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이름
irum.jeong@gmail.com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활동가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그렇지만 작년에 시작된 학생인권조례 후퇴의 흐름은 여전히 겨울바람처럼 매섭기만 하다. 2010년대부터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한 이후 그것을 폐지하거나 개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2023년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되었고 폐지·개악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전북 교육인권조례)가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특히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정부가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면서 서울, 경기, 충남, 전북 등에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지거나 무력화될 위기가 찾아왔다. 지역 곳곳을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해 온 활동가로서, 지난 1년간의 학생인권조례 후퇴 상황을 다시 짚으며 겪었던 일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북과 경기,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시도
2023년 4월 14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는 ‘전라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안’을 가결했다. 그간 학생인권 보장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교육 주체의 인권 보장에 소홀해졌으므로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며 내세워진 조례안이었다.
전북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고 교육인권조례를 만들겠다고 하자 전북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에 맞서 함께 기자 회견, 집회, 서명 운동, 1인 시위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나는 딱 한 번 열렸던 공청회에도 참석했는데, 놀랍게도 넓은 시청각실에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아마 ‘전북 교육인권조례’라는 것이 생기려고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북 교육인권조례는 졸속으로 제정되었고, 결국에는 학생인권의 후퇴를 불러왔다.
전북 교육인권조례 제정이 문제가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는 조항들을 전북 교육인권조례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대거 삭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학생으로부터 학생인권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한 기구인 ‘학생참여위원회’에 관한 조항이 삭제되었고, 교육청에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던 조항도 자율적으로 둘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제정을 논의하던 당시에는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존치시킬 것처럼 말하던 전북교육청은 시간이 흐르자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없애고 ‘교육인권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모두의 인권을 하나의 문장, 하나의 글로 지켜 주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학생의 인권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아동 권리 협약」, 「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 다양한 법에 의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등의 문구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학교 체벌조차 제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의 자치 법규인 조례로라도 학생인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인권 침해를 막고자 한 것이 학생인권조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적인 인권 보장 조항들을 여럿 삭제했고, 현재 전북은 지속적인 학생인권 후퇴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사진 설명. 전북 교육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삭제시키고 실질적으로 학생인권 정책과 제도를 후퇴시키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북교육청과 비슷하게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이름까지 바꾸려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조례안은 제목에서부터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무·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인권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학생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조건 없이 보장받는 것이고, 의무와 대응하여 거래되거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는 다른 법률이나 학칙 등에 이미 담겨 있기도 하다. 이를 굳이 학생인권조례에 넣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신장한다는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에 어긋나고, 학생인권을 위축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개정안에서 새로 만들어지거나 다시 쓰인 조항들은 학생인권을 후퇴시킬 소지가 다분한 내용이다. 기존에 열거되어 있던 차별 사유들을 삭제하고, 인권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상벌점제를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있어야 하는 듯한 내용을 넣었다. 상당히 문제가 많은 이 개정안은 다행히도 아직은 현실의 법규로 제정되지는 않았다. 지역 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개악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추진하는 등 후퇴를 막기 위해 노력한 끝에, 경기도의회에서 심의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충남과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전북과 경기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악과 무력화가 시도되는 동안, 충남과 서울에서는 아예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 들었다. 특히 충남은 비교적 최근인 2020년 오랜 운동 끝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는데, 겨우 3년이 지난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의 학생인권조례 겨냥 발언 이후 보수 종교계를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가 주민 발안되었다.
이렇게 도의회에 접수된 폐지안은 법원이 위기충남공동행동에서 낸 집행 정지 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그 효력이 2024년 1월까지 정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충남도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원의 집행 정지 결정에도 다시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충남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 기자 회견 등 대응 활동을 전개했으나 결국에 이 폐지안은 본회의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충남도의회 본회의가 열린 2023년 12월 15일, 나는 연대 차원에서 충남도의회에 찾아가 충남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피케팅을 하고 회의를 방청했다. 회의는 정말 소란스러웠다. 시작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앞에 나와서 폐지안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폐지안을 심의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한다는 의원들의 입에서 ‘기본권은 성인이 되어서나 보장받는다’ 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이런 사람들의 손에 학생들의 인권이 달려 있다는 현실에 허탈해한 것이 떠오른다. 결국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가결되었고, 그날 나는 폐지안 가결을 규탄하는 기자 회견에서 사람들의 울분에 차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사진 설명. 2023년 12월, 충남도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했다.
그렇게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4년도 채 못 가 폐지되는 듯했다. 그런데 충남 교육감이 조례 폐지에 대해 재의 요구를 하여, 2024년 2월 열린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재의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국민의힘에서 이탈 표가 나와 폐지안은 부결되었다. 한 차례 큰 위기가 있었지만 충남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활동해 온 사람들 덕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은 존재하고, 언제 다시 위기가 닥쳐올지 알 수 없어 활동가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서울도 충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2023년 초 서울시의회는 일부 보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주민 발안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안을 수리 및 발의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는 그 위법성을 검토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수리 및 발의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에 맞서 공동대책위원회는 행정법원에 폐지안 집행 정지를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폐지안이 서울시의회에 바로 상정되지는 않게 됐다.
그러나 충남의 사례처럼 서울시의회에서도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의를 통해 다시 폐지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 교육감이 ‘학교 구성원 인권 조례’ 같은 형태에 동의한다고 발언하거나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의 책임’ 조항을 넣은 개정안을 내놓는 등 서울시교육청이 과연 학생인권을 지키기 위한 확고한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지 걱정되는 장면도 있었다. 교육부에서도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내놓으며 각 지역에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몇 차례 위기를 넘긴 지역도 있으나, 여전히 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거나 무력화시키려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지금까지의 학생인권조례 후퇴·폐지 시도에 맞서, 2023년 12월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 나는 현장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열리던 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고 촛불 문화제를 지켜보며 마음으로 함께했다.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원인이 학생인권에 있다’, ‘학생의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무책임한 학생들이 나와 문제가 된다’, 이런 것들이 윤석열 정부를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시키려 드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학생인권 때문이 아니라 교사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우고 그 존재를 보호하지 않는, 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양육자가 ‘악성 민원’이라 불리는 것을 통해 의사를 표해야 하는 잘못된 학교 사회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후퇴시키려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적절한 방법도 될 수 없다.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촛불 문화제의 핵심 슬로건이자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은 한 문장이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학생인권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다 못해 없애려고 안달인 세력들이 있기에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하고 움직이고 목소리를 낸다. 이는 마냥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처절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연대에서 사람들과 나는 힘을 얻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흙 사이에서는 새싹이 올라온다. 아직 바람이 불면 겨울처럼 쌀쌀하지만, 제 몸을 틔워 낸 식물은 꺾이지 않는다. 나는 인권도,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학생의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이름
irum.jeong@gmail.com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활동가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그렇지만 작년에 시작된 학생인권조례 후퇴의 흐름은 여전히 겨울바람처럼 매섭기만 하다. 2010년대부터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한 이후 그것을 폐지하거나 개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2023년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되었고 폐지·개악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전북 교육인권조례)가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특히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정부가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면서 서울, 경기, 충남, 전북 등에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지거나 무력화될 위기가 찾아왔다. 지역 곳곳을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해 온 활동가로서, 지난 1년간의 학생인권조례 후퇴 상황을 다시 짚으며 겪었던 일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북과 경기,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시도
2023년 4월 14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는 ‘전라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안’을 가결했다. 그간 학생인권 보장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교육 주체의 인권 보장에 소홀해졌으므로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며 내세워진 조례안이었다.
전북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고 교육인권조례를 만들겠다고 하자 전북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에 맞서 함께 기자 회견, 집회, 서명 운동, 1인 시위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나는 딱 한 번 열렸던 공청회에도 참석했는데, 놀랍게도 넓은 시청각실에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아마 ‘전북 교육인권조례’라는 것이 생기려고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북 교육인권조례는 졸속으로 제정되었고, 결국에는 학생인권의 후퇴를 불러왔다.
전북 교육인권조례 제정이 문제가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는 조항들을 전북 교육인권조례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대거 삭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학생으로부터 학생인권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한 기구인 ‘학생참여위원회’에 관한 조항이 삭제되었고, 교육청에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던 조항도 자율적으로 둘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제정을 논의하던 당시에는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존치시킬 것처럼 말하던 전북교육청은 시간이 흐르자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없애고 ‘교육인권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모두의 인권을 하나의 문장, 하나의 글로 지켜 주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학생의 인권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아동 권리 협약」, 「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 다양한 법에 의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등의 문구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학교 체벌조차 제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의 자치 법규인 조례로라도 학생인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인권 침해를 막고자 한 것이 학생인권조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적인 인권 보장 조항들을 여럿 삭제했고, 현재 전북은 지속적인 학생인권 후퇴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사진 설명. 전북 교육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삭제시키고 실질적으로 학생인권 정책과 제도를 후퇴시키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북교육청과 비슷하게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이름까지 바꾸려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조례안은 제목에서부터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무·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인권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학생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조건 없이 보장받는 것이고, 의무와 대응하여 거래되거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는 다른 법률이나 학칙 등에 이미 담겨 있기도 하다. 이를 굳이 학생인권조례에 넣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신장한다는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에 어긋나고, 학생인권을 위축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개정안에서 새로 만들어지거나 다시 쓰인 조항들은 학생인권을 후퇴시킬 소지가 다분한 내용이다. 기존에 열거되어 있던 차별 사유들을 삭제하고, 인권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상벌점제를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있어야 하는 듯한 내용을 넣었다. 상당히 문제가 많은 이 개정안은 다행히도 아직은 현실의 법규로 제정되지는 않았다. 지역 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개악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추진하는 등 후퇴를 막기 위해 노력한 끝에, 경기도의회에서 심의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충남과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전북과 경기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악과 무력화가 시도되는 동안, 충남과 서울에서는 아예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 들었다. 특히 충남은 비교적 최근인 2020년 오랜 운동 끝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는데, 겨우 3년이 지난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의 학생인권조례 겨냥 발언 이후 보수 종교계를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가 주민 발안되었다.
이렇게 도의회에 접수된 폐지안은 법원이 위기충남공동행동에서 낸 집행 정지 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그 효력이 2024년 1월까지 정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충남도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원의 집행 정지 결정에도 다시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충남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 기자 회견 등 대응 활동을 전개했으나 결국에 이 폐지안은 본회의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충남도의회 본회의가 열린 2023년 12월 15일, 나는 연대 차원에서 충남도의회에 찾아가 충남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피케팅을 하고 회의를 방청했다. 회의는 정말 소란스러웠다. 시작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앞에 나와서 폐지안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폐지안을 심의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한다는 의원들의 입에서 ‘기본권은 성인이 되어서나 보장받는다’ 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이런 사람들의 손에 학생들의 인권이 달려 있다는 현실에 허탈해한 것이 떠오른다. 결국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가결되었고, 그날 나는 폐지안 가결을 규탄하는 기자 회견에서 사람들의 울분에 차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사진 설명. 2023년 12월, 충남도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했다.
그렇게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4년도 채 못 가 폐지되는 듯했다. 그런데 충남 교육감이 조례 폐지에 대해 재의 요구를 하여, 2024년 2월 열린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재의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국민의힘에서 이탈 표가 나와 폐지안은 부결되었다. 한 차례 큰 위기가 있었지만 충남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활동해 온 사람들 덕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은 존재하고, 언제 다시 위기가 닥쳐올지 알 수 없어 활동가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서울도 충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2023년 초 서울시의회는 일부 보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주민 발안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안을 수리 및 발의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는 그 위법성을 검토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수리 및 발의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에 맞서 공동대책위원회는 행정법원에 폐지안 집행 정지를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폐지안이 서울시의회에 바로 상정되지는 않게 됐다.
그러나 충남의 사례처럼 서울시의회에서도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의를 통해 다시 폐지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 교육감이 ‘학교 구성원 인권 조례’ 같은 형태에 동의한다고 발언하거나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의 책임’ 조항을 넣은 개정안을 내놓는 등 서울시교육청이 과연 학생인권을 지키기 위한 확고한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지 걱정되는 장면도 있었다. 교육부에서도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내놓으며 각 지역에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몇 차례 위기를 넘긴 지역도 있으나, 여전히 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거나 무력화시키려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지금까지의 학생인권조례 후퇴·폐지 시도에 맞서, 2023년 12월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 나는 현장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열리던 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고 촛불 문화제를 지켜보며 마음으로 함께했다.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원인이 학생인권에 있다’, ‘학생의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무책임한 학생들이 나와 문제가 된다’, 이런 것들이 윤석열 정부를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시키려 드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학생인권 때문이 아니라 교사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우고 그 존재를 보호하지 않는, 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양육자가 ‘악성 민원’이라 불리는 것을 통해 의사를 표해야 하는 잘못된 학교 사회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후퇴시키려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적절한 방법도 될 수 없다.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촛불 문화제의 핵심 슬로건이자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은 한 문장이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학생인권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다 못해 없애려고 안달인 세력들이 있기에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하고 움직이고 목소리를 낸다. 이는 마냥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처절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연대에서 사람들과 나는 힘을 얻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흙 사이에서는 새싹이 올라온다. 아직 바람이 불면 겨울처럼 쌀쌀하지만, 제 몸을 틔워 낸 식물은 꺾이지 않는다. 나는 인권도,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