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기획/성 착취 허위 영상물 사태에 부쳐] 우리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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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박가현

kahyunicorn1016@naver.com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분노를 잊은 대학


2년 전, 서울 신당역에서 한 여성이 끈질긴 스토킹 끝에 살해당하였을 때 대학은 조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통상적으로 대학에서 가장 말이 많은 곳인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내가 다니는 고려대학교 ‘에브리타임’에서 ‘신당역 사건’을 처음 언급한 게시글은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부정하며 ‘남녀 갈라치기 분쟁이 발생’할까 봐 글을 쓴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대학생들은 분노하는 법을 잊은 듯하였다.

요새 대학은 데모만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의 단초가 되는 집단적 분노부터가 부재하다. 친일파 논란, 정치권 사안, 대규모 비리나 범죄 등의 문제는 스포츠, 학점, 학내 축제 등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막상 후자의 주제들이라고 해서 분노가 집단화되는 것도 아니다. 개별적 불만은 파편화되어 존재한다. 학생들에게 공지 없이 시간표가 바뀌거나 리모델링으로 자치 공간이 사라져도 모임 자리에서 이야기만 나올 뿐, 그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표 기구로서 총학생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기 때문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무력감과 체념이 새겨져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에서는 분노조차 비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무력감의 파도는 대학 내 운동, 또는 인권단체들도 비껴가지 않는다. 고려대는 그나마 남아 있는 인권단체들의 수가 많은 편이다. 총학생회 산하 특별 기구인 여학생위원회, 소수자인권위원회, 장애인권위원회, 생활도서관부터 시작해 비거니즘 동아리 뿌리:침,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 대학생기후행동 고려대지부, 그리고 내가 속한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인동) 고려대지부까지 8개의 단체가 있다. 이들은 총학생회 산하 인권 사업 전담 국서와 함께 ‘학내인권단체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협의회의 주된 활동은 공동 대자보전을 개최하는 것과 총학생회 출마 선본에 정책 질의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학교를 다닌 지 5년 차지만, 마지막으로 협의회에서 수세적이 아닌 공세적인 집단 행동을 했던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자주 ‘인권단체 걔네’로 불리는 우리 협의회는 캠퍼스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기는 운동 조직이라기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진보적 대학생들의 안식처이자 보루이다. 



무력감이 대학을 지배할 때


처음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에브리타임의 반응은 사뭇 폭발적이었다. 서울대와 인하대라는 대학에서 출발했던 범죄여서 그런지, 당장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평소보다 많아 보였다. 8월 24일 사건에 대한 충격과 공포를 토로하며 〈한겨레〉 단독 보도 기사를 공유한 게시글이 146명에게 ‘추천’을 받은 후, ‘딥페이크’라는 단어를 포함한 게시글이 25일 15개, 26일 43개, 27일 27개, 28일 17개로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게시글들은 ‘성범죄자 신상 공개하라’, ‘가족방이 있다는 게 절망스럽다’, ‘무력감을 느낀다’, ‘화를 참을 수 없다’ 등 사건에 대한 분노와 좌절의 반응이었지만, 8월이 채 지나지 않아 이러한 글들은 사라졌다. 왜 폭발적이던 반응이 자취를 감췄는지 당혹스러운 마음에 주변 여성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너무 화가 나고 두렵고 공포스러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고 혼자 계속 화만 내기엔 너무 지치니까’ 그저 잊고 넘어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행동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된 현실 속에서 무기력이나 외면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에브리타임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등장하였다. ‘남자랑 여자로 그만 싸워라’ 등 소위 ‘남녀 갈등’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글들이 올라왔다. 즉, 불똥이 나에게 튀지 않기를 바라는 방어적 반응이 여론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범죄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나, ‘22만 명’이란 거대한 규모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여성들의 분노를 보며 혹시나 자신이 ‘갈등’에 휘말려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사건 보도 일주일 뒤부터는 후자의 여론이 우세해졌다. 

물론 여성혐오적 정서와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가 바탕에 있지만, 해당 입장 또한 피로감과 정치 혐오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극단적 경우를 배제하고는, 남성 대학생들의 반응은 혹여나 자신이 공격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자 ‘젠더 갈등’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거나 사건을 외면하는 것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결국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의 상반된 두 반응은 대학 사회의 여성 의제를 둘러싼 대립적 입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무력하고 체념하며 불안하고 방어적인 대학 사회 전반의 정서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대립을 어떻게 해소할지, 또는 어떻게 남성 대학생들에게 올바른 관점을 심어 줄지가 아니다. 대학생들이 지닌 무력감을 돌파하고, 대학 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공감과 분노를 모아 내 세력화할 수 있어야만 반향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딥페이크 성범죄에 맞선 우리의 행동은 시작되었다. 대학생들에게서 분노가 채 사라지기 전에 행동해야만 했다. 첫 출발은 고려대에서였다.



고려대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오픈 마이크 :
변화를 위한 힘을 만들다


9월 8일, 나는 학내인권단체협의회의 단체들에게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오픈 마이크 및 연서명 행사를 제안하였다. 인권단체들만이 참여하던 정형화된 대자보전에서 멈추지 않고, 가장 분노하고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낄 학생들에게 학내에 그들을 대변하고 행동하는 단체가 존재함을 보여 주기 위해 구상한 기획이었다. 

9월 12일 집행을 위해 3일간 선언문을 작성하고, 선전물 팸플릿과 포스터를 제작하고, 참여 인원을 수합하고 배치하였다. 학생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민주 광장에 연서명을 위한 가판을 크게 설치하고 선언문이 적힌 전단지를 나눠 주며 서명 동참을 부탁하였다. 이동 인구가 많은 쉬는 시간에는 학내 인권단체 구성원을 중심으로 오픈 마이크 발언까지 진행하며 우리가 이곳에 나온 이유를 학생들에게 선명히 전달하였다. 행사의 이름은 “딥페이크=성별갈등? 문제는 성착취 구조! - ‘고려대방’ 없는 안전한 학생사회로”였다. ‘젠더 갈등’ 담론이 지배하던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총 29명의 학내인권단체협의회 소속 단체 구성원들이 캠페인에 참여하였다. 각 단체별로 2명에서부터 9명까지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을 최대한 모았다. 가판이 비지 않도록 수업에서 미리 나와 달라는 부탁에도 구성원들은 흔쾌히 응했고, 각 시간대마다 8명에서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부스를 지켰다. 

그 결과, 약 5시간 동안 3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연서명에 동참하였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학생들은 캠퍼스를 지나가다 서명을 하기 위해 부스에 들렀고, 전단지를 무시하려다가도 ‘딥페이크 성범죄’라는 말을 듣고 종이를 받아 갔다. 최종적으로는 온라인 서명까지 합쳐 연서명 인원이 600명을 넘겼고, 후문 앞 부착된 10개 단체의 대자보전에는 크게 ‘연대합니다’라는 학생의 손글씨가 적혔다.

가판에 서 있으며 찾아오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았다. 학생들은 각자만의 분노와 슬픔을 안고 서명을 하러 왔다.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이 서명이 자신의 분노를 잠시나마 표출하고 숨통을 트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집단적 행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남성들도 꽤 많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다소 조심스럽게, 그러나 각자 자신의 확신을 갖고 부스로 왔고 가판 운영자 중에 자신과 같은 남성을 발견하였을 때 조금 더 경계를 풀고 편한 표정으로 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나와 함께 가판을 지키고 학생들을 모아 오던 학내 활동가들의 표정이었다. 행사 당일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함박웃음을 보았다. 행사를 열면 최대 5명 정도 오는 게 익숙하던 학내 단체 대표자들에게서 ‘이게 가능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우리와 뜻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등의 말을 들었다. 고려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난 몇 년간 처음으로 우리는 함께 캠퍼스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분노하거나 수세적으로 무엇을 지켜 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모아 내고 대항적 여론을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분노보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후에 있었던 뒤풀이로까지 열기가 이어졌다. 우리는 하나의 힘이 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 대학을 잇다


다음으로는 고려대를 넘어설 차례였다.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는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과 함께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산하에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을 출범시켰다. 개별 단체나 캠퍼스 중심 행동의 한계는 선명하였다.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우리는 인동과 서페대연이 기반해 있는 수도권 지역 내 대학생 단체들부터 모으기 시작하였다.

9월 23일 첫 모임으로 집담회를 개최하였다. 제목은 ‘지옥이 된 대학을 구하라!’였다. 26개의 대학생 단체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현실에 대한 진단을 나누고 변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서페대연의 강나연 활동가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구조적 원인과 남성 권력, 그리고 대학 사회의 백래시에 대한 진단을 주제로 발제하였고, 나는 대학생들의 반응에 대한 나의 분석과 고려대에서의 행동의 결실을 발표하며 실천 방향을 제안하였다. 고려대의 선례를 확장시켜 대학 순회 선전전 및 오픈 마이크를 진행하고, 실질적으로 교육부와 학교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는 것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 대학 단체들은 자신이 대학에서 겪은 어려움과 힘듦을 토로하였고, 백래시와 탈정치화 속 느꼈던 무력감에 대해 나누었다. 우리 대학만 이런 것이 아니구나, 더 심한 곳도 있구나, 집단적 행동을 하면 학생들이 참여해 주는구나 등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한 단체는 생긴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가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우려를 털어놓았다. 또한, 학내 인권센터가 유명무실한 기관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문제의식도 공유했다. 그 외에도 피해자에 대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에 대한 고민을 나눈 단체도 있었고, 대학에서 젠더에 관한 교육부터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단체도 있었다. 그 모든 우려와 고민은 앞으로의 실천의 방향을 만드는 치열한 토론이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실천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나눌 수 있었다.

9월 28일 대학생 공동행동의 책임자들이 모여 요구안을 작성하였다. 언론의 조명이 청소년에게로 몰리며 대학생·청년 피해자들을 외면하던 반응, 수많은 대학 내 딥페이크물 제작방들, 그리고 미흡하다 못해 전무한 대학 본부와 교육부의 반응을 규탄하였다. 이에 4개의 요구안이 완성되었다. 


하나, 교육부는 대학별 피해자 조사 및 학내 딥페이크 성범죄 전수 조사 실시하라!

하나, 교육부는 대학 내 피해자 보호 및 지원 대책 수립하라!

하나, 교육부는 학내 인권센터가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에 책임지고 나설 수 있도록 예산 및 전문 인력 확충을 지원하라!

하나, 교육부는 형식화된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벗어나 각 대학에 포괄적 성교육의 필수 과목 지정을 권고하라!


계속될 행동의 제목은 ‘우리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는다’였다. 무력감에 빠진 대학생들, 현실이 바뀔 수 없다고 믿으며 좌절하는 여성들, 대학 내 문제를 방관하는 교육 당국까지, 모두가 대학을 포기하려 들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행동하겠다는 굳센 결심이 담긴 이름이었다.



대학생, 대학생을 만나다


10월 2일, 대학생 공동행동은 처음으로 신촌역 거리에 나섰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교육부 대응을 규탄하는 발언을 진행하고, 선전물을 나눠 주며, 대학생 연서명을 받는 기획이었다. 기대는 높지 않았다. 경계심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참여형 캠페인이 잘 되지 않은 전례가 여럿 있었던 데다가, 포괄적 처벌 강화가 아니라 교육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오픈 마이크 캠페인에 대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반응해 줄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의 캠페인 모습.



비관적 전망과 달리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90명의 서명이 모였다. 이후 캠페인에서 모이게 될 서명 중에선 제일 적은 편에 속하지만 우리는 크게 기뻐했다. 행동이 계속될수록 시민들의 반응은 점차 늘어났다. 10월 4일 홍대입구역에서는 215명의 서명이 모였고, 7일 경희대에서는 캠퍼스 안에서만 195명이 참여하였다. 8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행인이 적은 시간대였음에도 지나가는 인원의 대부분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이 무렵 확신이 생겼다. 우연찮게 얻어걸려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다. 대학생들은 딥페이크 성범죄에 맞서고 싶어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 분노를 모아 낸 것이다.

대망의 피날레는 10일 이화여대에서였다. 이화여대(생활도서관, 비거니즘 자치단위 솔찬,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고려대(여학생위원회, 석순, 소수자인권위원회), 서강대(노고지리), 서페대연, 그리고 인동까지 가장 많은 단위들이 참여하였고 350명이 넘는 연서명을 받았다. 멀리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오는 학생들, 조금 경계심을 갖고 있더라도 선전물을 손에 꼭 쥔 채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쓰고 가는 학생들, 처음엔 거절하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서명에 참여하고 간 학생들까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두 곳의 대학가와 세 곳의 대학 캠퍼스에서 5일간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1,138명의 서명이 모였다. 10월 18일 기자 회견에서 발표한, 반복되는 대학 내 젠더폭력을 막고 성평등하고 안전한 대학 캠퍼스를 만들어 달라는 우리의 목소리는 여러 주요 언론에서 다루어졌다. 



실천의 결실


우리는 지난 기간 동안의 실천 내용과 요구안, 그리고 연서명을 교육부에 제출하였고 교육부 장관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이후 교육부로부터 장관 면담은 어렵지만 교육부 딥페이크TF 담당 국장과 면담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곧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 연서명 참여 인원의 숫자나 교육부 면담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 혐오에 젖은 대학생들에게도 분노가 존재함을 대학가와 캠퍼스에서 실재적으로 확인하고, 어느 수준의 정치적 행동까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 선을 가늠했다는 것이다. 집회에 나가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익숙지 않은 2024년의 대학생들에게도 서명이라는 장벽이 낮은 정치 참여의 수단으로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연대 발언과 구호, 피켓이라는 전형적인 운동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의 익명성이 보장되고, 참여가 상대적으로 간편할 경우 대학생들이 동참한다는 사실은 같은 자리를 맴돌던 대학생운동에 새로운 출발점을 찍어 주었다. 

물론 일시적인 의견 표출에 그치며 실질적인 정치적 행동이나 시대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서명 운동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나 우리는 작더라도 승리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종의 공식을 찾아냈다. 오늘날 대학생 인권단체들은 실패와 무관심에 익숙하다. 행사를 열어도 아무도 오지 않고 가장 요란한 행동마저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때 작은 승리의 경험은 희망을 낳는다. 희망은 다음 행동을 이어 나갈 동력이 된다. 그리고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주체들이 자신은 옳은 말을 한다고 자족하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꿈꿀 상상력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도 공동행동은 대학 내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인권단체들을 묶어 냈다. 매 행동마다 뒤풀이에서 가장 많이 오간 이야기들은 우리가 앞으로도 함께 어떤 운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우리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함께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등 우리의 연대체의 전망에 대한 내용이었다. 서명 운동을 넘어선 다음의 운동은 이러한 상상력 속에서 나올 것이다. 대학생들이 다음은 어떤 행동까지 동참해 줄지 모색하며 한 단계씩 높여 갈 때 다시 큰 항쟁의 물결이 대학가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는 대항적 여론을 조직하며 다시 대학생들이 분노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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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