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충북 괴산
삶의 방향을 찾고, 나를 이해하고, 관계망을 만드는 학교
- 목도나루학교 개교 후 첫해를 마치며

글
김석규
klsukkyu@naver.com
충북 괴산 목도나루학교 교사
들어가며
2023년 3월, 전국 유일의 공립 기숙형 1년제 전환기 교육 대안학교인 목도나루학교가 개교하였다. 2018년부터 충북교육청에서 전환기학교개교준비TF를 만들어 교사들의 연구 모임, 덴마크 애프터스콜레 현지 탐방을 했고, 목도고등학교 폐교 및 리모델링 공사 등을 거쳐 목도나루학교가 만들어졌다. 서울의 오디세이학교와 경남의 창원자유학교가 우리보다 5년 이상 먼저 개교했지만 공립 기숙형으로는 유일하다. 사립 비인가 애프터스콜레 모델인 강화도 꿈틀리인생학교(2024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음) 정승관 전 교장의 말씀대로, 기숙형이어야 공동체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기회를 100배는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1,000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이 기록을 읽은 교사, 활동가 들이 목도나루학교와 같은 전환기 교육 기관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그럼으로써 그 수료생들이 고 2~3학년 때 자신의 지향을 이어 가도록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멈추지 않기를 기원한다.
목도나루학교의 학생들, 교사들이 평가회를 갖고 작성한 평가서가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선 그런 공식 문서와는 별개로 개인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학교 내부 평가회에서는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별로 평가했지, 비전이나 목표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과 연대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
2023년 3월 6일 오전 10시에 목도나루학교 다목적실에 충북 전역에서 온 고1 학생 24명이 11명의 교사와 배움의 공동체를 시작했다. 3월 8일부터 제주도에서 8박 9일 동안 ‘시작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결속을 다지고 배움계획서를 만들었다. 학교 건물이 공사 중이고 식당에서 급식을 할 수 없어서 떠난 긴 여행이었다. 삼달다방이라는 민박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 먹으면서 밤 늦게까지 토론하여 각자의 배움계획서를 만들었다. 보통의 수학여행과 달리 토론을 길게 했고, 때때로 4.3 평화 기행과 자유 여행, 한라산 등반을 했다. 그러면서 목도나루학교의 철학과 원칙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 각자의 배움계획서를 완성하고 3월 19일 부모님들을 모시고 발표하였다. 발표회 자리에서는 한 달도 안 돼 쑤욱 자란 자녀들의 모습에 대견해하며 부모님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누구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고 끝까지 듣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3월 마지막 주부터 시간표대로 수업 일정을 시작했다. 교사들은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아침 산책, 하루 열기, 하루 닫기와 같은 반복되는 일과를 잘 운영하려고 했다. 월요일 오후 3시간의 ‘모두 모임’에서는 어떤 주제로 토론할지 학생들이 접수하고 참여하는 의사 결정 방식을 학교의 문화로 만들어 갔다. 학생회장 선거를 할 때는 4명의 회장, 부회장 후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서 ‘임원 없는 학생회’를 해 보자는 신선한 제안을 해서 반가웠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어떤 행사를 준비할 경우에는 준비 모임을 구성해서 했다. 골고루 책임을 분담하니 자연스레 리더십 경험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도 학생 자치 원칙을 꾸준히 고민하면서 지켜 나가려고 하는 학생회 임원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기 주도성을 발휘하는 배움을 위하여 프로젝트 수업과 동아리 활동 이외에 저녁 식사 후 묵학 시간을 배치하였다. 조용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으로 책을 읽거나 성찰 노트를 쓰도록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휴대전화를 마음껏 하려고 했다. 그래서 2학기에는 묵학 시간을 저녁 활동 시간으로 바꾸어 폭넓게 취미와 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몸 놀이 특강을 10회 차 정도 배치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고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와 습관에 의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신체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시도하였다. 화요일 저녁마다 하는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에 더 관심을 보이는 학생도 많았다.
프로젝트 수업은 봄 학기 주제를 ‘목도나루학교 주변 마을 알아보기’로 정하였다. 누구를 인터뷰할지 어떤 곳을 찾아갈지 학생들이 정하고 교사는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 결과를 감당하면서 배우게 하였는데 예를 들면, ‘맛집 찾기’로 주제를 정한 모둠에서 식당 주인들에게 “어느 집이 맛집인가요?”라고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주인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하다니 도대체 생각이 없다”라는 핀잔을 교사도 같이 들어야 했다.
여름 학기에는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여 모둠별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경험 부족 때문인지, 너무 자발성을 강조해서인지 사회 참여 학습 수준으로 하는 사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젝트 주제를 정하는 단계에서 개인들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서너 차례 바꾸다 보니 정작 프로젝트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한 모둠은 ‘동물권과 동물 복지’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학교에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가 여러 문제에 직면하면서 ‘유치원 아이들과 놀아 주기’로 변경, 근처 유치원을 섭외하였다. 프로젝트 발표회에 유치원 교사, 학부모, 아이 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이 격려를 받긴 했지만, 이벤트를 하나 기획하고 수행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존중과 배려를 익힌다’는 목표를 가진 기숙사 생활은 어떠했을까? 학기 초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 4월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 같다. 밤 9시에 하루 닫기 시간이 끝나면 휴게실에 모여서 컵라면과 새우깡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다가 취침 시간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소등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도 침대에 누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사감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잠을 자라고 말해도 새벽 2시를 넘기곤 한다. 룸메이트를 추첨으로 뽑아서 한 달에 한 번 바꾸어 주는데 친한 아이들끼리 방을 옮겨 다니며 노느라 그런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7시 20분 아침 운동 시간에 나오지 못하거나 아침 식사를 거르는 건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아침 식사는 당번 교사와 동료 학생들이 누룽지, 주먹밥, 샌드위치 등을 준비하는데, 잠의 유혹이 강한 것 같다. 2학기부터 메뉴를 갈비탕, 오삼 불고기, 만두와 흰쌀밥으로 바꾸었지만 아침 식사 인원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아침 운동도 학기 초에는 거의 모두가 달천 강변 산책을 40분 정도 해냈지만, 2학기에는 운동장 두세 바퀴 도는 것으로 그치게 되었고 날씨가 안 좋으면 기숙사 복도에서 간단히 체조를 하였다. 이런 문제를 두고 모두 모임 시간에 길게 토론을 했다. 자율, 자유, 책임 같은 개념을 적용해 규칙을 정해 보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려 하도록 기회를 충분히 주고 기다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진심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몸을 만들고 삶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
4월 마지막 주에 봄 학기 평가를 하고 5월 첫 주에 봄 방학을 가졌다. 학생들의 소감문 몇을 소개해 본다.
“목도나루학교에 오기 전까지 배움은 교과 공부, 시험 공부, 교사가 주도하는 공부였고 하라는 대로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목도나루학교에서 배움은 책임감, 독립성, 협동심, 의미 있게 시간 보내기 등이었다.”
“내가 농사일도 좋아하는구나 싶고, 일을 하면서 상쾌함을 느꼈다. 텃밭을 가꾸면서 근력을 키웠고 멘탈이 강해졌다. 배움이 즐겁다는 걸 확인했다.”
“맥락에 맞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잘 전달하는 것을 배웠다. 말하기를 하면서 경청과 배려를 배웠다. 의문을 가지기도 배웠다. 하루 닫기를 통해 성찰하는 것도 배우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통해 생각도 다양해졌다.”
반대로 부정적인 반응들도 있었다.
“자꾸 생각을 하라고 하니 어렵고, 생각할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고 자꾸 말하라고 하니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면 좋겠다. 피드백할 때 질문을 너무 예리하게 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길잡이와 학생 사이의 일대일 상담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등이 있는 친구가 있을 때 상담이 필요하다. 친구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조금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봄 학기를 보낸 학생들은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평가회에서 모든 학생이 발언을 할 수 있었고 학기 초에 비하여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였는지 생각해 본다. 몸을 만든다는 것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진득하게 독서하거나 긴 시간 동안의 토론을 견딜 수 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런 면에선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날씨, 장소, 주변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정서가 변한다는 점과 그것이 어떻게 몸으로 나타나는지 느끼고 몸 활동을 통하여 그에 대처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둔다면 쉬운 목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실행할 능력을 키우려면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우치다 타츠루는 합기도장을 열고 무예와 인문학을 가르치는데, 외부 상황과 타인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몸을 알아채고 단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몸의 감각과 직관을 사용할 줄 알아야 변화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직관을 사용하기보다 이성과 논리를 키워 주려는 교육자가 많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불안에 지배당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몸의 감각을 살려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몸의 반응을 살피면 자신의 욕망을 억압, 회피, 왜곡함으로써 여러 증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보살피는 노력을 하기보다 자극적인 음식과 영상 매체가 주는 위안에 빠지는 것이 유행이다. 몸의 감각을 되찾는 건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현 예술 또는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을 하면서 풀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름 학기에는 프로젝트 수업과 몸을 쓰는 삶의 기술 수업이 중심을 이루었다. 삶의 기술 수업 시간에 텃밭 농사, 온돌 만들기, 숲 놀이터 만들기 등을 하면서 어떤 학생은 우리가 농고에 온 것이냐는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흐르는 땀을 수돗가에서 물장난으로 식히면서 활기 있게 해냈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모둠별로 참여하면서 어떻게 배움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배웠지만 여행에 비하면 호응도가 약했다. 길잡이가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3박 4일 ‘신발끈 여행’을 하면서 전국의 대안학교와 공동체를 찾아가 훌륭한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도 배움의 관계망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는데, “어떻게 살까?”라는 고민을 나눌 정도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롤모델이나 멘토를 발견한 학생들은 가을 학기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2주 동안 만남을 이어 갈 생각을 하였다. 다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과 기초 지식이 부족하여 자신만의 시각과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만들어 가기는 쉽지 않았다. 인문학 수업을 하면서도 느꼈던 점으로 독서량이 부족하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문제점을 사람책 특강으로 보완해 나가자는 의견이 교사들에게서 나왔다.
좋은 멘토들의 도움을 받은 인턴십
9월 가을 학기에 하는 인턴십은 전문계고의 현장실습과 달리 기간이 2주 60시간에 불과하고 급여를 받지 않는다. 좋은 멘토를 찾아가서 인생관과 직업관을 듣는 데 중점을 두며 기능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취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보통의 인턴십과 달리 ‘진로 멘토링’에 가깝다. 그래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고 인터뷰 질문을 준비해 멘토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멘토를 만날지 학생이 스스로 찾아보고 이메일을 보내 승낙을 받은 다음, 길잡이 교사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 멘토 60명을 미리 준비해 그분들 가운데서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스스로 멘토를 찾는 작업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인턴십을 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적은 수고료를 받고 2주 동안 60시간을 학생과 함께 지내며 여러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 주려고 기꺼이 나서 주신 멘토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기 어려워했고 교통편이나 숙식 문제 때문에 멘토를 접촉하는 단계부터 여러 차례 결정을 번복했다. 그래도 9명의 학생이 괴산 지역에서 멘토를 정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출퇴근했고, 5명의 학생이 자기 부담으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제주와 경남 남해처럼 먼 곳까지 멘토를 찾아갔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청주와 제천의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인턴십을 수행했다. 학생들이 선택한 분야를 나열하면 문화 예술가, 장인, 사회적 기업, 카페, 생협이다. 매일 출근부에 서명하고 퇴근 후에는 활동 일지를 SNS에 올려야 하는 힘든 일정이었는데 대부분 성실하게 60시간을 근무했다.
일지에 써야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멘토에게 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기능을 배우는 데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는데 의도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경우, 수줍어서 또는 바빠서 질문할 짬을 내지 못한 경우, 기능을 익히는 데 열중해 잊어버린 경우 등이 있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멘토를 만난 학생은 바쁜 작업 일정 때문에 질문을 못 했다는데 확인해 보니 질문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경우였다. 평소에도 꼼꼼하게 따지거나 질문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고 혼자서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일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기업이나 카페에 간 다른 학생들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 특성상 멘토와 이야기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냈고 칭찬을 받아서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니 다행이다.
목도나루학교에서 열린 인턴십 결과 발표회에 여러 멘토들이 오셔서 학생들의 노력과 열정에 응원을 보내는 발언을 해 주셨다. 멘토들에게 큰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출근 시간에 지각하는 학생, 일 처리를 하다가 실수하는 학생, 왜 인턴십을 하고 있는지 문제의식이 부족하여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너그럽게 받아 주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2021년부터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만난 괴산 지역의 멘토들은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처하셨지만, 올해 처음 학생을 만난 분들과는 교사들이 현장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소통하였다. 적절한 보수도 없이 60시간을 내서 학생들의 삶의 방향 찾기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멘토의 선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미리 학생, 교사, 멘토가 충분히 소통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했다. 후속 방문을 통하여 교사와 멘토 사이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좋은 멘토와 관계망을 확보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것은 목도나루학교의 존립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교사들이 공유한 문제는 학생들의 질문의 수준과 내용이 빈약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같은 질문 목록을 사전에 제시했지만 학생들은 가서 입을 닫고 일만 하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 멘토에게 들은 내용을 자기 언어로 소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을 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지역 경제의 순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학생은 더 깊이 질문을 하거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화 내용을 성찰하면서 일지에 정리하고 결과 보고서를 써내는 일을 무척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음을 발견했다. 코로나19 시기에 원격 교육으로 학교를 다닌 세대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짧은 디지털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는 특성 때문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자기 돌보기와 관계망 만들기의 중요성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한계점을 보며, 1년 위탁 교육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목도나루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집중과 선택’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보통 대안교육은 아이들이 자기 삶과 배움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목도나루학교도 이런 점을 굉장히 강조했다. 입학 오리엔테이션과 후속 활동에서 토론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배움계획서를 만들고, 매일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운동 후 식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을 강조했다. 또 자발성을 가지고 학습과 행사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고, 마지막 한 사람의 의견까지 경청하기 위해 지루함을 견디면서 대화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생활을 잘 조직하여 누구의 지원 없이 스스로를 돌볼 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소비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기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용돈을 받아 편리하게 소비하는 습관의 힘이 강하고, 휴대전화에 제공되는 영상과 게임에 탐닉하느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목도나루학교에서는 익숙한 자기 집과 교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생각과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지해 줄 삶과 배움의 관계망을 만드는 경험을 ‘찐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갈 힘을 갖게 하려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잘 돌보기’와 ‘관계를 중시하고 삶과 배움의 관계망을 만들기’ 둘 중 어느 것을 강조할 것인가? 서로 무관한 내용이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을 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불과 1년 동안 둘 모두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고 그중 하나도 깊이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기숙사 생활, 인문학, 글쓰기, 예술, 개인 프로젝트, 담당 길잡이와의 상담에서 중시하는 분야이고, 후자는 집단 프로젝트, 여행, 인턴십, 국제 교류 등에서 의도하는 바이다. 목도나루학교는 보통 학교와 달리 후자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삶의 관계망을 만든다는 생각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참 좋겠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게 가능하더라는 느낌 또는 어찌어찌하면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갖는 게 교육과정으로 잘 짜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기만 하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너무도 모른다.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살기가 무척 어렵다.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 면에서 소비 문화와 일 중독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상봉 교수는 “서로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삶의 주체로 서게 하려는 시도에 그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며 의지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인지 모른다. 요즘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청년 정책에서 ‘비빌 언덕이 있어야’ 지역에 정주하는 청년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방법인 책 읽기와 토론을 통하여 생각을 전환하게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여행하면서 생각과 정서까지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 무게 중심을 두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많은 학생이 인턴십을 중심으로 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에서 그런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롤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크나큰 기대를 품고 목도나루학교에 온다. 하지만 2학기에 2주 60시간 동안 인턴십을 수행하고 쓴 에세이를 읽어 보면 ‘힘든 과정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만약 1학기부터 프로젝트와 여행에서도 자기 관심 분야의 멘토를 찾아다니는 내용을 포함시켰다면 인턴십의 준비, 수행,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어차피 이런 내용은 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으로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멘토를 찾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교사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학생이 멘토를 찾고 만나고 부대끼고 일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른 상상을 하나 더 해 보자면 중3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오면 좋겠다. 이미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와 제주 별꼴학교(13~17세 1년 과정)에서 중3 학생들에게 1년 동안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 내서중에서도 수학여행을 학생들이 기획하고 교사는 그림자가 되어 따라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중3 학생들이 11월 초에 기말 시험을 마치면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수업에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준비된 학교와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인턴십 같은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충북 옥천군 진로체험지원센터에서는 옥천 행복교육지구 사업을 여러 해 동안 해 온 ‘꿈꾸는 배낭’이 주도해 2023년 1학기 말에 중고생 대상으로 3일 동안 이루어지는 인턴십(진로 멘토링에 가깝다)을 수행한 적이 있다.
옥천 같은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좋은 멘토가 없는 지역은 없다. 학교 교사들이 멘토를 발굴하여 서로 신뢰를 쌓고 이런 프로그램을 여러 해 동안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이나 NGO가 중간 지원 조직 역할을 해야 한다. ‘꿈꾸는 배낭’이 그런 역량을 키워 왔고 교사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평소에 연대해서 ‘대도시 나갈 인재보다 지역에 남을 아이들을 키우는 실천’을 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농촌 지역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멘토를 발굴하도록 지원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본다. 충북의 각 시·군에서 온마을배움터라는 학습 생태계가 성숙하도록 지원하면서 중3 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참 좋겠다. 더 나아가 충북 지역 고1 학생들이 목도나루학교까지 올 필요 없이 자기 지역에서 전환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위탁 교육 기관(교육청 학력 인정)이 군 단위로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덴마크와의 국제 교류
이제 겨울 학기 주요 프로그램인 국제 교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목도나루학교 학생 23명과 교사 8명은 자매 학교인 덴마크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 2주 동안 국제 교류 여행을 다녀왔다. 이미 4년 전에 충북교육청 교사 연수 프로그램으로 선생님 한 분이 덴마크에 머물면서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의 교장 선생님과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국제 교류를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
국제 교류는 두 교사의 6월 사전 답사와 9월 두 학교의 교사·학생 사이의 온라인 미팅으로 시작되었다. 총 여섯 차례의 온라인 미팅은 한국과 덴마크의 문화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언어와 인터넷망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학생들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고 만남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수 있었다. 한국 학생 중에는 온라인 미팅에 참여하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청하여 저녁 시간에 영어 선생님을 찾아가 지도를 받기도 했다.
마침내 11월 26일 일요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에 덴마크 올보르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호브로 기차역까지 마중 나온 앤 선생님의 안내로 대형 버스를 타고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 도착하였다. 1980년에 농장이었던 곳을 학교로 바꾸고 100여 명의 학생이 해마다 1년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첫눈에 보기에 푸른 초원에 말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승마가 중요한 과목이고 말은 학생들이 자기 집에서 가져오거나 학교에서 빌려준다고 한다. 학교에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점이 인상 깊었다.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비가 내리는 날씨라고 들었는데 학교에 체류하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예년에 없던 이상 기후라고 한다. 기숙사 방에 짐을 풀고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저녁 식사를 덴마크식으로 성대하게 대접받았다. 둘째 날부터 애프터스콜레의 일정에 맞추어 아침 식사, 아침 열기, 수업, 학교 주변 지역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덴마크 학생들을 일대일로 또는 소모임 단위로 짝지어 다니게 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학생들이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제기차기, 공기놀이, 윷놀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게임을 서툰 영어로 설명하면서 진행했다. 덴마크 학생들이 준비한 게임, 댄스, 밴드연습, e스포츠에 모두가 즐겁게 참여했고 얼굴 그리기와 연극 놀이 수업도 재미있어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여유 있고 웃음 가득한 토르스가르드의 수업 분위기를 부러워하였다.
국제 교류를 내년에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비전과 목표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두 학교의 교장·교감이 간담회를 갖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려고 했다.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서는 전환기 교육의 목표를 “세계를 보다 잘 알고 자신이 할 일을 찾는다”로 제시하고 있어서 놀랐다. 목도나루학교는 “나를 발견하다. 세상을 만나다”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는 최근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나 중심주의(self-centeredness)’를 경계하고 오랜 전통인 민주주의를 최고의 중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고 하니 부러웠다. 또한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창의성과 학습 역량을 강조하고 있어서 앞으로 배울 점이 많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이번 국제 교류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홈스테이를 준비했다. 금요일 오후에 덴마크 학생들이 집으로 갈 때 한국 학생들도 2명씩 함께 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방식이다. 덴마크 가족 문화까지 경험하는 좋은 계기였지만 어떤 학생은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힘든 고역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대체로 환대받고 즐겁게 지냈고 중산층 이상의 주거 문화와 여가 생활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 듯하다. 다만 덴마크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같은 수준의 홈스테이를 대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이후엔 자유롭게 덴마크 사회와 인근 국가(독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모임 자유 여행을 일주일간 했다. ‘자유 여행’이라는 명칭은 학생들이 스스로 일정을 짜고 150만 원 정도의 비용도 부담하는 것이어서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관광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거나 여유와 휴식을 찾는 계기로 삼으려는 경향도 나타나서 동행하는 교사를 당황시켰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요구를 존중하고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 4명씩 팀을 구성하고 스스로 일정을 계획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여행 후에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보면서 자부담 액수가 늘어나더라도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평가도 나왔다.
목도나루학교에 돌아와서 학부모와 내외빈을 모시고 국제 교류 공유회를 성대하게 마쳤다. 지난 2월 19일부터 22일에는 답방을 온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 교장 선생님과 앤 선생님에게 우리나라의 공교육과 공립 대안교육의 상황을 보여 주고 교사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연대 의식을 키웠다. 서울의 오디세이 민들레 캠퍼스와 충북 청주의 단비학교와 진천의 은여울중고등학교 등이었다. 우리 학교에 방문했을 때는 마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이어서 목도나루학교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오는 10월에 2회 차 교류 행사를 갖기로 했는데,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한국 전환기 교육의 성장과 학생들의 세계 시민 의식 신장의 기회로 삼고 싶다.
삶의 방향을 찾고, 관계를 확장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목표
정원을 모두 채웠지만, 2기 신입생 모집에 차질을 경험하면서 목도나루학교에 대한 외부(특히, 중3 담임 교사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충북대 연구팀에서 학생 4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1년 동안 크게 성장한 학생이 있는 반면에 크게 의미를 못 느끼는 경우도 나타났다. 수료생들이 고등학교 2학년 복귀 후에 자기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적응하고 자신만의 진로를 찾아 가길 바라지만 크게 방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여전히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 경쟁에 집중하고 있고,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시·군 단위 지자체에서 고등학생들의 진로 탐색 활동을 다양하게 지원한다면 우리 학교 수료생들이 1년 동안 한 노력을 더 이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고교 학점제, 진로 지도, 청소년 문화의집 프로그램, 마을교육공동체, 문화·예술교육 어느 분야에서라도 그런 가능성을 찾길 바란다. 그러면서 목도나루학교의 교직원 구성과 교육과정의 성과는 무엇이고 앞으로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지 엄정하게 평가하고 토론해야 할 상황임을 인정한다.
목도나루학교의 비전과 목표를 다시 상기하면서 그에 맞추어 1년을 지냈는지 살펴보고 싶다. “삶의 방향을 찾는 행복한 배움”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는데 이를 ‘진로 찾기’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고, 삶의 방향을 찾는다는 느긋함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고 스스로 성찰할 시간을 갖자는 말은 먹히지 않는다. 조급증, 성과주의, 비교와 경쟁이 지배하는 입시 교육의 잣대를 목도나루학교에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진로 찾기’로 이해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목도나루학교의 설립 취지를 진로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거나 학업 중단 위기를 겪고 있는 학생을 위한 곳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도의회에서 학생 24명에게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 한 답변이기도 하다. 학업 중단 학생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 대책이 필요하고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이 절반이 넘는 상황을 도의원들도 인정하기 때문에 학교 설립이 허가된 것이다. 실제로 목도나루학교를 선택한 학생 24명 모두가 위기를 겪고 있진 않지만 그런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과감하게 다른 경로를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진로 찾기’를 위한 학교라고 홍보해야 한다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는 진로·직업교육과 고교 학점제의 맹점을 보완하는 학교라고 설명하고 싶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장래 직업과 학과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 선택 과목과 동아리 활동을 설계해서 고3까지 일사천리로 달려가게 하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목도나루학교 위탁 교육 1년을 제시하자는 생각이다. 좀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인공 지능 문제를 직면한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을 갖기 위해 공부하는 시기로 생각해도 좋겠다.
그러면 비전의 나머지 구절 “행복한 배움”은 어떤가? 현재 목도나루학교 학생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발성과 자율에 근거하여 수업 주제를 정하여 진행하고, 모두가 둥그렇게 앉아서 돌아가면서 발언하는 회의를 통하여 학교와 기숙사 생활의 규칙을 결정하는 경험은 참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실제 그렇게 하려고 결심한 어느 학생은 심야 시간에 고1 수학과 과학 문제집을 풀려고 했지만 친구들과 게임하고 잡담에 끼어드는 유혹에 빠지기 일쑤였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자기 주도성 개념이 목도나루학교에 적절한 용어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인데 다른 한편으로 그 용어에 숨어 있는 경쟁심과 성과주의 때문에 자발성과 자율에 근거한 행복한 배움을 이끌어 가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학교의 교육 목표로 보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나를 이해하고 배움의 관계망을 확장한다”라는 교육 목표에 아직 다가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먼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야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자율 동아리도 개인당 3~4개씩 만들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학기 동안 본관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공간도 부족했고 기타반 이외에는 강사 지원도 없었다. 다행히 음악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밴드반을 스스로 운영하였는데 나를 찾고 이해한다는 취지보다는 학교 문화 예술 활동이었다. 여행, 프로젝트, 교과 수업, 수행 평가 등 바쁜 일정 속에 동아리 활동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기숙사에서 저녁 시간에 자신만의 학습을 위한 묵학도 진행하였지만 묵학이 아니라 ‘묵폰’을 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개인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발표회를 열었던 것은 좋았지만 교사와 학생이 ‘만남과 대화’ 시간에 1:3으로 또는 1:1로 만난 경험이 더 좋았다고 한다.
두 번째 목표, “삶과 배움이 연계된 관계망 확장”이란 나와 세상의 관계를 알고 넓혀 가자는 취지인데 신발끈 여행, 인턴십, 국제 교류 등을 통하여 많은 기회를 가졌다. 훌륭한 친구와 어른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단지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기보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멘토 역할을 할 분이나 롤모델을 발견하길 바란 것인데, 그 수준에 이른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데서 출발하여 스스로 롤모델이 된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관계망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팀 프로젝트 수업과 연극 공연 등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모습으로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세 번째 목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함양”은 자칫 자기계발주의에 빠지기 쉬운 기존 진로교육의 경향을 뛰어넘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효능감을 느끼게 하려는 취지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억눌린 상태를 극복하는 길은 믿을 만한 친구와 선후배를 얻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존중받고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장기간의 경제 불황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공공성, 공동체 의식, 민주 시민 의식 같은 가치와 태도이다. 태도라는 면에서 볼 때 ‘공동체 생활을 통한 존중과 배려 익히기’는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먹고 자고 정리 정돈하는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목도나루학교에서 진행한 수많은 대화 수업(평화 공감, 모두 모임, 만남과 대화, 하루 열기와 하루 닫기)에서는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학기 초에 말을 거의 못 하고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였던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프로젝트 모둠 활동에서 리더 역할도 해내는 변화를 보였다. 전체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고발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치며
1년을 보낸 학생들이 그동안 썼던 글과 소감을 엮어서 개인 문집을 내고 수료식을 한 뒤 학교를 떠났다. 개인 문집을 편집하느라 국어 선생님 두 분이 새해 연휴를 반납했는데 1월 4일 수료식 전날 나누어 주고 학교에 1권씩 보관용으로 남겼다. 잠깐 읽어 보니 친구들과 함께 자주 여행하며 여유를 누렸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즐겁게 배웠다는 내용이다. 국제 교류와 인턴십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덴마크 여행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적어 주었고 인턴십 멘토를 만나 작성한 일기를 다시 옮겨 놓은 학생도 많았다. 수료식에 부모님과 멘토님들이 참석하셨는데, 어느 진지하고 과묵한 남학생이 “제가 살아온 동안 가장 행복한 1년이었다”라고 이야기해 주어서 울컥했다. 부모님들도 참석해서 아이들이 많이 성장하고 변화했다고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만족스러운 분위기는 학생과 학부모 대상 설문 조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1년 동안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는가?”라는 물음에 59%가 ‘매우 그렇다’, 32%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목도나루학교 교육과정 및 학교생활을 통하여 내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가?”에는 14%가 ‘매우 그렇다’, 55%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배우고 성장한 것에 대한 의견을 써낸 것을 보면,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힘이 생겼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더욱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되었다. 도전이 두렵지 않다. 걱정이 줄었다. 해 보고 싶은 게 늘어났다. 생각이 더 확장되었다. 지금 나의 삶의 방식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찾아가면서 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내 안에 자신감이 채워져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귀찮아하던 내가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려고 노력하는 정도로 배우고 성장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는 대안 교과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일반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면 이런 자신감과 의욕이 사라질까 걱정이 된다.
그런 때문인지 학부모들이 1년이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아쉽다고 말하며 양업고등학교나 산마을고등학교와 같은 대안학교 2학년으로 전학을 알아보는 경우도 나타났다. “자기 주도성이 커졌다.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계획하여 꾸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다”는 평가 의견을 내 주셨다. 인턴십에서 훌륭한 멘토와 대화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어졌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인턴십을 2학기에 2주 동안 하는 것으로 한정하지 말고 사전 활동과 후속 활동을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남겨 주었다. 이런 고민은 교사들의 고민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학부모와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고 결과를 공유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여했는데 그런 원칙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존중하고 잘 따라 주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려다 보니 시간 여유가 없었으며 저녁 시간에 갑작스럽게 기후 위기 관련 행사와 특강까지 추진한 적도 있었다는 반성이 나왔다. 학생들에게 월 2회 정도 행사, 특강, 축제 같은 저녁 행사를 추진하도록 체계를 만들고 예산과 정보를 제공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낀다. 프로젝트 수업에선 학생과 교사 모두 주제 선정 단계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에너지를 소진하였고 개인 프로젝트는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 학생을 방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2024년에는 인턴십과 국제 교류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와 활동을 융복합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일정과 순서를 다시 배치해야 함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교사들은 수료식을 마친 후에 평가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생활기록부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교사들은 지난 한 해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다. 생활기록부 내용을 상호 점검하여 본교로 보내 주어야 하고 2023년에 30% 줄어든 예산에 맞추어 새 학기 계획과 예산안도 만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신입생 추가 모집을 하느라 재학생들과 함께 괴산, 청주, 음성, 충주, 진천의 중학교를 순회하면서 학기 말 어수선한 교실을 파고들어 전환기 교육 간증 집회를 시도했다. 짧은 시간에 24명 정원을 채우기는 했지만, 중학교 교사들이 목도나루학교와 같은 전환기 교육의 필요성과 비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홍보 활동의 중요성을 절감하기도 했다. 충북뿐 아니라 타 시·도에도 전환기 학교가 더 많이 생겨야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충북 괴산
삶의 방향을 찾고, 나를 이해하고, 관계망을 만드는 학교
- 목도나루학교 개교 후 첫해를 마치며
글
김석규
klsukkyu@naver.com
충북 괴산 목도나루학교 교사
들어가며
2023년 3월, 전국 유일의 공립 기숙형 1년제 전환기 교육 대안학교인 목도나루학교가 개교하였다. 2018년부터 충북교육청에서 전환기학교개교준비TF를 만들어 교사들의 연구 모임, 덴마크 애프터스콜레 현지 탐방을 했고, 목도고등학교 폐교 및 리모델링 공사 등을 거쳐 목도나루학교가 만들어졌다. 서울의 오디세이학교와 경남의 창원자유학교가 우리보다 5년 이상 먼저 개교했지만 공립 기숙형으로는 유일하다. 사립 비인가 애프터스콜레 모델인 강화도 꿈틀리인생학교(2024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음) 정승관 전 교장의 말씀대로, 기숙형이어야 공동체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기회를 100배는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1,000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이 기록을 읽은 교사, 활동가 들이 목도나루학교와 같은 전환기 교육 기관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그럼으로써 그 수료생들이 고 2~3학년 때 자신의 지향을 이어 가도록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멈추지 않기를 기원한다.
목도나루학교의 학생들, 교사들이 평가회를 갖고 작성한 평가서가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선 그런 공식 문서와는 별개로 개인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학교 내부 평가회에서는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별로 평가했지, 비전이나 목표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과 연대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
2023년 3월 6일 오전 10시에 목도나루학교 다목적실에 충북 전역에서 온 고1 학생 24명이 11명의 교사와 배움의 공동체를 시작했다. 3월 8일부터 제주도에서 8박 9일 동안 ‘시작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결속을 다지고 배움계획서를 만들었다. 학교 건물이 공사 중이고 식당에서 급식을 할 수 없어서 떠난 긴 여행이었다. 삼달다방이라는 민박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 먹으면서 밤 늦게까지 토론하여 각자의 배움계획서를 만들었다. 보통의 수학여행과 달리 토론을 길게 했고, 때때로 4.3 평화 기행과 자유 여행, 한라산 등반을 했다. 그러면서 목도나루학교의 철학과 원칙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 각자의 배움계획서를 완성하고 3월 19일 부모님들을 모시고 발표하였다. 발표회 자리에서는 한 달도 안 돼 쑤욱 자란 자녀들의 모습에 대견해하며 부모님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누구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고 끝까지 듣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3월 마지막 주부터 시간표대로 수업 일정을 시작했다. 교사들은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아침 산책, 하루 열기, 하루 닫기와 같은 반복되는 일과를 잘 운영하려고 했다. 월요일 오후 3시간의 ‘모두 모임’에서는 어떤 주제로 토론할지 학생들이 접수하고 참여하는 의사 결정 방식을 학교의 문화로 만들어 갔다. 학생회장 선거를 할 때는 4명의 회장, 부회장 후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서 ‘임원 없는 학생회’를 해 보자는 신선한 제안을 해서 반가웠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어떤 행사를 준비할 경우에는 준비 모임을 구성해서 했다. 골고루 책임을 분담하니 자연스레 리더십 경험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도 학생 자치 원칙을 꾸준히 고민하면서 지켜 나가려고 하는 학생회 임원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기 주도성을 발휘하는 배움을 위하여 프로젝트 수업과 동아리 활동 이외에 저녁 식사 후 묵학 시간을 배치하였다. 조용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으로 책을 읽거나 성찰 노트를 쓰도록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휴대전화를 마음껏 하려고 했다. 그래서 2학기에는 묵학 시간을 저녁 활동 시간으로 바꾸어 폭넓게 취미와 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몸 놀이 특강을 10회 차 정도 배치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고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와 습관에 의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신체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시도하였다. 화요일 저녁마다 하는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에 더 관심을 보이는 학생도 많았다.
프로젝트 수업은 봄 학기 주제를 ‘목도나루학교 주변 마을 알아보기’로 정하였다. 누구를 인터뷰할지 어떤 곳을 찾아갈지 학생들이 정하고 교사는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 결과를 감당하면서 배우게 하였는데 예를 들면, ‘맛집 찾기’로 주제를 정한 모둠에서 식당 주인들에게 “어느 집이 맛집인가요?”라고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주인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하다니 도대체 생각이 없다”라는 핀잔을 교사도 같이 들어야 했다.
여름 학기에는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여 모둠별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경험 부족 때문인지, 너무 자발성을 강조해서인지 사회 참여 학습 수준으로 하는 사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젝트 주제를 정하는 단계에서 개인들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서너 차례 바꾸다 보니 정작 프로젝트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한 모둠은 ‘동물권과 동물 복지’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학교에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가 여러 문제에 직면하면서 ‘유치원 아이들과 놀아 주기’로 변경, 근처 유치원을 섭외하였다. 프로젝트 발표회에 유치원 교사, 학부모, 아이 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이 격려를 받긴 했지만, 이벤트를 하나 기획하고 수행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존중과 배려를 익힌다’는 목표를 가진 기숙사 생활은 어떠했을까? 학기 초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 4월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 같다. 밤 9시에 하루 닫기 시간이 끝나면 휴게실에 모여서 컵라면과 새우깡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다가 취침 시간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소등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도 침대에 누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사감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잠을 자라고 말해도 새벽 2시를 넘기곤 한다. 룸메이트를 추첨으로 뽑아서 한 달에 한 번 바꾸어 주는데 친한 아이들끼리 방을 옮겨 다니며 노느라 그런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7시 20분 아침 운동 시간에 나오지 못하거나 아침 식사를 거르는 건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아침 식사는 당번 교사와 동료 학생들이 누룽지, 주먹밥, 샌드위치 등을 준비하는데, 잠의 유혹이 강한 것 같다. 2학기부터 메뉴를 갈비탕, 오삼 불고기, 만두와 흰쌀밥으로 바꾸었지만 아침 식사 인원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아침 운동도 학기 초에는 거의 모두가 달천 강변 산책을 40분 정도 해냈지만, 2학기에는 운동장 두세 바퀴 도는 것으로 그치게 되었고 날씨가 안 좋으면 기숙사 복도에서 간단히 체조를 하였다. 이런 문제를 두고 모두 모임 시간에 길게 토론을 했다. 자율, 자유, 책임 같은 개념을 적용해 규칙을 정해 보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려 하도록 기회를 충분히 주고 기다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진심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몸을 만들고 삶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
4월 마지막 주에 봄 학기 평가를 하고 5월 첫 주에 봄 방학을 가졌다. 학생들의 소감문 몇을 소개해 본다.
“목도나루학교에 오기 전까지 배움은 교과 공부, 시험 공부, 교사가 주도하는 공부였고 하라는 대로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목도나루학교에서 배움은 책임감, 독립성, 협동심, 의미 있게 시간 보내기 등이었다.”
“내가 농사일도 좋아하는구나 싶고, 일을 하면서 상쾌함을 느꼈다. 텃밭을 가꾸면서 근력을 키웠고 멘탈이 강해졌다. 배움이 즐겁다는 걸 확인했다.”
“맥락에 맞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잘 전달하는 것을 배웠다. 말하기를 하면서 경청과 배려를 배웠다. 의문을 가지기도 배웠다. 하루 닫기를 통해 성찰하는 것도 배우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통해 생각도 다양해졌다.”
반대로 부정적인 반응들도 있었다.
“자꾸 생각을 하라고 하니 어렵고, 생각할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고 자꾸 말하라고 하니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면 좋겠다. 피드백할 때 질문을 너무 예리하게 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길잡이와 학생 사이의 일대일 상담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등이 있는 친구가 있을 때 상담이 필요하다. 친구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조금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봄 학기를 보낸 학생들은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평가회에서 모든 학생이 발언을 할 수 있었고 학기 초에 비하여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였는지 생각해 본다. 몸을 만든다는 것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진득하게 독서하거나 긴 시간 동안의 토론을 견딜 수 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런 면에선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날씨, 장소, 주변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정서가 변한다는 점과 그것이 어떻게 몸으로 나타나는지 느끼고 몸 활동을 통하여 그에 대처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둔다면 쉬운 목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실행할 능력을 키우려면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우치다 타츠루는 합기도장을 열고 무예와 인문학을 가르치는데, 외부 상황과 타인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몸을 알아채고 단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몸의 감각과 직관을 사용할 줄 알아야 변화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직관을 사용하기보다 이성과 논리를 키워 주려는 교육자가 많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불안에 지배당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몸의 감각을 살려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몸의 반응을 살피면 자신의 욕망을 억압, 회피, 왜곡함으로써 여러 증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보살피는 노력을 하기보다 자극적인 음식과 영상 매체가 주는 위안에 빠지는 것이 유행이다. 몸의 감각을 되찾는 건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현 예술 또는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을 하면서 풀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름 학기에는 프로젝트 수업과 몸을 쓰는 삶의 기술 수업이 중심을 이루었다. 삶의 기술 수업 시간에 텃밭 농사, 온돌 만들기, 숲 놀이터 만들기 등을 하면서 어떤 학생은 우리가 농고에 온 것이냐는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흐르는 땀을 수돗가에서 물장난으로 식히면서 활기 있게 해냈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모둠별로 참여하면서 어떻게 배움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배웠지만 여행에 비하면 호응도가 약했다. 길잡이가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3박 4일 ‘신발끈 여행’을 하면서 전국의 대안학교와 공동체를 찾아가 훌륭한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도 배움의 관계망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는데, “어떻게 살까?”라는 고민을 나눌 정도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롤모델이나 멘토를 발견한 학생들은 가을 학기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2주 동안 만남을 이어 갈 생각을 하였다. 다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과 기초 지식이 부족하여 자신만의 시각과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만들어 가기는 쉽지 않았다. 인문학 수업을 하면서도 느꼈던 점으로 독서량이 부족하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문제점을 사람책 특강으로 보완해 나가자는 의견이 교사들에게서 나왔다.
좋은 멘토들의 도움을 받은 인턴십
9월 가을 학기에 하는 인턴십은 전문계고의 현장실습과 달리 기간이 2주 60시간에 불과하고 급여를 받지 않는다. 좋은 멘토를 찾아가서 인생관과 직업관을 듣는 데 중점을 두며 기능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취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보통의 인턴십과 달리 ‘진로 멘토링’에 가깝다. 그래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고 인터뷰 질문을 준비해 멘토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멘토를 만날지 학생이 스스로 찾아보고 이메일을 보내 승낙을 받은 다음, 길잡이 교사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 멘토 60명을 미리 준비해 그분들 가운데서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스스로 멘토를 찾는 작업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인턴십을 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적은 수고료를 받고 2주 동안 60시간을 학생과 함께 지내며 여러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 주려고 기꺼이 나서 주신 멘토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기 어려워했고 교통편이나 숙식 문제 때문에 멘토를 접촉하는 단계부터 여러 차례 결정을 번복했다. 그래도 9명의 학생이 괴산 지역에서 멘토를 정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출퇴근했고, 5명의 학생이 자기 부담으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제주와 경남 남해처럼 먼 곳까지 멘토를 찾아갔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청주와 제천의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인턴십을 수행했다. 학생들이 선택한 분야를 나열하면 문화 예술가, 장인, 사회적 기업, 카페, 생협이다. 매일 출근부에 서명하고 퇴근 후에는 활동 일지를 SNS에 올려야 하는 힘든 일정이었는데 대부분 성실하게 60시간을 근무했다.
일지에 써야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멘토에게 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기능을 배우는 데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는데 의도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경우, 수줍어서 또는 바빠서 질문할 짬을 내지 못한 경우, 기능을 익히는 데 열중해 잊어버린 경우 등이 있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멘토를 만난 학생은 바쁜 작업 일정 때문에 질문을 못 했다는데 확인해 보니 질문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경우였다. 평소에도 꼼꼼하게 따지거나 질문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고 혼자서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일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기업이나 카페에 간 다른 학생들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 특성상 멘토와 이야기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냈고 칭찬을 받아서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니 다행이다.
목도나루학교에서 열린 인턴십 결과 발표회에 여러 멘토들이 오셔서 학생들의 노력과 열정에 응원을 보내는 발언을 해 주셨다. 멘토들에게 큰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출근 시간에 지각하는 학생, 일 처리를 하다가 실수하는 학생, 왜 인턴십을 하고 있는지 문제의식이 부족하여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너그럽게 받아 주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2021년부터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만난 괴산 지역의 멘토들은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처하셨지만, 올해 처음 학생을 만난 분들과는 교사들이 현장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소통하였다. 적절한 보수도 없이 60시간을 내서 학생들의 삶의 방향 찾기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멘토의 선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미리 학생, 교사, 멘토가 충분히 소통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했다. 후속 방문을 통하여 교사와 멘토 사이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좋은 멘토와 관계망을 확보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것은 목도나루학교의 존립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교사들이 공유한 문제는 학생들의 질문의 수준과 내용이 빈약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같은 질문 목록을 사전에 제시했지만 학생들은 가서 입을 닫고 일만 하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 멘토에게 들은 내용을 자기 언어로 소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을 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지역 경제의 순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학생은 더 깊이 질문을 하거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화 내용을 성찰하면서 일지에 정리하고 결과 보고서를 써내는 일을 무척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음을 발견했다. 코로나19 시기에 원격 교육으로 학교를 다닌 세대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짧은 디지털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는 특성 때문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자기 돌보기와 관계망 만들기의 중요성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한계점을 보며, 1년 위탁 교육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목도나루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집중과 선택’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보통 대안교육은 아이들이 자기 삶과 배움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목도나루학교도 이런 점을 굉장히 강조했다. 입학 오리엔테이션과 후속 활동에서 토론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배움계획서를 만들고, 매일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운동 후 식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을 강조했다. 또 자발성을 가지고 학습과 행사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고, 마지막 한 사람의 의견까지 경청하기 위해 지루함을 견디면서 대화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생활을 잘 조직하여 누구의 지원 없이 스스로를 돌볼 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소비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기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용돈을 받아 편리하게 소비하는 습관의 힘이 강하고, 휴대전화에 제공되는 영상과 게임에 탐닉하느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목도나루학교에서는 익숙한 자기 집과 교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생각과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지해 줄 삶과 배움의 관계망을 만드는 경험을 ‘찐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갈 힘을 갖게 하려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잘 돌보기’와 ‘관계를 중시하고 삶과 배움의 관계망을 만들기’ 둘 중 어느 것을 강조할 것인가? 서로 무관한 내용이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을 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불과 1년 동안 둘 모두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고 그중 하나도 깊이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기숙사 생활, 인문학, 글쓰기, 예술, 개인 프로젝트, 담당 길잡이와의 상담에서 중시하는 분야이고, 후자는 집단 프로젝트, 여행, 인턴십, 국제 교류 등에서 의도하는 바이다. 목도나루학교는 보통 학교와 달리 후자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삶의 관계망을 만든다는 생각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참 좋겠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게 가능하더라는 느낌 또는 어찌어찌하면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갖는 게 교육과정으로 잘 짜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기만 하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너무도 모른다.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살기가 무척 어렵다.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 면에서 소비 문화와 일 중독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상봉 교수는 “서로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삶의 주체로 서게 하려는 시도에 그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며 의지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인지 모른다. 요즘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청년 정책에서 ‘비빌 언덕이 있어야’ 지역에 정주하는 청년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방법인 책 읽기와 토론을 통하여 생각을 전환하게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여행하면서 생각과 정서까지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 무게 중심을 두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많은 학생이 인턴십을 중심으로 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에서 그런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롤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크나큰 기대를 품고 목도나루학교에 온다. 하지만 2학기에 2주 60시간 동안 인턴십을 수행하고 쓴 에세이를 읽어 보면 ‘힘든 과정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만약 1학기부터 프로젝트와 여행에서도 자기 관심 분야의 멘토를 찾아다니는 내용을 포함시켰다면 인턴십의 준비, 수행,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어차피 이런 내용은 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으로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멘토를 찾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교사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학생이 멘토를 찾고 만나고 부대끼고 일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른 상상을 하나 더 해 보자면 중3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오면 좋겠다. 이미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와 제주 별꼴학교(13~17세 1년 과정)에서 중3 학생들에게 1년 동안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 내서중에서도 수학여행을 학생들이 기획하고 교사는 그림자가 되어 따라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중3 학생들이 11월 초에 기말 시험을 마치면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수업에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준비된 학교와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인턴십 같은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충북 옥천군 진로체험지원센터에서는 옥천 행복교육지구 사업을 여러 해 동안 해 온 ‘꿈꾸는 배낭’이 주도해 2023년 1학기 말에 중고생 대상으로 3일 동안 이루어지는 인턴십(진로 멘토링에 가깝다)을 수행한 적이 있다.
옥천 같은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좋은 멘토가 없는 지역은 없다. 학교 교사들이 멘토를 발굴하여 서로 신뢰를 쌓고 이런 프로그램을 여러 해 동안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이나 NGO가 중간 지원 조직 역할을 해야 한다. ‘꿈꾸는 배낭’이 그런 역량을 키워 왔고 교사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평소에 연대해서 ‘대도시 나갈 인재보다 지역에 남을 아이들을 키우는 실천’을 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농촌 지역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멘토를 발굴하도록 지원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본다. 충북의 각 시·군에서 온마을배움터라는 학습 생태계가 성숙하도록 지원하면서 중3 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참 좋겠다. 더 나아가 충북 지역 고1 학생들이 목도나루학교까지 올 필요 없이 자기 지역에서 전환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위탁 교육 기관(교육청 학력 인정)이 군 단위로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덴마크와의 국제 교류
이제 겨울 학기 주요 프로그램인 국제 교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목도나루학교 학생 23명과 교사 8명은 자매 학교인 덴마크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 2주 동안 국제 교류 여행을 다녀왔다. 이미 4년 전에 충북교육청 교사 연수 프로그램으로 선생님 한 분이 덴마크에 머물면서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의 교장 선생님과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국제 교류를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
국제 교류는 두 교사의 6월 사전 답사와 9월 두 학교의 교사·학생 사이의 온라인 미팅으로 시작되었다. 총 여섯 차례의 온라인 미팅은 한국과 덴마크의 문화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언어와 인터넷망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학생들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고 만남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수 있었다. 한국 학생 중에는 온라인 미팅에 참여하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청하여 저녁 시간에 영어 선생님을 찾아가 지도를 받기도 했다.
마침내 11월 26일 일요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에 덴마크 올보르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호브로 기차역까지 마중 나온 앤 선생님의 안내로 대형 버스를 타고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 도착하였다. 1980년에 농장이었던 곳을 학교로 바꾸고 100여 명의 학생이 해마다 1년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첫눈에 보기에 푸른 초원에 말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승마가 중요한 과목이고 말은 학생들이 자기 집에서 가져오거나 학교에서 빌려준다고 한다. 학교에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점이 인상 깊었다.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비가 내리는 날씨라고 들었는데 학교에 체류하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예년에 없던 이상 기후라고 한다. 기숙사 방에 짐을 풀고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저녁 식사를 덴마크식으로 성대하게 대접받았다. 둘째 날부터 애프터스콜레의 일정에 맞추어 아침 식사, 아침 열기, 수업, 학교 주변 지역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덴마크 학생들을 일대일로 또는 소모임 단위로 짝지어 다니게 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학생들이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제기차기, 공기놀이, 윷놀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게임을 서툰 영어로 설명하면서 진행했다. 덴마크 학생들이 준비한 게임, 댄스, 밴드연습, e스포츠에 모두가 즐겁게 참여했고 얼굴 그리기와 연극 놀이 수업도 재미있어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여유 있고 웃음 가득한 토르스가르드의 수업 분위기를 부러워하였다.
국제 교류를 내년에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비전과 목표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두 학교의 교장·교감이 간담회를 갖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려고 했다.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에서는 전환기 교육의 목표를 “세계를 보다 잘 알고 자신이 할 일을 찾는다”로 제시하고 있어서 놀랐다. 목도나루학교는 “나를 발견하다. 세상을 만나다”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는 최근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나 중심주의(self-centeredness)’를 경계하고 오랜 전통인 민주주의를 최고의 중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고 하니 부러웠다. 또한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창의성과 학습 역량을 강조하고 있어서 앞으로 배울 점이 많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이번 국제 교류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홈스테이를 준비했다. 금요일 오후에 덴마크 학생들이 집으로 갈 때 한국 학생들도 2명씩 함께 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방식이다. 덴마크 가족 문화까지 경험하는 좋은 계기였지만 어떤 학생은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힘든 고역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대체로 환대받고 즐겁게 지냈고 중산층 이상의 주거 문화와 여가 생활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 듯하다. 다만 덴마크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같은 수준의 홈스테이를 대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이후엔 자유롭게 덴마크 사회와 인근 국가(독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모임 자유 여행을 일주일간 했다. ‘자유 여행’이라는 명칭은 학생들이 스스로 일정을 짜고 150만 원 정도의 비용도 부담하는 것이어서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관광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거나 여유와 휴식을 찾는 계기로 삼으려는 경향도 나타나서 동행하는 교사를 당황시켰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요구를 존중하고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 4명씩 팀을 구성하고 스스로 일정을 계획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여행 후에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보면서 자부담 액수가 늘어나더라도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평가도 나왔다.
목도나루학교에 돌아와서 학부모와 내외빈을 모시고 국제 교류 공유회를 성대하게 마쳤다. 지난 2월 19일부터 22일에는 답방을 온 토르스가르드 애프터스콜레 교장 선생님과 앤 선생님에게 우리나라의 공교육과 공립 대안교육의 상황을 보여 주고 교사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연대 의식을 키웠다. 서울의 오디세이 민들레 캠퍼스와 충북 청주의 단비학교와 진천의 은여울중고등학교 등이었다. 우리 학교에 방문했을 때는 마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이어서 목도나루학교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오는 10월에 2회 차 교류 행사를 갖기로 했는데,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한국 전환기 교육의 성장과 학생들의 세계 시민 의식 신장의 기회로 삼고 싶다.
삶의 방향을 찾고, 관계를 확장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목표
정원을 모두 채웠지만, 2기 신입생 모집에 차질을 경험하면서 목도나루학교에 대한 외부(특히, 중3 담임 교사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충북대 연구팀에서 학생 4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1년 동안 크게 성장한 학생이 있는 반면에 크게 의미를 못 느끼는 경우도 나타났다. 수료생들이 고등학교 2학년 복귀 후에 자기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적응하고 자신만의 진로를 찾아 가길 바라지만 크게 방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여전히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 경쟁에 집중하고 있고,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시·군 단위 지자체에서 고등학생들의 진로 탐색 활동을 다양하게 지원한다면 우리 학교 수료생들이 1년 동안 한 노력을 더 이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고교 학점제, 진로 지도, 청소년 문화의집 프로그램, 마을교육공동체, 문화·예술교육 어느 분야에서라도 그런 가능성을 찾길 바란다. 그러면서 목도나루학교의 교직원 구성과 교육과정의 성과는 무엇이고 앞으로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지 엄정하게 평가하고 토론해야 할 상황임을 인정한다.
목도나루학교의 비전과 목표를 다시 상기하면서 그에 맞추어 1년을 지냈는지 살펴보고 싶다. “삶의 방향을 찾는 행복한 배움”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는데 이를 ‘진로 찾기’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고, 삶의 방향을 찾는다는 느긋함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고 스스로 성찰할 시간을 갖자는 말은 먹히지 않는다. 조급증, 성과주의, 비교와 경쟁이 지배하는 입시 교육의 잣대를 목도나루학교에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진로 찾기’로 이해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목도나루학교의 설립 취지를 진로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거나 학업 중단 위기를 겪고 있는 학생을 위한 곳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도의회에서 학생 24명에게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 한 답변이기도 하다. 학업 중단 학생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 대책이 필요하고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이 절반이 넘는 상황을 도의원들도 인정하기 때문에 학교 설립이 허가된 것이다. 실제로 목도나루학교를 선택한 학생 24명 모두가 위기를 겪고 있진 않지만 그런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과감하게 다른 경로를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진로 찾기’를 위한 학교라고 홍보해야 한다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는 진로·직업교육과 고교 학점제의 맹점을 보완하는 학교라고 설명하고 싶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장래 직업과 학과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 선택 과목과 동아리 활동을 설계해서 고3까지 일사천리로 달려가게 하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목도나루학교 위탁 교육 1년을 제시하자는 생각이다. 좀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인공 지능 문제를 직면한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을 갖기 위해 공부하는 시기로 생각해도 좋겠다.
그러면 비전의 나머지 구절 “행복한 배움”은 어떤가? 현재 목도나루학교 학생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발성과 자율에 근거하여 수업 주제를 정하여 진행하고, 모두가 둥그렇게 앉아서 돌아가면서 발언하는 회의를 통하여 학교와 기숙사 생활의 규칙을 결정하는 경험은 참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실제 그렇게 하려고 결심한 어느 학생은 심야 시간에 고1 수학과 과학 문제집을 풀려고 했지만 친구들과 게임하고 잡담에 끼어드는 유혹에 빠지기 일쑤였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자기 주도성 개념이 목도나루학교에 적절한 용어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인데 다른 한편으로 그 용어에 숨어 있는 경쟁심과 성과주의 때문에 자발성과 자율에 근거한 행복한 배움을 이끌어 가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학교의 교육 목표로 보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나를 이해하고 배움의 관계망을 확장한다”라는 교육 목표에 아직 다가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먼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야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자율 동아리도 개인당 3~4개씩 만들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학기 동안 본관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공간도 부족했고 기타반 이외에는 강사 지원도 없었다. 다행히 음악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밴드반을 스스로 운영하였는데 나를 찾고 이해한다는 취지보다는 학교 문화 예술 활동이었다. 여행, 프로젝트, 교과 수업, 수행 평가 등 바쁜 일정 속에 동아리 활동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기숙사에서 저녁 시간에 자신만의 학습을 위한 묵학도 진행하였지만 묵학이 아니라 ‘묵폰’을 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개인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발표회를 열었던 것은 좋았지만 교사와 학생이 ‘만남과 대화’ 시간에 1:3으로 또는 1:1로 만난 경험이 더 좋았다고 한다.
두 번째 목표, “삶과 배움이 연계된 관계망 확장”이란 나와 세상의 관계를 알고 넓혀 가자는 취지인데 신발끈 여행, 인턴십, 국제 교류 등을 통하여 많은 기회를 가졌다. 훌륭한 친구와 어른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단지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기보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멘토 역할을 할 분이나 롤모델을 발견하길 바란 것인데, 그 수준에 이른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데서 출발하여 스스로 롤모델이 된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관계망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팀 프로젝트 수업과 연극 공연 등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모습으로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세 번째 목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함양”은 자칫 자기계발주의에 빠지기 쉬운 기존 진로교육의 경향을 뛰어넘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효능감을 느끼게 하려는 취지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억눌린 상태를 극복하는 길은 믿을 만한 친구와 선후배를 얻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존중받고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장기간의 경제 불황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공공성, 공동체 의식, 민주 시민 의식 같은 가치와 태도이다. 태도라는 면에서 볼 때 ‘공동체 생활을 통한 존중과 배려 익히기’는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먹고 자고 정리 정돈하는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목도나루학교에서 진행한 수많은 대화 수업(평화 공감, 모두 모임, 만남과 대화, 하루 열기와 하루 닫기)에서는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학기 초에 말을 거의 못 하고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였던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프로젝트 모둠 활동에서 리더 역할도 해내는 변화를 보였다. 전체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고발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치며
1년을 보낸 학생들이 그동안 썼던 글과 소감을 엮어서 개인 문집을 내고 수료식을 한 뒤 학교를 떠났다. 개인 문집을 편집하느라 국어 선생님 두 분이 새해 연휴를 반납했는데 1월 4일 수료식 전날 나누어 주고 학교에 1권씩 보관용으로 남겼다. 잠깐 읽어 보니 친구들과 함께 자주 여행하며 여유를 누렸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즐겁게 배웠다는 내용이다. 국제 교류와 인턴십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덴마크 여행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적어 주었고 인턴십 멘토를 만나 작성한 일기를 다시 옮겨 놓은 학생도 많았다. 수료식에 부모님과 멘토님들이 참석하셨는데, 어느 진지하고 과묵한 남학생이 “제가 살아온 동안 가장 행복한 1년이었다”라고 이야기해 주어서 울컥했다. 부모님들도 참석해서 아이들이 많이 성장하고 변화했다고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만족스러운 분위기는 학생과 학부모 대상 설문 조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1년 동안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는가?”라는 물음에 59%가 ‘매우 그렇다’, 32%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목도나루학교 교육과정 및 학교생활을 통하여 내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가?”에는 14%가 ‘매우 그렇다’, 55%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배우고 성장한 것에 대한 의견을 써낸 것을 보면,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힘이 생겼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더욱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되었다. 도전이 두렵지 않다. 걱정이 줄었다. 해 보고 싶은 게 늘어났다. 생각이 더 확장되었다. 지금 나의 삶의 방식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찾아가면서 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내 안에 자신감이 채워져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귀찮아하던 내가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려고 노력하는 정도로 배우고 성장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는 대안 교과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일반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면 이런 자신감과 의욕이 사라질까 걱정이 된다.
그런 때문인지 학부모들이 1년이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아쉽다고 말하며 양업고등학교나 산마을고등학교와 같은 대안학교 2학년으로 전학을 알아보는 경우도 나타났다. “자기 주도성이 커졌다.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계획하여 꾸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다”는 평가 의견을 내 주셨다. 인턴십에서 훌륭한 멘토와 대화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어졌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인턴십을 2학기에 2주 동안 하는 것으로 한정하지 말고 사전 활동과 후속 활동을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남겨 주었다. 이런 고민은 교사들의 고민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학부모와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고 결과를 공유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여했는데 그런 원칙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존중하고 잘 따라 주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려다 보니 시간 여유가 없었으며 저녁 시간에 갑작스럽게 기후 위기 관련 행사와 특강까지 추진한 적도 있었다는 반성이 나왔다. 학생들에게 월 2회 정도 행사, 특강, 축제 같은 저녁 행사를 추진하도록 체계를 만들고 예산과 정보를 제공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낀다. 프로젝트 수업에선 학생과 교사 모두 주제 선정 단계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에너지를 소진하였고 개인 프로젝트는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 학생을 방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2024년에는 인턴십과 국제 교류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와 활동을 융복합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일정과 순서를 다시 배치해야 함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교사들은 수료식을 마친 후에 평가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생활기록부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교사들은 지난 한 해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다. 생활기록부 내용을 상호 점검하여 본교로 보내 주어야 하고 2023년에 30% 줄어든 예산에 맞추어 새 학기 계획과 예산안도 만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신입생 추가 모집을 하느라 재학생들과 함께 괴산, 청주, 음성, 충주, 진천의 중학교를 순회하면서 학기 말 어수선한 교실을 파고들어 전환기 교육 간증 집회를 시도했다. 짧은 시간에 24명 정원을 채우기는 했지만, 중학교 교사들이 목도나루학교와 같은 전환기 교육의 필요성과 비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홍보 활동의 중요성을 절감하기도 했다. 충북뿐 아니라 타 시·도에도 전환기 학교가 더 많이 생겨야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