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연재]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 서한영교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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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 눈의 정치학, 눈빛의 교육학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야학 첫 수업 전날 밤. 출석부를 보며 학생들 얼굴과 이름을 짝 맞춰 달달 외웠다. 나름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첫 수업 때 출석부를 보지 않고 학생들 눈을 보며 이름을 맞춰 부를 때 서로 눈길이 트이는 그 분위기를 오랫동안 즐겨 왔다. 그날도 그랬다. 이름 n, 이름 o, 이름 d, 이름 e, 이름 u, 이름 l을 한 명씩 한 명씩 눈 맞춰 부르며 교실에 차오르는 상호 신뢰의 분위기를 오롯이 즐겼다. 좋았어. 오늘도 성공.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저기요.

저 안 불렀어요.

이름은 영애고 성은 이예요.

영화배우랑 이름이 같아요. 외우기 쉬운 이름이죠.

내 눈길이 가닿지 못한 곳에는, 주로 눈빛을 움직여 누워 생활하는 침대형 휠체어 이용자 눈빛, 이 있었다. 천장을 향하는 체위 때문인지 유난히 반짝이던 눈빛, 이 있었다. 여섯 평 좁은 교실에 고작 열 명뿐이었는데. 내가 익숙하게 보아 오던 시야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곳에 잊어버리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눈빛, 이 있었다. 그랬다. 눈빛, 은 꽤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ref]진한 글씨체로 인용된 문장은 모두 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이다. 노래 제목은 괄호 안에 넣었다.[/ref]

돌이 지났을 무렵, 의료 사고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게 되었다. 몸을 뒤집지도, 걷지도 못하게 된 눈빛, 은 식구들이 일터로 학교로 가 버리고 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누워서 지냈다. 근처에서 일하는 엄마가 잠깐 와서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워 주고 갔다. 볼일이 보고 싶어도 꾹꾹 참아야만 했다. 정 급할 때면 어쩔 수 없었다. 식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방구석에서 혼자 울다 잠들었다가 또 울다 잠들었다. 매일 눈이 팅팅 불어 있었다. 혼자 남은 집. 라디오를 혼자 끄거나 켤 수도 없어서 아침마다 엄마가 켜 주고 나갔다. 혼자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다가 또 듣고 따라 부르다 잠이 들곤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너무 많이 들어 가사들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 라디오를 통해 익힌 세계에는 노래와 온갖 사연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눈빛, 과 같은 사연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창밖의 여자)

입학 통지서가 집으로 왔다. 어떻게 학교를 보내냐고, 누가 학교에 데려가 주냐고. 학교에서 무슨 일 있으면 누가 쫓아가냐고. 눈빛, 에게 학교는 이미 까마득했다.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여덟 살, 장티푸스를 앓았다. 장티푸스 후유증으로 온몸이 떨리는 증상이 생겼다. 집에서는 병원에도 안 데려갔고 약국에서 신경안정제를 사다가 먹였다. 하루에 3~4번. 약이 독해 이가 다 빠졌다. 손발도 꼬이게 되었다. 몸도 아프고 맨날 떨려서 울었다. 약을 하도 먹어서 먹어도 먹어도 떨렸다. 아파 우니까 아빠가, 엄마가, 오빠가, 동생이 때렸다. 아파서 운다고 때렸다. 떤다고 때렸다. 겨울밤. 엄마가 이상하게 방문을 꼭 닫았다. “엄마, 왜 그래?”라고 했더니 “같이 죽자. 이렇게 살 바엔 같이 죽자”라고 하며 연탄을 피웠다. 그날 옆방에 사람이 있어 살 수 있었다. 삶은 이미 까마득했다.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들이 없어- (마도요)

집에서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고민을 나눴던 적도 없었다. 나와 통한다, 는 느낌은 조용필. 오직 조용필뿐이었다. 조용필의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외로워지고, 느닷없이 희망이 생겼다가, 새삼스레 위로받았고, 가뭇없는 사랑에 빠졌다. 눈빛, 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조용필만큼은 눈빛, 을 듣고 있는 듯했다.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 부르기. 눈빛, 의 첫 번째 꿈은 가수였다.

 

-어디에도 나는 없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집에 손님들이 올 때면 옆방으로 치워졌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했다. 명절 때에도 그랬다. 집안의 중요한 일정들에서 눈빛, 은 눈에 띄지 않는 옆방으로 치워져 있어야 했다. 집안 행사에 한 번도 동반되지 못했다. 눈빛, 은 숨겨져 있을 때의 그 느낌이 끔찍했다. 옆방에 치워졌을 때마다 눈빛, 은 벌컥벌컥 죽고 싶어졌다. 죽음과 가장 가까워졌던 순간. 그 느낌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쓸모없다고, 왜 살아야 하냐고,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냥 죽고 싶다’, ‘누가 와 가지고 죽여 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근데 죽는 것도 눈빛,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누가 와서 목 졸라 죽이든지, 칼로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이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사느니 차라리 당장 죽고 싶었다. 미래는 이미 까마득했다.

 

〈제1의눈이무섭다그리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눈. 조용히, 가만히, 순순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 갇혀 있기를 지시하는 눈. “어디에도 나는 없다”라는 구석진 감응의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눈.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는 죽음의 운명론을 오직 혼자 읊조리게 하는 눈.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들 없”는 곳으로 ‘처’박는 눈. 집구석에, 골방에, 방구석에 시설에 ‘처’박혀 있기를 바라는 눈. “몸도 불편한데 왜 출근 시간에 ‘처’기어 나와서 사람들 민폐야. 집에나 ‘처’박혀 있지.”(시민H) 거리에 나오기만 해도 걷기만 해도 금세 눈에 띄지만, 눈에 띄지 않기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계된 매끄러운 비장애인 문명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눈앞에서 꺼져. 사라져. 이게 뭐 하는 거야. 이게 정상이야?”(시민A) 눈 밖으로 치워지는 원인을 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이 내재한 문제로 만들어 온 눈. 몸이 불편하니까.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누구에게나 민폐니까.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 왜 하냐고. 존재 자체가 민폐야.”(시민T) 그러니까.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호’받으며. ‘봉사’받으며. ‘동정’받으며. ‘도움’받으며. 처박혀 있기를 권하는 눈. “도와줄게요. 도와줄 테니까 어서 지하철에서 내려!”(시민R) 보통이 아닌 몸을 가진 스스로를 저주하는 눈. 방구석, 집구석, 벽장 구석, 시설 구석의 풍경에 붙어 있는 두 개의 표어. 〈건전한 사회 참여〉와 〈자활 능력 회복〉.

 

〈제2의눈도무섭다그리오〉 

 

정상적 사회 참여를 위한 ‘교정’과 자활 능력 회복을 위한 ‘치유’를 통과할 수 있는 보통이 아닌 몸들은 ‘극복의 신화’ 속에서 모범 사례가 되어 숭배되고. “장애를 극복할 생각을 하란 말이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시민E) 그렇게 할 수 없는 신체들은 교정과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과 통제를 감내하며 혐오받고. “쓸모없는 것들 세금으로 겨우 살게 해 줬더니.”(시민D) ‘보호’라는 이름으로 처박혀 교정과 치유라는 이름으로 실행되는 ‘폭력’ 속에서 체득하는 ‘눈치’. 눈 안의 . 눈치 주는 대문자 ‘’. 비정상적인 것을 교정하고 치료하려는 . 자본주의-비장애중심-이성애중심-정상신체중심의 . 이데올로기로서의 눈. 쓸모없고, 무능력하고, 불구화(disablement)하는[ref]“우리 모두는 어떠한 관계, 즉 차별적, 억압적이고 불평등하며 부당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우리의 삶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도현 (2018), 〈위험, 장애화, 국가 : 안전할 권리에 대한 관계론적 성찰〉, 《세계인권선언 70년 연속토론회 :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자료집, 인권운동더하기, 10쪽.[/ref] . 그 안에 눈치 보는 . 보여지기 창피한 .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스스로 비정상으로 각인시키는 . 쓸모없다의 . 가치 없다는 . 죽고 싶다는 . 축 늘어지는 . “장애를 지닌 것으로 간주된 인간이 그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위치, 그리고 세계를 감각함으로써 세계의 규범을 체화하는 과정이자 체화된 결과라고 할 수[ref]전근배(2024), 〈탈시설장애인의 고립감연구〉, 대구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4쪽.[/ref]” 있는 .

 

〈제3의눈이창피하다그리오〉

 

그  안으로 구성되는 마음. 수치. 환멸. 우울.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마음. 눈빛, 을 불쌍하게 내려다보던 마음. 바쁜 시간에 집에 있지 왜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냐고 비난하며 내려다보던 마음. 창피를 주는 눈빛들이 조형해 낸 마음. “창피하더라고요. 보이는 게 창피하더라고요.”

 

<제4의눈은참담하다그리오〉

 

흑인해방운동가이자 작가 프란츠 파농은 자신이 마주했던 백인 지배 계급의 ‘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상 공간에서 “백인의 시선과 대면”한 프란츠 파농은 이렇게 썼다. 저들의 “몸짓, 태도, 흘깃거림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그저 “참담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아래 “차별적 인식은 피부에 각인되었다”. 이러한 각인은 “나와 세계의 결정적 구조”로 작동하여 “가차 없이 나를 가두고 (……) 나는 나를 대상으로 만들면서 내 존재로부터 멀리, 참으로 멀리 떨어트려졌다”.[ref][프란츠 파농, 노서경 옮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문학동네, 107~114쪽] 부분 재번역.[/ref] 프란츠 파농이 마주했던 그 . 몸 안으로 처박히는 . 눈 안으로 처박히는 . 영혼 안으로 처박히는 .

 

〈제5의눈은안된다그리오〉

 

“저처럼 힘이 없는 사람들은 차별과 눈치에 익숙해져서 ‘나는 못 할 거야’, ‘안 될 거야’, ‘여기서 그냥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잃는 게 사람에게는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박경인)

“장애인이 눈치가 빠르다고 하는데, 비장애인 중심 구조에서 장애인이 눈치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유진우)

 

〈제6의눈은땋아져있다그리오〉

 

제1의눈과 제2의눈과 제3의눈과 제4의눈과 제5의눈으로 바라본 풍경 속에는 장애인 친구의 눈? 장애인 학생의 눈? 장애인 동료의 눈? 장애인 애인의 눈? 장애인 가족의 눈? 눈 마주칠 수 없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에게 보이는 것, 우리가 보고 싶은 것,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땋아져 풍경을 이룬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미지의 세계)

2002년 봄. 눈빛, 이 노들야학에 처음 오던 날. “집 밖에 나와서 야학 차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저를 아주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사람들도 신기해했지만, 집 밖을 나서자 눈빛, 에게도 신기한 일들이 있었다. 라디오로 듣기만 하던 그 무수한 가사들이 체계를 갖춘 글자를 이룬다, 는 사실을 태어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한글 공부에 빠졌다. 눈빛, 은 한 글자 두 글자 손으로 써 가며 익히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한글을 따라 익혔다. 기역니은디귿을 배우는 동안 몇 명의 교사들이 바뀌고, 계절이 몇 번씩 바뀌는 동안에도 한글 공부는 눈빛, 의 속도대로 계속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글자 하나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발소. 한글을 배우고, 처음 읽은 글자는 이발소였다. 집 앞을 지나며 늘 보던 글자였는데 그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세계는 읽을거리들로 넘쳐 났다. 집 근처에 있던 구멍가게 이름이 조양마트, 인 것도 놀라웠다. 텔레비전 자막도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들어왔다. 세계의 해상도가 달라져 갔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네 내일이면 이 느낌이 변할런지 몰라도- (그대 숨결 속에서)

조금 더 나은 세계를, 그리고 조용필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여느 날처럼 〈여성시대〉 라디오를 듣다가 사연이 당첨되면 조용필 콘서트 티켓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나왔으니 조용필을 무조건 봐야 했다. 눈빛, 은 한글 수업을 진행하던 야학 교사를 어르고, 달래고, 꼬시고, 협박하고, 회유하여 〈여성시대〉에 사연[ref]사연 전문은 [홍은전(2016), 《노란들판의 꿈》, 봄날의 책, 156쪽]에 실려 있다.[/ref]을 보내게 했다. 우여(티켓 신청은 이미 마감되었다)와 곡절(제작진은 콘서트 기획처에 급히 연락해 공연 하루 전날 티켓을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끝에 조용필 콘서트 티켓이 도착했다. 조용필은 초대형 비둘기 날개 형태의 무대와 5톤 트럭 65대분의 공연 장비, 1,500여 명의 공연 스태프, 무대 길이 110m, 50대의 대형 서치라이트, 300여 대의 하우스 모니터로 마침내, 드디어, 끝끝내, 기어코 공연장에 도착한 눈빛, 을 맞이했다. 환호하고, 통곡하며 모든 노래를 다 함께 따라 불렀다.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그날 집에 가니 목이 다 쉬었어요.” 아직도 눈빛, 은 말한다. 한글을 배우고 가장 기뻤던 일은 조용필 콘서트에 가서 자막을 읽은 일이고, 단언컨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은 조용필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하나 저기 보이는 곳에- (아시아의 불꽃)

눈빛, 은 노들야학에 와 집회를 다니면서 신기한 눈빛을 보았다. 어디를 가도 막아서는 계단과 턱 앞에 드러누워 “턱을 없애라!” 외치는 장애인들의 눈빛을 보았다. 불쌍한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후원금 모으기 바쁜 복지재단과 정부를 상대로 “정치 수단으로 장애를 이용하지 말라!”는 장애인들의 눈빛을 보았다.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장애인에게 상을 주는 현장을 점거하여 “장애는 당신들의 드라마가 아닙니다” 외치는, 장애인을 가족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는 존재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짐짝이 아닙니다!” 외치는 장애인들의 눈빛을 보았다. 당당한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권리를 외치는 장애인들을 머리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경찰의 눈빛을 보았다. 끌려가고, 또 끌려가도 끝까지 지치지 않아 끝끝내 지지 않는 장애 해방 활동가들의 눈빛을 보았다. 장애인 교육권을 쟁취하기 위해 폭설이 내리는 천막 학교를 돌아가며 지키는 노들야학 교사들의 초췌한 눈빛을 보았다. 투쟁하는 삶을 통해 법이 제정되고, 제도가 바뀌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경사로가 설치되고…… 함께 싸워서, 세상이 바뀌는 것을 눈빛에 담았다. 중증장애인의 현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에 눈떠 갔다. 노들야학에 오고 나서 눈빛, 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투쟁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눈떠 갔다. 투쟁을 통해 좀 더 사랑할 만한 세계를 눈빛, 은 보고 싶었다.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고추잠자리)

눈빛, 은 처음으로 머리를 밀었다. 2006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중증장애인도 인간입니다. 더 이상 시설이나 집구석에 박혀서 짐승처럼 살 수 없습니다!! 사람답게, 사람처럼,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구호를 내걸고 39명의 장애인이 삭발했다. 눈빛, 도 그중 하나였다. 그날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잤다. 광화문에서 박스 깔고, 스티로폼을 깔고 누웠다. 태어나 첫 번째 외박이었다. 창살 없는 감옥 같았던 집 밖을 처음 나와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도 되는구나!” 안도했다. 눈빛, 은 삭발 투쟁 이후 후기를 남겼다. “바깥에도 많이 나오고 야학에 많이 오고, 야학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저 같은 중증장애인이 많이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공부 많이 하고 싶고, 여행도 많이 가고 싶습니다. 특히 조용필 콘서트 가고 싶습니다.” 세계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킬리만자로의 표범)

하지만 집에서는 야학에서 배운 ‘권리’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마흔 살이 넘은 눈빛, 을 네 살짜리 아이처럼 취급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세계’에 눈을 뜬 눈빛, 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싸움에 본격 돌입했다. 나날이 피 터지는 전쟁이었다. 그즈음 가족들은 자꾸 대드는 눈빛, 을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낼 마음을 먹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리려고 했다. 눈빛, 은 가족들과 한바탕 싸운 날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시설에 보내질까 봐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지만 싸움은 계속되었다. 세계의 농도가 짙어져 갔다.

 

-뜨거운 눈길로 언제나 하고픈 말- (나도 몰라)

동생 결혼식 날. 여느 날과 같이, 가족들은 10만 원을 눈빛, 에게 쥐여 주며 결혼식에 오지 말고 놀고 있으라, 고 했다. 여느 날과 같이, 보여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눈에 띄지 마라,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라, 는 말을 차마 넘어갈 수 없었다. 차근차근 준비했다. 강변테크노마트에 가서 몰래 모아 둔 돈으로 옷을 사고, 모든 가족이 예식장으로 떠난 빈집에 목욕 봉사를 불러 씻고, 화장하고, 옷 입고, 동생 결혼식장으로 활동지원사와 함께 갔다. 태어나 가족 행사는 처음이었다. 신부실에 앉아 있던 동생은 눈빛, 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눈빛, 의 어머니는 자지러지게 놀라며 나가라고, 나가라고, 눈에 띄지 말라고, 점점 뾰족해지는 눈으로 말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빛, 이 아니었다. “나, 끝까지 결혼식 다 보고 점심까지 먹고 갈 거야!” 세계의 밀도가 단단해졌다.

 

〈제7의눈빛이반짝인다그리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이동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하나하나 저기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고, 공부하고, 투쟁하고, 노동하며 “뜨거운 눈길로 언제나 하고픈 말”을 저질렀다.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 가며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는 세계. “반짝이는 눈망울”로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 부서진 그대로 반짝이는 미지의 세계. 기존에 익숙해진 눈빛에서는 보이지 않던, 들리지 않던, 만져지지 않던 것을 느끼고 감지하게 되는 사건으로서 “내 마음에 되살아나는 반짝이는 눈망울”. 감각적 각성. 사건적 반짝거림. 미지의 세계에서 “빛나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장애 해방 활동가들과 “뜨거운 눈길”로 차별의 세계를 조망하고 있는 야학의 교사들. 밖으로 나와 만나고 뒤섞이며 마주치게 되는 보통이 아닌 빳빳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제8의눈은빳빳하다그리오〉 

 

마땅히 고개 숙이며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해야 할 자들이 빳빳이 고개를 쳐들 때. 숨겨져야 할 사람들이 빳빳이 모습을 드러낼 때. 눈치의 네트워크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그 눈에 빳빳이 맞서며 만들어 가는 반짝이는 눈빛의 감정[ref]‘감정(emotion)’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인 emovere은 움직이다, 나가다, 뒤흔들다라는 뜻. ex(밖으로)-movere(나가다).[/ref]. 밖으로(ex) 나가(movere) 만나게 되는 세계의 눈빛을 맞춘다는 것.

 

〈제9의눈은빛난다그리오〉

 

깡마른 눈빛. 한순간에 재가 된 눈빛. 불타오르는 눈빛. 자식 잃은 눈빛. 땅에 파묻힌 눈빛. 목이 부러진 눈빛. 얼어붙은 눈빛.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기어가는 눈빛. 먼바다를 오래 들여다본 팽목항의 눈빛. 고공 농성 중인 크레인을 올려다보는 눈빛.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노들야학 교사들의 빳빳한 눈빛. 그 눈빛으로 조망되는 세계. “농성장을 지키고 선 노들야학 교사들의 눈빛들을 보고,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싸우지도 못하고, 시설이나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야학 교사들과 함께 집회하고, 투쟁하며 함께 싸워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교육자이자 작가인 조너선 코졸은 “교사 자신의 진정성과 살아 있는 신념은 보이지 않는 교육과정인 셈이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잊히지 않는 교훈이 될 것이다”[ref]조너선 코졸, 김명신 옮김(2011), 《교사로 산다는 것》, 양철북, 39~40쪽.[/ref]라고 썼다.

 

〈제10의눈은모여있다그리오〉

 

교실, 거리, 광장에서 바라본 눈빛 속에서 저항-투쟁-분노로 세계를 느끼는 세계감. 모꼬지, 농성장, 조용필 콘서트에서 바라본 눈빛 속에서 해방-기쁨-우정을 기반으로 한 세계를 그리는 세계상. 이론, 사례, 개념을 통해 바라본 눈빛 속에서 차별의 구조와 폭력의 기원을 파악해 나가며 세계를 다져 나가는 세계관. 세계는 감각, 상상, 인식으로 서로 세계감-세계상-세계관으로 분리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분리되지 않은 채 모여 있는 세계의 눈망울.

 

제11의눈은기울었다그리오〉

 

그러니까 이 눈망울. “ 동물, 아픈 어린이, 마을, 이 무리들, 실험실들, 도시 속의 이웃들, 산업과 경제들, 자연과 문화를 끝없이 관련짓는 생태계들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그물망에 연결된 실존들, 관계 맺고 있는 복수의 존재들”[ref]도나 해러웨이, 최유미 옮김(2022), 《종과 종이 만날 때》, 갈무리, 94쪽. 강조는 인용자.[/ref]과 바로 곳에, 바로 곁에, 눈빛, 비인간, 장애, 퀴어들과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구체적으로 관련되고, 실존적으로 이어진 타자들과 합류하고 함께 세계를 보는 눈망울. 한쪽으로 기울어진 눈망울. 편파적인 눈망울. “억압받는 자와 장애인의 편에 서 있”(김도현)는 눈망울.

 

〈제12의눈빛은부분적이다그리오〉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눈의 정치학에 대해서 말하며, “광학은 입장성의 정치다. (……) 보는 방법에 관한 투쟁”이라고 말한다. “보다 확장된 시각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특정한 어떤 곳에 자리하는 것이다.” 어떤 곳에 자리한다는 것. 그 자리에서 입장을 가진 시선을 가진다는 것. “위로부터의 관점이 아니라 부분적 관점들과 머뭇거리는 목소리들이 집단적 주체의 입장으로 합류하는 것(……) 특정한 곳에서부터 보는 관점을 시각화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지금 바로 여기의 고유한 관점이라는 것. 본다는 것. 언제나 부분적인 것들의 연결 속에서 탄생하는 “이중적 시각을 가진 다중 주체”가 된다는 것. 그것은 세계를 “재시각화하는 데 참여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이질적 다수성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장애-젠더-인종-계급-세대-지역……의 위치성에 따라 “특수한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구축”[ref]도나 해러웨이, 황의선·임옥희 옮김(2023),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아르떼, 351~356쪽.[/ref]되는 다차원적인 눈ㄴㅜ. 한눈에 전체를 조망하겠다는 대문자 의 절대성을 벗어나 오직 부분적인 것. 부분적인 연결이라는 눈ㄴㅜ의 입장을 구축한다는 거. 시력의 동맹체로서 눈ㄴㅜ들, 눈ㄴㅜ빛들, 눈ㄴㅜ망울들. 반짝이는 눈ㄴㅜ망울이 내 마음의 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머물 곳을 찾아서 낯선 곳을 찾아서- (미지의 세계)

코로나19 팬데믹이 옅어지던 눈빛, 의 생일날. 눈빛, 은 야학 학생과 교사들을 교실로 불러 모았다. 음료와 다과들이 접시에 차곡 담겨 있었다. 눈빛, 은 조용필 노래를 틀었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ref]괄호 안의 노랫말은 조용필의 노래 〈꿈〉에서 따왔다.[/ref] “제가 여러분들게 말할 게 있습니다. 제가 드디어 자립을 결심했습니다!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어요. 6개월 뒤에 발표가 난대요. 안 되면 될 때까지 신청할 거니까, 이번엔 기필코 자립을 해 내겠습니다!” (🎵꿈을 찾아 여기에🎵)

박수와 환호의 반짝임이 쏟아졌다. 눈빛, 이 자립 발표를 하기까지 얼마간 마음을 다져 왔는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자립하면 “너 나가면 죽는다”라고 겁주고, (🎵괴롭고도 험한🎵) 한 달 생활비로 2~3만 원씩 쓰며 청약통장에 돈을 모으고, 장애인콜택시 비용도 아까워서 늘 지하철 타고 다니고, (🎵이 길을 왔는데🎵) 월급 받으면 고스란히 자립자금으로 모으며 자립을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야학 교사들 하나하나 붙잡아 가며 자립 생활을 했을 때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들을 살피고, 지원받을 수 있는 임대주택과 장애인지원주택 일정들을 점검하고, 주변 부동산 시세와 모아 둔 돈을 꼼꼼하게 견주어 가며 (🎵어디가 늪인지🎵) 자립의 자리를 살폈다. 육십을 앞둔 눈빛, 이었다.

자립 발표를 마치고 눈빛, 은 조용필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고에서 미러볼을 꺼내고 마이크를 꺼냈다. 교실 불이 꺼지고 순식간에 눈빛, 의 자립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조용필이 눈빛, 의 노랫소리에 코러스를 맞추었다.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 (미지의 세계)

해피엔딩이었으면 했지만 그.런.데. 근사한 결과였으면 했지만 그.런.데. 간절한 것을 꼭 이룰 수 있기를 기원했는데 그.런.데…… 눈빛, 이 자립자금을 모으며 오롯한 삶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한 주요한 근거인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2024년 1월부로 서울시장이 폐지하면서 눈빛, 의 자립 준비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최중증장애인 400명이 해고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경제와 자본 중심의 시장에서 능력도, 쓸모도 없다는 이.유.로. 최중증장애인들의 생존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85일간의 점거 농성을 통해 쟁취한 ‘노동할 권리’를 날려 버린 것이다.[ref]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고, 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캠페인 하는 ‘권리 생산’ 노동으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확대하거나 신설하는 추세인 데 반하여 유독 서울시만 아예 없애 버렸다.[/ref] 눈빛, 의 자립을 막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장애인지원주택 입주 자격에 ‘와상 등으로 24시간 돌봄 필요자’를 제외하였다. 이러한 선정 기준에 따르면 침대형 휠체어를 이용하는 와상장애인 눈빛, 은 입주 제외 대상이다. 누워서 생활하거나,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자들은 지원할 때 너무 힘들어서 제외한다는 말과 같다. 명백한 차별적 정책 기준이다. 장애인지원주택 정책은 자립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온 최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데 필요한 모범적 제도로 평가받아 온 정책이었다. 그런데 2024년 발표된 기준에 따르면 눈빛, 은 지원조차 하지 못한다. “이 세상 어디가 늪인지” 정확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럼.에.도. 투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자립하고 싶었다. 이에 눈빛, 은 “인권위는 서울시의 중증장애인의 차별배제정책에 대해 시정 권고하라!”라는 진정서(〈사건번호: 24-진정-0101900〉)를 직접 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했다.

 

-머물 곳을 찾아서 낯선 곳을 찾아가서 미래를 만드는- (미지의 세계)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가고 싶은 데 가는 오롯한 자립을 향해 눈빛, 은 두 번째 삭발을 하였다. “저는 이제 곧 자립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자립하고 난 뒤가 겁나기는 합니다. 자립하고 나서는 내가 알아서 공과금도 내야 하고 방세도 내야 하고. 활동보조 없는 날은 나 혼자 자야 하고. 옛날에 뉴스에서 보니까 어떤 장애인이 겨울에 동파돼서 죽었던 게 계속 기억이 납니다. 나도 자립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있을 텐데, 불이라도 나거나 동파되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될까 봐 겁이 납니다. 어떤 장애인은 활동보조가 없어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전동 휠체어의 배터리가 터져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다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삭발을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제13의눈빛은물러서지않겠다그리오〉

 

바리깡 돌아가는 소리. 사다리에 쇠사슬이 걸리는 소리. 발언을 마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 소리에 거주하는 눈빛들. 지난 밤 잠을 설친 뒤에야 이 자리에 있다고.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명확해지는 것. 지금 여기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 있다는 거. 세계를 사랑한다, 는 표현을 투쟁으로 한다는 거.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는 예감이 들었다.

들 노동자이자 정치학자 채효정은 정치적 자리에 대해 말하며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이 세계에 지분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자’이며, ‘아무것도 아닌 자’로서 자신을 주체화하는 이 자기의식으로부터 분명 어떤 새로운 ‘정치적 존재’가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그 정치적 존재의 자리,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아간 자리가 아니라 물러서지 않는 그 자리가 해방의 자리다.”[ref]채효정(2021), 《먼지의 말》, 포도밭출판사.[/ref]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서다. 별거 아닌 게 아니다. 그게 전부라서 그렇다.

물러서지 않는 눈빛, 은 말했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자! 우리는 끝까지 집회도 하고, 지하철도 탈 거니까 알아서 해라! 장애인은 30년이 넘게 기다려 왔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 장애인들이 죽어 가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란 거냐. 반드시 응징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투쟁!”[ref]원고를 마감하던 날. 눈빛, 이 신청한 장애인임대주택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호들갑스럽게 온갖 방정을 다 떨었다. 그저 운 좋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지난 22년간 안전하게 거주할 권리, 자립 생활할 권리를 향한 눈빛, 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사건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온전히 누리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ref]


〈400인의눈빛이도로로질주하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 철회·원직복직 투쟁 기금 모금*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중증장애인 400명을 해고했습니다. 쓸모를 따지는 세계에 맞서 해고 철회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복원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이지만 어둠을 뚫고 반드시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쟁취하겠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투쟁할 수 있도록 투쟁 기금 모금에 함께해 주십시오. 모금된 금액은 해고 노동자의 생계 지원을 위한 고용 기금과 투쟁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권리중심 최중증장애인 해고 노동자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모금 계좌 국민은행 598601-04-193974(사단법인 노란들판)

온라인 후원 신청서 https://bit.ly/해고복직투쟁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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