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에세이] 나에게 ‘참 아름다운’ 학교 | 강주희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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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참 아름다운’ 학교

 

강주희

1998hssh@hanmail.net

서울 초등 교사,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만기 5년을 앞두고 전보 이동 서류를 쓰기 전, 교장을 만나 초빙 유예를 청했다. 혁신학교라서 전보 이동 대상자의 50%를 초빙으로 남길 수 있다는 조건이 교직 생애 처음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유예를 청한 가장 큰 이유는 5년간 잘 만들어진 땅, 80여 평의 학교 텃밭 때문이었다. 텃밭은 여기저기 지렁이가 만들어 놓은 분변토만큼 지난 5년의 계절 동안 울고 웃었던 추억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이런 귀한 땅을 탄소와 물과 양분을 내뱉어 버리는 땅으로 낙후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가운데 토양 생물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초빙이 되면 부장을 3년 동안 해야 하고, 업무지원팀장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업무지원팀의 경우에는 학급을 맡기 어렵기에 동아리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나겠다는 조건을 달아 내부 초빙을 요청했다.

그렇지만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수업으로, 교육과정 운영으로 남고 싶다’며 드린 말씀은 중요한 조건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같은 이유(학교장의 학교 분위기 쇄신의 의지)로 내부 초빙의 어려움을 목격했던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내 초빙 요청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땅만 쳐다보며 살던 교사를 학교장이 받아 줄까 궁금해했다. 15분여 면담 결과는 ‘거절’이었다. 부장 3년은 해야 한다거나 업무지원팀장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넘어섰지만, 학교의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려고 한다는 뜻을 넘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도 후보로는 넣어 줄 수 있는가 묻고 “교장 선생님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많은 학교들에서 있음 직한 흔한 내부 초빙 거절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교장과의 면담 후 나는 내내 마음이 바닥이었다. 초빙 거절로 인한 우울감이었을지 모르겠다. 비닐을 덮지 않아 온갖 풀들이 자라 쭈그리고 앉아 풀을 베던 텃밭, 단단했던 땅이 포실포실해지면서 온통 지렁이 똥 밭이 되어 감탄을 마지않았던 텃밭, 그 사이사이를 매일 나가 걸으면서 ‘교사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교사의 쓸모는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가’를 내내 곱씹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쓸모 ― 학교장과 교감에게 필요한 ‘부장’으로서의 쓸모 ― 외에 ‘교사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하면 나는 이 서글픈 기분을 오래 갖고 있다가 어느새 그들의 쓸모를 받아들이고야 말게 될 것 같았다.

혁신학교가 만들어지기 전 나는 참 설레는 꿈을 꾸었었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참 쓸모 있는 선배, 어른이 되는 꿈. 화려한 수업 기술과 현란한 네임드 교육과정[ref] ‘네임드’는 1999년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게임 속 희귀 아이템이 노획되는 몬스터들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하여 ‘네임드 몬스터’라고 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각 학교나 수업 연구 등에서 비전과 철학을 반영하여 이름 붙인 무수히 많은 교육과정들을 의미한다.[/ref]을 문서 위에 펼치는 기술이 아닌, 딱 한 줄기로 정제하지 못할 살아 내는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들이 학생들과 나의 미래를 채우는 삶을 지닌 교사, 쇼윈도를 그럴듯하게 채워 주는 것이 아닌 그 시절을 열심히 살아 내는 교사들과 어깨동무하는 학교를 꿈꾸었다. 학생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삶, 가치들을 노래하는 교사를 보며 꿈꾸고, 학부모는 그런 교사와 아이들의 꿈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보태 주고 덜어 주며 함께 가슴 뛰는 내일을 그려 보는 교육공동체. 너와 내가 교육공동체라고 규정하지 않고도 아이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지만 나는 그런 학교의 교사이고 싶었다. 교사가 아이들을 맡고 있으니 그 앞에서는 보호자가 을이다, 교사의 언행이 보호자 눈 밖에 나면 그대로 아웃이니 교사가 을이다, 하며 서로가 시끄럽고 억울한 현장에서도 나는 그런 꿈 덕분에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보호받는 교사였다고 자부하며 나를 위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자조적인 위로는 현실이 되었다.


학부모들이 요청하다

 

80여 명이 넘는 학부모들이 서명을 하고 몇몇은 자필로 편지까지 써서 교장에게 내 ‘초빙’을 요청했다. 그렇지만 10월 말, 교감은 학교장의 인사권을 흔들지 말라며 학부모들과 면담을 거절하다가 여러 차례 요청을 해서야 11월 초에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학교장은 몇 가지 이유(해당 교사가 학교 행정을 맡는 일에 난색을 표명)와 근거(내부 절차가 모두 끝남)를 들며 학부모들의 초빙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내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나는 이미 한 달 전 초빙 요청을 직접 했고, 답을 기다리겠다 하였으나 초빙 자리는 이미 다 차서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과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학부모들의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지원청으로 하달되었는데, 수능 시기라며 열흘이 넘게 답을 듣지 못하다가 ‘해당 교사의 의사 없음’으로 간주하고 진행한 학교 초빙 절차에 대한 과정에는 문제가 없음이라는 답변을 받았단다.

학부모들은 교사 본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학교 측의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상황에 이의를 제기, 해당 교사에게 상황을 확인하고 답을 달라고 재차 요청하였고, 이에 나는 강서양천지원청 수석 장학사와 직접 통화하기에 이르렀다. 담당 수석 장학사는 내게 초빙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당사자의 난색을 ‘거절로 이해한’ 학교가 진행한 절차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상식 수준에 해당되며, 소소한 의사소통에서 일어난 오해 사안으로 보이니 당사자인 네가 이해해 달라고 했다. 엥? 나의 이해를 구하면 되는 일이었던가? 애초에 나는 민원 당사자가 아니고 참고인이다. 이해를 구해야 할 민원 당사자는 학부모다. 당신이 물어보니까 다시 내가 아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초빙 관련하여 교장의 요청으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나의 필요에 의해 교장실을 두드렸고, 그 첫 대화에서 거절되었으나 실제 초빙 절차가 시작되면 살펴보겠다기에 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서류 작성을 위해 절차가 안내되는 시점부터 교감은 내게 “초빙 가능한 네 자리는 모두 다 조각이 되었다”, “미안해서 어쩌나, 자리가 없네” 등의 말을 두어 차례나 했다, 다만 서류도 쓰기 전에 왜 자리가 없느냐, 나는 남아야 하겠다, 내가 초빙의 후보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따지지는 않았다.

두 번을 확인해 준 이 사실에 대해 그건 당사자의 의사 없음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또한 ‘유선상의 민원’이므로 누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주고받았는지에 대하여 세세하게 잘잘못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며 담당 수석 장학사는 소통상의 문제이므로 서로가 잘 이해해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 결말이 아니겠는가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애초부터 불씨를 만들고 키운 것은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아니겠습니까. 처음부터 정직하게 사실대로 당신의 뜻을 바르게 말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이렇게 당신과 내가 통화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내게 할 것이 아니라 교장, 교감 선생님께 해야 할 말입니다.” (이후 확인한 바에 의하면 나의 이 말을 들은 수석 장학사는 ‘당사자도 원만한 해결을 원하니 내부적으로 종결 처리해도 된다’고 학교에 전달했고 그 때문에 사안은 더욱 무기력하게 진행되었다.)

30여 분간의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이건 뭐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내가 죄란다. 학부모들의 요청 또한 내가 사주한 듯, 나만 이해하면 된다는 기가 막힌 답변은 교사로서 나의 본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교사의 쓰임. 그래 지금이다. 교사로서 쓰일 타이밍.

이후 나는 해당 수석 장학사에게 2건, 학교 담당 장학사에게 2건, 학교장의 갑질을 포함하여 혁신학교 초빙의 취지에 어긋난 초빙 유예 과정에서 일어난 인사권 남용과 비민주성에 대하여 시교육청의 관리 감독을 요청하는 4건, 총 8건의 질문을 던지는 프로 민원러로 분하였다. 먼저 학교장 인사권에 대한 의견에 대한 답을 보자.

 

[요청 1] ○○초 교사 초빙과 관련하여 외부/내부형 초빙에 대하여 제한을 두는 학교장의 의지를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혁신학교 교육과정 운영과 수업 혁신을 이유로 초빙을 요청하는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절차적 정당성을 거짓, 과장하여 은폐, 묵살하였다.

[답] 이 같은 내용은 ‘초빙 교사 임용 업무 처리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된다. 또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9호 ‘행정기관 소속 직원에 대한 인사행정상의 행위에 관한 사항’에 해당되어 답변을 할 수 없다.

 

[요청 2] 초빙 인사 요건이 마련되기도 전에 내부형 초빙을 배제한 점, 학교 운영을 위한 필요라는 학교장의 뜻이 ‘기존의 초빙 교사들은 교실에만 있으려고 하지, 학교 행정 업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혁신학교 운영에 대한 몰이해와 인사권자의 독단성, 비민주성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요청한다.

[답] 역시 ‘민원 처리 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되며,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9호에 따라 ‘행정기관 소속 직원에 대한 인사행정상 행위’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다.

 

[요청 3] 학교로 상징되는 학교장의 독단적 인사권 행사의 면피를 위한 거짓과 은폐 시도를 ‘일반 학교에서 일어나는 상식적인 절차와 관행’, ‘소통의 문제’로 치부했으며, 문서화되지 않은 요청은 정확히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수석 장학사는 나와의 통화 후 ‘관련 사안에 대하여 내부 종결을 원한다’는 자의적인 해석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또한 국민신문고를 통한 위의 내용을 ‘인사 업무 처리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한다는 담당 장학사는 학교에서는 형식 절차를 이행하였으므로 갑질 사안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답을 했다. 이 둘에 대하여 각각 2차례씩의 소극 행정 신고와 함께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를 기피 신청까지 하였다.

[답] 민원의 내용이 ‘학교장 인사권에 관련된 민원임을 감안할 경우’라 총 8건의 민원을 반복하여 답을 줄 수밖에 없다.

 

[요청 4] ‘교장 인사권’이라는 이유로 업무를 해태하는 강서양천교육지원청으로 기계적으로 분류 이첩하는 행위와 ‘학교장 고유의 인사권’을 방패로 인사 규정을 확정하고 특정 교사를 내정하여 인사를 진행한 인사권 갑질이 ‘학교장의 인사권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사안인지 서울시교육청의 확인을 요청한다.

[답] 갑질 피해 신고 민원은 소관 감사 부처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 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를 기피 신청하였으나 민원 내용 검토 결과 감사 부서가 아닌 초등교육지원과에서 답변을 하게 되었다. 본 이첩 민원은 ‘초빙 임용 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된다. 또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9호 ‘행정기관 소속 직원에 대한 인사행정상의 행위에 관한 사항’에 해당되어 답변을 할 수 없다.

 

[요청 5] 대부분의 학교에서 자행되고 있는 ‘내정된 초빙’, 학교장 간의 초빙 거래, 관료적 승진 체계 유지를 위한 교육계의 관행을 학교 혁신의 이름으로 비호하는 것, 일반 학교에서조차 지켜지는 내용적, 실질적 정당성 부실에 대한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호소를 개인의 초빙 및 유예에 대한 낙담으로 치부하는 점은 서울 혁신 교육에 대한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및 담당 장학사들의 이해 수준과 교장-교감의 견고한 카르텔 비호를 위한 의지로 판단된다. 이에 대한 시교육청의 확인 및 관리 감독을 원한다.

[답] 본 민원은 2회 이상 처리 결과를 이미 통지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3조(반복 및 중복 민원의 처리) 제1항[ref]「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3조(반복 및 중복 민원의 처리) ①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인이 동일한 내용을 민원(법정 민원을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정당한 사유 없이 3회 이상 반복하여 제출한 경우에는 2회 이상 그 처리 결과를 통지하고, 그 후에 접수되는 민원에 대하여는 종결 처리할 수 있다.[/ref]에 따라 종결 처리한다. 이후 접수되는 동일 내용의 민원은 별도의 통지 없이 종결될 예정이니 양해해라.

 

약 한 달간 펼쳐진 국민신문고 퍼레이드에도 뾰족한 수가 없자, 학부모들은 교사가 아니라 당신들이 움직였어야 했나 보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시교육청에 재차 전화를 넣기도 했단다. 이에 대해서는 갑질이라고 호소하는 교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서류)가 없기 때문에 정황만으로는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일반 기업은 인사 과정에서 차별적인 발언으로 인한 상황이나 갑질 신고 등이 접수되면 일단 감사과에서 움직이는데 교육청은 어찌 이렇게 구시대적인지, 학교가 이런 곳인지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전보 이동을 하는가 아닌가는 아이들의 학년 말 관심사이기도 했기에 결국 우리는 엉엉 울면서 헤어졌다. 하굣길 내내 벌건 눈으로 소리 내어 울던 ○○이는 결국 마중 나온 엄마까지 울렸다. 우리는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학부모들의 편지와 서명지, 간단한 내용을 교육감실로 직송하였는데, 1월 중 서울시교육청의 미담 사례로 선정되었다는 공문 1장과 1만 원짜리 도서상품권 3장이 학교로 배송되었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ref]기형도(1989), 〈빈 집〉 일부,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ref]

 

복기

 

- 초빙을 원하는 대화를 했던 첫 장면, 교장님이 학교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내부보다 외부에서 초빙을 하고자 한다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은 차별적이다 이야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후, 서류를 쓰기도 전에 이미 ‘자리가 다 찼다’는 메시지를 반복하여 들었을 때에도 역시 그것은 차별적이며 인사 갑질이라고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80여 명이 넘는 학부모님들의 서명과 편지, 나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음에도 마음을 보태 주신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처음부터 거절했어야 했던 걸까. 10월 말, 전보 서류를 다 작성한 이후이기에 학교는 물론 본청도 지역청도 돌이킬 수 없어 안타깝다, 늦지 않게 말씀을 주시지 그러했느냐는 말에 이 사태가 네 탓이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 당사자가 듣기에는 분명 외부에서 초빙을 하고자 한다, 몇 자리 되지 않기에 내부에서 남기는 힘들다, 다 조각이 되어 자리가 더 이상 없다 등의 말을 했음에도 문제 제기 이후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청자의 오해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며 면피하는 학교-지역청-본청의 말을 매번 녹음했어야 하는 걸까.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면 이제는 작은 녹음기를 늘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일까. 그런 방식으로 지키는 학교장의 인사권은 과연 권한일까, 권력일까.

 

- 기성회 ~ 육성회를 벗어난 학교의 민주적 시대는 미리 타이핑해 놓은 회의록과 결론을 승인하고 서명을 받는 유능한 행정 교사들의 위원회가 지켜 내고 있다. 더 민주적이고 더 공동체적인 방법을 위해 깊이 토론하고 넓게 탐색하는 성가신 일을 줄여서 실현된 민주주의, 그 안에서 교사들은 어떤 권한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까.

 

- 학교의 임명권을 지닌 학교장에게 교육청 민원을 들먹이며 요구하면 방어하기 힘든 ‘담임 교체 요구’ 건.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병가’를 수순으로 담임 교체를 ‘당한다’. 이것은 단지 학부모들의 요구 때문일까, 아니면 ‘학교’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누군가의 임명권일까.

 

- 내정된 인사를 위해 형식만 갖추면 된다는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는 행정 업무 중심, 승진 중심으로 기울어져 학교 혁신, 수업 혁신, 교육과정의 혁신은커녕 학교의 관료성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당사자로서의 문제의식을 ‘인사 과정에서의 개인적 불만’으로 치부하고, 비민주적인 관리자의 인사권 남용을 ‘임용권자의 권한’이라며 묵인, 동조, 이해, 보호하는 지역 교육지원청의 ‘관리자였거나’ ‘관리자가 될’ 장학사, 장학관의 문제 해결 태도로 학교 혁신,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서울시교육청의 공치사가 애처로운 건 나의 연민인가.

 

사진 설명.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방학 중 송부된 의문의 봉투에 담겼던 서울시교육청의 미담 사례 선정 공문과 상품권. 이 내용은 학부모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봉투 안에 그대로 쳐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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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