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기획] 2년이 넘게 달려온 강원 학생인권조례, 그 결말은 (최보근)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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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열망과 무관심의 사이, 강원 학생인권조례


2년이 넘게 달려온 강원 학생인권조례, 그 결말은

- 학생과 교사가 같이한 강원 학생인권조례안의 과정



최보근
qhrms379@naver.com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2010년 10월, 경기 학생인권조례의 공포를 시작으로,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충청남도, 제주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학창 시절을 보낸 강원도에는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없다. 소위 ‘진보 교육감’이라 불리던 민병희 교육감 12년 동안에도 제정되지 않았다.

강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다. 교육청이 주도해서 두 차례 강원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 했다. 첫 시도에서는 2013년 3월, 교육청이 조례안을 강원도의회로 넘겼지만 2014년 6월 회기 종료로 폐기되었다. 이마저도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교인권조례’로 수정한 안이었다.
두 번째 시도는 2015년 4월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재추진을 위해 강원도교육청이 공청회를 열었으나 보수 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같은 해 9월 도의회에 재심의 요청을 하였으나 반대 시위로 인해 무산된 바가 있다.



세 번째 강원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


세 번째 시도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주도로 2021년 시작됐다. 201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가 주관한 ‘교육이 가능한 학교 만들기 토론회 - 학교, 우리 목소리를 담다’라는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 학생, 보호자, 교사가 모두 모여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 그 첫발이었다.
2020년 10월 17일, 원주에서 첫 협의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회의를 진행하며, 크게 두 가지, 학생인권 실태 조사와 지역 조직화 활동에 나섰다. 실태 조사는 강릉의 ‘참여하는청소년들의모임’ 주도로 두 차례 진행했다. 총 1,000여 명의 강원도 학생들이 조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가칭 ‘강원도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라는 이름으로 강릉, 원주, 춘천, 횡성 등지의 청소년단체, 교육단체를 조직화해 나갔다.

그보다 전부터 ‘학생인권조례를 위한 학생모임’이라는 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 단체는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는데, 강원도교육청 앞 1인 시위나 도의원 면담 같은 활동을 해 오고 있었다. 같은 요구 사항을 지닌 운동이 분리되는 것은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합류를 권유하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위한 학생모임’이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2월 6일, ‘강원권 찾아가는 청소년 인권 간담회’를 진행하며 강원도의 학생인권조례 추진 상황을 알렸다.

간담회가 끝난 직후, ‘학생인권조례를 위한 학생모임’이 소통해 왔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유선 강원도의원과 ‘강원도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가)’의 구성원들이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정유선 의원은 ‘이미 조례안은 나와 있으며 성소수자, 성평등에 관한 내용은 모두 제외했다’라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반발했다. 성소수자 학생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물으며 항의하자 그제서야 정유선 의원은 한발 물러났다. 다른 도의원에게 발의를 부탁하거나 주민 발의를 하면 자신이 지지는 하겠다고 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정유선 의원이 성소수자 학생에게 사과하고 그날의 자리는 일단락됐다. 그리고 결국 강원 학생인권조례는 주민 발의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기후 위기, 참정권 등을 담은 공들인 조례안


2021년 4월 14일, 그동안 조사해 온 강원도 학생인권 실태 조사의 결과를 발표하고 강원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실태 조사는 타 시·도의 학생인권조례를 참고해 차별, 폭력, 교육, 사생활 보호 등 11개 주제 총 60문항으로 된 설문 조사로 진행했고, 강원도 내의 초·중·고 재학 중인 934명의 학생이 참여했다.조사 결과 ‘체벌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은 10명 중 1명꼴로 여전히 남아 있었고, 두발 자유를 침해당한 경험은 38.8%가 답했다. ‘학생인권조례 등 학교 내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매우 그렇다’ 27.5%, ‘그렇다’ 38.2%로, 총 63.8%가 제도적 차원의 학생인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주민 발의를 하는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었으니 이를 위해 우리의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야 했다. 조례안 내용 준비는 2021년 4월부터 시작해 공청회를 연 2022년 4월 30일에 완성되었다. 조례안은 강원도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 연구 분과 구성원들이 다 같이 만들었다. 강원도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보다 더 포괄적이고 더 인권적인 내용을 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물론 조례안을 완전히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경남 학생인권조례안과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합치고, 추가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하고 발전시켜 초안을 만들었다. 당시 사회 상황을 고려해 코로나19 시대에 알맞은 학생인권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기초적인 구조는 1장 총칙, 2장 학생인권, 3장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체계로 구성되었다. 특히 학생인권의 내용 부분은 지역별 학생인권조례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고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는데, 강원 조례안에서는 「헌법」상의 기본권과 대응하는 1절 행복할 권리, 2절 자유권, 3절 평등권, 4절 교육 및 복지의 권리(사회권), 5절 자치 활동 및 참여권(참정권, 청구권)으로 나누었다.
이어서 이 초안을 연구 분과 구성원들이 조문 하나씩 들여다보며 수정안을 만들어 갔다. 이후 15개의 인권단체 및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에게 수정안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연구 분과에서 취합하였다. 예를 들어, 제25조 ‘좋은 교육을 받고 학습할 권리’ 등에 관해서는 강릉원주대 김지혜 교수(《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의 조언을 반영했다. 제22조 초상권 및 저작권, 제40조 학생회 내 인권부 설치 등의 조문에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조언을 반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차 수정 때처럼 한 조항씩 검토하는 과정을 한 차례 더 거친 후, 2022년 4월 30일 공청회를 통해 최종 보완하여 조례안을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조례안의 내용은 기존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환경권,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의 인권, 채식이나 종교적 이유로 급식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등 새로운 내용도 추가됐다.


제7조(환경권)
① 학생은 기후위기를 비롯한 환경오염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 보호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환경권 침해를 사전 예방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③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녹지공간의 확대 등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9조(학교구성원 간의 평등)
교육감 및 학교의 장은 교직원, 보호자에 대한 특권적 지위를 해소하고 학교구성원 간의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15조(정치활동의 자유)
① 학생은 법률에 따라 정당 또는 정당 부설단체에 자유롭게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은 정당 또는 정당부설단체가 주관하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지할 수 있으며, 학교는 학생의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③ 학생은 사회단체에 자유롭게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다.


제22조(초상권 및 저작권)
① 학생은 자신의 얼굴 등 신체에 대한 촬영 게시, 노출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교 홈페이지 등에 사진 및 영상을 게시할 때 학생의 동의를 충분히 얻고 게시 사실을 알려야 한다.
③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화상 수업 등 화면에서 학생의 얼굴 등 신체 대한 노출을 강요할 수 없다.
④ 학생은 글, 그림, 음악, 사진 등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⑤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저작물에 대해 교육목적 상 필요한 경우에만 학생의 동의를 얻고 사용, 복제를 할 수 있으며, 학생이 원하는 형태로 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한다.


제24조(주거권)
① 학생은 안전하고, 편안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학습할 권리를 가진다.
②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의 안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출, 취침 등 생활에서의 자유를 보장하고,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
③ 학교는 학생에게 기숙사 입주를 강요할 수 없다.
④ 학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에게 보충수업·자율학습·기숙사생 프로그램 참여를 강요해서는 아니 된다.
⑤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학교 기숙사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생을 강제 퇴거시킬 수 없다.


강원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22년 10월 18일, 주민 발의를 시작했다. 2023년 4월 23일에 주민 발의를 위한 청구인 서명 모집 기간이 마무리된다. 장장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고민과 토론을 통해 만든 조례안이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의사와 교사들의 검토,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공들여 만들었다는 의의가 크다.
지금 강원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하다. 6,667명의 강원도민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지금도 청구인 서명 수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원도민과 그 외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강원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안에는 강원도에 주소지를 가진 만 18세 이상의 도민이 참여할 수 있다. 다음의 주소로 접속해 성명, 전화번호,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공동인증서나 다른 간편 인증 수단으로 본인 인증하면 된다.
강원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안 서명 주소 nuly.do/kd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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