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연재] 들리지 않는 목소리,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 | 발랑(신선웅)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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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청소년의 시좌에서 - 교육복지 현장의 이야기 ① 

 

들리지 않는 목소리,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

교실 밖으로 밀려나는 학생들


발랑(신선웅)

woong_51@hanmail.net

관악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연재 순서

① 들리지 않는 목소리,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 –교실 밖으로 밀려나는 학생들

② 전혀 다른 목소리, 학부모와 청소년 –가정에서 안녕하지 않은 학생들

③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상담실 아닌 곳을 찾는 학생들

④ 이해의 영역이 아닌 연대의 영역 –지금도 교실을 지켜 내는 교사분들께

⑤ 잊고 지내는 당연한 것의 부재 -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님들께

⑥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 –구조적 변화와 모두의 연대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현재 지역교육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로 공교육 안에 있는 아동·청소년을 만난다. 대부분 교육 취약계층의 학생이고 또한 상당수 어려운 환경의 아동·청소년이다.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거나 학교생활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찾고 발견하고 가정과 학교와 자치구와 지역 기관과 소통하면서 그들을 함께 살핀다.

교육복지사업은 2003년부터 중앙 정부에서 시범 사업으로 시작하여, 현재 서울시에서는 자치구별로 25개 지역 교육복지센터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ref]서울의 지역교육복지센터는 풍부한 지역 기관을 활용하여 학교 교육 복지의 전달 체계를 개선할 목적으로 2012년에 설립된 서울교육의 고유한 교육복지 모델이다.(2019 서울지역교육복지센터 발전방안 토론회 자료집)[/ref] 서울형 교육복지사업에서 학교는 ‘거점학교’와 ‘일반학교’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교육복지 전문 인력 배치 여부가 핵심인데 ‘거점학교’에는 학교 안에 ‘지역사회교육전문가’라는 이름의 교육복지 전문 인력이 배치되고, ‘일반학교’는 그렇지 않다.

거점학교와 일반학교를 가르는 기준은 재학생 중 법정저소득학생의 인원수이다. 법정저소득학생에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법정차상위계층이 포함된다. 2023년도 기준으로 36명 이상의 법정저소득학생이 있는 경우가 거점학교 지정 요건이었다. 전교생 수가 24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인 경우 가중치가 적용되며, 지역적 균형을 위해 자치구별, 학교급별로 초등과 중등 각 한 학교씩 우선 지정을 하기도 한다. 거점학교와 일반학교는 전문 인력의 배치 여부 외에 서울시교육청에서 교부되는 예산 규모에도 차이가 있다. 현재 서울시는 전체 공립 학교를 교육복지 사업 학교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하다가 2022년 시범 운영을 거쳐 2023년부터 고등학교로 대상을 확장시켰다. 거점학교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한하여 지정되었던 반면, 2024년 처음으로 고등학교 한 곳이 거점학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지역교육복지센터는해당 자치구의 일반학교를 중점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교육복지의 핵심 현장은 학교이다. 경제 취약, 문화 취약, 적응 취약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동·청소년을 찾고 만나고 지원한다. 경제 취약 학생은 말 그대로 가정 내에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이다. 법정저소득가정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교육비[ref]교육비와 교육급여 : 저소득층 초중고 학생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배움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2조, 「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 4~10에 근거하여 매년 지급하는 지원금. 교육급여는 가구별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에서 받을 수 있고, 교육급여는 고교 학비, 급식비,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인터넷 통신비, 수학여행비 등 수익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비를 일부 지원해 주는 제도로써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은 중위소득 80% 이하, 그 외는 중위소득 60% 이하가 기준이 된다.[/ref] 지원 학생과 기타 경제적 어려움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여 담임 교사가 추천한 학생도 포함된다. 문화 취약 학생은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외국인, 난민인정자 등 담임 교사가 추천한 학생을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적응 취약 학생은 그 외로 정서 또는 학습에 있어서 적응이 어려운 이유로 담임 교사가 추천한 학생을 말한다.

경제 취약, 문화 취약, 적응 취약 세 가지 영역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담임 교사의 추천’이다. 서울형 교육복지사업에서는 교육 취약계층의 학생을 지원하고자 함에 있어 그 대상을 어떠한 절대적 기준 안에 있는 아동·청소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법적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담임 교사가 추천하도록 하여 가능하면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찾고 발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서울형 교육복지의 방향이다. 그렇다 보니 담임 교사의 역할이 주요할 수밖에 없다. 교육복지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거점학교라 하더라도 한 학교에서 전문 인력 1명이 전교생을 살피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각 학급을 담당하는 담임 교사가 학생의 생활을 관심 있게 살피고 학생 또는 학부모 상담 등을 면밀하게 진행할 때 가능한 일이다. 교육복지 전문 인력이 배치되지 않는 일반학교에서는 담임 교사의 역할이 더욱 주요해진다. 한 자치구 안에 일반학교는 적게는 10여 개에서 많게는 70여 개에 이른다. 교육복지센터는 교육복지 전문 인력이 학교 밖에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교육복지센터에 종사하는 4~6명의 인력이 자치구 안에 있는 모든 일반학교를 속속들이 살피기 어렵다. 결국 한 학교에서 교육복지 담당 교사가, 한 학급에서 담임 교사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학생에게 관심도가 높은가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지역교육복지센터와 아동·청소년 한 사람과의 만남이 주로 학교에서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센터로 의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이와 연결된다. 학교에서 교육복지 담당 교사나 담임 교사가 학생을 의뢰하면, 센터는 한 학생과의 만남이 시작되고, 학교와 지역 기관과 자치구 사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자원을 찾고 연결한다. 그렇다 보니 학교와 가정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센터의 주요 역할이다. 학생의 신분을 한 아동 또는 청소년 한 사람이 잘 살아 내기 위해 학교를 살피고 가정을 살피며 지역 사회를 살핀다. 그리고 그 아동·청소년 당사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찾고 연결하며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확인한다. 신체, 심리·정서, 가정 환경, 학교 환경, 지역 환경, 강점, 욕구 등 무엇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기는 어렵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균형을 이뤄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복지센터는 한 사람의 아동·청소년에게 맞춤형으로, 그리고 통합적으로 교육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활동한다. 결국 우리는 학생과 가정의 학부모와 학교의 교사와 지역 기관의 종사자를 두루 만난다.

‘나는 현재 지역교육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문장에 대한 소개가 꽤 길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복지가 시작되고 20년이 지난 지금, 지역교육복지센터 사업이 시작되고 12년이 지난 지금 이 현장 안에 내가 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동·청소년을 매일 생생하게 만나고 있기에 난 이곳을 ‘현장’이라고 부른다. 아동과 청소년, 그들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교육복지 현장에서 수많은 질문을 해 왔다. 아동·청소년 그들은 누구인지, 교육복지란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그들이 행복한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답을 찾는 시간을 보냈다. 반복되는 우연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교육복지센터에 몸담게 되었고, 우연히 교육공동체 벗을 알게 되었고, 우연히 교육복지 현장의 이야기를 벗과 나누게 되었다. 아동·청소년과 시선을 맞춰 온 교육복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고 소통하면서 깊고 넓게 이어질 인연을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 아동·청소년에게 이 세상, 이 사회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아 본다.

 

누군가의 오해, 무언가의 진실

 

“가정 형편이 어렵더라도 자녀 교육만은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학교폭력 같은 문제 일으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교육이 잘 안 되는 아이들 아닌가요?”

어느 학부모와 면담 중에 듣게 된 말이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ref]이하 아동과 청소년을 모두 포함하여 청소년으로 칭한다.[/ref]들 때문에 학교폭력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오해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학부모 또는 교사 집단을 만나 보면 학교폭력에 대한, 그리고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 나 역시 학교와 청소년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알게 되기 전까지 상당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와 청소년을 가까이 대하면서 수많은 오해가 이 사회의 실상을 상당 부분 가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실의 조각을 알기 위해서는 거대한 오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아야 했다.

교육복지센터에서 학교와 학생을 지원하면서 그들의 이슈를 알게 된다. 학교폭력도 그렇다. 학교폭력은 공식적인 처리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건만이 전부가 아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잠재워지는 건이 수없이 많고, 그 안에서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또한 학교 안에서의 학교폭력전담기구[ref]「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6조.[/ref] 또는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ref]「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ref]를 거친 다음에도 끝나지 않은 싸움들이 있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 오늘의 가해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되고,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가 된다. 이 모호한 관계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학생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른 양상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돈과 힘을 가진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은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태도와 방법이 달라진다.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청소년은 어떤 차별을 겪을까. 그리고 그 차이는 청소년의 삶에 어떠한 차이로 나타날까.

 

학교라는 작지만 거대한 사회

 

한국 사회는 가구의 소득 격차 양극화가 더욱 뚜렷하게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ref]“한국 소득 불평등, OECD 2번째로 빠르다”, 〈한겨레〉, 2023년 4월 10일.[/ref] 소득 격차의 양극화 현상은 학교 안에서도 나타난다. 작지만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집단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지켜야 할 규범이 있으며, 그곳을 이루는 가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규모는 작은 것 같지만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범주는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고려할 때 생각보다 거대하다. 그중 한 가지 단면으로, 학생이 속한 가정의 환경적 요인이 또래 관계 안에서 힘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힘은 비단 학생 간의 관계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까지도 연결되어 작용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서 어려운 환경의 학생이 겪게 된 과정으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충동에 대한 조절이 어려운 청소년이 있다. 교실 안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어 책상을 넘어뜨리고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했다. 교사는 청소년에게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교실 밖에 있다가 올 것을 제안했으나 청소년은 거부했다. 본인에게는 학습권이 있기 때문에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 일은 학교폭력 건으로 진행되었고, 교사는 학급 청소년들 전체를 대상으로 화해와 해결의 방안을 찾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학급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청소년 때문에 무서워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여론이 모아졌다. 이 청소년은 일정 기간 학교에 등교하지 않을 것을 요구받아 학급이 진정될 때까지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전학 등의 요구도 있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문제가 된 상황을 보자면 충동에 대한 조절이 어려운 청소년이 일으킨 사건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누구도 청소년의 입장에 대해서는 묻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청소년은 성장 과정 안에서 가정이 안정적 환경은 아니었다.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심리·정서적으로도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우울감과 충동 조절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하는지 몰랐다. 잘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본 경험도 적고 실제로 해 본 적도 없었다. 인과 관계가 성립되어 일어난 일이지,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사과하고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가정 상황이 경제적, 심리·정서적, 문화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을 만나 보았을 때,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고 조절할 수 없는 충동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양육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갈등 상황을 해결하거나 마음이 어려운 상황을 잘 해결해 내는 과정을 보지 못했거나, 다소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만 보고 자라기도 한다. 부정적인 경험이 쌓인 상태, 혹은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터득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양육자가 보여 준 삶과 반대되는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큰 힘이 필요한 일이다. 비유하자면 지구에서 중력을 거스르고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몸을 띄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하지 않으나 상당한 노력과 애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끊어 낼 수 없는 현실의 고리

 

교육복지 현장에 있으면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을 만나 대화하고 가정 방문을 하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 학교와 가정과 지역 사회가 교육복지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통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 처한 배경은 경제적인 상황 이상의 범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가지고 싶은 걸 살 수 없는 정도라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 때마다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 일,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교통비를 고민해야 하는 일, 추위와 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오롯이 견뎌야 하는 일,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버거운데 학업을 이어 가고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 겪고 살아내는 삶은 실제로 어떠할까.

우선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 소득 격차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며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버텨 내야 한다. 극빈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이나 역할에 있어서 불균형과 부재가 있다. 이 때문에 사소한 문화 활동을 하거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용돈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도 있다. 생계 유지가 위태로운 가정이라면 최소한의 금전적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친구들과 떡볶이, 마라탕, 햄버거를 사 먹는 일,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일, 배우고 싶은 영역의 학원을 가 보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필요한 교재나 교구, 한겨울의 패딩이나 간절기의 얇은 겉옷 같은 것을 사기도 어렵다. 실제로 특성화고 메이크업과에 다니지만 기초 화장품조차 마련할 수 없었던 학생, 수학여행 비용은 지원을 받아서 낼 수 있었지만 여행 일정 동안 갈아입을 옷과 속옷이 마땅치 않아서 수학여행을 포기한 학생도 있었다.

형편이 그렇다 보니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강점과 적성을 발견하더라도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잘하는 일을 통해 성취를 느끼거나 타인에게 인정받아 본 경험도 적다. 학교에서 늘 주목받는 자리에는 학업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나아가는 환경에서 성취를 맛보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은 위축되고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학교에 가기 싫고 가족이나 친구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으며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가정의 심리적·물리적 여건이 청소년의 우울을 촉발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ref]김성일·정용철(2001), 〈청소년의 우울성향과 가정환경의 관계〉, 《한국청소년연구》, 5~28쪽.[/ref]라는 연구 결과와 연결되는 현실 이야기들이다.

때로는 학습이 어려운 청소년의 학부모를 만나 보면, 부모 또는 조부모까지도 소통이 어렵고 어떠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조심스럽지만 정서적, 정신적, 지능에 대한 발달 부분에 있어서도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경우들이 보이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이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있는 상황이라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생명을 지켜 내야 하는 일이 먼저가 된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이 겪는 이러한 상황들은 개인이나 개별 가정이 해결하기 힘들다. 사회 구조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 고리를 끊어 내기 어렵다. 정부 지원을 받는 가정이라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생명을 지켜 내는 일이 가장 우선이 된다. 살아 내야 하고, 버텨 내야 하고, 결국은 생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의 학업, 또래 관계, 심리적 안정, 정신 건강, 진로, 문화 활동 등은 계속해서 나중으로 밀려나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양상들이 일부 청소년만 겪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복지 현장에서 마주하는 청소년들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은 우울, 무기력, 자해, 폭력, 등교 거부 등의 이슈를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현상은 온·오프라인 성폭력 피해, 임신과 출산, 학교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폭력 사건, 자살 시도 등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위기의 상황에 놓인 청소년의 가정을 대상으로 부모 교육이나 자조 모임을 열어 보지만 성공할 확률은 낮다. 여기에서 성공이란 대상자가 변화되는 정도가 아니다. 그 대상인 학부모, 양육자가 제시간에 늦더라도 참석하는 것을 성공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다시 말해, 청소년의 어려움은 단지 그 개인의 어려움이 아니라, 그 가정 전체의 어려움이다. 학부모가 힘을 잃었을 때 자녀 역시 힘을 잃는다.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존재

 

다시 학교폭력에 대한 이슈로 돌아가고자 한다. 학교 안에서 갈등 상황이 일어났을 때 돈과 힘을 가진 가정은 자녀를 대신하여 학부모가 그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한다. 내 아이가 가해자 또는 피해자 어느 입장이라면,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낼 뿐이다. 내 아이를 보호하고, 유리한 입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제압한다. 학교에 가기 무서워한다면 학급의 다른 학부모들과 힘을 모아 원인이 되는 학생을 몰아내고자 한다. 교사를 넘어 교감과 교장을 설득한다. 내 아이가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문제를 키우지 않고 최대한 조용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애쓴다. 공식적으로는 교사와 피해 학생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거나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학교폭력 사안에서 변호사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이색적인 일도 아니다. 반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은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말하지 못하고, 이를 대신해서 말해 줄 존재조차 없다.

앞에서 등장한 충동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떠올려 보자.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들의 부모들이 힘을 모았다.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 청소년이 있는 학교에는 무서워서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등교를 못 하게 할 방법을 찾고 강제로 전학을 보낼 방법을 찾기도 했다. 강력하고 확실한 결론을 요구하는 다수가 여론을 형성하고 힘을 실었다. 반면 가해자의 입장이 된 청소년의 학부모는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잘못을 했다고 하니, 학교에서 당분간 진정이 될 때까지 등교를 하지 말아 달라고 하니, 교외 체험 학습 기간으로 아이를 가정에 둘 뿐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들끓는 분위기가 진정되기를 바랐다.

학교 안에서의 갈등 상황을 마주하는 교사의 입장은 어떠할까. 이 가운데 교사는 다른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 다수의 학부모가 자녀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입장을 무엇으로 반박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사는 본인이 맡은 학급만은 평화롭고 조용하기를 바란다. 실제로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사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도 일어난다. 소위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는 학교 현장에 가 보았을 때, 학급의 담임 교사는 병가 또는 휴직 등으로 학교에 없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한 가지 맥락으로 말할 수 없지만, 교사 역시 난감한 상황이라는 건 분명하다. 학교에서 학생과 함께해야 할 교사가 견디지 못한다. 혹은 교사와 다수의 학생이 견디기 위해 문제를 일으켰다고 지목되는 학생을 다른 학교나 학교 밖으로 내보내고자 한다. 그래서
1년에 몇 번씩은 우리 귀를 의심하게 하는 요청이 들어온다. 문제가 되는 학생을 전학 보내려고 한다거나 대안교육이 그에게 더 맞는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 줄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장면이 있다. 충동을 조절하기 어려웠던, 학교폭력으로 규정된 사안에서 가해자가 된 그 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권[ref]원하는 것을 학습할 권리 및 학습을 위하여 필요한 교육을 요구할 권리(교육학용어사전).[/ref]을 주장하며 교실 밖으로 나갈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교사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 혼란스러워진 교실을 안정시키고자 그 청소년을 분리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분리되는 순간, 어떤 이유에서 그 일이 일어났더라도 교실 밖으로 분리당한 청소년이 명백한 가해자가 된다. 청소년은 혼자였고 작은 목소리를 가진 소수자였지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안타깝게도 청소년이, 특히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어떠할까.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학부모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녀를 다시 학교로 보내 본다. 부디 큰 사고는 치지 않기를, 조용하게 학교에 다녀오기를. 그 사이에 이 청소년을 더 이상 등교하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학교로 보낼 방법을 찾지 못한 학부모와 교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소란스러운, 혹은 문제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그렇지만 강력한 한 가지 마음으로 주시한다. 다시 한 번만 더 사건이 일어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그 존재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 곳이 학교가 되어 버렸다.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형편이 좋지 않을 때 수많은 잣대가 형성된다. 큰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되고, 조금이라도 폭력적이어서는 안 되며, 장애가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충동 조절이 안 되어서는 안 되며, 지능이나 집중력이 낮아도 수업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 무엇 하나라도 안 되는 것을 함으로써 교사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교실, 그 학교 안에 있을 수 없다. 보통은 왜 그랬는지 묻는 사람도 없으며, 말하더라도 들어 주지 않으며, 대개는 말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앞서 등장했던 한 문장을 기억하고자 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에게도 마땅히 이유가 있다.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청소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청소년이 이 세대를 이어 갈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이유를 묻고, 듣고, 알아야 한다. 청소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면, 마음 통하게 대화하는 대상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어서 연재되는 글을 통해 누구도 묻지 않고, 듣지 않으며, 그래서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청소년이 숨 쉬고 나아가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같이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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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