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 교사들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학교공동체가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안준철
전 전남 순천효산고 교사
오래전에 학교를 떠났다. 매일 아침 동네 초등학교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지만 그곳은 건물과 토지로서의 학교일 뿐이다. 교직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비극적 선택을 한 날, 나는 전직 교사 혹은 선배 교사로서 부끄럽고 참담했다. 그날 이후 막혔던 봇물 터지듯 쏟아진 후배 교사들의 절규에 가까운 고백과 외침을 통해 학교가 지옥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직 완전히 학교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학교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교실 붕괴’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그 후에는 교육계 일각에서 ‘교육 불가능’ 담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교사들은 이런 현상들로 인해 자괴감과 낭패감을 호소했을지언정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금 교사들은 ‘교사를 보호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교사들은 아동학대 관련 법을 지목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적 개입의 필요성 때문에 2014년 제·개정되었고, 교사도 아동학대를 저지를 수 있는 ‘보호자’에 포함되어 신고-출동-조사-격리의 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교사는 교육 제공자이자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이중 구조에 갇히게 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누구와도 상의하거나 협조를 요청할 수 없는 각자도생의 환경이라면 일부 학부모의 갑질과 악성 민원은 교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머어마한 공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경험이 일천한 새내기 교사의 경우 이런 끔찍한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거기에 학기 초 업무 폭주까지 더해지면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날 깊은 슬픔과 절망감에 휩싸여 관련 기사를 찾아 읽다가 나는 한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부모가 교사의 개인 전화로 전화를 했다는 대목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지? 나중에야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의 개인 전화로 직접 소통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이초 사태 이후 교육부도 교사 개인 전화 대신 업무용 전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나는 놀랐고, 저간의 사정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강한 의문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사랑의 소통이 금지된 건조하고 삭막한 곳에서 교육이 제대로 꽃필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때 개학하기가 무섭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담임한 반 학생들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학기 초에는 학생 집으로 전화를 걸어 전화 면담을 길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개학 전에 얼굴도 모르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라도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전화 상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30년 동안 근무한 학교가 가정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전문계 특성화고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권 추락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정부와 여당은 학생인권조례와 무관하지 않은 진보 교육감 죽이기에 나섰다. 학생인권은 교권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임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일부 보수 기득권층의 편향된 시각을 반영한 결과라고 이해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것은 상식이다. 이에 대해 거리로 나온 교사들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낡아빠진 옛날의 교권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약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립적 관계라면 교권의 신장은 학생인권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 다음에는 국회의사당으로 학생들이 몰려가지 않을까? 다행히도 교사들은 시대착오적인 정부 관리들과는 달리 교사로서의 자세와 결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지난 교사 추모 대회에서 자진하여 무대에 오른 한 기간제 교사의 ‘학생을 학대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실질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고 싶다’라는 즉흥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대규모 추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엄청난 숫자와 기세에 눌렸는지 이주호 장관은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법을 일부 개정하면 학교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정부는 낮은 출생률을 말하면서 교사 수는 계속 줄이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삶을 위한 교육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과도한 입시 경쟁 교육도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각자도생의 삭막한 학교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학교공동체가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며칠 전에 내가 존경하는 혁신학교 교장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이가 평교사로 남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2학년 수업을 맡았는데 유독 한 반이 어려웠다. 껄렁한 몇 학생이 수업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했다. 지속적으로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교사 독서 모임이 있던 날, 문제의 학급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이 모두 좌절감을 토로했다. 개별 교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동료 교사들에게 공동 대응을 하자고 했다. 당분간 그 학생들을 따로 떼어 내 상담도 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책도 읽고 글도 써 보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교감 선생님이 좋은 분이어서 선생님들의 공동 대응을 적극 지지해 주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교사의 공동 대응 이후 학생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해서 ‘원래 저런 녀석들이었나’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나쁜 아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혁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때의 경험을 살려 전체 교사의 다모임과 학년 교과 모임, 학습공동체 모임 등을 꾸리게 된다. 교장 자신도 부적응 학생 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힘든 학생의 경우 성장 교실이라 해서 학습 지원이나 정서적 지원을 하는 멘토-멘티를 정한다. 망설이는 학생들은 설득하고 학부모들의 동의도 얻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학교공동체가 협동의 힘을 발휘하여 하나씩 풀어 나갔다. 글 말미에 잠깐 마음이 출렁했다. 그 대목을 소개하며 어쭙잖은 글을 마친다.
“수업 방해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아픈, 좌절한 학생들일 수 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설득과 교육으로 잘 품어 안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기를 바란다.”
특집 |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 교사들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학교공동체가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안준철
전 전남 순천효산고 교사
오래전에 학교를 떠났다. 매일 아침 동네 초등학교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지만 그곳은 건물과 토지로서의 학교일 뿐이다. 교직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비극적 선택을 한 날, 나는 전직 교사 혹은 선배 교사로서 부끄럽고 참담했다. 그날 이후 막혔던 봇물 터지듯 쏟아진 후배 교사들의 절규에 가까운 고백과 외침을 통해 학교가 지옥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직 완전히 학교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학교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교실 붕괴’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그 후에는 교육계 일각에서 ‘교육 불가능’ 담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교사들은 이런 현상들로 인해 자괴감과 낭패감을 호소했을지언정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금 교사들은 ‘교사를 보호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교사들은 아동학대 관련 법을 지목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적 개입의 필요성 때문에 2014년 제·개정되었고, 교사도 아동학대를 저지를 수 있는 ‘보호자’에 포함되어 신고-출동-조사-격리의 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교사는 교육 제공자이자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이중 구조에 갇히게 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누구와도 상의하거나 협조를 요청할 수 없는 각자도생의 환경이라면 일부 학부모의 갑질과 악성 민원은 교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머어마한 공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경험이 일천한 새내기 교사의 경우 이런 끔찍한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거기에 학기 초 업무 폭주까지 더해지면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날 깊은 슬픔과 절망감에 휩싸여 관련 기사를 찾아 읽다가 나는 한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부모가 교사의 개인 전화로 전화를 했다는 대목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지? 나중에야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의 개인 전화로 직접 소통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이초 사태 이후 교육부도 교사 개인 전화 대신 업무용 전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나는 놀랐고, 저간의 사정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강한 의문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사랑의 소통이 금지된 건조하고 삭막한 곳에서 교육이 제대로 꽃필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때 개학하기가 무섭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담임한 반 학생들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학기 초에는 학생 집으로 전화를 걸어 전화 면담을 길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개학 전에 얼굴도 모르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라도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전화 상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30년 동안 근무한 학교가 가정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전문계 특성화고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권 추락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정부와 여당은 학생인권조례와 무관하지 않은 진보 교육감 죽이기에 나섰다. 학생인권은 교권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임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일부 보수 기득권층의 편향된 시각을 반영한 결과라고 이해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것은 상식이다. 이에 대해 거리로 나온 교사들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낡아빠진 옛날의 교권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약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립적 관계라면 교권의 신장은 학생인권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 다음에는 국회의사당으로 학생들이 몰려가지 않을까? 다행히도 교사들은 시대착오적인 정부 관리들과는 달리 교사로서의 자세와 결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지난 교사 추모 대회에서 자진하여 무대에 오른 한 기간제 교사의 ‘학생을 학대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실질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고 싶다’라는 즉흥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대규모 추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엄청난 숫자와 기세에 눌렸는지 이주호 장관은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법을 일부 개정하면 학교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정부는 낮은 출생률을 말하면서 교사 수는 계속 줄이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삶을 위한 교육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과도한 입시 경쟁 교육도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각자도생의 삭막한 학교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학교공동체가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며칠 전에 내가 존경하는 혁신학교 교장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이가 평교사로 남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2학년 수업을 맡았는데 유독 한 반이 어려웠다. 껄렁한 몇 학생이 수업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했다. 지속적으로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교사 독서 모임이 있던 날, 문제의 학급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이 모두 좌절감을 토로했다. 개별 교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동료 교사들에게 공동 대응을 하자고 했다. 당분간 그 학생들을 따로 떼어 내 상담도 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책도 읽고 글도 써 보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교감 선생님이 좋은 분이어서 선생님들의 공동 대응을 적극 지지해 주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교사의 공동 대응 이후 학생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해서 ‘원래 저런 녀석들이었나’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나쁜 아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혁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때의 경험을 살려 전체 교사의 다모임과 학년 교과 모임, 학습공동체 모임 등을 꾸리게 된다. 교장 자신도 부적응 학생 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힘든 학생의 경우 성장 교실이라 해서 학습 지원이나 정서적 지원을 하는 멘토-멘티를 정한다. 망설이는 학생들은 설득하고 학부모들의 동의도 얻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학교공동체가 협동의 힘을 발휘하여 하나씩 풀어 나갔다. 글 말미에 잠깐 마음이 출렁했다. 그 대목을 소개하며 어쭙잖은 글을 마친다.
“수업 방해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아픈, 좌절한 학생들일 수 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설득과 교육으로 잘 품어 안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