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작업치료를? 학교에 작업치료를!

나카마 치호 씀, 지석연 옮김,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케렌시아, 2023
박지희
jihia430@hanmail.net
서울 상원초 교사
교사로서 한계를 느끼는 장면들
교사라면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 좋은 교사란 다양한 교육 활동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은 다음 단계의 삶으로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 교사다. 그러기에 성장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교육자로서 효능감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또 교사로서 생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교사로서 효능감은 차치하고 자괴감을 들게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과연 저 아이는 내년이 되면 올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다.
작년, 담임 반은 아니지만 교과 시간에 만났던 봄(가명)이를 볼 때도 그런 의문과 회의감이 들곤 했다. 4학년 봄이는 교실이나 복도에서 떼를 쓰듯 자주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협력 교사, 교장, 수업이 없는 업무팀 교사까지 봄이의 큰 울음소리에 달려 나오곤 했다. 봄이는 거의 모든 시간에 협력 교사와 함께했다. 학습에서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든 수틀리거나 힘들면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구르고 못 본 척하면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협력 교사가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 봄이는 일주일에 6시간 정도 대안 교실에 갔다. 대안 교실에서는 봄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나 만들기, 연극 수업 등 흥분을 가라앉힐 만한 수업을 했다. 대안 교실에 가지 않는 일반 수업에는 거의 절반도 참여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봄이가 일주일 동안 함께하는 수업은 채 10차시도 되지 않았다.
이런 봄이 같은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봄이처럼 교실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분리되어 나온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들어가 다른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교육과정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한번 분리되기 시작하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학년 초가 되면 교사들은 우리 반에 장애가 있는 특수반 아이(특수교육 대상자)나 봄이 같은 아이가 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교사들이 그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거나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자신이 교육적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과 무기력감이 들기 때문이다. 장애 판정을 받아서 특수반에 소속된 아이는 그나마 낫다. 담임으로서 나 혼자만 그 아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특수반 선생님과 의논하고 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는 아니지만 교실 입실 거부나 수업 거부, 무기력증 등 학교 일상이나 학교 안의 다양한 관계들에 실패하는 봄이 같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다양하게 애를 써 보지만 아이가 근본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어서 교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 작업치료를?
지난 2월 17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저자인 나카마 치호의 특강이 있었다. 이 책의 역자인 지석연(작업치료센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 대표)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가기로 했는데 결국은 가지 못했다. 4년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19가 찾아온 것이다. 생애 처음이지 싶은 고열과 다양한 통증으로 일주일 넘게 꼼짝을 못 하고 있다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책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지석연 선생님과 함께했던 경험은 많은 학교 관계자나 학부모가 ‘작업치료’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키워 주었기 때문에 서평을 쓰겠다 했다.
이 책은 일본의 오키나와 지방에서 학교작업치료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고 작업치료사가 학교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저자인 나카마 치호는 재활전문병원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학교에서 작업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작업치료를 실천했을 때 그 효과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느끼게 되고, 이후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학교작업치료를 확산시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 책의 1장부터 6장까지는 작업치료가 어떻게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협업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과 교사를 당당히 세우는가를 소개한다. 7장에서는 어린이집과 학교를 지원하던 작업치료의 개념을 지역 사회로 확장해 나가는 의미와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이쯤에서, 많은 독자들이 ‘작업치료’는 무엇이고 ‘작업치료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작업’과 ‘작업치료’, 그리고 ‘작업치료사’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서이기도 하다.
작업치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람은 일상의 생활과 사회 참여를 해야 건강합니다. 사람에게 일상과 사회에 참여하게 하는 활동을 ‘작업’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작업’을 갖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장애가 있거나 약한 사람들은 작업을 갖기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우 일상에 건강한 작업을 갖도록 돕는 것이 작업치료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작업치료사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 본문 16쪽, 옮긴이의 글
작업치료사들은 아이를 치료실 같은 별도의 공간에 분리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라 아이를 둘러싼 친구들, 교사, 보호자들과 협력하며 아이가 자신의 특성을 살려 스스로 서고 타인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도록 한다. 그래서 작업치료는 어떤 방법이나 기능이 아니라 학교라는 담장을 허물고 경계를 넓혀 아이와 교육에 대해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업치료’ 과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문제 행동을 없애는 치료적 접근보다는 교사, 부모, 아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찾고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스스로 도달하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사나 부모도 아이에 대한 교육을 자신감 있게 해 나갈 수 있다.
‘도달하고 싶은 교육’은 교사가 도달하게 하고 싶은 것이고, 아이와 부모가 그 삶에서 원하는 것이다. 그 ‘도달하고 싶은 교육’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업치료사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그 교육이 학교생활이라는 환경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다음 수업에서는 이렇게 시도해 볼까요?’라고 하는 식으로 교사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교육’을 실현할 선택의 폭을 넓혀 가도록 돕는 것이다. (……)
작업치료사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문제로 느끼는 행동을 장애 특성이나 병리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겪는 곤란함을 어떻게 해결하고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어떻게 이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집중해야 한다.
- 본문 135쪽
학생들의 문제 양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많아지는데 교사 혼자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은 이 학생들을 학교나 교실 공간을 벗어나서 병원이나 기관 같은 곳에서 따로 치료하게 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학교나 가정에서는 학생들의 이른바 ‘문제 행동’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 작업치료가 이루어지면 학교라는 조직에서의 아이의 관계성이나 작업 수행 행태를 직접 관찰하고 담임이나 가정과 협력할 수 있어서 교사인 나로서는 매우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석연 선생님과의 협업 경험이 더욱 그 생각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학교에 작업치료를!
이 책의 1장에는 교사와 학부모, 작업치료사가 협력하여 진행한 다양한 학교작업치료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 저자가 유치원 에서 만난 나오토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오토의 성장뿐만 아니라 함께 자란 아이들의 변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오토의 담임을 맡게 된 교사와 나오토 친구들과의 일화이다.
수업 중에 나오토가 갑자기 일어나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앉도록 주의를 주었는데, 반 학생들이 “선생님, 나오토에게 배우게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앉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배우게 하고 싶다”라고 대답한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나오토는 저렇게 걸어 다니면 더 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우게 하고 싶으시면 나오토가 수업 중에 걷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 본문 32~33쪽
4년 전 ‘작업치료’라는 개념도 잘 모를 때 학교 안에서 힘든 아이를 직접 관찰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작업치료사’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 협업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교장으로 부임하던 첫해 3월 교장실과 연결된 교무실에서 ‘꼬끼오’ 하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업 방해가 너무 심하거나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가 속한 반의 비상벨 소리였다. 잠시 후 3학년 여름(가명)이가 교장실로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장실에서 안정을 취하게 하고, 조금 후에 수업하겠다고 해서 올려 보냈다.
여름이는 그 뒤로도 자주 교장실에 내려오거나 담임 교사의 요청으로 내가 교실로 올라가서 그 아이 옆에 앉아서 수업을 보조하기도 했다. 또 담임 교사의 동의를 받아 상담 교사와 지역 사회 전문가가 학급에 들어가 아이를 관찰하기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가정과 면담도 진행했다. 하지만 여름이의 수업 거부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 등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글씨를 쓰게 했다고 공책을 찢고 그것을 보고 놀란 친구들과 시비가 붙는 일도 발생했다. 그때도 다른 아이들이 다칠 염려가 있고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교장실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교장이나 누군가가 잠시 여름이를 맡아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즈음 작업치료 전문 기관인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를 소개받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두세 명의 작업치료사들이 3차례 정도 나와 여름이를 비롯한 학급 아이들을 관찰했다. 관찰 나온 날은 담임 교사나 교과 교사들, 교장을 만나기도 했고 필요한 경우 전체 교사에게 작업치료를 소개하거나 치료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작업치료사들은 수업 장면이나 쉬는 시간, 교과 시간 이동 과정까지 꼼꼼하게 관찰했고 교사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측면을 살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여름이가 좋아하는 교과 전담 시간에 보이는 행동 특성 등 그동안 담임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같은 장면이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아이를 보기도 했다. 관찰한 결과를 공유하고 여름이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도달하고 싶은 진짜 마음’을 읽어 내고 그것을 어떻게 도달하게 도와줄지 담임 교사 및 교과 교사, 상담 교사, 교장, 부모와 의논하고 협업했다.
또 방과 후 시간과 방학 동안에는 여름이와 특별히 사이가 안 좋은 아이들과 집단 놀이 기회도 만들어 놀게 하고 집단 상담도 했다. 이후 여름이는 교실 밖으로 분리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여름이가 안정되니 학급이 안정되었고 여름이는 다음 해부터는 거의 교장실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누구보다 의젓한 아이로 졸업했다. 당시 담임 교사는 교실을 수시로 공개하고 그 협업 과정을 다른 교사들에게 공유하는 일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여름이의 성장 과정을 보며 교사로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교사로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관계들
교사는 다른 이의 성장을 돕는 자로서 성장의 장면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자신도 성장한다. 그렇다고 모든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교사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생활하는 가정이나 학교와 같은 공간과 동떨어진 병원에서 검진과 치료를 받는 것도 한계가 많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의 아이의 행동이나 관계 등을 살피고 조언을 해 줄 전문가들-작업치료사가 필요하다. 작업치료사가 학교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기에는 많은 논의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 책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학교작업치료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논의가 활발해지면 좋겠다. 여전히 학교 교문 앞을 서성이거나 수업 중에 분리되어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혼자 노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게 분리되어 나온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발로 학교 안으로, 수업 속으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연결자로서 작업치료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작업치료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존의 라벨이나 문제의 이름을 없애고, 아이들을 ‘작업적 존재’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교사들에게도 해방감을 가져다주며, 고민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즐거운 교육의 실천을 가능하게 합니다.
- 본문 13~14쪽
교육은 학교나 교실이라는 진공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만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협력하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면 아이, 학부모, 교사 모두 각자 자기 효능감을 갖고 당당히 서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작업치료라는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책을 읽고 이 글을 쓴다.
학교에 작업치료를? 학교에 작업치료를!
나카마 치호 씀, 지석연 옮김,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케렌시아, 2023
박지희
jihia430@hanmail.net
서울 상원초 교사
교사로서 한계를 느끼는 장면들
교사라면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 좋은 교사란 다양한 교육 활동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은 다음 단계의 삶으로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 교사다. 그러기에 성장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교육자로서 효능감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또 교사로서 생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교사로서 효능감은 차치하고 자괴감을 들게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과연 저 아이는 내년이 되면 올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다.
작년, 담임 반은 아니지만 교과 시간에 만났던 봄(가명)이를 볼 때도 그런 의문과 회의감이 들곤 했다. 4학년 봄이는 교실이나 복도에서 떼를 쓰듯 자주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협력 교사, 교장, 수업이 없는 업무팀 교사까지 봄이의 큰 울음소리에 달려 나오곤 했다. 봄이는 거의 모든 시간에 협력 교사와 함께했다. 학습에서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든 수틀리거나 힘들면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구르고 못 본 척하면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협력 교사가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 봄이는 일주일에 6시간 정도 대안 교실에 갔다. 대안 교실에서는 봄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나 만들기, 연극 수업 등 흥분을 가라앉힐 만한 수업을 했다. 대안 교실에 가지 않는 일반 수업에는 거의 절반도 참여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봄이가 일주일 동안 함께하는 수업은 채 10차시도 되지 않았다.
이런 봄이 같은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봄이처럼 교실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분리되어 나온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들어가 다른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교육과정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한번 분리되기 시작하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학년 초가 되면 교사들은 우리 반에 장애가 있는 특수반 아이(특수교육 대상자)나 봄이 같은 아이가 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교사들이 그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거나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자신이 교육적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과 무기력감이 들기 때문이다. 장애 판정을 받아서 특수반에 소속된 아이는 그나마 낫다. 담임으로서 나 혼자만 그 아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특수반 선생님과 의논하고 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는 아니지만 교실 입실 거부나 수업 거부, 무기력증 등 학교 일상이나 학교 안의 다양한 관계들에 실패하는 봄이 같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다양하게 애를 써 보지만 아이가 근본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어서 교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 작업치료를?
지난 2월 17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저자인 나카마 치호의 특강이 있었다. 이 책의 역자인 지석연(작업치료센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 대표)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가기로 했는데 결국은 가지 못했다. 4년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19가 찾아온 것이다. 생애 처음이지 싶은 고열과 다양한 통증으로 일주일 넘게 꼼짝을 못 하고 있다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책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지석연 선생님과 함께했던 경험은 많은 학교 관계자나 학부모가 ‘작업치료’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키워 주었기 때문에 서평을 쓰겠다 했다.
이 책은 일본의 오키나와 지방에서 학교작업치료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고 작업치료사가 학교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저자인 나카마 치호는 재활전문병원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학교에서 작업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작업치료를 실천했을 때 그 효과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느끼게 되고, 이후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학교작업치료를 확산시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 책의 1장부터 6장까지는 작업치료가 어떻게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협업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과 교사를 당당히 세우는가를 소개한다. 7장에서는 어린이집과 학교를 지원하던 작업치료의 개념을 지역 사회로 확장해 나가는 의미와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이쯤에서, 많은 독자들이 ‘작업치료’는 무엇이고 ‘작업치료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작업’과 ‘작업치료’, 그리고 ‘작업치료사’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서이기도 하다.
작업치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람은 일상의 생활과 사회 참여를 해야 건강합니다. 사람에게 일상과 사회에 참여하게 하는 활동을 ‘작업’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작업’을 갖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장애가 있거나 약한 사람들은 작업을 갖기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우 일상에 건강한 작업을 갖도록 돕는 것이 작업치료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작업치료사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 본문 16쪽, 옮긴이의 글
작업치료사들은 아이를 치료실 같은 별도의 공간에 분리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라 아이를 둘러싼 친구들, 교사, 보호자들과 협력하며 아이가 자신의 특성을 살려 스스로 서고 타인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도록 한다. 그래서 작업치료는 어떤 방법이나 기능이 아니라 학교라는 담장을 허물고 경계를 넓혀 아이와 교육에 대해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업치료’ 과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문제 행동을 없애는 치료적 접근보다는 교사, 부모, 아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찾고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스스로 도달하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사나 부모도 아이에 대한 교육을 자신감 있게 해 나갈 수 있다.
‘도달하고 싶은 교육’은 교사가 도달하게 하고 싶은 것이고, 아이와 부모가 그 삶에서 원하는 것이다. 그 ‘도달하고 싶은 교육’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업치료사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그 교육이 학교생활이라는 환경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다음 수업에서는 이렇게 시도해 볼까요?’라고 하는 식으로 교사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교육’을 실현할 선택의 폭을 넓혀 가도록 돕는 것이다. (……)
작업치료사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문제로 느끼는 행동을 장애 특성이나 병리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겪는 곤란함을 어떻게 해결하고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어떻게 이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집중해야 한다.
- 본문 135쪽
학생들의 문제 양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많아지는데 교사 혼자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은 이 학생들을 학교나 교실 공간을 벗어나서 병원이나 기관 같은 곳에서 따로 치료하게 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학교나 가정에서는 학생들의 이른바 ‘문제 행동’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 작업치료가 이루어지면 학교라는 조직에서의 아이의 관계성이나 작업 수행 행태를 직접 관찰하고 담임이나 가정과 협력할 수 있어서 교사인 나로서는 매우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석연 선생님과의 협업 경험이 더욱 그 생각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학교에 작업치료를!
이 책의 1장에는 교사와 학부모, 작업치료사가 협력하여 진행한 다양한 학교작업치료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 저자가 유치원 에서 만난 나오토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오토의 성장뿐만 아니라 함께 자란 아이들의 변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오토의 담임을 맡게 된 교사와 나오토 친구들과의 일화이다.
수업 중에 나오토가 갑자기 일어나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앉도록 주의를 주었는데, 반 학생들이 “선생님, 나오토에게 배우게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앉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배우게 하고 싶다”라고 대답한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나오토는 저렇게 걸어 다니면 더 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우게 하고 싶으시면 나오토가 수업 중에 걷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 본문 32~33쪽
4년 전 ‘작업치료’라는 개념도 잘 모를 때 학교 안에서 힘든 아이를 직접 관찰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작업치료사’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 협업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교장으로 부임하던 첫해 3월 교장실과 연결된 교무실에서 ‘꼬끼오’ 하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업 방해가 너무 심하거나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가 속한 반의 비상벨 소리였다. 잠시 후 3학년 여름(가명)이가 교장실로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장실에서 안정을 취하게 하고, 조금 후에 수업하겠다고 해서 올려 보냈다.
여름이는 그 뒤로도 자주 교장실에 내려오거나 담임 교사의 요청으로 내가 교실로 올라가서 그 아이 옆에 앉아서 수업을 보조하기도 했다. 또 담임 교사의 동의를 받아 상담 교사와 지역 사회 전문가가 학급에 들어가 아이를 관찰하기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가정과 면담도 진행했다. 하지만 여름이의 수업 거부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 등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글씨를 쓰게 했다고 공책을 찢고 그것을 보고 놀란 친구들과 시비가 붙는 일도 발생했다. 그때도 다른 아이들이 다칠 염려가 있고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교장실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교장이나 누군가가 잠시 여름이를 맡아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즈음 작업치료 전문 기관인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를 소개받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두세 명의 작업치료사들이 3차례 정도 나와 여름이를 비롯한 학급 아이들을 관찰했다. 관찰 나온 날은 담임 교사나 교과 교사들, 교장을 만나기도 했고 필요한 경우 전체 교사에게 작업치료를 소개하거나 치료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작업치료사들은 수업 장면이나 쉬는 시간, 교과 시간 이동 과정까지 꼼꼼하게 관찰했고 교사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측면을 살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여름이가 좋아하는 교과 전담 시간에 보이는 행동 특성 등 그동안 담임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같은 장면이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아이를 보기도 했다. 관찰한 결과를 공유하고 여름이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도달하고 싶은 진짜 마음’을 읽어 내고 그것을 어떻게 도달하게 도와줄지 담임 교사 및 교과 교사, 상담 교사, 교장, 부모와 의논하고 협업했다.
또 방과 후 시간과 방학 동안에는 여름이와 특별히 사이가 안 좋은 아이들과 집단 놀이 기회도 만들어 놀게 하고 집단 상담도 했다. 이후 여름이는 교실 밖으로 분리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여름이가 안정되니 학급이 안정되었고 여름이는 다음 해부터는 거의 교장실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누구보다 의젓한 아이로 졸업했다. 당시 담임 교사는 교실을 수시로 공개하고 그 협업 과정을 다른 교사들에게 공유하는 일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여름이의 성장 과정을 보며 교사로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교사로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관계들
교사는 다른 이의 성장을 돕는 자로서 성장의 장면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자신도 성장한다. 그렇다고 모든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교사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생활하는 가정이나 학교와 같은 공간과 동떨어진 병원에서 검진과 치료를 받는 것도 한계가 많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의 아이의 행동이나 관계 등을 살피고 조언을 해 줄 전문가들-작업치료사가 필요하다. 작업치료사가 학교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기에는 많은 논의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 책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학교작업치료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논의가 활발해지면 좋겠다. 여전히 학교 교문 앞을 서성이거나 수업 중에 분리되어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혼자 노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게 분리되어 나온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발로 학교 안으로, 수업 속으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연결자로서 작업치료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작업치료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존의 라벨이나 문제의 이름을 없애고, 아이들을 ‘작업적 존재’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교사들에게도 해방감을 가져다주며, 고민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즐거운 교육의 실천을 가능하게 합니다.
- 본문 13~14쪽
교육은 학교나 교실이라는 진공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만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협력하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면 아이, 학부모, 교사 모두 각자 자기 효능감을 갖고 당당히 서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작업치료라는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책을 읽고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