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에서 보편으로
통합학급에서의 수업 참여와
평가 참여 권리에 대해
- “엄마, 내가 배우지도 않은 걸
시험을 봐야 해요?”
조경미
7642066@hanmail.net
통합교육 다모여 활동가
지난 83호(정예현, 〈특수교육대상자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평가받아야 하나〉)에 이어 특수교육대상자의 평가 문제에 대해서 다시 다룬다. 특수교육대상자는 개별화교육수립계획에 따라 특수학급에서 받는 수업에 대해서도 다른 비장애 학생과 같은 내용으로 지필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배우지 않은 내용을 평가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런 움직임은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1월 16일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교사와 학부모, 법률가 등이 모여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평가 조정 현황과 대안 모색 :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의 관점에서’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조경미 활동가와 김민진 교사의 내용을 지면에 담는다. - 편집부 |
나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쌍둥이를 양육하는 학부모이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수행 평가와 지필 평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못했다. 막상 상황이 닥치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중학교 입학 후 2학기를 맞이한 어느 날, 아이의 질문에서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거대한 질문 앞에서 지금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있다.
“엄마, 나도 시험을 봐야 해요?”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나도 시험을 봐야 해요?”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중학교 진학 후 1학기에는 자유학기제로 시험이 없었고, 2학기 처음으로 지필 평가를 치르게 되었다. 아이의 질문을 받고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재차 “나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시험을 봐야 할까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 그렇지?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아이가 질문하기 전까지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시험을 본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시험을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배우지도 않은 걸 어떻게 시험을 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른 학생들은 다 보는데 우리 아이만 시험을 안 볼 수가 있나?’ ‘혹시라도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니 시험이 면제되려나?’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온통 물음표투성이였다.
아이 스스로가 배우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국어, 영어, 수학을 특수학급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통합학급에서 배우지 않는 교과목 시험을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은 내용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은 답은 모두 “평가, 특히 지필 평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업성적관리규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번 찍기로 쭉~ 빈칸 없이 채우고 나오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했다.
특수교육대상자란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으로 선정된 사람이고, 특수교육이란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성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을 말한다. 그래서 학기 초 개별화교육계획에 따라 국어, 수학 등의 과목은 현재 학습 수행 수준을 파악하고, 장기, 단기 교육 목표를 세운 후에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 등 지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쌍둥이 중 한 아이의 개별화교육지원계획을 보니 현행 수준으로 수학은 세 자리 수 덧셈과 뺄셈이 가능하며 문장제 문제를 쓰고 답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 학생에게 중1 수학 문제가 담긴 시험지를 그대로 제시하고 풀라고 하는 것이다.
왜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수업은 특수학급에서, 지필 평가는 또래 아이들 수준으로 통합학급에서 또 한 번 시험을 봐야 하는 이 이중적인 구조가 정말 괜찮다는 걸까?
평가를 고민하다 보니 수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교과 수업 시간에 개별 특성을 고려한 수업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받았더라도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본다는 것은 애초에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취 수준이 다르기에 비장애 학생과 똑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보는 자체가 아이 입장에서는 부당한 것이 아닌가?
2학기 중간고사를 통해 첫 지필 평가를 보기 전에도 아이는 평소 통합학급에서 수행 평가를 받았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었을까? 학기 중 여러 차례 이뤄지는 수행 평가에 자녀가 어떻게 참여했는지 학부모가 알기는 어렵다. 이름만 써서 내는지, 열심히 참여했는지 안 했는지 부모는 알 수가 없다. 아이가 집에 와서 말해 주지 않으니까. 학기 중 담임 선생님과 특수 교사에게 문의를 했지만 평가는 교과 선생님 몫이기에 본인들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2학기가 지나고 학기 말에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수행 평가 과제물을 보았다. 거의 대부분 이름만 쓰고 제출한 것 같았다. 그 시험지에는 정말 어려운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는 이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수행 평가에서 ‘평가 조정’이 된다니!
이상하고 답답하지만, 개인의 불편함 정도로 치부되는 이 상황에 대해 몰두하고 있던 차에 《모두 참여 수업 : 중등편》 북토크에 참여하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자 음악 교과 선생님께서는 음악 수행 평가를 볼 때 학생 특성과 능력에 맞게 곡을 다르게 선곡하여 진행하는 등의 평가 조정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수행 평가에서 평가 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내용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평가 조정이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특수 교사가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수행 평가 시 평가 조정을 해야 한다고 안내를 했고, 본인도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있다고 답하셨다.
그렇게 서울 공릉중학교와 그곳의 특수 교사인 김민진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과 함께 김민진 선생님을 모시고 모두 참여 수업과 평가 조정에 대한 강의도 들으면서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 권리에 대한 법률적 권리를 보장받는 방법을 찾아보는 자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이 중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더공감교실 지원으로 특수 교사 1명이 추가로 배치되어 있다. 교사 한 명이 더 배치되자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의 통합학급에서의 수업 참여를 위해 특수 교사와 교과 교사가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한다. 수업은 교과 교사와 특수 교사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보편적 학습 설계를 통해 모두를 위한 수업이 가능하도록 준비한다. 보편적 학습 설계로 수업한다는 것은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고, 다양한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자료라도 다양한 방식과 또 다른 수준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을 특수 교사 혼자서가 아니라 교과 교사들이 함께 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수업에서 협력을 하니 평가에서도 협력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이 학교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으면 특수 교사가 수행 평가를 실시한다고 한다. 또한 교과목마다 수행 평가를 시행하기 전 특수 교사와 함께 협력하여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참여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학업성적관리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아래는 공릉중 학업성적관리규정이다.
⑬ 특수학급 배치 특수교육대상학생의 수행평가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 통합학급에서 모든 시수를 참여하는 교과는 교과별 수행평가 계획에 의해 일반 학생과 동일하게 평가하나, 필요한 경우 특수교육대상학생의 장애 정도 및 특성에 따라 특수교사와 협의하여 평가 조정을 실시한다. 2. 특수학급에서 해당 교과의 모든 시수를 참여하는 교과(국어, 영어, 수학)의 경우 특수교사가 해당 교과의 수행평가 영역 및 평가기준과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특성에 따라 수행평가를 실시한 후, 해당 교과의 담당교사와 협의하여 최종 점수를 부여한다. |
서울 공릉중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
공릉중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이렇게 일반 교과 교사와 특수 교사가 협력하고 평가 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자녀를 공릉중으로 전학시키기보다는 모든 학교가 공릉중처럼 모두 참여 수업과 평가 조정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힘들어지는 통합교육
통합교육은 ‘장애 유형,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특수학급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통합학급에서는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명시된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과 장애 학생 평가 조정은 현장에서 축소되어 적용되고 있다.
교육부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ref]교육부(2024),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ref]에 따르면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 강화” 내용에서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따라 학교별 학업성적관리규정에 장애 학생 평가 조정 규정을 정하여 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3) 정당한 교육편의 지원▲「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별표9] ▲「특수교육법」 제28조(특수교육 관련서비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4조(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특수학교시설·설비기준령」 제5조(안전 및 편의 시설·설비의 종류 및 기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편의시설 설치의 기본 원칙) |
○ 시도교육청은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장애학생의 평가조정 규정을 마련하여 학생이 장애유형과 정도를 고려한 적절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 각급학교는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따라 학교별 학업성적관리 규정에 평가조정* 규정을 정하여 시행 * 평가의 본래 목적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항의 제시 형태, 반응 형태, 검사 시간, 검사 환경 등을 조정하는 것과 같이 평가 전·중·후에 이루어지는 일체의 노력 ※ ‘장애학생 평가조정 매뉴얼(2016, 국립특수교육원)’ 참고 - 평가조정으로도 학교단위 평가에 참여가 어려운 장애학생을 위한 평가 지원방안 강구 ※ (참고) 중·고등학교 장애학생 교과학습발달상황 평가 도움자료(‘21., 교육부) |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명시된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과 장애 학생 평가 조정
다만 교육부의 이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해서 학교 현장에서는 시각·청각·지체장애 학생들에 대한 평가 조정 외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평가 조정에 대한 고민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학교에서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 진행 시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평가 조정을 제안하였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부 매뉴얼을 가지고 시각·청각·지체장애 학생들에게만 평가 조정이 해당된다는 답을 했다. 발달장애 학생의 평가 조정에 대해서는 현장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따라 시·도교육청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해 보았지만 평가 조정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공릉중 학업성적관리규정을 보고 우리 자녀의 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해 보았지만 공릉중처럼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f]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업성적관리규정이 궁금하다면 학교알리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ref]❷
반쪽짜리 교육받을 권리, 이것은 최선이 아니다
특수교육대상 학생들 역시 자신의 수준에 따라 지원을 받는다면 다른 비장애 학생들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적 성취를 고려하지 않은 환경에서 학생들은 무력감, 학습 의욕 상실, 좌절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릉중처럼 장애 학생의 평가 조정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하는 특수 교사와 일반 교과 교사들, 관리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모든 학교에서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이 가능하도록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발전적인 고민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결코 특수교육대상 학생에게 점수를 더 잘 받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 존재하는 학생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와 격려, 칭찬은 학습에 동기 부여가 되고 성장의 기초가 된다.
흔히 부모들 사이에서 통합교육은 초등학교까지만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실질적은 통합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대로라면 학교로서 의미가 없다. 한 공간에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는 통합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어렵기 때문에 각자 따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어렵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의 과정에서 수많은 현장 선생님들의 빛나는 노력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기에 용기를 내 보고자 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과 지원으로 모든 학생의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장애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현장 교사들과 부모들의 투쟁으로 얻은 결과였다.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교 통합교육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는 수업 참여와 평가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주류인 사회에서 모두가 다 어렵다고 해도 장애 학생이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것은 차별이고 모든 학생을 위한 수업과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에 말하고자 한다.
기존 관례대로 해 오던 모든 것들을 반대한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지원도 없이 이뤄지는 각종 수행 평가와 시험을 반대한다. 이제 교육 현장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들을 모아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위한 수업 참여 및 평가 조정을 요구하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
특수에서 보편으로
통합학급에서의 수업 참여와
평가 참여 권리에 대해
- “엄마, 내가 배우지도 않은 걸
시험을 봐야 해요?”
조경미
7642066@hanmail.net
통합교육 다모여 활동가
지난 83호(정예현, 〈특수교육대상자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평가받아야 하나〉)에 이어 특수교육대상자의 평가 문제에 대해서 다시 다룬다. 특수교육대상자는 개별화교육수립계획에 따라 특수학급에서 받는 수업에 대해서도 다른 비장애 학생과 같은 내용으로 지필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배우지 않은 내용을 평가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런 움직임은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1월 16일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교사와 학부모, 법률가 등이 모여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평가 조정 현황과 대안 모색 :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의 관점에서’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조경미 활동가와 김민진 교사의 내용을 지면에 담는다.
- 편집부
나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쌍둥이를 양육하는 학부모이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수행 평가와 지필 평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못했다. 막상 상황이 닥치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중학교 입학 후 2학기를 맞이한 어느 날, 아이의 질문에서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거대한 질문 앞에서 지금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있다.
“엄마, 나도 시험을 봐야 해요?”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나도 시험을 봐야 해요?”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중학교 진학 후 1학기에는 자유학기제로 시험이 없었고, 2학기 처음으로 지필 평가를 치르게 되었다. 아이의 질문을 받고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재차 “나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시험을 봐야 할까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 그렇지?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아이가 질문하기 전까지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시험을 본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시험을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배우지도 않은 걸 어떻게 시험을 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른 학생들은 다 보는데 우리 아이만 시험을 안 볼 수가 있나?’ ‘혹시라도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니 시험이 면제되려나?’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온통 물음표투성이였다.
아이 스스로가 배우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국어, 영어, 수학을 특수학급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통합학급에서 배우지 않는 교과목 시험을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은 내용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은 답은 모두 “평가, 특히 지필 평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업성적관리규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번 찍기로 쭉~ 빈칸 없이 채우고 나오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했다.
특수교육대상자란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으로 선정된 사람이고, 특수교육이란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성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을 말한다. 그래서 학기 초 개별화교육계획에 따라 국어, 수학 등의 과목은 현재 학습 수행 수준을 파악하고, 장기, 단기 교육 목표를 세운 후에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 등 지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쌍둥이 중 한 아이의 개별화교육지원계획을 보니 현행 수준으로 수학은 세 자리 수 덧셈과 뺄셈이 가능하며 문장제 문제를 쓰고 답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 학생에게 중1 수학 문제가 담긴 시험지를 그대로 제시하고 풀라고 하는 것이다.
왜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수업은 특수학급에서, 지필 평가는 또래 아이들 수준으로 통합학급에서 또 한 번 시험을 봐야 하는 이 이중적인 구조가 정말 괜찮다는 걸까?
평가를 고민하다 보니 수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교과 수업 시간에 개별 특성을 고려한 수업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받았더라도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본다는 것은 애초에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취 수준이 다르기에 비장애 학생과 똑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보는 자체가 아이 입장에서는 부당한 것이 아닌가?
2학기 중간고사를 통해 첫 지필 평가를 보기 전에도 아이는 평소 통합학급에서 수행 평가를 받았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었을까? 학기 중 여러 차례 이뤄지는 수행 평가에 자녀가 어떻게 참여했는지 학부모가 알기는 어렵다. 이름만 써서 내는지, 열심히 참여했는지 안 했는지 부모는 알 수가 없다. 아이가 집에 와서 말해 주지 않으니까. 학기 중 담임 선생님과 특수 교사에게 문의를 했지만 평가는 교과 선생님 몫이기에 본인들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2학기가 지나고 학기 말에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수행 평가 과제물을 보았다. 거의 대부분 이름만 쓰고 제출한 것 같았다. 그 시험지에는 정말 어려운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는 이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수행 평가에서 ‘평가 조정’이 된다니!
이상하고 답답하지만, 개인의 불편함 정도로 치부되는 이 상황에 대해 몰두하고 있던 차에 《모두 참여 수업 : 중등편》 북토크에 참여하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자 음악 교과 선생님께서는 음악 수행 평가를 볼 때 학생 특성과 능력에 맞게 곡을 다르게 선곡하여 진행하는 등의 평가 조정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수행 평가에서 평가 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내용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평가 조정이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특수 교사가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수행 평가 시 평가 조정을 해야 한다고 안내를 했고, 본인도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있다고 답하셨다.
그렇게 서울 공릉중학교와 그곳의 특수 교사인 김민진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과 함께 김민진 선생님을 모시고 모두 참여 수업과 평가 조정에 대한 강의도 들으면서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 권리에 대한 법률적 권리를 보장받는 방법을 찾아보는 자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이 중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더공감교실 지원으로 특수 교사 1명이 추가로 배치되어 있다. 교사 한 명이 더 배치되자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의 통합학급에서의 수업 참여를 위해 특수 교사와 교과 교사가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한다. 수업은 교과 교사와 특수 교사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보편적 학습 설계를 통해 모두를 위한 수업이 가능하도록 준비한다. 보편적 학습 설계로 수업한다는 것은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고, 다양한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자료라도 다양한 방식과 또 다른 수준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을 특수 교사 혼자서가 아니라 교과 교사들이 함께 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수업에서 협력을 하니 평가에서도 협력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이 학교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으면 특수 교사가 수행 평가를 실시한다고 한다. 또한 교과목마다 수행 평가를 시행하기 전 특수 교사와 함께 협력하여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참여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학업성적관리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아래는 공릉중 학업성적관리규정이다.
⑬ 특수학급 배치 특수교육대상학생의 수행평가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 통합학급에서 모든 시수를 참여하는 교과는 교과별 수행평가 계획에 의해 일반 학생과 동일하게 평가하나, 필요한 경우 특수교육대상학생의 장애 정도 및 특성에 따라 특수교사와 협의하여 평가 조정을 실시한다.
2. 특수학급에서 해당 교과의 모든 시수를 참여하는 교과(국어, 영어, 수학)의 경우 특수교사가 해당 교과의 수행평가 영역 및 평가기준과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특성에 따라 수행평가를 실시한 후, 해당 교과의 담당교사와 협의하여 최종 점수를 부여한다.
서울 공릉중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
공릉중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이렇게 일반 교과 교사와 특수 교사가 협력하고 평가 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자녀를 공릉중으로 전학시키기보다는 모든 학교가 공릉중처럼 모두 참여 수업과 평가 조정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힘들어지는 통합교육
통합교육은 ‘장애 유형,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특수학급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통합학급에서는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명시된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과 장애 학생 평가 조정은 현장에서 축소되어 적용되고 있다.
교육부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ref]교육부(2024),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ref]에 따르면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 강화” 내용에서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따라 학교별 학업성적관리규정에 장애 학생 평가 조정 규정을 정하여 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 시도교육청은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장애학생의 평가조정 규정을 마련하여 학생이 장애유형과 정도를 고려한 적절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 각급학교는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따라 학교별 학업성적관리 규정에 평가조정* 규정을 정하여 시행
* 평가의 본래 목적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항의 제시 형태, 반응 형태, 검사 시간, 검사 환경 등을 조정하는 것과 같이 평가 전·중·후에 이루어지는 일체의 노력
※ ‘장애학생 평가조정 매뉴얼(2016, 국립특수교육원)’ 참고
- 평가조정으로도 학교단위 평가에 참여가 어려운 장애학생을 위한 평가 지원방안 강구
※ (참고) 중·고등학교 장애학생 교과학습발달상황 평가 도움자료(‘21., 교육부)
〈2024년도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명시된 정당한 교육 편의 지원과 장애 학생 평가 조정
다만 교육부의 이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해서 학교 현장에서는 시각·청각·지체장애 학생들에 대한 평가 조정 외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평가 조정에 대한 고민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학교에서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 진행 시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평가 조정을 제안하였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부 매뉴얼을 가지고 시각·청각·지체장애 학생들에게만 평가 조정이 해당된다는 답을 했다. 발달장애 학생의 평가 조정에 대해서는 현장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수교육 운영계획에 따라 시·도교육청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해 보았지만 평가 조정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공릉중 학업성적관리규정을 보고 우리 자녀의 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해 보았지만 공릉중처럼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f]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학업성적관리규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업성적관리규정이 궁금하다면 학교알리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ref]❷
반쪽짜리 교육받을 권리, 이것은 최선이 아니다
특수교육대상 학생들 역시 자신의 수준에 따라 지원을 받는다면 다른 비장애 학생들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적 성취를 고려하지 않은 환경에서 학생들은 무력감, 학습 의욕 상실, 좌절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릉중처럼 장애 학생의 평가 조정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하는 특수 교사와 일반 교과 교사들, 관리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모든 학교에서 수업 참여와 평가 조정이 가능하도록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발전적인 고민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결코 특수교육대상 학생에게 점수를 더 잘 받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 존재하는 학생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와 격려, 칭찬은 학습에 동기 부여가 되고 성장의 기초가 된다.
흔히 부모들 사이에서 통합교육은 초등학교까지만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실질적은 통합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대로라면 학교로서 의미가 없다. 한 공간에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는 통합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어렵기 때문에 각자 따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어렵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의 과정에서 수많은 현장 선생님들의 빛나는 노력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기에 용기를 내 보고자 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과 지원으로 모든 학생의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장애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현장 교사들과 부모들의 투쟁으로 얻은 결과였다.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교 통합교육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는 수업 참여와 평가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주류인 사회에서 모두가 다 어렵다고 해도 장애 학생이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것은 차별이고 모든 학생을 위한 수업과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에 말하고자 한다.
기존 관례대로 해 오던 모든 것들을 반대한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지원도 없이 이뤄지는 각종 수행 평가와 시험을 반대한다. 이제 교육 현장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들을 모아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위한 수업 참여 및 평가 조정을 요구하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