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대학의 공공성’을 매개로 캠퍼스 바깥과 관계 맺기
-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 김연우 위원장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대학 내 학생운동의 붕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간 논의의 여지가 있겠으나, 적어도 1990년대 이후부터 ‘언제나 붕괴하고 있었다’라는 진단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 대학 내에서의 운동이 활발하게 반등한 적이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온라인을 매개로 발생한 메갈리아, ‘미러링’ 등의 저항적 반격과 2016년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각 대학에서는 여성주의 소모임, 학회, 동아리 등이 활발히 조직되었다.[ref]정다울·이나영(2020), 〈대학 여성운동을 역사화하기 : 대학 사회 및 한국 여성운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28(1), 120~173쪽.[/ref] 이들은 페미니즘 강연, 세미나, 토론회 등의 행사와 함께 특히 2018년 대학가에서도 활발히 전개된 ‘미투(#MeToo)’ 운동에서도 핵심 주체로 활동했다.
모순적이게도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활성화되고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학생 사회의 역할이 강조되던 이 시기는, 동시에 총여학생회 폐지 압력이 노골화되고 연쇄적인 폐지가 일어난 때이기도 했다.[ref]정다울·이나영(2020), 앞의 글.[/ref] 물론 총여학생회의 폐지나 부침이 2016년 이후만의 현상은 아니다. 2000년대 이른바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및 학생 자치에 대한 무관심에서 총여학생회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으나 2010년대 초반에도 총여학생회의 존폐에 대한 논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ref]“캠퍼스 내 설 자리를 잃은 총여, 무엇이 문제인가”, 〈숙대신보〉, 2013년 12월 5일.[/ref] 문제는 과거의 총여학생회 폐지가 학생 자치 전반이 침체되어 그 일부로 일어난 것이었다면, 2016년 이후 연쇄적인 총여학생회 폐지는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총여학생회에 대한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ref]김미현(2020),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을 통해 본 대학 내 주체들의 분열과 경합의 정치학〉,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ref] 또한 대학 본부와 같은 학생 사회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학생 사회 내부에서의 적극적인 ‘민주주의’적 절차로서 학생 총투표나 학생 대표자 회의 등을 매개로 진행되었다는 점도 논쟁적이다.[ref]정다울(2020), 〈총여학생회 폐지와 민주주의의 역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학위 논문.[/ref] 이러한 맥락에서 총여학생회 폐지는 흔히 대학 내 페미니즘 백래시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왔다.
총여학생회의 폐지와 함께 성평등위원회(성평위)나 인권위원회(인권위)와 같은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들이 설치되었다. 이런 기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총여학생회를 총학생회 산하 소속 기구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설치되었다.[ref]“총여학생회가 사라진다… 성평위가 빈자리 채워도 ‘백래시’ 여전”, 〈여성신문〉, 2021년 8월 12일.[/ref] 일례로 2019년 연세대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한 학생 총투표 안건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폐지 및 총여 관련 규정 파기, 후속 기구 신설의 안’이었다.[ref]“31년 만에 존폐 위기… 서울권 유일 ‘연세대 총여학생회’ 운명은?”, 〈한겨레〉, 2019년 1월 4일.[/ref] 대안 기구는 그 탄생에서부터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해 동원된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대학 내 페미니즘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 폐지 이후 등장한 각종 대안 기구들이 열악한 대학 내 학생 자치 운동의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대안 기구들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한 알리바이에 머무르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대안으로서 학생 자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나긴 대학 내 운동의 역사 속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들의 현재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2024년 3월 6일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울림)’을 온라인 화상 대화로 만나 인터뷰했다.
경희대 총여학생회의 폐지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의 신설
사진 설명.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김연우 위원장의 발언 모습.
강석남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연우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에서 3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연우다. 23학번으로 현재 경희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다.
강석남
울림이 어떤 단체인지, 그리고 단체가 출범한 계기와 현재까지의 역사를 소개하자면?
김연우
울림은 경희대에서 소수자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학내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 학생 자치 기구다. 학생 자치 기구로서 학내의 제도적 변화 그리고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고 있는 조직이다.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는 총여학생회(총여)가 해산하고 이에 따라서 대안 기구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총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전국의 총여학생회 역사를 보면, 1984년 대학 내 여학생들의 자치 기구로서 처음 출범했고, 여학생의 능동적인 학내 자치 활동 참여를 독려해 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반페미니즘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백래시가 일어나며 총여가 폐지되거나 공석으로 남게 된다. 경희대 총여학생회도 1987년에 출범했지만 2018년 후보자 미등록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2021년에 궐위 상태가 됐다. 그러던 중 2021년 총학생회(총학)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었고, 전체 학생 총투표가 아니라 여학생들의 자체적 투표로 총여학생회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 이전에 타 대학들에서는 보통 전체 학생 총투표를 통해서 총여를 폐지해 온 맥락이 있다. 2021년 당선된 총학에서도 이대로라면 우리 학교에서도 조만간 전체 학생 총투표로 총여가 폐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차라리 학내 진보 진영에서 먼저 총여학생회 해산 의제를 던지고, 전체 학생이 아니라 여학생 총투표를 통해서 자체 해산을 해 이후에 대안적인 기구를 신설하는 게 낫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렇게 총여 해산 절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총여학생회의 존폐는 그 구성원인 본교 여학생이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후 토론이 계속 이루어졌으나 총여학생회나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 혐오 발언이 다수 게시되는 등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21년 8월, 제4차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총여학생회 해산을 여학생 총투표로 결정한다는 안건이 부결되었다. 제5차 확대운영위원회에서 기존 안건 내용에 여학생의 총투표가 투표율 미달될 시 전체 학생 총투표를 실시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결국 가결됐다. 이후 여학생 총투표에서 63% 찬성으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해산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 기구로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신설되었고 이제 3대째를 맞이하고 있다.
강석남
2016년 이후 일련의 총여학생회 폐지는 흔히 백래시의 영향이라고 알려졌는데, 경희대 사례는 선제적으로 자발적 해산 의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큰 것 같다. 자발적 해산에 대한 학내 활동가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총여학생회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나 반발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연우
우선 그때에 나는 아직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라, 자료를 바탕으로 답변드린다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오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그 당시에 반페미니즘 담론과 학생 사회의 백래시가 너무 심한 상황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총여 해산이 ‘페미니즘의 무너짐’이라고 생각했지만, 해산을 무조건 실패로만 말할 수는 없다. 총여학생회가 계속 궐위 상태에 있었고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안 기구로 학소위가 신설되어 총여의 투쟁을 계속 이어 갔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현실적인 상황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강석남
다른 대학들의 경우 총여학생회 이후 설치된 대안 기구들의 명칭으로 ‘성평등위원회’가 더 익숙했던 것 같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로 이행하게 된 특별한 맥락이 있었을까?
김연우
총여학생회를 해산하고 대안 기구를 신설하기 위한 TF팀이 구성되면서 논의가 활발했다. 여기서도 ‘인권위원회’와 ‘성평등위원회’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다. 인권위원회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성평등 의제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인권 의제를 다룰 기구가 필요하며 그에 더해서 성평등위원회는 총여처럼 백래시에 취약한 형태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성평등위원회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인권위원회로 하면 보편성에 가려서 특수성이 지워질 우려가 있고, 현재 다른 인권 의제까지 다 같이 다룰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론은 새로 설치될 대안 기구는 인권 의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니 포괄적인 인권 의제를 다루는 편이 더 옳다는 것이었고 논의 끝에 타협안으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강석남
울림이 스스로를 ‘특별 대표 기구’라고 소개한다고 알고 있다. 특별 대표 기구로서 울림은 다른 대학 내 활동들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를 들어 학생회나 학내 소모임, 학내 언론 등과 어떻게 구분될까?
김연우
일단 울림과 같은 특별 대표 기구들은 사회 전반의 인식과 소수자, 당사자 사이를 매개하는 기구라고 생각한다. 지금 인권 관련 담론이 학술적으로는 정립되고 논의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보면 오히려 성평등조차 역차별이라고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그 격차가 너무 크다. 그래서 울림은 그 차이를 학생 사회에 계속 이야기하고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설득해 나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 같은 경우엔 이런 성격이 없다. 그런 기구는 구성원과 대표성도 이미 자명하게 보장돼 있고, 그들의 세계관 자체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울림은 그걸 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금 학생 자치 운영에 있어서 소수자 관점이 미비한 상태인데, 울림이 소수자를 대표하고 그 존재를 이야기하고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석남
울림을 총학생회 산하 기구라고 볼 수 있을까?
김연우
총학 산하 기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고, 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 학생회장 등이 참여하는 중앙운영위원회에서도 의결권을 갖고 참석한다. 학생회비 지원도 받는다.
강석남
울림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내부 구성원은 크게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나뉜다. 정회원은 의결권을 갖고 있고 의제와 관련해서 장기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준회원 같은 경우엔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는 못 하지만 학내 축제 부스나 잔디밭 세미나 같은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정회원은 15명 정도, 준회원은 10명 정도다. 울림 위원장 등의 선출을 위한 투표권도 학소위 회칙에 따라 정회원이 행사한다.
강석남
설명을 종합하면 울림은 총여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의 동아리 회원처럼, 학우 대중의 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정회원이나 준회원 가입을 통해서 의결권을 가진 회원들이 내부적으로 선출하는 구조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학소위의 대표 기구로서의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적지 않을 것 같다. 다른 학교의 유사한 인권위원회나 성평등위원회는 총학 산하 기구로서 총학의 대표성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김연우
대표성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소위의 대표성에 관한 공격이라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일례로 교내 인권센터에 원래 학생 운영위원으로 학소위 추천인을 넣고 있었으나 관련된 위촉 절차가 운영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를 명문화하는 작업을 하는데 인권센터 운영위원회 내부에서는 통과됐으나 결재 과정에서 부총장이 학소위의 대표성을 문제 삼으면서 반려시킨 사건이 있었다. 중앙운영위원회 내부에서도 학소위의 대표성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울림의 역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총여학생회 대안 기구로 설립된 기구이자 그 계승 절차가 명확하고, 자치 기구이자 특별 대표 기구로서의 학소위가 총학생회 회칙에도 명시되어 있다. 첫째로 학소위 신설이 중앙운영위원회와 확대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서 전학대회에서 결정된 바 있다. 둘째로 처음 설립 때는 중앙운영위원회 의결권은 없이 발언권만 있었는데, 이후 중앙운영위원회와 확대운영위원회, 전학대회를 거쳐 총학생회 회칙 개정을 통해 의결권을 갖게 됐다. 이 정도면 절차적으로는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강석남
울림이 다른 총학생회 산하의 총여학생회 대안 기구들과 어떤 차이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까?
김연우
다른 학교 기구들의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다른 총학 산하 기구인 단체들의 이야길 들어 보면, 독립 기구인 울림은 학생회비를 내부 논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총학 산하 기구의 경우 사업 진행마다 총학의 허락을 구해야 하고, 대학의 비정치화 상황 속에서 총학생회 산하라는 점이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독립성을 가진다는 점이 학소위의 큰 장점인 것 같다.
강석남
전체 대학 사회에서 특별 대표 기구 같은 대안 기구들의 활동들이 어떠한지 개괄적인 상황이 궁금하다.
김연우
그래도 총여의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련 논의들을 재건해 나가고 유지해 나가는 기능은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상황은 다양하겠지만 재생산이 잘 안 되고 역량이 많이 약화됐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제도적 명분은 잘 확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반 학생들에게도 소수자들에게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변명이나 핑계일 수 있겠지만 대학 사회 전체가 최근에 극도로 개인화되고 총학이나 단과대 학생회도 궐위 상태인 곳이 많으니, 꼭 울림이나 대안 기구들만의 문제라기보단 대학 학생 사회 자체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경희대 총여학생회 해산이 2010년대 말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과 구별되는 핵심적인 지점은 진보적 총학생회 당선을 계기로 학내 진보적 진영이 선제적으로 총여학생회의 자발적 해산과 대안 기구 설립을 추진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학생 총투표’를 관철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폐지 압력이 있었다 해도, 학내 진보적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총여학생회 해산을 추진한 것은 분명 후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다만 전체 학생 총투표가 아니라 총여학생회의 구성원인 여학생 총투표를 통한 해산이었다는 점, 이를 통해 그 대안 기구를 총학생회 산하 단체로 손쉽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운영위원회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춘 독립 기구로 제도화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은 성과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이할 수 있는 평가의 분기점에서, 혹은 새로운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로서 가능성을 가진 조건에서 울림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지 살펴보자.
대학의 공공성 실현과 캠퍼스 밖 사회와 관계 맺기
강석남
총여 해산 이후 울림의 출범과 조직의 형식적인 특성까지 잘 설명해 주신 것 같다. 이어서 울림이 어떤 의제와 쟁점을 다뤄 왔는지 소개한다면?
김연우
울림은 이제 3대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1대에는 대학 내 성폭력 담론 토론회나 회기동 마을버스 저상 버스 도입 서명 운동 등을 했다. 그런데 다 같이 통일된 목표를 향해서 일을 추진해 나가기보다는 각 사업을 진행하는 데 급급해서 사업 간 연결이 제대로 안 되는 한계를 인식했다.
그래서 2대에는 학교의 실질적인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자는 하나의 목표를 세웠고 장애인 입학 전형 학과 제한 폐지나 총장 직선제 같은 활동을 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의제이지만 종합하면 ‘대학의 공공성 실현’이라는 하나의 성과로 집중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희는 지금도 장애, 젠더, 퀴어, 환경 등의 의제뿐만 아니라 ‘대학’이라는 키워드에 집중을 해서 대학의 사적 소유나 기업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학은 재단의 돈벌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는 공적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 자치가 학생들의 발언권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대학을 이사회나 재단이 아니라 학생의 것으로 만들고, 나이, 젠더, 장애 여부, 국적 등과 상관없이 모두의 것으로 탈환해 오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울림의 활동들은 따로 보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 대학 공공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여 있고, 울림은 이를 향해 나아가는 조직이다.
강석남
굉장히 흥미롭고 공감되는 의제다. 학소위가 총여 대안 기구로 출범했는데 대학 공공성이란 키워드로 의제를 확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기존 총여학생회도 대학 공공성에 대한 의제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김연우
개인적 생각으로는 확장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총여에서 학소위로 넘어가면서 의제 자체를 확장하기도 했고, 울림이 1대에서 2대를 거쳐서 3대로 넘어오면서도 의제별 사업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학내에서 자치 기구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그런 부분이 걸림돌이 된단 느낌도 받았다. 한계점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의제를 확장해 나간 것 같다.
강석남
학소위 출범 과정에서의 논쟁처럼, 학소위 의제 확장이 총여의 역할을 온전히 계승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들은 없었는지?
김연우
사실 경희대에서 활동가 그룹이라고 하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게 학소위가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학소위 외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 것 같다. 경희대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아, 페미니즘 소모임 같은 경우도 과거엔 몇 개 있었으나 현재는 활동이 없다. 오히려 다른 대학과 비교했을 때 경희대 학소위의 규모가 크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학내 유일한 활동가 그룹이기 때문에, 학소위에 학생 사회의 역량이 쏠린 게 아닐까 하는 판단을 내부에선 하고 있다.
강석남
이제 울림의 주요 활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려 한다. SNS 등을 통해 확인한 활동 중에는 장애인 관련 활동들이 눈에 띈다.
김연우
주요 활동으로 ‘장애인 입학 전형 학과 제한 폐지 및 정원 확대’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현재 경희대는 장애인 입학 전형이 있지만, 2023학년도 기준 지원 가능한 학과가 10개이고 정원이 총 15명밖에 되지 않는다. 장애인 입학 전형 같은 경우는 비장애 학생 중심 교육에서 장애인 학생을 배제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인데, 학과 제한은 장애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한정 짓고 있는 거다. 이와 관련해서 울림이 꾸준히 서명 운동도 하고 대자보도 썼다. 학교로부터 2026학년도부터 학과 제한을 폐지하는 안에 대해서 논의 중이며 단과대와 협의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원은 경희대 서울캠퍼스, 국제캠퍼스를 합쳐서 총 15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도 투쟁을 이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또 장애인 의무 고용률 준수를 위한 활동도 전개했다. 지금 경희대가 장애인 고용 계획을 매년 신고하고 있지만 채용을 위한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서 매년 막대한 벌금을 낸다고 알고 있다. 의무 고용률 보장의 취지가 장애인 배제적인, 비장애인 중심적인 일자리를 생성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경희대 같은 경우에는 카페를 만들어 그곳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형식으로 하고 있어 더 문제적이다. 울림은 중증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보장하라고 학교에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대학 공공성에 관해서 2023년 2학기에 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작년에 진행된 경희대 총장 선거 절차에서 대다수 구성원이 후보 추천 외에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에서도 이사회만 관여하는 비민주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총장 직선제 시행을 위한 피케팅, 서명 운동, 기자 회견, 총장 면담 등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학생 자치 기구라는 정체성과 함께 어떻게 하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없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흔히 말하는 대중 사업도 열었다. 개강 주나 학교 축제 때 여러 인권 의제들을 다루었고,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에 대한 추모 행동도 한 바 있다.
사진 설명.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김연우 위원장의 발언 모습.
강석남
울림이 해 왔던 활동을 보면 굉장히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장애인 입학 전형 문제나 의무 고용률 문제 등이 눈에 띈다. 많은 대학생운동이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등록금 문제나 총장 선출 등 대학 안에서의 의제에 집중해 왔는데, 울림은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를 대학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끌어 냈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앞서 학내 기구로서의 학소위를 강조하긴 했지만, 우리는 결국 경희대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라 지역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전체 사회를 위해서 활동해 나가는 기구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석남
이러한 굵직한 활동들 외에 소위 ‘캘린더 사업’이라고 하는, 학생 자치 기구로서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들도 있을까?
김연우
그런 사업으로는 ‘잔디밭 세미나’라고 해서, 작년에 처음 시작해 이제 한 학기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예정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 경희대에서 2015년에 강사들에게 일괄적으로 해고 메일이 발송된 적이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과 개편을 이유로 126개 강좌를 폐강하고 강사들을 해고한 거다. 그때 강사 중 채효정 님이 구조 조정에 반대하면서 교양 수업을 하는 청운관 앞에서 잔디밭 강의 투쟁을 했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대학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강의하며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이 훼손된 경희대의 현실을 고발한 역사가 있다. 울림은 이를 계승해서 똑같이 청운관 건물 앞 잔디밭에 앉아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여러 외부 인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한다. 학소위 내부에서도 스스로의 경험을 담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강석남
채효정 님이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인 걸 아는지?
김연우
그런가? 작년에 채효정 님이 잔디밭 세미나에 와서 강연도 했다.
강석남
울림의 재생산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어떻게 신입 회원들을 모집하고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지? 학소위에 들어온 사람들이, 1대, 2대, 3대 세대가 바뀌면서 어떤 건 잘 재생산되고 어떤 건 잘 안 될 수 있을 텐데?
김연우
3대 위원장을 맡으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재생산이었다. 어쨌든 울림은 소수자 단체이고 소수자를 대표해야 하는 기구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공격도 많이 받곤 한다. 학소위의 규모가 작다고 대표성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너희들은 소수자만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왜 그렇게 자치회비를 많이 분배해 가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그래서 처음 학소위를 맡게 되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이 재생산, 특히 숫자 면에서 재생산을 많이 신경 썼다.
그 때문인지 울림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이 있다. 이미 외부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마음으로만 함께하다가 한번 활동해 볼까 하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원래 이런 활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학소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다. 어쨌든 울림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경희대 내에선 거의 유일한 기구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교집합이 있으면 다 여기로 모이는 것 같다. 그런 개개인을 하나의 단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부에서 밴드, 책 읽기 등의 소모임 활동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서로 유대 관계를 쌓고 일상을 함께하고 서로를 잘 알아야 비로소 우리의 운동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 설명. 울림은 한 학기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잔디밭 세미나를 하고 있다.
강석남
울림이 경희대의 거의 유일한 기구이자 활동가 그룹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면, 정파라거나, 의제라거나, 활동의 지향성 차이 때문에 내부적인 논쟁이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가?
김연우
개인적으로 처음 울림에 들어왔을 때 굉장히 놀랍고 신선했던 부분이다. 당연히 정파가 다른 사람들도 있고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다른 부분도 같이 일하다 보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함께해야 하니까 계속해서 이야길 하고 논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저에겐 바로 그 점이 울림의 매력이기도 했다.
소개된 울림의 활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장애, 젠더, 퀴어, 환경, 총장 직선제 등의 어찌 보면 각기 다를 수 있는 의제들을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공통의 연결 고리로 묶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표방하는 이상 장애, 젠더, 퀴어 의제와 관련된 활동들을 전개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편에선 장애, 젠더, 퀴어, 환경 등 꼭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의제들을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운동들 또한 (열악한 대학 내 운동의 조건하에서)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의 공공성과 이 의제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대학 내에서의 운동은 대학 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원칙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자 근거로서 대학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대학 등록금 문제가 그렇다. 과도한 등록금 부담을 넘어 등록금 무상화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학교육을 포함한 교육은 공공적인 것이며, 교육과 관련된 비용 또한 공공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를 비롯한 대학 내 민주주의나 이사회가 독점한 폐쇄적 대학 의사 결정 구조 비판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대학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 따라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 사학 재단이나 법인 이사회의 사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학 내 의제들이 대학 공공성을 근거로 대학 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그 기저에는 대학교육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깔려 있다.
반면 울림의 주요 활동들은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하여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학 사회의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의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장애인 입학 전형이나 장애인 의무 고용률 준수를 위한 활동은 현재는 대학 내에 입학하거나 고용되지 못한 장애인들의 마땅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캠퍼스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캠퍼스를 넘어 운동을 매개로 대학 사회와 대학 바깥 사회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대학이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벌금을 내지 않고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은 공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공공성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학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학령 인구 감소 압력을 등에 업은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이 신입생 충원율이 떨어지는 대학을 쓸모없는 청소 대상으로 손쉽게 지목하는 지금, 대학이 사회에 져야 할 책임은 대학을 지키는 하나의 근거일 수 있다. 특히 이른바 ‘벚꽃 피는 순’으로 취약한 지역의 대학들이 먼저 구조 조정의 칼날에 직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학이 캠퍼스를 넘어 지역 사회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고 질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울림이 대학의 공공성을 매개로 다양한 의제들을 묶어 내면서 제기하는 대학의 책임에 대한 질문이 앞으로 어떤 활동으로 전개될지 기대하면서, 울림의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학생운동으로서의 학소위에 대한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대학의 위기와 학생운동으로서의 학소위
사진 설명. 2023년 5월 대동제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등 차별에 반대하는 ‘에이드사랑’ 활동을 했다.
강석남
울림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대학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정부 및 기성 언론을 포함해서 학령 인구 감소를 중심으로 대학 위기를 진단하는 담론들이 일반적이다. 울림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김연우
울림 입장에서는 단순히 학령 인구 감소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교내 단체 생활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모든 대학생 조직에 영향을 준다. 학생 수도 점점 줄고, 학생들의 기본적인 참여 의식이나 공동체 의식도 희미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주변을 보면 페미니즘 소모임도, 학과 학회나 학술 동아리도 인원이 잘 안 모여서 고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학령 인구 감소가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긴 했는데, 사실 그런 건 큰 경향성일 뿐이다. 울림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더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백래시나 무관심, 그리고 학내 논의가 전혀 활성화되지 않는 것 등에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학 밖에서 이야기하는 학령 인구 감소 담론은 울림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진 못하다.
강석남
조금 삐딱하게 질문해 보자면,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통폐합 압력에 직면한 지방 사립대는 학과 구조 조정이나 통폐합이 실질적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나? 울림이 학령 인구 감소보다 대학 내 학생 사회의 무기력에 더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경희대가 서울권 유명 사립대라서 가능한 진단은 아닐까?
김연우
일정 부분 동의한다. 너무 학벌주의적 관점일 수도 있고, 당연히 그런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울림은 학교 내부에 더 집중해야 하는 기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학내에서의 정치적인 담론이 사라지며 학생운동이 소멸되는 부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강석남
학생 자치 기구로서 학소위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희대 학생 사회 내부의 문제가 좀 더 중요한 의제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의 상황을 울림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건 기존에 있던 전통적인 학생들의 활동이 사라지고 있단 점이다. 총학도 그렇고 단과대 학생회도 그렇고, 이제는 모두 다 정말 비정치화됐고 어떤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 사회 전체의 붕괴이고, 꼭 대학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것 같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뭔가 터져 나오고, 백래시나 혐오가 드러나고 또 이에 대한 분노와 저항 담론들이 나온다. 저희는 학생회 같은 공식적인 대표 기구가 부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울림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건 이렇게 공식적인 학생 자치 대표 기구가 부재하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다. 예를 들어 인권 관련 요구가 터져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학내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과정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조직적인 움직임을 띠지 못하고, 탈정치화·비정치화되거나 조직되지 않은 학생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래서 현재 대학은 학생들의 논의가 전개되는 공간이 되는 데 실패했다. 울림도 직접 부딪히고 있는 문제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도 모른다는 점 같다. 활동을 하면서 계속 알아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지만, 지금은 정말 갈피조차 못 잡겠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
강석남
이전의 인터뷰에서도 물었던 공통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울림은 학생운동인가?’라고 질문한다면?
김연우
‘학생운동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라고 답변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울림 내부에서도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길 많이 하고 논쟁도 오가곤 한다. 결국 저희가 내린 결론은, ‘학생운동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였다. 지금 학생 사회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1970~1980년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울림이 이렇게 하고 있는 활동들이 가치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이 될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마지막으로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감이 있다면?
김연우
일단 학생 사회가 이렇게 비정치화되는 상황에서 저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싸울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소위가 출범했어도 총여 해산의 원인이 된 백래시도 해결하지 못했다. 총여 해산이 페미니즘이 무너진 거라는 평가가 일부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희가 실패라고 하지 않는 건 학소위가 총여를 이어 나갔고 끝까지 싸울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마주하건 간에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럼 실패라는 끝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목소리가 우리의 목소리가 되고, 우리의 목소리를 모두의 목소리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이 학생 자치 기구가 된다면 지속 가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울림의 활동, 투쟁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대학의 공공성’을 매개로 캠퍼스 바깥과 관계 맺기
-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 김연우 위원장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대학 내 학생운동의 붕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간 논의의 여지가 있겠으나, 적어도 1990년대 이후부터 ‘언제나 붕괴하고 있었다’라는 진단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 대학 내에서의 운동이 활발하게 반등한 적이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온라인을 매개로 발생한 메갈리아, ‘미러링’ 등의 저항적 반격과 2016년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각 대학에서는 여성주의 소모임, 학회, 동아리 등이 활발히 조직되었다.[ref]정다울·이나영(2020), 〈대학 여성운동을 역사화하기 : 대학 사회 및 한국 여성운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28(1), 120~173쪽.[/ref] 이들은 페미니즘 강연, 세미나, 토론회 등의 행사와 함께 특히 2018년 대학가에서도 활발히 전개된 ‘미투(#MeToo)’ 운동에서도 핵심 주체로 활동했다.
모순적이게도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활성화되고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학생 사회의 역할이 강조되던 이 시기는, 동시에 총여학생회 폐지 압력이 노골화되고 연쇄적인 폐지가 일어난 때이기도 했다.[ref]정다울·이나영(2020), 앞의 글.[/ref] 물론 총여학생회의 폐지나 부침이 2016년 이후만의 현상은 아니다. 2000년대 이른바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및 학생 자치에 대한 무관심에서 총여학생회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으나 2010년대 초반에도 총여학생회의 존폐에 대한 논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ref]“캠퍼스 내 설 자리를 잃은 총여, 무엇이 문제인가”, 〈숙대신보〉, 2013년 12월 5일.[/ref] 문제는 과거의 총여학생회 폐지가 학생 자치 전반이 침체되어 그 일부로 일어난 것이었다면, 2016년 이후 연쇄적인 총여학생회 폐지는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총여학생회에 대한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ref]김미현(2020),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을 통해 본 대학 내 주체들의 분열과 경합의 정치학〉,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ref] 또한 대학 본부와 같은 학생 사회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학생 사회 내부에서의 적극적인 ‘민주주의’적 절차로서 학생 총투표나 학생 대표자 회의 등을 매개로 진행되었다는 점도 논쟁적이다.[ref]정다울(2020), 〈총여학생회 폐지와 민주주의의 역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학위 논문.[/ref] 이러한 맥락에서 총여학생회 폐지는 흔히 대학 내 페미니즘 백래시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왔다.
총여학생회의 폐지와 함께 성평등위원회(성평위)나 인권위원회(인권위)와 같은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들이 설치되었다. 이런 기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총여학생회를 총학생회 산하 소속 기구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설치되었다.[ref]“총여학생회가 사라진다… 성평위가 빈자리 채워도 ‘백래시’ 여전”, 〈여성신문〉, 2021년 8월 12일.[/ref] 일례로 2019년 연세대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한 학생 총투표 안건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폐지 및 총여 관련 규정 파기, 후속 기구 신설의 안’이었다.[ref]“31년 만에 존폐 위기… 서울권 유일 ‘연세대 총여학생회’ 운명은?”, 〈한겨레〉, 2019년 1월 4일.[/ref] 대안 기구는 그 탄생에서부터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해 동원된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대학 내 페미니즘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 폐지 이후 등장한 각종 대안 기구들이 열악한 대학 내 학생 자치 운동의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대안 기구들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한 알리바이에 머무르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대안으로서 학생 자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나긴 대학 내 운동의 역사 속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들의 현재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2024년 3월 6일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울림)’을 온라인 화상 대화로 만나 인터뷰했다.
경희대 총여학생회의 폐지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의 신설
사진 설명.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김연우 위원장의 발언 모습.
강석남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연우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에서 3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연우다. 23학번으로 현재 경희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다.
강석남
울림이 어떤 단체인지, 그리고 단체가 출범한 계기와 현재까지의 역사를 소개하자면?
김연우
울림은 경희대에서 소수자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학내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 학생 자치 기구다. 학생 자치 기구로서 학내의 제도적 변화 그리고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고 있는 조직이다.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는 총여학생회(총여)가 해산하고 이에 따라서 대안 기구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총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전국의 총여학생회 역사를 보면, 1984년 대학 내 여학생들의 자치 기구로서 처음 출범했고, 여학생의 능동적인 학내 자치 활동 참여를 독려해 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반페미니즘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백래시가 일어나며 총여가 폐지되거나 공석으로 남게 된다. 경희대 총여학생회도 1987년에 출범했지만 2018년 후보자 미등록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2021년에 궐위 상태가 됐다. 그러던 중 2021년 총학생회(총학)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었고, 전체 학생 총투표가 아니라 여학생들의 자체적 투표로 총여학생회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 이전에 타 대학들에서는 보통 전체 학생 총투표를 통해서 총여를 폐지해 온 맥락이 있다. 2021년 당선된 총학에서도 이대로라면 우리 학교에서도 조만간 전체 학생 총투표로 총여가 폐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차라리 학내 진보 진영에서 먼저 총여학생회 해산 의제를 던지고, 전체 학생이 아니라 여학생 총투표를 통해서 자체 해산을 해 이후에 대안적인 기구를 신설하는 게 낫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렇게 총여 해산 절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총여학생회의 존폐는 그 구성원인 본교 여학생이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후 토론이 계속 이루어졌으나 총여학생회나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 혐오 발언이 다수 게시되는 등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21년 8월, 제4차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총여학생회 해산을 여학생 총투표로 결정한다는 안건이 부결되었다. 제5차 확대운영위원회에서 기존 안건 내용에 여학생의 총투표가 투표율 미달될 시 전체 학생 총투표를 실시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결국 가결됐다. 이후 여학생 총투표에서 63% 찬성으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해산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 기구로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신설되었고 이제 3대째를 맞이하고 있다.
강석남
2016년 이후 일련의 총여학생회 폐지는 흔히 백래시의 영향이라고 알려졌는데, 경희대 사례는 선제적으로 자발적 해산 의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큰 것 같다. 자발적 해산에 대한 학내 활동가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총여학생회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나 반발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연우
우선 그때에 나는 아직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라, 자료를 바탕으로 답변드린다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오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그 당시에 반페미니즘 담론과 학생 사회의 백래시가 너무 심한 상황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총여 해산이 ‘페미니즘의 무너짐’이라고 생각했지만, 해산을 무조건 실패로만 말할 수는 없다. 총여학생회가 계속 궐위 상태에 있었고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안 기구로 학소위가 신설되어 총여의 투쟁을 계속 이어 갔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현실적인 상황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강석남
다른 대학들의 경우 총여학생회 이후 설치된 대안 기구들의 명칭으로 ‘성평등위원회’가 더 익숙했던 것 같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로 이행하게 된 특별한 맥락이 있었을까?
김연우
총여학생회를 해산하고 대안 기구를 신설하기 위한 TF팀이 구성되면서 논의가 활발했다. 여기서도 ‘인권위원회’와 ‘성평등위원회’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다. 인권위원회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성평등 의제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인권 의제를 다룰 기구가 필요하며 그에 더해서 성평등위원회는 총여처럼 백래시에 취약한 형태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성평등위원회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인권위원회로 하면 보편성에 가려서 특수성이 지워질 우려가 있고, 현재 다른 인권 의제까지 다 같이 다룰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론은 새로 설치될 대안 기구는 인권 의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니 포괄적인 인권 의제를 다루는 편이 더 옳다는 것이었고 논의 끝에 타협안으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강석남
울림이 스스로를 ‘특별 대표 기구’라고 소개한다고 알고 있다. 특별 대표 기구로서 울림은 다른 대학 내 활동들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를 들어 학생회나 학내 소모임, 학내 언론 등과 어떻게 구분될까?
김연우
일단 울림과 같은 특별 대표 기구들은 사회 전반의 인식과 소수자, 당사자 사이를 매개하는 기구라고 생각한다. 지금 인권 관련 담론이 학술적으로는 정립되고 논의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보면 오히려 성평등조차 역차별이라고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그 격차가 너무 크다. 그래서 울림은 그 차이를 학생 사회에 계속 이야기하고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설득해 나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 같은 경우엔 이런 성격이 없다. 그런 기구는 구성원과 대표성도 이미 자명하게 보장돼 있고, 그들의 세계관 자체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울림은 그걸 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금 학생 자치 운영에 있어서 소수자 관점이 미비한 상태인데, 울림이 소수자를 대표하고 그 존재를 이야기하고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석남
울림을 총학생회 산하 기구라고 볼 수 있을까?
김연우
총학 산하 기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고, 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 학생회장 등이 참여하는 중앙운영위원회에서도 의결권을 갖고 참석한다. 학생회비 지원도 받는다.
강석남
울림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내부 구성원은 크게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나뉜다. 정회원은 의결권을 갖고 있고 의제와 관련해서 장기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준회원 같은 경우엔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는 못 하지만 학내 축제 부스나 잔디밭 세미나 같은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정회원은 15명 정도, 준회원은 10명 정도다. 울림 위원장 등의 선출을 위한 투표권도 학소위 회칙에 따라 정회원이 행사한다.
강석남
설명을 종합하면 울림은 총여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의 동아리 회원처럼, 학우 대중의 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정회원이나 준회원 가입을 통해서 의결권을 가진 회원들이 내부적으로 선출하는 구조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학소위의 대표 기구로서의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적지 않을 것 같다. 다른 학교의 유사한 인권위원회나 성평등위원회는 총학 산하 기구로서 총학의 대표성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김연우
대표성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소위의 대표성에 관한 공격이라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일례로 교내 인권센터에 원래 학생 운영위원으로 학소위 추천인을 넣고 있었으나 관련된 위촉 절차가 운영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를 명문화하는 작업을 하는데 인권센터 운영위원회 내부에서는 통과됐으나 결재 과정에서 부총장이 학소위의 대표성을 문제 삼으면서 반려시킨 사건이 있었다. 중앙운영위원회 내부에서도 학소위의 대표성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울림의 역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총여학생회 대안 기구로 설립된 기구이자 그 계승 절차가 명확하고, 자치 기구이자 특별 대표 기구로서의 학소위가 총학생회 회칙에도 명시되어 있다. 첫째로 학소위 신설이 중앙운영위원회와 확대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서 전학대회에서 결정된 바 있다. 둘째로 처음 설립 때는 중앙운영위원회 의결권은 없이 발언권만 있었는데, 이후 중앙운영위원회와 확대운영위원회, 전학대회를 거쳐 총학생회 회칙 개정을 통해 의결권을 갖게 됐다. 이 정도면 절차적으로는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강석남
울림이 다른 총학생회 산하의 총여학생회 대안 기구들과 어떤 차이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까?
김연우
다른 학교 기구들의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다른 총학 산하 기구인 단체들의 이야길 들어 보면, 독립 기구인 울림은 학생회비를 내부 논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총학 산하 기구의 경우 사업 진행마다 총학의 허락을 구해야 하고, 대학의 비정치화 상황 속에서 총학생회 산하라는 점이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독립성을 가진다는 점이 학소위의 큰 장점인 것 같다.
강석남
전체 대학 사회에서 특별 대표 기구 같은 대안 기구들의 활동들이 어떠한지 개괄적인 상황이 궁금하다.
김연우
그래도 총여의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련 논의들을 재건해 나가고 유지해 나가는 기능은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상황은 다양하겠지만 재생산이 잘 안 되고 역량이 많이 약화됐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제도적 명분은 잘 확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반 학생들에게도 소수자들에게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변명이나 핑계일 수 있겠지만 대학 사회 전체가 최근에 극도로 개인화되고 총학이나 단과대 학생회도 궐위 상태인 곳이 많으니, 꼭 울림이나 대안 기구들만의 문제라기보단 대학 학생 사회 자체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경희대 총여학생회 해산이 2010년대 말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과 구별되는 핵심적인 지점은 진보적 총학생회 당선을 계기로 학내 진보적 진영이 선제적으로 총여학생회의 자발적 해산과 대안 기구 설립을 추진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학생 총투표’를 관철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폐지 압력이 있었다 해도, 학내 진보적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총여학생회 해산을 추진한 것은 분명 후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다만 전체 학생 총투표가 아니라 총여학생회의 구성원인 여학생 총투표를 통한 해산이었다는 점, 이를 통해 그 대안 기구를 총학생회 산하 단체로 손쉽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운영위원회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춘 독립 기구로 제도화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은 성과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이할 수 있는 평가의 분기점에서, 혹은 새로운 대안적 학생 자치 기구로서 가능성을 가진 조건에서 울림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지 살펴보자.
대학의 공공성 실현과 캠퍼스 밖 사회와 관계 맺기
강석남
총여 해산 이후 울림의 출범과 조직의 형식적인 특성까지 잘 설명해 주신 것 같다. 이어서 울림이 어떤 의제와 쟁점을 다뤄 왔는지 소개한다면?
김연우
울림은 이제 3대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1대에는 대학 내 성폭력 담론 토론회나 회기동 마을버스 저상 버스 도입 서명 운동 등을 했다. 그런데 다 같이 통일된 목표를 향해서 일을 추진해 나가기보다는 각 사업을 진행하는 데 급급해서 사업 간 연결이 제대로 안 되는 한계를 인식했다.
그래서 2대에는 학교의 실질적인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자는 하나의 목표를 세웠고 장애인 입학 전형 학과 제한 폐지나 총장 직선제 같은 활동을 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의제이지만 종합하면 ‘대학의 공공성 실현’이라는 하나의 성과로 집중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희는 지금도 장애, 젠더, 퀴어, 환경 등의 의제뿐만 아니라 ‘대학’이라는 키워드에 집중을 해서 대학의 사적 소유나 기업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학은 재단의 돈벌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는 공적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 자치가 학생들의 발언권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대학을 이사회나 재단이 아니라 학생의 것으로 만들고, 나이, 젠더, 장애 여부, 국적 등과 상관없이 모두의 것으로 탈환해 오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울림의 활동들은 따로 보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 대학 공공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여 있고, 울림은 이를 향해 나아가는 조직이다.
강석남
굉장히 흥미롭고 공감되는 의제다. 학소위가 총여 대안 기구로 출범했는데 대학 공공성이란 키워드로 의제를 확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기존 총여학생회도 대학 공공성에 대한 의제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김연우
개인적 생각으로는 확장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총여에서 학소위로 넘어가면서 의제 자체를 확장하기도 했고, 울림이 1대에서 2대를 거쳐서 3대로 넘어오면서도 의제별 사업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학내에서 자치 기구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그런 부분이 걸림돌이 된단 느낌도 받았다. 한계점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의제를 확장해 나간 것 같다.
강석남
학소위 출범 과정에서의 논쟁처럼, 학소위 의제 확장이 총여의 역할을 온전히 계승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들은 없었는지?
김연우
사실 경희대에서 활동가 그룹이라고 하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게 학소위가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학소위 외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 것 같다. 경희대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아, 페미니즘 소모임 같은 경우도 과거엔 몇 개 있었으나 현재는 활동이 없다. 오히려 다른 대학과 비교했을 때 경희대 학소위의 규모가 크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학내 유일한 활동가 그룹이기 때문에, 학소위에 학생 사회의 역량이 쏠린 게 아닐까 하는 판단을 내부에선 하고 있다.
강석남
이제 울림의 주요 활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려 한다. SNS 등을 통해 확인한 활동 중에는 장애인 관련 활동들이 눈에 띈다.
김연우
주요 활동으로 ‘장애인 입학 전형 학과 제한 폐지 및 정원 확대’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현재 경희대는 장애인 입학 전형이 있지만, 2023학년도 기준 지원 가능한 학과가 10개이고 정원이 총 15명밖에 되지 않는다. 장애인 입학 전형 같은 경우는 비장애 학생 중심 교육에서 장애인 학생을 배제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인데, 학과 제한은 장애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한정 짓고 있는 거다. 이와 관련해서 울림이 꾸준히 서명 운동도 하고 대자보도 썼다. 학교로부터 2026학년도부터 학과 제한을 폐지하는 안에 대해서 논의 중이며 단과대와 협의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원은 경희대 서울캠퍼스, 국제캠퍼스를 합쳐서 총 15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도 투쟁을 이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또 장애인 의무 고용률 준수를 위한 활동도 전개했다. 지금 경희대가 장애인 고용 계획을 매년 신고하고 있지만 채용을 위한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서 매년 막대한 벌금을 낸다고 알고 있다. 의무 고용률 보장의 취지가 장애인 배제적인, 비장애인 중심적인 일자리를 생성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경희대 같은 경우에는 카페를 만들어 그곳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형식으로 하고 있어 더 문제적이다. 울림은 중증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보장하라고 학교에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대학 공공성에 관해서 2023년 2학기에 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작년에 진행된 경희대 총장 선거 절차에서 대다수 구성원이 후보 추천 외에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에서도 이사회만 관여하는 비민주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총장 직선제 시행을 위한 피케팅, 서명 운동, 기자 회견, 총장 면담 등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학생 자치 기구라는 정체성과 함께 어떻게 하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없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흔히 말하는 대중 사업도 열었다. 개강 주나 학교 축제 때 여러 인권 의제들을 다루었고,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에 대한 추모 행동도 한 바 있다.
사진 설명.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김연우 위원장의 발언 모습.
강석남
울림이 해 왔던 활동을 보면 굉장히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장애인 입학 전형 문제나 의무 고용률 문제 등이 눈에 띈다. 많은 대학생운동이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등록금 문제나 총장 선출 등 대학 안에서의 의제에 집중해 왔는데, 울림은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를 대학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끌어 냈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앞서 학내 기구로서의 학소위를 강조하긴 했지만, 우리는 결국 경희대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라 지역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전체 사회를 위해서 활동해 나가는 기구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석남
이러한 굵직한 활동들 외에 소위 ‘캘린더 사업’이라고 하는, 학생 자치 기구로서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들도 있을까?
김연우
그런 사업으로는 ‘잔디밭 세미나’라고 해서, 작년에 처음 시작해 이제 한 학기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예정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 경희대에서 2015년에 강사들에게 일괄적으로 해고 메일이 발송된 적이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과 개편을 이유로 126개 강좌를 폐강하고 강사들을 해고한 거다. 그때 강사 중 채효정 님이 구조 조정에 반대하면서 교양 수업을 하는 청운관 앞에서 잔디밭 강의 투쟁을 했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대학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강의하며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이 훼손된 경희대의 현실을 고발한 역사가 있다. 울림은 이를 계승해서 똑같이 청운관 건물 앞 잔디밭에 앉아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여러 외부 인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한다. 학소위 내부에서도 스스로의 경험을 담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강석남
채효정 님이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인 걸 아는지?
김연우
그런가? 작년에 채효정 님이 잔디밭 세미나에 와서 강연도 했다.
강석남
울림의 재생산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어떻게 신입 회원들을 모집하고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지? 학소위에 들어온 사람들이, 1대, 2대, 3대 세대가 바뀌면서 어떤 건 잘 재생산되고 어떤 건 잘 안 될 수 있을 텐데?
김연우
3대 위원장을 맡으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재생산이었다. 어쨌든 울림은 소수자 단체이고 소수자를 대표해야 하는 기구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공격도 많이 받곤 한다. 학소위의 규모가 작다고 대표성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너희들은 소수자만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왜 그렇게 자치회비를 많이 분배해 가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그래서 처음 학소위를 맡게 되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이 재생산, 특히 숫자 면에서 재생산을 많이 신경 썼다.
그 때문인지 울림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이 있다. 이미 외부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마음으로만 함께하다가 한번 활동해 볼까 하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원래 이런 활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학소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다. 어쨌든 울림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경희대 내에선 거의 유일한 기구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교집합이 있으면 다 여기로 모이는 것 같다. 그런 개개인을 하나의 단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부에서 밴드, 책 읽기 등의 소모임 활동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서로 유대 관계를 쌓고 일상을 함께하고 서로를 잘 알아야 비로소 우리의 운동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 설명. 울림은 한 학기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잔디밭 세미나를 하고 있다.
강석남
울림이 경희대의 거의 유일한 기구이자 활동가 그룹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면, 정파라거나, 의제라거나, 활동의 지향성 차이 때문에 내부적인 논쟁이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가?
김연우
개인적으로 처음 울림에 들어왔을 때 굉장히 놀랍고 신선했던 부분이다. 당연히 정파가 다른 사람들도 있고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다른 부분도 같이 일하다 보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함께해야 하니까 계속해서 이야길 하고 논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저에겐 바로 그 점이 울림의 매력이기도 했다.
소개된 울림의 활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장애, 젠더, 퀴어, 환경, 총장 직선제 등의 어찌 보면 각기 다를 수 있는 의제들을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공통의 연결 고리로 묶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표방하는 이상 장애, 젠더, 퀴어 의제와 관련된 활동들을 전개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편에선 장애, 젠더, 퀴어, 환경 등 꼭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의제들을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운동들 또한 (열악한 대학 내 운동의 조건하에서)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의 공공성과 이 의제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대학 내에서의 운동은 대학 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원칙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자 근거로서 대학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대학 등록금 문제가 그렇다. 과도한 등록금 부담을 넘어 등록금 무상화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학교육을 포함한 교육은 공공적인 것이며, 교육과 관련된 비용 또한 공공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를 비롯한 대학 내 민주주의나 이사회가 독점한 폐쇄적 대학 의사 결정 구조 비판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대학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 따라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 사학 재단이나 법인 이사회의 사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학 내 의제들이 대학 공공성을 근거로 대학 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그 기저에는 대학교육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깔려 있다.
반면 울림의 주요 활동들은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하여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학 사회의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의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장애인 입학 전형이나 장애인 의무 고용률 준수를 위한 활동은 현재는 대학 내에 입학하거나 고용되지 못한 장애인들의 마땅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캠퍼스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캠퍼스를 넘어 운동을 매개로 대학 사회와 대학 바깥 사회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대학이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벌금을 내지 않고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은 공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공공성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학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학령 인구 감소 압력을 등에 업은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이 신입생 충원율이 떨어지는 대학을 쓸모없는 청소 대상으로 손쉽게 지목하는 지금, 대학이 사회에 져야 할 책임은 대학을 지키는 하나의 근거일 수 있다. 특히 이른바 ‘벚꽃 피는 순’으로 취약한 지역의 대학들이 먼저 구조 조정의 칼날에 직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학이 캠퍼스를 넘어 지역 사회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고 질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울림이 대학의 공공성을 매개로 다양한 의제들을 묶어 내면서 제기하는 대학의 책임에 대한 질문이 앞으로 어떤 활동으로 전개될지 기대하면서, 울림의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학생운동으로서의 학소위에 대한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대학의 위기와 학생운동으로서의 학소위
사진 설명. 2023년 5월 대동제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등 차별에 반대하는 ‘에이드사랑’ 활동을 했다.
강석남
울림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대학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정부 및 기성 언론을 포함해서 학령 인구 감소를 중심으로 대학 위기를 진단하는 담론들이 일반적이다. 울림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김연우
울림 입장에서는 단순히 학령 인구 감소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교내 단체 생활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모든 대학생 조직에 영향을 준다. 학생 수도 점점 줄고, 학생들의 기본적인 참여 의식이나 공동체 의식도 희미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주변을 보면 페미니즘 소모임도, 학과 학회나 학술 동아리도 인원이 잘 안 모여서 고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학령 인구 감소가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긴 했는데, 사실 그런 건 큰 경향성일 뿐이다. 울림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더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백래시나 무관심, 그리고 학내 논의가 전혀 활성화되지 않는 것 등에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학 밖에서 이야기하는 학령 인구 감소 담론은 울림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진 못하다.
강석남
조금 삐딱하게 질문해 보자면,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통폐합 압력에 직면한 지방 사립대는 학과 구조 조정이나 통폐합이 실질적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나? 울림이 학령 인구 감소보다 대학 내 학생 사회의 무기력에 더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경희대가 서울권 유명 사립대라서 가능한 진단은 아닐까?
김연우
일정 부분 동의한다. 너무 학벌주의적 관점일 수도 있고, 당연히 그런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울림은 학교 내부에 더 집중해야 하는 기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학내에서의 정치적인 담론이 사라지며 학생운동이 소멸되는 부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강석남
학생 자치 기구로서 학소위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희대 학생 사회 내부의 문제가 좀 더 중요한 의제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의 상황을 울림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연우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건 기존에 있던 전통적인 학생들의 활동이 사라지고 있단 점이다. 총학도 그렇고 단과대 학생회도 그렇고, 이제는 모두 다 정말 비정치화됐고 어떤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 사회 전체의 붕괴이고, 꼭 대학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것 같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뭔가 터져 나오고, 백래시나 혐오가 드러나고 또 이에 대한 분노와 저항 담론들이 나온다. 저희는 학생회 같은 공식적인 대표 기구가 부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울림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건 이렇게 공식적인 학생 자치 대표 기구가 부재하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다. 예를 들어 인권 관련 요구가 터져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학내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과정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조직적인 움직임을 띠지 못하고, 탈정치화·비정치화되거나 조직되지 않은 학생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래서 현재 대학은 학생들의 논의가 전개되는 공간이 되는 데 실패했다. 울림도 직접 부딪히고 있는 문제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도 모른다는 점 같다. 활동을 하면서 계속 알아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지만, 지금은 정말 갈피조차 못 잡겠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
강석남
이전의 인터뷰에서도 물었던 공통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울림은 학생운동인가?’라고 질문한다면?
김연우
‘학생운동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라고 답변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울림 내부에서도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길 많이 하고 논쟁도 오가곤 한다. 결국 저희가 내린 결론은, ‘학생운동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였다. 지금 학생 사회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1970~1980년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울림이 이렇게 하고 있는 활동들이 가치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이 될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마지막으로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감이 있다면?
김연우
일단 학생 사회가 이렇게 비정치화되는 상황에서 저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싸울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소위가 출범했어도 총여 해산의 원인이 된 백래시도 해결하지 못했다. 총여 해산이 페미니즘이 무너진 거라는 평가가 일부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희가 실패라고 하지 않는 건 학소위가 총여를 이어 나갔고 끝까지 싸울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마주하건 간에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럼 실패라는 끝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목소리가 우리의 목소리가 되고, 우리의 목소리를 모두의 목소리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이 학생 자치 기구가 된다면 지속 가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울림의 활동, 투쟁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