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④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말
교란의 페다고지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말, 은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말하려고 할 때마다 몸이 말, 을 붙잡았다. 붙잡힌 말을 뿌리치고 말하려고 할 때면 첫 말, 이 연발성되어 마마말문이 마마막혔다. 유난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적 충격이었을까. 일상적인 체벌의 공포 때문이었을까. 시험 성적 중심의 우열 관계가 주는 압력 때문이었을까. 특히, 발음되지 않던 말은 ‘ㅇ’ 자로 시작하는 말이었다.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한글을 배울 때 처음 배운 모음들이 죄다 난감해졌다. 또, ‘ㅏ’ 자를 달고 있는 말들도 그랬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말, 은 총체적 곤경에 빠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라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을 때, 말들은 목에서 턱턱 걸려 매번 곤두박질쳤다. 어깨를 좌우로 세게 흔들거나,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면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마말이 간신히 나오기도 했다. 말, 은 어찌할 줄 몰랐다.
- 사지를 뒤틀고, 나를 일그러트리고 -[ref] 오른쪽 줄 맞춤된 각각의 문장은 모두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들이다. 〈지옥의 밤〉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인용할 때에는 괄호 안에 작품의 제목을 기입하였다. 민음사 김현 번역본, 책세상 이준오 번역본, 그여름 출판사의 이한이 번역본, 지만지 출판사의 곽민석 번역본을 교차 인용하였다. [/ref]
국어 교과서를 돌아가며 읽는 시간. “오늘 18일이니까, 18번 읽어 봐.” 말, 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교실은 키득키득한 소리로 가득했다. 키득키득 소리를 배경음 삼아 ‘어어어어어느 길동이 지지진진짜 기기길동인지 아아아아아아알알아아낼 도리가 어어어어어어업없었다.’ 한 문장을 읽기까지 발가락부터 혀끝까지 온몸을 비틀어 처절하게 읽고 나면,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아예 첫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 난발성의 순간이 오면 두 손이 흔들리고, 호흡이 가슴에서 터질 듯했다.
- 나는 숨이 막히며, 나는 소리를 지를 수 없다. 그것은 지옥이다. -
“조용조용. 계속 읽어.” 국어 선생은 말, 을 고치려고 했다. 바로잡으려고 했다. 끝까지 읽기를 시켰다. 그러다, 첫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 난발성, 의 덫에 걸리면 교과서 뒤로 얼굴을 처박고, 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 로 가득해지면 살기殺氣: (명사) 독살스러운 기운, 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앉아.” 온 힘을 소진해 담벼락 무너지듯 책상에 엎드려 무너져 있으면 말, 의 뒤에서 말병신, 더듬이 새끼라며, 어버버어버버 아아아아알아낼 도리가 어어어어어어없네! 하던 같은 반 더러운 녀석들이 있었다. 국어 시간이 다시 찾아올 때면 숨을 멈춘 채 가슴을 세게 치면 기절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절 연습에 매진하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낙오되고자 시험 치는 날이면 말, 은 어김없이 국어 시험만큼은 1분 안에 내리찍고 책상에 가장 먼저 엎드렸다. 말, 의 인생에 국어, 는 반드시 지워져야 했다.
- 지옥에 있다고 믿으니, 지옥에 있게 된다. -
말, 은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으로 피난을 떠났다. 도서관을 지배하던 낱말은 정숙靜肅: (명사) 조용하고 엄숙함, 이었기에 말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서가에 가장 많이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사서 선생님이 매일같이 도서관에 오는 말, 에게 독서 모임에 참가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말, 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부터 끔찍해지기 때문이다. “마마마마마마만나서 바바바바바바반갑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손발을 흔들고, 목에 힘을 주었다가, 발꿈치를 들었다가 놓아야 한다는 확실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 이해되지 않는 세계 문학 고전들을 읽으며,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 그러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는 제목을 단 랭보의 시집을 펼쳤을 때, 읽을 수는 있는데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더듬증과 닮았다, 고 느꼈다. 말, 은 그 책을 훔쳤다.
- 입이 틀어 막혔나, 내 소리를 못 듣는다. -
말, 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가방에 넣고 주말이 되면 ‘20년 언어 치료 노하우’를 가진 ‘행복한 꿈이 열리는 미래’를 펼쳐 보여 주겠다는 언어치료센터를 다녔다. 거울을 보며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가 목구멍으로 혀를 감아 넣었다가를 반복 반복 반복. 발음하기 어려운 낱말들을 적어 놓은 종이를 벽에 붙여 놓고 길게, 크게, 천천히, 잘게 말하기 연습. 탁, 천천히. 탁탁, 차분히 말해야지. 탁탁탁, 떨지 말고. 탁탁탁탁, 똑바로. 탁탁탁탁탁, 야! 말, 은 온갖 수모를 겪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처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혓바닥을 길게 내뺀 거울 속 모습은 꿈에서도 나왔다. 꿈속에서는 더듬지 않았다.
- 삶의 시계가 방금 멈추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있지 않다. -
언어치료센터를 그만두고 말, 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말병신이 되지 않는 쪽으로. 비웃음당하지 않는 쪽으로. 말하기 위해 온몸을 비트느라 놀림거리가 되지 않는 쪽으로. 어떤 말을 들어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말, 은 말을 집어삼켜 버렸다.
- 지옥은 확실히 저기 저 아래에 -
병신, 계집, 게이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삼위일체의 낙인이었다. 찍히는 순간 점점 내몰리다가 점차 배제되고 마침내 폭력의 대상으로 어떻게 전락하는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몸 구석구석 각인되어 있었다. 다른 존재자들을 부정하며, 정상성-전형성-보편성을 내면화했다. 제법 성공적이었다. 말, 은 전형적인 이성애-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거친 욕을 침 뱉듯 투투 내뱉고, 혐오 발언에 동참하면 되었다. ‘운’이 좋게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병신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의식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내가 가상의 표준mythical norm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오드리 로드)하기에 비정상은 말,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온전하고 평범한 사람에서부터 오염되고 가치 저하된 것으로 마음 안에서 몰락한”(어빙 고프만) 낙인의 특성을 용인할 수 없었다.
- 분노를 위한 나의 지옥을 -
말, 은 자기혐오-감각을 해상도 높게 느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말병신’라는 말이 계속해서 울렸다. 놀리지 않아도, 비웃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아래에서, 자기 검열의 과정 속에서, 그것이 정말 들렸다. 정상의 기준 안으로, 들어가 있기를 바랐던 날들 사이에 자기혐오의 말은 말, 을 놔주지 않았다.
- 나는 숨겨진다. -
말, 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금세 “조용한 아이, 내성적인 아이,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로 기록되었다. 이후, 더듬지 않는 생각 속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철학과로 진학했던 것 같고, 소리만 내질러도 괜찮은 음악 속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하드코어펑크밴드를 시작했고, 더듬어도 상관없는 일기 속에 주로 서식하다 보니 글 좀 쓰는 녀석으로 불렸다.
- 나는 숨겨지지 않는다. -
시간이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나면서 어떻게?, 라고 질문하면, 그그글글쎄……라고 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 의 말더듬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서서히 가벼워졌지만, 옅어졌지만, 멀어졌지만, 하지만, 여전히, 더듬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낱말을 만나면 재빨리 낱말을 바꾸어 쓴다. 여전히, 첫음절이 발음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리면서 말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을 때면 더듬지 않을까 걱정한다.
말, 은 그렇게 꽤 오랫동안 ‘몸에서 목소리를 빼내는 배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는 말더듬증이 있는 사람을 보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어쩌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말더듬증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 목구멍에서 울컥, 욕이 찼다. 어쩌다, 미디어에서 말더듬증이 있는 인물이 나오면 정전기 튀듯 놀랬다. 플래시백flashback: (명사) 갑자기 너무 생생히 떠오르는 회상, 말 더듬는 몸을 보면서 이끌려 나도 다시 심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말 더듬는 몸은 24년간 더듬지 않는 척하고 있다.
- 불이 저주받은 자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
말, 은 2022년 새해를 갓 넘겼을 때 장애인권리예산보장을 촉구하는 혜화역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처음 참여했다. 그곳에서 노들야학 학생이었다던 말628, 을 만났다. 말628, 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말 시작부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5분을 넘게 토하듯 말하고 있는 말628, 의 언어장애-목소리는 말, 에게 하나의 음성, 웅성거림으로만 들렸다. 온몸 촉을 세워 들으려고 해도, 눈을 감고 귀를 한껏 열어 봐도, 간절함을 주요 성분으로 미간 주름을 잡아 봐도,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628, 은 몸을 들썩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전해야 하는 어떤 말이 분명히 있는 듯했다. 잠시 뒤, 경비과 형사가 다가와 말628, 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對話: (명사)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그러니까, 매일 아침 지하철 선전전을 담당하는 저 경비과 형사가! 온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 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채증 사진 찍지 말라고 하신 거죠?” 아, 사진. 아, 사진 찍지 말라고. 매일같이 아침마다 말628, 의 말을 듣다 보면 저 형사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거구나. 계속 듣다 보면 들리는 거구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말628, 의 목소리에 다시 가만 기울였다. 어떤 말인지, 어떤 발음인지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 우리의 추함에 눈길을 던지기! -
말628, 은 말을 더더더더듬고 있었다. 말, 은 나오지 않는 말을 내뱉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일 때. 발끝이 뾰족해질 때. 앞 목에 힘 줄 때. 손목이 안으로 꺾일 때. 전동 휠체어에 앉은 말628, 의 더듬는 말이 몸 어느 지점에서 나오고, 끼이고, 꺾이고, 찢어지고 있는지 직류로 연결되었다. 말628, 은 차별에 대해 잔인하고 끈질기게 말했다. 불평등에 대해 검고 사납게 말했다. 투쟁에 대해 용맹하고 아름답게 말했다. 강물 흐르듯이 거침이 없었다. 말, 에게 더듬는 말은 오랫동안 숨겨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말628, 은 단 한 순간도 그렇지 않았다. 말, 의 세계에 청각적 사건을 일으켰다. “상식적이고, 마땅하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게 하고, 배후를 볼 수 있게 하며 (……) 삶의 다른 층위를 밝혀내는(……) 눈부신 효과로서 찌릿한 놀라움”[ref] Marilyn Strathern(2022), Property, substance, and effect, Hau books, pp. 8-10. [/ref]에 움찔했다. 더더더더더듬는 마마말이 처음으로 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멋있었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한겨울, 혜화역, 피켓을 목에 걸고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쳐! 혐오는 쓰레기통에!’를 외치며 오랜만에 말, 은 말을 편하게 더듬었다.
교란↘⤦⤡↯⤵⤸의 페다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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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말, 은 노들야학에서 서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말들이 저마다 조금씩 더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수히 고유한 발성법으로 말하고 있는 말들을 노들야학에서 많이 만났다. AAC[ref] Augmentative(보완) Alternative(대체) Communication(소통), 의 준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적인 방법으로 흔히 ‘의사소통 보조 기구’로 소개된다. [/ref]어플을 활용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타이핑하고 그것을 휴대전화가 말하는 기계-발성법, 말판을 활용하여 손가락으로 자음을 먼저 가르킨 뒤 모음을 조합하여 말하는 손가락-발성법, 빗나가는 맥락을 붙들어 가며 의사소통을 진행하는 조력자-발성법, 신체의 움직임과 떨림으로 말하는 몸-발성법,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침을 묻히며 말하는 화학적-발성법, 다양한 그림 문자로 말하는 이모티콘-발성법 등등. 성대를 거쳐 입술과 혀의 조음을 통해 발성되는 말뿐만 아니라 기계-손가락-조력자-몸-침-이모티콘과 말이 협응하여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기존에 말, 이 알던 유창한 발성법은 말의 세계에서 그저 한 가지 발성법일 뿐이었다. 말, 은 노들야학에서 말의 다양성, 발성의 다양성, 조음의 다양성, 말더듬의 다양성, 문법의 다양성들이 생동하고 있음에 놀랐다.
⤦
노들야학의 말들은 ‘유창한 말의 경/계’를 향해 무참히 돌진해 왔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범주화하기 난감한 하이브리드(브루노 라투르)의 말, 표준적인 담론 체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내는 혼종(도나 해러웨이)의 말, 다수적 언어를 변이시켜 새로운 종류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소수적 언어(질 들뢰즈)의 말들이 돌격해 왔다. 정상/비정상, 유창성/비유창성을 가르던 ‘경/계’의 축이 돌파되고 있음을 느꼈다. 말, 의 몸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비장애 중심의 유창성에, 교란攪亂: (동사)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하다, 를 노들야학에서 날마다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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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인류학자 애나 칭은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책에서 다양성을 가꾸는 시작점으로 교란disturbance을 말한다. “다양성을 살리면서 건강하게 기능하는 생태계로 개선하는 방식의 교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란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단일한 배치만을 인정하는” 근대적 구조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억압”하고 교란이 불러일으키는 다양성을 “잡초나 쓰레기로” 취급해 버린다. 이에 애나 칭은 근대적 단일한 배치(인간-비장애-이성애-남성-자본 중심) 속에 “교란은 새로운 풍경의 배치를 가능케 하면서 변형을 가능케” 하는 첫 단추이자 시작점이라고 한다.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ref] 애나 로웬하웁트 칭, 노고윤 옮김(2023),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270~271쪽. [/ref] 주는 시작 지점으로서 교란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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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야학 교사였던 작가 홍은전은 〈선을 넘는 존재들〉이라는 에세이에서 선을 넘은 낯선 존재들이 일으키는 교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했다면 나는 그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 분명한 동물권활동가들이 “이마트와 롯데리아, 배스킨라빈스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기 때문에, 거기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을 향해 “죽이지 마십시오. 빼앗지 마십시오. 이것은 폭력입니다” 하고 외쳤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들이 어떤 선을 무참히 넘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 전한다. 동시에 “2001년 서울 도심에 이전엔 나타난 적 없었던 낯선 인간들이 출몰”한 이야기를 전하며 ““장애인도 인간이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채 모든 권리를 빼앗겼던 그들은 선로를 점거해 지하철을 멈춰 세우면서 한국 사회라는 역사의 무대에 충격적으로 등장했다”고 전한다. 동물해방활동가들과 장애해방활동가들은 견고한 인간 중심/비장애 중심의 경계에 교란을 일으켰다. 이 교란 속에서 홍은전 작가는 “이 세계를 다르게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ref] 홍은전(2023), 《나는 동물》, 봄날의책, 47~51쪽. [/ref]고 한다. 배움이 깜짝 일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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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타냐 티치코스키는 〈교육적 가능성으로서의 몸의 끝〉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교란을 일으키는 “경계에서,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에서부터 교육적인 질문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시각장애는 다르게 지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상상되고, 휠체어 사용은 일반적으로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감금’으로 간주”하며 “‘장애’를 가능성 없는 한계로 만드는” 교육적 과정에 교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해석 속에 장애, 인종, 계급, 젠더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 “이 복잡성을 교육적 가능성으로 끌어올려 인간에 대한 해석과 배움”[ref] Tanya Titchkosky(2012), The ends of the body as pedagogic possibility, The Review of Education, Pedagogy and Cultural Studies, 34, pp. 1–12. [/ref]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
유창성-말의 끝에서, 정상-규범의 끝에서, 비장애-인간의 끝에서, 이성애-젠더의 끝에서, 비인간-동물의 끝에서, 비동물-식물의 끝에서, 비생명-사물의 끝에서, 무수한 끝에서 끝끝내 시작되고야 마는 교란의 페다고지는 불확정성의 마주침을 선사할 것이다. 인간의 의미가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얼룩진 채 뒤섞여 드는 곳. 말의 의미가 만들어지고,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서로 오염된 채 뒤얽혀 있는 곳. 우리 시대의 하이브리드-혼종-소수적 페다고지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서로의 삶과 말이 섞이고, 경계와 질문이 섞이는 이 교란 속에서
“완벽하고 뜻밖의 존재가 너의 경험에 몸을 내어밀 것이다.” (〈청춘〉 중에서)
듣기의 공동체
말628, 과 그 동지들이 남대문경찰서 자진 출석 기자 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반드시 사법 처리하겠다”고 발언한 뒤 출석 요구가 매일 쇄도하던 한 여름날. 말628, 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고, 단호했다. 한 단어, 다음 단어 사이의 간격은 여유로웠다. 눈을 감고 말628, 의 말을 따라갔다. 첫음절을 더듬다가 다시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같은 말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흘러나왔다. 말628, 이 발언 중 말이 목에 걸려 얕은 기침을 뱉었을 때, 눈을 떠 앞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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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발언자들의 말을 전속력으로 받아 적던 기자들의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모두 멈추어 있었다. 기자들은 서로 좌우를 살피며 무슨 말을 받아써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다. 눈 둘 곳을 잃은 기자들은 타이핑하기를 모두 포기해 버린 듯했다. 난감難堪: (형용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견뎌 내거나 해결하기가 어렵다, 를 말하는 눈빛들. 어떤 자음과 모음을 두드려야 하는지 방향을 잃은 손가락의 끝.
기자들의 난감한 눈빛 속에서 말, 이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느꼈던 난감한 때가 떠올랐다.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의 말을 들어야 할 때. 분명 말하고 있는데, 으흐허어, 로만 들릴 때. 그때. 말, 은 난감했다. 난감함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말, 은 ‘알아듣는 척’하곤 했다. “학생들이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워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대충 알아듣는 척하기도 했다”는 노들야학 신입 교사들의 고백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대충 알아듣는 척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1분쯤 지나면 알게 된다. 학생들은 말, 을 포기하지 않고 말, 이 들릴 때까지 끊임없이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노들의 학생들은 귀를 기울이고, 허리를 기울이고, 무릎을 기울이고, 눈을 기울이며 말의 경사로-되기, 를 끊임없이 권유했다. “차이를 가로지르는 실천적 활동”으로서의 “되기의 정치”(김도현)를 수행할 것을 권유했다. 경사로-되기는 문턱을 넘나들 수 있는 평평한 존재론적 전략이자, 듣기의 기울기를 변형시켜 나가는 정치적 전략이기도 하다. 말이라고 여겨지지 않던 말들이 경사로를 ∠따라의미를가진말로들리기시작⦣했다.
그럼에도 듣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들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석탄 자본이 지구의 대기를 본격적으로 망쳐 놓기 시작한 1950년 무렵의 ‘거대한 가속’에 대한 수업을 할 때였다. 반에서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이 손을 흔들며 이아호안오, 했다. 온몸을 기울여도 이아호안오, 는 말의 경사로를 오르지 못했다. 한참 동안 진땀을 빼고 있는데, 정신장애가 있는 한 학생이 “아, 이산화탄소” 했다. 찌릿. 함께-경사로-되기의 순간. 함께 듣는 시간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빠져 들어가는 “인볼루션involution(……)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주어진 여러 항들 ‘사이에서’, 할당 가능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는(……) 동맹alliance”(들뢰즈/가타리)으로서의 함께-경사로-되기를 통해 들리지 않던 말들이 경사로를 ∠ 따라들리기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수업 시간에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좀 들어요” 듣기의 동맹을 요청하곤 했다. 함께-경사로-되기를 수행하며 순식간에 듣기의 공동체가 결성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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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경찰서에서 기자 회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말628, 의 발언을 받아쓴 기사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말628, 의 발언을 받아쓴 언론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저항하고 싸우는 이들을 기록하는 진보적 장애인언론”인 〈비마이너〉가 그곳이었다. 〈비마이너〉가 듣고자 하는 목소리는 분명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몫을 빼앗긴 사람들이 싸우는 그 현장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언론이었다. “억압받는 사람이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현실은 변화할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언론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왔지만 오직 〈비마이너〉만이 말628, 의 발언을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할 목소리”로 받아썼다. 말628, 의 목소리를 향한 ‘듣기’는 “반드시”[ref] 비마이너 소개, www.beminor.com/com/com-1.html [/ref]라는 정치적 부사와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
듣기가 정치적인 것은 어떤 말들은 “발화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사전 배제foreclosure”(주디스 버틀러)되기 때문이다. “집회법 14조에 따라서 확성기 등 음향 장비를 일시 보관하겠습니다.” 이후 말, 은 앰프를 탈취하기 위해 수십 명의 경찰이 몰려드는 소리. 탈취당하는 마이크의 비명 소리. 말을 소음으로 규정하는 소리, 를 숱하게 들었다. 폭력을 규탄하고, 불평등을 토로하고, 차별을 증언하는 목소리를 질질 끌고 나가는 소리. 말을 하면 소란으로 간주하고 연행하는 소리. 침묵시위마저도 권유 행위로 여겨져 역사 밖으로 내쫓겨 나는 침묵의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이 말과 소란 속에서 저항하는 이들의 말을 세계를 변화시킬 힘으로 여기고 “반드시” 듣고자 한 언론사는 〈비마이너〉뿐이었다. 말은 객관적 정보와 사실만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 듣고자 하는 자의 역량, 전달하고자 하는 자의 열망에 따라 관계적/정치적으로 구성된다. 관계적/정치적 듣기는 수“많은 시작이 잠복해 있는 교점”이다. 몫을 빼앗긴 자들의 저항하는 몫소리를 “정치적으로 듣는 행위는 아직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은 공통의 의제들”(애나 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듣기의 공동체’를 배치해 나갈 수 있는지, 어떤 혐오의 말을 깨트려야 하는지, 질문을 시작하게 한다.
어떤 혈기로 걸어가야 하는가?(〈나쁜 피〉 중에서)
이제 나는 더듬는 말, 을 숨기지 아아아않기 위해 애애애쓰고 있다. 말을 더듬을 것 같을 때 그냥 말을 더더더듬도록 내버려 두두두둔다. 교란을 일으키며 생동하는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말의 생태계에서 다르게 말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배배배우고자 한다. 난감함과 함께 관관관계적/정정정치적-듣기의 공동체를 가가가꾸어 보려고 한다. 노들야학에서 만난 모든 찌그렁빠그렁한 말들과 골목, 시장, 학교, 일터를 누비며 일일일상 곳곳에서 함께 말을 섞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가끔 말628, 의 말처럼 박박박력 있게 더듬어 보고 싶다. ‘이이이것은 제제가 말하는 바바방식입니다. 나나나나는 자신을 사사사사랑하기 위해 더더더더 이상 애애쓰고 싶지 아아않않습니다. 그래. 나 말더듬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하고 외쳐 보고 싶다. 더듬는 말이 문제가 아니라, 더듬는 말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비장애 중심적 듣기-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나나나는 말628, 을 통해 배웠다. 말628, 의 책 출간 기념 북토크 날, “장애를 가진 몸으로 태어난 걸 한탄한 적 없어?”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말628, 은 “없어. 내 몸에 맞게 세상을 바꾸려고 했어”. 역시 멋멋멋멋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는 “장애인 이동권 요구 현장”을 기념하는 서울시인권현장 바닥동판이 보도블록 사이에 새겨져 있다. 바닥동판에는 “1999. 6. 28. 혜화역 장애인(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 휠체어 추락 사고 이후 여기서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판에도 새겨진 이름인 말628, 의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후마니타스)가 출간되었다. 자판을 두드려 가며 방에서 혼자 쓴 책이 아니라, 세 사람의 집필 활동 지원사와 함께 말하고-듣고-쓰고-질문하고-싸우고-제안하고-말하고-듣고-되묻고-토론하고-듣고-말하며, 듣기의 공동체 속에서 쓰기의 사건을 벌인 책이다. 한국 출판 역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짙은 잔상을 남기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의 생애사이면서, 동시에 “‘자기 인생이 얼마나 특별했는지’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철을 막고, 버스를 막고, 전경 버스를 막고, 장애인 없이 굴러가는 세상을 가로막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투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세계를 “어떤 혈기로 걸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손가락을 들고 이 책을 가리킬 것이다. 필독을 권한다.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④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말
교란의 페다고지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말, 은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말하려고 할 때마다 몸이 말, 을 붙잡았다. 붙잡힌 말을 뿌리치고 말하려고 할 때면 첫 말, 이 연발성되어 마마말문이 마마막혔다. 유난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적 충격이었을까. 일상적인 체벌의 공포 때문이었을까. 시험 성적 중심의 우열 관계가 주는 압력 때문이었을까. 특히, 발음되지 않던 말은 ‘ㅇ’ 자로 시작하는 말이었다.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한글을 배울 때 처음 배운 모음들이 죄다 난감해졌다. 또, ‘ㅏ’ 자를 달고 있는 말들도 그랬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말, 은 총체적 곤경에 빠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라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을 때, 말들은 목에서 턱턱 걸려 매번 곤두박질쳤다. 어깨를 좌우로 세게 흔들거나,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면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마말이 간신히 나오기도 했다. 말, 은 어찌할 줄 몰랐다.
- 사지를 뒤틀고, 나를 일그러트리고 -[ref] 오른쪽 줄 맞춤된 각각의 문장은 모두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들이다. 〈지옥의 밤〉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인용할 때에는 괄호 안에 작품의 제목을 기입하였다. 민음사 김현 번역본, 책세상 이준오 번역본, 그여름 출판사의 이한이 번역본, 지만지 출판사의 곽민석 번역본을 교차 인용하였다. [/ref]
국어 교과서를 돌아가며 읽는 시간. “오늘 18일이니까, 18번 읽어 봐.” 말, 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교실은 키득키득한 소리로 가득했다. 키득키득 소리를 배경음 삼아 ‘어어어어어느 길동이 지지진진짜 기기길동인지 아아아아아아알알아아낼 도리가 어어어어어어업없었다.’ 한 문장을 읽기까지 발가락부터 혀끝까지 온몸을 비틀어 처절하게 읽고 나면,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아예 첫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 난발성의 순간이 오면 두 손이 흔들리고, 호흡이 가슴에서 터질 듯했다.
- 나는 숨이 막히며, 나는 소리를 지를 수 없다. 그것은 지옥이다. -
“조용조용. 계속 읽어.” 국어 선생은 말, 을 고치려고 했다. 바로잡으려고 했다. 끝까지 읽기를 시켰다. 그러다, 첫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 난발성, 의 덫에 걸리면 교과서 뒤로 얼굴을 처박고, 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못읽겠어요, 로 가득해지면 살기殺氣: (명사) 독살스러운 기운, 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앉아.” 온 힘을 소진해 담벼락 무너지듯 책상에 엎드려 무너져 있으면 말, 의 뒤에서 말병신, 더듬이 새끼라며, 어버버어버버 아아아아알아낼 도리가 어어어어어어없네! 하던 같은 반 더러운 녀석들이 있었다. 국어 시간이 다시 찾아올 때면 숨을 멈춘 채 가슴을 세게 치면 기절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절 연습에 매진하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낙오되고자 시험 치는 날이면 말, 은 어김없이 국어 시험만큼은 1분 안에 내리찍고 책상에 가장 먼저 엎드렸다. 말, 의 인생에 국어, 는 반드시 지워져야 했다.
- 지옥에 있다고 믿으니, 지옥에 있게 된다. -
말, 은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으로 피난을 떠났다. 도서관을 지배하던 낱말은 정숙靜肅: (명사) 조용하고 엄숙함, 이었기에 말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서가에 가장 많이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사서 선생님이 매일같이 도서관에 오는 말, 에게 독서 모임에 참가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말, 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부터 끔찍해지기 때문이다. “마마마마마마만나서 바바바바바바반갑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손발을 흔들고, 목에 힘을 주었다가, 발꿈치를 들었다가 놓아야 한다는 확실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 이해되지 않는 세계 문학 고전들을 읽으며,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 그러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는 제목을 단 랭보의 시집을 펼쳤을 때, 읽을 수는 있는데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더듬증과 닮았다, 고 느꼈다. 말, 은 그 책을 훔쳤다.
- 입이 틀어 막혔나, 내 소리를 못 듣는다. -
말, 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가방에 넣고 주말이 되면 ‘20년 언어 치료 노하우’를 가진 ‘행복한 꿈이 열리는 미래’를 펼쳐 보여 주겠다는 언어치료센터를 다녔다. 거울을 보며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가 목구멍으로 혀를 감아 넣었다가를 반복 반복 반복. 발음하기 어려운 낱말들을 적어 놓은 종이를 벽에 붙여 놓고 길게, 크게, 천천히, 잘게 말하기 연습. 탁, 천천히. 탁탁, 차분히 말해야지. 탁탁탁, 떨지 말고. 탁탁탁탁, 똑바로. 탁탁탁탁탁, 야! 말, 은 온갖 수모를 겪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처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혓바닥을 길게 내뺀 거울 속 모습은 꿈에서도 나왔다. 꿈속에서는 더듬지 않았다.
- 삶의 시계가 방금 멈추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있지 않다. -
언어치료센터를 그만두고 말, 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말병신이 되지 않는 쪽으로. 비웃음당하지 않는 쪽으로. 말하기 위해 온몸을 비트느라 놀림거리가 되지 않는 쪽으로. 어떤 말을 들어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말, 은 말을 집어삼켜 버렸다.
- 지옥은 확실히 저기 저 아래에 -
병신, 계집, 게이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삼위일체의 낙인이었다. 찍히는 순간 점점 내몰리다가 점차 배제되고 마침내 폭력의 대상으로 어떻게 전락하는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몸 구석구석 각인되어 있었다. 다른 존재자들을 부정하며, 정상성-전형성-보편성을 내면화했다. 제법 성공적이었다. 말, 은 전형적인 이성애-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거친 욕을 침 뱉듯 투투 내뱉고, 혐오 발언에 동참하면 되었다. ‘운’이 좋게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병신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의식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내가 가상의 표준mythical norm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오드리 로드)하기에 비정상은 말,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온전하고 평범한 사람에서부터 오염되고 가치 저하된 것으로 마음 안에서 몰락한”(어빙 고프만) 낙인의 특성을 용인할 수 없었다.
- 분노를 위한 나의 지옥을 -
말, 은 자기혐오-감각을 해상도 높게 느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말병신’라는 말이 계속해서 울렸다. 놀리지 않아도, 비웃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아래에서, 자기 검열의 과정 속에서, 그것이 정말 들렸다. 정상의 기준 안으로, 들어가 있기를 바랐던 날들 사이에 자기혐오의 말은 말, 을 놔주지 않았다.
- 나는 숨겨진다. -
말, 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금세 “조용한 아이, 내성적인 아이,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로 기록되었다. 이후, 더듬지 않는 생각 속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철학과로 진학했던 것 같고, 소리만 내질러도 괜찮은 음악 속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하드코어펑크밴드를 시작했고, 더듬어도 상관없는 일기 속에 주로 서식하다 보니 글 좀 쓰는 녀석으로 불렸다.
- 나는 숨겨지지 않는다. -
시간이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나면서 어떻게?, 라고 질문하면, 그그글글쎄……라고 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 의 말더듬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서서히 가벼워졌지만, 옅어졌지만, 멀어졌지만, 하지만, 여전히, 더듬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낱말을 만나면 재빨리 낱말을 바꾸어 쓴다. 여전히, 첫음절이 발음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리면서 말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을 때면 더듬지 않을까 걱정한다.
말, 은 그렇게 꽤 오랫동안 ‘몸에서 목소리를 빼내는 배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는 말더듬증이 있는 사람을 보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어쩌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말더듬증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 목구멍에서 울컥, 욕이 찼다. 어쩌다, 미디어에서 말더듬증이 있는 인물이 나오면 정전기 튀듯 놀랬다. 플래시백flashback: (명사) 갑자기 너무 생생히 떠오르는 회상, 말 더듬는 몸을 보면서 이끌려 나도 다시 심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말 더듬는 몸은 24년간 더듬지 않는 척하고 있다.
- 불이 저주받은 자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
말, 은 2022년 새해를 갓 넘겼을 때 장애인권리예산보장을 촉구하는 혜화역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처음 참여했다. 그곳에서 노들야학 학생이었다던 말628, 을 만났다. 말628, 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말 시작부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5분을 넘게 토하듯 말하고 있는 말628, 의 언어장애-목소리는 말, 에게 하나의 음성, 웅성거림으로만 들렸다. 온몸 촉을 세워 들으려고 해도, 눈을 감고 귀를 한껏 열어 봐도, 간절함을 주요 성분으로 미간 주름을 잡아 봐도,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628, 은 몸을 들썩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전해야 하는 어떤 말이 분명히 있는 듯했다. 잠시 뒤, 경비과 형사가 다가와 말628, 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對話: (명사)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그러니까, 매일 아침 지하철 선전전을 담당하는 저 경비과 형사가! 온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 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채증 사진 찍지 말라고 하신 거죠?” 아, 사진. 아, 사진 찍지 말라고. 매일같이 아침마다 말628, 의 말을 듣다 보면 저 형사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거구나. 계속 듣다 보면 들리는 거구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말628, 의 목소리에 다시 가만 기울였다. 어떤 말인지, 어떤 발음인지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 우리의 추함에 눈길을 던지기! -
말628, 은 말을 더더더더듬고 있었다. 말, 은 나오지 않는 말을 내뱉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일 때. 발끝이 뾰족해질 때. 앞 목에 힘 줄 때. 손목이 안으로 꺾일 때. 전동 휠체어에 앉은 말628, 의 더듬는 말이 몸 어느 지점에서 나오고, 끼이고, 꺾이고, 찢어지고 있는지 직류로 연결되었다. 말628, 은 차별에 대해 잔인하고 끈질기게 말했다. 불평등에 대해 검고 사납게 말했다. 투쟁에 대해 용맹하고 아름답게 말했다. 강물 흐르듯이 거침이 없었다. 말, 에게 더듬는 말은 오랫동안 숨겨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말628, 은 단 한 순간도 그렇지 않았다. 말, 의 세계에 청각적 사건을 일으켰다. “상식적이고, 마땅하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게 하고, 배후를 볼 수 있게 하며 (……) 삶의 다른 층위를 밝혀내는(……) 눈부신 효과로서 찌릿한 놀라움”[ref] Marilyn Strathern(2022), Property, substance, and effect, Hau books, pp. 8-10. [/ref]에 움찔했다. 더더더더더듬는 마마말이 처음으로 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멋있었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한겨울, 혜화역, 피켓을 목에 걸고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쳐! 혐오는 쓰레기통에!’를 외치며 오랜만에 말, 은 말을 편하게 더듬었다.
교란↘⤦⤡↯⤵⤸의 페다고지
↘
이후 말, 은 노들야학에서 서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말들이 저마다 조금씩 더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수히 고유한 발성법으로 말하고 있는 말들을 노들야학에서 많이 만났다. AAC[ref] Augmentative(보완) Alternative(대체) Communication(소통), 의 준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적인 방법으로 흔히 ‘의사소통 보조 기구’로 소개된다. [/ref]어플을 활용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타이핑하고 그것을 휴대전화가 말하는 기계-발성법, 말판을 활용하여 손가락으로 자음을 먼저 가르킨 뒤 모음을 조합하여 말하는 손가락-발성법, 빗나가는 맥락을 붙들어 가며 의사소통을 진행하는 조력자-발성법, 신체의 움직임과 떨림으로 말하는 몸-발성법,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침을 묻히며 말하는 화학적-발성법, 다양한 그림 문자로 말하는 이모티콘-발성법 등등. 성대를 거쳐 입술과 혀의 조음을 통해 발성되는 말뿐만 아니라 기계-손가락-조력자-몸-침-이모티콘과 말이 협응하여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기존에 말, 이 알던 유창한 발성법은 말의 세계에서 그저 한 가지 발성법일 뿐이었다. 말, 은 노들야학에서 말의 다양성, 발성의 다양성, 조음의 다양성, 말더듬의 다양성, 문법의 다양성들이 생동하고 있음에 놀랐다.
⤦
노들야학의 말들은 ‘유창한 말의 경/계’를 향해 무참히 돌진해 왔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범주화하기 난감한 하이브리드(브루노 라투르)의 말, 표준적인 담론 체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내는 혼종(도나 해러웨이)의 말, 다수적 언어를 변이시켜 새로운 종류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소수적 언어(질 들뢰즈)의 말들이 돌격해 왔다. 정상/비정상, 유창성/비유창성을 가르던 ‘경/계’의 축이 돌파되고 있음을 느꼈다. 말, 의 몸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비장애 중심의 유창성에, 교란攪亂: (동사)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하다, 를 노들야학에서 날마다 마주쳤다.
⤡
페미니스트 인류학자 애나 칭은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책에서 다양성을 가꾸는 시작점으로 교란disturbance을 말한다. “다양성을 살리면서 건강하게 기능하는 생태계로 개선하는 방식의 교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란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단일한 배치만을 인정하는” 근대적 구조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억압”하고 교란이 불러일으키는 다양성을 “잡초나 쓰레기로” 취급해 버린다. 이에 애나 칭은 근대적 단일한 배치(인간-비장애-이성애-남성-자본 중심) 속에 “교란은 새로운 풍경의 배치를 가능케 하면서 변형을 가능케” 하는 첫 단추이자 시작점이라고 한다.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ref] 애나 로웬하웁트 칭, 노고윤 옮김(2023),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270~271쪽. [/ref] 주는 시작 지점으로서 교란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
노들야학 교사였던 작가 홍은전은 〈선을 넘는 존재들〉이라는 에세이에서 선을 넘은 낯선 존재들이 일으키는 교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했다면 나는 그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 분명한 동물권활동가들이 “이마트와 롯데리아, 배스킨라빈스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기 때문에, 거기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을 향해 “죽이지 마십시오. 빼앗지 마십시오. 이것은 폭력입니다” 하고 외쳤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들이 어떤 선을 무참히 넘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 전한다. 동시에 “2001년 서울 도심에 이전엔 나타난 적 없었던 낯선 인간들이 출몰”한 이야기를 전하며 ““장애인도 인간이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채 모든 권리를 빼앗겼던 그들은 선로를 점거해 지하철을 멈춰 세우면서 한국 사회라는 역사의 무대에 충격적으로 등장했다”고 전한다. 동물해방활동가들과 장애해방활동가들은 견고한 인간 중심/비장애 중심의 경계에 교란을 일으켰다. 이 교란 속에서 홍은전 작가는 “이 세계를 다르게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ref] 홍은전(2023), 《나는 동물》, 봄날의책, 47~51쪽. [/ref]고 한다. 배움이 깜짝 일어난다고 한다.
⤵
장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타냐 티치코스키는 〈교육적 가능성으로서의 몸의 끝〉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교란을 일으키는 “경계에서,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에서부터 교육적인 질문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시각장애는 다르게 지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상상되고, 휠체어 사용은 일반적으로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감금’으로 간주”하며 “‘장애’를 가능성 없는 한계로 만드는” 교육적 과정에 교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해석 속에 장애, 인종, 계급, 젠더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 “이 복잡성을 교육적 가능성으로 끌어올려 인간에 대한 해석과 배움”[ref] Tanya Titchkosky(2012), The ends of the body as pedagogic possibility, The Review of Education, Pedagogy and Cultural Studies, 34, pp. 1–12. [/ref]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
유창성-말의 끝에서, 정상-규범의 끝에서, 비장애-인간의 끝에서, 이성애-젠더의 끝에서, 비인간-동물의 끝에서, 비동물-식물의 끝에서, 비생명-사물의 끝에서, 무수한 끝에서 끝끝내 시작되고야 마는 교란의 페다고지는 불확정성의 마주침을 선사할 것이다. 인간의 의미가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얼룩진 채 뒤섞여 드는 곳. 말의 의미가 만들어지고,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서로 오염된 채 뒤얽혀 있는 곳. 우리 시대의 하이브리드-혼종-소수적 페다고지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서로의 삶과 말이 섞이고, 경계와 질문이 섞이는 이 교란 속에서
“완벽하고 뜻밖의 존재가 너의 경험에 몸을 내어밀 것이다.” (〈청춘〉 중에서)
듣기의 공동체
말628, 과 그 동지들이 남대문경찰서 자진 출석 기자 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반드시 사법 처리하겠다”고 발언한 뒤 출석 요구가 매일 쇄도하던 한 여름날. 말628, 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고, 단호했다. 한 단어, 다음 단어 사이의 간격은 여유로웠다. 눈을 감고 말628, 의 말을 따라갔다. 첫음절을 더듬다가 다시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같은 말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흘러나왔다. 말628, 이 발언 중 말이 목에 걸려 얕은 기침을 뱉었을 때, 눈을 떠 앞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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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발언자들의 말을 전속력으로 받아 적던 기자들의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모두 멈추어 있었다. 기자들은 서로 좌우를 살피며 무슨 말을 받아써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다. 눈 둘 곳을 잃은 기자들은 타이핑하기를 모두 포기해 버린 듯했다. 난감難堪: (형용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견뎌 내거나 해결하기가 어렵다, 를 말하는 눈빛들. 어떤 자음과 모음을 두드려야 하는지 방향을 잃은 손가락의 끝.
기자들의 난감한 눈빛 속에서 말, 이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느꼈던 난감한 때가 떠올랐다.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의 말을 들어야 할 때. 분명 말하고 있는데, 으흐허어, 로만 들릴 때. 그때. 말, 은 난감했다. 난감함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말, 은 ‘알아듣는 척’하곤 했다. “학생들이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워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대충 알아듣는 척하기도 했다”는 노들야학 신입 교사들의 고백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대충 알아듣는 척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1분쯤 지나면 알게 된다. 학생들은 말, 을 포기하지 않고 말, 이 들릴 때까지 끊임없이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노들의 학생들은 귀를 기울이고, 허리를 기울이고, 무릎을 기울이고, 눈을 기울이며 말의 경사로-되기, 를 끊임없이 권유했다. “차이를 가로지르는 실천적 활동”으로서의 “되기의 정치”(김도현)를 수행할 것을 권유했다. 경사로-되기는 문턱을 넘나들 수 있는 평평한 존재론적 전략이자, 듣기의 기울기를 변형시켜 나가는 정치적 전략이기도 하다. 말이라고 여겨지지 않던 말들이 경사로를 ∠따라의미를가진말로들리기시작⦣했다.
그럼에도 듣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들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석탄 자본이 지구의 대기를 본격적으로 망쳐 놓기 시작한 1950년 무렵의 ‘거대한 가속’에 대한 수업을 할 때였다. 반에서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이 손을 흔들며 이아호안오, 했다. 온몸을 기울여도 이아호안오, 는 말의 경사로를 오르지 못했다. 한참 동안 진땀을 빼고 있는데, 정신장애가 있는 한 학생이 “아, 이산화탄소” 했다. 찌릿. 함께-경사로-되기의 순간. 함께 듣는 시간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빠져 들어가는 “인볼루션involution(……)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주어진 여러 항들 ‘사이에서’, 할당 가능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는(……) 동맹alliance”(들뢰즈/가타리)으로서의 함께-경사로-되기를 통해 들리지 않던 말들이 경사로를 ∠ 따라들리기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수업 시간에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좀 들어요” 듣기의 동맹을 요청하곤 했다. 함께-경사로-되기를 수행하며 순식간에 듣기의 공동체가 결성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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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경찰서에서 기자 회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말628, 의 발언을 받아쓴 기사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말628, 의 발언을 받아쓴 언론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저항하고 싸우는 이들을 기록하는 진보적 장애인언론”인 〈비마이너〉가 그곳이었다. 〈비마이너〉가 듣고자 하는 목소리는 분명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몫을 빼앗긴 사람들이 싸우는 그 현장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언론이었다. “억압받는 사람이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현실은 변화할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언론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왔지만 오직 〈비마이너〉만이 말628, 의 발언을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할 목소리”로 받아썼다. 말628, 의 목소리를 향한 ‘듣기’는 “반드시”[ref] 비마이너 소개, www.beminor.com/com/com-1.html [/ref]라는 정치적 부사와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
듣기가 정치적인 것은 어떤 말들은 “발화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사전 배제foreclosure”(주디스 버틀러)되기 때문이다. “집회법 14조에 따라서 확성기 등 음향 장비를 일시 보관하겠습니다.” 이후 말, 은 앰프를 탈취하기 위해 수십 명의 경찰이 몰려드는 소리. 탈취당하는 마이크의 비명 소리. 말을 소음으로 규정하는 소리, 를 숱하게 들었다. 폭력을 규탄하고, 불평등을 토로하고, 차별을 증언하는 목소리를 질질 끌고 나가는 소리. 말을 하면 소란으로 간주하고 연행하는 소리. 침묵시위마저도 권유 행위로 여겨져 역사 밖으로 내쫓겨 나는 침묵의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이 말과 소란 속에서 저항하는 이들의 말을 세계를 변화시킬 힘으로 여기고 “반드시” 듣고자 한 언론사는 〈비마이너〉뿐이었다. 말은 객관적 정보와 사실만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 듣고자 하는 자의 역량, 전달하고자 하는 자의 열망에 따라 관계적/정치적으로 구성된다. 관계적/정치적 듣기는 수“많은 시작이 잠복해 있는 교점”이다. 몫을 빼앗긴 자들의 저항하는 몫소리를 “정치적으로 듣는 행위는 아직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은 공통의 의제들”(애나 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듣기의 공동체’를 배치해 나갈 수 있는지, 어떤 혐오의 말을 깨트려야 하는지, 질문을 시작하게 한다.
어떤 혈기로 걸어가야 하는가?(〈나쁜 피〉 중에서)
이제 나는 더듬는 말, 을 숨기지 아아아않기 위해 애애애쓰고 있다. 말을 더듬을 것 같을 때 그냥 말을 더더더듬도록 내버려 두두두둔다. 교란을 일으키며 생동하는 지지지끄러지고 빠빠빠그라진 마마말의 생태계에서 다르게 말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배배배우고자 한다. 난감함과 함께 관관관계적/정정정치적-듣기의 공동체를 가가가꾸어 보려고 한다. 노들야학에서 만난 모든 찌그렁빠그렁한 말들과 골목, 시장, 학교, 일터를 누비며 일일일상 곳곳에서 함께 말을 섞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가끔 말628, 의 말처럼 박박박력 있게 더듬어 보고 싶다. ‘이이이것은 제제가 말하는 바바방식입니다. 나나나나는 자신을 사사사사랑하기 위해 더더더더 이상 애애쓰고 싶지 아아않않습니다. 그래. 나 말더듬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하고 외쳐 보고 싶다. 더듬는 말이 문제가 아니라, 더듬는 말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비장애 중심적 듣기-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나나나는 말628, 을 통해 배웠다. 말628, 의 책 출간 기념 북토크 날, “장애를 가진 몸으로 태어난 걸 한탄한 적 없어?”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말628, 은 “없어. 내 몸에 맞게 세상을 바꾸려고 했어”. 역시 멋멋멋멋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는 “장애인 이동권 요구 현장”을 기념하는 서울시인권현장 바닥동판이 보도블록 사이에 새겨져 있다. 바닥동판에는 “1999. 6. 28. 혜화역 장애인(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 휠체어 추락 사고 이후 여기서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판에도 새겨진 이름인 말628, 의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후마니타스)가 출간되었다. 자판을 두드려 가며 방에서 혼자 쓴 책이 아니라, 세 사람의 집필 활동 지원사와 함께 말하고-듣고-쓰고-질문하고-싸우고-제안하고-말하고-듣고-되묻고-토론하고-듣고-말하며, 듣기의 공동체 속에서 쓰기의 사건을 벌인 책이다. 한국 출판 역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짙은 잔상을 남기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의 생애사이면서, 동시에 “‘자기 인생이 얼마나 특별했는지’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철을 막고, 버스를 막고, 전경 버스를 막고, 장애인 없이 굴러가는 세상을 가로막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투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세계를 “어떤 혈기로 걸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손가락을 들고 이 책을 가리킬 것이다. 필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