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후속]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 통합교육과 민주주의, 서로 돕자 | 정예현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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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통합교육과 민주주의, 서로 돕자!



정예현  btyeppy@gmail.com 

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서울 위원





통합교육에 갑자기 민주주의?


통합교육과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써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자마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둘을 왜 갖다 붙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곧바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통합교육을 잘 실현하게 해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통합교육은 ‘꼭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늘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어떤 방법으로 교실 안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통합교육을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통합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까. 늘 ‘어떻게’가 고민인 나에게 이번 제안 역시도 ‘어떻게’를 찾아내야 할 질문으로 들렸다.


이내 다시 벽에 부딪쳤다. ‘민주주의는 도대체 뭐야?’ 내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틀린 것이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이거나,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이걸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나 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민주주의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힘에 부쳐 포기하고 내 일상을 돌아보기로 했다.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나에게 민주주의란 숨 쉬듯 당연한 것이지만, 의외로 생활 속에서는 정치인을 뽑는 선거 외에는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일이 적은 것 같다. 그래선지 내가 속한 작은 집단에서라도 민주주의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척 강하다.

학부모회 활동을 할 때도 선배들이 해 왔듯이, ‘미리 심어 놓은 ‘아는’ 사람’으로 대의원회를 구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번거롭더라도, 반에서 뽑힌 학급 대표들이 모여 학년 대표를 선출했다. 학부모회 규정에는 구체적인 선출 방법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굳이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규정에 특별히 선출 방법을 넣지 않는 이유는 바로, ‘민주적 선출 방법’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알려지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학부모회 활동이라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보려는 개인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 ‘뉴페이스 대의원’이 여럿 나왔다. 내정자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대의원회는 생각이 무척 다양하고 그래서 피곤하다. 각자의 개성이 강하고 경험도 제각각이다 보니 사소한 안건이라고 생각했던 주제로 1시간 넘게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중했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문자 그대로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누어졌다. 그 더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피로가 쌓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생각이 오가며 각자의 생각에 변주가 시작되기도 했다. 이 순간이 변곡점이 되어 조금 더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이런 길고 비효율적인 토론의 과정이 나에게는 민주주의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무엇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인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 그런 결정 사항을 실행해 보면서 고쳐야 할 점을 찾고 바꿔 나가며 또 실행해 보는 것.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찾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통합교육을 구원해 줄까?


이상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통합교육을 구원해 줄 것 같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이야기하니까. 인간 보편의 권리를 위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나 다양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모두 차별 없이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고, 배움의 어려움을 덜어 줄 수 있는 여러 인적, 물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학교의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합교육을 말하는 우리들은, 종종 극소수를 위한 교육에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요구를 하는 부류가 된다. 이제 헷갈린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학교에서 의심 없이 배웠지 않은가. 그렇다면 ‘학습권 침해’를 들며 통합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민주주의가 설득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피해와 보이지 않는 가치의 대결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다른 학급 및 학교 구성원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학교에서의 배움과 또래와의 어울림에 진짜 장애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는 어렵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체감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는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짜 놓은 판이라서, 다수의 입신양명에 방해되고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소수를 위한 지원’을 고민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침해받는 학습권은 뭘까? 아마 교과 지식 습득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일 테다. 예를 들어 보자. 오늘 수학 시간에 분모가 다른 분수의 덧셈에 대해 배워야 하는데, 친구들의 웅성거림이 ‘소음 자극’이 되어 괴로움을 표현하는 학생이 있다. 교사가 내용 설명을 멈추고 그 학생의 자기표현에 귀 기울이고, 소통을 시도하느라 수업 시간이 흘러간다. 이런 순간, 학생들은 자기들과 다른 자극 수용과 표현 방법을 가진 친구와 어떻게 소통하며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지, 교사를 보면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순간의 ‘배움’은 ‘침해당하는 학습권’과 다르다고, 덜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배움이야말로 우리가 ‘학교’라는 제도에서 기대하는 배움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중요한 이런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통합교육일 텐데, 그 가치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도 통합교육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더 작아진다. 아니, 더 작아질 것을 강요당한다. 눈에 보이는 다수의 권리 침해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이겨 낼 리 만무하다. 


지긋지긋한 학습권 침해 논쟁 때문에 이런 우스갯소리도 생겼다. ‘통합교육 경험이 많은 학생일수록 좋은 대학에 간다’는 연구 결과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지금도 ‘통합교육 경험이 학생을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시킨다’는 논문은 많지만,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 정도로는 힘을 못 쓴다. 


그래서 이 순간 민주주의가 등장해야 한다. 당장은 나의 ‘공부할 권리’가 침해당하는 듯 여겨지지만,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학교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같은 학급 구성원에게 적절한 환경 조건을 만들어 주고, 필요한 지원이 제공된다면 더 이상 분리되거나 고립되지 않은 채 함께 어울릴 수 있음을, 비로소 ‘모두’가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비록 더디더라도 민주주의가 나서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통합교육을 구원하는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동시에, 민주주의가 구원에 실패하는 상황도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다수결은 우리 편인가


민주주의를 떠올릴 때 항상 따라오는 원칙, 다수결의 원칙이 통합교육 현장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 ‘선량한 다수의 학생들이 희생하거나 피해를 본다, 역차별을 당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다수결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결정을 내릴 때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날에도 통합교육에 필요한 지원 등 중요한 결정이 의회나 각종 위원회에서 다수결로 표결에 부쳐지고 있을 거다. 표결한 이들은 도덕적 부채감을 ‘다수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합리화로 가뿐히 덜어 낼 것이다. 


직접적인 표결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특수학급의 신설 혹은 증설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입학 예정인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어도 특수학급을 만들지 않고 버티는 학교들의 반대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안타깝게도 학교에 남는 공간이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나 면담을 요청해서 관리자를 만나 보면 “학부모들 ‘대다수’가 반대한다”라고 솔직하게 밝히는 경우도 있다. 반대 이유는 분명하다. 장애가 있는 학생이 학교에 들어오면, 더 많아지면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이다. 


물론, 특수학급을 설치하는 문제가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방법 중 하나인 다수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다. 사립학교 문제로 넘어가면, 권위주의적인 재단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보니, ‘학교장이 특수학급을 설치하면 다음 해에 잘린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학교 현장에는 떠돈다. 



통합교육이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할 수 있도록


언뜻 보기에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민주주의 가치와 배치되는 듯한 결론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직 민주주의가 덜 영글었기 때문은 아닐까? 형식적인 원리와 원칙을 넘어서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존중과 협력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이런 경험은 무엇보다도 통합교육 현장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는 혼자만 빨리, 멀리 가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오래 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쉿!


초등학교 저학년 학급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해 보고 싶다. 그 반에는 유난히 목소리가 작은 A 학생이 있었다. 발표를 할 때도 이 학생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종종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느 날 모두 모여 회의를 했다. 주제는 ‘어떻게 하면 A 학생의 말을 반 친구들이 잘 들을 수 있을까’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저마다 열심히 방법을 제안한다. ‘웅변 학원을 소개시켜 주겠다, 한 글자씩 크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짝꿍이 듣고 대신 크게 말하면 된다’ 등등. 그날의 결론은 이러했다. 

‘A가 말할 때는 우리가 더 특별히 조용히 하며 귀를 기울인다.’

물론 이 방법이 얼마나 오래 효과가 있었을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 학생들은 이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서리라 믿는다. 처음부터 ‘A 학생이 크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그 반 학생들의 고민의 방향성과 그 가치를 믿어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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