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후속/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혁신교육] 열린교육과 혁신교육, 교육 개혁 운동은 지속 가능한가? (정용주)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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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 혁신교육


열린교육과 혁신교육, 교육 개혁 운동은 지속 가능한가?


정용주

edcom234@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초등 교사


진보주의 교육의 이란성 쌍생아


김영삼 정부에서 열린교육이 확산 일로에 있던 1997년, 열린교육의 최고 권위자였던 이돈희 교수는 열린교육의 방향성을 ‘지양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먼저 지양해야 할 것으로는 획일성, 기계적 학습, 권위주의적 교사 주도식 교육, 타율적 통제식 훈련, 학습 기회의 불평등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지향해야 할 것으로는 인간 본연적 가치 존중, 총체적 성장, 개별화 교육, 공동체적 삶의 경험, 자율성과 창조성을 제시하였다. 이 밖에 교육 과정 재구성과 교사의 자율성, 학교 공간의 재구조화, 협력 학습, 다중 지능 학습, 프로젝트 학습, 교과 통합 학습 등 학생 주도적 학습, 학생의 성정을 돕는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돈희 교수가 당시 제시한 열린교육의 방향은 ‘작은학교운동’의 불씨가 되어 경기도교육청의 핵심 사업으로, 그리고 진보 교육감의 핵심 교육 정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확산된 혁신학교운동이 추구하는 방향과 매우 유사하다. 아니, 다소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이 동일하다. 지금 혁신교육과 관련하여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미 열린교육에서 다 나왔던 이야기다. 추진 방식에서, 현장 교사들의 실천으로 출발했다는 것과 해외의 교육 개혁 사례를 소개하며 중앙으로부터 전국으로 확산시켰다는 것, 그 점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나는 열린교육이 확산되던 시기에 나온 각종 자료를 찾아 “열린교육”이라는 단어를 “혁신학교”로 바꾸고 지금 그대로 출판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열린교육과 혁신교육은 추구하는 방향이 같다는 점 말고도, 중앙 정부나 교육청의 사업이 되면서 문제점도 공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이 지속 가능성 문제다. 선출직인 교육감이나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교사가 5년마다 학교를 옮기는 것이 상수라는 측면에서, 교육 행정 기관이 가진 관료성과 학교와 교육 행정 기관의 관계가 법 제도적으로 특별히 개선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혁신학교 정책이 10여 년을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열린교육 정책이 한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진 이유를 검토하면서 혁신교육,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게 될 교육 개혁 움직임의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교육 개혁 담론이 정태적인 제도들의 집합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 교과, 교과서, 교사가 중심이 된 형식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출되고, 재건되며, 진화하는 실천 과정이라고 할 때, 교육 개혁이 실행되는 맥락에 대한 검토는 중요하다.



비규칙적 규칙성 irregular regularity 을 찾아서


미국의 ‘OPEN EDUCATION’과 맥락을 같이 했던 열린교육은 한국에 1986년 도입되었다. 당시 교과로 구조화된 학교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비구조화된 교육을 추구하는 흐름이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들과 사립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구체적으로는 학습 내용과 과정의 결정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적극 참여, 인간적이며 개방된 따뜻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공간 재구조화, 학습 상황에 대한 다양한 진단, 교수 학습의 재구성과 개별화 교육, 지필화된 평가의 지양, 교사들의 전문적 성장 기회 추구(교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동료성 구축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이 구체적 목표로 설정되고 실천되면서 점차 공감대를 이루었다. 특히 학생은 교사의 시야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학생이 주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탐구하는 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핵심을 이루었다. 자연스레 협력 학습, 다중 지능 학습, 프로젝트 학습, 교과 통합 학습 등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제도적 영역과 연결되면서 김영삼 정부에서는 이돈희 교수의 주도로 열린교육이 국가 교육 개혁의 핵심 정책이 되었고,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지금은 중앙 정부가 주도한 실패한 교육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 열린교육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되었고 제도권에서 다양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내 생각에 혁신학교와 관련된 지금의 연구가 주로 교사들의 현장 실천 사례와 일반화에 맞춰져 있다면, 열린교육과 관련한 연구는 효과성 연구, 시설에 대한 연구, 교사 성장 연구 등 갈래가 다양했다. 특히 교육개발원의 〈초등학교 열린교육 효과 평가 연구〉[강계남·이은실(1998)] 보고서는 열린교육에 대한 의미 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열린교육의 단기적 효과로 학업 성취도 평가, 정의적 영역 평가, 다중 지능 평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열린교육 실시 후 학업 성취도, 사고력, 창의력이 높아진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교사 중심 진도 나가기 교수 방법을 실시한 집단에 비해 학생의 성취도가 높아졌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 밖에도 자아 개념, 학업 태도, 학습 습관, 자아 통제력, 귀인 성향 등 정서 영역에서도 눈에 띄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으며,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에서 열린교육의 효과가 크다는 결과도 소개되었다.


장기적 효과는 초등학교에서 열린교육을 경험한 학생이 중학교 이후 학교생활에서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서도 열린교육은 긍정적 결과를 보여 주었다.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들이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적용력, 문제 해결력, 개방성,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등에서 일반 학교에 다닌 비교 집단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는 혁신학교 효과성 연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효과이다.


파급 효과에서도 의미 있는 내용이 있었다. 열린교육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을 넘어 교사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열린교육을 경험한 교사들의 교직에 대한 생각, 아동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학생 중심 교육에 대한 관심 증대, 교사의 역할과 자질 개선, 다양한 학습 평가 방법의 도입, 교육 방법의 다양화는 지금의 혁신교육에서도 중요한 파급 효과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열린교육 정책의 영향으로 학교 경영 방식의 민주화와 교사의 학급 운영이나 교육과정 운영 방식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비형식 교육은 학습자, 교사의 자율성을 넘어 자율, 분권, 자치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혁신학교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나타났다.


시설에 대한 높은 관심도 있었다. 열린교육을 통해 시설을 공간으로, 공간을 장소로 인식하려는 흐름들이 형성되면서 교육 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열린교육을 이야기할 때 교실 벽을 부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오늘날도 회자되는데 교육 공간이 시설을 넘어 하나의 공간이며 장소이고,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의 변화는 공간의 배치와 변화를 반드시 수반한다는 열린교육의 성찰은 혁신교육에서는 공간 참여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뒤늦게 사고되었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열린교육을 통해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 향상, 워크숍 참여 증가, 자료 제작 능력 향상, 다양한 수업 방법 시도, 교사 간 정보 교환 활성화, 다양한 학업 성취 평가, 교사 자긍심 고양, 교사 전문성 자각, 학생 개인차 고려한 교육 실시, 학생 흥미 적성에 적합한 교육 실시, 학생 개성 존중 분위기 확산 등이 이루어졌다.



교육 개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질문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열린교육을 경험한 학생들은 일반 중학교에서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애로를 겪는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학부모나 교사들이 학생들을 진도 나가기 수업과 입시에 집중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을 보면 지금 혁신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비틀즈 음악이 미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나게 퍼졌을 때, 서태지 음악이 한국 청소년들의 공감을 받을 때 교사, 학부모 들이 취했던 태도가 겹쳐지기도 했다. 물론 보고서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업 방식 연계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중학교, 고등학교로 열린교육의 확산을 제언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열린교육 정책에 대해서 교사보다 교장들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대목이다. 이는 혁신학교의 경험과 비교할 때 다소 의아한 것이다. 공간 재구조화를 포함해 형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에 대하여 어쩌면 보다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던 열린교육을 찬성했던 교장들이, 내용과 방향이 동일하고 그 문제점까지 대부분 겹치는 혁신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정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이상해 보인다. 교장 대부분이 교총 소속이고, 열린교육 정책을 추진한 김영삼 정부가 형식적으로는 노태우 정부의 뒤를 이은 정권 재창출이었기에 보수 정권의 교육 정책으로 인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즉, 혁신교육은 교육감 직선제라는 제도와 이를 통해 당선된 진보 교육감을 통해 실행되는 교육청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정책이라도 전교조나 진보 진영에서 하면 과격하고 보수에서 하면 의미 있는 교육 개혁이 되는 현실을 보면서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만약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스타이넘은 남성 지배 문화에서 만약 남성이 생리를 한다면 온갖 과학적 이론을 끌어들여 생리와 남성 지배를 연결시키고 정당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의 모습이 한국의 교육 개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를 정점으로 하여 전두환 정권부터 나온 대통령 자문 기구 교육위원회의 보고서에서는 혁신교육이 추구하는 교육의 비전이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의 교육 정책을 특정 단체가 지지하여 당선되어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이유로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유사한 교육 개혁의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이념적·진영적으로 구분하는 모습은 향후 교육 개혁의 지속 가능성을 어렵게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 개혁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가 있다. 대부분의 현장 교사들은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이나, 교육청이 현장과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 개혁 모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면서 등장한 논리가 교육부와 교육청이 현장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권의 실추와 위축이라는 표현도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현장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이라는 혁신교육의 이상도,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탄압이 아닌 현장 교사와 학부모들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학습자 주도성처럼 교사의 자율성도 의지가 아닌 학습을 통해 길러져야 하는 능력이라고 할 때, 국가 수준 교육과정, 입시, 5년 주기의 정기 전보라는 암초를 넘어 이러한 이상이 학교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이러한 여러 조건들은 ‘자율성을 가지면서 교육 개혁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현장 중심 교육 개혁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의 질문을 던져 본다.


질문 1. 왜 특정 지역에서는 혁신학교 지정을 거부하는가?

질문 2. 교육학자들이 혁신교육에 대해 열린교육 때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 3. 왜 교사들은 혁신학교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가?

질문 4. 교육청의 정책 실행 방식은 어떻게 변했는가?


30여 년 전 열린교육의 경험과 10여 년간 진행된 혁신교육의 경험에 비추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해 봐야 한다. 이는 학교교육의 문법과 교육 개혁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건드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 우리가 이러한 질문들을 포함하여 혁신교육이 놓여 있는 상황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고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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