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후속] 교사들은 왜 거리로 나왔고 무엇을 남겼나? (정용주)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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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_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교사들은 왜 거리로 나왔고 무엇을 남겼나?

 

 

정용주

edcom234@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천왕초 교장



교사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지금 교사들이 제기하는 안전하게 교육할 환경의 문제는, 악성 민원이나 문제 학생 때문이 아닙니다. 저출산에 따른 양육 태도의 변화, 1997년 IMF 금융 위기 이후 불안정해진 일자리, 점점 견고해지는 입시 체제, 선행 학습과 컨설팅 중심의 사교육 시장, 그리고 이를 방치하면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추가된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 정책, 서비스 요구가 주가 되는 학부모 참여, 교육부의 지침과 규정대로 교사를 지도·감독하면서 사실상 학교장의 리더십이 부재하는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서이초 사건은 학교교육의 총체적 위기를 드러낸 것입니다.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가 회복되려면 공교육으로서 학교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 2023년 10월 14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사 집회 발언문 중에서

 

7.18 서이초 사건으로 드러난 교육 현장에서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의 위기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 아니다. 교실은 학생들이 서로 다른 가치와 배경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의 근본적인 이념은 오랫동안 도전받아 왔다. 교사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이러한 이념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변화하는 시대 상황과 일관성을 결여한 정부 정책 변화는, 교사들을 서로 경쟁시키고 불안정 일자리를 확대하며 교육의 질을 향상할 무거운 짐을 온전히 교사에게 지웠다. 서이초 사건은 이렇게 교실에서 고립되어 있던 교사들을 깨우고 행동하게 만든 발화점이었다.

사건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했으나,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그 노력을 방해했다.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악성 민원의 증가,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의 부재, 그리고 교육부의 지침과 규정이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교육의 질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돌봄, 급식, 방과 후 학교, 교육 복지 등 형식적·보편적 복지 확대가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연동되면서, 관련된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교사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보조 업무 수행을 위한 각종 직렬이 증가하는 한편 업무 적정화, 최적화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업무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해졌다. 여기에 더해 각종 교육 활동에서 위험이 관리되고 책임이 면해지지 못하는 문제, 즉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처리하고 안 되면 교장, 교감이 개입한다’라는 논리가 승진 구조 모순과 중첩되었다. 그러면서 교사의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위는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가르치는 환경도 변했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신장된 개인의 권익은 학교에 대한 보다 폭넓고 깊은 행정 서비스 요구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각종 특이 민원이 증가했다. 특이 민원이란, 정당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절히 행정을 처리하였음에도 강한 피해 의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비이성적 행동을 보이며 민원을 제기하여 교사의 사기를 저해하고, 과다한 갈등 비용을 초래하여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된 민원 행태를 말한다. 민원인이 민원 처리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고 욕설, 고성, 폭행, 협박을 동원해 교직원에게 직간접적으로 위법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 처리 과정에서 교직원의 정상적인 직무 집행 행위를 방해하는 일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핵개인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 탈물질적 시대라는 특성이 중첩되면서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늘었다. 교사들은 지속적인 주의 산만과 집중력 부족으로 수업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다른 학생이나 교사, 학교 재산에 대한 과격한 행동을 포함하여 특수교육 대상자 등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의 증가, 지시 또는 요청에 반항하거나 규칙을 고의로 어기는 경우가 급격하게 많아졌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여기에 더해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증가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개인의 역량으로 교실에서 교사 나 홀로, 혹은 동학년 단위에서 자체 해결해야 했다. 교장은 사건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고, 교사들은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문제를 감내해야 했다. 서이초 사건은 이러한 상황을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계기라는 의미가 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 교육과정에서의 자율성,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는 단순히 교육 환경의 개선을 넘어, 학생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절실한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무엇을 요구했나?

 

선생님들에게 묻습니다. 안전하게 가르칠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악성 민원이 발생하지 않으면 안전한 겁니까? 교실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문제 행동 학생이 없으면 안전한 겁니까? 노란 버스 문제가 해결되면 체험 학습의 안전 문제는 해결되는 겁니까? 각종 정책으로 교육 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계획 세워 놓고 모든 것을 현장 교사들이 감당하게 만들어 놓은 상황이 안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선생님! 저는, 학교장으로서 7월 18일 이후 오늘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교사들이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높은 정체성을 가지고 더 많은 교육과정 자율성에 대해 요구하기보다 스스로를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외치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한 회복을 위해, 기자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판사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기 위해 병원장, 언론사 사장, 법원장에게 충분히 보호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교육 활동에서 오는 위험을 스스로 돌보는 방법 이외엔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 그래서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를 달라고 절규하는 ‘약자’ 정체성의 형성을 지켜보았습니다.

- 앞의 발언문 중에서

 

교사들이 몇 달 동안 토요일마다 종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면서 외친 내용은 명확하다.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활 지도 권한을 보장하는 법률 개정, 교장의 민원 전담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는 법률 개정, 교사의 지도를 아동학대나 폭력으로 무리하게 간주하는 상황으로부터의 보호 등 교권 침해 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생활 지도 권한 보장과 학교장 중심 민원 대응 체계 구축, 교육 활동 보호 조치 제도화는 핵심 이슈였다. 여기에 더해 행정 업무 경감 요구도 명확하게 제기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적 존재이다. 교사들은 지식의 전달자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그들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촉진하는 멘토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를 요구하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안전을 넘어서 정신적, 직업적 안전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교육 현장에서 교권의 침해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를 요구했다. 이는 생활 지도 권한의 보장, 교사의 전문적 판단이 존중받는 환경, 그리고 교육 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교사들은 학교장 중심의 민원 대응 체계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고, 민원에 대한 합리적이고 일관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학교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더 나아가, 교사들은 학교 업무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이는 교사가 주된 업무인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 부담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불필요하고 관행적인 업무에 대한 혁신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교사들은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며,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배움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교육 활동의 질적 향상을 통해 직업 만족도를 높이고, 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사들은 또한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 일관성 있는 교육 정책을 요구했다. 정책 시행에 따른 영향 평가나 위험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변동되는 것은 교육의 질과 교사의 직업적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교사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한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길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교육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학생들에게 지속 가능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최종적으로, 교사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단지 교실 내부의 문제가 아니며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와 사회적 책임에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교육의 질을 높이고,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미래에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의 이러한 요구는 단순히 직업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차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교장으로서 어떻게 이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했나


결국 문제의 핵심은 책임지는 리더십입니다. 전국의 교장 선생님들은 그동안 권한 없이 책임만 주어진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누구보다 서이초 교사와 연이은 교사들의 비보에 선배로서, 기관장으로서 안타까워하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9월 4일을 지나면서 교사들을 보호하는 학교장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교장 선생님들은 선생님들의 노력과 애로 사항을 이해하며, 그 힘든 상황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전국의 모든 학교장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교장은 새우와 같은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으로부터 내려오는 지침의 준수를 넘어 이 힘을 교사를 보호하고 전문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할 힘이 있습니다. 교육적 논리가 서지 않는 지도·감독을 하는 관리자로 대상화되는 것을 벗어나, 교육공동체가 리더십을 통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1항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 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항을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교사를 포함한 소속 교직원의 전문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로 개정합시다.

이렇게 될 때,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처리하고 사후에 개입하는 것을 벗어나, 선생님들이 보다 질 좋은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고,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 앞의 발언문 중에서

 

나는 9월 4일, 교장으로서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임시휴업일을 지정하고 여러 무대에 서서 교장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적극적으로 교장으로서 발언한 이유는 학교는 학생의 배울 권리를 실현하는, 국가가 만든 공적 공간이고 이 공간에서 학생의 배움의 권리와 인권을 실현하는 주체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의 실현은 교사의 가르칠 권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되며 우회로는 없다고 보았다. 교사가 자기 효능감과 직업적 만족도를 높여 전문가로서 자존감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좋은 교육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거리로 나온 교사들 대부분은 의사, 변호사처럼 “조금 더 많은 전문성을 달라, 간섭하지 말라” 이런 요구를 하거나, 인원을 적게 뽑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나 아파요, 나 약자예요”, “좋은 교육을 위해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해요”라고 절규했다. 나는 이것을 ‘약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받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러한 약자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단결하면 두 가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약자 정체성은 고통의 증언을 통해서 교사들끼리의 고통을 통한 연대를 강화하지만 타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 학생, 악성 민원, 그리고 학교 내에서 근무하는 다른 비교사들과 비교해도 약자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학부모와 모든 사람을 다 적이라고 간주하는 부족 정체성이 강화될까 봐 학교장으로서 우려했다. 이러한 부족 정체성이 더 진전되면 초등만의 노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고 보았는데 현실이 되었다.

다음으로, 교사가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재구성하며 교육과정을 확장하는 주체로 서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사는 그냥 누구나 대체 가능한, 위험하지 않은 범위에서 진도를 나가는 사람이 된다. 위험이 무기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내면화되면 교육과정의 질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9월 4일 이후 나타난 현상은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공개 수업, 상담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전문가 정체성은 부족 정체성과 약자 정체성을 넘어서서 포용적 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전문가 정체성은 약자 정체성과 구분되는 ‘강자 정체성’이다. 전문가로서 좀 더 포용적이고 연대하는 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교사들도 자기를 성찰하는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장으로서 “아무도 간섭하지 마”라는 태도를 넘어서는, 더 많이 소통하려 노력하고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고민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인적 성장을 돕는 것, 그래서 학교가 교육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의 질문들을 던지면서 이런 약자 정체성을 넘어서는 전문가적인 정체성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제도적으로 어떤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또한 나는 서이초 사건이 드러낸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라는 문제가, 점점 강해지는 입시 체제, 정부가 현장에 떠넘기는 교육 정책, 교육청·교육부의 지침에 충실한 학교장 리더십이라는 총체적인 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단순히 법 개정이나 예산 확대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법률 개정이 발빠르게 이루어지고 문제 학생 분리, 학교 차원 민원 대응팀 구성 등의 처방적인 종합 대책이 세워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방을 넘어 학교교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10월 14일 교사 집회에서, 내년 7.18, 서이초 교사의 1주기에 맞추어 ‘7.18 교육 개혁안’을 만들어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학교교육의 공공성 강화, 학교장의 리더십 강화, 교사의 전문성 보호와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학교교육에 대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맺자는 것이다. 지금 학교교육을 둘러싼 문제의 원인은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교사를 평가하고 경쟁시키는 모델, 서비스 중심의 학교 참여, 선택 논리가 중심이 되는 모델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5.31 교육 개혁안을 대체하는 개혁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교교육을 공공성과 포용성, 다양성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긴 여정을 시작하자고, 그리고 이 여정을 책임 있게 추진하기 위해 7.18 교육 개혁안 특별위원회를 국회 또는 국가교육위원회에 설치하고 현장이 주도하여 새로운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고 했다.

구체적인 영역에서 나는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교육 활동 중심의 학교 시스템 구축, 불필요하고 관행적인 업무에 대한 혁신, 민주적인 회의와 소통으로 교직원 업무 분장 재구조화, 일하는 방식 개선으로 학교교육 역량 제고 등을 실천했다. 무엇보다 민원 대응, 문제 학생 지도에서 교장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발언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나의 근본적인 고민은 교사의 전문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교사는 끊임없이 교육과정 안에서 특수교육 대상 아동을 포함한 다양한 배경의 학생에 대한 교육과정적 통합을 고민하는 전문가이며, 국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교육과정의 확장을 고민하는 전문가이므로, 더 많이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위험을 관리하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니라 기관장이 책임을 지고 학교 시스템으로 위험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전문가로서 어떤 도전도 일어나지 않고, 어떤 교육과정의 확장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현장은 때때로 격동의 바다와 같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회적 요구와 기대 속에서 교사는 항상 교육의 등대로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가 목격하는 교권의 훼손은 단순한 교육 현장의 문제를 넘어, 교육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학교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탄이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➊ 민원 대응을 넘어 공동체 회복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최근 증가하는 학부모의 민원과 이에 대한 대응은 학교공동체의 조화를 위협하고 있다. 민원 대응을 넘어서는 것은 학교 내부의 소통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여,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학부모의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학교와 가정이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학생들이 학습과 성장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➋ 인성교육과 생활 지도 중심의 교육을 민주시민교육과 학생 자치 패러다임으로 전환

인권과 교권의 대립을 넘어, 학교는 인성교육과 생활 지도를 중심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의 중요한 측면이다. 학생 자치를 통해 학생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학생들에게 더 큰 자율성과 책임감을 부여하며, 그들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➌ ‘문제 학생’ 분리를 넘어, 특수교육 대상자 등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교육과정적으로 통합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는 ‘문제 학생’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특수교육 대상자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의 통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모든 학생들이 서로 다른 배경과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각각의 필요에 맞춰 조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상호 존중과 이해의 문화 속에서 학습하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나는 현재 교육 현장이 직면한 위기를 교사 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교육 시스템 전반의 문제,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역할과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한다. 교육과정의 적절한 재구성과 교사들의 전문성 회복은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교사들이 교육의 전문가로서 교실 안팎에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교장의 중요한 임무이다.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들이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잠재적 위험을 예측하고 모니터링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안전을 넘어서 정신적, 직업적 안전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교육 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반을 갖추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교장으로서, 나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교사들이 교육 활동에 더 집중하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무엇을 과제로 남겼나?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이 보여 준 집중력은 교사들이 연대하여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보인 한편 많은 과제를 남겼다. 우선 한국 교육을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다. 한국 교육은 국가 경쟁력, 대학 진학, 내부 노동 시장 진입이라는 논리에 지배받는다. 이를 위해 학생들을 구분하고 서열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학교는 일정 부분 주류와 구분되는 소수, 약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분배 기제로서 평등보다는 선발에 중점을 두는 상황이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가장 위협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갖는 태도의 본질은 교육의 내용적 타당성보다는 변별력에 있다.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상대적 위치를 구분하고 서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교육의 기능이 되었고 이러한 방향으로 민원이 맥락화된 것이다.

그런 만큼 교권에 대한 논의를 교육 현장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보고 교사의 전문성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교사들은 교육 활동에서의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고,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수교육 대상자를 포함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에 대한 교육과정적 통합을 고민하는 전문가로서의 자세를 되찾자는 주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음으로 상대를 절멸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적대주의에 기반한 정치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 낸 정치적 중립성에 갇히고 말았다.

교육 현장에서 국가 중립은 모든 학생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특정 정치적 견해나 이념에 편향되지 않는 균형 잡힌 교육을 의미한다. 반면, 정치 중립은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거나 교육 과정에서 편향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개념이 혼동되어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과도하게 강조될 때, 교사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고, 교육 활동 자체가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중립과 정치 중립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해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지 않고 균형 있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 내에서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이념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집회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세 번째로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과 인권을 조화시키려는 고민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교육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에서 비롯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은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교사가 권위를 갖되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도 동시에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은, 문제 행동을 교육과정 안에 통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넘어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사의 권위와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인권을 마치 대립적인 관계처럼 접근하였다. 그러면서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한 접근 방식도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분리가 아닌 통합으로 모든 학생이 함께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부적인 분리의 매뉴얼을 짜는 데 치중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집회는 조직화와 연대라는 과제를 남겼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조직화, 연대, 그리고 정치적 세력화를 통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집회는 이러한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 주었다. 교사들의 집회는 ‘점들의 모임’이라는 표현처럼 개인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강조하였다. 단체 깃발 사용 금지, 모금 활동 금지 등은 이러한 자발적 참여의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들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노동운동의 역사적 관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조직화의 부재는 교사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일관된 대응과 전략 수립을 어렵게 하며, 연대의 부재는 교사들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보다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데 한계를 가져온다. 전통적인 노동운동에서 조직화는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 수립, 자원의 효율적 관리, 그리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또 다양한 단체 간의 연대는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보다 큰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재 교사들의 집회에서는 이러한 조직화와 연대가 결여되어,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공존 교육, 포용 없는 다양성교육과 다양성 없는 포용교육 사이에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공교육을 위한 사회 계약, 7.18 교육 개혁은 유네스코에서 2021년 11월에 발간한 〈유네스코 교육의 미래 보고서〉에서 힌트를 얻었다. 유네스코에서 교육에 관하여 발간한 보고서들은 일관된 흐름을 갖는다. 주요한 입장은 학생 중심의 교육 환경 조성, 교사의 지위와 안전하게 가르칠 환경 보장, 평생 학습의 관점에서 학교교육 체제의 유연성 확보, 사회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 인간 중심적 기술과 포용적 기술 활용,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이다. 특히 〈교육의 미래 보고서〉에서는 “독립적 존재에서 공존의 관계로”라는 화두를 던지는데, “존재에서 관계로”라는 교육의 비전은 개인 차원의 지식 획득이나 스킬, 역량 형성보다는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및 협업을 중심으로 교육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학교교육의 모델을 생각하며 1966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재음미해 본다.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발췌)

○ 학생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기본적 인권의 하나이다.

○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국가(지역)의 책임임을 인식해야 한다.

○ 교육 발전에 있어서 교원의 중대한 역할과 인류 사회의 발전에 대한 그들의 공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교원들이 이러한 역할에 합당한 지위를 갖도록 보장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교원의 적절한 지위와 교직에 대한 사회적 존경은 학교교육의 목표를 온전히 실현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 (교원을 포함해 학교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모든 업무는 공적 업무이므로) 교육 활동의 각종 부문에 종사하는 행정 직원과 기타 직원은 교사와 원만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교사도 이들에 대하여 동일한 태도로 하여야 한다.

○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상호 존중이 보장될 때, 학생을 위한 교원과 학부모 간에 긴밀한 협조도 증진될 수 있으므로) 교원은 본연의 임무에 대하여 학부모들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이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기본적 인권으로 명시하고, 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며, 실행자로서 교사의 지위과 교육 활동의 보호를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자녀의 교육 주체이자 국가에 자녀 교육을 위임한 주체로서 학부모가 가진 이중적 지위가 부당한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적절한 통제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지금의 현실에서 더욱 울림이 있다. 이런 방향에서 나는 공존 교육으로서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두 기둥을 포용과 다양성으로 보고 있다. 이 둘은 이상적으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역사를 돌아보면, 이 두 가치 사이에서 학교교육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공존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먼저 다양성 없는 포용 교육은 일견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학생들 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획일화된 교육 방식을 채택하여 각기 다른 배경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개별적 필요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게 하고, 사회적 통합보다는 배제를 조장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반대로, 포용 없는 다양성 교육은 개별적인 차이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집단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학생들을 분리할 위험이 있었다.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사회적 통합을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 공동체 의식과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은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되,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접근은 각자를 위한 교육이 공동체를 위한 교육보다 우선한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진정한 공존 교육은 이 두 가치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학생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모든 학생이 포함될 수 있는 포용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 차이가 각자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학교공동체 내에서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존 교육은 다양성과 포용성, 이 두 가치가 상호 의존적임을 인식하고, 학생 모두가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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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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