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 마령초등학교와 함께하는 학교의 생태 전환
글
배이슬
eden_dew@naver.com
전북 진안 이든농장
이든농장은 2019년 진안교육지원청의 지원으로 진안토종생태학교 텃밭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마령초등학교는 2020년부터 학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매주 2시간씩 텃밭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의 무경운 생태 텃밭 활동에 이어 2021년부터는 ‘서로를 살리는 숲밭’을 조성하고 나아가 학교 공간 전체를 전환하기 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년생 작물 중심의 생산, 소비가 아니라 지구와 함께 살기 위한 실천으로 학교 전체의 각 요소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큰 방향은 학교와 이든농장이 협의하고 세부 내용은 각 수업에 녹여 아이들과 진행합니다. 목공 작업이 필요한 경우 계절 학기에 목공 교사와 함께 만들고, 숲밭의 경우 전체 학생이 모두 참여 가능한 시간에 함께 설계합니다. 그 외 필요한 일들은 각 학년 재량으로 텃밭 수업외 시간에 교사들과 아이들이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풀 뜯어 먹는 학교
한여름 밭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내내 가물다가 내리 비가 오기를 반복합니다. 토마토와 상추에도 농부에게도 힘든 시간입니다. 한껏 기대하고서 심은 5종의 토마토가 말라죽거나 병이 들었습니다. 토마토가 자라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의 실망이 큽니다.
“이슬! 이거 크면 파스타 해 먹어요!”
“진짜 하트 모양으로 토마토가 자라요?”
“작년에 못 먹은 진안 토마토가 많이 달리면 좋겠어요!”
저마다의 기대를 저버리고 토마토는 앙상하게 말라 죽었습니다. 학교 텃밭은 여름 방학 동안 풀에 둘러싸였습니다.
“토마토가 없어도 파스타 만들어 먹을 수 있어!”
학교에 지천으로 자란 풀이 있습니다. 환삼덩굴입니다. 온 밭을 뒤덮는 것도 모자라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팔, 다리 등을 쓸어 상처를 냅니다. 많은 농부의 미움을 받는 풀이기도 합니다. 이 환삼덩굴 잎을 따 모으고, 저절로 자란 자소엽도 따고, 여름에 떨어져 이르게 싹튼 완두 순도 땁니다. 봄여름 할 것 없이 부지런히 따 먹던 괭이밥을 또 따고, 지난가을 심어 수확해 둔 조막만 한 양파와 학교 정문에 걸려 있던 마늘도 몇 쪽 챙깁니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는 덕에 아이들은 겨울을 나는 작물을 직접 기릅니다. 온갖 풀을 넣고 페스토를 만듭니다. 초록색 소스를 곁들인 파스타를 만듭니다.
“으악, 이게 뭐야. 좀비 토한 거 같잖아요!”
“이거 무슨 아기 설사 똥 같냐!”
“먹을 거로 그러지 마라~” 하고 한소리 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말합니다.
“야, 근데 왜 냄새는 맛있게 나냐!”
풀 페스토 파스타에 비건 식사 빵을 곁들여 먹습니다. 갸우뚱 거리며 맛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맛이 있는데, 맛이 없거든요?! 근데 또 맛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맛있는데?! 더 주세요! 마늘도 맛있어!”
“으악, 이상해! 나는 안 먹을래요.”
향을 즐기는 식물, 초록색 식물, 잡초라고 말하던 식물을 음식으로 먹는 것이 낯섭니다. 익숙하게 먹던 시판 토마토 소스를 기대한 아이들이 가사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토마토 소스를 들고 옵니다.
“이슬, 이런 게 파스타죠. 이걸로 만들었어야 했어.”
“토마토 파스타 맛있지~ 근데 우리 토마토는 모두 죽었잖아?! 토마토를 더 잘 키워 보자! 근데 오늘 먹은 파스타와 요 토마토 소스가 다른 점은 뭐가 있을까?”
맛이 다르다, 색이 다르다 이야기 끝에 소스 상품 라벨의 재료와 생산지를 읽습니다.
“토마토 페이스트 미국산, 토마토 고형분 중국산.”
유리병 하나에 든 토마토 소스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봅니다. 오늘 먹은 풀 페스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되짚어 봅니다. 시판 소스도 물론 맛있지만, 텃밭에서의 시간은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풀을 기르는 것도 지구를 돌보는 방식입니다. 풀을 통해 지구와 나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전환을 경험합니다. ‘어딘가’에 찾아가서 하는 ‘체험’이아닌 ‘학교’에서 말입니다.
커다란 소비의 공간, 학교
교육의 생태 전환에 대한 고민은 기후 위기를 체감하면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지구와 함께 살아갈 생태 시민으로 자라면 좋겠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 맞춰 생태·환경교육이 꼭 필요하다 같은 공감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교육농이나 환경교육, 기후교육을 이야기할 때 내심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들과 그 짐을 지게 될 사람들이 다른 것, 우리의 삶을 전환하지 않은 채 생태 지식, 생태 감수성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요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나부터,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만큼 일상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행하는 생태교육은 겉보기만 화려한 이벤트가 될지도 모릅니다.
진안에서 농사짓고 산 지 10년째, 더불어 ‘농’을 통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 온 지 4년째입니다. 학교에서 짓는 농사는 매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교육은 결국 내가 살아 낸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깨닫습니다.
마령초등학교에서는 3년째, 전 학년을 매주 만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며 선생님들과 긴밀한 공조(?)를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커다란 소비의 공간입니다. 삶에 필요한 배움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하고 많은 구성원이 모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먹고 싸고 생활하는, 음식, 전기, 물 등의 자원을 쓰는 규모화된 공간입니다. 그러나 정작 소비와 생산 사이에 연결된 것이 없습니다. 생태교육을 해야 하니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배추흰나비를 통해 동물의 한살이를 익히고 나아가 지구에서 함께 관계 맺고 사는 다른 생명을 만나고 싶다면, 배추를 심으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벌레 알을 주문하는 게 아닌 배추 한 포기를 심는 방식으로 학교의 환경을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소비와 생산의 연결, 학교의 생태 전환을 모색하는 중
농부의 눈으로 보는 학교의 시설들은 아까운 것 투성이였습니다. 볕 잘 드는 화단은 농사짓기 좋은 땅입니다. 화단이 있는 건물은 낮에 품은 열에너지로 밤 동안 작물들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빗물은 건물의 크기만큼 잘만 모여서는 결국 하수관으로 버려집니다. 작물들에게 빗물은 지하수보다 더 먹을거리가 많은 영양원입니다. 물 한 번 주려고 모터를 돌리거나 멀리서 호스를 끌어다 쓰는 에너지도 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공감하는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마음이 모여 마령초등학교는 학교를 전환하는 중입니다.
학교 전환을 위한 시설 도구들은 계절 학교 때 아이들도 할 수있는 만큼 직접 만들었습니다. 빗물 저장 시설은 두 곳에 만들었습니다. 교실 앞 틀밭과 개인별 텃밭 자루(그로 백, grow bag)가 놓인 건물에 하나, 노지 텃밭 곁에 하나. 버려지던 빗물에는 쓰임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물의 순환을 구체적으로 만납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던, 편리하지만 별 감흥이 없던 물 주기가 작물에 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물뿌리개를 나르는 손이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물의 일부가 학교에서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급식실에서 나오는 전처리 음식물을 퇴비화하기 위해 회전식 퇴비통을 만들었습니다. 남은 밥만으로 퇴비를 만들어 보는 중인데 습도 조절에 실패해 괴자리(구더기)가 끓었습니다. 어찌 보면 실패이지만, ‘우리가 먹고 남긴 음식은 어떻게 될까?’ 질문하면 막연히 ‘동물이 먹고 다시 우리 먹을거리가 돼요, 혹은 거름이 돼요’ 하고 쉽게 생각하던 과정이 다르게 보입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인 퇴비함은 이제 곧 급식실에서 모아 주는 전처리물로 채워질 겁니다. 아이들은 회전식 퇴비통을 돌돌 돌려 가며 음식물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만날 겁니다. 음식물은 왔던 곳인 밭으로 돌아가 작물을 기릅니다. 어느 날에는 그것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로 재탄생해 다시 나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 밖에도 유·무형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크고 작은 설계를 합니다. 텃밭에 쓰이는 도구를 아이들이 직접 관리하고 사용하기 쉽게 텃밭 창고를 설계하고 만들었습니다. 학교 식구인 반려견 ‘마령이’를 위한 집을 설계하고 짓습니다. 모종을 기르고 씨앗을 말릴 돔 형식의 온실을 들였고, 볕이 잘 드는 운동장 한쪽에는 울타리를 활용해 그 아래에 텃밭 자루를 놓고 콩과 토마토,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학교 정문은 반음지에 비를 맞지 않으니 밀과 보리를 널어 말리고 양파와 마늘, 씨앗이 될 옥수수도 널었습니다.
투입과 산출의 연결이 학교 공간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학교를 소비만 하는 공간이 아닌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주체적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더듬어 찾아 나가는 중입니다.
서로를 돌보며 자라는 학교 숲밭
마령초등학교에서는 생태 전환의 하나로 숲밭(food forest)을 만들고 있습니다. 퇴비함, 빗물 저장 시설, 닭장, 텃밭 내 쉼터, 돔 온실 설치는 학교 안팎의 소비와 생산의 연결고리입니다. 그중 가장 큰 프로젝트는 매년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일년생 텃밭을 넘어 서로를 돌보며 성장하는 숲의 관계를 닮은 ‘먹을거리 숲(숲밭)’을 만드는 일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 학교 텃밭의 핵심 가치는 흙을 살리고 식물을 통해 탄소를 다시 흙으로 저장하는 것과 직접 실천을 중심으로 생태 전환의 가치가 일상이 되는 배움을 꾸리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숲을 다년생 중심으로 설계하는 일은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과 교육의 핵심이 됩니다.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관목, 뿌리식물, 덩굴식물, 지피식물 등 서로 다른 생명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도록 설계합니다. 각각의 나무와 풀들은 살아 있는 덮개 역할, 질소를 더 풍부하게 고정하여 타감 작용을 줄여 주는 역할, 수분(가루받이)을 돕는 역할 등을 합니다. 다름으로 서로를 돌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살아가는 관계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지난 3년간 텃밭에서 만난 작물들을 통해 식물에 대한 호기심,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키웠습니다. 그 마음들로 학교 숲밭에 심을 나무를 정하고, 각각의 식물들의 관계를 설계하며 ‘나’와의 관계를 배우며 직접 설계하고 조성했습니다. 나무의 이름과 생태를 아는 학교 숲도 좋지만, 더 나아가 서로의 관계를 배우는 공간으로 숲을 만듭니다. 숲밭은 아직 자리를 잡는 중이지만, 당장에 아이들은 열매로만 만나던 식물들의 한해살이를 온전히 만납니다. 지난가을 심어 놓은 나무의 자람새를 보고 놀라워합니다. 졸업했던 학생은 학교에 와서 직접 심었던 나무를 다시 만납니다.
숲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은 뜨거운 볕에서, 그것도 3년 뒤에나 만날 열매를 위해 삽질을 해야 하냐며 불만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학교는 맨날 일만 시켜!”
“나는 내년에 졸업하는데요? 이거 심어도 못 먹잖아요!”
시기에 맞춰 심느라 쫓기고 나무를 돌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몇몇 나무는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루베리꽃이 하얗게 몽우리지는 것, 나무에서 잘 익은 블루베리를 골라 따는 것, 줄기를 보고 사과 나무임을 알아차리는 것, 어렵사리 열매를 한두 개 달기 시작하는 복숭아나무의 시간을 만나는 것 등을 통해 조각조각 가지고 있던 배움이 연결되는 경험을 나눕니다.
숲밭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매년 더해지는 기후 변화에 성한 것 없는 텃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학교 안에 만들어 낸 미기후로 숲에서 안정적으로 자라는 먹을 거리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더듬어 찾아가는 중일 뿐
‘농’의 가치로 삶을 배우는 교육농, 기후 위기 시대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배우는 것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애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경험하고 다른 생명체들과 연결될 기회가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속하려면 각자의 일상을, 학교라는 공간을 전환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마령초등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더듬어 찾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보이기 좋은 결과물로 이야기하면 더 쉽게 많은 이들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급한 결과물을 꺼내기보다 각각의 여력만큼 실험해 가는 과정, 그곳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을 나누는 것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름 방학을 난 텃밭이 휑합니다. 풀은 무성하고, 토마토와 가지는 말라 죽었습니다. 텃밭인데 먹을거리가 없다니 실망도 큽니다. 그안에서 마지막 남은 토마토의 씨앗을 받고, 새로이 배추 씨앗을 넣습니다. 숲밭의 나무들 밑에는 가을에 심을 덮개 작물 씨앗을 준비합니다.
휑한 텃밭에서 수확이 없는 아쉬움을 갖기 이전에 배울 것이 있습니다. 이런 극심한 기후 변화는 곧 우리의 일상이 될 겁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욕심낼 것은 없습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 수확에 급급한 게 아닌, 지금 그리고 다음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만납니다.
지역에 사는 농부와 진안다움을 담은 생태 교육과정에 마음을 모으는 학교 구성원들이 서투르게 그다음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씨앗을 받고, 다양하게 심고, 학교를 생태 전환의 거점으로 바꿔 나가는 일을 어렵사리 하고 있습니다. 함께 상상하고 도전해 나가는 배움이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
에세이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 마령초등학교와 함께하는 학교의 생태 전환
글
배이슬
eden_dew@naver.com
전북 진안 이든농장
이든농장은 2019년 진안교육지원청의 지원으로 진안토종생태학교 텃밭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마령초등학교는 2020년부터 학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매주 2시간씩 텃밭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의 무경운 생태 텃밭 활동에 이어 2021년부터는 ‘서로를 살리는 숲밭’을 조성하고 나아가 학교 공간 전체를 전환하기 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년생 작물 중심의 생산, 소비가 아니라 지구와 함께 살기 위한 실천으로 학교 전체의 각 요소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큰 방향은 학교와 이든농장이 협의하고 세부 내용은 각 수업에 녹여 아이들과 진행합니다. 목공 작업이 필요한 경우 계절 학기에 목공 교사와 함께 만들고, 숲밭의 경우 전체 학생이 모두 참여 가능한 시간에 함께 설계합니다. 그 외 필요한 일들은 각 학년 재량으로 텃밭 수업외 시간에 교사들과 아이들이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풀 뜯어 먹는 학교
한여름 밭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내내 가물다가 내리 비가 오기를 반복합니다. 토마토와 상추에도 농부에게도 힘든 시간입니다. 한껏 기대하고서 심은 5종의 토마토가 말라죽거나 병이 들었습니다. 토마토가 자라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의 실망이 큽니다.
“이슬! 이거 크면 파스타 해 먹어요!”
“진짜 하트 모양으로 토마토가 자라요?”
“작년에 못 먹은 진안 토마토가 많이 달리면 좋겠어요!”
저마다의 기대를 저버리고 토마토는 앙상하게 말라 죽었습니다. 학교 텃밭은 여름 방학 동안 풀에 둘러싸였습니다.
“토마토가 없어도 파스타 만들어 먹을 수 있어!”
학교에 지천으로 자란 풀이 있습니다. 환삼덩굴입니다. 온 밭을 뒤덮는 것도 모자라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팔, 다리 등을 쓸어 상처를 냅니다. 많은 농부의 미움을 받는 풀이기도 합니다. 이 환삼덩굴 잎을 따 모으고, 저절로 자란 자소엽도 따고, 여름에 떨어져 이르게 싹튼 완두 순도 땁니다. 봄여름 할 것 없이 부지런히 따 먹던 괭이밥을 또 따고, 지난가을 심어 수확해 둔 조막만 한 양파와 학교 정문에 걸려 있던 마늘도 몇 쪽 챙깁니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는 덕에 아이들은 겨울을 나는 작물을 직접 기릅니다. 온갖 풀을 넣고 페스토를 만듭니다. 초록색 소스를 곁들인 파스타를 만듭니다.
“으악, 이게 뭐야. 좀비 토한 거 같잖아요!”
“이거 무슨 아기 설사 똥 같냐!”
“먹을 거로 그러지 마라~” 하고 한소리 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말합니다.
“야, 근데 왜 냄새는 맛있게 나냐!”
풀 페스토 파스타에 비건 식사 빵을 곁들여 먹습니다. 갸우뚱 거리며 맛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맛이 있는데, 맛이 없거든요?! 근데 또 맛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맛있는데?! 더 주세요! 마늘도 맛있어!”
“으악, 이상해! 나는 안 먹을래요.”
향을 즐기는 식물, 초록색 식물, 잡초라고 말하던 식물을 음식으로 먹는 것이 낯섭니다. 익숙하게 먹던 시판 토마토 소스를 기대한 아이들이 가사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토마토 소스를 들고 옵니다.
“이슬, 이런 게 파스타죠. 이걸로 만들었어야 했어.”
“토마토 파스타 맛있지~ 근데 우리 토마토는 모두 죽었잖아?! 토마토를 더 잘 키워 보자! 근데 오늘 먹은 파스타와 요 토마토 소스가 다른 점은 뭐가 있을까?”
맛이 다르다, 색이 다르다 이야기 끝에 소스 상품 라벨의 재료와 생산지를 읽습니다.
“토마토 페이스트 미국산, 토마토 고형분 중국산.”
유리병 하나에 든 토마토 소스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봅니다. 오늘 먹은 풀 페스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되짚어 봅니다. 시판 소스도 물론 맛있지만, 텃밭에서의 시간은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풀을 기르는 것도 지구를 돌보는 방식입니다. 풀을 통해 지구와 나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전환을 경험합니다. ‘어딘가’에 찾아가서 하는 ‘체험’이아닌 ‘학교’에서 말입니다.
커다란 소비의 공간, 학교
교육의 생태 전환에 대한 고민은 기후 위기를 체감하면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지구와 함께 살아갈 생태 시민으로 자라면 좋겠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 맞춰 생태·환경교육이 꼭 필요하다 같은 공감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교육농이나 환경교육, 기후교육을 이야기할 때 내심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들과 그 짐을 지게 될 사람들이 다른 것, 우리의 삶을 전환하지 않은 채 생태 지식, 생태 감수성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요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나부터,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만큼 일상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행하는 생태교육은 겉보기만 화려한 이벤트가 될지도 모릅니다.
진안에서 농사짓고 산 지 10년째, 더불어 ‘농’을 통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 온 지 4년째입니다. 학교에서 짓는 농사는 매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교육은 결국 내가 살아 낸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깨닫습니다.
마령초등학교에서는 3년째, 전 학년을 매주 만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며 선생님들과 긴밀한 공조(?)를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커다란 소비의 공간입니다. 삶에 필요한 배움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하고 많은 구성원이 모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먹고 싸고 생활하는, 음식, 전기, 물 등의 자원을 쓰는 규모화된 공간입니다. 그러나 정작 소비와 생산 사이에 연결된 것이 없습니다. 생태교육을 해야 하니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배추흰나비를 통해 동물의 한살이를 익히고 나아가 지구에서 함께 관계 맺고 사는 다른 생명을 만나고 싶다면, 배추를 심으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벌레 알을 주문하는 게 아닌 배추 한 포기를 심는 방식으로 학교의 환경을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소비와 생산의 연결, 학교의 생태 전환을 모색하는 중
농부의 눈으로 보는 학교의 시설들은 아까운 것 투성이였습니다. 볕 잘 드는 화단은 농사짓기 좋은 땅입니다. 화단이 있는 건물은 낮에 품은 열에너지로 밤 동안 작물들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빗물은 건물의 크기만큼 잘만 모여서는 결국 하수관으로 버려집니다. 작물들에게 빗물은 지하수보다 더 먹을거리가 많은 영양원입니다. 물 한 번 주려고 모터를 돌리거나 멀리서 호스를 끌어다 쓰는 에너지도 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공감하는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마음이 모여 마령초등학교는 학교를 전환하는 중입니다.
학교 전환을 위한 시설 도구들은 계절 학교 때 아이들도 할 수있는 만큼 직접 만들었습니다. 빗물 저장 시설은 두 곳에 만들었습니다. 교실 앞 틀밭과 개인별 텃밭 자루(그로 백, grow bag)가 놓인 건물에 하나, 노지 텃밭 곁에 하나. 버려지던 빗물에는 쓰임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물의 순환을 구체적으로 만납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던, 편리하지만 별 감흥이 없던 물 주기가 작물에 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물뿌리개를 나르는 손이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물의 일부가 학교에서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급식실에서 나오는 전처리 음식물을 퇴비화하기 위해 회전식 퇴비통을 만들었습니다. 남은 밥만으로 퇴비를 만들어 보는 중인데 습도 조절에 실패해 괴자리(구더기)가 끓었습니다. 어찌 보면 실패이지만, ‘우리가 먹고 남긴 음식은 어떻게 될까?’ 질문하면 막연히 ‘동물이 먹고 다시 우리 먹을거리가 돼요, 혹은 거름이 돼요’ 하고 쉽게 생각하던 과정이 다르게 보입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인 퇴비함은 이제 곧 급식실에서 모아 주는 전처리물로 채워질 겁니다. 아이들은 회전식 퇴비통을 돌돌 돌려 가며 음식물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만날 겁니다. 음식물은 왔던 곳인 밭으로 돌아가 작물을 기릅니다. 어느 날에는 그것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로 재탄생해 다시 나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 밖에도 유·무형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크고 작은 설계를 합니다. 텃밭에 쓰이는 도구를 아이들이 직접 관리하고 사용하기 쉽게 텃밭 창고를 설계하고 만들었습니다. 학교 식구인 반려견 ‘마령이’를 위한 집을 설계하고 짓습니다. 모종을 기르고 씨앗을 말릴 돔 형식의 온실을 들였고, 볕이 잘 드는 운동장 한쪽에는 울타리를 활용해 그 아래에 텃밭 자루를 놓고 콩과 토마토,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학교 정문은 반음지에 비를 맞지 않으니 밀과 보리를 널어 말리고 양파와 마늘, 씨앗이 될 옥수수도 널었습니다.
투입과 산출의 연결이 학교 공간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학교를 소비만 하는 공간이 아닌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주체적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더듬어 찾아 나가는 중입니다.
서로를 돌보며 자라는 학교 숲밭
마령초등학교에서는 생태 전환의 하나로 숲밭(food forest)을 만들고 있습니다. 퇴비함, 빗물 저장 시설, 닭장, 텃밭 내 쉼터, 돔 온실 설치는 학교 안팎의 소비와 생산의 연결고리입니다. 그중 가장 큰 프로젝트는 매년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일년생 텃밭을 넘어 서로를 돌보며 성장하는 숲의 관계를 닮은 ‘먹을거리 숲(숲밭)’을 만드는 일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 학교 텃밭의 핵심 가치는 흙을 살리고 식물을 통해 탄소를 다시 흙으로 저장하는 것과 직접 실천을 중심으로 생태 전환의 가치가 일상이 되는 배움을 꾸리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숲을 다년생 중심으로 설계하는 일은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과 교육의 핵심이 됩니다.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관목, 뿌리식물, 덩굴식물, 지피식물 등 서로 다른 생명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도록 설계합니다. 각각의 나무와 풀들은 살아 있는 덮개 역할, 질소를 더 풍부하게 고정하여 타감 작용을 줄여 주는 역할, 수분(가루받이)을 돕는 역할 등을 합니다. 다름으로 서로를 돌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살아가는 관계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지난 3년간 텃밭에서 만난 작물들을 통해 식물에 대한 호기심,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키웠습니다. 그 마음들로 학교 숲밭에 심을 나무를 정하고, 각각의 식물들의 관계를 설계하며 ‘나’와의 관계를 배우며 직접 설계하고 조성했습니다. 나무의 이름과 생태를 아는 학교 숲도 좋지만, 더 나아가 서로의 관계를 배우는 공간으로 숲을 만듭니다. 숲밭은 아직 자리를 잡는 중이지만, 당장에 아이들은 열매로만 만나던 식물들의 한해살이를 온전히 만납니다. 지난가을 심어 놓은 나무의 자람새를 보고 놀라워합니다. 졸업했던 학생은 학교에 와서 직접 심었던 나무를 다시 만납니다.
숲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은 뜨거운 볕에서, 그것도 3년 뒤에나 만날 열매를 위해 삽질을 해야 하냐며 불만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학교는 맨날 일만 시켜!”
“나는 내년에 졸업하는데요? 이거 심어도 못 먹잖아요!”
시기에 맞춰 심느라 쫓기고 나무를 돌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몇몇 나무는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루베리꽃이 하얗게 몽우리지는 것, 나무에서 잘 익은 블루베리를 골라 따는 것, 줄기를 보고 사과 나무임을 알아차리는 것, 어렵사리 열매를 한두 개 달기 시작하는 복숭아나무의 시간을 만나는 것 등을 통해 조각조각 가지고 있던 배움이 연결되는 경험을 나눕니다.
숲밭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매년 더해지는 기후 변화에 성한 것 없는 텃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학교 안에 만들어 낸 미기후로 숲에서 안정적으로 자라는 먹을 거리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더듬어 찾아가는 중일 뿐
‘농’의 가치로 삶을 배우는 교육농, 기후 위기 시대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배우는 것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애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경험하고 다른 생명체들과 연결될 기회가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속하려면 각자의 일상을, 학교라는 공간을 전환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마령초등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더듬어 찾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보이기 좋은 결과물로 이야기하면 더 쉽게 많은 이들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급한 결과물을 꺼내기보다 각각의 여력만큼 실험해 가는 과정, 그곳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을 나누는 것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름 방학을 난 텃밭이 휑합니다. 풀은 무성하고, 토마토와 가지는 말라 죽었습니다. 텃밭인데 먹을거리가 없다니 실망도 큽니다. 그안에서 마지막 남은 토마토의 씨앗을 받고, 새로이 배추 씨앗을 넣습니다. 숲밭의 나무들 밑에는 가을에 심을 덮개 작물 씨앗을 준비합니다.
휑한 텃밭에서 수확이 없는 아쉬움을 갖기 이전에 배울 것이 있습니다. 이런 극심한 기후 변화는 곧 우리의 일상이 될 겁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욕심낼 것은 없습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 수확에 급급한 게 아닌, 지금 그리고 다음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만납니다.
지역에 사는 농부와 진안다움을 담은 생태 교육과정에 마음을 모으는 학교 구성원들이 서투르게 그다음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씨앗을 받고, 다양하게 심고, 학교를 생태 전환의 거점으로 바꿔 나가는 일을 어렵사리 하고 있습니다. 함께 상상하고 도전해 나가는 배움이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