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
- 대학 수강 신청으로 비춰 보는 고교 학점제
글
강혜경
hyeg.kang@gmail.com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살짝 길을 돌아가 보자. 대학이 밟아 온 길을 따라가다가 그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넘어다보면, 고교 학점제가 결국 다다를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고등학교의 변화가 대학의 변화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테다. 하나, 대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 한국 사회 내 대학의 모습은 고교 학점제의 가능한 미래 중에 현실에서 관찰 가능한 몇 안 되는 사례다. 짧은 글에서 대학의 모습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려운지라, 하나의 제도로서 ‘수강 신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2021년 2월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고교 학점제란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다.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자기 주도성이며, 이러한 제도 개정의 특징으로 “역량 기반 교육과정”, “학점 기반의 교육과정 유연화”, “학생 선택 중심 과목 구조 개편”을 들고 있다. 폭력적으로 축약해 보자면, 고교 학점제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생이 수업을 선택하는 수강 신청을 하여, 정해진 학점을 모두 채우면 졸업하는 방식이다.
이현(2018)은 고교 학점제가 가져올 학생 측면의 변화를 개별적인 수강 신청 및 자기 주도적 학습 관리, 진로 설계 및 적성과 흥미에 따른 과목 선택과 수업 선택 계획, 기존 학급공동체의 해체와 새로운 공동체 및 관계 형성, 자유로운 시간에서의 자기 관리 등으로 정리한다.❶ 바로 대학에서와 같은 모습이다. 지금부터 고교 학점제가 만들 변화 중 시간적으로 첫머리에 해당하는 수업 선택과 수강 신청이라는 문을 열고 대학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선택이 쉽지가 않다
대학생의 수업 선택은 일반적으로 수강 신청을 통해 이루어지며 대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수강 신청을 통해 수강할 수업을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교육과정을 설계하게 된다.❷
그런데 이 과정이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갈수록 복잡해진다. 개설 과목 수 자체가 많지 않아 수강 선택이라는 개념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편람에 나온 전공 강의 목록에 선배들의 추천 교양 과목 몇 개 정도를 추가하는 정도였던 시기를 거쳐, 복수 전공 및 부전공 확대며 학부제와 자유 전공 학부 등의 등장으로 과목 및 교육과정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최근에는 학기를 모듈형으로 운영하는 유연 학기제와 15~16주로 정해진 학기의 틀을 풀고 단기간에 이수하는 집중 이수제 등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늘어나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강화되었다.
많은 선택지 중에서 과목을 골라내는 일은 재학생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신입생은 말할 것도 없다. 수업 선택을 위해 교육과정과 이수 지침을 살펴보지만, 학점 개념도 낯설고, 총 이수 학점은 어마어마한 데다, 수업 앞에 붙은 전공 필수·전공 선택·자유 선택·핵심 교양·선택 교양(심지어 전선, 전필, 자선 등으로 쓰여 있다) 등은 암호 같다. 이거는 몇 학점 이상 들어야 되고, 또 저거는 몇 학점을 넘어서는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아예 1학년 1학기에는 학과별로 동일한 시간표를 짜서 일괄 수강 신청을 하는 학교들도 있을 정도다.
그럭저럭 이수 지침을 숙지하고 나면, 듣고 싶은 강의들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김광현 외(2019)는 수업 선택을 위해 참고하는 정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공식적 정보인 교양 및 전공 교육과정과 이수 지침, 강의 계획서의 내용, 대학의 공식 강의 평가 점수와 서술형 평가, 비공식적 정보인 친구나 선배들의 추천과 강의평, 학생 커뮤니티 서비스의 강의 평가, 교수님의 추천 등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의 추천이 절대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학생 커뮤니티의 강의 평가를 중요하게 참고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❸
그저 기준에 맞춰 하기만도 어려운데, 잘하기는 더 어렵다. 수강 신청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학생들마다 매우 다르고, 그에 따라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이효진 외(2017)는 좋은 과목 선택을 위한 기준을 5개 요인과 29개 항목으로 분류하며, 교양 과목의 경우에는 학습 편의성과 학습 기대 및 관심, 전공 과목의 경우에는 교수자 특성과 학습 편의성을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고, 둘 모두 강의 실용성 요인에 대한 고려가 가장 낮았다.❹ 다만, 3~4개 문항을 제외하고는 평균 3점을 넘는 관계로 학생들은 다양한 기준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수강 신청을 하고 있다는 함의를 끌어낼 수 있겠다.
키워드 - 학점, 시간, 무임승차
취업 원서를 쓰다 보면 대학 생활은 허무하게도 학점으로 남는다. 손쉽게 줄 세울 수 있는 학점이 취업 시 요구되는 필수 정보가 되다 보니,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왔다. 거기에 공정 채용,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 역시 취지와는 별개로 학점 경쟁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인기 과목은 언제나 수업이 널널하면서도 학점이 잘 나오는 강의다. 어차피 들어야 하는 전공 과목은 거의 정해져 있으니, 교양 과목은 힘 빼고 들어도 성적이 괜찮게 나오는 과목에 몰리기 마련이었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학습 편의성이 주요 기준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전공과 복수 전공의 확대로 인해 들어야 하는 과목들이 많아진 이후, 학생들은 전공 과목도 학습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 학습 편의성은 곧 시간의 문제다. 한 학기에 6~7과목을 듣는데, 모든 과목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업만 듣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아르바이트와 여가 시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는 심리적인 불안을 호소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패트릭 J. 드닌은 이른바 승자 독식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학생의 에세이를 소개하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생존주의자 본능을 따르는 능력주의자다. 맨 꼭대기까지 경주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바닥이 안 보이는 실패의 나락이다. 정상과 밑바닥,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믿을 경우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괜찮은 성적을 받는 정도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가 않다. 이는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다. 식당에 앉아 두세 시간 동안 ‘수다’를 떨든, 도덕적·철학적 쟁점에 관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든, 데이트를 하러 가든, 모두 꼭대기에 이르는 데 써야 할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나머지 모두에 비해 불리해질 것이다. (……)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단을 갖는 것이다.❺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죄책감을 덜 수 있는 한 방법은 ‘다른 일’을 삶의 바깥으로 추방하는 것이다. 이미 ‘N포 세대’라는 말은 오래된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하나 ‘4B운동’❻과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나의 시간을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부역하느라 낭비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성장과 야망의 실현을 위해 쓰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시간은 실패의 위험을 허용하지 않는다. 100%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하지 않는 방법뿐이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기준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예상이 어렵거나 불안정한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데,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단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업 선택 요소 중 조별 과제 유무가 주요 고려 사항이 된다. 김광현 외(2019)의 연구에서는 “팀 활동, 발표와 같은 학생 활동의 유무”가 공동 2위(평균 4.08)로 높게 나왔으며, 이효진 외(2017)의 연구에서는 교양 과목 학습 편의성 요인이 평균인 3.75보다 높은 3.89를 보였다.
조별 과제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무임승차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물론 만에 하나보다는 확률이 한참 높다) 무임승차자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조별 과제가 없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속 편하다. 작정하고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들 시간 빈곤자들이므로 적당히 눈치를 봐서 얹혀 가고 싶은 심사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럴 때 나서서 설득하는 것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며, 설득과 조율에 실패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은 탓이다. 이는 인간 관계 전반으로도 쉽게 확장된다. 예전 대학 문화가 가진 집단주의적 폐해(크게는 사발식부터 작게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러한 흐름은 ‘취향 존중’, ‘자발적 아웃사이더’ 등 오히려 긍정적인 개인성으로 여겨진다. 또한 무임승차는 쉽게 ‘공정’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다른 시간과 노력에 대해 똑같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임승차자를 조원으로 만난 학생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생각하기 일쑤다.❼
결국 수업 선택이란 이 모든 것, 특히 학점과 시간과 무임승차자로 대표되는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하여 이번 학기를 무사히 살아 낼 시간표를 만드는 일이다. 김광현 외(2019)의 분석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수업 선택 요소는 수업 시간대였다(평균 4.51). 그럼에도 매 학기 수강 신청 기간이 되면 SNS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망한 시간표 모음’, ‘시간표 빌런’ 등의 글이 올라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로, 선착순 수강 신청 때문에.
선착순이 최선은 아니지만
대학의 수강 신청이 지금 같은 모양새를 띠게 된 건 교외 온라인 접속으로 신청을 하게 된 2000년대에 들어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청서에 듣고 싶은 강의명을 적고 담당 교수나 조교의 사인을 받아 학과 사무실이나 학생처에 제출하는 방식이라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다른 학과 수업을 듣는 경우에는 그 학과 건물까지 직접 걸어가서 가끔은 눈칫밥을 먹으며 도장을 받아야 하는 괴로움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 맞춰 제출하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점차로 과목과 학생이 많아지며 수기 수강 신청서는 OMR 카드로 바뀌었고, 인기 강의 수강을 위해 교수의 연구실 앞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에 학내 인트라넷에 연결된 컴퓨터에서 수강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자, 전산실 앞에 장사진을 쳤다. 드디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어디서나 수강 신청이 가능해졌고, 이제 수강 신청 성공은 누가 얼마나 빠르게 클릭하느냐에 달렸다.
수강 신청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순서로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예전과 지금이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뵌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든다. 선착순은 과연 좋은 방식인가? 열의를 보일 수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신제품이나 한정판 구매를 위해 며칠 전부터 밤을 새우는 행위들과 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먼 지역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돈과 시간이 요구되었겠지만, 그것 또한 낭만이나 자랑으로 여겼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고생스럽게 줄을 서는 행위가 앞으로의 수업 참여와 대단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성실성과 열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제례인가도 싶다.
교외 온라인 신청이 가능해진 시점으로 오면, 선착순에 대한 의구심은 더해진다. 유명 가수 콘서트 티켓이며 명절 KTX 기차표 예매를 위해 ‘피켓팅’❽ 을 하는 것과도 비슷한 방식인데, 언뜻 보면 이는 매우 ‘공정한 경쟁’처럼 보인다.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서 몇 번의 클릭을 하면 되는 방식이라니, 다른 나라는 몰라도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에 깔린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모두의 출발선이 같은 달리기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거나 반응 속도가 빠르지 못하면 이 경주에서 이길 확률은 낮다. 그렇지 않더라도 순간의 머뭇거림으로 놓치기도 일쑤인데, 성공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정말로 순간이다. 도대체 여기에 어떤 성실성과 열의의 차이가 있는가? 이게 진짜 육상 경기도 아닌데.
선착순 역시 일종의 능력주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억울하면 1등 하라”와 비슷한 “억울하면 빨리 접속하라”라는 정언 명령을 갖는다. 능력껏 수강 신청을 성공하면 될 일이다. 제때 접속하기 위해 서버 시간을 알려 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모니터에 점을 찍어 놓고 빠르게 들어가는 연습도 한다. 이제는 거의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졌지만 클릭 자동화 매크로를 쓰기도 하고, PC방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동시 접속을 하기도 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억울함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고심했다. 한꺼번에 몰려 접속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강 신청만을 위한 별도 사이트를 구축하고, 학생 혹은 과목을 분류하여 접속하는 시간을 다르게 두는 제도를 도입했다. 다중 로그인을 금지하고, 매크로 방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매크로 적발 시 수강 내역 자체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선착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학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숙명여대는 2000년대부터 수강 확정식 수강 신청 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일단 1차 수강 신청 기간에는 선착순 없이 모든 신청자를 받은 후 정원 초과 과목에서 학년, 이수 학점, 성적, 전공 등을 기준으로 학생 별 우선 순위를 부여해 수강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선착순은 이후 수강 정정 기간부터 적용된다. 선착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여러 질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의의가 있다. 반면 카이스트는 2012년부터 교양 수업 등에 한하여, 수강 신청 정원을 초과한 과목에 대해 전체 무작위 추첨을 실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무 요소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평무사’하다. 그러다 2015년, 이른바 ‘연세토토’가 등장한다.
누구를 위한 ‘연세토토’인가
연세대학교는 기존 온라인 선착순 수강 신청 제도의 단점으로 특정 시점에 수강 신청의 수요자가 집중되는 현상 및 수강 신청과 관련한 비교육적 행태 등을 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2학기 부터 Y-CES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으로 접속하는 대신, 넉넉한 기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일정량의 마일리지(학기당 최대 수강 가능 학점의 4배)를 부여받고 수강 희망 과목에 이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후 기본적으로는 마일리지 양에 따라 수강 과목이 결정되는데, 장애 학생 여부, 과목 전공자 여부 등을 고려하여 우선 배정 순위를 부여한다. 정원이 초과되는 경우, 배정 순위에 따라 부여된 대기 순번을 통해 수강 신청 기간에 과목 조정이 가능하다. 대학 측에서는 Y-CES가 학생 본인의 결정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의 우선 순위 적용으로 학생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자평하며, 해당 시스템을 비즈니스 특허 출원할 예정이란다. 6년이 지난 지금, 기존 수강 신청 제도의 단점들은 해결됐다.
그럼에도 이것을 성공적인 제도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적된 단점들은 모두 선착순에서 비롯된 것인데, 선착순은 문제가 많은 제도이긴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부제 도입, 부전공 및 복수 전공 확대 등으로 전공을 무한정 열어 버린 후 그에 준하는 충분한 강의실과 과목을 제공하지 않은 탓이다. 또한 연세대의 보도 자료를 보면, 학생 편의가 아닌 대학 당국의 편의에 따른 것이 다분함이 드러난다. 학교에서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의 부하와 관련되는 선착순의 문제를 없애고, 수강 신청 이후 여석 조정 및 강의실 변경 등의 업무 부담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의 우선 순위”로 양화하여 학생들을 줄 세운 후 “불만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잘라 내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이를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합리적 기준과 절차가 우선시 되는 대학의 문화”로 상찬한다.
더욱이 우선 순위는 총 8개❾ 기준이 있는데, 숙명여대와 유사한 것 같지만 그 과목 신청자 전체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당 과목 신청자를 1줄로 세우는 계산법이다. 우선 순위 첫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을 마일리지를 중심으로 내림차순 한 뒤, 동점자가 나왔을 때 두 번째인 특수 교육 대상자 여부에 따라 아닌 사람을 뒷줄로 미는 것이다. 마일리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나머지는 약간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1~2점 차로 갈릴 수가 있으니 나머지 요소들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학생들의 입장이다. 이를 통해 대학 당국은 과목 수요 조사와 수요 예측뿐만 아니라 수요 조정 역시 학교의 책임에서 학생의 책임으로 성공적으로 넘겨 냈다. 결국 학생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마일리지를 어떻게 배분하고, 적절히 ‘배팅’하느냐에 달렸다. 학생들이 Y-CES를 ‘연세토토’, ‘연세카지노’ 등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것이 과연 PC방 대기보다 학생들의 시간을 줄여 주거나, 더 교육적인 방식인지 의문이다.
시간에 따른 수강 신청 제도의 변화를 밟아 오다 보니, 점점 더 학생들을 특정한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듦과 동시에 점점 더 학생들에게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도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고, 또 그에 맞춰서 변화하므로 제도가 놓여 있는 사회적 맥락을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기술 만능주의, 플랫폼 경제 등이 사회의 저변을 흐르고 있다. Y-CES가 나타나게 된 것 역시 점차로 효율화, 체계화되는 대학이 늘어나는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와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수강 신청 제도를 벤치마킹한 용역 및 구축 사업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도출해 낸 결과일 테다.❿ 선착순과 관련한 대학 당국과 학생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개선된 부분 역시 분명히 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착순만을 겨냥한 표면적 해결이라는 한계가 있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미명하에 공정성과 합리성의 의미를 또 다른 방식의 줄 세우기로 대치하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가 호명하는 것은 결국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비자 정체성을 가진 학생이다. 학생에게 이전보다 더 넓은 시간, 공간, 학점 선택의 틀을 열어 줄 테니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해 보라는 것. 그에 따른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비단 이 제도뿐인가? 한국 사회 전체가 주체를 소비자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학교는 세상이 이렇다는 걸 미리 알려 주고 대비시켜서 제일 앞자리를 향해 달리도록 궁리하라는 안배를 하는 것인가도 싶다.
제도의 작동 범위와 대상이 일대일로 비교할 만한 계제는 아니지만, 고교 학점제 역시 이러한 자장 속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교 학점제가 호명하는 학생과 교사
정혜진 외(2016)는 학습자를 다분히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주체의 역할로서 “소비자” 관점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음을 이야기한다. 최지윤 외(2010) 역시 현재 대학생들이 “선택적으로 강의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⓫ 수용자 연구가 곧 소비자 연구로서 다뤄지고 있는 것인데, 소통으로 다뤄져야 할 내용이 상품 유통의 관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학점제를 다룬 글들을 보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서봉언(2020)은 고교 학점제 연구·선도 학교의 담당 부장 교사의 “경영자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인터뷰를 인용하며, “고교 학점제 도입과 함께 교사들은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의 요구에 응답해(시장 분석) 과목을 개설 및 강의를 계획하고(제품 생산) 학생에게 안내(마케팅)를 해야 한다. 선택을 받지 못하면 폐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교사는 담당하는 학생의 진로(진학)를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학생의 진학에 필요한 수업은 적극적인 컨설팅 - 설득 - 을 해야 한다. 대체로 학생(소비자)은 교사(경영자)의 혜안을 믿는다.⓬
일련의 과정이 딱 들어맞는 것에, 새삼 이 구조가 매우 경영 친화적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물론 교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이윤 창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선택에 거의 정답과 가까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속적으로 학습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단지 경영자로 보기는 어렵다. 서봉언의 연구는 현실적으로 교사가 일정 정도의 경영자 마인드‘까지’ 갖춰야 이 제도가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다는 근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선택권은 학생에게 주어졌지만, 관리의 키는 여전히 교사에게 있는 상황이라는 것인데, 고교 학점제가 목표로 하는 자기 주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택에 따른 관리, 책임 등도 학생들에게 이양될 필요가 있음을 서봉언의 연구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교사가 경영자의 마인드를 갖추는 동안 학생들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위의 글들에서는 소비자를 능동적인 주체로 그리고 있지만, 많은 선택권이 곧 주체적인 역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는 생산에서 유리된 존재로, 이미 주어진 것들을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소비자에게 허용된 저항은 불매운동뿐인데, 이 역시 개별화된 소비자는 불가하다. 대학의 사례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선택권과 정보들을 주었을 때, 학생들은 점차로 개별화되었다.
고교 학점제 역시 모든 구성 요소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원자화로 흐르고 있다. 교실 단위, 학급 단위, 학년 단위의 해체는 정박할 수 있는 시각과 장소 없이 와해된 시공간에서 각각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여 길을 찾아 나가라는 요청이다. 배에 구멍이 났으니 막으면서 배를 저어 가야 하는데, 물이 차오른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을 망망대해에 던져 놓고 능력껏 튜브를 마련해 저 섬까지 가라는 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학교 밖에서는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의 자유 전공 학부는 그래도 괜찮은 튜브를 가진 친구들이라 조금 낫다. 노동은 외주화되다 못해 잘게 쪼갠 판자때기로 플랫폼의 바다에 던져지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고교 학점제는 플랫폼 경제와 ‘수저 계급’에 대한 체화와 같다.
이는 고교 학점제가 초래하는 교육과정 및 교사 수급 자체의 불안정성과도 맞닿아 있다. 김성천 외(2019)에서 밝혔듯, 현장에서 고교 학점제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점이다.⓭ 공통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운영하면 교육과정 및 교사 수급의 안정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교 학점제 도입 시에는 다양한 교과목 개설 및 이에 따른 전근, 순회 근무, 부전공 담당 등으로 안정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애로 사항이 발생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 교사 수급을 위해 결국 교·강사 비정규직화, 유연화, 플랫폼화의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 두고 보는 교사들이 적어지게 되면 학생 및 교육과정에 대한 적절한 개입과 관리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마련이다.
최종 목표는 학생 스스로의 선택과 관리라지만, 당분간 개별 학생에 대한 교사의 개입이 늘어날 상황에서 특정 교사의 업무 과중이 나타나거나 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대응 자체가 불가능할 소지마저 있다.
자유와 책임 - 제도가 닦아 놓은 길과 가로막는 길
다소 파괴적이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아 보았지만, 현장에서 고교 학점제의 파괴력에 대해서 그리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현(2018)은 교육부가 제시한 고교 학점제 정책이 일반 고등학교에서 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학교 시설 증축은 일부 학교에서나 가능할 것이며, 상담 교사 증원은 없을 것이고, 선택 과목 확대·학점제 등은 기존 이름과 단위를 변환하는 정도로 그칠 것이라 “소위 ‘무늬만 학점제’로 귀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 그리고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우리 교육 현실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도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 부작용을 만들었을 때에 없애기도 어렵다. 한번 나타난 제도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다른 상상력을 제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처럼 제도에는 구속성과 경로 의존성이 있으므로 도입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고교 학점제가 가리키는 방향을 꼼꼼히 따져 보며, 그 밑에 도사린 위험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다. ‘시공간에서 자유로운’, ‘학생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정은 곧 학교의 책임을 회피하고, 학생에게 무한 책임을 전가한다. 이제 학생은 과거의 경영자로서 자기 계발하는 주체도 되지 못하고, 나열된 상품을 가성비 계산에 따라 주어진 시간과 노력이라는 예산 내에 골라야 하는 소비자 주체로 호명된다. 이것이 제도로 만들어지고 난 후에는 원래 있었던 양 굴어 대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쥐어짜는 원자화된 개인, 시장 화된 학교와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연대와 변화에 대한 상상, 생산에 대한 사유는 가로막힌 채로 말이다.
물론 이는 대학의 모습을 통해 고교 학점제의 미래를 비춰본 하나의 비관적인 가정일 뿐이다. 대학의 사례로 하나의 거울상을 탐색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자유라는 이름하에 그저 놓아 두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업무 과중이 지적되고 있는 현실은 아마 당분간도 지속될 것인데,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도 도입 시기로 지정된 2025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가져올 최악의 경계를 더듬어 살피는 것은 하나의 대비가 될 수 있다. 현실이 비관적일 때에는 근거 없이 낙관하기보다는 비관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일 수 있다. 지금, 철저한 비관이 필요하다.
❶ 이현(2018), 〈고교학점제 도입 추진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교육비평》, 41호.
❷ 이효진 외(2017),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에 따른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학연구》, 23(4).
❸ 김광현·강성배(2019), 〈대학 신입생의 수업 선택과 좋은 수업에 대한 탐색적 연구〉, 《문화와 융합》, 41(6).
❹ 이 중 학습 편의성이란 ‘학습자가 강의를 수강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이나 노력(국어·영어 강의, 팀 프로젝트 여부, 과제의 양(횟수), 과제의 난이도, 학습에 필요한 시간·노력, 평가 방식, 출석 관리 여부 및 성적 반영 정도, 학점 부여 방식)’을, 강의 실용성이란 ‘학습자가 강의를 수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제 도움이나 가치[수강 인원, 권장 학년·학기(학수 번호), 교수자의 지위, 과목에 대한 사전 지식 정도, 진로 및 취업 도움도]’을 가리킨다.
❺ 패트릭 J. 드닌, 이재만 옮김(2019),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책과함께, 32쪽.
❻ 비(非)연애·비(非)성관계·비(非)결혼·비(非)출산 운동으로, 2010년대 말부터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한국 사회 가부장제에 저항하고자 결혼, 출산, 이성과의 연애, 성관계까지 거부하고,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또는 관계로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4B를 결심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부담이 여전히 여성 쪽에 편중되어 있으며,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등 이성과의 연애에서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운동 참여 이유로 든다.(《최신시사상식 20 집》, 박문각)
❼ 이러한 청년들의 사고방식은 김혜진(2020)의 글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다. 결국 이 대학생들이 원하는 미래인 청년 정규직이 ‘공정성’을 말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어서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시험으로 대표되는 양화된 점수로서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달린다는 분석이다. 이 시험마저 의미가 없다면 내겐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나의 노력과 고생이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요 요인으로 제시 한다.(김혜진(2020),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 벗)
❽ ‘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라는 뜻으로, 열차표나 공연 관람권 따위의 예매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일을 이르는 말.(네이버 오픈사전)
❾ ① 과목별로 높은 마일리지를 배분한 학생 우선, ② 특수 교육 대상자 우선, ③ 개설 학과에서 설정한 전공생 및 복수 전공생 우선, ④ 신청 과목 수, ⑤ 졸업(수료) 신청자 우선, ⑥ 초수강 우선, ⑦ 총 이수 학점/졸업 이수 학점, ⑧ 직전 학기 이수 학점/학기당 수강 가능 학점.
❿ Y-CES가 벤치마킹한 마일리지 사례들이 대부분 MBA의 것이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⓫ 정혜진·김경원(2016), 〈AHP를 활용한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8); 최지윤 외(2010), 〈온라인 강의 정보 탐색 및 수강신청 행동 분석과 개선안 : 서울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2010(1).
⓬ 서봉언(2020), 〈고교학점제 도입과 학교의 변화〉, 《교육사회학연구》, 30(3), 65쪽.
⓭ 김성천 외(2019), 《학교 교육의 성공적 진화를 위한 플랫폼 -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 맘에드림.
[참고문헌]
보도 자료
교육부, 〈2025년, 포용과 성장의 고교 교육 구현 :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 발표〉, 2021년 2월 17일.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획기적 수강신청제 ‘Y-CES’ 개발〉, 2015년 4월 1일.
논문 및 단행본
김광현·강성배(2019), 〈대학 신입생의 수업 선택과 좋은 수업에 대한 탐색적 연구〉, 《문화와 융합》, 41(6), 415~444쪽.
김성천·민일홍·정미라(2019), 《학교 교육의 성공적 진화를 위한 플랫폼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 맘에드림.
김혜진(2020),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벗.
패트릭 J. 드닌, 이재만 옮김(2019),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책과함께.
서봉언(2020), 〈고교학점제 도입과 학교의 변화〉, 《교육사회학연구》, 30(3), 55~79쪽.
이현(2018), 〈고교학점제 도입 추진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교육비평》, 41, 77~144쪽.
이효진·윤가영·박인우(2017),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에 따른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학연구》, 23(4), 79~99쪽.
정혜진·김경원(2016), 〈AHP를 활용한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8), 723~745쪽.
최지윤·이중식(2010), 〈온라인 강의 정보 탐색 및 수강신청 행동 분석과 개선안 : 서울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2010(1), 733~736쪽.
특집 /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
- 대학 수강 신청으로 비춰 보는 고교 학점제
글
강혜경
hyeg.kang@gmail.com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살짝 길을 돌아가 보자. 대학이 밟아 온 길을 따라가다가 그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넘어다보면, 고교 학점제가 결국 다다를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고등학교의 변화가 대학의 변화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테다. 하나, 대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 한국 사회 내 대학의 모습은 고교 학점제의 가능한 미래 중에 현실에서 관찰 가능한 몇 안 되는 사례다. 짧은 글에서 대학의 모습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려운지라, 하나의 제도로서 ‘수강 신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2021년 2월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고교 학점제란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다.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자기 주도성이며, 이러한 제도 개정의 특징으로 “역량 기반 교육과정”, “학점 기반의 교육과정 유연화”, “학생 선택 중심 과목 구조 개편”을 들고 있다. 폭력적으로 축약해 보자면, 고교 학점제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생이 수업을 선택하는 수강 신청을 하여, 정해진 학점을 모두 채우면 졸업하는 방식이다.
이현(2018)은 고교 학점제가 가져올 학생 측면의 변화를 개별적인 수강 신청 및 자기 주도적 학습 관리, 진로 설계 및 적성과 흥미에 따른 과목 선택과 수업 선택 계획, 기존 학급공동체의 해체와 새로운 공동체 및 관계 형성, 자유로운 시간에서의 자기 관리 등으로 정리한다.❶ 바로 대학에서와 같은 모습이다. 지금부터 고교 학점제가 만들 변화 중 시간적으로 첫머리에 해당하는 수업 선택과 수강 신청이라는 문을 열고 대학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선택이 쉽지가 않다
대학생의 수업 선택은 일반적으로 수강 신청을 통해 이루어지며 대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수강 신청을 통해 수강할 수업을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교육과정을 설계하게 된다.❷
그런데 이 과정이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갈수록 복잡해진다. 개설 과목 수 자체가 많지 않아 수강 선택이라는 개념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편람에 나온 전공 강의 목록에 선배들의 추천 교양 과목 몇 개 정도를 추가하는 정도였던 시기를 거쳐, 복수 전공 및 부전공 확대며 학부제와 자유 전공 학부 등의 등장으로 과목 및 교육과정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최근에는 학기를 모듈형으로 운영하는 유연 학기제와 15~16주로 정해진 학기의 틀을 풀고 단기간에 이수하는 집중 이수제 등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늘어나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강화되었다.
많은 선택지 중에서 과목을 골라내는 일은 재학생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신입생은 말할 것도 없다. 수업 선택을 위해 교육과정과 이수 지침을 살펴보지만, 학점 개념도 낯설고, 총 이수 학점은 어마어마한 데다, 수업 앞에 붙은 전공 필수·전공 선택·자유 선택·핵심 교양·선택 교양(심지어 전선, 전필, 자선 등으로 쓰여 있다) 등은 암호 같다. 이거는 몇 학점 이상 들어야 되고, 또 저거는 몇 학점을 넘어서는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아예 1학년 1학기에는 학과별로 동일한 시간표를 짜서 일괄 수강 신청을 하는 학교들도 있을 정도다.
그럭저럭 이수 지침을 숙지하고 나면, 듣고 싶은 강의들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김광현 외(2019)는 수업 선택을 위해 참고하는 정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공식적 정보인 교양 및 전공 교육과정과 이수 지침, 강의 계획서의 내용, 대학의 공식 강의 평가 점수와 서술형 평가, 비공식적 정보인 친구나 선배들의 추천과 강의평, 학생 커뮤니티 서비스의 강의 평가, 교수님의 추천 등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의 추천이 절대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학생 커뮤니티의 강의 평가를 중요하게 참고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❸
그저 기준에 맞춰 하기만도 어려운데, 잘하기는 더 어렵다. 수강 신청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학생들마다 매우 다르고, 그에 따라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이효진 외(2017)는 좋은 과목 선택을 위한 기준을 5개 요인과 29개 항목으로 분류하며, 교양 과목의 경우에는 학습 편의성과 학습 기대 및 관심, 전공 과목의 경우에는 교수자 특성과 학습 편의성을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고, 둘 모두 강의 실용성 요인에 대한 고려가 가장 낮았다.❹ 다만, 3~4개 문항을 제외하고는 평균 3점을 넘는 관계로 학생들은 다양한 기준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수강 신청을 하고 있다는 함의를 끌어낼 수 있겠다.
키워드 - 학점, 시간, 무임승차
취업 원서를 쓰다 보면 대학 생활은 허무하게도 학점으로 남는다. 손쉽게 줄 세울 수 있는 학점이 취업 시 요구되는 필수 정보가 되다 보니,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왔다. 거기에 공정 채용,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 역시 취지와는 별개로 학점 경쟁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인기 과목은 언제나 수업이 널널하면서도 학점이 잘 나오는 강의다. 어차피 들어야 하는 전공 과목은 거의 정해져 있으니, 교양 과목은 힘 빼고 들어도 성적이 괜찮게 나오는 과목에 몰리기 마련이었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학습 편의성이 주요 기준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전공과 복수 전공의 확대로 인해 들어야 하는 과목들이 많아진 이후, 학생들은 전공 과목도 학습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 학습 편의성은 곧 시간의 문제다. 한 학기에 6~7과목을 듣는데, 모든 과목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업만 듣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아르바이트와 여가 시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는 심리적인 불안을 호소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패트릭 J. 드닌은 이른바 승자 독식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학생의 에세이를 소개하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생존주의자 본능을 따르는 능력주의자다. 맨 꼭대기까지 경주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바닥이 안 보이는 실패의 나락이다. 정상과 밑바닥,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믿을 경우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괜찮은 성적을 받는 정도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가 않다. 이는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다. 식당에 앉아 두세 시간 동안 ‘수다’를 떨든, 도덕적·철학적 쟁점에 관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든, 데이트를 하러 가든, 모두 꼭대기에 이르는 데 써야 할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나머지 모두에 비해 불리해질 것이다. (……)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단을 갖는 것이다.❺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죄책감을 덜 수 있는 한 방법은 ‘다른 일’을 삶의 바깥으로 추방하는 것이다. 이미 ‘N포 세대’라는 말은 오래된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하나 ‘4B운동’❻과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나의 시간을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부역하느라 낭비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성장과 야망의 실현을 위해 쓰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시간은 실패의 위험을 허용하지 않는다. 100%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하지 않는 방법뿐이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기준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예상이 어렵거나 불안정한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데,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단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업 선택 요소 중 조별 과제 유무가 주요 고려 사항이 된다. 김광현 외(2019)의 연구에서는 “팀 활동, 발표와 같은 학생 활동의 유무”가 공동 2위(평균 4.08)로 높게 나왔으며, 이효진 외(2017)의 연구에서는 교양 과목 학습 편의성 요인이 평균인 3.75보다 높은 3.89를 보였다.
조별 과제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무임승차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물론 만에 하나보다는 확률이 한참 높다) 무임승차자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조별 과제가 없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속 편하다. 작정하고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들 시간 빈곤자들이므로 적당히 눈치를 봐서 얹혀 가고 싶은 심사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럴 때 나서서 설득하는 것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며, 설득과 조율에 실패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은 탓이다. 이는 인간 관계 전반으로도 쉽게 확장된다. 예전 대학 문화가 가진 집단주의적 폐해(크게는 사발식부터 작게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러한 흐름은 ‘취향 존중’, ‘자발적 아웃사이더’ 등 오히려 긍정적인 개인성으로 여겨진다. 또한 무임승차는 쉽게 ‘공정’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다른 시간과 노력에 대해 똑같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임승차자를 조원으로 만난 학생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생각하기 일쑤다.❼
결국 수업 선택이란 이 모든 것, 특히 학점과 시간과 무임승차자로 대표되는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하여 이번 학기를 무사히 살아 낼 시간표를 만드는 일이다. 김광현 외(2019)의 분석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수업 선택 요소는 수업 시간대였다(평균 4.51). 그럼에도 매 학기 수강 신청 기간이 되면 SNS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망한 시간표 모음’, ‘시간표 빌런’ 등의 글이 올라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로, 선착순 수강 신청 때문에.
선착순이 최선은 아니지만
대학의 수강 신청이 지금 같은 모양새를 띠게 된 건 교외 온라인 접속으로 신청을 하게 된 2000년대에 들어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청서에 듣고 싶은 강의명을 적고 담당 교수나 조교의 사인을 받아 학과 사무실이나 학생처에 제출하는 방식이라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다른 학과 수업을 듣는 경우에는 그 학과 건물까지 직접 걸어가서 가끔은 눈칫밥을 먹으며 도장을 받아야 하는 괴로움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 맞춰 제출하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점차로 과목과 학생이 많아지며 수기 수강 신청서는 OMR 카드로 바뀌었고, 인기 강의 수강을 위해 교수의 연구실 앞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에 학내 인트라넷에 연결된 컴퓨터에서 수강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자, 전산실 앞에 장사진을 쳤다. 드디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어디서나 수강 신청이 가능해졌고, 이제 수강 신청 성공은 누가 얼마나 빠르게 클릭하느냐에 달렸다.
수강 신청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순서로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예전과 지금이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뵌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든다. 선착순은 과연 좋은 방식인가? 열의를 보일 수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신제품이나 한정판 구매를 위해 며칠 전부터 밤을 새우는 행위들과 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먼 지역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돈과 시간이 요구되었겠지만, 그것 또한 낭만이나 자랑으로 여겼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고생스럽게 줄을 서는 행위가 앞으로의 수업 참여와 대단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성실성과 열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제례인가도 싶다.
교외 온라인 신청이 가능해진 시점으로 오면, 선착순에 대한 의구심은 더해진다. 유명 가수 콘서트 티켓이며 명절 KTX 기차표 예매를 위해 ‘피켓팅’❽ 을 하는 것과도 비슷한 방식인데, 언뜻 보면 이는 매우 ‘공정한 경쟁’처럼 보인다.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서 몇 번의 클릭을 하면 되는 방식이라니, 다른 나라는 몰라도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에 깔린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모두의 출발선이 같은 달리기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거나 반응 속도가 빠르지 못하면 이 경주에서 이길 확률은 낮다. 그렇지 않더라도 순간의 머뭇거림으로 놓치기도 일쑤인데, 성공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정말로 순간이다. 도대체 여기에 어떤 성실성과 열의의 차이가 있는가? 이게 진짜 육상 경기도 아닌데.
선착순 역시 일종의 능력주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억울하면 1등 하라”와 비슷한 “억울하면 빨리 접속하라”라는 정언 명령을 갖는다. 능력껏 수강 신청을 성공하면 될 일이다. 제때 접속하기 위해 서버 시간을 알려 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모니터에 점을 찍어 놓고 빠르게 들어가는 연습도 한다. 이제는 거의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졌지만 클릭 자동화 매크로를 쓰기도 하고, PC방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동시 접속을 하기도 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억울함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고심했다. 한꺼번에 몰려 접속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강 신청만을 위한 별도 사이트를 구축하고, 학생 혹은 과목을 분류하여 접속하는 시간을 다르게 두는 제도를 도입했다. 다중 로그인을 금지하고, 매크로 방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매크로 적발 시 수강 내역 자체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선착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학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숙명여대는 2000년대부터 수강 확정식 수강 신청 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일단 1차 수강 신청 기간에는 선착순 없이 모든 신청자를 받은 후 정원 초과 과목에서 학년, 이수 학점, 성적, 전공 등을 기준으로 학생 별 우선 순위를 부여해 수강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선착순은 이후 수강 정정 기간부터 적용된다. 선착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여러 질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의의가 있다. 반면 카이스트는 2012년부터 교양 수업 등에 한하여, 수강 신청 정원을 초과한 과목에 대해 전체 무작위 추첨을 실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무 요소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평무사’하다. 그러다 2015년, 이른바 ‘연세토토’가 등장한다.
누구를 위한 ‘연세토토’인가
연세대학교는 기존 온라인 선착순 수강 신청 제도의 단점으로 특정 시점에 수강 신청의 수요자가 집중되는 현상 및 수강 신청과 관련한 비교육적 행태 등을 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2학기 부터 Y-CES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으로 접속하는 대신, 넉넉한 기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일정량의 마일리지(학기당 최대 수강 가능 학점의 4배)를 부여받고 수강 희망 과목에 이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후 기본적으로는 마일리지 양에 따라 수강 과목이 결정되는데, 장애 학생 여부, 과목 전공자 여부 등을 고려하여 우선 배정 순위를 부여한다. 정원이 초과되는 경우, 배정 순위에 따라 부여된 대기 순번을 통해 수강 신청 기간에 과목 조정이 가능하다. 대학 측에서는 Y-CES가 학생 본인의 결정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의 우선 순위 적용으로 학생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자평하며, 해당 시스템을 비즈니스 특허 출원할 예정이란다. 6년이 지난 지금, 기존 수강 신청 제도의 단점들은 해결됐다.
그럼에도 이것을 성공적인 제도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적된 단점들은 모두 선착순에서 비롯된 것인데, 선착순은 문제가 많은 제도이긴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부제 도입, 부전공 및 복수 전공 확대 등으로 전공을 무한정 열어 버린 후 그에 준하는 충분한 강의실과 과목을 제공하지 않은 탓이다. 또한 연세대의 보도 자료를 보면, 학생 편의가 아닌 대학 당국의 편의에 따른 것이 다분함이 드러난다. 학교에서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의 부하와 관련되는 선착순의 문제를 없애고, 수강 신청 이후 여석 조정 및 강의실 변경 등의 업무 부담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의 우선 순위”로 양화하여 학생들을 줄 세운 후 “불만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잘라 내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이를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합리적 기준과 절차가 우선시 되는 대학의 문화”로 상찬한다.
더욱이 우선 순위는 총 8개❾ 기준이 있는데, 숙명여대와 유사한 것 같지만 그 과목 신청자 전체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당 과목 신청자를 1줄로 세우는 계산법이다. 우선 순위 첫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을 마일리지를 중심으로 내림차순 한 뒤, 동점자가 나왔을 때 두 번째인 특수 교육 대상자 여부에 따라 아닌 사람을 뒷줄로 미는 것이다. 마일리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나머지는 약간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1~2점 차로 갈릴 수가 있으니 나머지 요소들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학생들의 입장이다. 이를 통해 대학 당국은 과목 수요 조사와 수요 예측뿐만 아니라 수요 조정 역시 학교의 책임에서 학생의 책임으로 성공적으로 넘겨 냈다. 결국 학생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마일리지를 어떻게 배분하고, 적절히 ‘배팅’하느냐에 달렸다. 학생들이 Y-CES를 ‘연세토토’, ‘연세카지노’ 등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것이 과연 PC방 대기보다 학생들의 시간을 줄여 주거나, 더 교육적인 방식인지 의문이다.
시간에 따른 수강 신청 제도의 변화를 밟아 오다 보니, 점점 더 학생들을 특정한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듦과 동시에 점점 더 학생들에게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도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고, 또 그에 맞춰서 변화하므로 제도가 놓여 있는 사회적 맥락을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기술 만능주의, 플랫폼 경제 등이 사회의 저변을 흐르고 있다. Y-CES가 나타나게 된 것 역시 점차로 효율화, 체계화되는 대학이 늘어나는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와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수강 신청 제도를 벤치마킹한 용역 및 구축 사업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도출해 낸 결과일 테다.❿ 선착순과 관련한 대학 당국과 학생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개선된 부분 역시 분명히 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착순만을 겨냥한 표면적 해결이라는 한계가 있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미명하에 공정성과 합리성의 의미를 또 다른 방식의 줄 세우기로 대치하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가 호명하는 것은 결국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비자 정체성을 가진 학생이다. 학생에게 이전보다 더 넓은 시간, 공간, 학점 선택의 틀을 열어 줄 테니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해 보라는 것. 그에 따른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비단 이 제도뿐인가? 한국 사회 전체가 주체를 소비자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학교는 세상이 이렇다는 걸 미리 알려 주고 대비시켜서 제일 앞자리를 향해 달리도록 궁리하라는 안배를 하는 것인가도 싶다.
제도의 작동 범위와 대상이 일대일로 비교할 만한 계제는 아니지만, 고교 학점제 역시 이러한 자장 속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교 학점제가 호명하는 학생과 교사
정혜진 외(2016)는 학습자를 다분히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주체의 역할로서 “소비자” 관점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음을 이야기한다. 최지윤 외(2010) 역시 현재 대학생들이 “선택적으로 강의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⓫ 수용자 연구가 곧 소비자 연구로서 다뤄지고 있는 것인데, 소통으로 다뤄져야 할 내용이 상품 유통의 관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학점제를 다룬 글들을 보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서봉언(2020)은 고교 학점제 연구·선도 학교의 담당 부장 교사의 “경영자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인터뷰를 인용하며, “고교 학점제 도입과 함께 교사들은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의 요구에 응답해(시장 분석) 과목을 개설 및 강의를 계획하고(제품 생산) 학생에게 안내(마케팅)를 해야 한다. 선택을 받지 못하면 폐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교사는 담당하는 학생의 진로(진학)를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학생의 진학에 필요한 수업은 적극적인 컨설팅 - 설득 - 을 해야 한다. 대체로 학생(소비자)은 교사(경영자)의 혜안을 믿는다.⓬
일련의 과정이 딱 들어맞는 것에, 새삼 이 구조가 매우 경영 친화적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물론 교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이윤 창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선택에 거의 정답과 가까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속적으로 학습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단지 경영자로 보기는 어렵다. 서봉언의 연구는 현실적으로 교사가 일정 정도의 경영자 마인드‘까지’ 갖춰야 이 제도가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다는 근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선택권은 학생에게 주어졌지만, 관리의 키는 여전히 교사에게 있는 상황이라는 것인데, 고교 학점제가 목표로 하는 자기 주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택에 따른 관리, 책임 등도 학생들에게 이양될 필요가 있음을 서봉언의 연구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교사가 경영자의 마인드를 갖추는 동안 학생들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위의 글들에서는 소비자를 능동적인 주체로 그리고 있지만, 많은 선택권이 곧 주체적인 역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는 생산에서 유리된 존재로, 이미 주어진 것들을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소비자에게 허용된 저항은 불매운동뿐인데, 이 역시 개별화된 소비자는 불가하다. 대학의 사례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선택권과 정보들을 주었을 때, 학생들은 점차로 개별화되었다.
고교 학점제 역시 모든 구성 요소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원자화로 흐르고 있다. 교실 단위, 학급 단위, 학년 단위의 해체는 정박할 수 있는 시각과 장소 없이 와해된 시공간에서 각각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여 길을 찾아 나가라는 요청이다. 배에 구멍이 났으니 막으면서 배를 저어 가야 하는데, 물이 차오른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을 망망대해에 던져 놓고 능력껏 튜브를 마련해 저 섬까지 가라는 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학교 밖에서는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의 자유 전공 학부는 그래도 괜찮은 튜브를 가진 친구들이라 조금 낫다. 노동은 외주화되다 못해 잘게 쪼갠 판자때기로 플랫폼의 바다에 던져지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고교 학점제는 플랫폼 경제와 ‘수저 계급’에 대한 체화와 같다.
이는 고교 학점제가 초래하는 교육과정 및 교사 수급 자체의 불안정성과도 맞닿아 있다. 김성천 외(2019)에서 밝혔듯, 현장에서 고교 학점제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점이다.⓭ 공통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운영하면 교육과정 및 교사 수급의 안정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교 학점제 도입 시에는 다양한 교과목 개설 및 이에 따른 전근, 순회 근무, 부전공 담당 등으로 안정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애로 사항이 발생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 교사 수급을 위해 결국 교·강사 비정규직화, 유연화, 플랫폼화의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 두고 보는 교사들이 적어지게 되면 학생 및 교육과정에 대한 적절한 개입과 관리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마련이다.
최종 목표는 학생 스스로의 선택과 관리라지만, 당분간 개별 학생에 대한 교사의 개입이 늘어날 상황에서 특정 교사의 업무 과중이 나타나거나 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대응 자체가 불가능할 소지마저 있다.
자유와 책임 - 제도가 닦아 놓은 길과 가로막는 길
다소 파괴적이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아 보았지만, 현장에서 고교 학점제의 파괴력에 대해서 그리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현(2018)은 교육부가 제시한 고교 학점제 정책이 일반 고등학교에서 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학교 시설 증축은 일부 학교에서나 가능할 것이며, 상담 교사 증원은 없을 것이고, 선택 과목 확대·학점제 등은 기존 이름과 단위를 변환하는 정도로 그칠 것이라 “소위 ‘무늬만 학점제’로 귀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 그리고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우리 교육 현실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도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 부작용을 만들었을 때에 없애기도 어렵다. 한번 나타난 제도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다른 상상력을 제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처럼 제도에는 구속성과 경로 의존성이 있으므로 도입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고교 학점제가 가리키는 방향을 꼼꼼히 따져 보며, 그 밑에 도사린 위험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다. ‘시공간에서 자유로운’, ‘학생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정은 곧 학교의 책임을 회피하고, 학생에게 무한 책임을 전가한다. 이제 학생은 과거의 경영자로서 자기 계발하는 주체도 되지 못하고, 나열된 상품을 가성비 계산에 따라 주어진 시간과 노력이라는 예산 내에 골라야 하는 소비자 주체로 호명된다. 이것이 제도로 만들어지고 난 후에는 원래 있었던 양 굴어 대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쥐어짜는 원자화된 개인, 시장 화된 학교와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연대와 변화에 대한 상상, 생산에 대한 사유는 가로막힌 채로 말이다.
물론 이는 대학의 모습을 통해 고교 학점제의 미래를 비춰본 하나의 비관적인 가정일 뿐이다. 대학의 사례로 하나의 거울상을 탐색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자유라는 이름하에 그저 놓아 두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업무 과중이 지적되고 있는 현실은 아마 당분간도 지속될 것인데,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도 도입 시기로 지정된 2025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가져올 최악의 경계를 더듬어 살피는 것은 하나의 대비가 될 수 있다. 현실이 비관적일 때에는 근거 없이 낙관하기보다는 비관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일 수 있다. 지금, 철저한 비관이 필요하다.
❶ 이현(2018), 〈고교학점제 도입 추진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교육비평》, 41호.
❷ 이효진 외(2017),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에 따른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학연구》, 23(4).
❸ 김광현·강성배(2019), 〈대학 신입생의 수업 선택과 좋은 수업에 대한 탐색적 연구〉, 《문화와 융합》, 41(6).
❹ 이 중 학습 편의성이란 ‘학습자가 강의를 수강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이나 노력(국어·영어 강의, 팀 프로젝트 여부, 과제의 양(횟수), 과제의 난이도, 학습에 필요한 시간·노력, 평가 방식, 출석 관리 여부 및 성적 반영 정도, 학점 부여 방식)’을, 강의 실용성이란 ‘학습자가 강의를 수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제 도움이나 가치[수강 인원, 권장 학년·학기(학수 번호), 교수자의 지위, 과목에 대한 사전 지식 정도, 진로 및 취업 도움도]’을 가리킨다.
❺ 패트릭 J. 드닌, 이재만 옮김(2019),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책과함께, 32쪽.
❻ 비(非)연애·비(非)성관계·비(非)결혼·비(非)출산 운동으로, 2010년대 말부터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한국 사회 가부장제에 저항하고자 결혼, 출산, 이성과의 연애, 성관계까지 거부하고,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또는 관계로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4B를 결심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부담이 여전히 여성 쪽에 편중되어 있으며,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등 이성과의 연애에서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운동 참여 이유로 든다.(《최신시사상식 20 집》, 박문각)
❼ 이러한 청년들의 사고방식은 김혜진(2020)의 글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다. 결국 이 대학생들이 원하는 미래인 청년 정규직이 ‘공정성’을 말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어서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시험으로 대표되는 양화된 점수로서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달린다는 분석이다. 이 시험마저 의미가 없다면 내겐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나의 노력과 고생이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요 요인으로 제시 한다.(김혜진(2020),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 벗)
❽ ‘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라는 뜻으로, 열차표나 공연 관람권 따위의 예매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일을 이르는 말.(네이버 오픈사전)
❾ ① 과목별로 높은 마일리지를 배분한 학생 우선, ② 특수 교육 대상자 우선, ③ 개설 학과에서 설정한 전공생 및 복수 전공생 우선, ④ 신청 과목 수, ⑤ 졸업(수료) 신청자 우선, ⑥ 초수강 우선, ⑦ 총 이수 학점/졸업 이수 학점, ⑧ 직전 학기 이수 학점/학기당 수강 가능 학점.
❿ Y-CES가 벤치마킹한 마일리지 사례들이 대부분 MBA의 것이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⓫ 정혜진·김경원(2016), 〈AHP를 활용한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8); 최지윤 외(2010), 〈온라인 강의 정보 탐색 및 수강신청 행동 분석과 개선안 : 서울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2010(1).
⓬ 서봉언(2020), 〈고교학점제 도입과 학교의 변화〉, 《교육사회학연구》, 30(3), 65쪽.
⓭ 김성천 외(2019), 《학교 교육의 성공적 진화를 위한 플랫폼 -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 맘에드림.
[참고문헌]
보도 자료
교육부, 〈2025년, 포용과 성장의 고교 교육 구현 :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 발표〉, 2021년 2월 17일.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획기적 수강신청제 ‘Y-CES’ 개발〉, 2015년 4월 1일.
논문 및 단행본
김광현·강성배(2019), 〈대학 신입생의 수업 선택과 좋은 수업에 대한 탐색적 연구〉, 《문화와 융합》, 41(6), 415~444쪽.
김성천·민일홍·정미라(2019), 《학교 교육의 성공적 진화를 위한 플랫폼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 맘에드림.
김혜진(2020),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벗.
패트릭 J. 드닌, 이재만 옮김(2019),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책과함께.
서봉언(2020), 〈고교학점제 도입과 학교의 변화〉, 《교육사회학연구》, 30(3), 55~79쪽.
이현(2018), 〈고교학점제 도입 추진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교육비평》, 41, 77~144쪽.
이효진·윤가영·박인우(2017),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에 따른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학연구》, 23(4), 79~99쪽.
정혜진·김경원(2016), 〈AHP를 활용한 대학생의 수강신청 기준에 관한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8), 723~745쪽.
최지윤·이중식(2010), 〈온라인 강의 정보 탐색 및 수강신청 행동 분석과 개선안 : 서울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2010(1), 733~7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