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리뷰] 오늘의 학교를 떠올린다 | 서희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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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늘의 학교를

떠올린다

 


서희 221bsherlockhomes@naver.com

전북 기간제 교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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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희 씀,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위고, 2025


 



열심히 하려는 마음에는 잘못이 없다

 

작년 3월, 새로운 학교에 기간제로 취직했다. 이곳은 인문계 남녀공학 고등학교인데, 꽤 고리타분하게도 성별로 구별해서 학급을 운영한다. 1~5반까지가 여자 반, 6~10반까지가 남자 반이다. 2학년부터는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에 성별이 자연스레 섞였지만, 1학년은 공통 수업만 듣기에 섞일 일이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 학기 동안 1학년 남자 반 통합사회 수행평가를 전담하게 됐다. 내 주변인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성별이 다른데 네가 학생들에게 당하는 거 아니냐는 둥, 요즘 남학생들이 문제라는 둥 남학생을 향한 온갖 편견을 쏟아 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던 것과 달리, 나는 이곳에 있던 순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수행평가로 조별 토론을 진행했다. 주제를 정해 주면 모두가 재미없을 게 뻔해서, 한 시간을 토론 주제를 정하는 걸로 할애했다. 그러자 첫 반에서 징병제부터 당시 탄핵 정국과 연관된 정치 이야기까지 정말 별의별 주제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 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적는다고 말하자, 통통 튀는 주제가 쏙 들어가고 생활기록부에 적힐 만한 무난한 주제가 나왔다. 내가 무언갈 잘못했구나, 교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반성했다.


그래서 다음 반부터는 생활기록부에 적는다는 안내와, 그렇지만 해 보고 싶은 걸 주제로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사심을 함께 표현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무슨 주제가 나오든 “그거 좋은데요?”라고 피드백했다. 물론 혐오가 섞인 주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인 개인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자칫 괴롭힘이 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정책을 토론 주제로 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음 반에서 통통 튀는 주제가 다시 등장했다. 정치외교학과에 뜻이 있는 학생이 속한 조에서 청소년 선거권 연령 하향 찬반을 주제로 골랐다. 어느 조에서는 김제시를 생물 보호 구역으로 삼는 것에 대해 격하게 대화하다, 나무를 베면서까지 경기장을 지어야 하는지 토론하겠다고 나섰다. 또 어느 조는 끝까지 주제를 못 고르고 있길래 내가 “다른 반에서 트랜스젠더 스포츠 참여도 잠깐 나왔던데?”라고 흘러가듯 말하자, 정말 그걸 주제로 삼았다. 학생들과 청소년 인권부터 기후정의, 퀴어까지 논할 수 있다니. 정말 신난 나머지, 정신을 차리니 정체 모를 춤을 추고 있었다. 학생들이 선생님이 교실에서 춤춘다고 깔깔 웃었다. 다른 반도 관심 있는 걸 주제로 삼았지만, 이만큼 다채로운 주제로 선정한 반은 없었다.


활동하는 동안,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는 의도로 교실을 순회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내 사심을 120% 채워 줬다. 청소년 선거 연령 하향 토론에서 반대 측 학생이 “우리는 아직 뭘 모른다”라고 말하자, 찬성 측 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우리가 왜 뭘 몰라!”라고 외쳤다. 기후 정의를 주제로는 친환경적 건축 방식이 정말 친환경적인지 토론했다. 트랜스젠더 스포츠 참여 여부를 주제로는 공정 담론을 논했다. 점차 이 교실은 내 자부심이 됐다. 학교 안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을 마구 자랑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내 자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토론 주제로 삼았다는 말에 동료 교사는 지금도 낮은데 더 낮아도 되는 건지 의문을 표했다. 교실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왜 굳이 그런 걸 하냐고 물었다. 그런 활동을 할 거면 교사가 앞으로 계속 책임졌으면 좋겠다고, 하다못해 질문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들떴던 마음이 푹 가라앉았다.


학교 안팎에서 오락가락하는 날이 반복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생보다 어른에게 더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세월호와 이태원 리본을 들고 교감실에 찾아간 날에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절망했었다. 전교조에서 운영하는 청년 독서 모임도 참여했지만, 다들 학생을 ‘덜 자란 짐승’으로 보는 바람에 힘이 빠졌다. 페미니즘 모임에도, 퀴어 모임에도 청소년/학생 이야기는 끼어들 수 없었다. 지역 퀴어 모임에서 교복이 퀴어하지 못하다고 비판한 날에 “요즘 교복값 많이 내렸어요”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었다. 학생에게 지역에도 퀴어 모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소망을 드러낸 날에 “저는 청소년이 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크게 흔들리면 어떡해요. 학부모 문제도 있고”라는 말을 듣고 속 시끄러워졌다. 내가 교사를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다, 교직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책에 나온 표현으로) “서서히 혼자 분열되던 시간”(본문 163쪽)을 겪던 중, 전주시에 있는 책방 토닥토닥에서 최현희 선생님(최고샘)이 쓴 책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북 토크가 열렸다.

 


어려운 날

 

북 토크 당일,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2층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최고샘은 청중들을 원으로 둥그렇게 앉혔다. 청중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현직 교사를 포함해 청소년과 대화하는 법을 알고 싶은 사람, 병원에서 환자 대상으로 수업하는 사람, 오늘 중등 임용 시험을 보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중에는 최고샘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잘 보고 있다는 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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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토닥토닥


자기소개가 끝나자, 최고샘은 교사들이 학교에서 참 어려운 날을 보내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관리자들과 싸우기만 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소수의 양육자가 교사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래도 학교가 교사를 보호하면 살 만한데, 학교도 교육청도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소심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열심히 하는 교사에게 왜 저렇게까지 하냐고 말한다. 책에서 문장을 빌려오자면, “교사에게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라고 온 사회가 부추기는 듯하다”(본문 210쪽).

최고샘은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는 게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혹시나 독자가 교사에게 열심히 할 걸 채근하면 안 되기에, 최고샘은 서문에서부터 책을 쓴 의도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힌다.

 

한 가지 염려되어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부디 나의 글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찾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교육의 희망은 시스템의 개선에 있다. ‘좋은 교사’는 열악한 시스템에서도 눈앞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크게 보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하려고 하루하루 애쓰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니 교사를 칭찬하기보다 교사와 연대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학교에 연루되기를 부탁드린다. 나의 기록이 ‘훌륭한 교사’가 학생을 변화시키고 희망찬 교육을 일궈 낸다는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본문 13쪽

 

수업만 준비해도 바쁜데 업무도 해야 한다. 게다가 사방에서 공문은 왜 이리 많이 오는지,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온갖 프로그램이 공문으로 끝없이 쏟아진다. 학교 본연의 역할을 기준으로 보자면 사회적 비용이 너무 낭비되는 것이다.”(본문 117쪽) 이런 현실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을 여유가 부족하다. 그러니 교사가 잘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

덧붙여 최고샘은 이 책을 선물하는 이들이 가진 마음들을 소개했다. 교사가 교사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우리 함께 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자는 권유다. 교사가 교사가 아닌 이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교사와 연대해 달라는 부탁이다. 교사가 관리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제발 현실을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모 교육청에서는 신규 교사에게 이 책을 선물로 돌렸다고 한다. 관리자가 교사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훌륭한 교사’가 되라는 무언의 압박일까? 관리자들이 정신 차리려면 한참 멀었나 보다.

 

사랑이라는 전문성

 

책 표지에 적혀 있듯, 이 책에서는 사랑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모성이나 성 역할과는 다른 전문성을 뜻한다. 최고샘은 사랑이 있기에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을 수업으로 초대한다. 사랑이 있기에 불평하는 학생에게 아끼는 마음으로 말을 건다. 교사가 사랑을 기반으로 학생을 마주할 때, 학생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자란다. 자신의 서투름에 너그러워지고 용기 내어 한 발짝 성장하려고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교사에게 온다. 그것이 교육의 가능성이고 교실의 희망이다”.(본문 332쪽)

만약 교사에게 사랑이 없다면, 오랜 훈련과 숙련된 전문성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을 미워하지만 빈말로 좋게 말하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지 다 안다.

그렇기에 최고샘은 교사가 자신을 돌보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사가 자기 삶을 가꾸고 스스로 돌보는 일은 단위 수업을 계획하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수업은 결국 삶과 삶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들이 좋은 수업을 위해 수업 자료를 고안하고 연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수업 준비는 교사가 자기 삶을 좋아하고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 본문 333쪽

 

아무리 좋은 수업 자료가 있더라도, 그걸 소화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하면 언젠간 한계에 도달한다. 또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 놓아도 현장에서 어그러지고 뜻밖에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공들인 수업 자료를 거의 못 쓰거나, 하나도 못 쓰는 때도 있다. 쉴 땐 푹 쉬어야 자기 돌봄이 되고, 그래야 마음에 사랑이 들어갈 여유가 생긴다. 이는 학교를 떠나서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교육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직이 워낙 보수적이기에 교사는 자기 고민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또 수업 공개는 곧 평가로 여겨지기에 섣부르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고샘은 후배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그들이 학생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경청한다. 교사 대상 북 토크에서도 자기 교실을 기꺼이 열었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자기 이야기를 하다 울었고, 누군가는 교단에 설 용기를 다시 얻었다. 서로를 도닥이기에는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더 나아가 최고샘은 교사가 학교 밖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은 오직 개인의 것일 수 없어서, 우리는 결국 서로를 돌보고 세상이 나아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사가 교실에서 개별 교과 연구에만 최선을 다할 뿐 자신과 학생이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세계의 부정의를 바로 잡는 일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면 가르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때로 교사는 교실 밖으로 나가 부조리한 세상과도 싸워야 한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을 교실 밖에서 실천하지 않는 교사의 말이 얼마나 가볍고 공허한 것인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자주 생각한다.

- 본문 333~334쪽

 

최고샘은 수업 시간에 젠더와 혐오 표현 등 현실 세계와 연관된 주제들을 논한다. 이미 학생과 관계가 형성돼 있기에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레 된다. 또한 성별 구분처럼 학생에게 해로운 게 있다면 기꺼이 나서서 걸러 낸다. 이 대목에서 내가 학교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나에게 호응한 학생들 덕분에 힘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됐다.

 

엉킨 실타래

 

북 토크가 끝날 무렵, 청중 한 명이 “전주가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잖아요”라고 소감을 남겼다.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특히 교사들이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그 순간 쓴웃음을 지었다.

2025년 가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교 악성 민원 방지에 관한 청원’을 논의하고 제정에 총력을 다하며, 하루가 멀다고 메신저로 청원 참여를 호소했다. 10월 23일,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전주에 방문하자 전교조는 그에게 악성 민원 해결을 요구했다. 이렇듯 전교조는 교권 보호와 악성 민원 해결에 관심을 쏟고 있다.

나는 당연해 보이는 이 흐름이 거북했다. 처음 청원을 읽자마자 두 눈을 비볐다. 그 안에는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자를 ‘양육자·친권자’로 한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동이 정서적 아동학대를 호소할 때 ‘절대’ 교사 잘못을 따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교사를 ‘절대’ 실수하지 않고 잘못하지 않는 존재로 간주하는 걸까. 교사라면 당연히 이 청원에 동의할 것이라 예상한 걸까. 교사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행태를 우려하는 양육자들과 지역 사회의 의견을 들어 보긴 한 걸까.

전교조 메신저에서는 학생인권을 논하는 양육자와 교사, 지역 사회를 조리돌리고 있다. 걱정된다. 악성 민원을 겪은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회복이다. 이 안에 학생과 양육자를 비롯한 관련된 모든 이들이 포함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 옆에 있는 학생과 양육자를 혐오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기에 급급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탓하고, ‘요즘 엄마들이 문제야’ 하는 성토에 와락 합류하”는 것은 쉽다.(본문 78쪽) 하지만 최고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학교의 문제는 어떤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환원될 수도 없고, 오랜 문화와 제도, 구조 안에 문제의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선적인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그 복잡한 맥락을 함께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본문 78쪽

 

그러니 이 글을 읽는 교사가 학교 안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우선 분노와 혐오를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교사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이들을 모아 이 엉킨 실타래를 같이 풀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언갈 잘못했다는 게 드러나면 사과하면 되는 거다. 쉬운 길을 가는 것보다야 분명 속도는 느릴 거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탓하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길일 거라 확신한다.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내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내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올해 2월 자로 이 학교에서 퇴사한다. 퇴근하려고 짐을 정리하는데,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교감 선생님은 내년 교육과정을 구성하다 보니, 내가 전담하는 과목을 선택한 학생 수가 작년에 비해 줄어서 어쩔 수 없이 교사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잘린 셈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며칠 뒤, 퇴근길에 내 자부심이 되어 준 1학년 남학생들을 만났다. 우연히 가는 길이 비슷해서 조금 같이 걸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한 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샘, 내년에 사회 과목 수업할 거죠? 저 샘이랑 수업했으면 좋겠어요. 사회 과목 2개나 선택했다고요!”

청소년 선거 연령 하향으로 토론한 조에 속한 학생이었다.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당황했다. 내가 좋냐고 질문하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당연하죠! 저 샘 수업 들을 때가 제일 편안했어요.”

편안했다는 말에 그만 울컥했다. 쌓여 있던 피로가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그동안 내가 했던 게 무의미했던 게 절대 아니었구나. 위로받은 동시에 며칠 전 받았던 계약 해지 통보가 떠올랐다. 1학년에 이만큼 했는데, 2학년에는 또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너희 옆에 서면 내가 자꾸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데. 이제는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워졌다.

괜히 다른 사회과 선생님들을 들먹이며, 그분들도 괜찮지 않냐고 질문했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도 다 좋다고 답했다. 곧이어 이 선생님은 이래서 좋고, 저 선생님은 저래서 좋다고 종알종알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더니, 없어도 되겠네. 내가 없을 학교에 남아 있을 선생님들을 조금 질투했다.

가는 길이 달라 학생들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서로 장난치며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오늘의 학교가 참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❶ 글의 모든 소제목은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속의 소제목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❷ 전북특별자치도는 2036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한다. 전북은 ‘지속 가능하고, 함께여서 더 위대한 올림픽(Greener, Greater together)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올림픽 유치 반대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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