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종과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은유
치리 kellykykim99@gmail.com
청소년운동을 오래 했다. STL DSA(세인트루이스 민주적 사회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다시 활동할 곳을 찾아 헤매는 중.

재러드 부시·바이런 하워드 감독, 〈주토피아2〉, 2025
2016년 〈주토피아〉가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는 차별과 평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로서 제시되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5년, 〈주토피아2〉가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가 새롭게 내놓은 차별과 평등에 대한 모습은 9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주토피아’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주토피아 시리즈에 나타나는 동물들은 명백하게 미국의 인종 구성에 대한 은유이다. 이들은 뉴욕이 연상되는 도시에 살고, ‘꿈’으로 표상되는 도시임을 자부한다. 주토피아라는 도시에서 권력의 최상위권에 있는 것은 ‘강하고 거대한’ 육식 동물이나 초식 동물이다. (당연히 현실과 100%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거대 초식 동물은 본래는 백인이 아니었던 유럽계 이민자(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등)에 대응하고, 거대 육식 동물은 초기 정복자들에 대한 은유다. 주인공인 주디 홉스를 포함한 작은 초식 동물은 아시아계, 다른 주인공인 닉 와일드와 같은 소형 육식 동물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에 시달린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 흑인을 상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토피아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이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현실 세계에서의 인종에 대한 적극적인 은유이다.
빼앗은 것을 ‘돌려주었다’는 착각
〈주토피아2〉에서 새로 등장한 것은 파충류들과 수륙 양용이 가능한 동물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다른 포유류들의 행위는 때로 적대적으로 비친다. 그들은 다른 것을 먹고, 다른 말을 하고, 때로는 숨어 버린다. 왜냐하면 파충류들은 ‘본래 이곳에 살았으나’ 지금은 그 어디로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백하게 아메리카 원주민과 히스패닉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정복 초기 원주민을 학살했고,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의 일부를 빼앗았다. 그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으나 밀려난 자들이다. ‘미국’은 그들을 미개하거나 징그러운 자들로 부른다. 영화 속에서 다들, 심지어는 차별받는 포유류들마저 그러하듯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가장 천대받는 ‘뱀’이 사실은 지금의 주토피아가 가능한 기술과 환경 등 모든 것을 만들어 내었으며, 가장 부유한 육식 동물(정복자)들이 그들의 공을 지우고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조력자로 보이던 이가 실은 인정 욕구에 목마른 부역자였다는 것 또한 밝혀진다. 이는 조력자로 보이는, ‘무해해 보이는’ 이들이 그저 인정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보여 주는 좋은 장면이다.
하지만 그 뒤, 뱀들이 자기의 ‘구역’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무관하게 읽힐 수가 없어서 더욱 그렇다. 미국은 원주민들을 보호 구역에 밀어 넣고, “우리가 빼앗은 것을 그들이 잘 살 수 있게 다시 내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보호 구역 내 원주민들은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때로는 법적인 문제에도 직면한다. 그들은 미국에 있으면서도 ‘미국인’이라기에는 너무 먼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나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원래 살던 자들이다. 뱀을 비롯해 파충류들이 살던 곳은 원래 그들의 서식지였다. 원주민들이 정복자들이 자신을 죽일 줄 모르고 환대했던 것처럼, 뱀과 파충류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빼앗아 놓고, 모든 것은 ‘그들 스스로’ 입증하게 한 뒤 선심 쓰듯이 구역을 허락해 주는 것을 ‘돌려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적선이 아닌가? 게다가 포유류들은 각 종의 다양한 습성에 따라 여러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파충류들은 오직 하나의 작은 ‘파충류 구역’에서만 살아간다는 부자연스러운 설정 자체가 파충류를 바라보는 시선과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대화는 자기를 마주하는 일로부터
그러나 〈주토피아2〉는 이러한 인종 문제를 직면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대신, 차라리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 바로 연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주디와 닉의 관계는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다. 그들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연인처럼 보이며, 그들의 관계에서 불거지는 ‘어려움’들은 현재 미국의 연인들이 가진 전형적인 문제들이다. 관계에서의 불화나 맞지 않는 가치관에 대해서 단순히 피해 버리려고 하거나, 그대로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것들 말이다.
영화는 전형적이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메세지를 던진다. 그것이 어떤 관계이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실존하고 아무리 사랑해도 타인은 내가 될 수 없다. 결국에는 마주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다름을 이해는커녕 알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자기 고백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신의 단점을 마주하지 않으면 이러한 대화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닉과 주디가 서로가 가진 ‘불안’을 털어놓는 장면은 이들이 단순히 호감을 넘어서서, 타인을 수용한 자기를 마주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토피아2〉는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의 이러한 태도를 서로 다른 (인)종, 집단 사이의 문제로까지 확장해 보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주토피아’ 시리즈는 1편도 2편도 모두 한계와 탁월함이 각각 다른 곳에서 동시에 드러나는 영화다. 인종 문제에 대해 순진하게 구는 것이 고까울지라도,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아동 매체 제작 회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그 보호 구역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내용을 캐주얼하게 이끌어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과이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뻔하면서도 명쾌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나조차도 모르면서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결국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먹기 싫더라도 ‘예의’를 차라기 위해 애벌레를 삼킨 닉처럼.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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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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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운동을 오래 했다. STL DSA(세인트루이스 민주적 사회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다시 활동할 곳을 찾아 헤매는 중.
재러드 부시·바이런 하워드 감독, 〈주토피아2〉, 2025
2016년 〈주토피아〉가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는 차별과 평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로서 제시되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5년, 〈주토피아2〉가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가 새롭게 내놓은 차별과 평등에 대한 모습은 9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주토피아’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주토피아 시리즈에 나타나는 동물들은 명백하게 미국의 인종 구성에 대한 은유이다. 이들은 뉴욕이 연상되는 도시에 살고, ‘꿈’으로 표상되는 도시임을 자부한다. 주토피아라는 도시에서 권력의 최상위권에 있는 것은 ‘강하고 거대한’ 육식 동물이나 초식 동물이다. (당연히 현실과 100%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거대 초식 동물은 본래는 백인이 아니었던 유럽계 이민자(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등)에 대응하고, 거대 육식 동물은 초기 정복자들에 대한 은유다. 주인공인 주디 홉스를 포함한 작은 초식 동물은 아시아계, 다른 주인공인 닉 와일드와 같은 소형 육식 동물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에 시달린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 흑인을 상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토피아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이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현실 세계에서의 인종에 대한 적극적인 은유이다.
빼앗은 것을 ‘돌려주었다’는 착각
〈주토피아2〉에서 새로 등장한 것은 파충류들과 수륙 양용이 가능한 동물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다른 포유류들의 행위는 때로 적대적으로 비친다. 그들은 다른 것을 먹고, 다른 말을 하고, 때로는 숨어 버린다. 왜냐하면 파충류들은 ‘본래 이곳에 살았으나’ 지금은 그 어디로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백하게 아메리카 원주민과 히스패닉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정복 초기 원주민을 학살했고,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의 일부를 빼앗았다. 그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으나 밀려난 자들이다. ‘미국’은 그들을 미개하거나 징그러운 자들로 부른다. 영화 속에서 다들, 심지어는 차별받는 포유류들마저 그러하듯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가장 천대받는 ‘뱀’이 사실은 지금의 주토피아가 가능한 기술과 환경 등 모든 것을 만들어 내었으며, 가장 부유한 육식 동물(정복자)들이 그들의 공을 지우고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조력자로 보이던 이가 실은 인정 욕구에 목마른 부역자였다는 것 또한 밝혀진다. 이는 조력자로 보이는, ‘무해해 보이는’ 이들이 그저 인정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보여 주는 좋은 장면이다.
하지만 그 뒤, 뱀들이 자기의 ‘구역’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무관하게 읽힐 수가 없어서 더욱 그렇다. 미국은 원주민들을 보호 구역에 밀어 넣고, “우리가 빼앗은 것을 그들이 잘 살 수 있게 다시 내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보호 구역 내 원주민들은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때로는 법적인 문제에도 직면한다. 그들은 미국에 있으면서도 ‘미국인’이라기에는 너무 먼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나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원래 살던 자들이다. 뱀을 비롯해 파충류들이 살던 곳은 원래 그들의 서식지였다. 원주민들이 정복자들이 자신을 죽일 줄 모르고 환대했던 것처럼, 뱀과 파충류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빼앗아 놓고, 모든 것은 ‘그들 스스로’ 입증하게 한 뒤 선심 쓰듯이 구역을 허락해 주는 것을 ‘돌려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적선이 아닌가? 게다가 포유류들은 각 종의 다양한 습성에 따라 여러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파충류들은 오직 하나의 작은 ‘파충류 구역’에서만 살아간다는 부자연스러운 설정 자체가 파충류를 바라보는 시선과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대화는 자기를 마주하는 일로부터
그러나 〈주토피아2〉는 이러한 인종 문제를 직면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대신, 차라리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 바로 연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주디와 닉의 관계는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다. 그들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연인처럼 보이며, 그들의 관계에서 불거지는 ‘어려움’들은 현재 미국의 연인들이 가진 전형적인 문제들이다. 관계에서의 불화나 맞지 않는 가치관에 대해서 단순히 피해 버리려고 하거나, 그대로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것들 말이다.
영화는 전형적이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메세지를 던진다. 그것이 어떤 관계이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실존하고 아무리 사랑해도 타인은 내가 될 수 없다. 결국에는 마주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다름을 이해는커녕 알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자기 고백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신의 단점을 마주하지 않으면 이러한 대화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닉과 주디가 서로가 가진 ‘불안’을 털어놓는 장면은 이들이 단순히 호감을 넘어서서, 타인을 수용한 자기를 마주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토피아2〉는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의 이러한 태도를 서로 다른 (인)종, 집단 사이의 문제로까지 확장해 보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주토피아’ 시리즈는 1편도 2편도 모두 한계와 탁월함이 각각 다른 곳에서 동시에 드러나는 영화다. 인종 문제에 대해 순진하게 구는 것이 고까울지라도,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아동 매체 제작 회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그 보호 구역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내용을 캐주얼하게 이끌어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과이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뻔하면서도 명쾌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나조차도 모르면서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결국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먹기 싫더라도 ‘예의’를 차라기 위해 애벌레를 삼킨 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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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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