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리뷰] 생명의 그물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 김중미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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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생명의 그물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김중미 mansuk99@hanmail.net

기차길옆작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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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웅 씀, 《위기의 청소년 마주하기–교육복지 현장 리포트》, 교육공동체 벗.

 




교육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교육은, 한 아이가 태어나 가족과 공동체, 지역 사회에서 안전한 돌봄을 받고 자라서 학령기에 다다르면 학교에 입학해 국가가 설계한 교육과정에 따라 학습과 지식, 발달 단계와 개인에 맞는 사회성을 습득하며 독립적인 한 존재로,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전 과정이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교육의 책임은 단지 학교에만 있지 않고 양육자, 가족, 공동체, 지역 사회에도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학교까지 드리우면서 교육은 세금을 내는 시민이 받는 공공 서비스가 되었다. 양육자는 자신의 자녀를 독립된 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책임자가 아닌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었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는 학교를 어린이·청소년이 독립된 존재로 성장하는 곳이 아닌 국가에 기여할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교육 정책은 어린이·청소년이 발달 단계에 맞게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보다 어린이·청소년을 미래의 인적 자원으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생산하는 것을 우선한다. 당연하게도 교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노동자가 되었다.


그래서 학교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의 비즈니스 거래만 난무하는 곳이 되었다.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에 대한 논쟁도, 정치인에 의해 갑작스레 학교에 떨어진 ‘늘봄학교’도,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의 허점도 교육 본래의 목적은 외면한 채 소비자의 민원과 교육 당국의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의 주체인 어린이·청소년, 그들과 함께하는 교사들에게 묻지 않고 집행되는 정책들로는 위기에 처한 어린이·청소년과 교사, 교육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교육공동체 벗에서 《위기의 청소년 마주하기》가 출간되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위기의 청소년 마주하기》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 중인 지역교육복지센터에서 활동하는 신선웅 선생님이 쓴 ‘교육복지 현장 리포트’다. 대안교육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어린이·청소년을 만나 오신 분이니만큼 현장성이 뚜렷하고 구체적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와 공동체 식구들이 날마다 부딪치는 현실이 그대로 느껴져 막막하고 먹먹했다. 체험에서 비롯된 글은 더 생생하고, 그 대안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 2026년 현재 한국 사회의 어린이·청소년은 여러 가지 위기를 방패 없이 맨몸으로 맞고 있다. 2025년 기준 아동·청소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3.9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믿기 힘든 통계가 나왔다.❶ 공부방에서 자라 교사, 전문 상담 교사, 정신 건강 사회복지사, 정신 건강 임상심리사로 일하는 청년들은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는 데 ‘죽음’ 이외의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원인으로 대학 입시를 비롯한 학업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 학교폭력과 차별, SNS를 비롯한 디지털 과몰입 등을 든다. 지역 사회와 공동체, 가정의 붕괴와 그로 인한 건강한 성인과의 소통 부재, 관계망 부재 등도 자살의 원인으로 꼽는다. 저자가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도 그랬다.


 

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상황

 

2026년부터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시작되었다. 사업 시행에 대한 예고가 있을 때부터 교육 현장에서 여러 가지 우려가 나왔다. 특히 교사들의 반발이 컸다.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초등 교사들 역시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저자 신선웅은 책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를 이렇게 소개한다.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도 그 대안 마련을 위해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발견하고 면담하고 지원 방안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 담임 교사 또는 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의 몫이었다. 그러나 학생맞춤통합지원에서는 교장·감 이하 전체 교직원이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고 지역 사회에 연계하는 등 전반의 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로써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와 요구에 맞는 맞춤형 통합 지원을 제공하여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학생 성장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지원 체계이다. 교육복지 또는 학교 사회 사업 등의 지원 방향이 프로그램이나 자원, 서비스 등 사업별로 학생을 지원해 왔다면, 이제는 학생에게 맞춤형 통합 지원을 하자는 방향의 전환이 핵심이다. 또한 예년까지는 경제 취약 상황에 놓인 학생을 우선으로 지원해 왔으나, 2024년부터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지원 대상을 규정하지 않고 그 범주를 확대했다. 다시 말해,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고, 또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기초학력 등 학습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학급이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청소년 중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방향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의 학생을 담임 교사 또는 해당 업무를 맡는 교사만이 발견하고 지원하는 일을 감당할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학생을 바라보고 지원 방향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쳬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 본문 76~77쪽

 

이대로만 제도가 시행될 수 있다면 이전보다 교육복지 현장의 어려움이 크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한계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첫째, 학교 전체가 함께 학생을 바라보자는 취지는 좋으나, 교사 개인의 업무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 한 실질적인 협력 구조가 작동하기 어렵다.

둘째, 조기 발견과 개입이 강조되지만, 발견 이후 연계할 수 있는 지역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

셋째, 여전히 사후 개입 중심이다. 위기가 드러난 이후에야 시스템이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예방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 본문 77쪽

 

실제로 새 학기가 시작하자 기차길옆작은학교와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교사들이 우려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천의 변두리 학교가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면서 학생 수가 줄어들자, 학교에 상주하던 학교사회복지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는 복지사로 대체되었다. 한 학교에서 수년 동안 사례 관리를 하면서 드림스타트 담당자, 지역의 아동센터, 다문화가정센터와 연결하던 학교사회복지사가 없게 되니, 사례의 조기 발견은 고사하고, 그동안 관리되었던 네트워크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우리 역시 공부방 아이들에게 생긴 문제를 의논할 상대가 없어져 학교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책을 읽으며 만약 인천에도 지역교육복지센터가 있었다면 달랐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맞춤통합지원’ 체계를 구상하고 만들어 온 학교사회복지사도 이 법이 애초 목적과 달리 학교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관료적인 사고와 예산 문제를 꼽았지만, 정말 예산이 부족한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교육청마다 쓸데없이 허비되는 예산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교육감의 정책 홍보에 쓰는 비용으로 자해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짤 수는 없는 것일까.


다문화 학생을 위한 지원 역시 집행 기관이 여러 곳이다 보니 ‘전시 행정’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프로그램들이 중복되면서 허비되는 돈도 적지 않다. 공부방에 다니는 이주 배경 학생은 한 학기에 몇 번씩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다. 그래서 같은 반 학생들한테 자기도 다문화면 좋겠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에 놓고 각 부처 간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애먼 데 들어가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논리로 돌봄 관련 사업이 학교에 떨어지면 그쪽으로 예산이 집중되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그 때문에 농촌이나 변두리 작은 학교에서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예산을 쓰느라 전전긍긍하고, 도시 과밀 학교에서는 예산이 부족해 기초학력 보강이나 협력 교사 채용 등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생존의 그물망을 복원하는 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난 뒤, 우리는 공부방 어린이·청소년의 생존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위협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아직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중도 입국 아동과 이민자인 외국인 엄마, 일자리를 잃은 가장,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벼랑 끝에 몰린 위기 가정, 거리 두기로 방치된 장애 가정, 폭력 가정 등. 거리 두기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학교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지역의 드림스타트 선생님과 소통하고, 학교 위클래스나 교육지원청 위센터, 동구아동청소년상담센터와 연결해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양육자들을 지역자치센터, 다문화가정센터와 연결해 상담과 지원을 받게 했고, 학대에 노출된 청소년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라도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공부방과 여러 기관이 맺어 온 다양한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우리와 연결된 이 그물망은 공부방이 35년 동안 한 지역에 있으면서 한 땀 한 땀 엮은 것들이다. 공부방 교사들이 긴밀하게 연결하는 그물망 중 하나가 드림스타트다. 드림스타트 제도는 취약 계층 아동에게 건강·교육·정서·가족 지원 등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요즘은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 위기 가정까지 확대되었고, 원한다면 중학생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가정 방문을 통해 건강, 정서적 지원, 부모 교육까지 맡아 주기 때문에 청소년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드림스타트 제도를 신청하는 것 역시 도움이 필요한 가정 당사자라는 데 있다. 그래서 공부방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가정에 드림스타트 제도를 알려 드리고 신청하도록 노력한다. 드림스타트는 산모도 신청 가능하다. 현재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은 아이가 유아기 때부터 혹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드림스타트 같은 시스템을 잘 연결하면 좀 더 일찍 위기 관리가 가능해진다.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그물망은 기차길옆작은학교 부근에 모여 사는 이모 삼촌(공부방 교사)이 만든 돌봄의 그물망이다. 스무 살 때부터 공부방 자원 교사로 모인 이모 삼촌은 결혼, 독립과 동시에 지역에 들어와 산다. 우리는 인천과 강화에 각각 일곱 가족, 세 가족으로 나뉘어 지역 주민으로 살면서 양육자들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그물망을 짠다. 그 그물망은 또 다른 형태의 그물망으로 이어진다. 공부방을 졸업한 청년들과의 연결이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공립 학교 교사, 다문화가정센터의 사회복지사, 정신 건강 임상심리사, 정신 건강 사회복지사, 전문 상담 교사, 특수교사,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 지역아동센터 실무자, 돌봄전담사, 인권 변호사 등으로 일하며 사안에 따라 서로 돕는다. 도시화, 재개발, 주거 형태의 변화로 사라진 공동체가 사람과 사람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위기의 청소년 마주하기》를 읽다 보면 교육복지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끊어진 생존의 그물망을 복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사례들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동안 공부방에서 겪은 수많은 사례와 데칼코마니처럼 느껴진다. 저자가 책에 담은 사례와 비슷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2021년에 처음 만난 보라는, 베트남 출신의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보라 엄마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한국어가 미숙했고 그때까지도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보라 엄마는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보라네의 어려움은 팬데믹과 함께 왔다. 2020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동안 보라와 엄마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의 안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비대면 수업도 잘 따라가지 못했다. 보라 엄마를 비롯한 베트남 이민 여성들은 베트남 커뮤니티의 단체 채팅방을 통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한국 사회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낀 이민 여성들은 남편이나 시가 혹은 한국인 이웃, 언론보다도 베트남 커뮤니티를 더 신뢰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보라는 2학년이 돼서야 같은 이민자 가정의 소개로 공부방에 오게 되었다. 비대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보라는 한글도 읽고 쓰지 못했고 간단한 덧셈, 뺄셈조차 어려워했다. 보라는 3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떼지 못했다. 3학년 담임은 신규 교사였는데 보라의 문제를 빨리 알아챘다. 보라가 공부방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연락해 보라의 문제를 상담했다. 상의 끝에 보라가 종합 심리 검사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에 공감했다. 담임 교사는 양육자와 소통이 어렵다며 공부방이 소통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어가 서툰 보라 엄마만이 아니라 보라 아빠와도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라는 그동안 친척 집에 가 본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것은 보라네 가족이 의지할 관계망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라 아빠와 여러 번 이야기한 끝에 종합 심리 검사 승낙을 받았다. 보라는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느린학습자가 특수학급에 가는 것은 학부모의 선택이었으므로 보라는 특수학급에 가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3학년 담임 교사의 세심한 관찰 덕분에 보라가 학교사회복지사의 사례 관리 대상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보라 아빠가 갑자기 사라졌다. 보라 엄마는 공부방 상근자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도움을 청했다. 우리가 보라 엄마에게 알아낸 정보는 수중에 단 1만 원도 없고 보라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보라와 엄마가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원한 뒤, 다문화가정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공부방 청년을 통해 보라네 가정이 사례 관리를 받게 했다. 당장 이혼하겠다는 보라 엄마를 설득해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귀화 준비를 하기로 했다. 보라 엄마가 아르바이트하며 귀화 준비를 하는 동안 아빠가 돌아왔다. 이후 다문화가정센터의 도움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보라 엄마는 공부방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독립했다. 다문화가정센터에서는 보라네가 한부모 가정으로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엄마가 독립을 준비하는 사이 사춘기에 접어든 보라는 학교와 공부방에 자주 결석했다. 스마트폰 의존이 심해졌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용돈을 과하게 요구했다. 보라 엄마는 올바로 훈육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용돈 문제로 보라와 엄마의 싸움이 잦아졌다. 보라와 엄마가 주고받는 욕을 들으면, 둘이 모녀 사인지 자매 사인지조차 혼란스러워졌다. 한번은 보라가 아프다며 학교와 공부방에 일주일째 나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만난 보라는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했다. 배가 아프고 피가 나오는데 멈추지 않는다고 말이다. 엄마에게 연락해 보라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엄마가 해야 할 일을 알려 드렸다.


6학년이 되고는 결석이 더 잦아졌고, 학습에도 더 어려움을 겪었다. 무기력도 점점 더 심해졌다. 공부방 아이들이 보라가 급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엄마에게 보라가 학교 급식을 먹도록 타이르라고,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지 않도록 식사 준비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보라의 문제 행동이 다양해지기 시작했으나 학교와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6학년 담임 교사는 공부방에 대해 알지 못했고, 친양육자가 아닌 우리가 보라의 문제로 상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보라 문제로 소통했던 학교사회복지사 선생님도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다른 학교로 가셨다.


보라의 스마트폰 의존은 점점 심해졌다. 보라가 학교나 공부방에 빠지는 것도 스마트폰을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보라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라 엄마와 소통을 이어 갔다. 우리의 목표는 보라가 중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6학년 담임 교사께서 보라의 종합 심리 검사를 의뢰했고, 경도 지적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와의 소통은 아쉬웠지만, 담임 교사로서 보라를 위해 애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라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스마트폰 때문에 계속 지각을 일삼았고, 공부방도 자주 빠지거나 지각했다. 고민 끝에 공부방 이모 셋이 보라만을 전담하기로 했다. 세 담당자는 보라가 공부방에 올 시간이 되면 보라네 집으로 가서 보라를 직접 데리고 공부방에 온다. 그러기 위해서 담당 이모가 보라네 집 앞으로 가는 동안 공부방 상근자가 보라 엄마와 스마트폰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보라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처하게 된다. 보라 엄마는 우리를 만난 지 6년이 돼서야 마음을 열었다. 요즘은 보라 저녁도 챙기고, ‘사랑한다’, ‘걱정한다’는 말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우리가 요즘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이주 배경을 가진 엄마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2년 전 자녀의 양육에 대해 베트남 엄마와 소통하고 싶어 베트남어 동시 통역사를 구했다. 좀 더 깊은 이야기가 꼭 필요해서 사전에 두 양육자의 동의를 받아 대화를 시도했는데, 이민 여성인 엄마는 우리가 자신의 한국어가 미숙하다고 여긴다며 수치스럽게 생각해 오히려 공부방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진심을 보여 주고 싶어도 번번이 어려움에 부딪힌다. 한국 사회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폭력적으로 대해 온 탓에, 이민자들은 한국의 문화, 교육에 신뢰가 없다. 이민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너무 깊다. 하다못해 자녀를 훈육할 때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것을 막고 싶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 이주 배경을 가진 가정의 자녀와 양육자의 갈등도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다.


요즘 보라가 빠진 앱은 릴스, 숏폼만이 아니라 SNS 오픈채팅이다. 스마트폰 문제는 보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적절한 스마트폰 사용 안내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청소년은 밤새도록 스마트폰을 하다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채로 학교에 가고 공부방에 왔다. 스마트폰을 통해 갈 수 있는 세계는 국경도 제약도 없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워 거리낌 없이 온갖 콘텐츠를 넘나든다. 어린이의 언어가 조롱과 혐오에 물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고 폰으로 친구를 사귀고 절교하고 따돌린다. 그들의 대화에는 성희롱과 폭력이 난무한다. 현실에서는 친구가 없고 무기력하고 왜소한 아이가 스마트폰 안에서는 주도적이고, 거칠고, 힘이 세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서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는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몇 명과 보라가 오픈채팅을 통해 만난 성인과 일대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있었다. 늦지 않게 사태를 파악하고 경찰에 사건을 넘겼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세계에 속한 어린이 청소년을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초등학생 동생들의 오픈채팅 이야기를 들은 고등학생들은 내게 ‘오메티비’ 같은 국제적인 화상 랜덤 채팅을 알려 주면서 중학생 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기 친구들이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랜덤 채팅을 하며 서로 상대의 나체를 보며 환호하며 즐긴다고 했다. 단지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지만, 더러는 실제로 일대일 만남으로 이어지고, 위험한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보라는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며 학교와 공부방을 오간다. 다행인 건 공부방 이모 셋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쓰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기고 학교에 가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때때로 보라를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우리의 목표는 보라가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목표는 고등학교 졸업, 자립, 임신·출산과 양육까지 보라를 도울 수 있는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결망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저자의 노력과 고민이 더 절실히 느껴졌다.


부끄럽게도 서울에 지역교육복지센터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우리가 한 지역 안에서 수십 년 동안 해 온 일이 이렇게 제도적인 형태로 마련돼서 훨씬 더 많은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니 다행스러웠다. 지역 곳곳에 교육복지센터가 생긴다면 그만큼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연결망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을 여러 지역의 교육 주체들이 읽으면 좋겠다.


 

“포기할 수 없다”

 

저자는 청소년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우선 학교 영역에서는 필요한 변화를 제시한다. “1. ‘교사 대 학생 비율’ 낮추어 개별 학생 지원 실현. 2. 교사 외 보육, 특수교육, 교육복지 등 전문가 배치. 3. 학생의 개별성, 다양성, 자율성이 존재하는 교실 구조와 교육 내용 구성. 4. 교육 복지 담당 교사 연속 배치 인센티브 및 행정 간소화 5. 교사 양성 과정에 취약 계층 이해, 정신 건강 기초, 사례 관리 포함”(본문 169쪽) 등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덧붙이자면, 학교 구성원들의 재교육 과정이 좀 더 전문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교육대학교 대학원 과정에 교육복지나 다문화교육학과를 만들어 좀 더 깊고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신규 교사가 얼떨결에 교육복지가 필요한 지역이나 이주 배경 학생이 많은 지역의 학교에 발령받아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고, 교육복지나 다문화교육에 관심이 있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가서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


지역 사회에 있는 다양한 자원과 연결망을 이루려면 형식적인 메뉴얼만이 아니라 그 정보망에 대한 이해와 역할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다. 이는 학교 안에 추가 인원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교사, 학교사회복지사, 전문 상담 교사, 사서 교사, 보건 교사, 영양 교사, 돌봄 전담사, 조리사 모두가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서로의 영역을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협력할 수 있게끔 학교 안에 소셜 디자이너 역할을 두면 좋겠다. 전문 인원을 배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안에서 역할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따른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저자는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를 심리 상담으로 해결하려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상담 만능주의는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서 심리적 접근이 더 다각화되고 강조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학생 수당 상담 교사의 수가 정해져 현실적인 상담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사회복지사와 전문 상담 교사, 특수교사, 그리고 담임 교사는 긴밀히 연결되고 서로 협조해야 한다.


가정 영역에서는 “1. ‘학생맞춤통합지원법’에 ‘선지원 후동의’ 조항 재논의. 2. 청소년 대상 경제적 지원의 본인 직접 전달 시스템 구축. 3. 청소년 후견인 제도 확대 및 법정 대리인 변경 절차 간소화. 4. 탈가정 청소년 주거 지원 확대(청소년 주거권 확보)”(본문 170쪽)를 제안했다. 대체로 동의하지만, 탈가정 주거 지원 확대와 함께 인적 관계망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있는 청소년 후견인 제도의 확대와 법정 대리인 변경 철자 간소화는 유기, 학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하지만, 거기에 더해 청소년들을 전적으로 안전하게 지켜 줄 ‘어른’, 안전한 제도가 필요하다. 학교나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왔을 때 청소년들을 맞아 줄 사람, 위험한 일을 막아 줄 사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안내자가 되어 주고, 함께 밥을 먹어 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 주고, 벼랑 끝에 몸을 던지려 할 때 손을 내밀어 줄 사람, 성에 관해 스스럼없이 상담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역교육복지센터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그런 관계의 그물망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지역 사회가 예전처럼 자연스러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의도적으로 연결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든, 지역이든 위기에 처한 존재를 발견해 손을 내밀려면 관계망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서라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게 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흔히 다 귀찮다며 스마트폰을 들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말을 걸고 곁을 내어주길 원한다. 기존에 있는 드림스타트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고, 서울의 지역교육복지센터와 같은 기관을 곳곳에 만드는 것도 꼭 필요하다.


저자의 에필로그 소제목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책을 덮으며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 며칠 전 일어난 오픈채팅 사건을 수습하며 공부방 교사들이 다 같이 주문을 외우듯 되풀이한 말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청소년 마주하기》는 위기에 처한 청소년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논의의 마중물 같은 책이다. 포기하지 않고 곁을 내고 그물망을 만들어 가는 시작이 될 이 책을, 학교 현장에 있는 분들만이 아니라 양육자들, 정치인들에게도 권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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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