정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진상 학부모 체크리스트’를 보며, 보통의 학부모들은 ‘진상’이 되지 않고자 자기 검열을 했다. 교실 안에서 엄연히 일어나는 학대 행위에 대해서도 정당한 교권이고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있다. 혐오와 오락이 혼재하며 비판적 사고는 불가능했다.

교육부는 대책이라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유치원 교원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교육부 고시’)를 발표했다. 교육부 고시는 반인권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학생의 용의 복장에 대한 규제를 가능케 하고, 학생의 소지품에 대해 각종 이유로 검사와 압수를 허용하는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업 방해 및 불참 학생에 대한 각종 조치와 배제가 폭넓게 가능하여 교육권의 자의적 박탈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ref]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외 31개 단체, 〈모두를 위협하는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 폐기! 근본적 대책 촉구, 교육주체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문〉 참고. [/ref]

 처음 교육부에서 내놓았던 고시안은 장애인 학생에 대한 신체의 자유 제한 등 학대가 가능케 한 부분 등 더욱 문제가 많았다. 교육부가 ‘교권 보호’, ‘생활 지도’란 이름으로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지가 드러난 내용이었다.

제대로 된 논의나 검토도 없이 한두 달 만에 이런 고시와 각종 법률 개정안들이 통과, 시행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원단체들은 일명 ‘교권 보호 4법(「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교육기본법」) 개정에 더해,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도 요구하고 있다. 교원의 생활 지도 행위는 정서적 학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것이 주요한 요구이다. 그러나 교원에 대한 부당하거나 무리한 신고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과 별개로, 교원의 행위를 아예 정서적 학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과연 합당한가?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9년 3월, 시·도교육청에 스쿨 미투 처리 현황을 묻는 정보 공개를 청구했고, 소송 3년 만인 2022년 4월 승소하여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스쿨 미투 발생 학교명과 관련 주요 정보를 받았다.[ref] 현재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판결을 무시하고 스쿨 미투 발생 학교명과 관련 주요 정보에 대해 부분 공개,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경기도교육청과 충북교육청에 정보 공개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ref]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총 452건 중 정서적 학대는 239건으로 56%에 해당했다. 사실 이는 적게 잡은 수치이다. 정서, 신체 학대를 포함한 복합적 학대는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하는엄마들에서 분석한 스쿨 미투 사건들의 학대, 성폭력 유형별 징계 현황 


학교에 교사에 의한 정서적 학대 사건은 분명 존재한다. 스쿨 미투 사건 중 정서적 학대로 분류된 것은 “열 달 동안 생리 안 하게 해 줄까?”, “내 페북에 여중생 떡 치는 영상 있다, 찾아봐라”라고 말했다는 등의 사례들이다. 교육 당국이 정서적 학대 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문제다. 스쿨 미투 사건에서 정서적 학대로 분류한 239건 중 94건, 약 39%에선 교육부의 징계 정보가 없었다. 정서적 학대에 교육 당국은 경징계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징계 내용 정보를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비단 성폭력에만 한정한 사례들이다. 그 외에도 여러 유형의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학교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학생 자살의 이유로 교사의 괴롭힘이나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의 무관심 등을 증언하는 사건들도 있다.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정서적 학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교원단체들은 자신할 수 있는가?

정치하는엄마들에서 활동하면서 2018년 비리 사립 유치원 사태, 스쿨 미투 사건 및 관련 소송, 그리고 2023년 서이초 사건으로 불거진 교사 위기 상황을 겪었다. 6년간의 공통적인 경험은 ‘교육부의 부작위’이다. 혹은 ‘교육부는 가해의 공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성폭력은 아동에 대한 정서적·신체적 학대로,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인 학교장은 반드시 아동학대 사실을 신고해야만 한다. 이를 어겼을 시에는 학교장에게 벌금 등의 처벌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교육청에는 이와 관련된 조처 사항이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거나 공개하지 않는다. 학교, 시·도교육청, 그리고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은 교육부는 조직적인 아동학대 범죄의 가담자이다. 2023년도 8월 24일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교육노동자현장실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31개 단체는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학생·학부모를 포함한 시민사회 연대 단체들의 절박한 요청에는 아무런 대답 없이 일부 교원단체의 무리한 요구에만 응답했다. 교육공동체를 지원해야 할 교육부가 교육공동체의 일원인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와 요구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9월 1일, 전국의 학부모들은 빠르게 확정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통보받았다.

 

노키즈존 다음으로 ‘노학부모존’?

 

어린이날 100주년을 하루 앞둔 2022년 5월 4일, 전교조가 전국 초등학교 4~6학년생 1,841명에게 어린이 존중 및 사회 인식 영역 등을 주제로 벌인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주관식)에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245명)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경향신문〉은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하늘숲초 6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설문 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69.8%(86명 중 60명)가 노키즈존을 인지하고 있었고, 62.8%(54명)는 노키즈존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응답했다. 어린이들의 이러한 요구에 우리 사회가 내놓은 답변은 무엇인가?

지금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노키즈존이 성행하기 시작할 때 자녀의 유아기를 겪었다. 노키즈존 옹호론자들은 사유 재산이나 영업상의 권리를 주장한다. 노키즈존 형성 과정상의 중요한 쟁점은 문제를 차별과 배제라는 쉬운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노키즈존은 아동 차별 행위라고 명시했음에도, 이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행정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다.

일부 가게가 하던 노키즈존(이자 ‘노양육자존’)이 확대되어 이제는 학교가 ‘노학부모존’이 될 상황이다. 이번 사태 이후로 어떤 민주적인 논의 절차는 없었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권 침해의 가해자로 불리고 ‘교사의 (정서적) 학대는 없다’라는 주장은 이어지고 있다. 학생의 인권과 학부모의 참여는 논의에서 누락되거나 축소의 대상이 됐다. 교육 당국은 반성하거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교육 주체들의 참여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보다는 분노한 여론에 떠밀리거나 여론을 이용하려 했다.

2023학년도 2학기, 많은 학부모는 학교의 허락 없이 교문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공지를 받았다. 공식적인 담임 교사 상담 기간이 오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담 일정을 잡지 말라는 통보가 왔고, 위축된 학부모들은 대부분 담임 상담을 신청하지 못했다. 계획된 학부모 참여 수업을 없앤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이 운동장을 이용할 수 없게 하거나 운동장 공놀이를 금지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도 없애자는 목소리가 크다. 불편하거나 위험하면 배제해 버리는 쉬운 방법은 교육 현장에서조차 기본적인 선택 사항이 되었다. 인권을 지켜 달라는 요구는 교육 현장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는 사회적 효능감을 박탈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공동체를 지키고자 애쓸 것이다. 우선 공동체 착취·파괴적인 미디어 환경 및 언론인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커뮤니티 게시물을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퍼나르는 미디어가 양육자-아동, 학부모-학생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양육자-아동 혐오를 양산하는 언론의 행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댓글 창 삭제 요구, 언론윤리위·국가인권위 제소 등을 이어 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탤 것이며, 안전한 학교를 위한 스쿨 미투 정보 공개 소송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는 학교 운동장 사용 실태를 파악하여 학생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뛰어 놀 권리를 요구할 계획이다.

교육공동체로서 우리가 혐오 댓글을 양산하는 기사를 신고하고 댓글 창을 닫도록 요구하자. 식당, 카페, 공공 도서관, 학교 등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아동 혹은 학생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쉬운 길을 거듭 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자. 시민으로서 교육 당국이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은 쉽다. 정보 공개 청구, 소극 행정 고발 등 정부의 부작위에 대한 감시는 우리의 책임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위약(僞藥)을 삼키겠는가. 그러나 학생, 학부모, 교육 노동자, 지역 사회로 구성된 교육공동체는 없어질 수 없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는 당연하지 않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교육공동체 회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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