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시] 곁순 제거 외 | 이근영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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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순 제거



알량한 텃밭 농사

실한 열매 한번 따 보겠다고

인터넷 동영상 열심히 보았네

가위 하나 들고 가서

이게 곁순인가? 이게 곁순인가? 이거? 이거?

잎을 잘랐네 모가지를 자르고 성장점을 잘랐네

아아 초보 농꾼 크지도 않은 작물들을

일찌감치 곁순 제거 한답시고

멀쩡한 작물들 망쳐 놓았네

손 하나 안 댄 작년 농사

크지는 않아도 착실히 자랐던 열매들,

그 정도면 충분했던 것을,

이 알량한 텃밭 농사

얼마나 대단한 열매 얻겠다고

멀쩡한 작물들 죽이고 있네

잎이 잘려 나간 자리, 그,

아릿한 상처만 바라보고 있네

상처투성이 그것들을 바라만 보고 있네


곁순 제거, 곁순 제거, 곁순, 곁순, 곁순

내 무식한 가위질에

잘려 나간 아이들이,

상처투성이로 남은 아이들이,

텃밭 가득 나를 보고 있었네






외출



트럭 위 돼지 한 마리


쇠창살 사이 가까스로 코를 내밀고


세상의 냄새를 한껏 들이켜고 있다


생애 첫 외출이자 마지막 외출


저 햇발 아래


난민 




시작 노트

남원교육지원청에서 작년까지 운영하던 ‘꿈누리 가족 주말농장’에 참여했었다. 소중한 기회라 생각하며 농사 경험은 없었지만, 두 딸과 함께 텃밭을 가꾸게 되었다. 농약은 절대 쓰지 말고, 최대한, 자연 그대로, 풀 뽑는 정도만 하자. 집에서 거리도 꽤 있는 편이어서 이리 핑계 겸 마음을 먹고 시작했던 것이다. 방울토마토나 고추, 가지 등의 모종도 교육청에서 제공해 주어 그것들을 심고 어쩌다 한번씩 텃밭에 들러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비 안 올 때 물 주기, 풀이 너무 많아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을 때 풀 뽑기, 너무 곁가지를 많이 쳐서 쓰러지기 직전 지지대 만들어 주기 등이 전부였다. 수업 끝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사실상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것들은 작지만 알찬 열매를, 착실히 나에게 안겨 주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맛있었던 방울토마토와, 두 번 연속으로 베어 먹기는 힘들 정도의 매운 고추. 그래, 나쁘지 않아.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그랬어야 했을까? 나름 농사를 더 잘해 보겠다고 텃밭 농사 고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더 튼실하고 큰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곁순 제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가위를 들고 밭에 가서 배움을 실천(!)하려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애정도 없이, 이제 막 자라고 있는 그것들을, 이게 곁순인가, 이게 곁순인가? 하면서 함부로, 마구 잘라 버린 것이다. 잘려 나간 작물들의 모습이 뭔가 가슴속을 찡하게 했다. 잘라 놓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그대로 성장을 멈추고 시들어 죽는 것도 있었다. 그중 살아남은 것들은 전보다 키도 크고 열매도 큼직하긴 했으나, 수확량은 많지 않았고, 맛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밍밍했다. 

그냥 전처럼 하는 게 나았을까? 무슨 큰 영광을 얻겠다고 괜한 요란(?)을 떨었던가.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쓸쓸한 감정이 물들어 오는 것이었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꽤 오랜 세월을 잘 버텨 왔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도 그저 풀 뽑기, 지지대 세워 주기, 가문 날 물 주기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른바 SKY 대학과 수도권 주요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아직도 여전히, 무한 질주를 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서, 나 또한 그 몇몇의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얼마나 많은 잔가지들을 쳐 냈을까. 모가지까지 꺾여 버린 방울토마토 그 아릿한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의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그 씁쓸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출근길, 조그만 트럭에 돼지 한 마리가 실려 가고 있었다. 쇠창살 안에 갇힌 돼지 한 마리. 몇 개월이나 되었을까. 그리 크지 않은 저 돼지는, 답답하고 비좁은 우리에만 갇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으리라. 좁은 쇠창살 사이로 돼지는 코를 벌름거리다가, 겨우 코를 내밀고 꿀꿀 소리를 내며 심호흡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처음 맡아 보는 바깥세상의 공기를 맘껏 느껴 보고 싶은 것만 같았다. 아마도 저 돼지는 그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겠지. 돼지는 오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출을 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세상의 마지막 외출일 것이리라. 쇠창살 사이로 코를 겨우 내밀고 숨을 내뱉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보였다.

세상의 첫 외출이자 마지막 외출, 그 이미지 위로 세 살배기 난민, 아무것도 모른 채 부모를 따라나섰던, 그렇게 세상의 한구석에서 죽음을 맞았던, 그, 시리아 꼬마 난민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이근영(dokkwang@hanmail.net)      전북 전주 출생. 현 남원고등학교 교사. 시집으로 《심폐소생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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