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인적 요구는 공공성을 갖는다
- 휠체어를 타고서야 알게 된 불가능의 공간, 학교
김보혜
boheygim@gmail.com
학부모,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박사 과정
프롤로그 - 1인시위의 시작
지난 4월 아이가 다니는 학교 정문 앞에 섰다. 8절지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노래 가사 같은 문구를 적어 아이의 학교 내 이동에 필요한 지원 인력 요구가 수용되기를 바라는 외침을 홀로 했었다.
알지 못했다. 내가 그곳에 서서 학교를 등지고 1인시위를 시작할지…….
알지 못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휠체어가 이동할 수 없는 차별의 공간인지…….
보행을 할 수 없으면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교실에서 급식실로, 교실에서 영어 회화실로의 이동이 불가능한 ‘불가능의 학교’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휠체어를 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올해 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휠체어를 탄 아이와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교감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휠체어를 탄 채 아이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담임을 맡게 될 선생님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휠체어에 앉은 아이에게 학교는 그간 3년여의 시간을 보낸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모두가 긴장하며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절충안을 찾아 아이의 학교생활은 시작되었다. 이동이 가능한 곳은 도서관, 본관 1층부터 아이의 교실이 있는 4층까지, 이동이 가능하지 못한 곳은 급식실, 체육관, 별관 영어 회화실. 구분은 명확하고 확실했다.
3개의 건물로 연결된 아이의 학교는 실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건물 이동은 외부를 통해서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밖으로 연결된 통로는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가 아닌 차량 통행로이기 때문에 휠체어가 지나가려면 뒤에서 성인이 힘껏 밀어 올려 주어야만 했다. 학교가 다시 지어지지 않는 한 사실상 휠체어가 다니기에 학교는 매우 제한적인 공간이었다.
일시적 장애와 학교 공간
아이는 지난겨울, 방학을 이용해 친구 여럿과 어린이 스키 캠프에 갔었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스키를 타던 중 마지막 날 야간 스키를 타다 아이를 미처 보지 못한 스노보더에게 치여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두 차례 수술을 받고 9개월 이상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하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1983년 개교한, 구도심 속 비교적 오래된 초등학교다. 학내 장애인 편의 시설로는 엘리베이터가 2대 운행 중이고, 본관 주 출입구 네 방향 중 세 곳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화장실은 1층 한 곳이다. 본관은 어느 정도 편의 시설이 갖추어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별관의 상황은 달랐다. 주 출입구는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학교 외벽을 따라 만들어진 경사가 가파른 3m 즈음 되는 경사로가 엘리베이터로 통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문을 잠그고 이동을 통제한다. 급식실과 체육관은 2층 구조의 또 다른 별관에 있다. 1층에 급식실이 있고 2층은 강당 겸 체육관으로 이용하는데 2층은 계단으로만 이동을 할 수 있다. 증축과 개조를 거듭했던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은 연결성이 없었고 설치가 미비한 곳도 여럿이었다. 학교는 그나마 있는 편의 시설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장애인에게 온전하지 못한 편의 시설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은 아이에게 편의가 아닌 오히려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감사해야 마땅한 선물을 받아 들고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아이를 내몰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간의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휠체어 이용 학생에게 학교는 지원의 의무가 없다.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가 사용하는 교실 책상은 휠체어와 맞지 않았다. 아이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기간 동안 휠체어 전용 책상이 필요했다. 학교가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할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대여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학교에 알렸다. 그러나 특수교육대상 학생만이 이용 가능했다. 학교는 임시방편으로 병설 유치원의 유아용 책상을 아이의 교실로 옮겨 주었다. 그러나 휠체어와 책상의 다리 높이가 맞지 않아 아이는 몸을 앞으로 죽 빼내서 자세를 잡으려니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다시 학교는 책상 다리 아래 부목을 받쳐 높이를 조절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학교생활은 예상했던 대로 험난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3주간 아이는 혼자 교실에 남아 내가 싸 준 도시락을 먹었다. 별관 2층에 있는 체육관에서 하는 체육 수업은 참여하지 못했고 이전 학년부터 해 오던 아침 동아리 활동도 별관 건물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이는 신체적 불편함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음에 더욱 분노하고 힘들어했다. 학교에서는 날이 선 말투와 표정으로 선생님과 나를 대했다.
아이의 인내는 한계를 보였고 나와 함께 아이는 급식실로 가는 길을 뚫고 별관 건물 이동 통로의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동아리 활동을 개시했다. 외부의 이동 통로에 밤새 내린 비로 물이 가득 고인 웅덩이를 지나갈 때도, 장마와 태풍으로 비바람에 다리 깁스가 젖어들어도 아이는 학교 공간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해냄으로써 아이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학교생활을 지원할 지원 인력 배치는 더욱 절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의 필요가 지원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학교에 학내 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인력 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업무 분장이 끝난 상황에서 지원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학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은 행정상 수정이 불가하다는 게 학교의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설 인력을 고용해서 학교에 배치할 수 있는지도 문의해 보았지만, 학교는 선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였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일경험 프로그램 제도❶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학교에 전달하였고 학교는 기관 대 지원을 고용노동부 지역 사무실에 공문을 보내 요청하였다. 1차 공고에 지원한 실습생은 없었다. 2차 공고의 모집 기한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 반이 지난 시점까지였다. 아이는 그 사이 나의 지원으로 학교 내 이동을 하고 있었다. 2차 공고를 내고 마감 시한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아이의 학교 정문 앞에 섰다. 아이의 어려움은 같은 학교 학부모들의 관심을 받고 동네 마을운동가들의 주목을 받아 국회의원실과 교육청에 정식 민원으로 접수되었다. 그리고 지원 인력은 2차 공고를 끝으로 배치되었다.
요구했던 휠체어 전용 책상도 지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견뎌야 할 불편함에 정도가 있다면, 아이가 참고 이겨 내야 할 것은 책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학교 구조와 자신 밖에 존재하는 다수의 타자들의 시선이 더욱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오히려 분명하고 정확한 지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이 후유증을 덜 남기고 관계를 어렵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휠체어 전용 책상은 요구와 수용의 번복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지원되었다.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에 관련한 법 조항들을 살펴보았을 때 학교 측의 위법함은 없었다. 소속 교육지원청 담당자도, 아이 학교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 책임자도 편의 시설의 문제는 문제 제기가 아니라 건의 사항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3개의 특수학급이 있었지만 ‘휠체어가 학교로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라는 학교의 입장은 아이에게 해 줄 것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분명 같은 공간인데 조건이 달라지자 차별적 요소가 가득했다. 지구는 둥근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형편에 노래만 탓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노래를 탓하고 가사를 바꾼다고 한들 지구가 둥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든 학교 수업에서 배제되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는 지구가 둥근 것과 같은 진리이니까.
아이는 회복 가능한 일시적인 부상이었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학교를 더욱 당혹하게 했다. 지원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행정적 지원은 학교의 자발성과 의지를 요구했다. 아이의 지원을 만들어 내면서 경험한 지원 체계의 모순은 포괄적 지원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했다. 한 아이의 필요가 즉각 지원이라는 행위로 되돌아오기 위해 교육적 지원의 벽은 없어져야 한다. 이것은 소모적인 행정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학내 이동권은 학습권의 기본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편의 시설이 온전하게 갖춰진 학교를 위해 모든 학교의 편의 시설 인증 제도를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열 살 아이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로 힘들고 아파해야 했던 이 모든 상황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그래서 당사자성을 한껏 부각시켜 건의가 되었든 문제 제기가 되었든 개인 서사의 확성기를 높였다. 지구는 둥근데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에,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로 화답해야 했다.
에필로그 – 다시 시작하는 1인시위,
개개인의 요구가 공공성을 갖는 이유
이제 아이는 회복하여 보행자의 행렬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나는 다시 피켓을 들고 교육청 앞에 섰다.
“반쪽짜리 장애인 편의 시설은 차별이다. 모든 학내 100프로 장애인 편의 시설 구축하라.”
“인천시 관내 모든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 점검하고 실질적인 편의 시설 구축하라.”
10월 18일부터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통합교육의 질적 성장을 촉구하는 학부모들의 릴레이 1인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계기는 어느 특수 교사의 안타까운 선택적 죽음을 마주하고였다. 선택의 주체성이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선택에 슬퍼할 의지가 있으며 그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견뎌야 할 불편의 무게가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도록 거리에 섰다.
개개인의 요구가 공공성을 갖는 제도란 무엇일까를 다시 고민해 본다. 경험은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는 그 구체성을 담을 수 있도록 개개인과의 거리를 좁혀야 할 것이다. 제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직접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생겨난 요구를 담은 개인 성명을 발표하고 1인시위를 시작했다. 개인의 요구를 담은 1인시위는 또 다른 개인의 요구를 담은 1인시위로 이어지는 연대를 만들고, 개개인의 다중 매체로서 1인시위가 공공성을 낳을 수 있기를 바라며.
❶
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의 취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직무에서의 일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
모든 개인적 요구는 공공성을 갖는다
- 휠체어를 타고서야 알게 된 불가능의 공간, 학교
김보혜
boheygim@gmail.com
학부모,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박사 과정
프롤로그 - 1인시위의 시작
지난 4월 아이가 다니는 학교 정문 앞에 섰다. 8절지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노래 가사 같은 문구를 적어 아이의 학교 내 이동에 필요한 지원 인력 요구가 수용되기를 바라는 외침을 홀로 했었다.
알지 못했다. 내가 그곳에 서서 학교를 등지고 1인시위를 시작할지…….
알지 못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휠체어가 이동할 수 없는 차별의 공간인지…….
보행을 할 수 없으면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교실에서 급식실로, 교실에서 영어 회화실로의 이동이 불가능한 ‘불가능의 학교’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휠체어를 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올해 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휠체어를 탄 아이와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교감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휠체어를 탄 채 아이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담임을 맡게 될 선생님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휠체어에 앉은 아이에게 학교는 그간 3년여의 시간을 보낸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모두가 긴장하며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절충안을 찾아 아이의 학교생활은 시작되었다. 이동이 가능한 곳은 도서관, 본관 1층부터 아이의 교실이 있는 4층까지, 이동이 가능하지 못한 곳은 급식실, 체육관, 별관 영어 회화실. 구분은 명확하고 확실했다.
3개의 건물로 연결된 아이의 학교는 실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건물 이동은 외부를 통해서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밖으로 연결된 통로는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가 아닌 차량 통행로이기 때문에 휠체어가 지나가려면 뒤에서 성인이 힘껏 밀어 올려 주어야만 했다. 학교가 다시 지어지지 않는 한 사실상 휠체어가 다니기에 학교는 매우 제한적인 공간이었다.
일시적 장애와 학교 공간
아이는 지난겨울, 방학을 이용해 친구 여럿과 어린이 스키 캠프에 갔었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스키를 타던 중 마지막 날 야간 스키를 타다 아이를 미처 보지 못한 스노보더에게 치여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두 차례 수술을 받고 9개월 이상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하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1983년 개교한, 구도심 속 비교적 오래된 초등학교다. 학내 장애인 편의 시설로는 엘리베이터가 2대 운행 중이고, 본관 주 출입구 네 방향 중 세 곳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화장실은 1층 한 곳이다. 본관은 어느 정도 편의 시설이 갖추어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별관의 상황은 달랐다. 주 출입구는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학교 외벽을 따라 만들어진 경사가 가파른 3m 즈음 되는 경사로가 엘리베이터로 통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문을 잠그고 이동을 통제한다. 급식실과 체육관은 2층 구조의 또 다른 별관에 있다. 1층에 급식실이 있고 2층은 강당 겸 체육관으로 이용하는데 2층은 계단으로만 이동을 할 수 있다. 증축과 개조를 거듭했던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은 연결성이 없었고 설치가 미비한 곳도 여럿이었다. 학교는 그나마 있는 편의 시설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장애인에게 온전하지 못한 편의 시설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은 아이에게 편의가 아닌 오히려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감사해야 마땅한 선물을 받아 들고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아이를 내몰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간의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휠체어 이용 학생에게 학교는 지원의 의무가 없다.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가 사용하는 교실 책상은 휠체어와 맞지 않았다. 아이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기간 동안 휠체어 전용 책상이 필요했다. 학교가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할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대여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학교에 알렸다. 그러나 특수교육대상 학생만이 이용 가능했다. 학교는 임시방편으로 병설 유치원의 유아용 책상을 아이의 교실로 옮겨 주었다. 그러나 휠체어와 책상의 다리 높이가 맞지 않아 아이는 몸을 앞으로 죽 빼내서 자세를 잡으려니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다시 학교는 책상 다리 아래 부목을 받쳐 높이를 조절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학교생활은 예상했던 대로 험난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3주간 아이는 혼자 교실에 남아 내가 싸 준 도시락을 먹었다. 별관 2층에 있는 체육관에서 하는 체육 수업은 참여하지 못했고 이전 학년부터 해 오던 아침 동아리 활동도 별관 건물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이는 신체적 불편함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음에 더욱 분노하고 힘들어했다. 학교에서는 날이 선 말투와 표정으로 선생님과 나를 대했다.
아이의 인내는 한계를 보였고 나와 함께 아이는 급식실로 가는 길을 뚫고 별관 건물 이동 통로의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동아리 활동을 개시했다. 외부의 이동 통로에 밤새 내린 비로 물이 가득 고인 웅덩이를 지나갈 때도, 장마와 태풍으로 비바람에 다리 깁스가 젖어들어도 아이는 학교 공간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해냄으로써 아이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학교생활을 지원할 지원 인력 배치는 더욱 절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의 필요가 지원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학교에 학내 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인력 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업무 분장이 끝난 상황에서 지원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학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은 행정상 수정이 불가하다는 게 학교의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설 인력을 고용해서 학교에 배치할 수 있는지도 문의해 보았지만, 학교는 선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였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일경험 프로그램 제도❶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학교에 전달하였고 학교는 기관 대 지원을 고용노동부 지역 사무실에 공문을 보내 요청하였다. 1차 공고에 지원한 실습생은 없었다. 2차 공고의 모집 기한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 반이 지난 시점까지였다. 아이는 그 사이 나의 지원으로 학교 내 이동을 하고 있었다. 2차 공고를 내고 마감 시한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아이의 학교 정문 앞에 섰다. 아이의 어려움은 같은 학교 학부모들의 관심을 받고 동네 마을운동가들의 주목을 받아 국회의원실과 교육청에 정식 민원으로 접수되었다. 그리고 지원 인력은 2차 공고를 끝으로 배치되었다.
요구했던 휠체어 전용 책상도 지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견뎌야 할 불편함에 정도가 있다면, 아이가 참고 이겨 내야 할 것은 책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학교 구조와 자신 밖에 존재하는 다수의 타자들의 시선이 더욱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오히려 분명하고 정확한 지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이 후유증을 덜 남기고 관계를 어렵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휠체어 전용 책상은 요구와 수용의 번복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지원되었다.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에 관련한 법 조항들을 살펴보았을 때 학교 측의 위법함은 없었다. 소속 교육지원청 담당자도, 아이 학교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 책임자도 편의 시설의 문제는 문제 제기가 아니라 건의 사항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3개의 특수학급이 있었지만 ‘휠체어가 학교로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라는 학교의 입장은 아이에게 해 줄 것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분명 같은 공간인데 조건이 달라지자 차별적 요소가 가득했다. 지구는 둥근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형편에 노래만 탓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노래를 탓하고 가사를 바꾼다고 한들 지구가 둥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든 학교 수업에서 배제되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는 지구가 둥근 것과 같은 진리이니까.
아이는 회복 가능한 일시적인 부상이었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학교를 더욱 당혹하게 했다. 지원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행정적 지원은 학교의 자발성과 의지를 요구했다. 아이의 지원을 만들어 내면서 경험한 지원 체계의 모순은 포괄적 지원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했다. 한 아이의 필요가 즉각 지원이라는 행위로 되돌아오기 위해 교육적 지원의 벽은 없어져야 한다. 이것은 소모적인 행정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학내 이동권은 학습권의 기본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편의 시설이 온전하게 갖춰진 학교를 위해 모든 학교의 편의 시설 인증 제도를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열 살 아이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로 힘들고 아파해야 했던 이 모든 상황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그래서 당사자성을 한껏 부각시켜 건의가 되었든 문제 제기가 되었든 개인 서사의 확성기를 높였다. 지구는 둥근데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에,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로 화답해야 했다.
에필로그 – 다시 시작하는 1인시위,
개개인의 요구가 공공성을 갖는 이유
이제 아이는 회복하여 보행자의 행렬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나는 다시 피켓을 들고 교육청 앞에 섰다.
“반쪽짜리 장애인 편의 시설은 차별이다. 모든 학내 100프로 장애인 편의 시설 구축하라.”
“인천시 관내 모든 학교의 장애인 편의 시설 점검하고 실질적인 편의 시설 구축하라.”
10월 18일부터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통합교육의 질적 성장을 촉구하는 학부모들의 릴레이 1인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계기는 어느 특수 교사의 안타까운 선택적 죽음을 마주하고였다. 선택의 주체성이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선택에 슬퍼할 의지가 있으며 그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견뎌야 할 불편의 무게가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도록 거리에 섰다.
개개인의 요구가 공공성을 갖는 제도란 무엇일까를 다시 고민해 본다. 경험은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는 그 구체성을 담을 수 있도록 개개인과의 거리를 좁혀야 할 것이다. 제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직접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생겨난 요구를 담은 개인 성명을 발표하고 1인시위를 시작했다. 개인의 요구를 담은 1인시위는 또 다른 개인의 요구를 담은 1인시위로 이어지는 연대를 만들고, 개개인의 다중 매체로서 1인시위가 공공성을 낳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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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의 취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직무에서의 일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