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_ ‘특수’라는 벽장을 넘어 교육 보편의 담론으로
통합교육,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
-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를 위한 중등 통합교육
이수현
callmehotdog@naver.com
경기 김포 푸른솔중 교사,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저자
1년만 하려던 육아 휴직 기간이 7년까지 이어졌다. 실은 복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장애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모두 공감할 텐데, 진단을 받고 난 후에는 치료에만 매달렸다. 수백만 원짜리 조기 교실도 모자라 유명한 치료실엔 모두 대기를 걸어 두고 쫓아다녔다. 치료 시간표를 촘촘히 짜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하루를 다 썼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조기 집중 치료’ 이론 때문이었다. 주당 20~40시간을 집중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만 믿고 치료에 목숨을 걸었다. 유아기에 치료에 집중하면 자폐 증상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부모가 치료를 주저하겠는가? 2년 넘게 치료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지쳤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일상을 살지 못했고 체력의 한계도 느꼈다. 무엇보다 아이의 변화가 미미했다. 집중 치료를 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장애는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님을. 마치 치료가 되는 것처럼 치료를 권하던 의사와 치료사들, 그들 모두가 단체로 나를 속인 기분이었다.
그러다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니 슬슬 학교 걱정도 되었다. 내가 교사이다 보니 아이를 학교에 보냈을 때의 상황이 뻔히 보였다. 최소한 의사 표현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수학교에 상담도 가 보았고, 여러 대안학교도 방문해 보았다. 나는 그 어느 곳도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특수학교는 가고 싶으면 최소한 장애 등급 1급 진단은 받아야 한다고 했고, 대화는 되지 않을지라도 음성 언어로 간주되는 말을 내뱉는 내 아이에게 병원에서는 1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특수학교는 장애 등급 2급인 내 아이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다고 했고, 내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안학교는 없었다.
대안학교 설립
고민 끝에 무모한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직접 학교를 만든 것이다. 어차피 매일 치료실을 다니고 있으니 그 비용을 학교에 투자하자 싶었다. 일반 학교에 가면 내 아이에 맞는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학교를 만들어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과 함께 학교를 만들었고, 각 아이에 맞는 교육을 시작했다. 말이 대안학교지 여러 치료실을 한곳에 모아 둔 것과 다름없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일대일 교육을 받기도 했고, 또 함께 모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는 학교 업무를 총괄하며 교사로 일했다. 복직을 하지 않고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학교를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벽에 부딪혔다. 전문 인력 수급 문제, 학부모 간 의견 조율의 어려움, 학생들의 어려운 행동 중재, 재정 문제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체계를 갖춘 교육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고자 대안학교를 설립한 근본 동기와 장애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교육에서 간과한 점
첫째, 나는 당사자인 아이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아이가 언어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니 의사를 물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표현한다 하더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눈과 판단력이 없으니 내가 아이의 세계를 디자인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만나고 싶어 했다. 길을 가다가 또래만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따라가고, 지하철에서도 또래를 보면 따라 내리려 했다. 놀이터에서도 함께 놀이할 사회적 기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 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이가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아이에게도 사회적 욕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치료 전문가들은 언어와 인지가 발달을 해야만 사회성이 올라오게 되는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비장애인 아이의 양육은 다르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에 범하게 된 오류였다. 사회적 욕구는 언어나 인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차별적 발상으로 아이를 사회로부터 분리시켰던 것이다.
둘째, 아이가 성장해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아이의 기능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료적 관점으로 장애를 바라봤던 것이다. 장애 극복 신화가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즉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은 아이의 장애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아이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켜야 사회에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이를 훈련시키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던 것이다. 스무 살까지 아이의 기능을 올리면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장애를 보는 사회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고, 사회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장애인이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셋째, 학교는 학습을 위해 가는 곳이라 여겼다. 학습할 능력이 없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시간만 낭비하고 온다고 생각했다. 학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내가 교사로서 학생들을 보는 관점도 같았다. 평균의 학생에게 목표를 두고 수업을 했고, 중간 정도의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 성공한 수업이라 믿었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학생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여겼다. 학습 결손의 누적은 학습자 본인이나 부모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학교나 교사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수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의 기준에 맞추어 학습자가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내 아이는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불안이 강했다.
이런 비장애인 중심이었던 나의 세계관이 두 아이를 양육하며, 또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허물어졌다. 장애는 극복할 수 없고, 극복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때문이지, 내 아이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변화의 대상은 장애가 아니라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라는 이유로, 안전과 보호라는 명목하에 아이를 격리해서 훈련시키려 했던 나의 잘못을 깨닫고 과감히 대안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공교육으로 회귀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통합교육의 시작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불안함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좋은 교사를 만났다. 통합 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나와 이야기 끝에 매일 아이의 수준에 맞는 놀잇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퍼즐, 구슬 꿰기, 컵 쌓기, 간단한 보드게임을 매일 학교에 보냈고, 선생님은 아이들과 놀이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내게 보내 주었다. 사진 속의 아이는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선생님은 당시 말을 잘 하지 못했던 아이를 발표 수업에도 참여시켰고, 체육 대회 때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 뛸 수 없는 아이에게 친구와 함께 뛸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그대로 학급 친구들에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아줌마, 얘 이상해요. 왜 말은 못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요? 무서워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줌마, 연우가 말이 많이 늘었어요. 오늘은 이런 말도 했어요”라고 얘기해 주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나는 당시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는 상동행동이 있던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학습에 방해가 될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내게 내민 수첩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 일도 있었다. “연우랑 같이 노래 부르고 싶어서 연우가 부르는 노래를 다 받아 적었어요. 같이 불러 주니까 연우가 웃었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교실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엿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동네 공원만 가 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연우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이나 차별, 편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순수한 호감만이 가득했다.
아이의 통합교육을 1년간 지켜본 후, 나는 통합교육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아이들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동안 분리 교육이 장애혐오와 두려움을 조장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내 아이가 교육 현장에 ‘존재’함으로써 시작된 수많은 ‘고민’을 보며 학교에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교사도, 학생들도, 학교도, 교육청도 나아가 이 사회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환경에 내 아이를 밀어 넣는 두려움과 아픔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내 아이의 존재로 인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일상 속에서 고민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학교는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후 통합교육
아이의 통합교육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복직을 생각해 보았다. 통합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나니 내가 직접 하고 싶어졌다. 내 아이들의 장애는 바뀌지 않지만, 이 사회는 얼마든지 바꾸어 갈 수 있으리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바로 지금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만들어 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주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결정했다.
복직을 한 후에는 매년 통합 반을 맡았다. 담임 교사로서 통합학급 운영뿐 아니라, 교과협의회를 거쳐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는 반은 내가 수업도 맡았다. 복직 첫해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꼭 내 아이들 같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한 아이를 보면 학교에 오기까지의 힘든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받았을 수많은 치료 과정과 그 안에서 흘렸을 부모님의 눈물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수업 장면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 와서 아무것도 안(못) 하고 그림처럼 앉아만 있다 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행동이 조금이라도 과하다고 판단될 경우 제지를 당하거나 특수반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나는 수업에서 통합교육의 실험을 시작했다. 일단 학생들의 수준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수 수정을 했다. 수준은 다양했다. 조금 조정을 해 주면 수업에 참여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목표의 수정이 필요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며 어려운 영어를 문장으로 구사하거나 이해해야 할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 속의 영어는 얼마든지 가르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속 영어와 일상생활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학습 결손 누적이 심해 일반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수정된 학습지를 내밀었다. 처음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이내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여기고 좋아했다.
수많은 장애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다소 심한 발달장애를 가진 한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진혁이(가명)는 처음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잠을 자거나 실없이 웃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수업 중간에 갑자기 일어나 다른 친구의 등을 때리는 어려운 행동도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피해를 호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맞았다고 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일단 어려운 행동을 빠르게 중재하려면 앞자리에 앉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의 동의를 구해서 영어 시간에 앞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리고 영어 교과의 교육과정과 교과서 수준을 분석했다. 요즘은 영어과 성취 기준과 목표가 일상생활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서 좋았다. 이 중 진혁이가 달성 가능한 성취 기준이 있는지와 조정 가능한 정도를 확인했다.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특수 교사의 도움도 받았다. 사전 준비 단계에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목표와 학습 내용을 수정했다. 예를 들면 학습 목표가 ‘영어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일 경우에 ‘메뉴판에서 원하는 음식을 가리키며 주문할 수 있다’ 또는 ‘원하는 음식을 영어로 말할 수 있다’로 수정했다. 다른 학생들이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대화를 하는 활동을 할 경우, 진혁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단어로 말하기 연습을 하거나 음식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활동을 했다. 진혁이의 경우에는 문장 수준은 어려웠지만 단어 수준의 발화는 가능해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를 위주로 학습할 내용을 미리 수정하고 계획했다. 진혁이의 수업 중 참여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도 썼다. 예를 들면 학습지를 배부하는 역할 부여하기, 진혁이가 배운 단어가 나왔을 때 발표할 수 있는 기회 제공하기, ‘Yes or No’로 대답하는 간단한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등이다.
이렇게 몇 달을 하고 나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에 친구를 때렸던 문제 행동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수업 태도도 아주 좋아졌다. 그때 나는 진혁이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업이 지루하고 힘들어서 나름의 표현을 한 것이었다.
쓰기 활동을 하는 어느 날이었다. 작문을 한 다음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진혁이에게도 물어봤다.
“진혁아, 진혁이는 뭘 좋아하니? 좋아하는 걸 써 보자.”
진혁이는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반 친구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진혁이 자동차 좋아해요. 자동차 그리라고 해 보세요.”
나는 그때까지 진혁이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걸 몰랐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진혁이가 멋있는 자동차를 그려 주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진혁이에게 그림을 들고 나와서 친구들처럼 발표해 보라고 시켰는데, 처음엔 거부하더니 친구가 같이 나와 주겠다고 하니까 쭈뼛거리면서 앞에 나와서 발표도 했다. 물론 영어로는 하지 못했지만 한국말로 제법 자세하게 자신의 언어로 자동차를 설명했다.
나는 그날 봤던 반 아이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학생들이 모두 진혁이를 엄마의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발표가 끝나자 박수도 힘껏 쳐 주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의 모습에서 통합 학급의 의미를 보았다. 이 학생들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능력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한 학기를 수업하고 나니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서로 하지 않겠다던 조별 활동도 진혁이와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고, 진혁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서 나에게 알려 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급 내 자연적 지원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의 목표이자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통합교육의 의미-왜 통합교육인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학교, 집, 사회 어디에서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요.”
어느 드라마에서 한 배우가 했던 대사에 공감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통합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나도 사회에 나와 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두렵기도 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렇다면 요즘의 학생들은 어떨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70% 이상이 통합 학급에서 교육받고 있는 지금은 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배우고 있을까?
장애가 있는 학생이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만 있는 모습을 보고 비장애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장애가 있으면 학습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교사가 장애 학생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특수 학급으로 쫓아내 버리는 모습을 비장애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통합 학급이라는 명목하에 교실에서 물리적 통합만 시켰다가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버젓이 보여 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수업과 학급 활동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장애가 있는 학생도 차별 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규칙을 적용하고 일상생활 기술을 익히도록 지도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 학생들의 반발이 크기도 했다. 도움을 받거나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나의 지도를 불편해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는 특수 교사와 학부모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가정과 특수 학급, 통합 학급에서 일관성 있는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확실히 학생들은 교사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배운다. 누군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학생들이 항상 나를 보고 있음을 걱정하라’고 했다. 나는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그 말의 뜻을 자주 실감했다.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돕기만 하거나, 피하거나, 쩔쩔맸던 학생들이 담임 교사인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도리어 나를 가르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장애가 있는 학생의 장점을 찾아 알려 주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치는 순간이 많았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넓어지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학급에 있는 ‘특대자(특수교육대상자)’ 친구와는 전혀 다른 장애가 있는 친구도 자연스럽게 대할 뿐 아니라, 서로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모습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다양성의 극에 있는 친구가 존재함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통합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시기에 다양성과 차이를 경험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다져 가도록 돕는 교육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교육이 물리적 통합에 머무르지 않고 하루빨리 나아가 모든 학생들과 교사가 통합교육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경험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통합교육을 하고, 나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여러 교사들과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줄 세우기 식 평가가 이루어지고 성적으로 학생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경직된 환경에서는 통합교육이 실현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교육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인력 지원, 교사 연수, 교육과정적 지원, 시설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제도의 개선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될 때 이루어진다. 학교와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통합교육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전반적 다양성 존중 문화가 형성될 때, 물리적 통합을 벗어나 진정한 교육적,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부터 통합이 잘 이루어져 우리 사회가 한층 더 건강하고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
기획 _ ‘특수’라는 벽장을 넘어 교육 보편의 담론으로
통합교육,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
-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를 위한 중등 통합교육
이수현
callmehotdog@naver.com
경기 김포 푸른솔중 교사,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저자
1년만 하려던 육아 휴직 기간이 7년까지 이어졌다. 실은 복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장애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모두 공감할 텐데, 진단을 받고 난 후에는 치료에만 매달렸다. 수백만 원짜리 조기 교실도 모자라 유명한 치료실엔 모두 대기를 걸어 두고 쫓아다녔다. 치료 시간표를 촘촘히 짜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하루를 다 썼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조기 집중 치료’ 이론 때문이었다. 주당 20~40시간을 집중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만 믿고 치료에 목숨을 걸었다. 유아기에 치료에 집중하면 자폐 증상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부모가 치료를 주저하겠는가? 2년 넘게 치료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지쳤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일상을 살지 못했고 체력의 한계도 느꼈다. 무엇보다 아이의 변화가 미미했다. 집중 치료를 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장애는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님을. 마치 치료가 되는 것처럼 치료를 권하던 의사와 치료사들, 그들 모두가 단체로 나를 속인 기분이었다.
그러다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니 슬슬 학교 걱정도 되었다. 내가 교사이다 보니 아이를 학교에 보냈을 때의 상황이 뻔히 보였다. 최소한 의사 표현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수학교에 상담도 가 보았고, 여러 대안학교도 방문해 보았다. 나는 그 어느 곳도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특수학교는 가고 싶으면 최소한 장애 등급 1급 진단은 받아야 한다고 했고, 대화는 되지 않을지라도 음성 언어로 간주되는 말을 내뱉는 내 아이에게 병원에서는 1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특수학교는 장애 등급 2급인 내 아이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다고 했고, 내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안학교는 없었다.
대안학교 설립
고민 끝에 무모한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직접 학교를 만든 것이다. 어차피 매일 치료실을 다니고 있으니 그 비용을 학교에 투자하자 싶었다. 일반 학교에 가면 내 아이에 맞는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학교를 만들어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과 함께 학교를 만들었고, 각 아이에 맞는 교육을 시작했다. 말이 대안학교지 여러 치료실을 한곳에 모아 둔 것과 다름없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일대일 교육을 받기도 했고, 또 함께 모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는 학교 업무를 총괄하며 교사로 일했다. 복직을 하지 않고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학교를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벽에 부딪혔다. 전문 인력 수급 문제, 학부모 간 의견 조율의 어려움, 학생들의 어려운 행동 중재, 재정 문제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체계를 갖춘 교육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고자 대안학교를 설립한 근본 동기와 장애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교육에서 간과한 점
첫째, 나는 당사자인 아이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아이가 언어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니 의사를 물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표현한다 하더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눈과 판단력이 없으니 내가 아이의 세계를 디자인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만나고 싶어 했다. 길을 가다가 또래만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따라가고, 지하철에서도 또래를 보면 따라 내리려 했다. 놀이터에서도 함께 놀이할 사회적 기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 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이가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아이에게도 사회적 욕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치료 전문가들은 언어와 인지가 발달을 해야만 사회성이 올라오게 되는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비장애인 아이의 양육은 다르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에 범하게 된 오류였다. 사회적 욕구는 언어나 인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차별적 발상으로 아이를 사회로부터 분리시켰던 것이다.
둘째, 아이가 성장해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아이의 기능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료적 관점으로 장애를 바라봤던 것이다. 장애 극복 신화가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즉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은 아이의 장애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아이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켜야 사회에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이를 훈련시키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던 것이다. 스무 살까지 아이의 기능을 올리면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장애를 보는 사회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고, 사회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장애인이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셋째, 학교는 학습을 위해 가는 곳이라 여겼다. 학습할 능력이 없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시간만 낭비하고 온다고 생각했다. 학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내가 교사로서 학생들을 보는 관점도 같았다. 평균의 학생에게 목표를 두고 수업을 했고, 중간 정도의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 성공한 수업이라 믿었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학생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여겼다. 학습 결손의 누적은 학습자 본인이나 부모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학교나 교사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수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의 기준에 맞추어 학습자가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내 아이는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불안이 강했다.
이런 비장애인 중심이었던 나의 세계관이 두 아이를 양육하며, 또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허물어졌다. 장애는 극복할 수 없고, 극복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때문이지, 내 아이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변화의 대상은 장애가 아니라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라는 이유로, 안전과 보호라는 명목하에 아이를 격리해서 훈련시키려 했던 나의 잘못을 깨닫고 과감히 대안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공교육으로 회귀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통합교육의 시작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불안함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좋은 교사를 만났다. 통합 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나와 이야기 끝에 매일 아이의 수준에 맞는 놀잇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퍼즐, 구슬 꿰기, 컵 쌓기, 간단한 보드게임을 매일 학교에 보냈고, 선생님은 아이들과 놀이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내게 보내 주었다. 사진 속의 아이는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선생님은 당시 말을 잘 하지 못했던 아이를 발표 수업에도 참여시켰고, 체육 대회 때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 뛸 수 없는 아이에게 친구와 함께 뛸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그대로 학급 친구들에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아줌마, 얘 이상해요. 왜 말은 못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요? 무서워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줌마, 연우가 말이 많이 늘었어요. 오늘은 이런 말도 했어요”라고 얘기해 주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나는 당시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는 상동행동이 있던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학습에 방해가 될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내게 내민 수첩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 일도 있었다. “연우랑 같이 노래 부르고 싶어서 연우가 부르는 노래를 다 받아 적었어요. 같이 불러 주니까 연우가 웃었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교실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엿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동네 공원만 가 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연우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이나 차별, 편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순수한 호감만이 가득했다.
아이의 통합교육을 1년간 지켜본 후, 나는 통합교육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아이들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동안 분리 교육이 장애혐오와 두려움을 조장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내 아이가 교육 현장에 ‘존재’함으로써 시작된 수많은 ‘고민’을 보며 학교에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교사도, 학생들도, 학교도, 교육청도 나아가 이 사회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환경에 내 아이를 밀어 넣는 두려움과 아픔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내 아이의 존재로 인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일상 속에서 고민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학교는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후 통합교육
아이의 통합교육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복직을 생각해 보았다. 통합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나니 내가 직접 하고 싶어졌다. 내 아이들의 장애는 바뀌지 않지만, 이 사회는 얼마든지 바꾸어 갈 수 있으리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바로 지금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만들어 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주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결정했다.
복직을 한 후에는 매년 통합 반을 맡았다. 담임 교사로서 통합학급 운영뿐 아니라, 교과협의회를 거쳐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는 반은 내가 수업도 맡았다. 복직 첫해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꼭 내 아이들 같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한 아이를 보면 학교에 오기까지의 힘든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받았을 수많은 치료 과정과 그 안에서 흘렸을 부모님의 눈물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수업 장면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 와서 아무것도 안(못) 하고 그림처럼 앉아만 있다 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행동이 조금이라도 과하다고 판단될 경우 제지를 당하거나 특수반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나는 수업에서 통합교육의 실험을 시작했다. 일단 학생들의 수준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수 수정을 했다. 수준은 다양했다. 조금 조정을 해 주면 수업에 참여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목표의 수정이 필요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며 어려운 영어를 문장으로 구사하거나 이해해야 할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 속의 영어는 얼마든지 가르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속 영어와 일상생활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학습 결손 누적이 심해 일반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수정된 학습지를 내밀었다. 처음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이내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여기고 좋아했다.
수많은 장애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다소 심한 발달장애를 가진 한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진혁이(가명)는 처음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잠을 자거나 실없이 웃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수업 중간에 갑자기 일어나 다른 친구의 등을 때리는 어려운 행동도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피해를 호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맞았다고 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일단 어려운 행동을 빠르게 중재하려면 앞자리에 앉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의 동의를 구해서 영어 시간에 앞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리고 영어 교과의 교육과정과 교과서 수준을 분석했다. 요즘은 영어과 성취 기준과 목표가 일상생활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서 좋았다. 이 중 진혁이가 달성 가능한 성취 기준이 있는지와 조정 가능한 정도를 확인했다.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특수 교사의 도움도 받았다. 사전 준비 단계에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목표와 학습 내용을 수정했다. 예를 들면 학습 목표가 ‘영어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일 경우에 ‘메뉴판에서 원하는 음식을 가리키며 주문할 수 있다’ 또는 ‘원하는 음식을 영어로 말할 수 있다’로 수정했다. 다른 학생들이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대화를 하는 활동을 할 경우, 진혁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단어로 말하기 연습을 하거나 음식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활동을 했다. 진혁이의 경우에는 문장 수준은 어려웠지만 단어 수준의 발화는 가능해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를 위주로 학습할 내용을 미리 수정하고 계획했다. 진혁이의 수업 중 참여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도 썼다. 예를 들면 학습지를 배부하는 역할 부여하기, 진혁이가 배운 단어가 나왔을 때 발표할 수 있는 기회 제공하기, ‘Yes or No’로 대답하는 간단한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등이다.
이렇게 몇 달을 하고 나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에 친구를 때렸던 문제 행동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수업 태도도 아주 좋아졌다. 그때 나는 진혁이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업이 지루하고 힘들어서 나름의 표현을 한 것이었다.
쓰기 활동을 하는 어느 날이었다. 작문을 한 다음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진혁이에게도 물어봤다.
“진혁아, 진혁이는 뭘 좋아하니? 좋아하는 걸 써 보자.”
진혁이는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반 친구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진혁이 자동차 좋아해요. 자동차 그리라고 해 보세요.”
나는 그때까지 진혁이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걸 몰랐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진혁이가 멋있는 자동차를 그려 주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진혁이에게 그림을 들고 나와서 친구들처럼 발표해 보라고 시켰는데, 처음엔 거부하더니 친구가 같이 나와 주겠다고 하니까 쭈뼛거리면서 앞에 나와서 발표도 했다. 물론 영어로는 하지 못했지만 한국말로 제법 자세하게 자신의 언어로 자동차를 설명했다.
나는 그날 봤던 반 아이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학생들이 모두 진혁이를 엄마의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발표가 끝나자 박수도 힘껏 쳐 주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의 모습에서 통합 학급의 의미를 보았다. 이 학생들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능력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한 학기를 수업하고 나니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서로 하지 않겠다던 조별 활동도 진혁이와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고, 진혁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서 나에게 알려 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급 내 자연적 지원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의 목표이자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통합교육의 의미-왜 통합교육인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학교, 집, 사회 어디에서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요.”
어느 드라마에서 한 배우가 했던 대사에 공감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통합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나도 사회에 나와 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두렵기도 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렇다면 요즘의 학생들은 어떨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70% 이상이 통합 학급에서 교육받고 있는 지금은 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배우고 있을까?
장애가 있는 학생이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만 있는 모습을 보고 비장애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장애가 있으면 학습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교사가 장애 학생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특수 학급으로 쫓아내 버리는 모습을 비장애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통합 학급이라는 명목하에 교실에서 물리적 통합만 시켰다가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버젓이 보여 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수업과 학급 활동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장애가 있는 학생도 차별 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규칙을 적용하고 일상생활 기술을 익히도록 지도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 학생들의 반발이 크기도 했다. 도움을 받거나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나의 지도를 불편해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는 특수 교사와 학부모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가정과 특수 학급, 통합 학급에서 일관성 있는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확실히 학생들은 교사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배운다. 누군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학생들이 항상 나를 보고 있음을 걱정하라’고 했다. 나는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그 말의 뜻을 자주 실감했다.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돕기만 하거나, 피하거나, 쩔쩔맸던 학생들이 담임 교사인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도리어 나를 가르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장애가 있는 학생의 장점을 찾아 알려 주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치는 순간이 많았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넓어지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학급에 있는 ‘특대자(특수교육대상자)’ 친구와는 전혀 다른 장애가 있는 친구도 자연스럽게 대할 뿐 아니라, 서로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모습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다양성의 극에 있는 친구가 존재함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통합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시기에 다양성과 차이를 경험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다져 가도록 돕는 교육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교육이 물리적 통합에 머무르지 않고 하루빨리 나아가 모든 학생들과 교사가 통합교육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경험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통합교육을 하고, 나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여러 교사들과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줄 세우기 식 평가가 이루어지고 성적으로 학생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경직된 환경에서는 통합교육이 실현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교육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인력 지원, 교사 연수, 교육과정적 지원, 시설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제도의 개선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될 때 이루어진다. 학교와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통합교육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전반적 다양성 존중 문화가 형성될 때, 물리적 통합을 벗어나 진정한 교육적,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부터 통합이 잘 이루어져 우리 사회가 한층 더 건강하고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