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1·2 vol.90 | 윤예슬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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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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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2025 1·2 vol.90

 


우리 반에 새로운 어린이가 왔다. 우리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알고, 나도 알고 있던 학생이었다. 잠을 잘 못 자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울고, 심할 때는 무릎을 바닥에 찍는다거나 머리를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학생이다. 이 학생의 원적 학급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이제 막 특수 교사가 된 지 2년 차에 접어든 나는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작년처럼 1, 2, 3교시는 원적 학급에서, 나머지는 특수반에서 지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 학생은 일주일에 7시간 정도만 특수반에서 수업을 받는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특수반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고 나니 찝찝하고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불쾌감을 파고들어 보니 나온 것은 ‘내 교실에 장애 학생을 분리하였기에 얻은 원적 학급의 평화’였다. 장애 학생이 여러 이유로 결석하는 날이면 원적 학급의 일반 선생님들이 꼭 해 주는 말이 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 사실 ○○이가 학교에 오지 않아 교실이 평화로웠어”. 일반 선생님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25명 정도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고, 장애 학생은 아니지만 가정과 사회적인 이유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학생들도 많아졌으니 나도 그 부담감을 알고 있다. 사회적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통합교육이 실은 충분한 지원 없이 교사의 역량에 기대 굴러가고 있으니 통합학급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읽다가 1947년 케네스 클라크와 메이미 클라크의 ‘인형 실험’에 관해 알게 되었다. 백인과 흑인이 분리되어 교육을 받던 시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백인 인형과 유색 인형을 두고 ‘가지고 놀고 싶은 인형, 착한 인형, 나빠 보이는 인형, 예쁜 색의 인형’은 무엇인지 물었다. 흑인 아동의 67%가 백인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했고, 60%가 백인 인형의 색이 예쁘다고 했으며, 흑인 아동의 59%가 유색 인형을 나빠 보이는 인형이라고 골랐다. 마지막으로 실험자가 흑인 아동에게 ‘자신과 닮은 인형이 무엇이냐’고 묻자 몇몇 아동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195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 실험에 주목하여 흑인과 백인의 학교를 분리했던 정책을 철폐했다.


이 실험은 흑인과 백인을 분리한 교육 환경에 대한 것이지만, 흑인을 장애 학생, 백인을 비장애 학생으로 치환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가르치는 장애 학생이 지적 능력이나 적응 행동에 제한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작년에 내가 가르친 학생만 하더라도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통합학급 적응 기간을 끝내고 특수반에 오는 시간이 생겼을 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 특수반에 오기 싫어했다. 물론 비장애 학생들도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 학생의 친구는 나에게 “선생님, ○○이는 발달이 늦어서 특수반에 내려가는 것이죠?”라고 물었다. 어린이들은 이미 서로가 ‘분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장애인과 분리된 삶을 살아왔다. 초, 중, 고 때까지 통합교육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대학교 때 처음 특수학교에 교육 봉사 활동을 갔을 때, 내가 평생 보지 못한 장애인을 한꺼번에 보고 들었던 이질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분리되어 있었고,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합교육을 꿈꾸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통합교육은 절대 내가 원하던 통합교육이 아니다. 이것은 또 다른 분리에 불과하다. 현재 통합교육의 실패를 발판 삼아 현재와 다른 통합교육을 꿈꾸는 나와 같은 마음인 선생님들과 함께하고 싶다.


- 윤예슬(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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