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으로 시작된,
탄핵 너머의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하는
‘민주주의 특별 수업’
김기훈
wkwn21@naver.com
충북 영동 추풍령중 교사
계엄이 발표된 날, 어둠이 짙게 내린 추풍령에 혼자 있었다. 계엄이 이렇게 뜬금없이 선포되어도 되는 것이었나 당황스러웠고 나나 동료들이 체포되면 어떡하나 무서워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방송 송출이 중단되거나 SNS나 메신저 앱이 막히면 완전히 고립된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대구에서 함께 동물권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 메세지를 주고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편안해졌다. 급히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동료들과의 소통방을 옮겼다. 텔레그램 수사가 어렵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아는 이름들의 신규 가입 메시지가 자꾸 떴다. 계엄군이 주요 시설을 점령하면 우선 ‘책빵고스란히 피난처’에 모이자, 이런 약속도 했다.
두려움을 조금 밀어내니 다른 이들이 걱정되었다. SNS에도 글을 남겼다.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운 분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남겨 달라, 서로에게 힘이 되어 보자고. 몇 분과 댓글로 마음을 나누었다. 한 분은 내가 게시물로 공유했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구절[ref]“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한강(2014), 《소년이 온다》, 창비, 114쪽)[/ref]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장악을 저지하려고 애쓴 분들에게 큰 빚을 졌다. 한편 국회 밖에서, 계엄의 부당함과 불법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기꺼이 연결되었던 이들 역시 계엄 해제에 큰 힘이 되었다. 불면의 밤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과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교실에서 마음을 나누다
날이 밝았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이후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지만 행여 계엄군들이 불복하고 판을 뒤집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잠자리가 불편했다. 계엄 소동이 있었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정시 출근을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아무 일’이 있었던 건 피곤한 몸으로 이미 증명이 된 게 아닌가. 첫 수업에 들어가 가볍게 계엄 당시 느꼈던 공포,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도 나처럼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 것 같아 위로를 나누고 싶었다.
학생들의 기분과 생각에 대해 물어보았다. 계엄이 뭔지는 모르지만 뉴스에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이상했다고 했다. 일찍 잠들어서 계엄 자체를 몰랐다는 학생, 교육부가 계엄과 관련해 휴교령을 검토했었다는 얘기에 정상 등교가 섭섭하다는 학생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박근혜 탄핵 당시의 일들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는 계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학생이 있어 간단히 소개했다. 계엄령을 함께 읽어 보며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았다. 다시 읽어 봐도 섬뜩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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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인데 논쟁 상대를 반국가 세력, 처단의 대상으로 삼아 공권력을 휘두르다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국민의 헌법적 자유를 일순간에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은 이유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 세력으로 생각하는, ‘생각 없는’ 대통령과 지지 세력들 때문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설명이 끝난 후 교실은 묘한 분위기였다. 다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만약 여러분들과 담임 선생님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생겼는데,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학급 운영은 담임의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포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따로 격리시키고 징계를 내린다면, 조사나 체벌 등의 조치도 학칙에 따르지 않고 담임 선생님 마음대로 한다면, 학생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항의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거 큰 문제가 아닐까?”
“그건 좀 그렇죠.”
그때 누군가 “이재명이 잘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온다고?’ 지난 박근혜 탄핵 광장을 가득 채웠던 사회 개혁의 열망이 어떻게 사그라졌는지 생각했다. 문재인 정권 집권 시기는 여러 개혁 과제 중 검찰 개혁 등 몇몇 이슈에 집중하고 다른 과제들은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때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꺼냈다. ‘벌써 다음 대통령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지금은 계엄 뒷정리(내란 책임자 처벌)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면 좋을지 이야기해야 할 때 같다’고 덧붙였다. 조심스레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탄핵 이후에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어?”
추풍령과 같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게 서울, 도시 집중의 시스템을 바꾸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 청소년 정치 참여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띄엄띄엄 나왔다. (아쉽게도 기후 정의처럼 평소에 강조해 왔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아 조금 섭섭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지하고 충분하게 공론장에서 다루어져야 해. 이런 말을 했다고 반국가 세력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돼. 공생, 존중, 평등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가치야. 꼭 기억합시다.”
‘담임의 계엄’을 예로 든 것이 좋았던 것 같진 않다. 폭력의 크기를 강조하려고 했던 선택이지만 불필요하게 자극적이었다. 학생들의 선출된 대표인 학생회장을 예로 드는 게 더 적절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담임 교사가 무슨 죄가 있나. 담임 교사가 그런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 것도 반성했다.
민원에 쫄지 않고
모 학년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한 학생의 보호자의 연락을 받았는데, ‘국어 수업 중에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민원이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은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일이나 정치와 완전히 관련 없는 국어 수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국어 과목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다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좋은 관계(그 관계 중 하나는 정치적 관계이다)를 맺는 경험을 한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세상일인 계엄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관계 맺는 연습을 국어 수업 시간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자고 선동한 것도 아닌데 민원이라니! 그 담임 선생님에게 정중하게 수업의 의도를 설명 드리고 또 전화가 오면 직접 대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선생님께서도 함께 걱정해 주셨다.
자칭 백골단이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거나, 자극적인 말들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선동하는 것 등은 공적 자리에서도 발언할 기회를 얻는데, 어떤 발언은 제한된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렇다면 아예 민원을 넣지 못하게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 수업으로 계엄에 대해서 말하겠다!’ 당장 오후 수업에 쓸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 특별 수업’이 만들어졌다.
학생들에게는 3학년 때 배울 성취 기준을 미리 배운다며 아래 성취 기준을 안내했다.
다음으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을 감상했다. 작품 속 화자가 처한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간단하게 이 시가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폈다. 김지하 시인의 회고록도 일부 읽어 보았다. 그런 후에 ‘오늘날의 상황(계엄과 친위 쿠데타)’과 연결하면서 시대적 배경을 비교하고, 오늘날의 삶에 비추어 다시 해석해 보며 감상을 마쳤다.
도약 과제로 ‘함께 읽기 : 연결되는 노래들’을 제시했다. 여기서는 시가 노래고 노래가 곧 시임을 언급하며 지금 광장에서 많이 불리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다시 만난 세계〉를 나란히 감상했다. 먼저 노래를 듣고 가사를 함께 읽어 보며 노래를 이해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왜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 용기의 노래가 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다. 〈다시 만난 세계〉를 이렇게 자세히 살피기는 처음이라 낯설었는데, 교실에서 노래를 듣는 동안 묘한 뭉클함이 느껴졌다. 학생들도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도 이 노래 가사를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노래를 재차 들을 때에는 계엄 이후 광장의 모습을 담은 뮤직 비디오로 감상했다. 시대와 세대와 광장들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교실에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만난 세계〉가 잠시나마 강렬한 빛을 남긴 것 같았다.
‘계엄, 내란, 탄핵 너머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질문으로 수업을 끝내려고 했는데 한 시간 동안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시간 대화를 상기하며 마무리했다. 사실 사회 교과와도 연계해 보려고 ‘정치생활과 민주주의’ 단원과 연결된 질문들을 예비로 준비했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공동 수업 자료를 참고한 내용이었다. 〈세계 인권 선언〉을 읽고 시민으로서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나서 비인간 존재들의 권리를 포함하는 ‘세계 선언’은 가능한지 상상해 보는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활동이었다. 사회 선생님께 공동 수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지만 여러 문제로 함께 수업을 열지못한 것이 안타깝다.
수업 다음 날 민원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급하게 준비하느라 좋은 수업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또한 민원을 넣은 보호자와 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조금 후회된다. 아무 일도 없는 척 담담하게(그러나 흥분해서) ‘민주주의 특별 수업’을 준비했지만 사실 압박감이 컸고 다시 민원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원으로 손쉽게 수업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얻은 효능감이 보호자들에게 팁으로 전수되지 않아야 할 텐데. 내 수업은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일방적 민원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 토의를 바란다. 교사의 수업 철학이나 수업 의도, 수업의 방향에 대해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함께 토의하다 보면 더 좋은 수업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과정도 새로운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고민들
계엄으로 인한 울분을 언어로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워 더 센 말을 찾다가 꺼낸 단어들이라고 애써 이해해 보려 했지만, ‘멧돼지 사냥’, ‘죽이자’ 등으로 표현되는 보복과 폭력의 언어들이 불편했다. 교실과 광장에서 과도한 분노와 적대의 감정에 우리가 사로잡히면 어쩌나 걱정했다. 어떻게 해야 책임을 모두 상대에게 돌리는 말이 아니라 이런 체제를 만든 책임이 나에게도 있음을 성찰하는 말들로 광장을 채울 수 있을까. 남태령과 한남동과 그 이후의 광장에는 연대와 사랑의 말들이 자꾸자꾸 더 많이 채워져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그대로인 듯하여 상처받는다. 상호 돌봄과 공생의 삶의 태도와 기술을 일상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야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론보다는 실제 삶으로 만나게 하는 다정한 학교 문화를, 요구하지도 의탁하지도 말고 직접 마음을 써서 만들어야지 싶다.
좋은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정의, 공생, 연대 같은 것들을 믿고 상상하며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번 ‘민주주의 특별 수업’에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로 계엄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아쉬움이 컸다. 이 시가 민주주의를 다룬 전형적인 작품이라서 선택했지만, 시의 배경인 1970년대와는 달리 지금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쟁과 폭력의 합법화와 내면화, 기후 위기 심화 등으로 다양한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좀 긴 호흡으로 좋은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민주주의’를 대주제로 하여 요즘 청년 여성, 가난, 차별, 생태 위기 등 다양한 주제로 한국 사회를 보여 주는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해 봐야겠다.
탄핵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는 비인간 동물도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폭력은 남겨 두기로 용인하면, 끊임없이 그 경계가 옮겨지며 차별과 폭력에 고통받는 존재가 생겨난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차별받아도/죽임을 당해도 돼’라고 용인된 세계는 ‘은 XX해도 돼’로 무한 확장될 수 있다. 인간 때문에 너무 많이 죽는 존재들이 지금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열리는 ‘치맥 페스티벌’에는 축제 기간인 일주일 동안에 100만 명의 인간들이 방문하고 그 기간 동안 100만 ‘명’의 닭이 목숨을 잃는다.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에서도 축제 기간 동안 100만 ‘명’의 산천어가 학대당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런 폭력적 시스템을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배제되는 존재를 만들지 않는 연습, 더 많은 민주주의 수업으로 학교에서도 더 많은 연습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동대구역 기후 시계가 4년 166일(2025년 2월 6일 기준)을 가리키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에는 더 극심한 기후 재난이 모두의 삶을 뒤흔들어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인간 중심주의, 추출주의, 가부장 자본주의, 성장주의로는 우리의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강, 댐, 숲, 마을, 이곳에 깃든 생명들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공생을 상상해야 한다.
한편 이번 일을 통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최근 충북교육청은 홈페이지에 정치 편향 신고 게시판을 운영하다가 전교조 충북지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문을 닫기도 했다. 어차피 잘 활용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건 어느 내란 우두머리식 화법이다. 점점 교사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학교공동체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목소리를 빼앗겼었고 교사도 목소리를 빼앗긴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얻는 일은 교사만 기본권을 얻는 게 아니라 차별과 배제가 없는 학교와 사회로 크게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 자유, 평등, 인권, 다양성 존중 등’을 기준으로 함께 배우고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숙제가 생긴 셈인데, 지금부터 함께 기분 좋게 해결해 보자.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다.[ref]홍은전(2020), 《그냥, 사람》, 봄날의책, 79쪽.[/ref]
다시 계엄 이후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감을 확인하고 두려움을 조금 밀어냈던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민주주의 특별 수업’ 후 우리 학교 청소년, 마을교사 선생님과 함께 국회 앞에 가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태원 참사 현장도 방문하여 함께 추모했던 순간들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돌아보면 동물권 활동, 다양한 연대 활동을 하며 마치 계엄과 같은 폭력을 자주 느껴 왔었다. 그때마다 나를 구했던 것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작은 독서 모임과 함께 만들고 있는 축제 같은 것으로 ‘연결된 순간을 감각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학생들과도 이런 감각을 나누고 싶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 돌봄으로, 주변을 덜 무해하고 다정한 이들로 채우는 삶이 주는 충만한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는 홍은전 작가의 말이 더 많이 이야기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을 믿는 우리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더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도록, 혐오와 폭력을 밀어내고 가장 아픈 곳부터 사랑으로 보듬는 다정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민원으로 시작된,
탄핵 너머의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하는
‘민주주의 특별 수업’
김기훈
wkwn21@naver.com
충북 영동 추풍령중 교사
계엄이 발표된 날, 어둠이 짙게 내린 추풍령에 혼자 있었다. 계엄이 이렇게 뜬금없이 선포되어도 되는 것이었나 당황스러웠고 나나 동료들이 체포되면 어떡하나 무서워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방송 송출이 중단되거나 SNS나 메신저 앱이 막히면 완전히 고립된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대구에서 함께 동물권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 메세지를 주고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편안해졌다. 급히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동료들과의 소통방을 옮겼다. 텔레그램 수사가 어렵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아는 이름들의 신규 가입 메시지가 자꾸 떴다. 계엄군이 주요 시설을 점령하면 우선 ‘책빵고스란히 피난처’에 모이자, 이런 약속도 했다.
두려움을 조금 밀어내니 다른 이들이 걱정되었다. SNS에도 글을 남겼다.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운 분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남겨 달라, 서로에게 힘이 되어 보자고. 몇 분과 댓글로 마음을 나누었다. 한 분은 내가 게시물로 공유했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구절[ref]“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한강(2014), 《소년이 온다》, 창비, 114쪽)[/ref]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장악을 저지하려고 애쓴 분들에게 큰 빚을 졌다. 한편 국회 밖에서, 계엄의 부당함과 불법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기꺼이 연결되었던 이들 역시 계엄 해제에 큰 힘이 되었다. 불면의 밤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과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교실에서 마음을 나누다
날이 밝았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이후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지만 행여 계엄군들이 불복하고 판을 뒤집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잠자리가 불편했다. 계엄 소동이 있었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정시 출근을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아무 일’이 있었던 건 피곤한 몸으로 이미 증명이 된 게 아닌가. 첫 수업에 들어가 가볍게 계엄 당시 느꼈던 공포,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도 나처럼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 것 같아 위로를 나누고 싶었다.
학생들의 기분과 생각에 대해 물어보았다. 계엄이 뭔지는 모르지만 뉴스에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이상했다고 했다. 일찍 잠들어서 계엄 자체를 몰랐다는 학생, 교육부가 계엄과 관련해 휴교령을 검토했었다는 얘기에 정상 등교가 섭섭하다는 학생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박근혜 탄핵 당시의 일들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는 계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학생이 있어 간단히 소개했다. 계엄령을 함께 읽어 보며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았다. 다시 읽어 봐도 섬뜩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인데 논쟁 상대를 반국가 세력, 처단의 대상으로 삼아 공권력을 휘두르다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국민의 헌법적 자유를 일순간에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은 이유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 세력으로 생각하는, ‘생각 없는’ 대통령과 지지 세력들 때문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설명이 끝난 후 교실은 묘한 분위기였다. 다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만약 여러분들과 담임 선생님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생겼는데,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학급 운영은 담임의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포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따로 격리시키고 징계를 내린다면, 조사나 체벌 등의 조치도 학칙에 따르지 않고 담임 선생님 마음대로 한다면, 학생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항의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거 큰 문제가 아닐까?”
“그건 좀 그렇죠.”
그때 누군가 “이재명이 잘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온다고?’ 지난 박근혜 탄핵 광장을 가득 채웠던 사회 개혁의 열망이 어떻게 사그라졌는지 생각했다. 문재인 정권 집권 시기는 여러 개혁 과제 중 검찰 개혁 등 몇몇 이슈에 집중하고 다른 과제들은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때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꺼냈다. ‘벌써 다음 대통령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지금은 계엄 뒷정리(내란 책임자 처벌)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면 좋을지 이야기해야 할 때 같다’고 덧붙였다. 조심스레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탄핵 이후에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어?”
추풍령과 같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게 서울, 도시 집중의 시스템을 바꾸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 청소년 정치 참여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띄엄띄엄 나왔다. (아쉽게도 기후 정의처럼 평소에 강조해 왔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아 조금 섭섭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지하고 충분하게 공론장에서 다루어져야 해. 이런 말을 했다고 반국가 세력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돼. 공생, 존중, 평등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가치야. 꼭 기억합시다.”
‘담임의 계엄’을 예로 든 것이 좋았던 것 같진 않다. 폭력의 크기를 강조하려고 했던 선택이지만 불필요하게 자극적이었다. 학생들의 선출된 대표인 학생회장을 예로 드는 게 더 적절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담임 교사가 무슨 죄가 있나. 담임 교사가 그런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 것도 반성했다.
민원에 쫄지 않고
모 학년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한 학생의 보호자의 연락을 받았는데, ‘국어 수업 중에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민원이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은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일이나 정치와 완전히 관련 없는 국어 수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국어 과목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다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좋은 관계(그 관계 중 하나는 정치적 관계이다)를 맺는 경험을 한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세상일인 계엄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관계 맺는 연습을 국어 수업 시간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자고 선동한 것도 아닌데 민원이라니! 그 담임 선생님에게 정중하게 수업의 의도를 설명 드리고 또 전화가 오면 직접 대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선생님께서도 함께 걱정해 주셨다.
자칭 백골단이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거나, 자극적인 말들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선동하는 것 등은 공적 자리에서도 발언할 기회를 얻는데, 어떤 발언은 제한된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렇다면 아예 민원을 넣지 못하게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 수업으로 계엄에 대해서 말하겠다!’ 당장 오후 수업에 쓸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 특별 수업’이 만들어졌다.
학생들에게는 3학년 때 배울 성취 기준을 미리 배운다며 아래 성취 기준을 안내했다.
다음으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을 감상했다. 작품 속 화자가 처한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간단하게 이 시가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폈다. 김지하 시인의 회고록도 일부 읽어 보았다. 그런 후에 ‘오늘날의 상황(계엄과 친위 쿠데타)’과 연결하면서 시대적 배경을 비교하고, 오늘날의 삶에 비추어 다시 해석해 보며 감상을 마쳤다.
도약 과제로 ‘함께 읽기 : 연결되는 노래들’을 제시했다. 여기서는 시가 노래고 노래가 곧 시임을 언급하며 지금 광장에서 많이 불리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다시 만난 세계〉를 나란히 감상했다. 먼저 노래를 듣고 가사를 함께 읽어 보며 노래를 이해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왜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 용기의 노래가 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다. 〈다시 만난 세계〉를 이렇게 자세히 살피기는 처음이라 낯설었는데, 교실에서 노래를 듣는 동안 묘한 뭉클함이 느껴졌다. 학생들도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도 이 노래 가사를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노래를 재차 들을 때에는 계엄 이후 광장의 모습을 담은 뮤직 비디오로 감상했다. 시대와 세대와 광장들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교실에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만난 세계〉가 잠시나마 강렬한 빛을 남긴 것 같았다.
‘계엄, 내란, 탄핵 너머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질문으로 수업을 끝내려고 했는데 한 시간 동안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시간 대화를 상기하며 마무리했다. 사실 사회 교과와도 연계해 보려고 ‘정치생활과 민주주의’ 단원과 연결된 질문들을 예비로 준비했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공동 수업 자료를 참고한 내용이었다. 〈세계 인권 선언〉을 읽고 시민으로서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나서 비인간 존재들의 권리를 포함하는 ‘세계 선언’은 가능한지 상상해 보는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활동이었다. 사회 선생님께 공동 수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지만 여러 문제로 함께 수업을 열지못한 것이 안타깝다.
수업 다음 날 민원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급하게 준비하느라 좋은 수업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또한 민원을 넣은 보호자와 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조금 후회된다. 아무 일도 없는 척 담담하게(그러나 흥분해서) ‘민주주의 특별 수업’을 준비했지만 사실 압박감이 컸고 다시 민원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원으로 손쉽게 수업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얻은 효능감이 보호자들에게 팁으로 전수되지 않아야 할 텐데. 내 수업은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일방적 민원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 토의를 바란다. 교사의 수업 철학이나 수업 의도, 수업의 방향에 대해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함께 토의하다 보면 더 좋은 수업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과정도 새로운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고민들
계엄으로 인한 울분을 언어로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워 더 센 말을 찾다가 꺼낸 단어들이라고 애써 이해해 보려 했지만, ‘멧돼지 사냥’, ‘죽이자’ 등으로 표현되는 보복과 폭력의 언어들이 불편했다. 교실과 광장에서 과도한 분노와 적대의 감정에 우리가 사로잡히면 어쩌나 걱정했다. 어떻게 해야 책임을 모두 상대에게 돌리는 말이 아니라 이런 체제를 만든 책임이 나에게도 있음을 성찰하는 말들로 광장을 채울 수 있을까. 남태령과 한남동과 그 이후의 광장에는 연대와 사랑의 말들이 자꾸자꾸 더 많이 채워져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그대로인 듯하여 상처받는다. 상호 돌봄과 공생의 삶의 태도와 기술을 일상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야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론보다는 실제 삶으로 만나게 하는 다정한 학교 문화를, 요구하지도 의탁하지도 말고 직접 마음을 써서 만들어야지 싶다.
좋은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정의, 공생, 연대 같은 것들을 믿고 상상하며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번 ‘민주주의 특별 수업’에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로 계엄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아쉬움이 컸다. 이 시가 민주주의를 다룬 전형적인 작품이라서 선택했지만, 시의 배경인 1970년대와는 달리 지금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쟁과 폭력의 합법화와 내면화, 기후 위기 심화 등으로 다양한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좀 긴 호흡으로 좋은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민주주의’를 대주제로 하여 요즘 청년 여성, 가난, 차별, 생태 위기 등 다양한 주제로 한국 사회를 보여 주는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해 봐야겠다.
탄핵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는 비인간 동물도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폭력은 남겨 두기로 용인하면, 끊임없이 그 경계가 옮겨지며 차별과 폭력에 고통받는 존재가 생겨난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차별받아도/죽임을 당해도 돼’라고 용인된 세계는 ‘은 XX해도 돼’로 무한 확장될 수 있다. 인간 때문에 너무 많이 죽는 존재들이 지금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열리는 ‘치맥 페스티벌’에는 축제 기간인 일주일 동안에 100만 명의 인간들이 방문하고 그 기간 동안 100만 ‘명’의 닭이 목숨을 잃는다.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에서도 축제 기간 동안 100만 ‘명’의 산천어가 학대당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런 폭력적 시스템을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배제되는 존재를 만들지 않는 연습, 더 많은 민주주의 수업으로 학교에서도 더 많은 연습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동대구역 기후 시계가 4년 166일(2025년 2월 6일 기준)을 가리키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에는 더 극심한 기후 재난이 모두의 삶을 뒤흔들어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인간 중심주의, 추출주의, 가부장 자본주의, 성장주의로는 우리의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강, 댐, 숲, 마을, 이곳에 깃든 생명들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공생을 상상해야 한다.
한편 이번 일을 통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최근 충북교육청은 홈페이지에 정치 편향 신고 게시판을 운영하다가 전교조 충북지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문을 닫기도 했다. 어차피 잘 활용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건 어느 내란 우두머리식 화법이다. 점점 교사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학교공동체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목소리를 빼앗겼었고 교사도 목소리를 빼앗긴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얻는 일은 교사만 기본권을 얻는 게 아니라 차별과 배제가 없는 학교와 사회로 크게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 자유, 평등, 인권, 다양성 존중 등’을 기준으로 함께 배우고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숙제가 생긴 셈인데, 지금부터 함께 기분 좋게 해결해 보자.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다시 계엄 이후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감을 확인하고 두려움을 조금 밀어냈던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민주주의 특별 수업’ 후 우리 학교 청소년, 마을교사 선생님과 함께 국회 앞에 가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태원 참사 현장도 방문하여 함께 추모했던 순간들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돌아보면 동물권 활동, 다양한 연대 활동을 하며 마치 계엄과 같은 폭력을 자주 느껴 왔었다. 그때마다 나를 구했던 것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작은 독서 모임과 함께 만들고 있는 축제 같은 것으로 ‘연결된 순간을 감각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학생들과도 이런 감각을 나누고 싶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 돌봄으로, 주변을 덜 무해하고 다정한 이들로 채우는 삶이 주는 충만한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는 홍은전 작가의 말이 더 많이 이야기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을 믿는 우리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더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도록, 혐오와 폭력을 밀어내고 가장 아픈 곳부터 사랑으로 보듬는 다정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