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특집]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 치리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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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치리  kellykykim99@gmail.com

청소년운동을 오래 했다. 

STL DSA(세인트루이스 민주적 사회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다시 활동할 곳을 찾아 헤매는 중.




올해 초까지 미국에서 지내며 운동을 했다. 나는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세인트루이스 지부에 적을 두고 활동을 하고 있었다. 2024년 3월, 당시 중앙 DSA는 지속되는 재정난을 이유로 13명가량의 고용된 활동가들을 구조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는 다른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여러 지역 지부와 멤버 개인들이 모여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연서명을 진행했고, 세인트루이스 지부도 그에 대해 지부 차원에서 연명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되어 있었다. 회의는 ‘토론’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반대 및 찬성 의견에 각각 시간을 할당하고, 모든 반대 의견과 찬성 의견이 이야기되면 몇 분간 의견을 모은 뒤 투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실제 회의가 생각보다 ‘헷갈리는’ 방식으로, 개인이 각자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지, 사전에 안내된 방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수년간 미국에서 지내며 영어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이 모든 것을 이해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기필코 손을 들었던 것은, 그래도 말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어느 조직이, 그것도 노동자-좌파의 편을 자칭하는 집단이 돈 없다고 구조 조정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미국이라도.


나는 그 상황이 진작부터 무서웠다. 나는 지부장을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이 내가 ‘잘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종종 답답해하고, 심지어는 내가 말하는 것을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랑 이야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미묘하게 짧고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그러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는 어렵다. 나는 나의 어정쩡한 유창함이 그들을 짜증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부장은 내가 손을 들자마자 아주 빠르게 무언가를 묻기 시작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모두가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입을 떼는 것이 어려웠고, 지부장은 짜증을 내면서 ‘토론’, ‘찬성’, ‘반대’와 같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모두의 앞에 나와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라며 윽박질렀다. 나는 그쯤 가서는 지나치게 긴장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룰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차례가 아니라면 기다리겠다”라고 말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내가 앞에 있는 마이크에 나와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나는 모두의 앞에 나와 내가 언어와 룰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해야만 했다. 나는 그 이후 도망치듯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지부 차원에서 연명해야 한다는 안건은 무사히 통과되었다. 그러나 그해 5월, 5명의 활동가가 중앙 조직과의 협상 이후 ‘자발적으로’ 직을 내려놓았다. 나는 내가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 이외에 지부원 전원이 참여하는 모임에는 단 한 번도 다시 나갈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과받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부장은 여전히 자신이 한 것은 인종 차별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싸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조직에서 사라지기를 택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혹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정치 체제가 아니라 일상을 구성하는 방식으로도 기능한다는 점 때문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둘 모두에서 기능해야 한다. 특히 일상을 구성하는 작은 형태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정치 체제로서 기능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민주주의교육을 이야기할 때도 일상적인 부분에서부터 이야기하는 이유다.


지난 11월 15일, 투명가방끈과 다다다협동조합의 후원 행사가 열렸다. 활동가 셋과 그들의 친구(?)인 나까지 모여 4명이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했는데, 그중 투명가방끈 난다 활동가가 던진 아주 인상적인 농담이 하나 있었다.


“고학력자들은 좀 티가 나요. 행사 토론회 가서 보면 질문을 하는데 뭔가 어려운 개념 이야기하고 막 복잡한 문장으로 말을 해. 그래서 결국 질문이 뭐죠?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어. 알고 보면 대학원생이래요.”


나는 이 농담이 아주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자리에 있어도, 심지어는 같은 언어를 쓴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지부 모임에서 지부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어떤 때에는 모국어가 같은 이들이 질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더 보편적이고, 더 자세한 언어를 아는 자들이 민주주의 안에서 힘을 갖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다수결’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믿는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늘 그건 반쯤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수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정을 할 수 있는 판이나 장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형식을 갖추든, 갖추지 않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판’에 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의와, 그 ‘판’에 어떤 문제를 상정하는지는 각기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정하는 자들은 보통 자기를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곳에 있다. 다수는 언제나 이해받고, 그 누구에게도 자기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수가 아닌 자들의 말은 애초부터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그들에게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귀 기울일 때


나는 어려운 언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어떤 단어, 맥락, 담론 등은 일정 수준이 지나면 ‘쉽게’ 설명할 수 없어진다. 어떤 것들은 이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지식은 그를 토대로 깊어져 간다. 모두가 ‘합의된 언어’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것은 항상 일정한 범위를 가진 곳에서만 가능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언제나 정밀함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큰 틀로 돌아와 보자. 민주주의는 상호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원칙일 것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같은 말을 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이해한다고 혹은 나의 말이 이해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해는 비슷한 경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나의 DSA에서의 경험과 같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영어를 기본 언어로 하는 장에서 튕겨져 나간다. 난다의 경험과 같이, 같은 종류의 언어를 쓴다는 것이 상호 이해를 담보하지 않는다. 정밀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언어는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진다. 전문가와 엘리트들의 언어나, 국제 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권력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완벽한 상호소통’ 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니, 우리는 온전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고 모든 것을 정밀하고 보편적인 언어를 가진 자들에게 위임해야 하는가? 그런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목소리를 거세당하기 위해 소리 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모든 경험을 다 할 수는 없다. ‘동등한 자리’라는 것은 사실은 개념적인 것이고, 현실에서 우리는 대체로 동등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등해져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자거나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왜’ 기존의 사람들과 동등한지를 열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해받지 못한 채로 민주주의의 장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장 안에 비집고 들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 질러야 한다. 자세한 언어를 가진, 자기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비명 지르는 사람이 없는 ‘장’에서 민주주의는 기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해를 하기 위한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민주주의는 유효해지는 것이다.


개별 인간은 언제나 다면적이다. 그것은 개인이 언제나 피해-가해의 역동, 약자-강자, 혹은 다수-소수라는 범주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여러 범주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아주 강력한 요소가 다른 약자적 범주를 모두 커버하는 것같이 보일 때도 있다. 사회적이고 지리적인 조건이 이 요소를 반전시킬 때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는 인종 차별의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라면, 언제든 그 지부장이 나에게 했던 일을 다른 외국인 동료에게 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주류’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언제서야 나의 말이 되는가? 나는 우리가 자기의 억울함을 내려 두고 타인의 비명에 귀 기울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나의 언어가 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비명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살필 때. 나의 둔탁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모양으로 깎아내라는 사람들에게 말을 멈추지 않을 때. 그리하여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울부짖게 되는 곳은 어디인지, 저기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은 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할 때, 민주주의는 그제서야 나의 언어가 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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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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