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특집]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이윤경)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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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_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③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 서이초 사건 이후 학부모 비판론의 한계와 대안



이윤경

justyk@daum.net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학부모가 죽였다. 너희들은 살인자다.”

서울 강남 서이초 사건에서 등장한 가장 충격적인 문구였다. 2023년 7월 18일 이후, 유아부터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살인자’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교육 기본 통계〉에 따르면 유·초·중·고 학생 수는 5,783,612명이다. 다자녀를 감안해도 학부모 수는 대략 1000만 명에 달한다. 나는 그 학부모가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법적, 사회적 측면에서 자녀가 있는 부모는 모두 ‘학부모’다. 아동, 청년, 노인처럼 생애 주기에 따라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학부모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학부모’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 해방 이후 전쟁 때도 벽돌을 날라 교실을 짓고 십시일반 교사의 봉급을 채워 주던 후원회,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가 지금의 학부모회로 이어져 오는 동안 학부모는 늘 자원봉사자, 기부자, 후원자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극성맞은’, ‘치맛바람’, ‘이기적인’, ‘진상’ 등의 부정적 의미가 결합되어, 학부모는 수십 년 동안 한국 교육의 민폐로 존재했다. 요즘엔 여기에 ‘가해자’, ‘살인자’, ‘몬스터’, ‘맘충’, ‘괴물’, ‘악마’, ‘갑질’ 등의 수식어가 더 붙었다. 왜 학부모는 이렇게 공공의 적, 학교의 ‘빌런’이 되었을까?



‘학부모 혐오’의 배경


포털 사이트에서 ‘학부모’로 검색해 보면, ‘학부모 교권 침해 민원 사례 모음’, ‘진상 부모 체크리스트’, ‘학부모 갑질 모음’ 등 학부모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들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체크리스트에 있는 진상 부모 멘트 중 “집에서는 전혀 안 그러는데”를 본 장애아동 부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집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교실에서 할 때는 뭔가 불안하거나 집과 다른 어떤 환경적 요인이 있는 것이라서 부모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 말을 하면 진상 부모가 되는 줄 몰랐다.” 집에선 안 그런다는 말이 진상 부모 멘트가 된 이유는 뭘까. 그 말을 듣는 교사가 학부모를 ‘자기 아이가 천사인 줄 알고 교실에서 어떻게 돌변하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든지, ‘아이 행동이 집에서도 감당 안 되면서 아닌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신이다.

또한, 어느 시대든 ‘아이 아빠’를 등장시키는 멘트는 빠지지 않는다. 이런 멘트는 엄마보다 아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이 여성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대화가 통할 것이며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험상으로도 엄마보다 아빠의 요구 사항이 학교에서 더 잘 받아들여진다. 여기에는 교사(특히 초등 교사)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여성 교사를 향한 남성 보호자의 항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성별에 따른 위계가 학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요구나 의견이 쉽사리 폄하되는 배경에는 학부모는 비전문가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학부모는 직업이 무엇이든 교사보다 교육에 대해 비전문가일 거라고 치부된다. 하지만 학부모 중엔 교사, 교수, 교육 공무원도 있고, 연구소, 사교육 기업, 학원 등에 종사하는 사람과 비정규직 강사 등 교육에 관련된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50만 명 교원 수보다 많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학부모 혐오에는 불신과 여성 혐오, 그리고 일종의 선민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교사와 학부모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차별·혐오 문제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아동, 청소년, 학생, 장애인, 노인 혐오처럼. 



학부모 연구의 현주소


학부모는 단순히 출생 연도로 구분되어 묶일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 지역적 특성, 사회 문화적 성장 배경, 개인적 성향, 의식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인 개별적 존재다. 이 불특정 다수의 학부모를 ‘1980년대생 학부모’ 하는 식으로 특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초등학교 학부모(조부모가 아닌) 중엔 1960년대생도 있고, 반면 고등학교 학부모 중에 1980년대생도 있다.

2020년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발표한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 연구 보고서(김기수, 오재길, 변영임)는 최근의 학부모 악성 민원 사태를 분석하는 자료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보고서는 1980년대생 학부모가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 정보 수집과 소통에 능숙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한편 상호 협력 욕구도 강하다고 말한다. 이 세대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에 자녀의 학습 지도보다 인성, 공동체 생활, 창의력 신장을 기대하고, 교사와 수시로 소통하길 원하고,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학교 참여 활동은 꺼린다고 설명한다.

초등학교에 학교폭력이나 학교 참여를 주제로 강의를 나가 보면, 이 연구 결과에 부합하는 학부모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부모도 많다. 1980년대생이지만 디지털 문화에 관심이 없는 학부모도 있고, 자녀의 인성보다 성적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도 있다. 학교 참여 활동에 관심이 많지만 코로나19 공백으로 인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작은 학교인지 거대 학교인지에 따라 다르고, 주택인지 아파트인지 주거 형태에 따라 다르고, 수도권인지 비수도권인지에 따라, 고교 평준화 여부에 따라서도 다르다. 같은 학교라도 학년에 따라, 인권 감수성과 성향에 따라 학교와 교사에 대한 긍정·부정 인식 차이가 극과 극이다. 하지만 이런 학부모의 특성을 세분화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학교마다 “우리 학교 학부모들은 대체로 이런 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교장이 얼마나 될까.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공백기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수업이 진행되었고 교사들의 수업은 가정에서 지켜보는 학부모들에게 그대로 공개되었다. EBS 강의나 자료 링크를 걸어 놓은 온라인 수업을 보며 많은 학부모가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 실망했다. 그 시기에는 교사와의 상담은 물론 학부모들과의 소통도 단절돼 준비물과 과제 등 간단한 질문도 물어볼 곳이 없어졌다. 법적으로 보장된 교육 참여도 모두 중단되어 수십 년간 축적되었던 학부모회 활동의 맥이 끊겼고 인수인계를 해 줄 선배 학부모들도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며 사라졌다.

이렇게 코로나19를 겪으며 학교교육과 교사, 학교 참여 활동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재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 인식 조사’ 같은 것도 한 적이 없다. 국민 전체의 교육 인식 조사가 아닌 현재 재학생 학부모만 대상으로 하는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사교육비가 역대급으로 증가한 데는 경쟁 교육 심화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공교육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 정책은 존재하는가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예전에 사교육 업체 홍보팀에서 근무할 때 광고 회사들이 작성해 온 광고 기획서를 수도 없이 검토했었다. 광고,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비자 분석(타깃 분석)인데 유아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 회사였기 때문에 주 소비자는 ‘학부모’였다. 자녀의 연령별, 학년별로 학부모를 구분하고, 거주지, 소득, 학력, 직업 등 여러 요인들로 세분화해서 광고 전략에 따라 메인 타깃과 서브 타깃을 정한다. 타깃이 정해지면 그들의 소비 패턴, 정보 습득 채널, 매체 이용 현황 등을 분석해 이들을 설득할 광고를 만들고 집행한다.

그런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어떤가? 교육부에는 교원정책과는 있지만 학부모를 담당하는 부서는커녕 업무 담당자도 찾기 힘들다. 교육청에는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과가 나뉘어 있지만 학부모는 별도 부서를 두고 1개 팀에서 유·초·중·고·특수학교 학부모를 한꺼번에 담당한다. 자문 기구인 학부모 정책 자문위원회도 학교 급별 구분 없이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논의한다. 학부모를 교육의 한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유아, 초등, 중등과에 각각 학부모 담당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 정책 입안부터 학부모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교육 활동을 침해한다는 학부모에 대해서도 ‘악성 민원인’으로 통칭할 게 아니라 급별, 지역별, 분야별로 어떤 문제들을 제기했는지 분석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한국 교육사에서 학부모가 문제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전체 학부모 중 몇%의 학부모가 교육 활동을 침해하고 있는지, 그들이 제기하는 내용이 어떤 것들인지를 제대로 알아야만, 교육이 필요한 건지, 안내와 지원이 필요한 건지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학부모가 문제니 학부모를 배제하면 된다는 식의 9월 1일 자 교육부 고시는 교사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가시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것일 뿐 실효성이 없다. 학교가 존재하는 한 1000만 명의 학부모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급 모임, 학년 모임 등 학부모 간 소통 구조를 확보하고, 공적 기구인 학부모회를 학부모의 의견 수렴 채널로 활성화하고, 학교-학부모 간 간담회를 정례화해서 ‘민원’이 아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이러한 시스템이 조성돼 왔고, 3주체 간 소통과 협력 구조가 정착된 모범 사례들도 많았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갈라치기를 조장하며 학부모를 배척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교육 당국이 할 일은 민원실 운영이 아니라, 학교폭력, 교권 침해 등의 사안에 대해 교육을 통해 학부모의 인식을 개선하고 학부모를 사적 민원인이 아닌 공적 교육 주체로 견인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국민 주권자의 1/5이 학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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