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③
있다
배운다는 사건, 그리고 무장된 사랑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 와 장애인권교육 짝꿍강사[ref]노들야학에는 장애인권교육팀이 있다. 장애 당사자 한 명과 비장애인 교사 한 명이 짝꿍강사로 나란히 들어가 함께 교육을 진행한다. 장애인권교육과 관련한 강의 요청, 문의 사항은 nodeul@daum.net으로 연락하면 된다.[/ref]가 되었다. 그, 가 날 딱 찍었다고 했다. 야학 복도에서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지 실제로 대면하고 말 한마디 나눠 본 적 없던 그, 였다. 의아했다. 장애인권교육 교안을 만들기 위해 첫 번째 준비 모임을 마치고 “한번 읽어 봐 주세요” 하고 그, 는 자신의 이야기와 발언이 담긴 스무 개가 넘는 문서와 영상 파일을 보내왔다. 파일을 하나씩 하나씩.
1일
첫돌을 앞둔 그, 의 뇌세포들을 훑는 혹독한 고열이 있다. 이후 그, 는 밥 먹을 때, 옷을 입을 때, 말할 때도 다른 사람의 손길, 눈길, 발길이 필요한 뇌병변장애인이 되어 있다. “너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야”를 평생 품고 살던 그, 의 어머니가 있다. 누나에게 젖병부터 먹는 거, 입는 거, 일상에서 양보를 달고 살던 동생이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모여 살아야 해”라는 말을 달고 살던 아버지가 있다. 동생은 가방 메고 학교에 가고, 엄마는 그, 를 메고 재활원으로 향하던 서로 다른 길이 있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 를 등에 업고 재활원을 오가느라 헐어 버린 포대기가 무수히 있다. 할 때마다 하기 싫어서 울었던 언어치료와 보행치료가 있다. 장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화와 슬픔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늘”진 침묵 속에 쌓여 있다. 가족들이 일하러, 공부하러 간 사이, 방구석에서 15년을 그, 는 없지 않고 있었다.
2일
서울 시내 재활원에서 청소년기가 넘어가는 장애인들을 지역 사회로 내보내는 대신 강원도 철원에 있는 거주 시설에다 “쓰레기를 매립시키듯 버리는” 서울시의 정책이 있다. 엄마가 시장 간 사이 그, 를 태우고 철원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차가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들어선 산길이 있다. 산 좋고 공기 좋은 “장애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3층짜리 장애인거주시설에 버려진 그, 가 있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데려다 달라고 우는 그, 가 있다. 인사도 없이 돌아선 아버지가 있다. 울다 지쳐 잠든 밤들이 있다. 그곳엔 ‘엄마들’이라고 불리던 시설 종사자들이 있다. 밥을 먹다 음식물을 흘리면 똑바로 못 먹는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며 뺨을 후리던 시설 엄마들이 있다. 샤워실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가서야 보호자인 어머니와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전화기가 있다.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가, 얼굴과 입술은 터져서 퉁퉁 부어 있고 손발은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는 그, 를 보고 통곡하던 울음소리가 있다. “엄마가 돈 벌어서 꼭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약속이 있다. 이후 하루 한 컵씩 세 번밖에 물을 주지 않아 욕실로 기어가 대야에 있는 물을 “개처럼 핥아 먹어야 했던” 그, 가 있다. 1월에만 미지근한 불을 넣어 주던 한겨울이 있다. 동상에 발을 잘라야 했던 그, 의 동료들이 있다. 위층에 살던 거주인이 얼어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 걷지 못하는 그, 가 올라갈 방법이 없어 떨어져 내리지 못했던 2층 창문이 있다. 위층에 살던 장애인이 창문으로 떨어질 때 들었던 비명 소리가 있다. 떨어져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던 “지옥 같은” 날들이 있다. 시설에서 15년을 그, 는 없지 않고 있었다.
3일
자식 버리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며 남편과 이혼한 그, 의 어머니가 있다. 그, 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 식당, 공사장, 김치 가게 등등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던 그, 의 어머니가 있다. 불법 체류자가 되어 일본 경찰에 쫓겨 가며 벌어 온 돈이 있다. 그, 와 함께 살기 위한 돈을 모으기까지 걸린 10년의 세월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와 함께 살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세를 얻어 들어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3층짜리 성일장 여관이 있다. 공사비를 줄이려고 손수 시공한 시멘트 벽이, 화장실 타일이, 수도꼭지가, 뒤뜰에 심은 장미가 있다. 추석 전 어느 날 시설 생활 15년 차인 그, 의 앞에 마침내 나타난 그, 의 어머니가 있다. “이제부터는 엄마랑 살 거야”라는 말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던 서른한 살이 되어 버린 그, 가 있다. 마침내 시설에서 나온 그, 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집이 되어 준 성일장 옥탑방이 있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 는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가난한 동네에 가난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달방’을 돌리며, 옆 식당에 손이 필요할 때마다 아르바이트하던 닳고 닳아도 없어지지 않는 손가락이 있다. 그, 의 어머니가 없지 않고 있었다.
4일
그, 가 보내 온 문서 파일을 차분히 읽을 수 없는 이유. 나와 또래인 그, 의 궤적이 나의 궤적과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 있었던 이유. 지역 사회에서 그, 를 만나기 이토록 어려웠던 이유. 누군가의 고통에 다가서기 위한 여정에 어떤 각오가 요청되는 이유.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서 며칠 동안 당황, 한탄, 분노가 번갈아 가며 오르내렸다. 그 치받침 사이에서 그, 가 사용하고 있는 비유들이 자주 떠올랐다. “쓰레기를 매립시키듯” 한 고립. “개처럼 물을 핥아 먹던” 수치심. “그림자처럼 그늘로 따라다녔던” 침묵. 쓰레기, 개, 그림자와 자신을 직접 잇는 비유들이 자꾸 나를 찔렀다.
5일
지하철 선전전 중에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 지하철에서 이게 무슨 지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비장애 정규 시민의 눈빛. 야학 학생 가정 방문 갔을 때 컵라면 빈 용기가 천장까지 쌓여 있던 그 방. 잠실야구장 ‘쓰레기 노예’라고 불리며 관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모아 두는 곳에서 분리수거를 강요당하던 어느 지적 장애인이 10년이 넘도록 살았다던 컨테이너. 비장애중심주의 “상징 질서에서 자기 장소가 없는 비존재들이자 어둠의 그림자이자 사악한 질병”(도나 해러웨이)으로 처분되어 있다는 문장. 19세기 말 미국의 이민법에 따라 공공에 부담이 될 ‘것’ 같은 사람들로 장애인, 동성애자, 유색인종들을 분류한 LPC(Likely to become a Public Charge)[ref]킴 닐슨, 김승섭 옮김(2020), 《장애의 역사》, 동아시아, 197~209쪽.[/ref] 조항. 쓰레기-화된 장면들이 온종일 나를 끌어당겼다.
6일
노들야학 교사가 사회보장위원회 건물에 빨간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문장. 동물권리장전행진에서 “동물들이 도살장에 끌려가 죽음을 기다리는 삶과 장애인이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맞닿아 있다”라고 발언하는 장애해방활동가의 불끈 쥔 주먹. 집에서 출근하는 가족들이 “집 잘 봐라” 하고 나갔다가 퇴근해서는 “집 잘 봤냐?” 하고 물어오던 삶을 30년간 살면서 스스로 “개새끼라고 생각했다”라는 노들야학 학생의 일화. “‘인간’보다 덜한 존재, ‘정상’보다 덜한 존재로서 장애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로즈메리 갈런드 톰슨)라는 문장. 30만 명의 장애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T4 작전 캠페인에 장애인을 원숭이 얼굴로 묘사한 포스터. 비인간-화된 면면들에 온종일 나는 끌려다녔다.
7일
거리에서 죽어 가야만 했던 무연고 사망자들을 기리는 홈리스 추모제에서 영정 사진 속 그림자로만 남겨져 있던 액자. 산전 기형아 검사를 권하며 혹시 모를 ‘사고’를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말하던 산부인과 의사의 아무렇지 않던 말투. 지독하고 끝없는 비극으로 여기며 피해야 할 미래이자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로 ‘장애’라는 낱말을 거주시키고 있는 국어사전. “가족들이 중증장애인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게 만든 무책임한 정부를 규탄한다!”라고 발언하던 목소리. “사유되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의 타자이자 그림자로서 무언가로부터 보충적인 형태와 전도된 명칭을 부여”(미셸 푸코)받는다는 문장. 그림자-화된 단면들이 온종일 나를 끌고 다녔다.
8일
장애인권교육에 짝꿍강사로서 그, 와 함께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일주일을 헤매었으나 매일매일 실패했다. 각종 책, 법률, 정책, 기사, 논문 들을 살피며 내 모든 지성을 다하였으나 ‘할 수 있는 말’을 발견하는 것에 정확하게 실패했다. 내 모든 감각과 상상력을 다하여 공통감을 찾고 싶었으나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매일같이 진행하고 있는 지하철 선전전이 있던 날, 그날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피켓 문구가 있었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천지 차이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 문구를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수정하면서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항의 문구였다.
그때 알았다. 그, 와 함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 와 함께 ‘해야 하는 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 와 함께 ‘살 수도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 와 함께 ‘살아야 하는 세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 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 로부터 발음되는 말을 세계 속에 실행시켜야 한다는 거. 장애인권교육의 말은 바로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때 알아 버렸다.
9일
그러니까, 그날 아침부터 그랬다. 유난히 높은 화장실 문턱이 불현듯 턱, 하고 눈에 걸렸다. 벽에 매달린 샤워기 높이가 턱, 하고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집 계단이 턱, 하고 마음에 걸렸다. 출근길 지하철 역사의 반듯하고 날렵한 보행인들의 걸음걸이가 턱, 하고 걸렸다. 내가 누려 왔던 이 모든 것들이 그, 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 을 배제한 채 만들어진 찬란하고 곤란한 문명이라는 진실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내가 누려 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동선들이 그, 를 없는 존재로 취급한 채, 그들을 방구석과 시설로 고립시킨 비장애중심으로 설계된 도면에 따라,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전속력으로 서늘해졌다.
문명, 이라고 불리는 이 설계도에 따라 공기처럼 당연하게 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계단을 오르고, 산에 가고, 식당에 가고, 연애하고,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고, 출근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이 그, 의 삶 앞에서 전부 특권이었다. 스무 살 페미니즘을 접하며 내가 누렸던 수많은 일상이 남성 특권에 기반을 두고 있었음을 깨닫고 난 뒤, 한 세계가 일순간 무너지던 그 느낌을, 마흔 가까이 되어 다시 받게 될 줄 몰랐다.
10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도면들을 찢어야 했다. 무너진 막다른 골목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도면이 필요했다. 나, 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로부터 시작되는 도면이.
11일
“비장애인들에겐 당연한 학교교육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고 싶다고 요구하지도 못했고, 내 자신 스스로 장애 때문이라며 포기”[ref]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20회를 잇-다’ 인터뷰 첫 번째! (youtu.be/WnD6Ixivfoc?si=uiX0BEULMsWNEDyg)[/ref]했던 배움의 길 위로 40년 만에 오른 그, 가 있다. ‘성일장 출발 → 노들야학 도착’을 찍던 지도 어플이 있다. 그곳에는 그, 의 안부를 물어보고, 관심을 보이며 대화하려는 교사들이 있다.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며 함께 모여 공부하고 투쟁하는 장애인 동료들이 있다. 도로를 점거하고, 장애 해방을 온몸에 달고 사는 장애해방활동가들이 있다. 없지 않고 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가 있음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이 권리들을 억압해 온 비장애중심주의 권력이 있음을, 권리를 가질 권리를 향한 맹렬한 투쟁의 역사가 끈질기게 있음을, 느끼게 된 “사건 같은 배움”이 노들야학에 있다. “저에게 배움이란 것은 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바라봤던 세상과 배움을 시작한 후에 바라본 세상은 너무 달랐습니다”[ref]〈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2020), 연출 조상지, 14분.[/ref]라고 말하는 그, 가 있다. 꿈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고, 꿈이 뭐냐고 질문받은 적도 없으며, 꿈을 꿀 수도 없어 포기했던 꿈이라는 게 그곳에 있다. 그, 의 꿈은 없지 않고 있다.
12일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꿈’을 발음해 보는 그, 가 있다.
13일
야학에 다닌 지 1학기 만에 그, 는 자립생활을 살아 내겠다고 스스로 세운 결단이 있다. 야학과 가까운 곳에 마련한 자기만의 첫 집, 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쫓아오는 ‘하지만’이라는 부사가 있다. 말을 못 하는 그, 를 바보로 여기던 활동지원사a. 화가 나면 욕실로 끌고 가 주방에서 쓰는 가위로 그, 의 머리를 함부로 자르고 밤새 소리를 지르던 활동지원사b. 장애인인권영화제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지만 갈 필요 없다고 무시하던 활동지원사c.
그 이후에 폭력의 수위만 낮아졌을 뿐 비슷한 무시와 멸시를 골고루 제공하며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고 어떤 의견도 묻지 않던 활동지원사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고 싶어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이 아니면 그냥 참고 살겠다, 고 스스로 세운 다짐이 있다. 온전한 협응을 위해 미지의 수로 남아 있던 활동지원사의 자리에 문득 나타난 χ, 가 있다. 먹고 싶은 반찬을 미리 물어보는 χ, 어느 길로 가고자 하냐고 갈림길에서 항상 물어보는 χ,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끊임없이 묻는 χ, 어떻게든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χ, 를 만난 뒤 선택할 수 있게 된 매 순간들이 있다. 없지 않고 있다. 그와 χ, 가 함께 협응하여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 스스로 운전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전동 휠체어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던 혀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 ‘아~’ 하고 발성 연습을 하던 매일 아침이 있다. 혀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면서 여태 뱉어 내지 못하던 가래를 뱉어 내고, 닦을 수 없었던 안쪽 이를 닦을 수 있게 그와 χ, 가 협응한 나날들이 있다. 그, 시간이 없지 않고 있다.
14일
그, 가 있다.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그냥 어쩌다 미래를 만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는 밤 9시까지 공부하고 글을 쓰며 노들야학 학생, 으로 있다. 장애 해방을 발언하는 투쟁 현장에서 “내일의 장애 해방을 위해 오늘은 투쟁합시다!”라고 말하는 장애권리옹호활동가, 로 있다.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 ‘자립생활권’을 요구하며 “더 이상 우리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하는 서울시장 경선 후보, 로 있다. 국회에 국정 감사 참고인으로 올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나도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증언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로 있다. 〈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라는 영화로 박종필 감독상을 받기도 한 영화감독, 으로 있다. 있다. 없지 않고 무수히 있다. ‘장애인’이라는 납작한 단층의 이름으로 분류되고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장애권리옹호활동가-서울시장 경선 후보-노동자-참고인-영화감독이라는 두꺼운 이름들로 있다. 앞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될 미래 시제의 이름들이 기다리고 있다.
15일
그, 의 “인생은 –장전된 총처럼- 서 있다”
- 에이드리언 리치, 〈며느리의 스냅 사진들〉 중에서
16일
그의 말, 은 “참아야 하는 것, 금지당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도움받아야 하니 “참아야 한다”는 침묵 속에 갇히고, 이미 존재 자체로 폐를 끼치고 있으니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수치심에 갇히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는 고립에 갇히고야 마는 설계된 침묵이었다.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그들에게 우리는 귀찮은 존재, 조용히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서 “침묵은 우리를 기죽이려고 권력이 우리의 고통에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조용히 잠자코 있으라는 지배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침묵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지배 권력이 설계한 이 거대한 침묵의 도면 속에서 “항복하지 않는 사람, 저항하는 사람, 존엄을 지닌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우리 모습 그대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것”[ref]
마르코스, 윤길순 옮김(2002),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해냄, 216~423쪽.[/ref]을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말은 우리의 무기”가 된다고 한다.
철학자 들뢰즈/가타리는 도구와 무기를 구분하면서 무기는 투척(projection)적인 것으로 “던지거나 던져지는 것 등은 전부 무기”라고 한다. 무기는 “투사적 용법”으로 활용되는데 이는 치아파스 선주민들이 “우리는 말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라는 문장과 이어진다. 그, 의 말에 응답하려 들지 않던 세계를 향해 말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침묵을 깨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을 때, 직접 연출한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다닐 때 “투쟁은 정말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ref]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2001), 《천 개의 고원》, 새물결, 759~775쪽.[/ref] 침묵의 내부로 쌓이는 말이 아니라 밖으로 말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모든 것은 무기가 되었다.
17일
장애인권교육 교안 중간 발표 날. 말한다는 거. 장애인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 해방을 ‘향해’ 말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말자.
18일
중간 발표가 끝난 다음 날, 가벼운 평가 회의를 했다. 그, 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궁금하다고 했다. 대화하면서 장애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싶다, 고 했다.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듣고, 말하며 대화하는 게 교육 아니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대화를 좀 이끌어 달라고 제안했다. 어떤 대화 주제가 좋을지 물었을 때, 그, 는 장애인거주시설과 학교가 어떻게 닮아 있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장애인거주시설과 학교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와 χ, 는 장애인거주시설과 교육 시설은 질서 정연하게 짜여 있는 시간표 안에서 반복되는 시간의 패턴이 닮았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도 닮았다고 했다. 장애인들에게 재활을 요구하고 질병 없는 미래를 심어 주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데, 학생들에게 졸업 이후의 미래를 기다리라고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습도 닮았다고 했다. 나는 가격당한 듯, 이반 일리치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불구화(disabling)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던 것이 떠올랐다. 의료 시설이 병을 만들고, 학교 시설이 교육을 망친다, 라며 호소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이거다. 좋다. 공부해 보자.
19일
청소년들과 나눌 만한 장애인권교육 대화 주제들을 떠올리다가 그와 χ, 가 교육을 진행하는 핵심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고 했던 것에 다소 골몰해졌다. 그러고 보면 노들야학 신입 교사 참관 수업으로 들어갔던 모든 수업에서 안부를 묻는 대화 시간이 진행되었다. 어떤 수업에서는 안부 묻기의 대화가 길어져 1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고, 어떤 수업에서는 5분 정도 짧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화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수업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참관한 모든 수업에서 이러한 안부를 묻는 대화가 마치 노들야학 전통 의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또 한번은 신입 교사 연구 수업을 마친 나에게 한 선배 교사는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같이 대화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라고 생각해 봐도 좋겠어요”라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노들야학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 그, 가 장애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데 있어 ‘대화’를 중점에 두고자 한 것도 노들야학이 교육적 무의식으로 지니고 있는 ‘대화 중심 교육’이라는 방법론을 몸소 터득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노들야학 책꽂이에는 해방의 민중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이 곳곳에 꽂혀 있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대화 :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이라는 목차가 나온다. 학생-교사는 단순히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교육은 처음부터 혁명적 ― 다시 말해 대화적 ― 이어야만 한다”[ref]파울로 프레이리, 남경태 옮김(2002), 《페다고지》, 그린비, 89~110쪽.[/ref]고 말한다.
그 옆에 나란히 꽂혀 있는 노들야학 공동교장 천성호의 700쪽이 넘는 책을 펼치면 노들“야학은 단순히 교육하는 공간에 더해서 타인과의 만남의 공간, 대화의 공간, 공동체의 공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이 대화적 교육 공간에서 “자유를 향한 여정”이 “장대하게 펼쳐진”[ref]천성호(2009), 《한국야학운동사》, 학이시습, 677~711쪽.[/ref]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프레이리와 천성호는 여러모로 나란한 점이 있다.
20일
“이 말들, 이 속삭임, 이 대화/ 이따금씩 진리가 촉촉이 푸르게 터져 나오는”
- 에이드리언 리치, 〈침묵의 지도〉 중에서
21일
비가 쏟아지는 아침. 머리칼 끝에 빗방울을 매달고 있는 그가 의 2심 항소를 위해 탄원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 재판? 재판이라고? 무슨 재판받을 일이? 뭐가? 있어서? 1심에서 집행 유예 2년을 받았는데, 2심 항소를 준비하면서 자필 탄원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2심에서도 집행 유예 2년이 나오면 χ, 의 활동지원사 자격이 박탈당한다고 했다. 자격 박탈? 갑자기? 집행 유예 2년? 관련 자료들을 저녁에 보내 줄 테니 참고해서 다음 주까지 자필로 탄원서를 좀 부탁한다고 했다. 재판, 항소, 집행 유예 2년, 활동지원사 자격 박탈과 같은 단어들이 너무 뜻밖이어서 사건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A4 용지 13장에 빼곡히 적힌 탄원서와 각종 발언문이 도착했다.
22일
2019년 성일장 여관이 자리한 구리 인창 C구역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 ‘뉴타운’ 사업이 있다. 지하 6층~최고 42층 높이에 총 1,180세대 대규모 건설 계획이 있다. 2020년부터는 재개발 사업이 확정되면서 “지금 투자하면 만사형통”, “서울역 강남역 30분 쾌속 교통”, “내 집 마련 마지막 기회로” 뉴타운 투자를 유도하는 광고문이 있다. ‘대’규모 주거 복합 ‘프리미엄’ ‘대’단지 롯데‘캐슬’이 있다. 재개발 아파트 프리미엄만 4억 원에 달한다는데, 고작 6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통지서가 있다. “여기서 죽나, 길거리에서 죽나 어차피 죽는 건 똑같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그, 의 어머니가 있다. “세 사는 주제에, 거지 같은 년이, 안 나간다고!” 욕설을 퍼붓는 재개발조합장이 있다.
2020년 마지막 날 겨울 방학식을 마친 그와 χ, 는 성일장으로 향하고 있다. 싸우는 어머니의 곁을 지키겠다고 마음먹고 성일장에 도착한 그, 가 있다. 재개발조합 사무실 앞에서 “니들이 포크레인으로 나를 내리찍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구리시청 앞에서 “죽을 수는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사거리 교차로에서 “인간답게 사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하는 그, 가 있다. 없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강제 철거가 본격 시작된 2021년 3월이 있다. 모든 집과 상가, 식당들을 주저앉히고 있는 포크레인이 있다. 함께 주먹을 쥐었지만 견디지 못해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른 채 성일장 옥상으로 모이고 있다. 철거 용역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구에 ‘봉고차’를 주차시킨 뒤 움직일 수 없게 시멘트를 발라 둔 자동차 바퀴가 있다. 안으로도 들어올 수 없고,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꽃피는 3월의 봄날이 있다. 옥상 화분에 뿌린 상추씨와 대파씨가 있다. 옥상 한편에 모아 둔 깨진 돌무더기가 있다. 강제 집행이 들어올까 봐 2시간씩 돌아가며 깨어 있던 새벽이 있다. 깨진 돌을 손에 쥔 듯 잠들어 작은 소리에도 자주 깨던 밤들이 있다.
주변의 건물들은 차례로 철거되고 있다. 이제 용역들이 밀고 들어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5월의 긴장이 있다. 강제 집행하겠다고 예고한 날이 3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조합 측에서 강제 집행을 위해 ‘스카이차’와 포크레인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성일장 바로 앞 건물을 모두 헐어 내고 진입하기 쉽게 땅을 다지고 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집회 신고를 하러 가는 χ, 가 있다. 5월 26일, 집회 신고를 하러 간 χ, 를 긴급 체포한 구리경찰서가 있다. 긴급 체포 사유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용역 깡패들이 사용할까 봐 주워서 한쪽으로 치워 둔 쇠파이프 3개와 벽돌 2개를 합해 총 25만 원어치를 훔쳐 갔다는 특수절도. 세상에 이런 특수 혐의도 있다.
23일
χ, 가 긴급 체포된 것을 시작으로 용역들이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 올 것이다, 는 소식이 있다. 그, 가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라는 꿈이 시작된 자리에 함께 있던 야학 교사 천성호는 27일 새벽 4시 택시를 타고 성일장으로 향하고 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선 용역을 뚫어 내고 그, 를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옥상으로 오르는 새벽이 있다. 아침이 시작되자 성일장 앞에 마지막 남은 건물들을 부수는 포크레인이 있다. 이제 성일장만 남아 있다. 28일 “공권력을 오남용하고 있는 구리경찰서를 규탄한다!”, “구리경찰서는 지금 당장 활동지원사 χ, 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를 취소하고 즉시 석방하라!”라는 요구가 담긴 5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의 공동 성명이 있다. 용산 참사 유족들이 보내 온 탄원서도 있다. 5월 31일 구리시장의 “용산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라는 발언으로 시작된 협상이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법원은 χ, 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했고, 구속된 지 일주일 만에 검찰에 송부되었고, 의정부 법원으로 넘어갔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었다. χ, 의 면회를 간 교사 천성호가 면회 신청서 뒷면에 받아 적어 온 χ, 의 말이 있다. “그, 는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있어서 버티고, 숨을 쉬고 있어요. 제발 그, 의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24일
재판이 진행되던 와중에 철거대책위원회와 조합 측 사이에 성사된 극적인 합의가 있다. 6개월 만에 성일장 옥상에서 내려오는 그, 와 어머니가 있다. 망루의 심장을 나누어 가진 그들, 이 있다. 이후 1심에서 실형 8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고 3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χ, 가 있다. 깨진 돌의 심장을 나누어 가진 그들, 이 있다.
25일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탄원서를 7장 넘게 꾹꾹 눌러 쓰는 동안 꽃다지가 부른 〈동지〉를 반복 재생해서 들었다. 내가 즐겨 듣는 민중가요인 〈동지〉의 1절 후렴은 “사랑/사랑/영원한 사랑”인데 이와 나란히 같은 자리에 2절 후렴은 “투쟁/투쟁/영원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투쟁’이라는 단어의 질량을 같은 후렴의 자리에 둔 이 노래를 나는, 투쟁이란 이 세계를 열렬히 사랑하는 방식이다, 라고 듣는다. 그와 어머니 사이, 그와 성일장 사이, 그와 활동지원사 사이, 그와 교사 사이를 떠도는 노래로 듣는다. 브라질의 시인 티아고 데 멜로는 〈무장된 사랑(armed love)〉이라는 시에서 “사랑은 언제나 지켜 내야 하는 / 사랑할 권리”로 있음을 말한다. 이때 사랑은 하나의 권리로, 사회적 층위에서 발화된다.
야학 교사 천성호는 자신의 삭발 결의문에서 “장애인들,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비참하게 놓이지 않게 함께 싸우는 것이 무장된 사랑이며 세계를 변혁시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학교라는 곳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 배움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해야 하며 “학교를 넘어 사람을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ref]천성호,“당신과 나의 해방이 맞닿아 있기에”, 〈비마이너〉, 2022년 4월 21일.[/ref]고 발언한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진보적 교사의 자질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겸손, 용기와 더불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한 사람의 교육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위자이기도” 한 존재로서의 교사들에게 말을 건넨다. “교육자들에게 일종의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그들 직업은 부정적인 면들을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쥐꼬리만 한 봉급과 교사들에 대한 홀대와 정부의 멸시와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교사는 자식을 양육하는 부모가 아니라,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교원노조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저항 활동을 하고, 그 때문에 처벌받더라도 여전히 학생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싸우고, 고발하고, 선언할 권리와 의무를 믿는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 즉 ”무장된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진보적인 교사에게 꼭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형태의 사랑입니다”[ref]파울로 프레이리, 교육문화연구회 옮김(2001), 《프레이리의 교사론》, 아침이슬, 115~116쪽.[/ref]라고 한다. 이것이 무장된 사랑. 이 사랑은 선량하지 않다. 오히려 이 사랑은 시시때때로 무시무시하다.
한편, 주디스 버틀러는 “연대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이 살고 싶어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이 살아 주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살고 싶어 하기를 바란다. 부디 나의 소망을 당신의 소망으로 삼아 주기를, 당신의 소망이 이미 나의 소망이 되었으니까”라고 말하는 방식이 될 때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든 사랑에 빠져 있든” 혹은 “분노하는 사랑이든”[ref]주디스 버틀러, 김정아 옮김(2021), 《비폭력의 힘》, 문학동네, 255쪽.[/ref] 우리가 서로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있음을 살아 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탄원서의 마지막에 “이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저는 그들로부터 완전히 다시 배웠습니다. 재판장님,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쓰고 그, 에게 건넸다.
26일
장애인권교육이 며칠 안 남았다. PPT를 만들어야 한다. 이곳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내일은 지하철 선전전에서 야학 학생의 삭발 투쟁이 있는 날이니, 일단 퇴근하자.
27일
“장애인도 시민으로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가면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삭발 결의를 밝힌 노들야학 학생이 한가운데 있다. 그 머리에 “장애인권리예산쟁취”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장애해방활동가가 있다. 그 뒤로 잘린 머리칼을 담은 작은 삭발 투쟁 상자를 가슴팍에 안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옆으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오체투지 투쟁을 결의한 그, 가 있다. 그, 를 안고 휠체어에서 내리는 χ, 가 있다. 그 뒤로 야학 교사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 섞인 탄식이 있다. 그 앞에는 한 달 전 삭발한 야학 교사 천성호의 손에 쥔 마이크가 있다. 그 위로 “장애인철폐연대 시위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고 잘못 말하는 안내 방송이 있다. 그 배후에는 장애인차별철폐가 아니라 장애인철폐를 하겠다는 연대체로 기획재정부-서울교통공사-경찰청이 있다.
“출입문이 열립니다.” 그 밑으로 초속 1cm로 기어서, 기어서, 기어이, 기어서, 기어서, 기꺼이, 기어서, 기어서, 기대어, 기어서, 기어서, 기어코, 기어서, 기어서, 기필코, 기어서, 기어서, 기어서 출입문을 향하는 그, 가 있다. 그, 의 뒤로 우리는 무리 지어 혜화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으로 초속 1cm 속도로 행진하고 있다. 메모장을 펼쳐 ‘이곳이 장애인권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교실이다’라고 메모하는 손이 있다.
28일
그, 가 앓아누웠다, 는 소식.
29일
그, 의 앞에 뒤에 옆에 위에 안에 함께 열차에서 무리 지어 있던 사진을 프린트하여 책상 앞에 두었다. 비장애중심 질서 속에 손쉽게 사물화, 비인간화, 비존재화로 그림자가 되어 방구석과 시설에 배치되어 주체로서 출현할 수도 없던 이들이 모인 무리. 권리를 가질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주장하며 출근길 지하철에 나타난, 출현한, 등장한 무리. 아, 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권리 예산을 말하면 지금은 무리, 야 하고 20년 넘게 똑같은 대답만 하는 세계를 향해 초속 1cm로 행진하는 무리.
“도래할 민중은 무리 속에서 태어난다.”(우노 구니이치) 무리로서 우리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도 아니고 분리되는 것도 아닌 그 사이, 틈새, 교차점”(로리 에릭슨) 속에 있다. 이때의 “우리는 단수이자, 복수이며, 온전한 그도 아니고, 그들도 아닌 것으로 말한다.”(앨리슨 케이퍼) 그 “무리들(meute)은 끊임없이 상대방 속으로 변형되어 들어가며, 서로 상대방 속으로 이행”하며 “감염에 의해서 형성되고, 전개되며, 변환된다.”(들뢰즈/가타리) 우리가 무리 지어 공통의 언어를 함께 말할 때, 장애/불구라는 개념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동맹과 연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따개비들이 전함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떼어 내고 떼어 내도 사라지지 않듯, 비장애중심주의라는 모면할 수 없는 생존 조건 속에서도 떼어 내고 떼어 내도 사라지지 않고 “집단행동이라는 험하고 짜증스러운 길, 운명의 그림자 길로 다닐지라도, 슬픔과 울분의 한복판에서 생존을 입증/시위”(주디스 버틀러)하며 살아 낸 역사가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싸우면서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면서 힘을 고양시키는 싸움이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병신이어도 당당한 병신”(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들의 싸움이자,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장애여성공감)가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없지 않고 있음을 안다.
30일
장애인권교육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권리,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거. 투쟁, 이 세계를 열렬히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거. 사랑, 함께 말하고 선언하며 무장된 언어로 이어지고자 하는 거. 이어짐, 보고 질문하고 듣고 응답하는 끈질긴 언어/비언어 대화 속에 희미하게 발생한다는 거. 대화, 교육의 철학이라는 거. 철학, 깨진 돌의 심장을 나눠 갖는다는 것. 지난 한 달간 그, 에게 하루하루 저격당하며 나는 배웠다.
31일
장애인권교육 날. 서울시 강서구의 어느 중학교 정문에서 만났다. 닫힌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후문으로 향했다. 나는 인도로 먼저 걷고, 그, 는 좁고 울퉁불퉁한 인도로 올라올 수 없어 차도로 걸었다. 그, 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미래의 도면을 생각하며 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는 인사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온 경험이 없습니다. 중증장애인인 저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건물은 내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들어가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랬던 학교 건물에 깊숙이 들어와 학교의 심장과도 같은 학생분들에게 제가 뭔가를 얘기하러 여기에 있네요. 여러분들을 학교에서 만나게 된 이 자리가 저에겐 정말 영광이고, 이 순간은 제가 죽을 때 간직하고 갈 하나의 중요한 명장면일 겁니다”라고 인사하는
그, 가 있다. 없지 않고 있다.
노들야학 30주년 책 《노들바람》 출간
노들야학 30년의 찬란한 이야기들을 찌그렁빠그렁하게 조각 모음한 책 《노들바람》이 출판되었습니다. 세상이 망해도 끝끝내 살아남을 학교, 끊임없이 싸우는 학교, 거침없이 시대와 불화하는 학교, 쉴 새 없이 미래의 시제를 개발하는 학교, 전 세계를 뒤져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교. 노들야학의 30년 이야기가 노란색 표지 안으로 나란히 담겼습니다. 가까운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③
있다
배운다는 사건, 그리고 무장된 사랑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 와 장애인권교육 짝꿍강사[ref]노들야학에는 장애인권교육팀이 있다. 장애 당사자 한 명과 비장애인 교사 한 명이 짝꿍강사로 나란히 들어가 함께 교육을 진행한다. 장애인권교육과 관련한 강의 요청, 문의 사항은 nodeul@daum.net으로 연락하면 된다.[/ref]가 되었다. 그, 가 날 딱 찍었다고 했다. 야학 복도에서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지 실제로 대면하고 말 한마디 나눠 본 적 없던 그, 였다. 의아했다. 장애인권교육 교안을 만들기 위해 첫 번째 준비 모임을 마치고 “한번 읽어 봐 주세요” 하고 그, 는 자신의 이야기와 발언이 담긴 스무 개가 넘는 문서와 영상 파일을 보내왔다. 파일을 하나씩 하나씩.
1일
첫돌을 앞둔 그, 의 뇌세포들을 훑는 혹독한 고열이 있다. 이후 그, 는 밥 먹을 때, 옷을 입을 때, 말할 때도 다른 사람의 손길, 눈길, 발길이 필요한 뇌병변장애인이 되어 있다. “너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야”를 평생 품고 살던 그, 의 어머니가 있다. 누나에게 젖병부터 먹는 거, 입는 거, 일상에서 양보를 달고 살던 동생이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모여 살아야 해”라는 말을 달고 살던 아버지가 있다. 동생은 가방 메고 학교에 가고, 엄마는 그, 를 메고 재활원으로 향하던 서로 다른 길이 있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 를 등에 업고 재활원을 오가느라 헐어 버린 포대기가 무수히 있다. 할 때마다 하기 싫어서 울었던 언어치료와 보행치료가 있다. 장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화와 슬픔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늘”진 침묵 속에 쌓여 있다. 가족들이 일하러, 공부하러 간 사이, 방구석에서 15년을 그, 는 없지 않고 있었다.
2일
서울 시내 재활원에서 청소년기가 넘어가는 장애인들을 지역 사회로 내보내는 대신 강원도 철원에 있는 거주 시설에다 “쓰레기를 매립시키듯 버리는” 서울시의 정책이 있다. 엄마가 시장 간 사이 그, 를 태우고 철원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차가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들어선 산길이 있다. 산 좋고 공기 좋은 “장애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3층짜리 장애인거주시설에 버려진 그, 가 있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데려다 달라고 우는 그, 가 있다. 인사도 없이 돌아선 아버지가 있다. 울다 지쳐 잠든 밤들이 있다. 그곳엔 ‘엄마들’이라고 불리던 시설 종사자들이 있다. 밥을 먹다 음식물을 흘리면 똑바로 못 먹는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며 뺨을 후리던 시설 엄마들이 있다. 샤워실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가서야 보호자인 어머니와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전화기가 있다.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가, 얼굴과 입술은 터져서 퉁퉁 부어 있고 손발은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는 그, 를 보고 통곡하던 울음소리가 있다. “엄마가 돈 벌어서 꼭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약속이 있다. 이후 하루 한 컵씩 세 번밖에 물을 주지 않아 욕실로 기어가 대야에 있는 물을 “개처럼 핥아 먹어야 했던” 그, 가 있다. 1월에만 미지근한 불을 넣어 주던 한겨울이 있다. 동상에 발을 잘라야 했던 그, 의 동료들이 있다. 위층에 살던 거주인이 얼어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 걷지 못하는 그, 가 올라갈 방법이 없어 떨어져 내리지 못했던 2층 창문이 있다. 위층에 살던 장애인이 창문으로 떨어질 때 들었던 비명 소리가 있다. 떨어져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던 “지옥 같은” 날들이 있다. 시설에서 15년을 그, 는 없지 않고 있었다.
3일
자식 버리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며 남편과 이혼한 그, 의 어머니가 있다. 그, 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 식당, 공사장, 김치 가게 등등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던 그, 의 어머니가 있다. 불법 체류자가 되어 일본 경찰에 쫓겨 가며 벌어 온 돈이 있다. 그, 와 함께 살기 위한 돈을 모으기까지 걸린 10년의 세월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와 함께 살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세를 얻어 들어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3층짜리 성일장 여관이 있다. 공사비를 줄이려고 손수 시공한 시멘트 벽이, 화장실 타일이, 수도꼭지가, 뒤뜰에 심은 장미가 있다. 추석 전 어느 날 시설 생활 15년 차인 그, 의 앞에 마침내 나타난 그, 의 어머니가 있다. “이제부터는 엄마랑 살 거야”라는 말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던 서른한 살이 되어 버린 그, 가 있다. 마침내 시설에서 나온 그, 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집이 되어 준 성일장 옥탑방이 있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 는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가난한 동네에 가난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달방’을 돌리며, 옆 식당에 손이 필요할 때마다 아르바이트하던 닳고 닳아도 없어지지 않는 손가락이 있다. 그, 의 어머니가 없지 않고 있었다.
4일
그, 가 보내 온 문서 파일을 차분히 읽을 수 없는 이유. 나와 또래인 그, 의 궤적이 나의 궤적과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 있었던 이유. 지역 사회에서 그, 를 만나기 이토록 어려웠던 이유. 누군가의 고통에 다가서기 위한 여정에 어떤 각오가 요청되는 이유.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서 며칠 동안 당황, 한탄, 분노가 번갈아 가며 오르내렸다. 그 치받침 사이에서 그, 가 사용하고 있는 비유들이 자주 떠올랐다. “쓰레기를 매립시키듯” 한 고립. “개처럼 물을 핥아 먹던” 수치심. “그림자처럼 그늘로 따라다녔던” 침묵. 쓰레기, 개, 그림자와 자신을 직접 잇는 비유들이 자꾸 나를 찔렀다.
5일
지하철 선전전 중에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 지하철에서 이게 무슨 지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비장애 정규 시민의 눈빛. 야학 학생 가정 방문 갔을 때 컵라면 빈 용기가 천장까지 쌓여 있던 그 방. 잠실야구장 ‘쓰레기 노예’라고 불리며 관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모아 두는 곳에서 분리수거를 강요당하던 어느 지적 장애인이 10년이 넘도록 살았다던 컨테이너. 비장애중심주의 “상징 질서에서 자기 장소가 없는 비존재들이자 어둠의 그림자이자 사악한 질병”(도나 해러웨이)으로 처분되어 있다는 문장. 19세기 말 미국의 이민법에 따라 공공에 부담이 될 ‘것’ 같은 사람들로 장애인, 동성애자, 유색인종들을 분류한 LPC(Likely to become a Public Charge)[ref]킴 닐슨, 김승섭 옮김(2020), 《장애의 역사》, 동아시아, 197~209쪽.[/ref] 조항. 쓰레기-화된 장면들이 온종일 나를 끌어당겼다.
6일
노들야학 교사가 사회보장위원회 건물에 빨간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문장. 동물권리장전행진에서 “동물들이 도살장에 끌려가 죽음을 기다리는 삶과 장애인이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맞닿아 있다”라고 발언하는 장애해방활동가의 불끈 쥔 주먹. 집에서 출근하는 가족들이 “집 잘 봐라” 하고 나갔다가 퇴근해서는 “집 잘 봤냐?” 하고 물어오던 삶을 30년간 살면서 스스로 “개새끼라고 생각했다”라는 노들야학 학생의 일화. “‘인간’보다 덜한 존재, ‘정상’보다 덜한 존재로서 장애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로즈메리 갈런드 톰슨)라는 문장. 30만 명의 장애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T4 작전 캠페인에 장애인을 원숭이 얼굴로 묘사한 포스터. 비인간-화된 면면들에 온종일 나는 끌려다녔다.
7일
거리에서 죽어 가야만 했던 무연고 사망자들을 기리는 홈리스 추모제에서 영정 사진 속 그림자로만 남겨져 있던 액자. 산전 기형아 검사를 권하며 혹시 모를 ‘사고’를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말하던 산부인과 의사의 아무렇지 않던 말투. 지독하고 끝없는 비극으로 여기며 피해야 할 미래이자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로 ‘장애’라는 낱말을 거주시키고 있는 국어사전. “가족들이 중증장애인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게 만든 무책임한 정부를 규탄한다!”라고 발언하던 목소리. “사유되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의 타자이자 그림자로서 무언가로부터 보충적인 형태와 전도된 명칭을 부여”(미셸 푸코)받는다는 문장. 그림자-화된 단면들이 온종일 나를 끌고 다녔다.
8일
장애인권교육에 짝꿍강사로서 그, 와 함께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일주일을 헤매었으나 매일매일 실패했다. 각종 책, 법률, 정책, 기사, 논문 들을 살피며 내 모든 지성을 다하였으나 ‘할 수 있는 말’을 발견하는 것에 정확하게 실패했다. 내 모든 감각과 상상력을 다하여 공통감을 찾고 싶었으나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매일같이 진행하고 있는 지하철 선전전이 있던 날, 그날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피켓 문구가 있었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천지 차이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 문구를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수정하면서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항의 문구였다.
그때 알았다. 그, 와 함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 와 함께 ‘해야 하는 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 와 함께 ‘살 수도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 와 함께 ‘살아야 하는 세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 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 로부터 발음되는 말을 세계 속에 실행시켜야 한다는 거. 장애인권교육의 말은 바로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그때 알아 버렸다.
9일
그러니까, 그날 아침부터 그랬다. 유난히 높은 화장실 문턱이 불현듯 턱, 하고 눈에 걸렸다. 벽에 매달린 샤워기 높이가 턱, 하고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집 계단이 턱, 하고 마음에 걸렸다. 출근길 지하철 역사의 반듯하고 날렵한 보행인들의 걸음걸이가 턱, 하고 걸렸다. 내가 누려 왔던 이 모든 것들이 그, 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 을 배제한 채 만들어진 찬란하고 곤란한 문명이라는 진실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내가 누려 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동선들이 그, 를 없는 존재로 취급한 채, 그들을 방구석과 시설로 고립시킨 비장애중심으로 설계된 도면에 따라,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전속력으로 서늘해졌다.
문명, 이라고 불리는 이 설계도에 따라 공기처럼 당연하게 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계단을 오르고, 산에 가고, 식당에 가고, 연애하고,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고, 출근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이 그, 의 삶 앞에서 전부 특권이었다. 스무 살 페미니즘을 접하며 내가 누렸던 수많은 일상이 남성 특권에 기반을 두고 있었음을 깨닫고 난 뒤, 한 세계가 일순간 무너지던 그 느낌을, 마흔 가까이 되어 다시 받게 될 줄 몰랐다.
10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도면들을 찢어야 했다. 무너진 막다른 골목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도면이 필요했다. 나, 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로부터 시작되는 도면이.
11일
“비장애인들에겐 당연한 학교교육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고 싶다고 요구하지도 못했고, 내 자신 스스로 장애 때문이라며 포기”[ref]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20회를 잇-다’ 인터뷰 첫 번째! (youtu.be/WnD6Ixivfoc?si=uiX0BEULMsWNEDyg)[/ref]했던 배움의 길 위로 40년 만에 오른 그, 가 있다. ‘성일장 출발 → 노들야학 도착’을 찍던 지도 어플이 있다. 그곳에는 그, 의 안부를 물어보고, 관심을 보이며 대화하려는 교사들이 있다.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며 함께 모여 공부하고 투쟁하는 장애인 동료들이 있다. 도로를 점거하고, 장애 해방을 온몸에 달고 사는 장애해방활동가들이 있다. 없지 않고 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가 있음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이 권리들을 억압해 온 비장애중심주의 권력이 있음을, 권리를 가질 권리를 향한 맹렬한 투쟁의 역사가 끈질기게 있음을, 느끼게 된 “사건 같은 배움”이 노들야학에 있다. “저에게 배움이란 것은 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바라봤던 세상과 배움을 시작한 후에 바라본 세상은 너무 달랐습니다”[ref]〈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2020), 연출 조상지, 14분.[/ref]라고 말하는 그, 가 있다. 꿈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고, 꿈이 뭐냐고 질문받은 적도 없으며, 꿈을 꿀 수도 없어 포기했던 꿈이라는 게 그곳에 있다. 그, 의 꿈은 없지 않고 있다.
12일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꿈’을 발음해 보는 그, 가 있다.
13일
야학에 다닌 지 1학기 만에 그, 는 자립생활을 살아 내겠다고 스스로 세운 결단이 있다. 야학과 가까운 곳에 마련한 자기만의 첫 집, 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쫓아오는 ‘하지만’이라는 부사가 있다. 말을 못 하는 그, 를 바보로 여기던 활동지원사a. 화가 나면 욕실로 끌고 가 주방에서 쓰는 가위로 그, 의 머리를 함부로 자르고 밤새 소리를 지르던 활동지원사b. 장애인인권영화제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지만 갈 필요 없다고 무시하던 활동지원사c.
그 이후에 폭력의 수위만 낮아졌을 뿐 비슷한 무시와 멸시를 골고루 제공하며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고 어떤 의견도 묻지 않던 활동지원사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고 싶어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이 아니면 그냥 참고 살겠다, 고 스스로 세운 다짐이 있다. 온전한 협응을 위해 미지의 수로 남아 있던 활동지원사의 자리에 문득 나타난 χ, 가 있다. 먹고 싶은 반찬을 미리 물어보는 χ, 어느 길로 가고자 하냐고 갈림길에서 항상 물어보는 χ,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끊임없이 묻는 χ, 어떻게든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χ, 를 만난 뒤 선택할 수 있게 된 매 순간들이 있다. 없지 않고 있다. 그와 χ, 가 함께 협응하여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 스스로 운전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전동 휠체어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던 혀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 ‘아~’ 하고 발성 연습을 하던 매일 아침이 있다. 혀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면서 여태 뱉어 내지 못하던 가래를 뱉어 내고, 닦을 수 없었던 안쪽 이를 닦을 수 있게 그와 χ, 가 협응한 나날들이 있다. 그, 시간이 없지 않고 있다.
14일
그, 가 있다.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그냥 어쩌다 미래를 만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는 밤 9시까지 공부하고 글을 쓰며 노들야학 학생, 으로 있다. 장애 해방을 발언하는 투쟁 현장에서 “내일의 장애 해방을 위해 오늘은 투쟁합시다!”라고 말하는 장애권리옹호활동가, 로 있다.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 ‘자립생활권’을 요구하며 “더 이상 우리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하는 서울시장 경선 후보, 로 있다. 국회에 국정 감사 참고인으로 올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나도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증언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로 있다. 〈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라는 영화로 박종필 감독상을 받기도 한 영화감독, 으로 있다. 있다. 없지 않고 무수히 있다. ‘장애인’이라는 납작한 단층의 이름으로 분류되고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장애권리옹호활동가-서울시장 경선 후보-노동자-참고인-영화감독이라는 두꺼운 이름들로 있다. 앞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될 미래 시제의 이름들이 기다리고 있다.
15일
그, 의 “인생은 –장전된 총처럼- 서 있다”
- 에이드리언 리치, 〈며느리의 스냅 사진들〉 중에서
16일
그의 말, 은 “참아야 하는 것, 금지당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도움받아야 하니 “참아야 한다”는 침묵 속에 갇히고, 이미 존재 자체로 폐를 끼치고 있으니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수치심에 갇히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는 고립에 갇히고야 마는 설계된 침묵이었다.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그들에게 우리는 귀찮은 존재, 조용히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서 “침묵은 우리를 기죽이려고 권력이 우리의 고통에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조용히 잠자코 있으라는 지배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침묵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지배 권력이 설계한 이 거대한 침묵의 도면 속에서 “항복하지 않는 사람, 저항하는 사람, 존엄을 지닌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우리 모습 그대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것”[ref]
마르코스, 윤길순 옮김(2002),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해냄, 216~423쪽.[/ref]을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말은 우리의 무기”가 된다고 한다.
철학자 들뢰즈/가타리는 도구와 무기를 구분하면서 무기는 투척(projection)적인 것으로 “던지거나 던져지는 것 등은 전부 무기”라고 한다. 무기는 “투사적 용법”으로 활용되는데 이는 치아파스 선주민들이 “우리는 말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라는 문장과 이어진다. 그, 의 말에 응답하려 들지 않던 세계를 향해 말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침묵을 깨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을 때, 직접 연출한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다닐 때 “투쟁은 정말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ref]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2001), 《천 개의 고원》, 새물결, 759~775쪽.[/ref] 침묵의 내부로 쌓이는 말이 아니라 밖으로 말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모든 것은 무기가 되었다.
17일
장애인권교육 교안 중간 발표 날. 말한다는 거. 장애인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 해방을 ‘향해’ 말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말자.
18일
중간 발표가 끝난 다음 날, 가벼운 평가 회의를 했다. 그, 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궁금하다고 했다. 대화하면서 장애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싶다, 고 했다.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듣고, 말하며 대화하는 게 교육 아니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대화를 좀 이끌어 달라고 제안했다. 어떤 대화 주제가 좋을지 물었을 때, 그, 는 장애인거주시설과 학교가 어떻게 닮아 있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장애인거주시설과 학교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와 χ, 는 장애인거주시설과 교육 시설은 질서 정연하게 짜여 있는 시간표 안에서 반복되는 시간의 패턴이 닮았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도 닮았다고 했다. 장애인들에게 재활을 요구하고 질병 없는 미래를 심어 주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데, 학생들에게 졸업 이후의 미래를 기다리라고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습도 닮았다고 했다. 나는 가격당한 듯, 이반 일리치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불구화(disabling)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던 것이 떠올랐다. 의료 시설이 병을 만들고, 학교 시설이 교육을 망친다, 라며 호소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이거다. 좋다. 공부해 보자.
19일
청소년들과 나눌 만한 장애인권교육 대화 주제들을 떠올리다가 그와 χ, 가 교육을 진행하는 핵심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고 했던 것에 다소 골몰해졌다. 그러고 보면 노들야학 신입 교사 참관 수업으로 들어갔던 모든 수업에서 안부를 묻는 대화 시간이 진행되었다. 어떤 수업에서는 안부 묻기의 대화가 길어져 1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고, 어떤 수업에서는 5분 정도 짧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화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수업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참관한 모든 수업에서 이러한 안부를 묻는 대화가 마치 노들야학 전통 의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또 한번은 신입 교사 연구 수업을 마친 나에게 한 선배 교사는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같이 대화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라고 생각해 봐도 좋겠어요”라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노들야학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 그, 가 장애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데 있어 ‘대화’를 중점에 두고자 한 것도 노들야학이 교육적 무의식으로 지니고 있는 ‘대화 중심 교육’이라는 방법론을 몸소 터득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노들야학 책꽂이에는 해방의 민중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이 곳곳에 꽂혀 있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대화 :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이라는 목차가 나온다. 학생-교사는 단순히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교육은 처음부터 혁명적 ― 다시 말해 대화적 ― 이어야만 한다”[ref]파울로 프레이리, 남경태 옮김(2002), 《페다고지》, 그린비, 89~110쪽.[/ref]고 말한다.
그 옆에 나란히 꽂혀 있는 노들야학 공동교장 천성호의 700쪽이 넘는 책을 펼치면 노들“야학은 단순히 교육하는 공간에 더해서 타인과의 만남의 공간, 대화의 공간, 공동체의 공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이 대화적 교육 공간에서 “자유를 향한 여정”이 “장대하게 펼쳐진”[ref]천성호(2009), 《한국야학운동사》, 학이시습, 677~711쪽.[/ref]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프레이리와 천성호는 여러모로 나란한 점이 있다.
20일
“이 말들, 이 속삭임, 이 대화/ 이따금씩 진리가 촉촉이 푸르게 터져 나오는”
- 에이드리언 리치, 〈침묵의 지도〉 중에서
21일
비가 쏟아지는 아침. 머리칼 끝에 빗방울을 매달고 있는 그가 의 2심 항소를 위해 탄원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 재판? 재판이라고? 무슨 재판받을 일이? 뭐가? 있어서? 1심에서 집행 유예 2년을 받았는데, 2심 항소를 준비하면서 자필 탄원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2심에서도 집행 유예 2년이 나오면 χ, 의 활동지원사 자격이 박탈당한다고 했다. 자격 박탈? 갑자기? 집행 유예 2년? 관련 자료들을 저녁에 보내 줄 테니 참고해서 다음 주까지 자필로 탄원서를 좀 부탁한다고 했다. 재판, 항소, 집행 유예 2년, 활동지원사 자격 박탈과 같은 단어들이 너무 뜻밖이어서 사건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A4 용지 13장에 빼곡히 적힌 탄원서와 각종 발언문이 도착했다.
22일
2019년 성일장 여관이 자리한 구리 인창 C구역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 ‘뉴타운’ 사업이 있다. 지하 6층~최고 42층 높이에 총 1,180세대 대규모 건설 계획이 있다. 2020년부터는 재개발 사업이 확정되면서 “지금 투자하면 만사형통”, “서울역 강남역 30분 쾌속 교통”, “내 집 마련 마지막 기회로” 뉴타운 투자를 유도하는 광고문이 있다. ‘대’규모 주거 복합 ‘프리미엄’ ‘대’단지 롯데‘캐슬’이 있다. 재개발 아파트 프리미엄만 4억 원에 달한다는데, 고작 6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통지서가 있다. “여기서 죽나, 길거리에서 죽나 어차피 죽는 건 똑같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그, 의 어머니가 있다. “세 사는 주제에, 거지 같은 년이, 안 나간다고!” 욕설을 퍼붓는 재개발조합장이 있다.
2020년 마지막 날 겨울 방학식을 마친 그와 χ, 는 성일장으로 향하고 있다. 싸우는 어머니의 곁을 지키겠다고 마음먹고 성일장에 도착한 그, 가 있다. 재개발조합 사무실 앞에서 “니들이 포크레인으로 나를 내리찍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구리시청 앞에서 “죽을 수는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사거리 교차로에서 “인간답게 사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하는 그, 가 있다. 없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강제 철거가 본격 시작된 2021년 3월이 있다. 모든 집과 상가, 식당들을 주저앉히고 있는 포크레인이 있다. 함께 주먹을 쥐었지만 견디지 못해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른 채 성일장 옥상으로 모이고 있다. 철거 용역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구에 ‘봉고차’를 주차시킨 뒤 움직일 수 없게 시멘트를 발라 둔 자동차 바퀴가 있다. 안으로도 들어올 수 없고,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꽃피는 3월의 봄날이 있다. 옥상 화분에 뿌린 상추씨와 대파씨가 있다. 옥상 한편에 모아 둔 깨진 돌무더기가 있다. 강제 집행이 들어올까 봐 2시간씩 돌아가며 깨어 있던 새벽이 있다. 깨진 돌을 손에 쥔 듯 잠들어 작은 소리에도 자주 깨던 밤들이 있다.
주변의 건물들은 차례로 철거되고 있다. 이제 용역들이 밀고 들어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5월의 긴장이 있다. 강제 집행하겠다고 예고한 날이 3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조합 측에서 강제 집행을 위해 ‘스카이차’와 포크레인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성일장 바로 앞 건물을 모두 헐어 내고 진입하기 쉽게 땅을 다지고 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집회 신고를 하러 가는 χ, 가 있다. 5월 26일, 집회 신고를 하러 간 χ, 를 긴급 체포한 구리경찰서가 있다. 긴급 체포 사유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용역 깡패들이 사용할까 봐 주워서 한쪽으로 치워 둔 쇠파이프 3개와 벽돌 2개를 합해 총 25만 원어치를 훔쳐 갔다는 특수절도. 세상에 이런 특수 혐의도 있다.
23일
χ, 가 긴급 체포된 것을 시작으로 용역들이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 올 것이다, 는 소식이 있다. 그, 가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라는 꿈이 시작된 자리에 함께 있던 야학 교사 천성호는 27일 새벽 4시 택시를 타고 성일장으로 향하고 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선 용역을 뚫어 내고 그, 를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옥상으로 오르는 새벽이 있다. 아침이 시작되자 성일장 앞에 마지막 남은 건물들을 부수는 포크레인이 있다. 이제 성일장만 남아 있다. 28일 “공권력을 오남용하고 있는 구리경찰서를 규탄한다!”, “구리경찰서는 지금 당장 활동지원사 χ, 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를 취소하고 즉시 석방하라!”라는 요구가 담긴 5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의 공동 성명이 있다. 용산 참사 유족들이 보내 온 탄원서도 있다. 5월 31일 구리시장의 “용산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라는 발언으로 시작된 협상이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법원은 χ, 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했고, 구속된 지 일주일 만에 검찰에 송부되었고, 의정부 법원으로 넘어갔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었다. χ, 의 면회를 간 교사 천성호가 면회 신청서 뒷면에 받아 적어 온 χ, 의 말이 있다. “그, 는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있어서 버티고, 숨을 쉬고 있어요. 제발 그, 의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24일
재판이 진행되던 와중에 철거대책위원회와 조합 측 사이에 성사된 극적인 합의가 있다. 6개월 만에 성일장 옥상에서 내려오는 그, 와 어머니가 있다. 망루의 심장을 나누어 가진 그들, 이 있다. 이후 1심에서 실형 8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고 3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χ, 가 있다. 깨진 돌의 심장을 나누어 가진 그들, 이 있다.
25일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탄원서를 7장 넘게 꾹꾹 눌러 쓰는 동안 꽃다지가 부른 〈동지〉를 반복 재생해서 들었다. 내가 즐겨 듣는 민중가요인 〈동지〉의 1절 후렴은 “사랑/사랑/영원한 사랑”인데 이와 나란히 같은 자리에 2절 후렴은 “투쟁/투쟁/영원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투쟁’이라는 단어의 질량을 같은 후렴의 자리에 둔 이 노래를 나는, 투쟁이란 이 세계를 열렬히 사랑하는 방식이다, 라고 듣는다. 그와 어머니 사이, 그와 성일장 사이, 그와 활동지원사 사이, 그와 교사 사이를 떠도는 노래로 듣는다. 브라질의 시인 티아고 데 멜로는 〈무장된 사랑(armed love)〉이라는 시에서 “사랑은 언제나 지켜 내야 하는 / 사랑할 권리”로 있음을 말한다. 이때 사랑은 하나의 권리로, 사회적 층위에서 발화된다.
야학 교사 천성호는 자신의 삭발 결의문에서 “장애인들,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비참하게 놓이지 않게 함께 싸우는 것이 무장된 사랑이며 세계를 변혁시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학교라는 곳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 배움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해야 하며 “학교를 넘어 사람을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ref]천성호,“당신과 나의 해방이 맞닿아 있기에”, 〈비마이너〉, 2022년 4월 21일.[/ref]고 발언한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진보적 교사의 자질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겸손, 용기와 더불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한 사람의 교육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위자이기도” 한 존재로서의 교사들에게 말을 건넨다. “교육자들에게 일종의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그들 직업은 부정적인 면들을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쥐꼬리만 한 봉급과 교사들에 대한 홀대와 정부의 멸시와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교사는 자식을 양육하는 부모가 아니라,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교원노조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저항 활동을 하고, 그 때문에 처벌받더라도 여전히 학생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싸우고, 고발하고, 선언할 권리와 의무를 믿는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 즉 ”무장된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진보적인 교사에게 꼭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형태의 사랑입니다”[ref]파울로 프레이리, 교육문화연구회 옮김(2001), 《프레이리의 교사론》, 아침이슬, 115~116쪽.[/ref]라고 한다. 이것이 무장된 사랑. 이 사랑은 선량하지 않다. 오히려 이 사랑은 시시때때로 무시무시하다.
한편, 주디스 버틀러는 “연대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이 살고 싶어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이 살아 주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살고 싶어 하기를 바란다. 부디 나의 소망을 당신의 소망으로 삼아 주기를, 당신의 소망이 이미 나의 소망이 되었으니까”라고 말하는 방식이 될 때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든 사랑에 빠져 있든” 혹은 “분노하는 사랑이든”[ref]주디스 버틀러, 김정아 옮김(2021), 《비폭력의 힘》, 문학동네, 255쪽.[/ref] 우리가 서로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있음을 살아 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탄원서의 마지막에 “이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저는 그들로부터 완전히 다시 배웠습니다. 재판장님,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쓰고 그, 에게 건넸다.
26일
장애인권교육이 며칠 안 남았다. PPT를 만들어야 한다. 이곳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내일은 지하철 선전전에서 야학 학생의 삭발 투쟁이 있는 날이니, 일단 퇴근하자.
27일
“장애인도 시민으로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가면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삭발 결의를 밝힌 노들야학 학생이 한가운데 있다. 그 머리에 “장애인권리예산쟁취”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장애해방활동가가 있다. 그 뒤로 잘린 머리칼을 담은 작은 삭발 투쟁 상자를 가슴팍에 안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옆으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오체투지 투쟁을 결의한 그, 가 있다. 그, 를 안고 휠체어에서 내리는 χ, 가 있다. 그 뒤로 야학 교사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 섞인 탄식이 있다. 그 앞에는 한 달 전 삭발한 야학 교사 천성호의 손에 쥔 마이크가 있다. 그 위로 “장애인철폐연대 시위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고 잘못 말하는 안내 방송이 있다. 그 배후에는 장애인차별철폐가 아니라 장애인철폐를 하겠다는 연대체로 기획재정부-서울교통공사-경찰청이 있다.
“출입문이 열립니다.” 그 밑으로 초속 1cm로 기어서, 기어서, 기어이, 기어서, 기어서, 기꺼이, 기어서, 기어서, 기대어, 기어서, 기어서, 기어코, 기어서, 기어서, 기필코, 기어서, 기어서, 기어서 출입문을 향하는 그, 가 있다. 그, 의 뒤로 우리는 무리 지어 혜화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으로 초속 1cm 속도로 행진하고 있다. 메모장을 펼쳐 ‘이곳이 장애인권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교실이다’라고 메모하는 손이 있다.
28일
그, 가 앓아누웠다, 는 소식.
29일
그, 의 앞에 뒤에 옆에 위에 안에 함께 열차에서 무리 지어 있던 사진을 프린트하여 책상 앞에 두었다. 비장애중심 질서 속에 손쉽게 사물화, 비인간화, 비존재화로 그림자가 되어 방구석과 시설에 배치되어 주체로서 출현할 수도 없던 이들이 모인 무리. 권리를 가질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주장하며 출근길 지하철에 나타난, 출현한, 등장한 무리. 아, 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권리 예산을 말하면 지금은 무리, 야 하고 20년 넘게 똑같은 대답만 하는 세계를 향해 초속 1cm로 행진하는 무리.
“도래할 민중은 무리 속에서 태어난다.”(우노 구니이치) 무리로서 우리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도 아니고 분리되는 것도 아닌 그 사이, 틈새, 교차점”(로리 에릭슨) 속에 있다. 이때의 “우리는 단수이자, 복수이며, 온전한 그도 아니고, 그들도 아닌 것으로 말한다.”(앨리슨 케이퍼) 그 “무리들(meute)은 끊임없이 상대방 속으로 변형되어 들어가며, 서로 상대방 속으로 이행”하며 “감염에 의해서 형성되고, 전개되며, 변환된다.”(들뢰즈/가타리) 우리가 무리 지어 공통의 언어를 함께 말할 때, 장애/불구라는 개념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동맹과 연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따개비들이 전함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떼어 내고 떼어 내도 사라지지 않듯, 비장애중심주의라는 모면할 수 없는 생존 조건 속에서도 떼어 내고 떼어 내도 사라지지 않고 “집단행동이라는 험하고 짜증스러운 길, 운명의 그림자 길로 다닐지라도, 슬픔과 울분의 한복판에서 생존을 입증/시위”(주디스 버틀러)하며 살아 낸 역사가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싸우면서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면서 힘을 고양시키는 싸움이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병신이어도 당당한 병신”(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들의 싸움이자,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장애여성공감)가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없지 않고 있음을 안다.
30일
장애인권교육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권리,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거. 투쟁, 이 세계를 열렬히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거. 사랑, 함께 말하고 선언하며 무장된 언어로 이어지고자 하는 거. 이어짐, 보고 질문하고 듣고 응답하는 끈질긴 언어/비언어 대화 속에 희미하게 발생한다는 거. 대화, 교육의 철학이라는 거. 철학, 깨진 돌의 심장을 나눠 갖는다는 것. 지난 한 달간 그, 에게 하루하루 저격당하며 나는 배웠다.
31일
장애인권교육 날. 서울시 강서구의 어느 중학교 정문에서 만났다. 닫힌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후문으로 향했다. 나는 인도로 먼저 걷고, 그, 는 좁고 울퉁불퉁한 인도로 올라올 수 없어 차도로 걸었다. 그, 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미래의 도면을 생각하며 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는 인사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온 경험이 없습니다. 중증장애인인 저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건물은 내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들어가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랬던 학교 건물에 깊숙이 들어와 학교의 심장과도 같은 학생분들에게 제가 뭔가를 얘기하러 여기에 있네요. 여러분들을 학교에서 만나게 된 이 자리가 저에겐 정말 영광이고, 이 순간은 제가 죽을 때 간직하고 갈 하나의 중요한 명장면일 겁니다”라고 인사하는
그, 가 있다. 없지 않고 있다.
노들야학 30주년 책 《노들바람》 출간
노들야학 30년의 찬란한 이야기들을 찌그렁빠그렁하게 조각 모음한 책 《노들바람》이 출판되었습니다. 세상이 망해도 끝끝내 살아남을 학교, 끊임없이 싸우는 학교, 거침없이 시대와 불화하는 학교, 쉴 새 없이 미래의 시제를 개발하는 학교, 전 세계를 뒤져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교. 노들야학의 30년 이야기가 노란색 표지 안으로 나란히 담겼습니다. 가까운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